2023. 1. 2. 18:19ㆍ나의 이야기
▣ 퇴계 이황의 며느리 이야기
퇴계(退溪)선생의 둘째 아들이 2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한창 젊은 나이의 둘째 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퇴계 선생은 홀로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까?
그리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집이나 사돈집 모두에게 누(累)가 될 것이기에 한밤중이 되면 자다가도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퇴계 선생은 며느리의 방으로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퇴계 선생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퇴계 선생은 생각했다.
윤리는 무엇이고 도덕은 무엇이냐?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시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이튿날 퇴계 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 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마저 절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퇴계 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나는 할 말이 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 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반포 이후 과부의 재가 및 재가한 과부의 자녀들에 대한 불이익과 규제가 적용되던 사회 분위기에서 이는 매우 파격적인 조치였다.
몇 년 후 퇴계 선생은 한양(漢陽)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이 저물기 시작했으므로 한 집을 택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퇴계 선생이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더욱이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 집 주인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 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올라온 것이었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
퇴계 선생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며 주었다.
신어보니 퇴계 선생의 발에 꼭 맞았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퇴계 선생은 확신을 하며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계 선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먼빛으로 보아도 자기 둘째 며느리가 틀림없었다.
퇴계 선생의 두 눈에는 애틋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옛날 그토록 측은히 여기며 사랑해 주던 며느리가 아닌가.
가슴이 메어지는 듯한 뜨거운 정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손이라도 마음껏 크게 흔들어 주고 싶었지만 혹시 남의 눈에라도 뛸까봐 참고 또 참았다.
퇴계 선생은 그날 즐거운 마음으로 한양 가는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내가 청상과부였던 저 며느리를 천정으로 보내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구나.
홀로 된 과부가 마음에서 우러나 자기 스스로 절개를 지킨다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가문의 체면과 인습에 얽매여 마음에도 없는 절개를 억지로 지킨다는 것은 진정한 열녀가 아니다. 더구나, 그것을 주위 사람들이 강요하거나, 또 여자에게만 수절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히 남녀불평등이요, 여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큰 죄악이다.
퇴계 선생은 며느리를 개가(改嫁)시켰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지극히 봉건적인 그 시대에 퇴계 선생이 아니고서는 감히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극히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이 일을 놓고 유가(儒家)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퇴계 선생을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고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라는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정반대로 퇴계 선생을 칭송하고 있다. 퇴계 선생이야말로 윤리를 깨뜨리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며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라고 칭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