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2020. 11. 11. 10:25알아두면 조은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교과서에도 곧잘 실릴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어디선가 보았을 것이다. 이 그림은 크기가 579.5×823.5cm에 이르는 대형 벽화이다. 고전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균형 감각이 살아 있고 부분과 전체의 조화가 뛰어난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26세 때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개인 도서실에 그린 것으로 지금은 바티칸 성당에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벽화〉 〈천지창조〉에 비길 수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1509년

ⓒ 서해문집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림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고 이들의 왼쪽 옆으로는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보인다. 왼편 기둥 쪽에 풀잎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는 인물은 에피쿠로스, 그 앞쪽에서 무언가 책에 기록을 하고 있는 뚱뚱한 아저씨는 우주 만물이 수(數)로 되어 있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이다. 계단에 앉아 턱을 괴고 사색에 잠겨 있는 인물은 헤라클레이토스,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람은 견유학파로 잘 알려진 디오게네스이다. 그 외에도 파르메니데스, 유클리드, 제논 등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와 수학자가 수십 명이나 등장한다. 하나의 그림 안에 고대 그리스 철학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단연 중앙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어 나오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옆구리에 〈티마이오스(Timaeus)〉 즉 형이상학이라고 쓰인 책을 낀 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인물이 플라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을 의미하는 〈에티카(Ethica)〉라는 책을 허벅지에 받치고 손바닥을 펴 지상을 가리키고 있다. 이 두 학문 영역은 논리학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학문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서해문집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라파엘로는 두 사람의 철학적 차이를 재미있게도 손동작 하나로 구분하고 있다.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통해, 진리만으로 이루어진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던 플라톤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의 세계가 하늘 어디엔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함께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대지를 가리키며 자연과 현실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손동작으로 대신하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데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리와 실재가 비추는 곳, 이곳에 혼이 고착할 때는, 이를 지성에 의해 대뜸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되어, 지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 그러나 어둠과 섞인 것에, 즉,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에 혼이 고착할 때는 ‘의견’을 갖게 되고, 이 의견들을 이리저리 바꾸어 가짐으로써 혼이 침침한 상태에 있게 되어, 이번에는 지성을 지니지 못한 이처럼 보인다네. 그러므로 인식되는 것들에 진리를 제공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그 ‘힘’을 주는 것은 ‘좋음(善)의 이데아’라고 선언하게. 이 이데아는 인식과 진리의 원인이지만, ‘인식되는 것’이라 생각하게나. 반면에 이 둘이, 즉, 인식과 진리가 마찬가지로 훌륭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이 이데아는 이것들과도 다르며 이것들보다 한결 더 훌륭한 것이라 믿는다면, 자넨 옳게 믿게 되는 걸세. 그러나 인식과 진리를, 마치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의 빛과 시각을 태양과도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만, 태양으로 믿는 것은 옳지 않듯,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이들 둘을 ‘좋음’을 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으나, 어느 쪽 것도 ‘좋음’이라 믿는 것은 옳지 않다네. 오히려 ‘좋음’의 처지를 한층 더 귀중한 것으로 존중해야만 하네.

플라톤은 이데아를 존재와 변화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어떤 것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것이 뜨거운 이데아에 관여할 때이다. 즉 그것에 뜨거움을 가져오는 불에 관여할 때이다. 불이 뜨거움을 가져온다면, 불은 뜨거움의 대립자인 차가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삶에 관여할 때, 즉 인간에게 삶을 가져다주는 영혼을 가질 때 살아 있게 된다. 영혼이 삶을 가져오므로, 영혼은 삶의 대립자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영혼은 불멸한다는 것이다.

 

이데아론은 인간의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물리적 사물들 외에 아름다움과 올바름 같은 형상(形相)들 즉 이데아가 존재하며, 최고의 단계로 선(善)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물리적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감각적 지식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지성으로 파악한 이데아의 영역은 영원하고 불변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개의 이데아는 사물들의 특성을 결정하며, 사물들은 이 완전한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물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플라톤은 자연을 ‘감각적 사물의 세계’라 불렀다. 그리고 플라톤 스스로 참된 실재로 불렀던 여러 이데아인 정신적 제 본질의 부동적이고 불변인 세계로부터 자연이 파생된 것으로 간주한다. 결국 본질이나 진리는 현실의 사물이나 인간의 감각을 초월하여 별도의 세계에 존재한다. 플라톤은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탐구하고 이를 인간 사회에 실현하고자 했다.

 

플라톤이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모사물의 세계인 감각적 세계에서 살아간다. 이데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오직 감각적인 세계를 벗어날 때뿐이다. 이데아의 인식 과정은 육체나 감각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성에 의한 것인데 철학자는 육체나 감각을 죽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순수한 진리를 직관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먼저 플라톤의 이데아는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물에다 ‘그 자체’라는 말을 붙여 경험적 사물을 영원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책상에다 ‘책상 그 자체’라고 하면 책상의 이데아가 되고, 말에다가 ‘말 그 자체’라 붙이면 말의 이데아가 되고, 마찬가지로 사람에다 ‘그 자체’라는 말을 붙인 ‘사람 그 자체’가 사람의 이데아가 된다. 그런 점에서 감각적인 사물을 머릿속에서 영원한 것으로 개념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가 보기에 플라톤은 이데아를 경험적 사물의 본질이라고 하면서도 이데아를 경험적 사물에서 분리시키고 있는데, 이데아가 경험적 사물들의 본질이 되기 위해서는 사물들 속에 내재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질료와 형상이라는 개념을 통해 논한다. 그는 질료와 형상은 분리될 수 없고 형상은 질료를 통해 발현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이데아라고 지칭한 형상들이 질료에 해당하는, 보거나 만져서 알 수 있는 사물들과는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과 결합하여 존재한다. 그가 보기에 이데아라는 것은 단지 인간의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일 뿐이다. 즉 존재한다는 것은 사물들 자체 속에, 사물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현실주의적인 일원론을 펼쳤다.

 

본질이 사물과 함께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는 인간 정신을 탐구하는 인식론만이 아니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 정치학, 윤리학, 역사, 문예이론, 수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탐구했다. 그는 120종의 어류와 60종의 곤충을 포함해 500종이 넘는 동물을 분류했는데, 18세기에 린네가 분류학을 체계화할 때까지 2000여 년 동안 그대로 쓰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에 대한 상이한 태도는 이후 중세 신학의 서로 다른 기반을 이루게 된다. 서양의 중세 초기와 중기 신학을 지배한 것은 플라톤적인 철학이었다. 이데아가 실재했다고 여겼던 플라톤의 주장과 당시 저 하늘 어디엔가 하느님 나라가 있다고 주장했던 기독교의 이해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중세 후기로 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신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어딘가에 실재하고 있을 천국만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부에서 신의 진리를 찾으려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 아름다움 등 인간 정신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것을 탐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인 이상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서 서양 철학의 가장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냈다.

 

소크라테스가 했던 가장 유명한 말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틀림없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왜 그토록 유명할까? 언뜻 생각해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철학적 명제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과 이후의 철학을 구분 짓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명제가 그냥 무지를 질타하는 일반적인 의미에 불과하다면 좀 우스워진다. 그러면 “공부해서 남 주냐, 공부 좀 해”라고 항상 말씀하시는 부모님들도 소크라테스와 동기동창쯤 되어 버린다. “너 자신을 알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철학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너 자신’은 곧 인간을 의미한다. 이전의 서양 철학은 대부분 자연철학이었다. 모든 만물의 근본이 물이라고 했던 탈레스나 불이라고 했던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철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철학의 대상을 자연의 본질 탐구에 두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자기 자신,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연 탐구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올바름’이나 ‘덕’과 같이 인간 내면의 문제와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어떠한 원칙이 올바른 것인가를 탐구했다.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내면)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 철학은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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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상단 왼편에 녹색 옷을 입고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이다. 화가는 들창코와 앞머리가 벗겨진 모습으로 그를 표현하고 있다. 그 옆에 파란 옷을 입은 젊은 사람이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그리고 그 왼편으로 소크라테스와 마주한 채 투구를 쓰고 군인 복장을 한 사람이 알키비아데스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로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을 사귀면 질투가 나서 훼방을 놓아 헤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나중에 “내가 사랑한 것은 알키비아데스와 철학뿐”이라고 이야기했다.

 

헤라클레이토스, 디오게네스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철학자들이 헤라클레이토스와 디오게네스였다. 맨 앞에서 계단에 앉아 팔을 탁자에 기댄 채 사색의 즐거움에 깊이 잠겨 있는 인물이 헤라클레이토스이다.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라파엘로는 플라톤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 헤라클레이토스를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통해 그렸다고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아테네 학당〉의 완성 단계에 새로 첨부한 부분으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 벽화〉를 본 후 감탄과 경의를 표하기 위해 새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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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말 그대로 세상 만물은 변화를 가장 본질적인 특징으로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진리로 믿곤 한다. 강물은 끊임없이 위에서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 오기 때문에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음에도 어제와 같은 물에 서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스의 많은 자연철학자들이 물이나 흙처럼 세계의 근원적인 물질을 찾는 데 주목했다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 자체의 중요성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뚜렷하게 독자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대립된 성질을 갖는 요소들 사이의 투쟁을 통해 변화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우주에는 서로 상반된 것들 간의 다툼이 있고 만물은 이러한 상반된 것 사이의 다툼에서 생겨난다. 그러한 의미에서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라고 했다. 세계는 대립과 모순으로 되어 있고 조화란 이러한 싸움의 과정 속에서만 가능하다. 진리나 조화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어떤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는 아주 상이한 철학적 태도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갈등과 대립은 진리, 조화가 아닌 상태를 상징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 만물의 변화를 불을 통해 해명을 했는데 여기에서 불은 에너지, 기(氣)와 같은 것을 뜻한다. 불은 언제나 타고 있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의 ‘탄생’을 부정했다.

 

계단 한복판에 보라색 망토를 깔고 거의 반라의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사람은 명예와 부귀를 천시했던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이다. 그는 대낮에 의인을 찾으려 등불을 들고 다닌 철학자로 유명하다. 온갖 재물과 명예 같은 것들은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여 쾌락을 멀리하고 간소한 생활을 추구했다. 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이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항아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정중하게 대화를 청한다. 그리스, 소아시아, 나아가 온 세상의 정복을 바라는 알렉산드로스에게 그다음에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그렇게 하고 나면 아마도 좀 쉬면서 즐겨야 하겠지”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이상하군요. 왜 지금 당장 좀 쉬면서 즐기시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왕인 자신이 해줄 게 없느냐고 그에게 묻자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했다.

디오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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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이는 ‘견유학파’는 ‘개같이 사는 지식인’이라는 뜻으로 종교, 사랑, 철학 등 모든 세속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이들을 말한다. 그는 당시 시체를 담는 항아리인 옹관에 살면서 일체의 문명, 관습, 법률을 거부했다.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명적인 사고, 거대한 국가적인 통일 등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대항했던 노자, 장자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국가의 사상과 법률을 정비하는 데 학문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던 그 시대에, 문명적 사고를 비판하며 인간 본래의 모습을 추구하고자 했던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알프레드 화이트헤드)고 까지 여겨지는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이단아로 볼 수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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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산치오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년)
이탈리아에서 출생하여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그는 일찍이 천부적 재능을 인정받아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교황청 전속 건축가로 임명되기도 했다.

[출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의 인물 54명|작성자 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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