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9. 16:03ㆍ한문상식
청정점수(蜻蜓點水) - 잠자리가 수면을 건드리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다.
[잠자리 청(虫/8) 잠자리 정(虫/7) 점 점(黑/5) 물 수(水/0)]
‘갓난 애기의 새끼손가락보다 짧은 키로, 허공을 주름잡아 가로세로 자질하는’(김관식) 잠자리는 유충이 물에서 살기 때문에 물가로 많이 비행한다. 잘 발달한 겹눈으로 멀리까지 날아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잠자리를 한자로 말할 때 靑娘子(청낭자)나 대시인 유치환의 시집 이름으로 잘 알려진 蜻蛉(청령) 이외에도 성어에 나오는 蜻蜓(청정)이 있다.
잠자리가 수면을 건드린 뒤(點水) 금방 날아오르는 모습을 나타내는 이 말은 우리 속담 ‘잠자리 부접대듯 한다’와 같은 뜻을 지녔다. 붙었다가 금방 떨어지는 것을 비유하여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나타냈다.
처음 유래한 중국 盛唐(성당) 시대 杜甫(두보, 712~770)의 시에선 잠자리가 고요한 호수의 수면 위로 들락날락하는 한가로운 풍경을 그렸다. 詩聖(시성)으로 불리는 두보는 시운을 잘못 타고나 난리에 포로로 잡히기도 하는 등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다.
그가 당시 서울 長安(장안)에서 미관말직에 있을 때 아름다운 연못을 노래한 ‘曲江(곡강)’이란 시를 썼다. 둘째 수에 인생살이 칠십년은 예부터
드물었다는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의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 시인데 성어는 바로 뒤에 따라붙는다. 그 부분을 보자.
‘꽃 사이로 호랑나비는 깊숙이 날아들고(穿花蛺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수면을 스치는 잠자리 떼 한가롭게 나는구나(點水蜻蜓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蛺은 호랑나비 협, 항목 款(관)은 느리다는 뜻도 있다. 나비나 잠자리가 여유롭게 날아다니고 꽃잎이 사면으로 흩어져도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는 심정은 첫 수의 시작부터 토로한다.
‘한 조각 꽃잎이 떨어지니 봄날이 가는구나(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각춘), 분분히 바람에 날려도 시름에 잠길 뿐(風飄萬點正愁人/ 풍표만점정수인).’ 길지 않은 인생 옷을 잡혀서라도 외상술을 마시는 신세인 두보에겐 이러한 풍광을 보는 것도 마음속으로는 사치로 느껴졌겠다.
한가로이 꽃과 나비, 잠자리만 읊은 시는 그림이다. ‘나팔꽃은 푸르고 콩 꽃향기 은은한데(牽牛花碧豆花香/ 견우화벽두화향), 새빨간 잠자리 떼 물에 점찍기 바쁘구나(血色蜻蜓點水忙/ 혈색청정점수망).’ 明(명)나라의 瞿佑(구우) 작품이라며 申欽(신흠)의 象村集(상촌집)에 인용한 시 구절이다.
물 위로 들락날락하는 잠자리의 모습은 풍경이 그럴듯해도 일면 경망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서 이런 일을 벌였다가 저기서 또 다른 일에 손대는 깊이 없는 행동을 비유하게 됐다.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도 잘 처리하여 성과를 내면 물론 좋지만 어려우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杜甫(두보)
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각춘) 한 조각 꽃잎 날려도 봄빛 줄어 드는데
風飄萬點正愁人(풍표만점정수인) 바람에 수많은 꽃잎이 날리니 참으로 시름에 젖네
且看欲盡花經眼 (차간욕진화경안) 또 다 떨어지는 꽃들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莫厭傷多酒入脣 (막염상다주입순) 많은 술 마셔도 몸 상함 싫지않네
江上小堂巢翡翠 (강상소당소비취) 강가 작은 집 물총새 깃들고
苑邊高塚臥麒麟 (원변고총와기린) 동산 옆 높은 무덤엔 기린이 누웠네
細推物理須行樂 (세추물리수행락) 사물의 이치 헤아려 보니 즐겁게 놀아야 하거늘
河用浮名絆此身 (하용부명반차신) 어찌 덧없는 이름으로 이 몸을 묶으랴
朝回日日典春衣 (조회일일전춘의) 조회에 돌아오면 날마더 봄옷을 저당잡혀
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매일 곡강에서 만취하여 돌아온다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행처유) 몇 푼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인생 칠십년 옛부터 드문 일이라네
穿花挾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꽃 사이를 맴도는 호랑나비 깊이 날아들고
點水淸精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부접하는 물잠자리 유유히 날아다니네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류전)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상춘의 기쁨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