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천변

2021. 11. 11. 10:45알아두면 조은글

단가短歌 고고천변 - 한애순


해설

'수궁가'에서 토끼의 간을 구하려고 세상에 나온 자라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그린 대목인데, 문학성도 높고 소리도 훌륭하므로 흔히 단가로 독립시켜 부르기도 한다. 이 단가의 제목은 하늘에 붉은 해가 떠 있는 모습을 그린 "고고천변 일륜홍"이라는 귀절의 첫머리를 딴 것이다. 이 단가의 사설은 순조 때의 명창 송홍록의 더늠인 '천봉만학가'에도 보이고, '유산가'에도 보인다. 명창 송만갑이 기막히게 잘 불렀다고 하는 이 단가는 중중몰이 장단에 우조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나, 평-계면조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매우 흥겹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사설

수정문 밖 썩 나서, 고고천변 일륜홍 부상으 둥실 높이 떠, 양곡의 잗은 안개 월봉으로 돌고 돌아, 어장촌 개 짖고, 회안봉 구름이 떴다. 노화는 눈 되고 부평은 물에 둥실, 어룡은 잠자고 잘새 펄펄 날아든다. 동정여천의 파시추, 금성추파가 여기라. 앞발로 벽파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을 탕탕. 요리저리 저리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사면 바라보니 지광은 칠백리요 파광은 천일색인데, 천외 무산 십이봉은 구름 밖으 가 멀고, 해외 소상의 일천리 눈앞에 경이로다. 오초는 어이허여 동남으로 벌였고, 건곤은 어이하야 일야으 둥실 떠, 남훈전 달 밝은듸 오현금도 끊어지고, 낙포로 둥둥 가는 저 배, 저 각달무가 보소, 추일광의 원혼이요. 모래속에 가 장신하야 천봉만학을 바래봐. 만경대 구름 속 학선이 울어 있고, 칠보산 비로봉은 허공으 솟아, 계산파무울차아, 산은 층층 높고, 경수무풍야자파, 물은 풍풍 짚고, 만산은 우루루루루, 국화는 점점, 낙화는 동동, 장송은 낙락, 늘어진 잡목, 펑퍼진 떡갈, 다래몽둥, 칡넌출, 머루, 다래, 으름넌출, 능수버들, 벗남기, 오미자, 치자, 감자, 대초, 갖은 과목, 얼크러지고 뒤틀어져서 구부 칭칭 감겼다. 어선은 돌아들고 백구는 분비, 갈마구, 해오리, 목파리, 원앙새, 강산 두루미, 수많은 떼 고니, 소천자 기관허든 만수문전의 풍년새, 양양창파 점점 사랑허다 원앙새, 칠월칠석 은하수 다리 놓던 오작이, 목파리, 해오리, 노수 진경새 따옥따옥, 요리조리 날아들제, 또 한 경개를 바래봐. 치여다보니 만학천봉이요 내리 굽어보니 백사지 로다. 허리 구브러진 늙은 장송, 광풍을 못 이저 우줄우줄 춤을 출 제, 원산은 암암, 근산은 중중, 기암은 촉촉, 뫼산이 울어. 천리 시내는 청산으로 들고, 이 골 물이 쭈루루, 저 골 물이 살살, 여기 열두골 물이 한트로 합수쳤다. 천방자 지방자 월턱져 구벼 방울이 버끔, 저 건너 병풍석에다 마주 꽝꽝 마주 쌔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어디메로 가잔 말, 아마도 네로구나, 요런 경치가 또 있나. 아마도 네로구나, 요런 경치가 또 있나.



고고천변(天邊) 일륜홍(日輪紅) : 동틀 무렵에 하늘가에 떠 있는 붉은 해.
부상(扶桑) : 해가 돋는 곳, 또는 그곳에 있다는 상상의 뽕나무.
양곡(暘谷) : 해가 돋는 곳.
잗은 : ‘잦은‘의 옛말. 자옥하게 가득낀.
월봉(月峰) : 달이 돋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붙은 봉우리 이름.
어장촌→예장촌(豫章村) : 중국 회남과 강북의 경계에 있는 마을.
회안봉(廻雁峰) : 중국 호남성에 있는 형산의 일흔두 봉우리 가운데서 으뜸가는 봉우리. 기러기가 날아와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에 북쪽으로 날아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
노화(蘆花) : 갈대꽃.
눈 되고 : 눈처럼 펄펄 날리고.
부평(浮萍) : 개구리밥과에 딸린 물풀.
어룡(魚龍) : 물고기를 통틀어 일컫는 말.
잘새 : 잠자리를 찾아가는 새.
동정여천(洞庭如天)의 파시추(波始秋) : 하늘처럼 넓고 맑은 동정호의 물결은 비로소 가을을 일러.
금성추파(金聲秋波) : 가을 바람 소리와 물결소리.
벽파(碧波) : 푸른 물결.
창랑(滄浪) : 창파(滄波).
지광(地廣) : 땅의 넓이.
파광(波光) : 물빛.
천일색(天一色) : 하늘과 같은 빛깔.
천외(天外) : 아주 높은.
무산(巫山) : 중국 사천성에 있는, 열두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 그 봉우리가 ‘무(巫)‘자 모양으로 생겨서 하늘의 해를 가린다고 한다.
구름 밖으 가 멀고 : 높은 산을 묘사할 때에 쓰이는 표현의 하나.
해외(海外) : 바다 밖의.
소상(瀟湘) : 중국 호남성에 있는 소수와 상강, 또는 그 소수와 상강이 합쳐져 흐르는 줄기.
오초는 어이허여 동남으로 벌였고, 건곤은 어이하야 일야으 둥실 떠 : 동정호를 중심으로 오나라는 동쪽으로, 초나라는 남쪽으로 넓게 자리잡았고, 호수에는 이 세상이 밤낮없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두 보의 시 「등악양루」의 두 귀절로, 원문은 “오초동남탁(吳楚東南坼) 건곤일야부(乾坤日夜浮)”이다.
남훈전(南薰殿) : 순임금이 살던 궁궐.
오현금(五絃琴) : 순임금이 만들어서 타던 다섯줄로 된 현악기.
끊어지고 :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낙포(洛浦) : 낙수 강가에 있는 포구.
각달무가 보소 : 박 봉술이 부르는 「수궁가」의 ‘고고천변’ 대목의 사설에는 “조각달 무관수”로 되어 있는데, ‘무관수(武關囚)’는 ‘무관에 갇혔던 회왕’의 뜻으로 쓰였다.
추일광의 원혼→초(楚) 회왕(懷王)의 원혼 : 초나라의 희왕은 진나라의 소왕이 무관에서 만나자는 말에 속아서 무관에 갔다가, 잡혀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원통하게 죽었다.
장신(藏身)하야 : 몸을 숨기고.
천봉만학(千峰萬壑) :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
만경대(萬鏡臺) : 거울처럼 온갖 경치를 되비춘다는 뜻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흔히 있는 누대 이름. 여기서는 다만 ‘높은 누대’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학선(鶴仙) :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학.
칠보산(七寶山) : 중국 안휘성 무위현에 있는, 험준하고 웅장한 산.
비로봉(毗盧峰) : 칠보산의 한 봉우리 이름일 듯하나, 확실히는 알 수 없다.
계산파무울차아(稽山罷霧鬱嵯峨) : 안개가 걷히니 계산이 더욱더 높아 보이고. 당나라의 하 지장의 시「채련곡」의 한 귀절.
경수무풍야자파(鏡水無風也自波) :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물결이 절로 인다. 하 지장의 「채련곡」의 한 귀절.
짚고 : ‘깊고‘의 방언. 구개음화 현상으로 ‘ㅣ’ 소리 앞에서 ‘ㄱ’ 소리가 ‘ㅈ’ 소리로 난다.
우루루루루 : 겹겹이 쌓인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 ‘울(鬱)’을 잇달아서 낸 소리.
점점(點點) : 봉오리 봉오리 흩어져서 핀 모양을 가리킨 말.
낙락(落落) : 가지가 늘어진 모양.
다래몽둥 : 다래 나무의 몽똑한 열매.
감자(柑子) : 한약재로 쓰이는, 신맛을 가진 열매.
분비(奔飛) : 이리저리 날고.
갈마구 : ‘갈매기’의 방언.
해오리 : ‘해오라기’의 방언.
목파리 : 새의 이름일 텐데 확실히 알 수 없다.
소천자(小天子) 기관(紀官)허든 : 이 귀절의 뜻은 “소천자가 벼슬의 이름에 새의 이름을 붙이던 때와 같은 태평한 시절의”로 볼 수 있겠다. 소천자는 중국 전설의 임금인 헌원씨의 아들로서, 복희씨의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렸으며, 금의 덕으로 임금이 되어 소호금천씨라고도 한다. 그가 임금 자리에 오를 때에 어디선가 봉황이 날아들었다고 하여, 임금을 보좌하는 벼슬인 ‘운사’를 그때부터 ‘조사(鳥師)’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만수문전(萬壽門前)의 풍년새 : 만수궁 문 앞의 풍년새. 만수궁은 중국 송나라 때의 궁전인데, ‘만수’는 천자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궁에 붙이던 이름이다. 여기서는 전체적으로 ‘태평 성대’의 상징으로 쓰였다.
노수 : ‘너새’의 방언. 기러기와 비슷하나 몸이 크며 부리가 짧은 새.
진경새 : ‘징경이’의 방언. 물수리라고도 하는데, 물고리를 잡아먹고 산다.
이저 : ‘이겨’의 방언.
암암(暗暗) : 깊고 그윽하며.
중중(重重) : 겹겹으로 포개졌고.
촉촉(矗矗) : 빽빽이 들어섰다.
한트로 : ‘한데로’의 방언.
합수(合水)쳤다 : 합해졌다.
천방자 지방자 월턱져 구벼 : 천방지축으로 턱을 넘어 굽이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