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樂八曲

2022. 10. 24. 22:11水西散人

경기체가 독락팔곡(景幾體歌 獨樂八曲)

1. 출처(出處)
《송암집(松巖集)》의 〈송암독락곡(松巖獨樂曲)〉

2. 작자(作者)
권호문(權好文)

3. 연대(年代)
조선(朝鮮) 명종(明宗)·선조(宣祖)(1531∼1587)
  
4. 구성(構成)
병서(幷序)와 함께 7장(章)으로 되어 있다.

5. 원문(原文)
獨樂曲幷序
巖主謀拙萬事。才短六藝。寓形世間。宅心物外。黃墨之暇。會有嘉辰之興。可詠之事。發以爲歌。調以爲曲。揮毫題次。擬爲樂府。雖嗚嗚無節。聽以察之。則詞中有意。意中有指。可使聞者感發而興嘆也。有時松月滿庭。春花撩人。佳朋適至。則酌罷芳樽。共憑巖軒。高歌若干章。手之舞足之蹈。幽人之樂足矣。考槃之歌。負薪之謠。不知孰優孰劣也。忘懷得失。以樂其志。甘原思之貧。而唾子張之祿。臥羲皇之北窓。酣華胥之高枕。富貴何能淫。威武不能奪。凡日用喜怒哀樂之發。憂憾悲歡之事。一於此寬焉。査滓之滌。邪穢之蕩。不期而然。古人云。歌多出於憂思。此亦發於余心之不平。而朱文公曰。詠歌其所志。以養性情。至哉斯言。心之不平而有是歌。歌之暢志而養其性。噫。松窓數般之曲。豈無少補於風朝月夕之動蕩精神乎。余是以。戲有是說焉。
太平聖代。田野逸民。再唱耕雲麓釣煙江이이밧긔일이업다窮通이在天니貧賤올시름랴玉堂金馬내의願이아니로다泉石이壽域이오草屋이春臺라於斯臥於斯眠。俯仰宇宙。流觀品物야居居然浩浩然。開襟獨酌。岸幘長嘯景긔엇다니잇고
草屋三間容膝裏。昂昂一閒人。再唱琴書를벗을삼고松竹으로울을니翛翛生事와淡淡襟懷예塵念이어나리時時예落照趁淸。蘆花岸紅고殘煙帶風楊柳飛거든一竿竹빗기안고忘機伴鷗。景긔엇다니잇고
士何事乎。尙志而已。再唱科名損志고利達害德이라모미黃卷中聖賢을뫼압고言語精神日夜애頤養야一身이正면어러로못가리오俯仰恢恢고往來平平니갈길알오立志를아니랴壁立萬仞。磊落不變야嘐嘐然尙友千古景긔엇다니잇고
入山恐不深。入林恐不密。寬閒之野。寂寞之濱에卜居를定니野服黃冠이魚鳥外버디업다芳郊애雨晴고萬樹애花落後에靑藜杖뷔집고十里溪頭애閒往閒來든曾點氏浴沂風雩와程明道傍花隨柳도이러턴가엇다턴고暖日光風이불니거니興滿前니悠然胸次丨與天地萬物上下同流。景긔엇다니잇고
집은范萊蕪의蓬蒿丨오길은蔣元卿의花竹이로다百年浮生이러타엇다리진실로隱居求志고長往不返면軒冕이泥塗丨오鼎鍾이塵土丨라乎磨霜刃인이들긋리랴韓昌黎三上書내의데區區고杜子美三大賦丨내둉내行道랴두어라彼以爵我以義。不願人之文繡야世間萬事。都付天命。景긔엇다니잇고
君門深九重고草澤隔萬里니十載心事를어이야上達료數封奇策이草얀디오래거다致君澤民은내의才分아니런가窮經學道를두고이리랴하리藏修丘壑。遯世無悶야날조번님네뫼옵고綠籤山窓의共把遺經究終始。景긔엇다니잇고
一屛一榻。左箴右銘。再唱神目如電이라暗室을欺心며天聽如雷라私語들妄發랴戒愼恐懼를隱微間애닛디마새坐如尸儼若思。終日乾乾夕惕若든尊事天君고攘除外累야百體從令。五常不斁야治平事業을다이루려엿더니時也命也인디迄無成功。歲不我與니白首林泉의올일이다시업다우읍다山之南水之北애斂藏蹤跡야百年閒老。景긔엇다니잇고

6. 내용(內容)
  (1) 병서(幷序)
獨樂曲幷序 巖主謀拙萬事。才短六藝。寓形世間。宅心物外。黃墨之暇。會有嘉辰之興。可詠之事。發以爲歌。調以爲曲。揮毫題次。擬爲樂府。雖嗚嗚無節。聽以察之。則詞中有意。意中有指。可使聞者感發而興嘆也。有時松月滿庭。春花撩人。佳朋適至。則酌罷芳樽。共憑巖軒。高歌若干章。手之舞足之蹈。幽人之樂足矣。考槃之歌。負薪之謠。不知孰優孰劣也。忘懷得失。以樂其志。甘原思之貧。而唾子張之祿。臥羲皇之北窓。酣華胥之高枕。富貴何能淫。威武不能奪。凡日用喜怒哀樂之發。憂憾悲歡之事。一於此寬焉。査滓之滌。邪穢之蕩。不期而然。古人云。歌多出於憂思。此亦發於余心之不平。而朱文公曰。詠歌其所志。以養性情。至哉斯言。心之不平而有是歌。歌之暢志而養其性。噫。松窓數般之曲。豈無少補於風朝月夕之動蕩精神乎。余是以。戲有是說焉。

독락곡 병서 송암(松巖)의 주인은 모든 일에 도모함이 졸렬하고 육예(六藝)에 재주가 모자라 몸을 세상에 붙였으나 마음은 물외(物外)에 머물렀다. 책을 읽는 여가에 마침 좋은 때의 흥과 읊조릴 만한 일이 있으면 표현하여 노래를 짓고 곡조에 맞춰 곡(曲)을 만들었는데, 붓을 놀려 차례대로 지어 악부(樂府)를 본떠 만들었다. 비록 흐느끼는 듯한 절주는 없지만 듣고 잘 살펴보면 말 가운데 뜻이 있고 뜻 가운데 가리키는 바가 있어 듣는 이가 감발하여 찬탄하도록 하였다. 때때로 소나무에 비치는 달빛이 뜰에 가득하고 봄꽃이 사람을 꼬드기며 좋은 벗이 마침 이르면 맛있는 술을 다 마시고 송암의 난간에 함께 기대어 〈독락팔곡〉 몇 장(章)을 큰소리로 노래하니 손이 춤추고 발이 뛰어 은자의 즐거움으로는 충분하였다. 〈고반(考槃)〉의 노래와 나무꾼의 노래 중에서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한지를 모르겠다. 이해득실을 잊고서 자기의 뜻을 즐기며 원사(原思)의 가난을 달게 여겨 자장(子張)의 녹봉에 침을 뱉고, 희황(羲皇)의 북창(北窓)에 누워 화서(華胥)의 고침(高枕)을 즐기고, 부귀에도 간사해지지 않고 위무(威武)에도 뜻을 빼앗기지 않았다. 무릇 평소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생기는 것과 시름하고 즐거워하는 일이 모두 여기에서 너그럽게 될 것이다. 찌꺼기를 씻고 더러운 때를 없애는 것은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옛사람이 “노래는 근심에서 많이 나온다.”라고 하였으니 이것 또한 내 마음이 불평한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문공(朱文公)이 말하기를 “그 뜻하는 바를 읊고 노래하여 성정(性情)을 기른다.”라고 하였으니, 지극하구나, 이 말이여! 마음에 불평이 있어서 이러한 노래가 있고, 노래로 뜻을 통창하여 그 성정을 기른다. 아, 송암 창가의 몇 가지 곡조가 어찌 바람 부는 아침이나 달 뜨는 저녁에 정신을 흥기시키는 데 자그마한 보탬이 없겠는가? 나는 이 때문에 장난삼아 이러한 말을 하게 되었다.
가. 육예(六藝) :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를 말한다.
나. 고반(考槃)〉의 노래 : 〈고반〉은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편명으로, 가사는 “考槃在澗,碩人之寬 獨寤寐言,永矢弗諼 考槃在阿,碩人之薖 獨寤寐歌,永矢弗過 考槃在陸,碩人之軸 獨寤寐宿,永矢弗告(고반재간,석인지관 독오매언,영시불훤 고반재아,석인지과 독오매가,영시불과 고반재륙,석인지축 독오매숙,영시불고)”이다.
다. 원사(原思)의 가난 : 원사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원헌(原憲)의 자(字)로 공자(孔子)의 제자이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토담집에 거적을 치고 깨진 독으로 구멍을 내서 문으로 삼았는데, 지붕이 새어 축축한 방에서 바르게 앉아 금슬(琴瑟)을 연주하였다 한다.
라. 자장(子張)의 녹봉 : 자장은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인 전손사(顓孫師)의 자이다.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자장이 벼슬해서 출세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자 공자가 ‘많이 듣고서 의심스러운 것은 빼놓고 그 나머지만을 신중히 말하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보고서 확실하지 않은 것은 빼놓고 그 나머지만을 신중히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할 때 허물이 적고 행할 때 후회가 적으면 녹봉은 바로 그 속에 있다. “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行寡悔, 祿在其中矣(자장학간록,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칙과우 ; 다현궐태, 신행기여칙과회. 언과우행과회, 녹재기중의)”라고 하였다.
마. 희황(羲皇)의 북창(北窓)에 누워 : 《진서(晉書)》 〈도잠전(陶潛傳)〉에 “여름철 한가로이 북창 가에 잠들어 누웠다가 삽상한 바람이 불어와 잠을 깨고 나서 스스로 희황상인이라 일컬었다. 夏月虛閑, 高臥北窓之下, 淸風颯至, 自謂羲皇上人(하월허한, 고와북창지하, 청풍삽지, 자위희황상인)“
바. 화서(華胥)의 고침(高枕) : 태평시대를 뜻한다. 《列子 黃帝(열자 황제)》에 옛날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놀러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경(理想境)을 보았다. 그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도 이해의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문득 깨달은 바 있어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사. 부귀에도 …… 않았다 :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하(下)〉에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빈천이 절개를 바꾸게 하지 못하며, 위무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대장부라 이른다.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부귀불능음, 빈천불능이, 위무불능굴, 차지위대장부)”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아. 노래는 …… 나온다 : 한(漢)나라 유희(劉熙)가 찬한 《석명(釋名)》 권7 〈석악기(釋樂器)〉에 이르기길, “음(吟)은 엄숙함이다. 그 소리는 본래 우수(憂愁)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소리가 엄숙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처량하고 탄식하게 한다. 吟, 嚴也. 其聲本出于憂愁, 故其聲嚴肅, 使聽之悽歎也(음, 엄야. 기성본출우우수, 고기성엄숙, 사청지처탄야)”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 주문공(朱文公) : 정자(程子)의 잘못이다.
차. 그 뜻하는 …… 기른다 : 《논어》 〈태백(泰伯)〉 주(註)에 “정자가 말하기를 ‘고인의 음악은 성음으로 귀를 길렀고, 채색으로 눈을 길렀고, 노래로 성정을 길렀고, 춤으로 혈맥을 길렀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져서 음악에서 완성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옛날에 재질을 완성하는 것은 쉬웠으나 오늘날에 재질을 완성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古人之樂, 聲音所以養其耳, 采色所以養其目, 歌詠所以養其性情, 舞蹈所以養其血脈, 今皆無之, 是不得成於樂也. 是以古之成材也易, 今之成材也難

독락팔곡(獨樂八曲)
                                권호문

1장
太平聖代(태평성대) 田野逸民(전야일민) 再唱(재창)
耕雲麓(경운록) 釣烟江(조연강)이 이밧긔 일이업다.
窮通(궁통)이 在天(재천)ᄒᆞ니 貧賤(빈천)을 시름ᄒᆞ랴.
玉堂(옥당) 金馬(금마)ᄂᆞᆫ 내의願(원)이 아니로다.
泉石(천석)이 壽域( 수역)이오 草屋(초옥)이 春臺(춘대)라.
於斯臥(어사와) 於斯眠(어사면) 俯仰宇宙(부앙우주) 流觀(유관) 品物(품물)ᄒᆞ야,
居居然(거거연) 浩浩然(호호연) 開襟獨酌(개금독작) 岸幘長嘯(안책장소)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1장
태평스럽고 성스러운 시대에, 시골에 은거하는 절행이 뛰어난 선비가,  
구름 덮인 산기슭에 밭이랑을 갈고, 내 낀 강가에 낚시를 드리우느니, 이밖에는 일이 없도다.
빈궁과 영달이 하늘에 달렸으니, 가난함과 천함을 걱정하리오,
漢나라때 궁궐문이나 관아 앞에 銅馬를 세움으로 명칭한 金馬門과, 翰林院의 별칭인 玉堂署가 있어, 이들은 임금을 가까이서 뫼시는 높은 벼슬아치로,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로다.
천석으로 이루어진 자연에 묻혀 사는 것도, 仁德이 있고 수명이 긴 壽域으로 盛世가 되고, 초옥에 묻혀 사는 것도, 봄 전망이 좋은 春臺로 성세로다.
어사와! 어사와! 천지를 굽어보고 쳐다보며, 삼라만상이 제각기 갖춘 형체를 멀리서 바라보며,
安靜된 가운데 넓고도 큰 흉금을 열어제쳐 놓고 홀로 술을 마시느니, 두건이 높아 머리뒤로 비스듬히 넘어가, 이마가 드러나서 예법도 없는 데다 길게 휘파람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2장
草屋三間(초옥삼간) 容膝裏(용슬리) 昻昻(앙앙) 一閒人(일한인) 再唱(재창)
琴書(금서)를 벗을 삼고 松竹(송죽)으로 울을ᄒᆞ니
翛翛(소소) 生事(생사)와 淡淡(담담) 襟懷(금회)예 塵念(진념)이 어ᄃᆡ나리.
時時(시시)예 落照趂淸(낙조진청) 蘆花(노화) 岸紅(안홍)ᄒᆞ고,
殘烟帶風(잔연대풍) 楊柳( 양류) 飛(비)ᄒᆞ거든,
一竿竹(일간죽) 빗기안고 忘機伴鷗(망기반구)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2장
초가삼간이 너무 좁아, 겨우 무릎을 움직일 수 있는 방에는, 지행 높고 한가한 사람이,  
야금을 타고․책 읽는 일을 벗삼고․집 둘레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을 하였으니,
찢기어진 생계와 산뜻하게 가슴깊이 품고 있는 회포는, 속세의 명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 나리오.
저녁 햇빛이 맑게 개인 곳에 다다르고, 흰 갈대꽃이 핀 기슭에 비쳐서 붉게 물들었는데, 남아 있는 내에 섞여 부는 바람결에 버드나무가 날리거든,
하나의 낚시대를 비스듬히 끼고․세속 일을 잊고서 갈매기와 벗이 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3장
士何事乎(사하사호) 尙志而已(상지이이) 再唱(재창)
科名(과명) 損志(손지)ᄒᆞ고 利達(이달) 害德(해덕)이라.
모ᄅᆞ미 黃券中(황권중) 聖賢(성현)을 뫼압고,
言語精神(언어정신) 日夜(일야)애 頤養(이양)ᄒᆞ야,
一身(일신)이 正(정)ᄒᆞ면 어ᄃᆡ러로 못가리오.
俯仰(부앙) 恢恢(회회)ᄒᆞ고 往來(왕래) 平平(평평)ᄒᆞ니,
갈길ᄅᆞᆯ 알오 立志(입지)를 아니ᄒᆞ랴.
壁立萬仞(벽립만인) 磊落( 뇌락) 不變(불변)ᄒᆞ야,
嘐嘐然(교교연) 尙友千古(상우천고)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3장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하느냐, 뜻을 높게 가질 뿐이로다.  
과거급제란 명예로움은 내 뜻을 손상시키고, 이익과 출세란 덕을 해치는 것이로다.
모름지기 책 가운데서 성현을 뫼시옵고,
언어와 정신을 맑은 달밤에 잘 가다듬고․고요히 수양하여,
내 한 몸이 바르게 된다면 어디러로 못 가리오.
굽어보고․쳐다보아 크고 넓게 포용하는 모습이 왕래가 평이로워지느니, 내 갈 길을 알아서 뜻을 세우지 아니하리오.
벽처럼 선 낭떠러지가 만 길은 되는데, 내 마음은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변하지 않느니,
뜻이 커서 말함이 시원스러운데다, 책 읽어 아득한 옛 현인을 벗으로 삼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4장
入山(입산) 恐不深(공불심) 入林(입림) 恐不密(공불밀)
觀閒之野(관한지야) 寂寞之濱(적막지빈)에 卜居(복거)를 定(정)ᄒᆞ니
野服(야복) 黃冠(황관)이 魚鳥外(어조외) 버디업다.
芳郊(방교)애 雨晴(우청)하고 萬樹(만수)애 花落(화락)후에,
靑藜杖(청려장) 뷔집고 十里(십리) 溪頭(계두)애 閒往(한왕) 閒來(한래)ᄒᆞᄂᆞᆫ ᄠᅳ든
曾點氏(증점씨) 浴沂(욕기) 風雩(풍우)와 程明道(정명도) 傍花(방화) 隨柳(수류)도 이러턴가 엇다턴가.
暖日(난일) 光風(광풍)이 불ᄭᅥ니 ᄇᆞᆯ거니 興(흥) 滿前(만전)ᄒᆞ니,
悠然胸次(유연흉차)ㅣ 與天地(여천지) 萬物上下(만물상하) 同流(동류)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4장
韓愈가 산에 들면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숲에 들면 숲이 빽빽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마음은 너그럽고도 한가한 들판에서 밭을 갈고, 쓸쓸한 물가에서 낚시를 드리울 수 있는, 살만한 곳을 가려 점쳐서 정하였느니,
시골사람의 의복에다 野人의 관을 쓰고 살면서, 물고기와 새밖에는 벗이 없도다.
향그러운 교외에는 비가 개이고, 수많은 나무들에는 꽃이 떨어진 뒤에,  
명아주지팡이를 짚고서, 십리되는 시냇머리를 한가하게 오고 가는 뜻은,
마치 증점씨(曾點氏)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무우(舞雩)로 바람을 쐬며 돌아오는 산뜻한 그 기분과, 정명도(程明道)가 꽃을 곁에 두고 버드나무를 좇아 거닐던 기분도 이렇던가 어떻던고.
따스한 햇볕과 청명한 날씨에 부는 바람이 불거니․밝거니 하여 흥취가 내앞에 가득하여지느니,
침착하고도 여유있는 가슴속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흘러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5장  
집은 范萊蕪(범래무)의 蓬蒿(봉호)ㅣ오 길은 蔣元卿(장원경)의 花竹(화죽)이로다.
百年浮生(백년부생) 이러타 엇다ᄒᆞ리.
진실로 隱居(은거) 求志(구지)ᄒᆞ고 長往(장왕) 不返(불반)ᄒᆞ면
軒冕(헌면)이 泥塗(이도)ㅣ오 鼎鐘(정종)이 塵土(진토)ㅣ라.
千磨(천마) 霜刃(상인)인ᄃᆞᆯ 이ᄠᅳ들 긋츠리랴.
韓昌黎(한창려) 三上書(삼상서)ᄂᆞᆫ 내의ᄠᅳ데 區區(구구)ᄒᆞ고,
杜子美(두자미) 三大賦(삼대부)ㅣ 내둉내 行道(행도)ᄒᆞ랴.
두어라 彼以爵(피이작) 我以義(아이의) 不願人之(불원인지) 文繡(문수)ᄒᆞ야
世間萬事(세간만사) 都付天命(도부천명)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5장
내집은 저 後漢적 范萊蕪가 끼니가 떨어질 정도로 가난하였어도, 태연자약하게 초야에 묻혀 살았듯, 前漢적 蔣元卿이 뜰앞의 꽃과 대나무 아래에다 세갈래 길을 여고, 求仲과 羊仲으로 더불어 조용히 놀기를 구하였도다.
평생동안 덧없는 인생이 이렇다고 어떠하리.
진실로 은거하여 뜻을 구하고,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부가 타는 수레와 복장이 진흙처럼 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종묘에 두는 그릇에다 공적을 새긴 이름도 아득한 후세에는 흙먼지에 지나지 않는도다.
천번이나 갈았는 서릿발 서슬이 푸른 날카로운 칼날일지라도 이 뜻을 끊으랴.
韓昌黎는 세번이나 상서를 올림에, 그 때마다 귀양을 감으로써 벼슬길이 막혔는데, 그것은 나의 뜻에 각기 달랐고,
杜子美는 三大禮賦를 올림에 드디어 벼슬길이 트였다고, 내 마침내 그러한 도를 행하랴.
두어라, 그들은 그들의 작위를 가지고 행하나, 나는 나의 正義를 가지고 행하는데, 남의 수놓은 비단옷(벼슬)을 원치 않으매,
세간의 만사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6장
君門(군문) 深九重(심구중) ᄒᆞ고 草澤(초택) 隔萬里(격만리) ᄒᆞ니,
十載(십재) 心事(심사)를 어이ᄒᆞ야 上達(상달)ᄒᆞ료.
數封(수봉) 奇策(기책)이 草(초)하얀디 오래거다.
致君(치군) 澤民(택민)은 내의才分(재분) 아니런가.
窮經(궁경) 學道(학도)를 ᄠᅳᆮ두고 이리ᄒᆞ랴.
ᄎᆞᆯ하리 藏修丘壑(장수구학) 遯世(둔세) 無悶(무민)ᄒᆞ야
날조ᄎᆞᆫ 번님네 뫼옵고
錄籤(녹첨) 山窓(산창)의 共把遺經(공파유경) 究終始(구종시)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6장
임금님 계신 곳은 깊은 구중궁궐이고, 초야에 묻혀 사는 백성들과는 만리로 막혔느니,
십년동안 마음에 생각한 일을 어찌하여 위로 임금님께 여쭈어 알게 하리오.
운수가 기이하여 내 계책을 봉하여 둔 지가 오래되었도다.
벼슬하면 임금에게 충성함에 이르게 되고, 백성에게는 은택을 내려 주어야 하는 것인데, 이는 나의 천부의 재능이 아니던가.
경서를 궁구하는 가운데, 성현의 도를 배우기 위한 데다 뜻을 두고 이리하랴.
차라리 쉬지 않고 글을 읽어서, 배움에 힘쓰는 저 언덕과 구릉이 있는 은거처에서, 세상을 숨어살아도 고민이 없으매,
나를 따르는 벗님네 뫼옵고 史書庫의 綠牙籤을 표지로 한, 장서가 가득한 창앞에서 성현의 경서를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궁구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7장
一屛一榻(일병일탑) 左箴右銘(좌잠우명) 再唱(재창)
神目(신목) 如電(여전)이라 暗室(암실)을 欺心(기심)ᄒᆞ며,
天聽(천청) 如雷(여뇌)라 私語(사어)인들 妄發(망발)ᄒᆞ랴.
戒愼(계신) 恐懼(공구)를 隱微間(은미간)애 닛디마새.
左如尸(좌여시) 儼若思(엄약사) 終日乾乾(종일건건) 夕愓若(석상약) ᄒᆞᄂᆞᆫᄠᅳᆮ든
尊事(존사) 天君(천군)ᄒᆞ고 攘除(양제) 外累(외누)ᄒᆞ야,
百體從令(백체종령) 五常(오상) 不斁(불두)ᄒᆞ야
治平(치평) 事業(사업)을 다이루려 ᄒᆞ였더니
時也(시야) 命也(명야)인디 迄無成功(흘무성공) 歲不我與(세불아여) ᄒᆞ니,
白首(백수) 林泉(임천)의 ᄒᆞ올일이 다시업다.
우읍다. 山之男(산지남) 水之北(수지북)애 斂藏(염장) 蹤跡(종적)ᄒᆞ야
百年閒老(백년한로)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7장
하나의 병풍에다 하나의 평상을 두고, 왼쪽에는 경계가되는 箴言을․오른쪽에는 마음에 아로새길 座右銘을 두고,  
귀신의 눈으로 볼 제는 번갯불같이 밝게 보이므로, 어두운 방안이라고 제 마음을 못 속이며,
하늘이 들을 제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므로,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망발을 하랴.
군자가 경계하고․삼가며 몹시 두려워하는 것은, 은암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세미한 일보다 더 뚜렷해진다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
앉은 모습은 尸童氏처럼 반드시 공경하고․장중한 태도로 앉아야 하고, 얼굴빛과 몸가짐은 엄숙하고․단정하게 가져서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처럼, 낮에는 하루종일 쉼 없이 노력하고, 저녁에는 반성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뜻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잘 섬김으로써, 내 몸 밖에서 오는 누끼치는 일을 물리쳐 없애고,
온몸이 令을 좇아서, 아비는 의롭고․어미는 자애롭고․형은 우애롭고․아우는 공경하고․아들은 효성함으로써, 五常을 싫어함이 없어야만,
백성들이 잘 다스려져 평안한 세상이 되게 하고, 사업을 모두 이루고자 하였더니,  
때가 아닌지 운명인지, 마침내 성공함이 없었고, 세월은 나와 더불어 기다려 주지 않으니, 흰머리의 늙은이로 숲과 샘이 있는 은거처에서 할 일이 다시 없도다.
우습다,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인 양지바른 곳에다 내 발자취를 거두어 감추고, 평생동안을 한가하게 늙어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해설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권호문이 지은 경기체가. 현존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문집인 <송암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작자는 “고인이 말하기를 노라라 하는 것은 흔히 시름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듯이 이 노래 또한 나의 불평에서 나온 것이니, 한편 주자의 말처럼 노래함으로써 뜻을 펴고 성정을 기르겠다.”라고 제작 동기를 피력하였다. 이로 보아 작자는 강호자연의 유연한 정서생활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성정을 닦고 기르는 도학의 자세로 받아들였으며,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불평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자는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산수에서 노닐며 노래로써 시름을 달래었다. 작자의 어머니가 천비(賤婢)였다는 점에서 벼슬길에 제약이 있었을 것은 확실하며, 웅대한 학덕을 지니고도 크게 펴보지 못한 데서 오는 소외감과 불평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제5연을 보면 그의 의기가 얼마나 드높으며, 그러면서도 불평에 가득 찬 사람이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태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전편에 표면적으로는 강호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태평성대에 한 일민(逸民)으로서 자연을 사랑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홀로 즐기는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보지 못하는 불평이 짙게 깔려 있다.  



​독락팔곡 해석



1장



태평스럽고 성스러운 시대에, 시골에 은거하는 절행이 뛰어난 선비가, (재창) 구름덮인 산기슭에 밭이랑을 갈고, 내낀 강가에 낚시를 드리우느니, 이밖에는 일이 없도다. 빈궁과 영달이 하늘에 달렸으니, 가난함과 천함을 걱정하리오. 한(漢)나라때 궁궐문이나 관아앞에 동마(銅馬)를 세움으로 명칭한 금마문(金馬門)과,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인 옥당서(玉堂署)가 있어, 이들은 임금을 가까이서 뫼시는 높은 벼슬아치로,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로다. 천석으로 이루어진 자연에 묻혀 사는 것도, 인덕(仁德)이 있고 수명이 긴 수역(壽域)으로 성세(盛世)가 되고, 초옥에 묻혀 사는 것도, 봄전망이 좋은 춘대(春臺)로 성세로다. 어사와! 어사와! 천지를 굽어보고 쳐다보며, 삼라만상이 제각기 갖춘 형체를 멀리서 바라보며, 안정(安靜)된 가운데 넓고도 큰 흉금을 열어제쳐 놓고 홀로 술을 마시느니, 두건이 높아 머리뒤로 비스듬히 넘어가, 이마가 드러나서 예법도 없는데다 길게 휘파람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2장



초가삼간이 너무 좁아, 겨우 무릎을 움직일 수 있는 방에는, 지행 높고 한가한 사람이, (재창) 가야금을 타고·책읽는 일을 벗삼고·집둘레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을 하였으니, 찢겨진 생계와 산뜻하게 가슴깊이 품고 있는 회포는, 속세의 명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 나리오. 저녁 햇빛이 맑게 개인 곳에 다다르고, 흰갈대꽃이 핀 기슭에 비쳐서 붉게 물들었는데, 남아 있는 내에 섞여 부는 바람결에 버드나무가 날리거든, 하나의 낚시대를 비스듬히 끼고·세속일을 잊고서 갈매기와 벗이 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3장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하느냐, 뜻을 높게 가질 뿐이로다. (재창) 과거급제란 명예로움은 내 뜻을 손상시키고, 이익과 출세란 덕을 해치는 것이로다. 모름지기 책가운데서 성현을 뫼시옵고, 언어와 정신을 맑은 달밤에 잘 가다듬고,고요히 수양하여, 내 한몸이 바르게 된다면 어디러로 못 가리오. 굽어보고·쳐다보아 크고 넓게 포용하는 모습이 왕래가 평이로워지느니, 내 갈 길을 알아서 뜻을 세우지 아니하리오. 벽처럼 선 낭떠러지가 만길은 되는데, 내 마음은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변하지 않느니, 뜻이 커서 말함이 시원스러운데다, 책 읽어 아득한 옛 현인을 벗으로 삼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4장



한유(韓愈)가 산에 들면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숲에 들면 숲이 빽빽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며, 마음은 너그럽고도 한가한 들판에서 밭을 갈고, 쓸쓸한 물가에서 낚시를 드리울 수 있는, 살만한 곳을 가려 점쳐서 정하였느니, 시골사람의 의복에다 야인(野人)의 관을 쓰고 살면서, 물고기와 새밖에는 벗이 없도다. 향그러운 교외에는 비가 개이고, 수많은 나무들에는 꽃이 떨어진 뒤에, 명아주지팡이를 짚고서, 십리되는 시냇머리를 한가하게 오고 가는 뜻은, 마치 증점씨(曾點氏)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무우(舞雩)로 바람을 쐬며 돌아오는 산뜻한 그 기분과, 정명도(程明道)가 꽃을 곁에 두고 버드나무를 좇아 거닐던 기분도 이렇던가 어떻던고. 따스한 햇볕과 청명한 날씨에 부는 바람이 불거니·밝거니 하여 흥취가 내앞에 가득하여지느니, 침착하고도 여유있는 가슴속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흘러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5장



내집은 저 후한(後漢)적 범래무(范萊蕪)가 끼니가 떨어질 정도로 가난하였어도, 태연자약하게 초야에 묻혀 살았듯, 전한(前漢)적 장원경(蔣元卿)이 뜰앞의 꽃과 대나무 아래에다 세갈래 길을 여고, 구중(求仲)과 양중(羊仲)으로 더불어 조용히 놀기를 구하였도다. 평생동안 덧없는 인생이 이렇다고 어떠하리. 진실로 은거하여 뜻을 구하고,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부가 타는 수레와 복장이 진흙처럼 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종묘에 두는 그릇에다 공적을 새긴 이름도 아득한 후세에는 흙먼지에 지나지 않는도다. 천번이나 갈았는 서릿발 서슬이 푸른 날카로운 칼날일지라도 이 뜻을 끊으랴. 한창려(韓昌黎)는 세번이나 상서를 올림에, 그 때마다 귀양을 감으로써 벼슬길이 막혔는데, 그것은 나의 뜻에 각기 달랐고, 두자미(杜子美)는 삼대예부(三大禮賦)를 올림에 드디어 벼슬길이 트였다고, 내 마침내 그러한 도를 행하랴. 두어라, 그들은 그들의 작위를 가지고 행하나, 나는 나의 정의(正義)를 가지고 행하는데, 남의 수놓은 비단옷(벼슬)을 원치 않으매, 세간의 만사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6장



임금님 계신 곳은 깊은 구중궁궐이고, 초야에 묻혀사는 백성들과는 만리로 막혔느니, 십년동안 마음에 생각한 일을 어찌하여 위로 임금님께 여쭈어 알게하리오. 운수가 기이하여 내 계책을 봉하여 둔 지가 오래되었도다. 벼슬하면 임금에게 충성함에 이르게 되고, 백성에게는 은택을 내려 주어야 하는 것인데, 이는 나의 천부의 재능이 아니던가. 경서를 궁구하는 가운데, 성현의 도를 배우기 위한데다 뜻을 두고 이리하랴. 차라리 쉬지 않고 글을 읽어서, 배움에 힘쓰는 저 언덕과 구릉이 있는 은거처에서, 세상을 숨어 살아도 고민이 없으매, 나를 따르는 벗님네 뫼옵고 사서고(史書庫)의 녹아첨(綠牙籤)을 표지로 한, 장서가 가득한 창앞에서 성현의 경서를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궁구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7장



하나의 병풍에다 하나의 평상을 두고, 왼쪽에는 경계가되는 잠언(箴言)을·오른쪽에는 마음에 아로 새길 좌우명(座右銘)을 두고, (재창) 귀신의 눈으로 볼 제는 번갯불같이 밝게 보이므로, 어두운 방안이라고 제 마음을 못 속이며, 하늘이 들을 제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므로,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망발을 하랴. 군자가 경계하고·삼가며 몹시 두려워 하는 것은, 은암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세미한 일보다 더 뚜렷해진다는게 없다는 사실을 잊지마세. 앉은 모습은 시동씨(尸童氏)처럼 반드시 공경하고·장중한 태도로 앉아야 하고, 얼굴빛과 몸가짐은 엄숙하고·단정하게 가져서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처럼, 낮에는 하루종일 쉼없이 노력하고, 저녁에는 반성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뜻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잘 섬김으로써, 내 몸 밖에서 오는 누끼치는 일을 물리쳐 없애고, 온몸이 영(令)을 좇아서, 아비는 의롭고·어미는 자애롭고·형은 우애롭고·아우는 공경하고·아들은 효성함으로써, 오상(五常)을 싫어함이 없어야만, 백성들이 잘 다스려져 평안한 세상이 되게 하고, 사업을 모두 이루고자 하였더니, 때가 아닌지 운명인지, 마침내 성공함이 없었고, 세월은 나와 더불어 기다려 주지 않으니, 흰머리의 늙은이로 숲과 샘이 있는 은거처에서 할 일이 다시 없도다. 우습다,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인 양지바른 곳에다 내 발자취를 거두어 감추고, 평생동안을 한가하게 늙어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요점 정리

형식 : 경기체가

연대 : 조선 선조

작자 : 권호문

주제 : 자연속의 묻혀사는 한정의 즐거움(이면에는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지 못하는 불평)



내용 연구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문집인 '송암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1860년에 민규가 지었다는 '충효가' 1편이 더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은 경기체가가 이미 소멸된 지 3세기나 지난 뒤에 단지 그 양식을 흉내낸 작품에 불과하므로 문제삼을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쇠퇴기 혹은 소멸기의 형태적 변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즉, 전통적인 경기체가의 양식은 1연이 6행으로 되어 있는 연장체로서 각 연의 제 4행과 제 6행에 "위 景긔엇더하니잇고"라는 특별한 구조적 기능을 하는 구절이 반드시 놓여지고, 각 행의 음보수에 있어서도 제 1~3행까지는 3음보격으로 제4~6행까지는 4음보격으로 되어 있고, 각 연은 전대절과 후소절로 크게 나누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각 연이 전대절과 후소절로 나뉘어 있지 않을뿐더러 행수에 있어서도 4보격이 압도적으로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 경기체가 특유의 구조적 기능을 하는 "景긔엇더하니잇고"라는 구절은 각 연의 맨 끝에 1회씩만 실현되어 있다. 이처럼 경기체가 고유의 정통적 양식에서 크게 이탈하여 장형화하고 4보격이 중심이 된 것은 인접 장르인 가사문학의 작품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 있었으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작자는 "고인이 말하기를 노래라 하는 것은 흔히 시름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듯이 이 노래 또한 나의 불평에서 나온 것이니, 한편 주자의 말처럼 노래함으로써 뜻을 펴고 성정을 기르겠다"라고 제작 동기를 피력하였다. 이로 보아 작자는 강호자연의 유연한 정서생활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성정을 닦고 기르는 도학의 자세로 받아들였으며,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불평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자는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산수에서 노닐며 노래로써 시름을 달래었다. 작자의 어머니가 천비였다는 점에서 벼슬길에 제약이 있었을 것은 확실하며, 웅대한 학덕을 지니고도 크게 펴보지 못한 데서오는 소외감과 불평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제 5연을 보면 그의 의기가 얼마나 드높으며, 그러면서도 불평에 가득찬 사람이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 보는 고고한 태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전편에 표면적으로는 강호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태평성대에 한 일민(逸民)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홀로 즐기는 독락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보지 못하는 불평이 짙게 깔려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권호문(權好文)

1532(중종 2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안주교수(安州敎授) 규(淚)의 아들이다.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묘지는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에 있다.



안동의 송암서원(松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그는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형식인 〈독락팔곡 獨樂八曲〉과 연시조인 〈한거십팔곡 閑居十八曲〉이 ≪송암집≫에 전한다.

≪참고문헌≫ 松巖集, 朝鮮詩歌史綱(趙潤濟, 博文出版社, 1937).(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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