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산천재

2022. 9. 26. 15:04한국의 글,그림,사람

서북쪽으로 높이 치솟은 지리산 천왕봉, 그곳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중산과 삼장으로 나누어 흐르다가 양당에서 다시 만나 덕산(德山〉을 이룬다.

덕산에 위치하여 지리산 천왕봉을 품고 있는 산천제는 남명(南冥) 조식(曹植)1501〜1572)선생이 61세 때부터 돌아가실 때 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산천재 (山天齋)의  산천(山天)이란 주역 대축괘(大畜卦)의 괘상으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천재의 주련에는  德山卜居)(덕산에 터를 잡고)가 걸려 있다.

春山底處無芳草 봄산 어느 곳인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마는

只愛天王近帝居 천제 사는 곳과 가까운 천왕봉이 좋아서 왔네

白手歸來何物食 맨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까 하지만

銀河十里喫有餘 은하 십리 흐르는(덕천강) 물 마시고도 남으리.


산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산천재 편액


산천(山天)이란 주역 대축괘(大畜卦)의 괘상으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請看千石鍾     천석들이 큰 종을 보개나!            

非大扣無聲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爭似頭流山    어찌하면 저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율까?    



남명 조식선생은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 국왕에게 세 차례 글을 올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건의하였다. 우리 정신의 큰 봉우리인 선생이 학문과 인격을 완성하고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던 노학자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산천재 서북쪽으로 높이 치솟은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특히 남명 조식선생이 표방한 천왕봉 같은 기개와 학문의 실천성은 그 문하생들에 의해 계승되어,임진왜란이 일어나 우리 민족의 명운이 풍전등화와 같을때 의병을 일으며 왜적을 물리치는 효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선생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교육자로 평가 받고 있다.


조식선생이 심은 매화나무 남명매

이 매화나무는 남명 조식선생이 61세이던 명종16년(1561) 천왕봉이 보이는 이곳에 산천재를 짓고, 뜰에다 심은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기품있는 모습은 선비의 기상을 잘 타나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선생의 호를 따라 남명매로 부르고 있다.

珠點小梅下(주점소매하) 작은 매화 아래서 책에 붉은 점 찍다가

高聲讀宰堯(고성독재요) 큰 소리로 요전을 읽는다

窓明星斗近(창명성두근) 북두성이 낮아지니 창이 밝고

江開水雲遙(강개수운요) 강물 넓은데 아련히 구름 떠 있네

偶吟 우연히 읊다


산천재 관람객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산천재와 남명매를  관람하고 있는 관광객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조식 남명문집 목판 보관고

조식 남명문집 목판은 조식선생의 시와 문장 등을 수록한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선조 37년(1604)남명 조식의 제자인 정인홍이 합천 해인사에서 만들었으나, 원판이 불에 타버려 광해군 14년(1622)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의 도움으로 다시 새겼다. 이후 영조 40년(1764)에도 별집(문집의 원집이 나온 뒤 따로 시문을 모아 낸 책)의 내용을 교정하고 보충하였다.

목판이 여러 차례 간행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자 고종 31년(1894)에 기존의 문집 내용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새로 간행하였으며, 고종 34년(1897)에 연보를 수정•보완하여 지금의 모습올 갖추었다. 목판은 185매이며,남명기념관에 보관하고 있다.

남명문집 목판은 남명 조식의 학문세계뿐만 아니라, 지역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수록되어 있어 남명학 연구는 물론 지역사 연구에 가치있는 자료이다.

조식 남명문집 목판 안내문


남명선생시비, 남명선생의 시에는 선생의 큰 뜻과 높은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題德山溪亭柱     덕산의 시냇가 정자 기둥에 씀

請看千石鍾     천석들이 큰 종을 보개나!            

非大扣無聲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爭似頭流山    어찌하면 저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율까?    



德山卜居     덕산에 터를 잡고서

春山底處無芳草     봄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라만.

只愛天王近帝居     천왕봉이 하늘 가까이 있는 것을 사랑해서라네

白手歸來何物食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고 살겠는가?

銀河十里喫猶餘   십리 흐르는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이 비석은 남명선생이 산천재에서 돌아가시자 선조대왕께서 내리신 제문을 새겨 세운 비석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 보이는 산천재 바로 앞에는 지리산국립공원 50주년 기념공원이 조성되었있다

이어 산천재 건너편 국가문화재 사적 305호 산청 조식 사적지에 있는 조식선생의 묘소, 신도비, 여재실 등과 남명기념관을 소개한다.

산천재는 조윤형의 전서체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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