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九記故事 (중구기고사) - 尹愭 (윤기)

2022. 10. 28. 00:49水西散人

이 시는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가 지은 구월구일 중양절(重陽節)에 대한 장편 오언시이다. 무명자(無名子)는 세시 절기의 풍속에 대한 ○○記故事 형태의 시를 다수 지었는데 이 시는 중양절의 고사를 기록하였다. 무명자는 이 시에서 중양절의 유래는 물론 등고(登高) 음주(飮酒) 국화(菊花) 같은 중양절을 상징하는 고사와 선인(先人)들의 중양절 관련 시들과 이 시들에 대한 고사도 다양하게 인용하였다. 고사를 인용하다 보니 고사를 모르고는 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주석으로 달았으나, 워낙 방대한 분량을 요약하여 의미 전달이 잘 될지 의문이다. 72구나 되는 장편 시 임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환운(換韻)이 없이 평성(平聲) 양(陽) 운으로 압운한 일운도저격(一韻到底格)의 시이다.


重九記故事 중구기고사      尹愭 윤기
중양절의 고사를 적다.

年年九月九 년년구월구
해마다 구월 구일은
佳節號重陽 가절호중양
좋은 명절로 중양절이라 부르네
鳳律名無射¹⁾ 봉률명무역
봉률의 이름으로 무역이라 하고
龜書數有當²⁾ 구서수유당
구서에도 해당하는 수가 있네
天高雲廓宇 천고운곽우
지붕 위 구름은 하늘 높이 떴고
木落露爲霜 목락로위상
낙엽 지고 이슬은 서리가 되네
璇月揚斜影 선월양사영
별과 달빛이 그림자를 비끼고
金風發暮商³⁾ 금풍발모상
가을바람은 모상에 부는구나
物華楓又菊 물화풍우국
만물이 단풍 국화처럼 아름답고
農事稻兼粱 농사도겸량
농사는 벼와 기장을 거두는구나
所以人遊賞 소이인유상
그래서 사람들이 즐기며 놀면서
迨玆日吉良 태자일길량
길하고 좋은 이 날에 이르렀네
洲鴻流遠響 주홍류원향
모래섬 기러기 소리 멀리 흐르고
盃蟻賸輕香⁴⁾ 배의승경향
잔속 술 거품은 가벼운 향 풍기네
棗栗蒸紅餌⁵⁾ 조률증홍이
밤과 대추를 넣어 붉은 떡을 찌고
茱萸佩絳囊⁶⁾ 수유패강낭
수유 넣은 붉은 주머니를 찼구나
禦寒良莫究⁷⁾ 어한량막구
수유가 추위 막는지는 알 수 없는데
辟惡果誰詳⁷⁾ 벽악과수상
재액 피하는 건 누가 자세히 밝힐까
祈壽風由漢⁸⁾ 기수풍유한
장수를 비는 풍습은 한나라에서 유래했고
宴寮令肇唐⁹⁾ 연료령조당
신료와 잔치하는 령은 당나라 때 내렸네
蓬萊欣受橘¹⁰⁾ 봉래흔수귤
봉래궁에는 귤을 하사 받고 기뻐했고
桑落詑綏羗¹¹⁾ 상락이유강
상락주는 유강에서 왔다고 자랑했네
戱馬臺空曠¹²⁾ 희마대공광
희마대는 공허하게 비었고
商飈館杳茫¹³⁾ 상표관묘망
상표관은 멀리 아득하구나
登高成習俗 등고성습속
높은 곳에 오르는 게 풍속이 되어서
爲客望家鄕 위객망가향
나그네가 고향을 바라보게 하는구나
李白龍山飮¹⁴⁾ 이백용산음
이백은 용산에 올라 술을 마셨고
杜鵑鶴寺粧¹⁵⁾ 두견학사장
두견화는 학림사에서 곱게 피었지
嘉忘烏帽落¹⁶⁾ 가망오모락
맹가는 오사모 떨어진 것도 몰랐고
陶喜白衣忙¹⁷⁾ 도희백의망
도연명은 바삐 오는 백의를 반겼네
南主金盤侈¹⁸⁾ 남주금반치
남주의 금 쟁반은 사치스러웠고
宋朝玉醴將¹⁹⁾ 송조옥례장
송조에선 좋은 술을 담그려 했네
詩籌鶴樓敞²⁰⁾ 시주학루창
일백 가지 시는 황학루에 드높고
雲幕樂園張 운막악원장
구름 같은 장막이 낙원에 펼쳤구나
髮短愁芸叟²¹⁾ 발단수운수
짧은 머리는 운수를 시름겹게 하고
山危淚草堂²²⁾ 산위루초당
산이 높아 초당을 눈물짓게 하였네
王郞千首燦²³⁾ 왕랑천수찬
왕랑의 시는 천수가 모두 찬란하고
崔氏兩峯蒼²⁴⁾ 최씨양봉창
최 씨의 두 봉우리는 푸르렀다네
陳憶西風冷²⁵⁾ 진억서풍랭
진사도는 차가운 서풍만 기억했고
韓誇晩節臧²⁶⁾ 한과만절장
한위공은 만년의 절개를 자랑했네
賜書勤魏帝²⁷⁾ 사서근위제
위 문제는 근실하게 국서를 내렸고
度厄驗長房²⁸⁾ 도액험장방
비장방은 재액의 실체를 증명하였네
舊摘期搖蕩²⁹⁾ 구적기요탕
꽃잎은 예전에 흩날릴 때 모두 땄고
遙臨引故常³⁰⁾ 요림인고상
전고를 따라 항상 먼 고향 바라보네
吟傳有美會³¹⁾ 음전유미회
아름다운 모임에서 시를 읊어 전하고
燕想蔣陵岡³²⁾ 연상장릉강
장릉강의 잔치를 생각하게 하네
壯志推明允³³⁾ 장지추명윤
명윤의 장한 뜻을 으뜸으로 받들었고
天才愧子章³⁴⁾ 천재괴자장
왕발의 천재는 자장을 부끄럽게 했네
捲簾人似瘦³⁵⁾ 권렴인사수
주렴 걷히니 사람이 수척해진 것 같고
窺閣客追傷³⁶⁾ 규각객추상
동각에서 만났던 객은 뒤에 상심했네
可耐無錢對³⁷⁾ 가내무전대
돈 없이 국화 대한들 견딜 수 있을까
秪要有酒甞 지요유주상
다만 술이 있어야 마실 수 있을 텐데
牛山淚太俗³⁸⁾ 우산루태속
우산에서 흘린 눈물은 너무나 속되고
糕字題何妨³⁹⁾ 고자제하방
고 자로 시 짓는 게 어찌 거리낄까
百過終朝好⁴⁰⁾ 백과종조호
온갖 허물 있어도 아침나절 기뻤고
數枝滿鬢芳⁴¹⁾ 수지만빈방
국화 몇 가지가 귀밑 털보다 희구나
酒酣人衣袷 주감인의겁
술을 즐기던 사람들이 겹옷을 입고
野濶穡登塲 야활색등장
너른 들에서 거두어 타작마당에 올리네
揷朶行隨衆 삽타행수중
수유 꽃 꽂고서 사람들을 따라가며
整冠笑倩傍⁴²⁾ 정관소천방
갓을 바로 쓰려다 옆 사람 웃게 했네
花開時卽是 화개시즉시
국화가 피는 때가 바로 지금인데
月改興還長 월개흥환장
계절 바뀌니 흥이 더욱 길어지네
可厭踈風逼 가염소풍핍
거친 바람 맞는 것도 가히 싫은데
况逢冷雨滂⁴³⁾ 황봉랭우방
하물며 찬비마저 쏟아지는구나
妙詞聞伯可⁴⁴⁾ 묘사문백가
절묘한 노래는 백가에게서 들었고
好句憶潘郞⁴⁵⁾ 호구억반랑
아름다운 시구는 반랑을 생각게 하네
從古多吟醉 종고다음취
예로부터 시 읊고 술 마실 일 많아서
于今亦放狂 우금역방광
또한 지금도 미친 듯이 방탕하다네
自憐千丈白 자련천장백
천 길 되는 백발이 스스로 가련한데
忍負幾叢黃 인부기총황
몇 떨기 국화를 차마 저버릴까
縱乏驚人語 종핍경인어
사람들 놀라게 할 말이야 없지만
且傾對客觴 차경대객상
또 손님과 마주해 술잔 기울여야겠네

※鳳律(봉률)¹⁾ : 국악의 열두 음계인 육률(六律)과 육려(六呂)의 十二律(십이율)을 말한다. 六律(육률)은 십이율 중 양성(陽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소리이고, 六呂(육려)는 십이율 중 음성(陰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소리인데, 무역(無射)은 육률(六律)의 하나로 9월을 의미한다. 射는 통상 쏠 사로 읽히나 음률의 이름을 의미할 때는 역으로 읽는다.

※龜書(구서)²⁾ : 하우씨(夏禹氏) 때에 낙수(落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적혀있었다는 글씨로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거가 된 낙서(洛書)를 말한다.

※暮商(모상)³⁾ : 모(暮)는 저문다는 뜻으로 각 계절의 마지막 달을 가리키며, 상(商)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오음(五音) 중의 하나로 사계절 중 가을에 해당한다. 따라서 모상(暮商)은 가을 중 마지막 달인 음력 9월에 해당한다. 당나라 서견(徐堅)의 세시부(歲時部)에 ‘9월 계추(季秋)를 또한 모추나 모상이라고 한다.〔九月季秋 亦曰暮秋暮商〕’고 하였다.

※盃蟻(배의)⁴⁾ : 의(蟻)는 술이 잘 익을 때 생기는 거품을 개미에 비긴 것이다. 진나라 도연명의 시 의만가사(擬輓歌辭)에 ‘봄술에 개미 거품 생겼네.〔春醪生浮蟻〕’라고 하였고, 당나라 두보의 시에도 ‘개미 같은 거품이 뜨니 섣달의 맛이라.〔蟻浮仍臘味〕’라는 구절이 있다.

※棗栗蒸紅餌(조률증홍이)⁵⁾ : 한 무제 때에 중양절에 ‘수유를 차고, 경단을 먹으며, 국화주를 마신다.〔佩茱萸食餌飮菊花酒〕’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餌)는 쌀가루나 수수가루에 밤과 대추 등을 넣어 쪄서 만든 경단 또는 떡의 일종이다.

※茱萸佩絳囊(수유패강낭)⁶⁾ : 후한(後漢) 때 도사 비장방(費長房)이 그의 제자 환경(桓景)에게 “9월 9일에 너의 집에 재앙이 있을 것이니, 온 가족에게 붉은 주머니에 산수유를 담아 각자 팔목에 매어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게 하라.” 하였다. 환경이 그 말에 따라온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가축들이 몰살당해 있었다. 비장방이 이 소식을 듣고 “가축들이 대신 화를 당한 것이구나.” 하였다. 이후로 매년 중양절에는 사람들이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고, 부인들은 붉은 비단 주머니에 수유를 담아 몸에 차는 풍속이 생겼다 한다.

※禦寒良莫究(어한량막구) 辟惡果誰詳(벽악과수상)⁷⁾ : 민간의 풍속에 중양절에 수유 열매를 꺾어 머리에 꽂으면 ‘재액을 제거하고 첫추위를 막을 수 있다.〔辟除惡氣而禦初寒〕’고 여겼는데, 무명자는 그것이 근거가 있는지 누가 증명할지 알 수 없다는 뜻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祈壽風由漢(기수풍유한)⁸⁾ :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한 무제 때의 궁인(宮人)들이 중양절에 ‘경단을 먹고 국화주를 마시면 장수할 수 있다.〔佩茱萸食餌飮菊花酒云令人長壽〕’라고 여겨, 민간에서는 이를 먹고 마시며 장수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宴寮令肇唐(연료령조당)⁹⁾ : 중양절에 신하들과 술 마시며 연회를 여는 일은 전부터 있었지만, 율령을 내려서 정례적으로 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라는 말이다. 당 덕종(唐德宗)이 중양절에 곡강정(曲江亭)에서 연회를 열고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서문(序文)에서 “내가 즉위하여 정치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편안한 시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대들의 힘이다.”라는 뜻으로 말을 한 다음, 1년에 세 명절〔三令節〕을 택하여 정기적으로 잔치를 열고 시상을 하겠노라고 말하였다 한다.

※蓬萊欣受橘(봉래흔수귤)¹⁰⁾ : 당 태종 때 중양절이 되면 봉래궁에서 신하들에게 귤을 나누어주었고, 당 현종은 귤을 합환감(合歡柑) 또는 합환귤(合歡橘)이라 하여 대신들과 봉래궁에서 나누어 먹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지에 신하들에게 귤을 나누어 주었다.

※桑落詑綏羗(상락이수강)¹¹⁾ : 상락주(桑落酒)는 상락하(桑落河) 지방에서 나는 좋은 술 이름인데, 진 선제(晉宣帝) 때에 강족(羌族)의 한 부류인 유강(綏羌)족이 바친 상락주를 9월 9일 중양절에 백료(百寮)들에게 하사하여 마시도록 하였다 한다.

※戱馬臺(희마대)¹²⁾ : 희마대는 남조의 송 무제(宋武帝)가 일찍이 시를 지었던 누대의 이름이다. 당시 사첨(謝瞻)이 족형제 사영운(謝靈運)과 함께 9월 9일에 송공(宋公)을 따라 팽성(彭城)의 희마대에 모여서 상서령(尙書令) 공정(孔靖)을 전송할 때에 각각 시 한 수씩을 지었다는 고사가 있다.

※商飆館(상표관)¹³⁾ : 남조의 제(齊) 나라 고조(高祖)가 9월 9일 중양절에 상표관(商飈館)에 오르니, 이후로 세상 사람들이 상표관을 구일대(九日臺)라고 불렀다 한다.

※李白龍山飮(이백용산음)¹⁴⁾ : 이백의 시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飮)에 ‘중양절 날 용산에서 술을 마시니, 국화가 쫓겨난 신하를 비웃네. 취하여 바람결에 떨어지는 모자 바라보고, 사람을 잡는 달빛 춤추며 사랑하노라.〔九日龍山飮 黃花笑逐臣 醉看風落帽 舞愛月留人〕’는 구절이 있어 이렇게 표현하였다.

※杜鵑鶴寺粧(두견학사장)¹⁵⁾ : 당나라 때의 도사 은칠칠(殷七七)은 환술(幻術)을 잘하여 제철이 아닌 꽃도 잘 피워냈다고 한다. 윤주(潤州)의 학림사(鶴林寺)에는 두견화가 피는데, 주보(周寶)가 한 번은 은칠칠에게 “학림사(鶴林寺)의 두견화(杜鵑花)는 천하에 으뜸이라는데, 듣자니 그대는 능히 제철이 아닌 꽃을 피울 수 있다니 중구일에 맞추어 이 꽃을 한번 피워볼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은칠칠이 승낙하고 중양절 이틀 전에 학림사에 묵고 있으니 한밤중에 어떤 여인이 와서 “첩이 하늘의 명을 받들고 이 꽃을 관장하게 되었으니, 지금 도인과 함께 이 꽃을 피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더니 과연 중양절이 되자 두견화가 마치 봄처럼 찬란하게 피었더라고 한다.

※嘉忘烏帽落(가망오모락)¹⁶⁾ : 진(晉)나라 때 맹가(孟嘉)는 자가 만년(萬年)으로, 정서장군(征西將軍)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으로 있었다. 당시 중구일을 맞아 환온이 막하 속료들을 거느리고 용산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 맹가의 오사모(烏紗帽)가 날려 땅에 떨어졌는데, 술에 취한 맹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맹가가 용변을 보러 간 틈을 타서 환온이 맹가를 놀리려고 손성(孫盛)을 시켜 글을 짓게 했다. 맹가가 돌아와 그 글을 보고는 즉시 답글을 지었는데, 문장이 매우 아름다워서 온 좌중이 감탄했다고 한다.

※陶喜白衣忙(도희백의망)¹⁷⁾ : 옛날 중국에서는 심부름꾼이 백의를 입었는데, 여기서는 술을 가지고 심부름 오는 사람이다. 도연명이 중양절에 술이 없어 울 밑에 앉아 빈 잔에다 꽃잎만 따 담고 있었다. 그때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백의(白衣)를 입은 사람을 통해 백주(白酒)를 보내와서 기뻐했다고 한다.

※南主金盤侈(남주금반치)¹⁸⁾ : 남주는 남당(南唐)을 세운 이욱(李煜)을 말하는데, 지금의 남경(南京)인 금릉(金陵)에서 즉위하였기 때문에 세칭 남주(南主)라고 한다. 그는 시에도 재능이 많았는데, 그가 중양절에 지은 시 등고문(登高文)에 ‘옥 술에 맑은 청주요, 금 쟁반에 고운 떡이로다.〔玉醴澄醪 金盤繡糕〕’라고 하였다. 고(糕)는 구워 만드는 떡의 일종으로 중양절에 국화꽃을 넣어 만들어 먹는 것을 중양고(重陽糕)라고 하며, 즉 금 쟁반에 국화꽃으로 만든 고운 떡이 담겼으므로 사치스럽다는 표현이다.

※宋朝玉醴將(송조옥례장)¹⁹⁾ :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문인 유견오(庾肩吾)가 지은 시 구일시연(九日侍宴)에서 ‘좋은 술엔 국화 꽃잎 나부끼고, 은 소반엔 오동 꽃이 떨어지네.〔玉醴吹巖菊 銀床落井桐〕’라고 읊었다. 남조는 송(宋)나라에서 시작하여 제(齊) 나라를 거쳐 양(梁) 나라에 이르렀기 때문에 본문에서 이 시를 두고도 송조라고 표현한 듯하다.

詩籌鶴樓敞(시주학루창)²⁰⁾ : 송나라의 소식이 중양절에 황학루(黃鶴樓)에서 모임을 열었다. 여기에서 왕공(王鞏)의 시에 차운하여 구일차왕공운(九日次王鞏韻)이란 시를 지었는데, 시에 ‘삼천 길의 백발은 내가 많지만, 그대가 보낸 시율은 일백 가지나 되는구나. 〔鬢霜饒我三千丈 詩律輸君一百籌〕’라고 하였다. 나이는 자신이 많지만 시는 왕공이 더 잘 짓는다는 뜻으로 읊은 것이다.

※髮短愁芸叟(발단수운수)²¹⁾ : 운수(芸叟)는 북송의 문인 장순민(張舜民)의 자이다. 그가 중양절에 ‘국화를 한 번 보니 절로 부끄러워, 썰렁한 단발에 시름 금할 수 없구나. 누가 오사모를 바로 씌워줄까. 홀로 서풍을 맞으니 눈길 가득 가을이네.〔一見黃花只自羞 蕭然短髮不禁愁 誰人爲整烏紗帽 獨倚西風滿眼秋〕’라고 노래하였다.

※山危淚草堂(산위루초당)²²⁾ : 초당(草堂)은 초가집 누추한 집 은사(隱士)가 거주하는 곳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당나라 시인 두보를 가리킨다. 두보가 중양절에 ‘형편이 치우쳐 겹옷 입기 시작하고, 산은 둘러싸서 오르기에 더욱 높네. 온 나라가 모두 전쟁터이니, 취하여 노래할 때 눈물이 떨어지려 하네.〔地偏初衣袷 山擁更登危 萬國皆戎馬 酣歌淚欲垂〕’라고 읊었다.

※王郞千首燦(왕랑천수찬)²³⁾ : 왕랑은 앞의 주 ²⁰⁾에 나온 왕공(王鞏)을 말한다. 소식이 중양절에 황학루에서 모임을 열 때 왕공의 시에 차운하였는데, 여기에서 ‘왕랑의 중양절 시 천 수중에서, 오늘은 황학루 제이편을 읊노라.〔王郞九日詩千首 今賦黃樓第二篇〕’라고 읊었다.

※崔氏兩峯蒼(최씨양봉창)²⁴⁾ : 두보가 중양절에 지은 구일남전최씨장(九日藍田崔氏莊)이란 시에 ‘푸른 물은 멀리서 와서 계곡마다 떨어지고, 옥산의 찬 두 봉우리는 나란히 높이 섰네.〔藍水遠從千澗落 玉山高並兩峰寒〕’라고 읊은 것을 표현한 듯하다.


※陳憶西風冷(진억서풍랭)²⁵⁾ : 북송의 문인 진사도(陳師道)는 비가 오는 중양절에 ‘단지 모자를 눌러쓰고 서풍 맞을 뿐, 풍류가 새 시구에 이르길 기대하지 않네.〔只消著帽受西風 不待風流到新句〕.라고 읊은 것을 표현하였다.

※韓誇晩節臧(한과만절장)²⁶⁾ : 한위공은 송나라의 명재상 한기(韓琦)인데, 그가 중양절에 동료 신하들과 잔치를 열고 ‘늙은 농부의 담담한 가을 모습 부끄럽지 않으니, 장차 늦가을의 찬 국화 향을 볼 수 있음일세.〔不羞老圃秋容淡 且看寒花晩節香〕’라고 읊었다. 이에 사람들은 그의 만년 절개가 높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賜書勤魏帝(사서근위제)²⁷⁾ : 삼국 시대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여종요구일송국서(與鐘繇九日送菊書)에서 ‘옥체를 보하고 수명을 늘이는 데는 국화꽃만큼 귀한 것이 없으니(輔體延年, 莫斯之貴), 국화꽃 한 묶음을 올리니 옛적에 장수한 팽조의 도술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謹奉一束, 以助彭祖之術)’라고 하여 장수를 바라며 국화주를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度厄驗長房(도액험장방)²⁸⁾ : 주 ⁶⁾에서 후한(後漢) 때의 도사 비장방(費長房)이 그의 제자 환경(桓景)에게 9월 9일에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게 하여 화를 면하게 하여 재액이 있었음을 증명한 것을 말한다.

※舊摘期搖蕩(구적기요탕)²⁹⁾ : 두보의 시에 ‘추위에 꽃이 이미 모두 시들었는데, 국화꽃만이 홀로 가지에 가득하네. 예전에 땄는데 사람이 자주 바뀌니, 가벼운 향이 술에 잠깐 어리네.〔寒花開已盡 菊蘂獨盈枝 舊摘人頻異 輕香酒暫隨〕’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遙臨引故常(요림인고상)³⁰⁾ : 중양절에 고향을 떠난 나그네는 멀리서 고향 쪽을 바라보며 형제들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왕유도 시 중구일에 산동의 형제들을 그리워하다〔九日懷山東兄弟〕에서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가 되니, 명절만 되면 부모 생각이 배가 되네. 형제들 높은 곳에 오른 걸 멀리서도 알겠는데, 산수유 꽂고 노는데 나 하나 모자라네.〔獨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 兄弟登高處 遍揷茱萸少一人〕’라고 하였다.

※吟傳有美會(음전유미회)³¹⁾ : 아름다운 모임은 주 ¹⁶⁾의 환온이 주도한 용산의 모임을 말하는데 이때 지은 맹가의 답 글이 매우 좋아 후세에 전해 졌으며, 이후로 중양절이 되면 이 모임을 본받아 문사들이 문주회(文酒會)를 열고 시를 지어 이날의 고사를 전하였다 한다.

※燕想蔣陵岡(연상장릉강)³²⁾ : 제(齊) 나라 무제(武帝)가 중양절에 장릉강(蔣陵岡)에서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壯志推明允(장지추명윤)³³⁾ : 명윤(明允)은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아버지소순(蘇洵)의 자이다. 충헌공(忠獻公) 한기(韓琦)가 중양절에 술을 장만하여 구양수(歐陽脩) 등 몇 사람의 집정자들과 연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 소순이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참석하여 다른 인사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연회 자리에서 시를 읊을 때 소순이 ‘좋은 절기는 누차 근심 속에 지나갔지만, 장한 마음은 도리어 취중에 오는구나.〔佳節屢從愁裏過 壯心還倚醉中來〕’라고 하여, 뜻과 기개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고 한다.

※天才愧子章(천재괴자장)³⁴⁾ : 자장은 홍주 자사(洪州刺使) 염백서(閻伯嶼)의 사위 오자장(吳子長)인데, 당나라 초기의 천재였던 왕발(王勃)이 뛰어난 문장력으로 오자장을 부끄럽게 했다는 뜻이다. 염백서가 저 유명한 등왕각(滕王閣)을 중수한 뒤 기념으로 중양절에 등왕각에서 큰 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참석한 손님들에게 서문을 짓게 하여 내심 사위인 오자장의 문필을 빈객에게 자랑할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나이 어린 왕발이 갑자기 나타나 서문을 짓는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다가 ‘저녁노을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구절에 이르러 그만 손뼉을 치며 탄복하였다고 한다.

※捲簾人似瘦(권렴인사수)³⁵⁾ : 북송 시기의 여성 시인인 이청조(李淸照)는 송대에 크게 유행했던 서정적인 운문으로서 음률에 맞추어 노래로 불리는 사(詞)를 주로 지었다. 그가 중양절이 되어 부모를 그리는 마음을 사로 읊어 “혼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말을 마오. 발을 걷으면 가을바람에 저는 국화꽃처럼 수척해졌답니다. [莫道不銷魂 簾捲西風 人似黃花瘦]”라고 하였다.

※窺閣客追傷(규각객추상)³⁶⁾ :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당시의 천평군절도사(天平軍節度使)인 영호초(令狐楚)에게 문재를 인정받아 그의 막료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죽고 난 뒤 그 아들에 의해 좌천을 당했다. 이상은이 중양절 날 시를 지어 감회를 쓰니, 영호초의 아들이 이 시를 보고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 시에 ‘한나라 신하가 목숙 재배를 배우지 못하고, 부질없이 초나라 객이 되어 강리를 읊게 하네. 낭군은 관직 높아 행마를 설치했으니, 동각에서 다시 뵈올 수가 없구나.〔不學漢臣栽苜蓿 空敎楚客詠江蘺 郞君官貴施行馬 東閣無因再得窺 〕”라고 하였다.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이상은이 마음이 상했음을 표현한 듯하다.

※可耐無錢對(가내무전대)³⁷⁾ : 도연명이 중양절에 술이 없어 울 밑에 앉아 속절없이 빈 잔에 꽃잎만 따 담고 있을 때,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백의 사자(白衣使者)를 통해 술을 보낸 고사를 두보가 인용하여 ‘도 팽택은 늘 한스러워했네, 국화를 대하고도 술 살 돈이 없으니. 지금처럼 중양절이 다가오면, 반드시 술을 사야 하는 것을 깨닫네.〔每恨陶彭澤 無錢對菊花 如今九日至 自覺酒須賖〕’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牛山淚太俗(우산루태속)³⁸⁾ : 제 경공(齊景公)이 중양절에 우산에 올라서 북쪽으로 제나라를 바라보며 ‘초목이 울창한 아름다운 나라여. 예로부터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내가 죽으면 장차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라고 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는 고사를 인용하였다.

※糕字題何妨(고자제하방)³⁹⁾ :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중양절에 시를 지을 때 고(糕) 자를 가지고 운을 삼으려고 하다가, 고 자가 오경에 없다는 이유로 짓지 않았다. 뒤에 송나라 시인 송기(宋祁)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시를 지어 ‘유우석이 고 자로 운을 쓰지 못해, 시의 일세 영웅을 헛되이 저버렸네.〔劉郞不敢題糕字 虛負詩中一世豪〕’라고 읊었다. 이 시가 고금의 절창이 되어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百過終朝好(백과종조호)⁴⁰⁾ : 소식이 윤구월(閏九月)에 피운루(披雲樓)라는 시를 지어 ‘윤달에 구일을 다시 만나 참으로 기쁘지만, 아침나절 백 가지 허물에 근심 더욱 깊어지네.〔九日再逢堪一笑 終朝百過更深憂〕’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數枝滿鬢芳(수지만빈방)⁴¹⁾ : 영호초가 중양절에 유우석을 그리워하며 시를 지어 ‘가을꽃 아직 지지 않았지만, 두 국화가 막 향기롭네. 귀밑털처럼 희다 하고, 허리에 찬 금도 여기에 비하면 덜 노랗네. 멀리서 술 띄우며 그리워하노니, 어이하면 다시 함께 흠뻑 취할까.〔西花雖未謝 二菊又初芳 鬢雲徒云白 腰金未是黃 泛酒遙相憶 何由共醉狂〕’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흰 국화는 흰 귀밑털만큼 희고, 노란 국화는 허리에 찬 황금보다 누렇다는 뜻이다.

※整冠笑倩傍(정관소천방)⁴²⁾ : 맹가의 용산낙모(龍山落帽)의 고사에서 술에 취해 바람에 모자가 날아간 줄도 모르던 맹가가 옆 사람들이 “모자를 어떻게 했냐?”라고 묻자 황급히 없는 모자를 바로 쓰려 허둥대었다. 이 모습이 바라보던 옆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웃게 했다는 뜻이다.

※况逢冷雨滂(황봉랭우방)⁴³⁾ : 송나라 반대림(潘大臨)의 시 제벽(題壁)에 ‘중양이 가까운데 온 성에 풍우 치네.〔滿城風雨近重陽〕’라고 읊었고, 또 남송의 시인 강여지(康與之)가 지은 사(詞)도 중양절에 내리는 궂은비를 노래하였다.

※妙詞聞伯可(묘사문백가)⁴⁴⁾ : 백가(伯可)는 앞의 주 ⁴³⁾의 강여지의 자이다. 그가 지은 사(詞)는 음률이 정확하고 매우 뛰어났는데. 그의 시 중양절에 비가 내리다〔重九遇雨〕에 ‘중양일에, 궂은비 사방에 내리고. 희마대 앞에 진흙이 배에 튀고, 용산 모임에는 물이 배꼽까지 찼네. 곧장 동쪽 울타리도 잠기고. 수유는 싱그럽고, 국화 떨기 촉촉히 젖었네. 모자 떨어뜨린 맹가는 삿갓을 찾고, 관직에서 물러난 도연명은 도롱이를 찾네.〔重陽日 陰雨四垂垂 戲馬臺前泥拍肚 龍山會上水平臍 直浸到東籬 茱萸胖 菊蘂濕滋滋 落帽孟嘉尋篛笠 休官陶令覓蓑衣〕’라고 읊어 각종 전거를 절묘하게 얽어 노래한 것을 말한다.

※好句憶潘郞(호구억반랑)⁴⁵⁾ : 반랑은 앞의 주 ⁴³⁾의 반대림이다. 그는 시인 사무일(謝無逸)과 친한 사이로 서로 시구를 주고받았다. 훗날 반대림이 죽은 뒤 사무일이 중양절 무렵 비가 내리자 벗의 아름다운 시구를 추억하며 ‘온 성에 비바람 치는 중양절 무렵, 국화가 향기를 근심함에 어이하랴. 빗방울이 하늘에 날려 적벽이 희미하니, 서쪽으로 바라보며 반랑을 생각하게 하네.〔滿城風雨近重陽 無奈黃花惱意香 雪浪飛天迷赤壁 令人西望憶潘郞〕’라고 시를 지어 그리운 마음을 담았다는 고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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