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9. 15:20ㆍ한문상식
연평답문(延平答問) 해제
朱子가 스승 李侗(號는 延平)과 문답한 것을 記錄한 책이다. 앞에는 1495년(明 孝宗弘治 8)에 쓴 周木의 序文이 있고 끝에는 周木이 12년전 憲宗에게 本書를 올린 推薦書, 延平의 14世孫 李習의 跋文, 우리나라에서 1554년(明宗 9) 初刊 發行 때 쓴 李退溪의 跋文, 再版 發行 때의 宋俊吉의 跋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3부로 되었으니 문답한 原篇이 59張이고 後錄이 15張인데 1214년(宋 寧宗 嘉定 7)에 쓴 趙師夏의 跋文이 있고 또 補錄 52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경로를 보면 退溪의 跋文에는 “天領 朴希正에게서 내가 이 책을 얻어보니 모두 3편인데 사제의 문답은 朱子가 師說을 手編한 것이고, 後錄이란 것은 晦庵이 師說을 말한 遺文에서 後人이 초록한 것이며, 補錄이란 것은 後錄에 未備된 것을 周木이 編輯한 것이다. 이것을 출판하라고 希正에게 말했더니 마침 淸州牧使 李剛君이 公務로 京師에 왔기에 希正이 바로 이 부탁을 하니 李君도 또한 즐겨해서 歸任한지 數月만에 刊役이 完功되었다”고 하였다. 또 宋浚吉의 跋文에는 “본서에는 退溪 李先生이 그 跋文을 써 사실을 다 말하였으니 다시 贅言할 필요는 없지마는 兵火를 지나 板木이 없어졌으니 窮鄕의 학자들이 본 사람이 드문 것이다. 이제 燕岐守令 趙持綱侯가 家庭에서 承訓하여 이 일이 있는 줄 알고 그의 俸祿을 義捐해서 본서를 출간하게 되었으니 이를 널리 傳하면 後學에 惠擇이 클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서는 初刊版이 兵火로 없어진 뒤에 重刊版에서 印刷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평답문》 질의(延平答問質疑) |
문목〔問目〕 |
문 “또 그만두기 어렵다.”라고 한 것은 일에 응접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공부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다만〔只〕’, ‘또〔又〕’, ‘단지〔但〕’라는 세 글자는 뜻이 서로 겹쳐서 그 상세한 뜻을 모르겠습니다.
문 근근(靳靳)은 무슨 뜻입니까?
문 “격법(格法)을 삼가 지킨다.”라는 것은 고쳐야 할 도를 오로지 가리키는 것입니까? 삼 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뜻을 아울러 가리키는 것입니까?
문 “스스로 추구할 바를 알게끔 하는 것이 깊고도 절실하다.”라는 조목. ‘스스로 추구할 바’라는 것은 유체(遺體)를 잘 받들어 상하게 하거나 욕되게 함을 면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까?
문 “제가(諸家)의 설이 대체로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조목. 이것은 그 설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문 “그렇지 않으면 비유를 설정하고 인용을 하는 것이 이와 같이 소략할 리가 없다.”라는 조목. 여기서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것은 귀생(歸生)과 허(許)의 태자 지(止)의 일과는 말뜻이 이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윗글에서 말한 ‘알지 못하는 기미의 사이에 존경하는 마음이……’ 이하 등의 말과 연결되면서 그 말을 뒤집는 것인지요?
문 “귀생과 허의 태자 지는 각각 하나의 예를 드러내 밝힌 것이다.”라는 조목. 귀생과 허의 태자 지에 있어서는 각각 규칙과 조례를 드러내 밝혔으니 인용하여 증거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문 “안자(顔子)가 성인의 말을 말없이 깨달은 것을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라는 조목. 안자가 말없이 깨달은 것은 곧 분명한 도체를 안 것입니까? 일설에는 안자가 성인의 뜻을 말없이 깨달은 것을 안 뒤에 분명한 도체를 안다고 합니다. 앞의 설이 맞는 듯합니다.
문 갑자기 또 후(侯)로서 그를 일컬으면.
문 ‘화이지재(化而知裁)’ 조목
문 ‘입일하법(立一下法)’이라는 대목.
문 《순자(荀子)》의 “혼인의 의식을 갖추지 않았을 때〔大昏之未發〕와 제사에서 아직 시동을 모셔오지 않았을 때와 상례에서 아직 염습을 않았을 때는 한가지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 ‘미발(未發)’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예를 잃은 가운데 또 예를 잃는다.”라는 대목에서 여 박사(呂博士)가 이를 인용하였는데, 나열하여 같은 것으로 본 것입니까? 조씨(趙氏)의 《춘추찬례(春秋纂例)》의 설은 또한 무슨 의미입니까?
문 ‘섬간타와처(纖奸打訛處)’
문 ‘진기수여나선생문(陳幾叟與羅先生門)’이라고 한 부분. 중간의 ‘여(與)’ 자는 ‘참여한다〔參〕’는 뜻입니까? 여여숙(呂與叔)이 《중용해(中庸解)》를 지었는데, 이 두 분이 모두 자구를 해석한 것을 말한 것입니까? 구산(龜山)의 해석은 지금 《혹문》 가운데 있는 말입니까?
문 ‘변시일월지언기상(便是日月至焉氣象)’이라는 부분. 연평의 뜻은 그렇습니다만 《논어》의 주해는 이와 다른 듯합니다. 혹 은미한 뜻이 있습니까?
문 간목(竿木)이 늘 몸에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문 ‘포수(包羞)’
문 ‘종성인전후제단 사언어불착처(從聖人前後際斷 使言語不著處)’의 대목.
문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는다는 것은 도를 추구하는 간절함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이른바 “성인은 도리로부터 행위가 나온다.”라는 것은 “저절로 인의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 인의를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까? 그러나 지금의 《논어》 주해는 오로지 도를 추구하는 뜻만을 가리켜, 연평의 뜻과 같지 않은 듯하니 왜 그렇습니까? ‘일극제기상(一極際氣象)’은 또 무슨 말입니까?
문 “귀신은 개인이 있기를 원하면 곧 있고 없기를 원하면 곧 없다.”라고 하였는데, 제 생각으로는 귀신이 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으니, 어찌 사람이 바라는 것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없기를 바라면 없다고 한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정성이 있으면 그 신이 있게 되고, 정성이 없으면 그 신이 없게 된다.”라는 말은 뜻이 평상적이고 온건하여 이 말과 같지 않은 듯합니다. 아니면 다른 은미한 뜻이 있습니까?
문 6월 14일 편지에 “가르침을 받고 부끄럽고 후회하는 한스러움이 없을 수 없는 데 이르렀습니다.”라고 하였다. - 주자의 뜻이다. - 스스로 인(仁)을 추구함에 뜻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이것을 깨닫겠는가. - 연평이 그의 뜻으로 인하여 칭찬하였다. - 어록(語錄)에 후회하는 데 이른다고 말한 것이 있다. - 연평이 그것을 인용하여 막히는 병을 구제하였다. - 보내주신 편지에서 ‘없어지는 데 이르렀다.’라고 하였습니다. - 주자의 뜻이다. - ‘흉중약여차(胸中若如此)’ - 모두 연평의 말이다. - 이하는 이렇게 보아야 합니까?
문 본원이 되는 곳에 나아간다는 것은 공경하고 순종하며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리킵니까?
문 ‘향곡이상저인 지도타시개선인(鄕曲以上底人 只道他是箇善人)’의 부분. 연평은 뛰어난 사람인데 고을에서는 단지 연평을 선인(善人)으로 말하였습니다. 일설에는 “고을에서 사람을 논할 적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단지 선인이라고 말하였으나, 연평은 남들과 논변하고 따지는 일이 드물었으며, 반드시 물음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더불어 말하였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아마도 앞의 설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또한 대체로 남들과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他也略不與人說〕”라고 한 이하는 독립된 말로 위의 글과 연결되지 않는 듯합니다.
문 “지친 걸음 막 쉬려고 함에 채찍질하며 고삐를 당기셨네.”의 대목.
문 “자신이 그 도를 다하면 곧 서로 관련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서로 관련이 없다는 것은 사람과 신이 뒤섞이지 않는다는 뜻을 말합니까?
문 “전날의 여러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라는 부분. 《맹자》의 주는 여러 유자들의 견해가 같지 않으니, 대개 이것을 가리킨 듯합니다.
문 ‘설장라락자대(設張羅落者大)’ 부분.
문 “지금 《춘추》를 익히는 이들에게 모두 삼전(三傳) 가운데 각각 하나의 전(傳)을 익히게 하고, 그 주해를 배습(拜習)하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배(拜)’ 자는 아마도 ‘병(幷)’ 자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
문 ‘각파어필사한저사(却怕於匹似閑底事)’ 부분.
문 서불요점 간득갱호(書不要點看得更好)는 글을 대하면 행을 나누어 한 자 한 자 읽을 필요 없이, 단지 글의 뜻을 보는 것이 더욱 좋은 것입니까? 일설에는 글자를 쓸 때 먹을 찍어 수정하여 보완하지 않아야 보기가 더욱 좋다고 합니다. 아마도 앞의 설이 옳은 것 같습니다.
문 “단지 경(敬) 자를 설명한 것이 불분명하다.”라는 부분. 주자가 늘 이 선생(李先生)을 만난 뒤에 학문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점을 대수롭게 평가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까?
문 이천(伊川)이 여진백(呂進伯)에게 사당에 배식된 한안도(韓安道)의 소상(塑像)을 없애버리게 하였는데, 한안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문 ‘문정공(文定公)이 대신하여 간목(干木) 운운한 것은 구산(龜山)이 겸손하게 물러선 것만 못하다.’라는 부분. 벼슬하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가난 때문에 벼슬하는 일도 있습니다. 구산은 그래도 이 뜻을 취하여 남에게 말하였는데, 문정공은 단간목(段干木)으로 구산의 설을 대신하였습니다. 연평의 생각으로는 문정공처럼 말한다면 “절박하게 만나려 하면 만나 보아도 된다.”라는 뜻이 없어, 구산의 겸손하게 물러서는 뜻만 못하다고 본 것입니다. 요사이 정유일(鄭惟一)과 이 단락을 강구하면서 이렇게 보았는데, 여전히 분명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겸손하게 물러섰다.’라고 한 것은 구산이 벼슬에 나간 것이 본래는 도를 위해서이지만 스스로 그렇게 자처하지 않은 것입니다. 문정공이 그것을 대신하여 간목을 말한 것은 또한 구산이 차라리 담을 뛰어넘어 달아날지언정 벼슬에 나아가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까?
문 이 선생(연평)이 횡거의 설은 볼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선입료비력(先入了費力)’이라 한 것은 대개 횡거의 《정몽(正蒙)》 등의 말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연평이 이러한 것으로 학문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을 면려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문 여여숙(呂與叔)이 “백성은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왜 그런지를 알게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을 논한 곳은 의미가 매우 뛰어난 곳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유교와 불교와 잡학의 폐단을 말하면서 그 설을 인용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문 ‘내연평간친(來延平看親)’의 부분. 간친(看親)은 곧 성친(省親)입니까?
문 ‘망정간혜 득소휴헐(忘情乾慧 得所休歇)’의 부분.
문 조과입실(操戈入室).
문 ‘그는 처음에 겸개선(謙開善)을 추종했다.’라고 한 대목.
문 ‘가석망록 차자근문기위절세야 준요태형이록견상 이부지하서야(可惜忘錄 此子近聞其爲絶世也 遵堯台衡二錄見上 而不知何書也)’ 이 문장도 구절이 어떻게 끊어지는지, 글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문 ‘재첨세발(載瞻繐綍)’은 무슨 물건입니까?
문 ‘이 벼슬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냄에 이르러’라는 것은 주자가 자신을 말한 것입니까?
문 “근원을 탐구하면〔探原推本〕 감히 그 처음에 어두울까.”의 ‘원본(原本)’은 연원이 유래한 곳을 가리킵니까?
[주D-001]세 글자 : 《연평답문》에 “일체지여구 유불가불응접처 우난폐타 단근근도일이(一切只如舊 有不可不應接處 又難廢墮 但靳靳度日爾)”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D-002]근근(靳靳) : 《연평답문》에 “일체지여구 유불가불응접처 우난폐타 단근근도일이(一切只如舊 有不可不應接處 又難廢墮 但靳靳度日爾)”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D-003]격법(格法)을 삼가 지킨다 : 《연평답문》의 “문자왈 부재관기지……(問子曰父在觀其志……)” 조 참조.
[주D-004]억지로 …… 맞춘다 : 《연평답문》에 “참으면서 말하지 않아 남들이 그 고치는 자취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해로울 것은 없으나, 다만 마음을 이렇게 지니면 차츰 잘못되는 것이 많다.”라고 하였다.
[주D-005]스스로 …… 절실하다 : 《연평답문》의 “문맹무백문……(問孟武伯問……)” 조 참조.
[주D-006]제가(諸家)의 …… 않는다 : 《연평답문》의 “문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問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조 참조.
[주D-007]기미의 사이 : 《연평답문》의 “문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問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조 참조.
[주D-008]그렇지 …… 없다 : 《연평답문》의 “문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問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조 참조.
[주D-009]귀생(歸生)과 …… 일 : 귀생이 임금을 시해한 일과 허의 태자 지가 임금을 시해한 일을 가리킨다. 태자 지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공자이다. 귀생의 일은 《춘추좌씨전》 선공(宣公) 4년과 소공(昭公) 19년 조에 보인다.
[주D-010]안자(顔子)가 …… 한다 : 《연평답문》의 “문자왈 오여회언종일……(問子曰 吾與回言終日……)” 조 참조.
[주D-011]갑자기 …… 일컬으면 : 여기서는 토를 ‘면(面)’으로 다는 것을 물었다.
[주D-012]화이지재(化而知裁) : 《연평답문》의 “문오십유오이지어학일장 횡거선생왈……(問吾十有五而志於學一章 橫渠先生曰……)” 조 참조.
[주D-013]성인 …… 이르렀으니 : 《논어》 〈위정(爲政)〉 제4장 참조.
[주D-014]입일하법(立一下法) : 《연평답문》의 “문오십유오이지어학일장 횡거선생왈……(問吾十有五而志於學一章 横渠先生曰……)” 조 참조.
[주D-015]혼인의 …… 한가지이다 : 《순자》 〈예론편(禮論篇)〉에 나오는 말이다.
[주D-016]예를 …… 잃는다 : 《연평답문》의 “문체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問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조 참조.
[주D-017]여 박사(呂博士) : 여대림(呂大臨)으로, 자는 여숙(與叔)이다. 장재(張載)와 이정(二程)에게 사사하였다.
[주D-018]조씨(趙氏) : 조광(趙匡)으로, 자는 백순(伯循)이다. 당(唐)나라 후기의 학자로 주로 《춘추》를 연구했다.
[주D-019]춘추찬례(春秋纂例) : 중국 당나라 때 육순(陸淳)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은 그의 스승 담조(啖助)와 그의 벗 조광(趙匡)의 설을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춘추》 삼전(三傳)의 득실을 논하였으나, 내면으로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주로 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폄하하였다고 한다.
[주D-020]조백순의 …… 설 : 《논어》 〈팔일(八佾)〉 제11장에 보인다.
[주D-021]진기수(陳幾叟) : 진연(陳淵)으로, 자는 기수이다. 양시(楊時)의 문인이다.
[주D-022]여여숙(呂與叔) : 중국 북송(北宋) 때의 학자인 여대림(呂大臨)으로, 자는 여숙이다.
[주D-023]구산(龜山) : 중국 북송(北宋) 때의 학자인 양시(楊時)이다. 그가 만년에 구산에 은거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주D-024]변시일월지언기상(便是日月至焉氣象) : 《연평답문》의 “우운변시일월지언기상……(又云便是日月至焉氣象……)”의 부분 참조.
[주D-025]포수(包羞) : 《연평답문》의 “문공산불요필힐……(問公山弗擾佛肸……)”의 부분 참조.
[주D-026]구산(龜山)의 …… 같습니다 : 《연평답문》에 “구산이 이를 포수라 하였으니 참으로 의미가 있다.”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주D-027]종성인전후제단 사언어불착처(從聖人前後際斷 使言語不著處) : 《연평답문》의 “문여욕무언……(問予欲無言……)”의 부분 참조.
[주D-028]저절로 …… 아니다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순은 사물의 도리를 알고 인륜의 보통 인정을 이해하여, 이에 인의의 길을 간 것이지, 그가 억지로 인의를 널리 시행한 것은 아니다.〔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29]귀신은 …… 없다 : 《연평답문》의 “문희근간중용귀신일장……(問熹近看中庸鬼神一章……)”의 부분 참조.
[주D-030]향곡이상저인 지도타시개선인(鄕曲以上底人 只道他是箇善人) : 《연평답문》 후록(後錄) 참조.
[주D-031]지친 …… 당기셨네 : 주희의 〈제연평이선생문(祭延平李先生文)〉에 나오는 말이다.
[주D-032]전날의 …… 되었다 : 《퇴계문집고증(退溪文集考證)》에 이 말은 보록(補錄)에 나온다고 하였다.
[주D-033]운회(韻會) : 중국 송나라 황공소(黃公紹)가 지은 운서(韻書)이다.
[주D-034]지금 …… 한다 : 《주자어류》 권109 〈논취사(論取士)〉에 나오는 말이다. 《주자어류》 사고전서본에는 ‘병(幷)’ 자로 되어 있다.
[주D-035]여진백(呂進伯) : 여대충(呂大忠)으로, 남전(藍田) 사람이다.
[주D-036]한안도(韓安道) : 《퇴계문집고증》에 “《이정전서(二程全書)》에는 위안도(韋安道)라 하였는데, 연평은 한안도라 하였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주D-037]이천(伊川)이 …… 하였는데 :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3 〈공맹주정장자(孔孟周程張子)〉에 나온다.
[주D-038]장자문(蔣子文) : 중국 후한(後漢) 광릉(廣陵) 사람이다. 말릉위(秣陵尉)가 되었다가 죽었는데, 손권(孫權)이 건업에 도읍하자, 장자문이 항상 백마를 타고 백우선(白羽扇)을 쥐고 나오는 영험을 보여서 마침내 종산(鍾山)에 사당을 짓고 모셨으며, 장후(蔣侯)에 봉하였다 한다.
[주D-039]문정공(文定公) :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호안국(胡安國, 1074~1138)의 시호로, 자는 강후(康侯), 호는 무이 선생(武夷先生)ㆍ초암 거사(草菴居士)이다.
[주D-040]문정공(文定公)이 …… 못하다 : 《주자어류》 권101 〈정자문인(程子門人)〉에 나오는 말이다.
[주D-041]벼슬하는 …… 있습니다 :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벼슬하는 것은 가난 때문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난 때문이다.〔仕非爲貧也 有時乎爲貧〕”라고 하였다.
[주D-042]단간목(段干木)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공손추(公孫丑)가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제후를 만나지 않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가 ‘옛날에는 그의 신하가 아니면 가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위(魏)나라 단간목은 위나라 문후(文侯)가 가서 그를 보자 담을 넘어서 피하였고, 노(魯)나라 설류(泄柳)는 노나라 목공(穆公)이 가서 그를 보자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너무 지나치다. 만약 절박하게 만나려 하면 만나 볼 수 있다. 하였다.〔公孫丑問曰 不見諸侯 何義 孟子曰 古者 不爲臣 不見 段干木 踰垣而避之 泄柳 閉門而不納 是皆已甚 迫斯可以見矣〕’라고 하였다.
[주D-043]절박하게 …… 된다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공손추(公孫丑)가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제후를 만나지 않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가 ‘옛날에는 그의 신하가 아니면 가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위(魏)나라 단간목은 위나라 문후(文侯)가 가서 그를 보자 담을 넘어서 피하였고, 노(魯)나라 설류(泄柳)는 노나라 목공(穆公)이 가서 그를 보자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너무 지나치다. 만약 절박하게 만나려 하면 만나 볼 수 있다. 하였다.〔公孫丑問曰 不見諸侯 何義 孟子曰 古者 不爲臣 不見 段干木 踰垣而避之 泄柳 閉門而不納 是皆已甚 迫斯可以見矣〕’라고 하였다.
[주D-044]정유일(鄭惟一) : 1533~1576.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峯)이다. 1558년(명종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 판서에 이르렀다. 저술로 《문봉집(文峯集)》이 있고, 편저 《명현록(名賢錄)》이 있다.
[주D-045]유공(劉公) : 유기지(劉器之)를 말한다.
[주D-046]백성은 …… 없다 : 《논어》 〈태백(泰伯)〉에 공자가 “백성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 지시한 것을 따라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들로 하여금 자기가 끌려가는 것을 알게 할 수는 없다.〔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라고 하였다.
[주D-047]망정간혜 득소휴헐(忘情乾慧 得所休歇) : 《퇴계문집고증》에서 〈이선생초견나선생서(李先生初見羅先生書)〉에 나온다고 하였다.
[주D-048]정수(定水) : 마음에 혼란이 없음을 맑고 고요한 물에 비유한 말이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파문이 일어나는 물과 같아서 사물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으므로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주D-049]운부(韻府) : 중국 원(元)나라 음시부(陰時夫)가 찬한 《운부군옥(韻府群玉)》을 말한다. 이 책은 글자의 이동변천(異同變遷)을 밝히고,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말과 선어(禪語) 등을 기록하였다.
[주D-050]정현(鄭玄) : 127~200.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로, 자는 강성(康成), 고밀(高密) 사람이다. 마융(馬融)에게 수학하였으며, 당세의 거유(巨儒)였다.
[주D-051]하휴(何休) : 129~181. 중국 후한의 학자로, 특히 《춘추공양전》에 통달하였다. 저술로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考)》, 《공양묵수(公羊墨守)》, 《좌씨고황(左氏膏肓)》, 《곡량폐질(穀梁廢疾)》 등이 있다.
[주D-052]묵적(墨翟) : 묵가(墨家)의 창시자로, 묵자(墨子)라고 존칭한다. 묵자를 비롯한 묵가학파는 공격 전쟁을 철저히 배격하였으며, 공격에 대응하는 수비적인 전쟁에 뛰어난 기술과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주D-053]팔일가(八一哥) : 《퇴계문집고증》에 이름이 돈서(敦敍)라고 하였다.
[주D-054]예장(豫章) : 중국 송나라 때 나종언(羅從彦)의 별호로, 자는 중소(仲素), 시호는 문질(文質)이다. 양시(楊時)의 문인으로 송대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又難廢墜。指應接事而言乎。指工夫而言乎。只又但三字。語意相蒙。而未曉曲折。
靳靳
謹守格法。專指可改之道而言乎。兼指三年無改之意乎。
使知所以自求者
爲時尼惟深切
是沙所謂自求者。蓋指奉承遺體。求免於虧辱之意而言也。
諸家之說。多不出此。指其說而言乎。
不然。設譬引喩。所謂不然者。恐語意似不承接歸生,許止事也。通上文所謂不知幾微之間以下等語。而反其辭也。
歸生,許止各是發明一例。在歸生,許止。各有發明格例。不須援引爲證也。
須知顔子默曉聖人之言。顔子所以默曉者。便知親切道體乎。一說須知顔子默曉聖人之意。然後便知親切道體處。恐前說是也。
遽又以侯稱之
面化而知裁
立一下法
引荀子大昏之未發。祭之未納尸。喪之未小斂。一也。
引此比而同之乎。所謂趙氏春秋纂例之說。抑何意耶。
纖奸打訛處
陳幾叟與羅先生門。與者參字之意乎。呂與叔有中庸解。而二公皆說了註脚乎。龜山解今之或問中辭乎。
便是日月至焉氣像。延平意則然矣。而論語註解。似與此不同。抑有微意乎。
竿木隨身之說
包羞
從聖人前後際斷。使言語不着處。
發憤忘食。言其求道之切。所謂聖人自道理中流出。猶言由仁義行。非行仁義者乎。然今之論語註解。專指求道之意。似與延平之旨不同。何也。一極際氣像。抑何言也。
鬼神。自家要有便有。要無便無。竊恐鬼神。非弄得物事。豈人之所要以有無哉。謂之要無便無者。尤所未瑩。所謂有其誠則有其神。無其誠則無其神。語意平穩。似不類是也。抑別有微意乎。
六月十四日書。承諭至不能無愧悔之恨。
朱子之意自非有志於求仁。何以覺此。
延平因其意美之語錄
有云至爲悔。
延平引之。將救留滯之病。來諭云至銷隕得。
朱子之意胸中若如此以下。
皆是延平之言作此看否。
就本源處。指恭順謹畏之心乎。
鄕曲以上底人。只道他是箇善人。延平爲上底人。而鄕曲只道延平是箇善人。一說。鄕曲論人。以上底人。只道是箇善人。延平少不與人辯詰。必待問後方與說也。恐前說近是。而他也略不與人說以下。乃別起之辭。而不與上文相連也。
蹇步方休
厓。鞭繩已掣。
自盡其道。
爲面便不相關。不相關。謂人神不雜揉之意乎。
始信前日諸人之誤。孟子註。諸儒所見不同。蓋指此也。
設張羅落者大
今日習春秋者。
乙皆令各習一傳。
爲古拜習註解。
乎代拜字。恐幷字而訛也。
却怕於匹似閑底事
書不要點。看得更好。臨書不要分行數墨。只看得文義更好乎。一說寫字時。不要點墨添補。然後看得更好也。恐前說是也。
只爲說敬字不分明。朱子每以謂得李先生後成就所學。而猶有少此之意乎。
伊川令呂進伯去了韓安道。韓安道。何許人也。
文定代云干木云云。不若龜山之遜避。仕不爲貧。而有時乎爲貧。龜山猶取此義。對人說了。文定則以
段干木代龜山之說。延平意以謂此則無迫斯可見之義。不若龜山遜避之意。頃與鄭斯文惟一講此段。作此看。猶未瑩其意。所謂遜避者。龜山之出。本爲道而不自居也。文定之代云干木者。亦欲龜山寧踰垣避之而不出乎。
李先生云。橫渠說。不須看。所謂先入了費力。蓋指橫渠正蒙等語而言乎。延平之不欲以此勉初學。何意乎。
呂與叔論民可使由之處。意思極好處。何謂乎。論儒佛雜學之弊。所引其說。何意乎。
來延平看親。看親。卽省親乎。
忘情乾慧。得所休歇。
操戈入室
渠初從謙開善處
可惜忘錄
奴多。此子
是近聞其爲絶世也
爲尼。遵堯,台衡二錄見上。而不知何書也。此文字亦未曉句斷文義。
載瞻繐綍。何物乎。
逮玆退老。朱晦庵自謂乎。
探原推本。敢昧厥初。原本。指淵源所自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