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9. 15:11ㆍ즐거운 사자성어
석과불식(碩果不食)
나목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초겨울 창밖을 내다보며 한 그림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칠판에 멋진 솜씨로 잎이진 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 거기 빨간 홍시 한 개가 가지 끝에 달려 있는 그림입니다.
먼저 석과불식의 뜻을 새겨 보면, 석과불식은 『주역』 산지박山地剝 괘의 효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산지박괘의 상괘는 山이 위에 있는 간(艮)괘이고, 하괘는 地가 아래에 있는 곤(坤)괘입니다.
이 괘의 이름은 박(剝)입니다. 빼앗긴다는 뜻입니다. 이 박괘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첫 효에서 5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효입니다. 각각의 효는 시간적 순차성을 나타나내기 때문에 이 박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하나 음효로 바뀌어 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 줍니다. 맨 위의 상효 하나만 양효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마저 언제 음효가 될지 알 수 없는 절망적 상황입니다.
석과불식은 바로 이 마지막 남은 효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석과불식,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 뜻입니다.
초 겨울 가지 끝에 남은 최후의 감(紅柿)입니다. 지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제철 그림입니다. ‘석과 碩果’는 ‘큰 과일’, 곧 ‘씨 과일’이라는 뜻입니다. “씨 과실을 먹지 않는 것” 은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씨 과실이 심어져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그 나무들이 모여 훗날 숲을 이루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는 지혜이며 가르침입니다. 이제 그 가르침을 하나씩 짚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엽락(葉落)입니다. 여름 동안 무성했던 잎은 가을이 되면 모두 떨어집니다. 잎사귀는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이라고 말합니다. ‘엽락’이란 바로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논어』에서의 불혹(不惑)은 가망 없는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불혹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품을 청산하는 단호함입니다. 어려움을 직면할수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석과불식의 첫째 교훈 엽락입니다.
다음은 체로(體露)입니다. 엽락 후의 나무는 나목(裸木)이 됩니다. 잎사귀에 가려져 있던 뼈대가 훤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조와 뼈대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뼈대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치적 자주성, 둘째 경제적 자립성, 셋째 문화적 자부심이라고 합니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든 이 뼈대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뼈대란 우리를 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입니다. 분(糞)은 거름입니다. 분본이란 뿌리를 거름하는 것입니다. 낙엽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있습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엽락과 체로에 이어 우리가 할 몫이 분본입니다. 뿌리를 거름하는 일입니다. 뿌리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분본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절망과 역경 속에서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바로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 산지박 괘의 다음 괘가 바로 지뢰복(地雷復) 괘입니다. 땅 밑에 ‘우레’가 묻혀 있습니다. 산지박 괘의 상효 즉, 단 한 개의 석과가 복(復)괘에서는 땅속 깊숙이 묻혀 있습니다. 석과가 땅속에 우레와 같은 가능성을 갖고 묻혀 있는 것입니다. 복(復)은 다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의 복(復)입니다. 산지 박이라는 절망의 괘가 지뢰 복리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절망의 괘가 희망의 괘로 이어집니다. 엽락, 체로, 분본의 과정을 거쳐 석과는 이제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됩니다. 절망의 언어가 희망의 언어로 비약합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왔던 옛사람들의 철학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석과불식’은 희망의 언어이며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