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총석정도외

2022. 10. 19. 22:46한국의 글,그림,사람



김홍도, 총석정도, 을묘년화첩, 1795년, 종이에 담채淡彩(엷은 채색), 23x27.7cm,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 1)

단원이 그림 중 연대가 확실한 것 중 하나는 51세 때인 1795년에 그린 ≪을묘년화첩乙卯年畵帖≫과 그 이듬해인 1796년의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이 있는데, 이 두 화첩에 실린 그림들은 모두 다 좋다.
≪병진년화첩≫은 지금 호암미술관에서 잘 볼 수 있는 반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을묘년화첩≫은 거의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을묘년화첩≫의 맨 마지막 장인 <총석정도叢石亭圖>는 비교적 딱딱한 사군첩에 있는 총석정과는 달리 아주 무르익은 총석정이다.

<총석정도叢石亭圖>는 단원이 44세 때 정조의 명을 받고 김응환과 함께 금강산 4개 군의 풍경을 그린 그림 중 하나로서, 여행할 때 그린 초본草本과 그때의 인상을 바탕으로 나중에 제작한 ≪을묘년화첩乙卯年畵帖≫에 들어 있다.
왼쪽 위의 관지款識[그림이나 서예에 쓰여진 글]를 보면 단원의 후원자였던 소금매매업자 김경림金景林에게 증정하기 위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둥처럼 총총하게 늘어선 바윗돌[총석]들, 오른쪽 언덕 위에 작게 그려진 총석정, 춤추는 듯한 소나무들, 김홍도 특유의 수파묘水波描[바다의 물결무늬] 등이 잘 조화되어 있어, 만 50세였던 김홍도의 독특하고 완숙한 화풍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김홍도의 이 <총석정도叢石亭圖>는 정선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이재관 등 후대의 화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이런 단원의 진경산수화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조선 화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김홍도, 조어산수도, 병진년화첩, 1796년, 종이에 담채, 26.7x31.6cm, 호암미술관(사진 출처-출처자료 1)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에 포함된 <조어산수도釣魚山水圖>는 위에 있는 <총석정도>와 더불어 실경을 그리는 단원의 솜씨가 맑고 새로우면서도 원숙한 경지에 올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곡선 필법에 의한 따뜻한 서정성이 그림에서 물씬 풍긴다.
산속 개울가에 앉아 자연의 일부로 동화된 듯 조용히 낚시를 즐기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한 사람이 삿갓 쓴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 오가는 친밀한 감정이 화면 전체에서 느껴진다.

먹의 농담 표현이나 색채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
또 화면 전체의 공간 구성에도 사물의 다양한 형태와 배치에 따른 섬세한 변화미와 더불어 안정감이 있다.
그림 오른쪽 귀퉁이에 작게 그려진 낚시질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특히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조어산수도釣魚山水圖>는 일상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풍속, 인물, 화조花鳥[꽃과 새] 따위의 소재를 산수 배경 속에 그려내는 사경산수寫景山水의 경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한가로이 친구와 시원하게 탁 트인 계곡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담소를 나누며 낚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단원의 그림은 상상만으로도 후대의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김홍도, 소림명월도, 병진년화첩, 1796년, 종이에 담채, 26.7x31.6cm, 호암미술관(사진 출처-출처자료 1)

구르미 그린 달, 은은한 빛으로 잡목을 감싸 안다.
달의 정취를 아련하게 표현한 그림이 <소림명월도疎林明月圖>이다.
앙상한 잡목들 사이로 뜬 보름달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구르미 그린 달' 즉 구름을 그려서 달을 드러나게 하는 기법[홍운탁월烘雲托月]으로 그린 달은 세상사를 초월한 듯 무심하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여 눈을 부비며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그림은 평범한 자연을 소재로 하여 도달한 경이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
눈에 띌 만큼 색채가 화려하지도 않다.
어여쁜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잡목 몇 그루가 어깨동물를 하듯 자유롭게 서 있다.
그 뒤에 둥근 달이 뚫어져라 화면 중앙을 쳐다보고 있다.
그야말로 심심하고 소박하다.
그것은 중년이 된 단원의 화력畵力이 빚어낸 결과다.
먹의 농도로 나무들 간격을 조절하고 여백으로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보고 또 봐도 정취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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