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平答問

2018. 10. 29. 15:20한문상식

연평답문(延平答問) 해제

 

朱子가 스승 李侗(號는 延平)과 문답한 것을 記錄한 책이다. 앞에는 1495년(明 孝宗弘治 8)에 쓴 周木의 序文이 있고 끝에는 周木이 12년전 憲宗에게 本書를 올린 推薦書, 延平의 14世孫 李習의 跋文, 우리나라에서 1554년(明宗 9) 初刊 發行 때 쓴 李退溪의 跋文, 再版 發行 때의 宋俊吉의 跋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3부로 되었으니 문답한 原篇이 59張이고 後錄이 15張인데 1214년(宋 寧宗 嘉定 7)에 쓴 趙師夏의 跋文이 있고 또 補錄 52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경로를 보면 退溪의 跋文에는 “天領 朴希正에게서 내가 이 책을 얻어보니 모두 3편인데 사제의 문답은 朱子가 師說을 手編한 것이고, 後錄이란 것은 晦庵이 師說을 말한 遺文에서 後人이 초록한 것이며, 補錄이란 것은 後錄에 未備된 것을 周木이 編輯한 것이다. 이것을 출판하라고 希正에게 말했더니 마침 淸州牧使 李剛君이 公務로 京師에 왔기에 希正이 바로 이 부탁을 하니 李君도 또한 즐겨해서 歸任한지 數月만에 刊役이 完功되었다”고 하였다. 또 宋浚吉의 跋文에는 “본서에는 退溪 李先生이 그 跋文을 써 사실을 다 말하였으니 다시 贅言할 필요는 없지마는 兵火를 지나 板木이 없어졌으니 窮鄕의 학자들이 본 사람이 드문 것이다. 이제 燕岐守令 趙持綱侯가 家庭에서 承訓하여 이 일이 있는 줄 알고 그의 俸祿을 義捐해서 본서를 출간하게 되었으니 이를 널리 傳하면 後學에 惠擇이 클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서는 初刊版이 兵火로 없어진 뒤에 重刊版에서 印刷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평답문》 질의(延平答問質疑)
 
 
문목〔問目〕
 

 

 


“또 그만두기 어렵다.”라고 한 것은 일에 응접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공부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다만〔只〕’, ‘또〔又〕’, ‘단지〔但〕’라는 세 글자는 뜻이 서로 겹쳐서 그 상세한 뜻을 모르겠습니다.
퇴계 선생이 답하였다. “응당 응접해야 할 곳은 그만두고서 응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만두기 어렵다.’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공부를 말한 것이라면 ‘어렵다〔難〕’라는 말을 쓰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단지 예전과 같다.’라는 것은 ‘특별히 좋은 일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비록 특별한 일은 없지만 일을 만나면 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또 그만두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에 응하는 경우는 단지 조심스럽게 살펴야 날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단지 행동을 신중히 하며 날을 보낼 따름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근근(靳靳)은 무슨 뜻입니까?
거성으로 음은 ‘근(近)’이며,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행동을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대개 본래 말〔馬〕의 뱃대끈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행동을 제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자는 ‘근(斤)’으로 써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근근(斤斤)’은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이며, ‘근(斤)’ 또한 거성입니다.

“격법(格法)을 삼가 지킨다.”라는 것은 고쳐야 할 도를 오로지 가리키는 것입니까? 삼 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뜻을 아울러 가리키는 것입니까?
고쳐야 할 것이면 분명하게 고치고, 고쳐서는 안 될 것이면 고치지 않을 따름입니다. 이것을 ‘격법을 지킨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는 당연히 두 가지 뜻을 아울러 보아야 합니다. 만약 “억지로 참으면서 끌어 맞춘다.”라고 하면 격법이 아닙니다.

“스스로 추구할 바를 알게끔 하는 것이 깊고도 절실하다.”라는 조목. ‘스스로 추구할 바’라는 것은 유체(遺體)를 잘 받들어 상하게 하거나 욕되게 함을 면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까?
이른바 ‘스스로 추구한다.’라는 것은 보내 온 설이 옳습니다. 성인이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 이와 같아서, 오직 깊고 절실하게 추구하면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성인의 가르침을 들었다 하더라도 도움이 안 됩니다.

“제가(諸家)의 설이 대체로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조목. 이것은 그 설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이는 선유(先儒)가 이것을 해설한 것이 이러한 뜻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 뜻’이라는 것은 ‘기미의 사이’ 아래에 선생(주희)이 스스로 해석한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유를 설정하고 인용을 하는 것이 이와 같이 소략할 리가 없다.”라는 조목. 여기서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것은 귀생(歸生)과 허(許)의 태자 지(止)의 일과는 말뜻이 이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윗글에서 말한 ‘알지 못하는 기미의 사이에 존경하는 마음이……’ 이하 등의 말과 연결되면서 그 말을 뒤집는 것인지요?
그렇습니다.

“귀생과 허의 태자 지는 각각 하나의 예를 드러내 밝힌 것이다.”라는 조목. 귀생과 허의 태자 지에 있어서는 각각 규칙과 조례를 드러내 밝혔으니 인용하여 증거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자(顔子)가 성인의 말을 말없이 깨달은 것을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라는 조목. 안자가 말없이 깨달은 것은 곧 분명한 도체를 안 것입니까? 일설에는 안자가 성인의 뜻을 말없이 깨달은 것을 안 뒤에 분명한 도체를 안다고 합니다. 앞의 설이 맞는 듯합니다.
앞의 설이 옳습니다.

갑자기 또 후(侯)로서 그를 일컬으면.
옳습니다.

‘화이지재(化而知裁)’ 조목
일반 사람의 학문은 비록 진보하지만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져서 결정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성인 공자는 15세에서 70세까지 점차로 진보하여 궁극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화(化)’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자신이 확고히 선 것〔立〕을 알고, 미혹되지 않음〔不惑〕을 알고, 천명을 아는 것〔知天命〕을 알고, 소리가 귀로 들어오면 마음에 훤히 그 뜻이 밝혀짐〔耳順〕을 알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음〔從心所慾不踰矩〕을 아니, 이른바 ‘옳고 그름을 따져서 결정할 줄을 안다.〔知裁〕’라고 하는 것입니다.

‘입일하법(立一下法)’이라는 대목.
이는 근래 판본에 따라 ‘입하일법(立下一法)’으로 해야 하는데, 성인이 하나의 모범을 세운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하(下)’ 자는 ‘입(立)’ 자와 ‘법(法)’ 자 사이의 어조사일 따름입니다.

《순자(荀子)》의 “혼인의 의식을 갖추지 않았을 때〔大昏之未發〕와 제사에서 아직 시동을 모셔오지 않았을 때와 상례에서 아직 염습을 않았을 때는 한가지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 ‘미발(未發)’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예를 잃은 가운데 또 예를 잃는다.”라는 대목에서 여 박사(呂博士)가 이를 인용하였는데, 나열하여 같은 것으로 본 것입니까? 조씨(趙氏)《춘추찬례(春秋纂例)》의 설은 또한 무슨 의미입니까?
여 박사가 순자(荀子)의 이 말을 인용하여 뜻을 풀었는데, 다만 순자의 설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조씨의 《춘추찬례》의 설은 아마도 《주자집주》에 인용된 조백순의 체제(禘祭)에 대한 설일 것입니다.

‘섬간타와처(纖奸打訛處)’
‘섬간타와’는 당시의 속어 같은데, ‘잔꾀를 부리다가 잘못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기수여나선생문(陳幾叟與羅先生門)’이라고 한 부분. 중간의 ‘여(與)’ 자는 ‘참여한다〔參〕’는 뜻입니까? 여여숙(呂與叔)이 《중용해(中庸解)》를 지었는데, 이 두 분이 모두 자구를 해석한 것을 말한 것입니까? 구산(龜山)의 해석은 지금 《혹문》 가운데 있는 말입니까?
‘여(與)’ 자는 ‘급(及)’ 자와 같은 뜻입니다. 여숙이 《중용해》를 지었는데, 진(陳)과 나(羅) 두 분은 모두 이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풀이한 것이 의미가 충실하고 흡족하여 구산(龜山)의 풀이보다 낫습니다. 구산의 풀이는 좀 단조로운 것 같습니다. 구산의 풀이는 《중용혹문》에 나오는 것일 따름입니다.

‘변시일월지언기상(便是日月至焉氣象)’이라는 부분. 연평의 뜻은 그렇습니다만 《논어》의 주해는 이와 다른 듯합니다. 혹 은미한 뜻이 있습니까?
연평의 설이 비록 좋지만 공자의 본래 뜻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주자가 《논어집주》에서 그의 설을 쓸 수 없었습니다.

간목(竿木)이 늘 몸에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간목이란 지금 광대가 수레 위에 세워 광대놀음 하는 나무입니다. “간목이 늘 몸에 있으니, 마당이 있으면 한바탕 노네.”라고 하는데, 선가(禪家)에서 이러한 말을 흔히 씁니다. ‘장(場)’은 곧 공연하는 마당입니다. 몸에 그 도구를 지니고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사용할 수 있어 스스로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포수(包羞)’
이는 자로(子路)가 뚜렷하게 밝은 지혜가 통달하여 안 될 것이 없는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심이 있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성인이 의심나고 막히는 것이 있으면서 이를 행했다면 이것이 바로 포수입니다. 구산(龜山)의 본래 말은 비록 보지 못하였으나, 이러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종성인전후제단 사언어불착처(從聖人前後際斷 使言語不著處)’의 대목.
‘전후제단’이라는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전후라는 것은 “얼핏 보면 앞에 있는 듯하다가 갑자기 뒤에 계시다.”라고 하는 전후이고, ‘제단’은 남들이 미치지 못하는 성인의 경지를 가리켜 말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정자가 “이 경지는 바로 깎아지른 듯 험준하여, 대단하게 힘을 쓸 수 없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사언어불착’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는다는 것은 도를 추구하는 간절함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이른바 “성인은 도리로부터 행위가 나온다.”라는 것은 “저절로 인의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 인의를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까? 그러나 지금의 《논어》 주해는 오로지 도를 추구하는 뜻만을 가리켜, 연평의 뜻과 같지 않은 듯하니 왜 그렇습니까? ‘일극제기상(一極際氣象)’은 또 무슨 말입니까?
인용한 “저절로 인의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 인의를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은 연평의 뜻을 밝히는 데 적합한 듯합니다. 그러나 주자는 여기에서 간절하게 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았고, 《논어》의 주에서는 독실하게 학문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뒤의 견해는 앞의 견해에 비하여 정도에 따라 차츰 변화하는 의미가 없지 않으나, 연평의 뜻을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연평은 혼연히 하나의 기상으로 보았고, 주자는 아직 체득하지 못한 것과 이미 체득한 것으로 구분하였으니, 조금 다를 따름입니다. 극제(極際)라는 말은 아마도 이른바 ‘전체가 지극하다.’라는 의미인 듯합니다.

“귀신은 개인이 있기를 원하면 곧 있고 없기를 원하면 곧 없다.”라고 하였는데, 제 생각으로는 귀신이 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으니, 어찌 사람이 바라는 것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없기를 바라면 없다고 한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정성이 있으면 그 신이 있게 되고, 정성이 없으면 그 신이 없게 된다.”라는 말은 뜻이 평상적이고 온건하여 이 말과 같지 않은 듯합니다. 아니면 다른 은미한 뜻이 있습니까?
“귀신은 있기를 바라면 있고 없기를 바라면 없다.”라는 것은 또한 귀신이 있고 없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정성이 있으면 그 귀신이 있게 되고, 정성이 없으면 그 귀신이 없게 된다.”라는 의미와 같으니 아마도 다른 은미한 뜻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제사를 한 번 올리게 되면, 나의 정성과 공경이 지극하냐 지극하지 않느냐에 따라 신이 흠향하느냐 흠향하지 않느냐가 달려있습니다. 이 이치는 분명하니 매우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6월 14일 편지에 “가르침을 받고 부끄럽고 후회하는 한스러움이 없을 수 없는 데 이르렀습니다.”라고 하였다. - 주자의 뜻이다. - 스스로 인(仁)을 추구함에 뜻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이것을 깨닫겠는가. - 연평이 그의 뜻으로 인하여 칭찬하였다. - 어록(語錄)에 후회하는 데 이른다고 말한 것이 있다. - 연평이 그것을 인용하여 막히는 병을 구제하였다. - 보내주신 편지에서 ‘없어지는 데 이르렀다.’라고 하였습니다. - 주자의 뜻이다. - ‘흉중약여차(胸中若如此)’ - 모두 연평의 말이다. - 이하는 이렇게 보아야 합니까?
상세한 내용을 간파하였으니, 착오가 없습니다.

본원이 되는 곳에 나아간다는 것은 공경하고 순종하며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리킵니까?
그렇습니다.

‘향곡이상저인 지도타시개선인(鄕曲以上底人 只道他是箇善人)’의 부분. 연평은 뛰어난 사람인데 고을에서는 단지 연평을 선인(善人)으로 말하였습니다. 일설에는 “고을에서 사람을 논할 적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단지 선인이라고 말하였으나, 연평은 남들과 논변하고 따지는 일이 드물었으며, 반드시 물음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더불어 말하였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아마도 앞의 설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또한 대체로 남들과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他也略不與人說〕”라고 한 이하는 독립된 말로 위의 글과 연결되지 않는 듯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두 설이 모두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 ‘이상저인(以上底人)’이란 지금 사람들이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을 가운데 이치를 아는 사람까지도 연평이 도를 지닌 사람임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를 선인이라고 말하였는데, 연평도 스스로 그 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 성급하게 남들과 가볍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뜻일 뿐입니다.

“지친 걸음 막 쉬려고 함에 채찍질하며 고삐를 당기셨네.”의 대목.
말을 모는 사람은 말의 걸음이 굼떠서 쉬려고 하면, 고삐를 당기고 채찍질하여 가기를 독촉합니다. 선생이 스스로 “이미 학문을 하는 것이 둔하고 어리석어서 막 쉬려고 하면 연평께서 가르치고 독려하여 진작시키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으로 비유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자신이 그 도를 다하면 곧 서로 관련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서로 관련이 없다는 것은 사람과 신이 뒤섞이지 않는다는 뜻을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전날의 여러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라는 부분. 《맹자》의 주는 여러 유자들의 견해가 같지 않으니, 대개 이것을 가리킨 듯합니다.
윗글에서 ‘또한 이러한 병통이 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조장하는 병통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참다운 이치를 미루어 보고 이러한 병통을 알아서 고치며, 비로소 여러 유자들이 학문을 하는 것이 잘못 들어간 곳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지, 《맹자》를 주해한 것이 서로 다름을 가리켜 말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설장라락자대(設張羅落者大)’ 부분.
‘설장(設張)’은 ‘펼친다’는 뜻입니다. ‘나(羅)’는 망라하는 것입니다. ‘낙(落)’은 《운회(韻會)》에서 ‘낙(絡)’ 자는 통용하여 ‘낙(落)’으로 쓴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락(蘺落)의 ‘낙(落)’은 본래 ‘격(格)’으로 썼는데, - 음은 낙(洛)이다. - 낙(洛)과 통용하였습니다. 또 ‘호락(虎落)’은 대껍질을 서로 이어 막는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 뜻을 합해 보면 ‘나락(羅落)’은 마땅히 포괄한다는 뜻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춘추》를 익히는 이들에게 모두 삼전(三傳) 가운데 각각 하나의 전(傳)을 익히게 하고, 그 주해를 배습(拜習)하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배(拜)’ 자는 아마도 ‘병(幷)’ 자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
‘병(幷)’ 자가 잘못 쓰인 것입니다.

‘각파어필사한저사(却怕於匹似閑底事)’ 부분.
‘필사(匹似)’는 아마 ‘흡사(恰似)’나 ‘정사(正似)’의 유와 같은 것입니다. 흡사 긴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갑자기 일어나 마음을 얽어매면 이것을 없애기가 더욱 어려우니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서불요점 간득갱호(書不要點看得更好)는 글을 대하면 행을 나누어 한 자 한 자 읽을 필요 없이, 단지 글의 뜻을 보는 것이 더욱 좋은 것입니까? 일설에는 글자를 쓸 때 먹을 찍어 수정하여 보완하지 않아야 보기가 더욱 좋다고 합니다. 아마도 앞의 설이 옳은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점(點)’은 지금 ‘구두를 끊다.〔點句〕’ 할 때의 ‘점(點)’과 같습니다. 다만 구두를 끊어서 보는 것이 무슨 해로울 것이 있어서 점을 찍지 않고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체적인 뜻은 보낸 편지에서 말한 앞의 설과 같을 따름입니다.

“단지 경(敬) 자를 설명한 것이 불분명하다.”라는 부분. 주자가 늘 이 선생(李先生)을 만난 뒤에 학문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점을 대수롭게 평가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까?
주자는 연평의 문하에서 고요한 가운데 주재하고 존양(存養)하는 법이 있음을 터득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불교나 노장의 사상에 빠지는 것을 면하였고, 유학의 종통(宗統)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정(靜)’을 말하는 것은 ‘경(敬)’을 말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은 정이천(程伊川)이 이미 말하였습니다. 주자가 어찌 스승의 문하라는 것 때문에 영합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천(伊川)이 여진백(呂進伯)에게 사당에 배식된 한안도(韓安道)의 소상(塑像)을 없애버리게 하였는데, 한안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한안도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죽어서 화복을 일으키는 영험을 보여, 제사를 받지 않아야 하는데 제사를 받는 자로, 장자문(蔣子文)과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입니다.

문정공(文定公)이 대신하여 간목(干木) 운운한 것은 구산(龜山)이 겸손하게 물러선 것만 못하다.’라는 부분. 벼슬하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가난 때문에 벼슬하는 일도 있습니다. 구산은 그래도 이 뜻을 취하여 남에게 말하였는데, 문정공은 단간목(段干木)으로 구산의 설을 대신하였습니다. 연평의 생각으로는 문정공처럼 말한다면 “절박하게 만나려 하면 만나 보아도 된다.”라는 뜻이 없어, 구산의 겸손하게 물러서는 뜻만 못하다고 본 것입니다. 요사이 정유일(鄭惟一)과 이 단락을 강구하면서 이렇게 보았는데, 여전히 분명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겸손하게 물러섰다.’라고 한 것은 구산이 벼슬에 나간 것이 본래는 도를 위해서이지만 스스로 그렇게 자처하지 않은 것입니다. 문정공이 그것을 대신하여 간목을 말한 것은 또한 구산이 차라리 담을 뛰어넘어 달아날지언정 벼슬에 나아가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까?
‘간목’이 만약 정말로 단간목이라면 보낸 편지의 설과 비슷할 듯합니다. 그러나 ‘단(段)’ 자는 빼 버리고 간목(干木)이라고만 하였으니 이것부터 벌써 의심스럽습니다. 하물며 유공(劉公)이 물은 것은 틀림없이 구산이 벼슬에 나아간 까닭이고, 구산이 가난 때문에 벼슬한다고 대답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겸손하게 물러서는 말일 것입니다. 문정공이 구산을 대신하여 유공에게 답한다면 또한 마땅히 벼슬에 나아가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도리어 단간목이 담을 넘어 도망간 일을 들어서 이미 벼슬에 나아간 것에 대한 해명의 말로 답을 하겠습니까. 뜻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간(干)은 바로 간(竿)이 잘못 쓰인 것이거나 생략해 쓴 것이라 생각합니다. ‘간목이 언제나 몸에 있으니 마당만 보면 한바탕 재주를 부리네.’라는 의미는 이미 앞에서 나왔습니다. 대개 문정이 구산을 대신하여 이 말을 들어서 답하였다면, 이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도를 펼 도구를 갖추고 있어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 벼슬길에 나아갔다고 말하는 것이니, 자임하는 뜻이 너무 지나칩니다. 그래서 연평이 구산의 겸손히 물러섬만 못하다고 한 것일 따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선생(연평)이 횡거의 설은 볼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선입료비력(先入了費力)’이라 한 것은 대개 횡거의 《정몽(正蒙)》 등의 말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연평이 이러한 것으로 학문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을 면려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정이천(程伊川) 선생 또한 “횡거가 도를 말한 것에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은 바로 《정몽》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횡거는 대개 고심하고 힘써 찾아서 체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가끔 작위적으로 안배하고 견강부회한 것이 있어, 말한 것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이점은 바로 연평이 완전히 통달하여 작위적인 것을 떨치고, 분명하게 자득한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평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여숙(呂與叔)이 “백성은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왜 그런지를 알게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을 논한 곳은 의미가 매우 뛰어난 곳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유교와 불교와 잡학의 폐단을 말하면서 그 설을 인용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씨의 본래 설을 지금 볼 수가 없으니 억측하고 견강부회하여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내연평간친(來延平看親)’의 부분. 간친(看親)은 곧 성친(省親)입니까?
아마 ‘성친’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의미는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친척을 문안하고 만나 보는 것일 따름입니다.

‘망정간혜 득소휴헐(忘情乾慧 得所休歇)’의 부분.
옛 선사(禪師) 어록에 ‘광혜(狂慧)’, ‘간혜(乾慧)’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佛)의 상(相)은 해오(解悟)이다. 사람이 바른 견해는 없고 단지 학문을 통한 이해만 있는 것을 광혜라 하니, 또한 간혜는 아니다. 간혜란 바른 견해를 깨달아 얻었지만 정수(定水)의 젖어듦이 없는 것인데, 이는 궁극적인 깨달음인 오해(悟解)가 아니고 단지 생사 문제에 집착하는 마음이 삿된 것을 이룸을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앞의 이야기는 《운부(韻府)》에 나오는 것이 이와 같은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선가(禪家)에 계정혜(戒定慧)에 관한 설이 있습니다. “계(戒)가 정(定)을 낳으며, 정이 혜(慧)를 낳는다. 그릇됨을 막고 악(惡)을 그치게 하는 것을 계(戒)라 하고, 여섯 감각기관이 외부의 대상과 접촉하여 마음이 그 인연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定)이라 하고, 마음과 대상 세계가 함께 공(空)하여 비치고 살피는데 장애가 없는 것을 혜(慧)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광혜(狂慧)와 간혜(乾慧)의 설을 살펴보면, 정견(正見)이 없이 단지 학문적인 과정을 통하여 이해하는 것을 광혜라고 하는데, 이는 간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간혜는 바른 견해를 깨달아 얻어, 마음이 정(定)을 얻고 혜(慧)를 낳아 그 궁극적인 경지에 나아간 것을 말합니다. 이른바 ‘정수’가 없다는 것은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깥 사물에 얽히니, 이것은 마치 물이 젖어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이 스며들게 되면 이는 젖은 지혜이지 간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어록(語錄)은 바로 간혜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으니 ‘정수가 젖어듦이 없지 않다.〔不爲無定水浸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정수가 젖어듦이 없다.〔爲無定水浸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혹 ‘위(爲)’ 자의 위에 하나의 ‘불(不)’ 자가 빠졌다고 하는데,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과입실(操戈入室).
정현(鄭玄)의 전(傳)에 “임성(任城) 사람 하휴(何休)는 공양학(公羊學)을 좋아하여, 《공양묵수(公羊墨守)》, 《좌씨고황(左氏膏肓)》, 《곡량폐질(穀梁廢疾)》을 지었다. 내가 이에 《발묵수(發墨守)》, 《침고황(針膏肓)》, 《기폐질(起廢疾)》을 지어 이를 반박하니, 하휴가 탄식하며 ‘강성(康成)이 내 방에 들어와 내 창을 잡고 그것으로 나를 치는구나.’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묵수는 묵적(墨翟)이 성을 지키는 법입니다. 이는 공양(公羊)의 학문이 천하에 적이 없는 것이 마치 묵적이 성을 지키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겸개선(謙開善)을 추종했다.’라고 한 대목.
전에 후현(後賢)의 설을 보니 겸개선은 승려의 이름이라 하였습니다. 대개 주자가 이 승려에게 선학(禪學)을 배웠기 때문에 연평이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 말이 어느 책에 나오는지 말하지 않았으니, 가면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또 의심되는 것이 있으니, 세 글자를 승려의 이름이라 하였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고, 두 사람이라고 하면 한 사람은 한 글자로 일컫고 한 사람은 두 글자로 일컬은 것이니 역시 의심스럽습니다.

‘가석망록 차자근문기위절세야 준요태형이록견상 이부지하서야(可惜忘錄 此子近聞其爲絶世也 遵堯台衡二錄見上 而不知何書也)’ 이 문장도 구절이 어떻게 끊어지는지, 글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석망록(可惜忘錄)’은 두 책을 베껴 두는 것을 잊었는데 팔일가(八一哥)가 가지고 가버려서 다시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此子〕’이란 팔일가를 가리킵니다. 그 사람이 도교나 불교에 들어가 자취를 끊고 멀리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만 예장(豫章)의 아들로서 이단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일입니다. 《준요(遵堯)》라는 책의 사실에 대해서는 전에 《성리대전》에서 나 선생(羅先生)의 이름 아래 자세히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만 《성리대전》은 계사(溪舍)에 있고, 저는 산재(山齋)에 있어 찾아서 살펴볼 수 없고, 기억도 분명치 않습니다. 다행히 찾아볼 수 있게 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태형(台衡)’의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재첨세발(載瞻繐綍)’은 무슨 물건입니까?
세(繐) - 음은 세(歲) - 는 가늘고 성긴 베입니다. 《순자》의 ‘비세(菲繐)ㆍ관구(菅屨)’의 주에 “세최(繐衰)는 소공(小功)의 상복으로 4새 반이다. 발(綍)은 영구를 실은 수레를 당기는 큰 밧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필시 상복 가운데 가벼운 것이겠지만, 세최(繐衰)의 뜻은 모르겠습니다.

‘이 벼슬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냄에 이르러’라는 것은 주자가 자신을 말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근원을 탐구하면〔探原推本〕 감히 그 처음에 어두울까.”의 ‘원본(原本)’은 연원이 유래한 곳을 가리킵니까?
그렇습니다.


 

[주B-001]연평답문(延平答問) : 주희가 그의 스승 연평(延平) 이통(李侗)에게 질문한 것과 이통이 답변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주D-001]세 글자 : 《연평답문》에 “일체지여구 유불가불응접처 우난폐타 단근근도일이(一切只如舊 有不可不應接處 又難廢墮 但靳靳度日爾)”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D-002]근근(靳靳) : 《연평답문》에 “일체지여구 유불가불응접처 우난폐타 단근근도일이(一切只如舊 有不可不應接處 又難廢墮 但靳靳度日爾)”라고 한 부분을 말한다.
[주D-003]격법(格法)을 삼가 지킨다 : 《연평답문》의 “문자왈 부재관기지……(問子曰父在觀其志……)” 조 참조.
[주D-004]억지로 …… 맞춘다 : 《연평답문》에 “참으면서 말하지 않아 남들이 그 고치는 자취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해로울 것은 없으나, 다만 마음을 이렇게 지니면 차츰 잘못되는 것이 많다.”라고 하였다.
[주D-005]스스로 …… 절실하다 : 《연평답문》의 “문맹무백문……(問孟武伯問……)” 조 참조.
[주D-006]제가(諸家)의 …… 않는다 : 《연평답문》의 “문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問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조 참조.
[주D-007]기미의 사이 : 《연평답문》의 “문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問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조 참조.
[주D-008]그렇지 …… 없다 : 《연평답문》의 “문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問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조 참조.
[주D-009]귀생(歸生)과 …… 일 : 귀생이 임금을 시해한 일과 허의 태자 지가 임금을 시해한 일을 가리킨다. 태자 지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공자이다. 귀생의 일은 《춘추좌씨전》 선공(宣公) 4년과 소공(昭公) 19년 조에 보인다.
[주D-010]안자(顔子)가 …… 한다 : 《연평답문》의 “문자왈 오여회언종일……(問子曰 吾與回言終日……)” 조 참조.
[주D-011]갑자기 …… 일컬으면 : 여기서는 토를 ‘면(面)’으로 다는 것을 물었다.
[주D-012]화이지재(化而知裁) : 《연평답문》의 “문오십유오이지어학일장 횡거선생왈……(問吾十有五而志於學一章 橫渠先生曰……)” 조 참조.
[주D-013]성인 …… 이르렀으니 : 《논어》 〈위정(爲政)〉 제4장 참조.
[주D-014]입일하법(立一下法) : 《연평답문》의 “문오십유오이지어학일장 횡거선생왈……(問吾十有五而志於學一章 横渠先生曰……)” 조 참조.
[주D-015]혼인의 …… 한가지이다 : 《순자》 〈예론편(禮論篇)〉에 나오는 말이다.
[주D-016]예를 …… 잃는다 : 《연평답문》의 “문체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問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조 참조.
[주D-017]여 박사(呂博士) : 여대림(呂大臨)으로, 자는 여숙(與叔)이다. 장재(張載)와 이정(二程)에게 사사하였다.
[주D-018]조씨(趙氏) : 조광(趙匡)으로, 자는 백순(伯循)이다. 당(唐)나라 후기의 학자로 주로 《춘추》를 연구했다.
[주D-019]춘추찬례(春秋纂例) : 중국 당나라 때 육순(陸淳)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은 그의 스승 담조(啖助)와 그의 벗 조광(趙匡)의 설을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춘추》 삼전(三傳)의 득실을 논하였으나, 내면으로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주로 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폄하하였다고 한다.
[주D-020]조백순의 …… 설 : 《논어》 〈팔일(八佾)〉 제11장에 보인다.
[주D-021]진기수(陳幾叟) : 진연(陳淵)으로, 자는 기수이다. 양시(楊時)의 문인이다.
[주D-022]여여숙(呂與叔) : 중국 북송(北宋) 때의 학자인 여대림(呂大臨)으로, 자는 여숙이다.
[주D-023]구산(龜山) : 중국 북송(北宋) 때의 학자인 양시(楊時)이다. 그가 만년에 구산에 은거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주D-024]변시일월지언기상(便是日月至焉氣象) : 《연평답문》의 “우운변시일월지언기상……(又云便是日月至焉氣象……)”의 부분 참조.
[주D-025]포수(包羞) : 《연평답문》의 “문공산불요필힐……(問公山弗擾佛肸……)”의 부분 참조.
[주D-026]구산(龜山)의 …… 같습니다 : 《연평답문》에 “구산이 이를 포수라 하였으니 참으로 의미가 있다.”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주D-027]종성인전후제단 사언어불착처(從聖人前後際斷 使言語不著處) : 《연평답문》의 “문여욕무언……(問予欲無言……)”의 부분 참조.
[주D-028]저절로 …… 아니다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순은 사물의 도리를 알고 인륜의 보통 인정을 이해하여, 이에 인의의 길을 간 것이지, 그가 억지로 인의를 널리 시행한 것은 아니다.〔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29]귀신은 …… 없다 : 《연평답문》의 “문희근간중용귀신일장……(問熹近看中庸鬼神一章……)”의 부분 참조.
[주D-030]향곡이상저인 지도타시개선인(鄕曲以上底人 只道他是箇善人) : 《연평답문》 후록(後錄) 참조.
[주D-031]지친 …… 당기셨네 : 주희의 〈제연평이선생문(祭延平李先生文)〉에 나오는 말이다.
[주D-032]전날의 …… 되었다 : 《퇴계문집고증(退溪文集考證)》에 이 말은 보록(補錄)에 나온다고 하였다.
[주D-033]운회(韻會) : 중국 송나라 황공소(黃公紹)가 지은 운서(韻書)이다.
[주D-034]지금 …… 한다 : 《주자어류》 권109 〈논취사(論取士)〉에 나오는 말이다. 《주자어류》 사고전서본에는 ‘병(幷)’ 자로 되어 있다.
[주D-035]여진백(呂進伯) : 여대충(呂大忠)으로, 남전(藍田) 사람이다.
[주D-036]한안도(韓安道) : 《퇴계문집고증》에 “《이정전서(二程全書)》에는 위안도(韋安道)라 하였는데, 연평은 한안도라 하였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주D-037]이천(伊川)이 …… 하였는데 :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3 〈공맹주정장자(孔孟周程張子)〉에 나온다.
[주D-038]장자문(蔣子文) : 중국 후한(後漢) 광릉(廣陵) 사람이다. 말릉위(秣陵尉)가 되었다가 죽었는데, 손권(孫權)이 건업에 도읍하자, 장자문이 항상 백마를 타고 백우선(白羽扇)을 쥐고 나오는 영험을 보여서 마침내 종산(鍾山)에 사당을 짓고 모셨으며, 장후(蔣侯)에 봉하였다 한다.
[주D-039]문정공(文定公) :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호안국(胡安國, 1074~1138)의 시호로, 자는 강후(康侯), 호는 무이 선생(武夷先生)ㆍ초암 거사(草菴居士)이다.
[주D-040]문정공(文定公)이 …… 못하다 : 《주자어류》 권101 〈정자문인(程子門人)〉에 나오는 말이다.
[주D-041]벼슬하는 …… 있습니다 :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벼슬하는 것은 가난 때문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난 때문이다.〔仕非爲貧也 有時乎爲貧〕”라고 하였다.
[주D-042]단간목(段干木)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공손추(公孫丑)가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제후를 만나지 않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가 ‘옛날에는 그의 신하가 아니면 가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위(魏)나라 단간목은 위나라 문후(文侯)가 가서 그를 보자 담을 넘어서 피하였고, 노(魯)나라 설류(泄柳)는 노나라 목공(穆公)이 가서 그를 보자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너무 지나치다. 만약 절박하게 만나려 하면 만나 볼 수 있다. 하였다.〔公孫丑問曰 不見諸侯 何義 孟子曰 古者 不爲臣 不見 段干木 踰垣而避之 泄柳 閉門而不納 是皆已甚 迫斯可以見矣〕’라고 하였다.
[주D-043]절박하게 …… 된다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공손추(公孫丑)가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제후를 만나지 않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가 ‘옛날에는 그의 신하가 아니면 가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위(魏)나라 단간목은 위나라 문후(文侯)가 가서 그를 보자 담을 넘어서 피하였고, 노(魯)나라 설류(泄柳)는 노나라 목공(穆公)이 가서 그를 보자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너무 지나치다. 만약 절박하게 만나려 하면 만나 볼 수 있다. 하였다.〔公孫丑問曰 不見諸侯 何義 孟子曰 古者 不爲臣 不見 段干木 踰垣而避之 泄柳 閉門而不納 是皆已甚 迫斯可以見矣〕’라고 하였다.
[주D-044]정유일(鄭惟一) : 1533~1576.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峯)이다. 1558년(명종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 판서에 이르렀다. 저술로 《문봉집(文峯集)》이 있고, 편저 《명현록(名賢錄)》이 있다.
[주D-045]유공(劉公) : 유기지(劉器之)를 말한다.
[주D-046]백성은 …… 없다 : 《논어》 〈태백(泰伯)〉에 공자가 “백성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 지시한 것을 따라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들로 하여금 자기가 끌려가는 것을 알게 할 수는 없다.〔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라고 하였다.
[주D-047]망정간혜 득소휴헐(忘情乾慧 得所休歇) : 《퇴계문집고증》에서 〈이선생초견나선생서(李先生初見羅先生書)〉에 나온다고 하였다.
[주D-048]정수(定水) : 마음에 혼란이 없음을 맑고 고요한 물에 비유한 말이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파문이 일어나는 물과 같아서 사물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으므로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주D-049]운부(韻府) : 중국 원(元)나라 음시부(陰時夫)가 찬한 《운부군옥(韻府群玉)》을 말한다. 이 책은 글자의 이동변천(異同變遷)을 밝히고,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말과 선어(禪語) 등을 기록하였다.
[주D-050]정현(鄭玄) : 127~200.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로, 자는 강성(康成), 고밀(高密) 사람이다. 마융(馬融)에게 수학하였으며, 당세의 거유(巨儒)였다.
[주D-051]하휴(何休) : 129~181. 중국 후한의 학자로, 특히 《춘추공양전》에 통달하였다. 저술로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考)》, 《공양묵수(公羊墨守)》, 《좌씨고황(左氏膏肓)》, 《곡량폐질(穀梁廢疾)》 등이 있다.
[주D-052]묵적(墨翟) : 묵가(墨家)의 창시자로, 묵자(墨子)라고 존칭한다. 묵자를 비롯한 묵가학파는 공격 전쟁을 철저히 배격하였으며, 공격에 대응하는 수비적인 전쟁에 뛰어난 기술과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주D-053]팔일가(八一哥) : 《퇴계문집고증》에 이름이 돈서(敦敍)라고 하였다.
[주D-054]예장(豫章) : 중국 송나라 때 나종언(羅從彦)의 별호로, 자는 중소(仲素), 시호는 문질(文質)이다. 양시(楊時)의 문인으로 송대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又難廢墜。指應接事而言乎。指工夫而言乎。只又但三字。語意相蒙。而未曉曲折。

退溪先生答曰。所當應接處。不可廢墜而不應接。故曰難廢墜。若謂工夫。則不當下難字也。只如舊。言無別段好事也。蓋雖無別事。遇事不可不應。故曰又難廢。然於應事處。但當愼察。足以度日。故云但靳靳度日耳。

靳靳

038_137b去聲。音近。固也。又靳制其行也。蓋本馬當膺帶也。故有制其行之義。然恐字當作斤。斤斤。愼重之意。斤亦去聲。

謹守格法。專指可改之道而言乎。兼指三年無改之意乎。

所可改。則明白而改之。所不可改。則不改而已。此之謂守格法。是當兼兩意看。若云隱忍遷就。則非格法也。

使知所以自求者

爲時尼

惟深切

是沙

所謂自求者。蓋指奉承遺體。求免於虧辱之意而言也。

所謂自求者。來說是也。聖人之告人如此。惟深切038_137c以求之。庶可用力。不然雖聞聖人之敎。無益也。

諸家之說。多不出此。指其說而言乎。

先儒說此者。多不出於此義。此義。卽幾微之間以下先生自說之義也。

不然。設譬引喩。所謂不然者。恐語意似不承接歸生,許止事也。通上文所謂不知幾微之間以下等語。而反其辭也。

歸生,許止各是發明一例。在歸生,許止。各有發明格例。不須援引爲證也。

038_137d

須知顔子默曉聖人之言。顔子所以默曉者。便知親切道體乎。一說須知顔子默曉聖人之意。然後便知親切道體處。恐前說是也。

前說是

遽又以侯稱之

化而知裁

常人之學。雖益而不自知。是不知所裁者也。惟聖人。自十五至七十。漸進而至極。所謂化也。而能就其中。知其立。知其不惑。知其知天命。知其耳順。知其不踰矩。所謂知裁也。
038_138a

立一下法

此當從近本作立下一法。言聖人爲立一法也。下字。是立法之間語。助辭耳。

引荀子大昏之未發。祭之未納尸。喪之未小斂。一也。

所謂未發者。何事也。失禮之中又有失禮。呂博士

引此比而同之乎。所謂趙氏春秋纂例之說。抑何意耶。

呂博士引荀子此語以解之。但荀子說未詳何意。趙氏纂例之說。疑卽集註所引趙伯循禘祭之說也。

纖奸打訛處

038_138b纖奸打訛。疑是當時俗語。猶言小巧作誤處。

陳幾叟與羅先生門。與者參字之意乎。呂與叔有中庸解。而二公皆說了註脚乎。龜山解今之或問中辭乎。

與。猶及也。與叔有中庸解。陳,羅二公皆以此解爲說得浸灌浹洽。勝於龜山解。龜山解。却似枯燥也。龜山解見於中庸或問者耳。

便是日月至焉氣像。延平意則然矣。而論語註解。似與此不同。抑有微意乎。

延平說雖善似。非夫子本意。故朱子集註。不得用其說。
038_138c

竿木隨身之說

竿木。如今優人豎立車上作戱之木也。竿木隨身。逄場作戱。禪家多用此說。場卽優戱之場。言身有其具。則隨處作用。不能自已也。

包羞

言子路未至於廓然明達。無所不可處。故未免有疑。如使聖人。有所疑礙而行之。是包羞也。龜山本語雖未見。恐不過如此也。

從聖人前後際斷。使言語不着處。

前後際斷。未詳。恐前後只如瞻之在前。忽焉在後之前後。際斷。似指言聖人地位。人所不及處。如程038_138d子所謂此地位。直是峻截。大段着力不得處耳。使言語不着。猶用言語不得也。如何如何。

發憤忘食。言其求道之切。所謂聖人自道理中流出。猶言由仁義行。非行仁義者乎。然今之論語註解。專指求道之意。似與延平之旨不同。何也。一極際氣像。抑何言也。

所引由仁義行。非行仁義之說。以明延平之意。得之。但朱子於此。以爲求道之切。論語註。以爲好學之篤。後比於前。不無些稱量點化意思。不可謂全不用延平之旨也。惟延平則渾然作一氣象看。朱子則有未得已得之分。爲少異耳。極際。恐如所謂
038_139a全體至極之意。

鬼神。自家要有便有。要無便無。竊恐鬼神。非弄得物事。豈人之所要以有無哉。謂之要無便無者。尤所未瑩。所謂有其誠則有其神。無其誠則無其神。語意平穩。似不類是也。抑別有微意乎。

鬼神要有便有。要無便無。亦非謂弄得有無也。正與有其誠則有其神。無其誠則無其神之意同。恐別無他微意也。今行得一祭。因吾誠敬之至不至。而神之歆不歆。係焉。此理昭顯。甚可畏也。

六月十四日書。承諭至不能無愧悔之恨。

朱子之意

自非有志於求仁。何以覺此。

延平因其意美之

語錄

038_139b

有云至爲悔。

延平引之。將救留滯之病。

來諭云至銷隕得。

朱子之意

胸中若如此以下。

皆是延平之言

作此看否。

看得曲折。無差誤。

就本源處。指恭順謹畏之心乎。

鄕曲以上底人。只道他是箇善人。延平爲上底人。而鄕曲只道延平是箇善人。一說。鄕曲論人。以上底人。只道是箇善人。延平少不與人辯詰。必待問後方與說也。恐前說近是。而他也略不與人說以下。乃別起之辭。而不與上文相連也。

038_139c愚意。恐二說皆未安。以上底人。如今人說識理之人也。謂鄕曲中識理之人。亦不知延平爲有道人。只道他是善人。延平亦不自輕其道。不肯略與人說云云耳。

蹇步方休

。鞭繩已掣。

驅馬者。馬步蹇鈍欲休。則掣鞭以督行。先生自言。已爲學駑鈍。纔方欲休。則延平已有誨督振勵之加。故以此比之。

自盡其道。

爲面

便不相關。不相關。謂人神不雜揉之意乎。

038_139d

始信前日諸人之誤。孟子註。諸儒所見不同。蓋指此也。

上文言亦有此病者。謂正與助長之病也。今推見實理。知此等病痛而改之。始知諸儒爲學。許多誤入處。恐非指註孟子不同而言也。

設張羅落者大

設張。猶鋪張也。羅。網羅也。落。韻會絡通。作落。又蘺落之落。本作格。音洛 通作落。虎落。以竹蔑相連。遮落之也。合此數義觀之。羅落。當爲包括之義也。

今日習春秋者。

皆令各習一傳。

爲古

拜習註解。

乎代

拜字。恐幷字而訛也。

038_140a幷字之誤

却怕於匹似閑底事

匹似。恐猶恰似正似之類。言却恐於恰似無緊要之事。卒然起來纏心。則除此爲尤難。不可不着力云耳。

書不要點。看得更好。臨書不要分行數墨。只看得文義更好乎。一說寫字時。不要點墨添補。然後看得更好也。恐前說是也。

此語可疑。愚意點如今點句之點。但不知點句看。有何害而要不點看。然其大意。不過如來諭前說耳。
038_140b

只爲說敬字不分明。朱子每以謂得李先生後成就所學。而猶有少此之意乎。

朱子於延平之門。得靜中有主宰存養之法。由是免入釋老去。而學之宗統在是。然說靜不若說敬程先生已言之。朱子豈得以師門之故。而遷就爲說耶。

伊川令呂進伯去了韓安道。韓安道。何許人也。

未詳韓安道爲何人。應是死而作禍福。以食於淫祀。如蔣子文之類。

文定代云干木云云。不若龜山之遜避。仕不爲貧。而有時乎爲貧。龜山猶取此義。對人說了。文定則以

038_140c

段干木代龜山之說。延平意以謂此則無迫斯可見之義。不若龜山遜避之意。頃與鄭斯文惟一講此段。作此看。猶未瑩其意。所謂遜避者。龜山之出。本爲道而不自居也。文定之代云干木者。亦欲龜山寧踰垣避之而不出乎。

干木字。若果爲段干木。則依稀似有來諭之說。但去段字。只說干木。已爲可疑。況劉公所問。必是龜山所以出之故。龜山答以爲貧而仕。斯其爲遜避之言也。文定代龜山而答劉公。則亦當答所以出之故如何。可也。何故却擧段干木踰垣而避之事。爲答已出之辭乎。其義全不通。愚意干卽竿字之038_140d誤作。或省作竿木隨身。逄場作戱之義。已見上。蓋文定代龜山擧此語以答。則是自謂身有其具。不能自己而出也。自任之意太過。故延平謂不如龜山之遜避云耳。如何如何。

李先生云。橫渠說。不須看。所謂先入了費力。蓋指橫渠正蒙等語而言乎。延平之不欲以此勉初學。何意乎。

程先生亦謂橫渠說道有過處。乃在正蒙云。大抵多由苦心力索而得。故往往有安排牽强處。說得不自在。正與延平融釋脫落。灑然自得處。不相似。所以延平云云。
038_141a

呂與叔論民可使由之處。意思極好處。何謂乎。論儒佛雜學之弊。所引其說。何意乎。

呂氏本說。今不得見。不可臆度附會說。深爲歎惜。

來延平看親。看親。卽省親乎。

固爲省親。然不是謂父母。但省視親戚耳。

忘情乾慧。得所休歇。

古禪師語錄。有狂慧乾慧之說曰。佛相是解悟人。無正見。只是學解。謂之狂慧。亦非乾慧。乾慧者。悟得正見。爲無定水浸潤。旣非悟解。只認得生死。垢心却成邪。○右見於韻府者如此。未知何謂。○禪家有戒定慧之說曰。戒生定。定生慧。防非止惡曰038_141b戒。六根涉境。心不隨緣曰定。心境俱空。照覽無礙曰慧。以此觀狂慧乾慧之說。旣以無正見。只學解者。謂之狂慧。而非乾慧也。則乾慧者。悟得正見。乃定而生慧。能造其極者也。所謂無定水者。謂心未定則累於外物。如水之浸潤也。若爲此水浸潤。乃沾濡之慧。非乾慧也。今此語錄。正釋乾慧之義。當曰不爲無定水浸潤。可也。止曰爲無定水浸潤。不可曉。或云爲字上。脫一不字。恐或然也。

操戈入室

鄭玄傳。任城何休好公羊學。著公羊墨守。左氏膏肓。穀梁廢疾。玄乃發墨守。鍼膏肓。起廢疾。休嘆曰。038_141c康成入吾室。操吾戈以伐我乎。○墨守。墨翟守城之法。言公羊之學無敵於天下。如墨翟守城然也。

渠初從謙開善處

嘗見後賢說。謙開善。僧名。蓋謂朱子得禪學於此僧。故延平云。然但不記語出何書。行當尋檢出耳。於此又有所疑。以三字爲一僧名。恐無是也。若作二人則一擧一字。一擧二字。亦可疑。

可惜忘錄

奴多

。此子

近聞其爲絶世也

爲尼

。遵堯,台衡二錄見上。而不知何書也。此文字亦未曉句斷文義。

可惜忘錄。謂二書忘不謄寫。而爲八一哥取去。不得再見。爲可惜耳。此子。指八一哥。其人必從仙佛038_141d之徒。絶迹遠去。故云云。但以豫章之子。而從異敎。甚可駭異。遵堯書事實。向見性理大全羅先生名下具言之。但性理書在溪舍。而滉在山齋。未得取考。記得不分明。幸取檢則可知。台衡之義。未詳。

載瞻繐綍。何物乎。

音歲。細疏布。荀菲繐管屨註。繐衰。小功之服。四升半。綍。引柩車大索。但必以服之輕者。繐衰爲言則未詳。

逮玆退老。朱晦庵自謂乎。

探原推本。敢昧厥初。原本。指淵源所自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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