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2018. 10. 29. 15:10성리학(선비들)

󰡔한국민족문화󰡕 45, 2012. 8, 171~203쪽

1)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2)丁 海 王**

 


1. 머리말
2. 󰡔禮記󰡕 속 「大學」의 위상과 의의
3. 朱熹의 󰡔大學󰡕해석관점
4. 三綱領․八條目의 의미
1) 三綱領
2) 八條目
5. 三綱領․八條目의 성립문제
6. 맺음말

 

<국문초록>
󰡔大學󰡕의 해석에 있어서도 程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그의
理學은, 程頤가 󰡔大學󰡕의 ‘格物致知’를 ‘格物窮理’로 해석하여 ‘理’를 그 철
학체계의 중심부에 놓은 데 영향 받았기 때문이며, 이에 관한 한 朱熹는
程頤의 학설을 대폭 수용하였다. 나아가 그는 ‘格物致知’의 부분을 매우
중시하여 󰡔大學󰡕에 이에 관한 부분을 새로 보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
은 󰡔大學󰡕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가 󰡔大學󰡕을 그의 理學的 관점으로
해석했음이 분명한 증거이다. 朱熹는 程頤가 󰡔大學󰡕을 ‘大人之學’으로 보
고, ‘親民’을 ‘新民’으로 해석하는 학설을 받아들이며 이러한 토대 위에서
그의 三綱領, 八條目을 뼈대로 하는 󰡔大學󰡕의 정치철학을 구조화한다. 朱
熹의 󰡔大學󰡕觀은 원래의 󰡔大學󰡕 저자의 취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의 학문

 


* 이 논문은 2011년도 부산대학교 인문사회연구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haewang@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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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인 ‘朱子學的 理學’의 중심 역할을 한다. 즉, 朱熹의 󰡔大學󰡕觀은 그의
理學觀이 먼저 전제되어 있고, 이에 따라 성립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여
기에는 그의 󰡔大學󰡕觀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大學󰡕 해석을 계
기로 표출된 그의 理學的 철학이 어떠하냐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大學󰡕觀에 대한 대표적 비판자인 心學의 王守仁
의 󰡔大學󰡕觀 역시 心學的 전제하에서 성립된 것이라는 점에서 󰡔大學󰡕은
그 자체의 의미 못지않게 그에 대한 후대의 철학자들이 그 문헌에 대한 해
석을 계기로 哲學史를 한층 풍성하게 했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
겠다.
* 주요어: 朱熹, 理學, 󰡔大學󰡕, 三綱領, 八條目

 

1. 머리말
󰡔大學󰡕은 원래 󰡔禮記󰡕의 한 편으로서의 「大學」이었다. 󰡔禮記󰡕의 제 42
편이었던 것을 北宋代의 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내어 독자적 의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역시 北宋代 철학자
程顥와 程頤의 二程 형제에 의해서이다.1) 이에 더 나아가 南宋代의 철학
자 朱熹가 또 그것을 󰡔論語󰡕, 󰡔孟子󰡕, 󰡔中庸󰡕과 더불어 모두 네 개의 글을
‘四書’라고 부름과 동시에 거기에 자신의 견해로써 注를 붙인 이른바 󰡔四書
集注󰡕를 편찬함으로써 유교철학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朱熹는, 󰡔大學󰡕의 내용을 ‘經’과 ‘傳’으로 분류하고 經은 孔
子의 말을 曾子가 記述한 것이고, 傳은 曾子의 뜻을 그 제자가 기술한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大學󰡕은 유가철학에 있어서 그 정치철학의 방면을 요약적으로 표현한
문헌이다. 그것은 유가철학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정자의 내

 

1) 二程 형제 모두에게 그들의 ‘改正大學’이 있다. 程顥․程頤, 󰡔二程集(下)󰡕, 北京: 中華書
局, 2004, 1126~1132쪽의 󰡔禮記󰡕, 「明道先生改正大學」, 「伊川先生改正大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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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인격을 수양함이 선결문제이고 정치적 성과는 그 인격수양의 공효로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大學󰡕의 유명한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정치
적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인격수양과 사회의 정치적 측면의
밀접한 관련성을 천명하는 유가의 핵심적 정치철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후 유가정치철학의 기본축이 되었다.
󰡔大學󰡕의 정치철학을 논함에 있어, 그 중 몇 가지의 기본 술어를 추출해
기본 뼈대로 삼은 것은 전통적으로 널리 알려진 관점이다. 이 몇 가지 기본
술어란 다름 아닌 그 유명한 ‘明明德’, ‘親民’, ‘止於至善’,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11가지이다. 그런데, 여기
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통적으로 이 11가지 술어를 다시 크게 두 부류로
나누었는데, 앞의 세 가지와 뒤의 여덟 가지를 나눈 것이 그것으로, 전자의
세 가지를 이른바 ‘三綱領’으로 부르고, 뒤의 여덟 가지를 이른바 ‘八條目’
으로 부른 것이다. 이렇게 분류하고 그렇게 부른 이는 다름 아닌 南宋代의
朱熹(세칭 朱子)이다.
󰡔大學󰡕의 11가지 대표적 술어를 이런 식으로 분류하고 명칭을 붙인 이후
󰡔大學󰡕을 儒家의 정치철학의 중심으로 삼을 때 이러한 관행은 지극히 당연
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朱熹의 이러한 관점은 단지 그의 학문을 일컫는
‘朱子學’을 넘어서 ‘儒學’의 당연한 관점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당연히 朱熹 이후의 것이고, 그 이전에 이러한 것이 당연시 된 것이 아님
은 물론이다. 이러한 것은 󰡔大學󰡕 문헌 자체에서 유래한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사실상 朱熹의 철학적 전제에 따라 즉 朱子學의 관점에 따라 만들
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논문의 취지는 󰡔大學󰡕에 대한 이러한 朱子學
的 이론의 특징을 살피면서 아울러 그에 내재된 문제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2. 󰡔禮記󰡕 속 「大學」의 위상과 의의
󰡔禮記󰡕는 先秦儒家哲學에 대한 漢代의 종합판이다. 孔子가 강조한 儒家
의 ‘禮’는 사회질서임과 동시에 그 질서를 실현하고 유지하는 제도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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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나아가 보다 구체적으로 그러한 제도 속의 각종 절차와 儀式, 器物
이기도 하다. 즉, 禮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 추상적 의미와 구체적 의미
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질서로서의 禮는 유가의 가장 추상적 이념
인 仁과 義의 구체화이며, 제도로서의 禮는 그러한 이념을 현실에 실현하
기 위한 節目으로서의 프로그램이다. 이 개념은 유가의 철학적 이상에서
출발하여 그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방면을 포괄하고 있다. 그 시단을 孔子
가 열었고,2) 그것을 계승한 많은 후학들이 戰國時代에서 漢代에 이르기까
지 종합하여 문헌화시켰다. 이것이 󰡔禮記󰡕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 문헌은
戴德에 의해 그 편집이 시작되었고 그의 조카 戴聖에 의해 보다 단순화되
었는데, 이는 周나라 말기에서 秦漢代에 걸친 儒學의 백과사전의 역할을
한다.3)
󰡔禮記󰡕는 󰡔周禮󰡕, 󰡔儀禮󰡕 등과 더불어 ‘三禮’로 일컬어진다. 후자의 둘도
역시 󰡔禮記󰡕와 같은 의의를 지녔지만 철학사에 있어 상대적으로 그 철학성을
보다 더 함유한 문헌은 󰡔禮記󰡕이다. 이 철학성을 특히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바로 宋代 유학자들이 강조하여 단행본화한 「大學」 篇과 「中庸」 篇
이다. 또 후대철학자들에 의해 단행본화되어 중시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수많은 篇들에 비해 철학적 의미를 나름대로 더 지니고 있는 篇들은 「禮
運」, 「學記」, 「樂記」 등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大學」이 바로 본 논문에
서 이야기하는 바 유가의 정치철학을 개괄화한 것이다. 그렇지만 󰡔大學󰡕은
󰡔禮記󰡕 속의 「大學」일 때 가진 다른 편들과의 관계의 의미는 여전히 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즉 그것은 유가철학의 이상과 현실에 관한 유기적 관계
에 관한 것으로서 󰡔禮記󰡕의 전 내용은 비록 체계적 서술방식은 취하지 않
았지만 이러한 부분을 상당히 담고 있다.
먼저 유가철학의 이상을 말한 부분은 바로 「禮運」이다. 「禮運」은 유가철
학의 이상인 大同사회와 그 이상이 무너진 현실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형식은 비록 孔子와 그 제자의 한 사람인 言偃(즉 子游)의 대화 형식으

 

2) 孔子는 그것이 周禮를 정립한 周公 旦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철학적 의
미를 정립한 사람은 孔子이다.
3) 추차이․윈버거차이 지음, 김용섭 옮김, 󰡔유가철학의 이해󰡕, 부산: 소강, 2011, 13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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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되어 있지만, 孔子가 이상으로 여겼을 것이라 간주하는 가상의 대화로
볼 수 있다. 즉 그 내용은 孔子가 堯․舜시대의 이상으로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漢代의 儒者가 그 때까지의 유가철학의 이
상으로 그려졌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아니면 漢代 儒學者
자신들의 시대적 소망을 담은 사상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추정일 뿐이다.
「大學」은 「禮運」에서 그린 유가의 이상사회를 실현하는 방법을 요약한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禮記」 내 이 두 편의 유기성을 잘 설명할
수 있다. 「學記」는 「大學」과 더불어 배움에 관한 이론으로 짝을 이룬다.
勞思光은 이 측면에 대해 「大學」은 내재적 덕성을 강조하여 孟子 이론에
가깝고, 「學記」는 외재적 개조를 강조하여 荀子 이론에 가까운데 그런 가
운데서도 「大學」이 孟․荀 모두를 더 잘 아우르는 입장에 있다고 본다.4)
이렇게 볼 때, 「大學」은 「禮運」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배움을 통해 덕성
을 함양하고 그 공효로서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며, 「學記」와 배움
의 이론에 있어 연관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大學」이 배움으로 덕성을 함양한다면, 「中庸」은 이 덕성 함양에 대해
보다 집중적으로 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말하
게 될 「大學」의 ‘誠意’는 「中庸」의 ‘誠’과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中
庸」은 덕성 함양의 관건을 喜․怒․哀․樂 등의 감정의 조절을 통한 그 절
제와 조화에 있다고 보았는데, 「中庸」의 이 측면은 󰡔禮記󰡕의 또 다른 편인
「樂記」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樂記」 역시 「中庸」에서 말한 바와 같은 감
정의 조절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樂記」에서는 이러한 점을 음악
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동시에 이로써 孔子가 중시하여 유가철
학의 중요한 개념이 된 禮와 樂의 관계가 정립될 수 있기도 하다.
요컨대, 󰡔禮記󰡕 내에서 「大學」의 역할은 「禮運」에서 밝힌 유가철학의 이
상인 大同사회를 이루기 위한 로드맵을 밝힌 데 있다. 이를 위해 ‘배움(學)’
을 중시하였으며 그 배움의 외면적 측면은 「學記」에서 내면적 측면은 「大

 


4) 勞思光, 󰡔新編中國哲學史(2)󰡕, 桂林: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5, 34~3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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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에서 밝혔다. 이 「大學」의 근본은 「大學」의 본문에서도 밝혔듯이 ‘修身’
에 있다. 그래서 修身의 심화된 측면을 다루기 위해 「中庸」과 「樂記」가 있
다는 것이다. 따라서 「大學」은 󰡔禮記󰡕의 수많은 편 중에 상대적으로 철학
성을 더 많이 함유한 여러 편 중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여러 편 중에서도 宋代 유학자들은 왜 유독 「大學」과 「中庸」을 부각시
켜 󰡔大學󰡕, 󰡔中庸󰡕으로 단행본화 시켰는가. 그것은 이 두 편이 다른 편들
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정리된 모습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당시 사상계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道家와 佛敎의 이론적 대항마로서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宋代 유학자 중에서도 北宋代 二程 형제, 그 중 특히 程頤와 南
宋代 朱熹의 대학 관점은 철학사에서 이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사상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들은 그들 시대에 전해진 「大學」의 판
본내용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이에 수정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이들의 「大學」 해석은 사실상 「大學」 원래의 의미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철학관점에 근거한 새로운 「大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
의 철학관점이 먼저 전제되어 있고, 이 전제에 따라 그들의 「大學」 해석을
도출한 것이다. 이는 이전의 문헌을 그 시대의 새로운 관점에 따라 해석함
으로써 經典注釋史를 통해 철학사를 전개한 중국철학사가 가진 중요한 전
개방식이며 이를 통해 각 시대 각 철학자의 철학관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程頤, 朱熹의 철학관점 역시 그러하여, 그들의 「大學」 해석
을 통하여 그들의 중요한 철학관점이 드러난 것이다.

 

3. 朱熹의 󰡔大學󰡕해석관점
朱熹가 󰡔大學󰡕의 주요 범주를 三綱領, 八條目으로 분류한 근거는 󰡔大
學󰡕이라는 문헌이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분류하기
용이하게 술어화되어 있기 때문이며, 내용의 전개가 이러한 술어를 계속적
으로 설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朱熹가 이렇게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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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데에는 단순히 󰡔大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구조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朱熹 자신의 理學으로서의 철학 관점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철학 관점은 비단 󰡔大學󰡕 뿐만 아니라
儒學의 다른 문헌들인 󰡔中庸󰡕, 󰡔論語󰡕, 󰡔孟子󰡕에서 󰡔周易󰡕에 이르기까지
종횡으로, 구조적으로 적용된다. 그 중 󰡔大學󰡕은 우선 그가 보기에 儒家의
정치철학적 관점을 아주 요약적으로 구조적으로 만들어 주는 훌륭한 문헌
이었다. 󰡔大學󰡕이 유가정치철학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
大學󰡕이 성립되고 나서부터 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견해일 정도로
내용적, 형식적 측면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여기에 朱熹의 독자적 理學 관점이 부가된 것은 ‘格物’, ‘致知’를
비롯한, 그의 理學 체계에 중요하게 채용된 술어들에 있다. 이 점은 그가
󰡔大學󰡕 원문에 원래 있던 것이 나중에 빠져 버렸다고 주장하여 보충한 傳
인 ‘格物致知補傳’의 취지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실상 󰡔大學󰡕
에 대한 그의 해석 관점은 한편으로는 󰡔大學󰡕 자체가 그렇게 해석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朱熹 철학적 전제가
이미 앞 서 있고 그에 따라 그가 재구성한 󰡔大學󰡕의 구조가 그런 식으로
재편, 해석되었다고 할 수 있다.
朱熹가 󰡔大學󰡕을 보는 기본 관점은 그의 「大學章句序」에 밝혀져 있다.
여기서 그는 大學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재편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
는 「大學章句序」에서 먼저 “大學이란 책은 그것으로 옛날 大學(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을 내려 보냄으로부터 이미 仁
義禮智의 性을 부여해주지 않음이 없었지만, 그 氣質의 품부됨이 꼭 같을
수가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모두가 그 性이 지닌 바를 알고 그것
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예지를 가지고 그
性을 다할 수 있는 자가 그 사이에 나오기만 하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의 君師로 삼아 그로 하여금 그들(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性을 회복시키도록 하였다.”5)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이미 그의 理學的

 

5) 朱熹, 󰡔四書章句集注󰡕, 上海: 上海古籍出版社․安徽敎育出版社, 2001a,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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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 드러난다.
朱熹는 문헌으로서의 󰡔大學󰡕은 옛날의 고등교육기관인 ‘太學’에서 가르
치던 교재 또는 교육과정임을 말하면서, 이러한 교육적인 측면은 理學에서
말하는 바 天命之性이 仁義禮智를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지만, 역시 氣質
의 차로 인해 그 하늘이 명한 性을 모두가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에 교육의 역할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데, 곧 총명
예지를 가진 先覺的 교육자가 그렇지 못한 後覺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들
로 하여금 氣質의 차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性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글의 내용에 나오는 바의 ‘仁義禮智’ 운운함은 孟子가 말한 바이나,
朱熹는 그의 시대에 운위되던 氣質의 문제와 결부시키고, 철학사적 측면에
서 唐代 李翶로부터 이어지는 ‘復性’6)을 말함으로써 그의 理學체계의 기본
적 구도를 구축했다. 동시에 君의 다스림(治)과 師의 가르침(敎)으로 일체
화되던, 유가에서 모범으로 삼던 이상적인 정치가와 교육자의 합일자로서의
聖王을 󰡔大學󰡕이라는 정치철학의 교육모델에 관한 문헌을 통해 말하고 있
다. 말하자면 朱熹는 고대로부터 이어지던 유가적 전통에 그의 새로운 理
學的 체계를 결합하는 시도의 의의를 간단하게나마 「大學章句序」에서 밝히
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의 시대에 儒學이 처한 입장에서 그가 보는 사상계를 중심으로
한 시대적 병폐를 지적해 말하기를, “이로부터 俗儒의 記誦과 詞章을 익히
는 데 들이는 功이 小學보다 배가 되면서도 쓸모가 없었으며(無用), 異端
의 虛無와 寂滅의 가르침에서의 높기가 大學보다 더하였으나 실질이 없었
다(無實). 그 밖의 權謀術數와 그것으로써 功名을 성취하기 위한 모든 학
설 및 온갖 학파와 여러 재주꾼들의 유행으로 인해 이로써 惑世誣民하고
仁義를 막는 자들이 또 그 사이에서 어지러이 섞여 나와 그 君子들로 하여
금 불행히도 大道의 요체를 들을 수 없게 하고 그 小人으로 하여금 불행히
도 이상적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7)라고 하였는데, 이는 흔히

 

6) 馮友蘭, 󰡔中國哲學史新編(中)󰡕, 北京: 人民出版社, 1998, 696~698쪽 참조.
7) 朱熹, 앞의 책, 2001a,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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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사에서 말하는 바, 宋代의 理學이 나오게 된, 유학적 입장에서의
배경이다.
즉, 宋代 儒學者들이 보기에 先秦時代에 儒學이 창시된 이후 秦始皇에
의한 이른바 焚書坑儒의 탄압을 거쳐 漢代에 유학이 부활되었지만 그 유학
은 한편으로는 유학 이전 원시종교에 유학의 포장을 한 天人感應說의 政治
神學이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叔孫通이 말한 바 秦의 尊君抑臣하는
法家에 유학을 포장한 것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今文經學으로서의 유학이
었다.8)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古文經學으로서의 유학이 나왔지만 이
역시 유학적 진리에 대한 심층적 연구보다는 문자를 천착하는 訓詁學이 주
류를 이루었다. 唐代 역시 詞章學으로서의 유학이 시대를 횡행했다. 이것
이 위에서 “俗儒의 記誦과 詞章을 익히는 데 들이는 功이 小學보다 배가
되면서도 쓸모가 없었으며(無用)”라고 말한 것이다.
사상계에 있어서 儒學의 내부가 이러한 사이, 유학의 외부는 道家 및 이
道家를 빙자하여 민간신앙이 종교화한 道敎, 그리고 後漢 때 전래된 佛敎
가 득세했는데, 이것이 “異端의 虛無와 寂滅의 가르침에서의 높기가 大學
보다 더하였으나 실질이 없었다(無實).”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그 외에도
인의도덕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출세를 위한 처세술로서의 권모술수와 혹세
무민하는 잡술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과 술수들은 그
럴듯한 說로 청년과 지식인을 미혹시켜 진정한 진리에의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 宋代 유학자들의 생각이었으며, 朱熹의 이상의 말 속에 내포되어 있
는 취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朱熹의 󰡔大學󰡕 해석은 󰡔禮記󰡕, 「大學」의 집필
취지를 넘어서서 그의 유학자로서의 그 당대의 시대적 사명감과 소명의식
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해석이다.
그런데, 문제는 朱熹는 그의 이러한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大學󰡕의
해석에 그의 주관적 견해를 포함시켜 󰡔大學󰡕의 문장을 의도적으로 개편한
것이다. 朱熹의 󰡔大學󰡕에 대한 의도적 개입은 그의 「大學章句序」의 말미에

 

8) 정해왕, 「漢代今文易의 哲學史 속의 意義」, 󰡔人文論叢󰡕 55, 釜山大學校 人文學硏究所,
2000, 34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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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솔직하게 밝혀진다. 그는 말하기를, “宋나라의 德이 융성하여 다스림과
가르침이 아름답고 밝았다. 이에 河南의 程氏 두 선생께서 출현하셔서 孟
氏(孟子)의 전함을 접하셨으니, 실로 처음으로 이 篇을 높이고 믿어 그것을
表章하였으며, 또 이를 위해 그 簡編를 차례 짓고 그 궁극적 취지를 밝혔
다. 그런 후에 옛날 大學의 敎人之法과 聖人의 經文 및 賢人의 傳文의 취
지가 찬연히 세상에 다시 밝혀지게 되어, 비록 나[熹]의 불민함으로도 다행
히 私淑하여 전해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책의 모습은 오히려 상당히 放
失함이 있어 이 때문에 나의 고루함을 잊고 채집하여 간간히 나의 뜻을 가
만히 덧붙여 그 闕略한 부분을 보충하여 뒷날의 君子를 기다리려 한다.”9)
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바 그의 「大學章句」는 그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의 시대까지
전해진 󰡔禮記󰡕, 「大學」의 판본이, 없어진 부분이 있을 정도로 완전한 상태
가 아니어서 그 자신이 의도적으로 그가 빠졌다고 생각한 부분을 보충해
넣었다는 것이다. 즉 󰡔大學󰡕을 그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 재구성한 것으로
서 이전의 문헌 상태를 신성한 經典으로 존중하는 입장이라면, 또는 이전
의 經典을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교조적 분위기가 있었다면, 이어서 그
자신도 짐짓 겸손한 태도로 말했듯이 ‘참월하게도 그 죄를 모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이기도 하지만, 이전 聖賢의 글을 함부로
고쳤다는 교만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에 오류가 있다면 실제
斯文의 罪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朱熹의
뜻이 주류가 되어 이후 그의 뜻을 어기는 것이 오히려 斯文亂賊이 되었다.
그런데, 朱熹가 이처럼 󰡔大學󰡕을 개편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자신의 의도
만은 아님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곧 위에 말한 바 北宋代의 二程子(程顥
와 程頤)의 취지를 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宋나라의 德이 융성하여 다
스림과 가르침이 아름답고 밝았다. 이에 河南의 程氏 두 선생께서 출현하
셔서 孟氏(孟子)의 전함을 접하셨으니, (중략) 비록 나[熹]의 불민함으로도 다
행히 私淑하여 전해들을 수 있었다.”라고 하였는 바, 이에 朱熹는 그의 󰡔大學

 


9) 朱熹, 앞의 책, 2001a, 2쪽.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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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句󰡕 첫머리에 程頤의 “大學은 孔氏(孔子)의 遺書로서 처음 배우는 자가
德에 들어가는 門이다. 지금 옛사람들이 학문하는 차례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篇(󰡔禮記󰡕, 「大學篇」)이 남아있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論語
󰡕와 󰡔孟子󰡕는 그 다음 차례가 된다. 배우는 자가 반드시 이를 경유하여 배
운다면 그 오차가 없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10)라는 말을 싣고 있고,
또 程頤가 󰡔大學󰡕을 ‘大人之學’11)이라 규정한 견해를 잇고 있다.

 

4. 三綱領․八條目의 의미
朱熹는 󰡔大學󰡕의 ‘明明德’, ‘新民’, ‘止於至善’을 ‘三綱領’이라 명명하
고,12)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八條
目’이라 명명하였는데,13) 이 또한 朱熹 󰡔大學󰡕 관점의 지극히 중요한 부분
이다. 즉 그는 이러한 범주분류의 관점에서 󰡔大學󰡕을 파악하였고, 이를 그
의 理學 관점과 연계시켰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분류는 외견상 상당
히 그럴듯해 보일 정도로 󰡔大學󰡕 원문에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大學󰡕의 범주분류에 대해서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려면, 우리 朝鮮朝初
儒學者인 陽村 權近의 󰡔入學圖說󰡕에 있는 「大學之圖」라는 그림을 보면
된다.14) 이후 退溪 李滉이 儒學을 10개의 도식으로 정리한 󰡔聖學十圖󰡕의
「大學圖」15) 역시 이런 방식으로 명확히 구조화되어 있는데, 李滉은 權近

 


10) 위의 책, 4쪽.
11) 여기서의 ‘大人’을 ‘어른’이란 의미로 해석하여 󰡔大學󰡕을 어른의 학문으로서 현대적 의미
의 성인교육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신창호, 󰡔大學󰡕-유교의 지도자 교육철학, 파주:
교육과학사, 2010, 102~103쪽 참조. 그러나 理學에 있어서 ‘大人’은 󰡔周易󰡕, 「乾卦文言
傳」의 “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중
략)” 운운할 때의 ‘大人’으로서, 周惇頤의 󰡔太極圖說󰡕에는 ‘聖人’으로 되어 있는, 인격수
양의 경지가 고도에 달한 존재를 말한다.
12) 朱熹, 앞의 책, 2001a, 4쪽, “此三者, 大學之綱領也.”
13) 위의 책, 5쪽, “此八者, 大學之條目也.”
14) 權近 著, 權德周 譯, 󰡔入學圖說󰡕, 서울: 乙酉文化社, 1974, 52쪽 참조.
15) 금장태, 󰡔󰡔聖學十圖󰡕와 퇴계철학의 구조󰡕,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1, 78쪽의 「大
學圖」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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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그림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 두 그림 모두가 최상부에 ‘明明
德’, ‘新民’, ‘止於至善’(止至善)을 두어 󰡔大學󰡕의 정치철학의 가장 중심이
이 세 가지가 됨을 도시하여, 朱熹의 ‘三綱領’을 명확히 하였다. 이 두 그
림의 三綱領 중 ‘明明德’을 本이자 體로, ‘新民’을 末이자 用으로 파악하여
󰡔大學󰡕의 本末이 이 두 가지임을 명시하고, 동시에 理學의 중요한 술어인
體用으로 이 두 범주를 의미지웠다.
그리고 이 三綱領의 도식 아래 朱熹가 八條目으로 명명한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두었는데, 두 그림에서 이 八條
目을 三綱領 중 明明德과 新民의 아래에 위치시키고, 다시 八條目 중 格
物과 致知를 知로 보고, 誠意, 正心, 修身을 行으로 보며, 齊家, 治國, 平
天下는 ‘極行’(李滉의 「大學圖」에는 ‘推行’)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이 八條
目을 그 功夫와 功效의 측면으로 나누기도 했다. 三綱領 중 止至善의 아
래에는 󰡔大學󰡕 원문 중의 知止를 始로, 能得을 終으로 보아 대응시켰다.
이러한 것은, 三綱領 중에서도 세 번째 止於至善을 明明德, 新民과 다른
취지로 보고, 이 止於至善을 明明德, 新民과 그 하위 범주인 八條目의 최
종목표로 간주한 관점이다.16) 이상과 같은, 이후 학자들의 도식화 시도는
󰡔大學󰡕의 구조적 이해, 특히 朱熹가 파악한 󰡔大學󰡕의 구조적 이해를 보다
선명하게 알려 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朱熹의, 󰡔大學󰡕에
대한 구조적 이해에 따른 三綱領, 八條目의 세부 의미를 살펴보자.

 

1) 三綱領
첫째, ‘明明德’은 明德을 밝힘(明)이다. 전자의 明은 동사이며 후자의 明
은 형용사로서 德을 수식한다. 글자 그대로 하면 明德은 밝은 德으로서 德
이 이미 밝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다시 그것을 밝혀야 하는가.
이 점은 理學에서 그들의 입장에 맞춰 해석하기 좋은 표현으로 되어 있는

 

16) 李滉은 朱熹의 󰡔大學󰡕 해석을 철저히 계승하는 입장에서 陽村 權近의 「大學之圖」를 자
신의 관점에서 약간 수정하면서 權近의 󰡔大學󰡕에 대한 인식을 대체로 수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八條目에 대해서 그것을 功夫와 功效, 知와 行으로 구조화시킨 측면은
양자간의 긴밀한 연속성을 보여준다. 위의 책, 107쪽 참조.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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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朱熹는 이렇게 말한다.
明德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虛靈不昧하여, 온갖 理를 갖추
고서 萬事에 응하는 것이다. 다만 氣稟에 의해 얽매이고 人欲에 의해
가려지면 때로는 어두워진다(昏). 그러나 그 본체의 밝음(明)은 쉰 적이
없다.17)


‘德’은 󰡔禮記󰡕에 ‘得’으로 해석되었는데,18) 이것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하늘로부터 ‘얻은(得)’ 바의 존재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이를 전통적으로
‘性’이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본래 밝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인데, 이 밝은
상태가 어두워지는 경우가 있기에 그것을 다시 밝히는 작업이 있을 수 있
다는 것이다. 이 연유가 󰡔大學󰡕 자체에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朱熹는 이
것을 당시의 시대적 관점에 따라 氣稟과 人欲 때문으로 본 것이고 여기서
理學的 특징이 또 드러난다. 마침 이전 唐代 李翶의 ‘復性’의 주장이 있었
고, 이것은 佛敎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지만,19) 사실상 佛敎 유입
이전에 󰡔大學󰡕의 문장 자체에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이미 있었음을 알 수
가 있다. 朱熹의 해석문의 明은 昏과 대응되고,20) 본래 明한 德이 氣稟과
人欲에 의해 어두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의 측면은
존재의 그 본질에 속한 측면이 아니므로 ‘그 본체의 밝음은 쉰 적이 없다.’
는 것이다.

둘째, ‘新民’이다. 원래 이 ‘新民’은 ‘親民’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新民은
‘백성을 새롭게 함’이고 ‘親民’은 ‘백성을 친애함’이다. ‘親民’을 ‘新民’으로
고쳐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낸 사람은 사실은 程頤이다.21) 朱熹는 이 해석
을 적극 받아들였다. 그런데 훗날 明代의 王守仁(세칭 ‘陽明先生’)은 이를
비판하여 원래대로 ‘親民’이라 함이 옳다고 주장하였다.22) 원래의 글자를

 

17) 朱熹, 앞의 책, 2001a, 4쪽.
18) 󰡔禮記󰡕, 「樂記」, “德者, 得也.”
19) 勞思光, 󰡔新編中國哲學史(3上)󰡕, 桂林: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5, 23쪽 참조.
20) ‘昏’과 ‘明’의 대비는 李翶의 철학에서 이미 있었다. 위의 책, 23쪽 참조.
21) 程顥․程頤, 󰡔二程集(下)󰡕, 北京: 中華書局, 2004, 1129쪽.
22) 王守仁, 󰡔傳習錄(上)󰡕[󰡔王陽明全集(上)󰡕],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2, 1~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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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쳤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근거 없이 이를 고쳤다면 親民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新民으로 본 것이 근거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新民에는 백성에
대한 교화적 의미가 있다. 三綱領 중 첫 번째의 明明德이 위정자 그것도
유가철학의 근본 취지로 볼 때의 수양이 완성된 聖人으로서의 위정자의 입
장에서 볼 때, 먼저 깨달은 자가 아직 깨닫지 못한 자들을 지도하고 교화하
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나중에 전래된 불교적인 의미도 아니다. 先秦時代
󰡔孟子󰡕에 이미 ‘先覺’이 ‘後覺’을 깨우친다는 글이 있다.23) 위정자가 단순
히 위정자로서만이 아니라 백성을 계몽시키고 교육시키는 역할까지 담당함
은, 실제 역사적으로 그러했던 훌륭한 위정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별개로 두
고서도 유가철학자가 이상적으로 보는 유가적 정치 시스템이 이러해야 한
다는 것이다.

先秦의 春秋戰國時代 당시 儒家뿐만 아니라 諸子百家가 각각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당시의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학설이 있음을
볼 때도 이 점을 수긍할 수 있다.24) 즉, 상고시대에 백성이 더욱 몽매하였
을 때 지식과 정보는 국가의 위정자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면 국가의 官吏를 통해야 했다. 이러하던 것이 중앙집권세력의 통치
력의 약화로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게 되었을 때, 즉 春秋戰
國時代에 그 중앙의 관리들이 그들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민간에 흘러들어
가 가르치는 교육자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 諸子百家의 기원이고, 그
선두주자가 孔子이며 그 학파가 儒家라는 학설이 있음을 볼 때, 이들의 사
상체계는 정치와 교육의 내용을 포괄하여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
서 교육과 교화의 의미를 지닌 新民이 사상사적 정황으로 볼 때 맞을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근거는 󰡔大學󰡕이라는 문헌 자체에 있다. 즉 󰡔大學󰡕의 다음의
글이다.

 

23) 󰡔孟子󰡕의 「萬章(上)」 및 「萬章(下)」, “使先覺覺後覺.”
24) 漢代의 劉歆의 학설과 이를 기반으로 하여 수정한, 현대의 馮友蘭의 학설이 있다.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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湯王의 「盤銘」에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
로 새로워진다.”라고 하였으며, 「康誥」에는 “백성을 새롭게 함을 진작시
킨다(또는 새로워지는 백성을 진작시킨다)(作新民).”라고 하였으며, 󰡔詩󰡕
에는 “周나라는 비록 옛 나라이나 그 命은 새롭다.”라고 하였으니, 이렇
기 때문에 君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음이 없다.25)
여기서 ‘新’은 그 대상인 ‘民’을 정치적으로 또는 교육적으로 새롭게 함을
의미하고 있다. 이처럼 ‘新民’이라는 용어가 성립할 수 있는 문헌적 근거가
󰡔大學󰡕 자체에 있다. 그렇다면 ‘親民’의 ‘親’은 ‘新’과 字形의 近似함으로 인
하여 잘못 쓰여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王守仁처럼 원래 글자
를 지지하는 견해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王守仁은 이렇게
말한다.
明明德이란 천지만물과 一體가 되는 體를 세우는 것이고, 親民이란
천지만물과 一體가 되는 用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明明德은 반
드시 親民에 있게 되며, 親民은 곧 그 明德을 밝히는(明) 방법이다. 이
런 까닭으로 나의 아버지를 친애함으로써 남의 아버지에 미치고, 천하의
아버지에게 미친 후에 나의 仁함이 실제로 나의 아버지, 남의 아버지 및
천하 사람의 아버지와 일체가 되며, 실제로 그들과 일체가 된 후에 孝의
明德이 비로소 밝혀진다(明).(「大學問」)26)
그런데, 이미 말한 대로 󰡔大學󰡕에 문헌상의 근거가 있는 점은 王守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王守仁은 이에 대해서 당연히 말하지 않을 수 없
다. 그는 제자 徐愛가, 󰡔書經󰡕, 「康誥」에서 인용한 ‘作新民’을 근거로 한
朱熹의 의견에 근거가 있을 수 있음을 두고 한 질문에 이렇게 말하였다.
‘作新民’의 ‘新’은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백성(自新之民)’으로서 ‘在新
民’의 ‘新’과 다른데 이것이 어찌 근거가 되기에 충분한가? ‘作’字는 그래

 

25) 朱熹, 앞의 책, 2001a, 6쪽의 󰡔大學󰡕 원문.
26) 王守仁, 󰡔王陽明全集(下)󰡕,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2, 968~96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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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親’字와 서로 대응되지만 ‘親’字의 뜻은 아니다. 다음의 ‘治國平天下’
의 부분은 모두 ‘新’字에 대해서 밝혀내는 바가 없는데, ‘君子는 그 賢한
이를 賢하게 여기고, 그 親한 이를 親하게 여기며, 小人은 그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그 이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기니, 어린 아이를 돌보듯
하여,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것을 일러 백성의 부모라 이른다.’라고 이르는 것과 같은 예는 모
두 ‘親’字의 뜻이다. ‘親民’은 󰡔孟子󰡕의 ‘親親仁民’을 이르는 것과 같아서
親하게 함은 곧 仁하게 함이다. 百姓이 親하지 않아 舜이 설(契)로 하
여금 司徒로 삼아 삼가 다섯 가지 가르침을 펴시었으니 이렇게 하여 그
들과 親하게 되었다. 「堯典」의 ‘克明峻德’이 바로 ‘明明德’이며, ‘親九族’
에서 ‘平章協和’까지가 바로 ‘親民’이면서, ‘明明德於天下’이다. 또 孔子
께서 말씀하신 ‘修己以安百姓’의 ‘修己’가 바로 ‘明明德’이고, ‘安百姓’이
바로 ‘親民’이다. ‘親民’이라 말하면 바로 가르침과 함양을 겸한 뜻이 되
지만, ‘新民’이라 말하면 곧 한 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있다.[󰡔傳習錄(上)󰡕]27)
이처럼 王守仁은 朱熹가 ‘親民’을 ‘新民’으로 본 근거로 삼은 바의 󰡔大
學󰡕 원문의 字意를 달리 보았는데, 결국 마치 朱熹가 理學的 전제하에서 󰡔大
學󰡕을 해석하였듯이 그 역시 心學的 전제하에서 󰡔大學󰡕을 해석한 것이다.
위의 王守仁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孟子의 취지를 󰡔大學󰡕에 결부
시켜 心學的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明明德은 仁의 함양의 측면에서 천지
만물과 일체가 되는 體의 측면으로, 親民은 그것이 효과를 드러내는 用의
측면으로 보아, 이 취지에서 󰡔書經󰡕「堯典」과 󰡔論語󰡕의 위 인용들까지 해석
하였다. 요컨대 백성을 친애함은 내면의 덕성이 함양된 그 공효가 나타남이
며 그것은 心學的 측면에서 천지만물일체의 덕성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親
民은 그대로 親民이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朱熹가 ‘新民’을 말함은 결국 用
의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란 뜻이다.28)
셋째, ‘止於至善’이다. 여기서 이 ‘止於至善’은 朱熹가 ‘明明德’, ‘新民’과
함께 三綱領으로 분류하였지만, 세 가지를 병렬하여 동일한 성격으로 말할

 

27) 王守仁, 󰡔王陽明全集(上)󰡕,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2, 1~2쪽 참조.
28) 그러나 朱熹 역시 ‘明明德’을 ‘體’로 ‘新民’을 ‘用’으로 보지만, 王守仁은 朱熹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은 것이다.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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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인 權近과 李滉이 明明德을
本과 體로, 新民을 末과 用으로 파악하였듯이 明明德과 新民은 동일한 차
원의 범주이고, 止於至善은 이 둘을 지극한 상태인 ‘至善’이라는 목표에 도
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철학적 측면으로 해석한다면 논의
의 초점을 이상적 상태인 至善에 둘 법도 하건만은 󰡔大學󰡕은 오히려 그 동
사적 측면인 ‘止’에 두어 ‘止할 데를 앎(知止)’을 설명하기 위하여 󰡔詩󰡕에
쓰인 바의 ‘止’의 용례를 길게 들어 인용하였다. 그래서 심지어 새[鳥]의
‘止함’을 예로 들기도 하였다.
어쨌든 여기서 ‘止’는 ‘머묾’ 또는 ‘그침’의 의미를 가지는데, 󰡔大學󰡕에서
는 人君이 ‘仁’에 ‘止’하고, 人臣이 ‘敬’에 ‘止’하는 등의, 어떤 존재가 가장
마땅하게 처해야 하는 곳이나 상태 또는 경지 그것도 가장 이상적 경지인
‘至善’을 말하는 동사적 의미로 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지도 유가적인
측면에서 어떤 고원한 경지가 아니어서, 󰡔大學󰡕의 ‘至善’은 예를 든 것이
그러하듯 바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짐을 밝혔다.29) 朱熹의 해석도 이러한
취지로서 ‘止’를 ‘居’로 보아 “物에는 마땅히 ‘止’해야 할 곳이 있다.”30)고
하였다.

 

2) 八條目
첫째 ‘格物’과 둘째 ‘致知’이다. 朱熹의 󰡔大學󰡕 해석이 程頤의 영향을 받
은 부분의 핵심은 哲學史上 理學的 측면에서 格物致知에 관한 것이고, 이
것은 동시에 朱熹 󰡔大學󰡕 해석의 핵심이며, 그의 理學에서 󰡔大學󰡕이 역할
하는 중요한 위치이기도 하다. 朱熹는 程頤의 영향으로 그가 당시에 전해
지던 󰡔大學󰡕에서 脫文이 되었다고 추정하는 내용을 스스로 만들어 보충해
넣었다. 세칭 ‘格致補傳’이다.31) 그것은 다음과 같다.

 

29) 岑溢成, 󰡔大學義理疏解󰡕, 황갑연 옮김, 󰡔大學哲學󰡕, 서울: 서광사, 2000, 101쪽 참조.
30) 朱熹, 앞의 책, 2001a, 6쪽.
31) 이것은 앞에서 인용한, 朱熹의 “다만 그 책의 모습은 오히려 상당히 放失함이 있어 이
때문에 나의 고루함을 잊고 채집하여 간간히 나의 뜻을 가만히 덧붙여 그 闕略한 부분
을 보충하여 뒷날의 君子를 기다리려 한다.”는 말의 핵심적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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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致知가 格物에 있다.’고 한 것은 나의 知를 이루고자 함이란
物에 나아가(卽) 그 理를 궁구함(窮)에 있음을 말한다. 대개 人心의 영
묘함에는 知가 있지 않음이 없고, 천하의 物에는 理가 있지 않음이 없
으나, 오직 理에 아직 궁구함이 없으므로 그 知에 다하지(盡) 못함이 있
는 것이다. 이로써 󰡔大學󰡕에서의 첫 가르침은 반드시 배우는 이로 하여
금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理로 인하여 그것을 더욱
궁구하여 그로써 그 지극함에 이르기를 추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힘씀이 오램에 이르러서 하루아침에 툭 트이며 貫通하게 되면 衆物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침이 다 이르게 되어 내 마음의 전체 大用이 다 밝
아지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物이 格해짐(物格)’이라 이르는 것이며, 이
것을 일러 ‘知의 이름(知之至)’이라 하는 것이다.32)
이상의 내용은 그 용어상으로나 문체상으로 볼 때 실제 󰡔大學󰡕의 문장이
라 할 수는 없다. 理學家들이 󰡔易󰡕, 「說卦傳󰡕에서 가져다 쓴 ‘窮理’라는 말
처럼 이미 理學에서 쓰는 용어로 이루어져 있다.33) 그리고 대부분 程頤의
사상 취지 거의 그대로 채워져 있다. 朱熹는 󰡔大學或問󰡕에서 程頤의 학설
을 가져와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程頤의 사상을 거론할
때 주로 쓰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程頤는 󰡔大學󰡕의 논리적 순서상 맨 앞에 위치하는 ‘格物’을 통해 ‘知’를
이루어야함(致)을 강조하였는데, 그에 있어서 ‘致’는 ‘다함(盡)’이며, ‘格’은
‘이름(至)’이다. 그는 모든 物마다 반드시 그 理가 있다고 전제하였는데, 이
는 󰡔詩󰡕의 ‘有物有則’을 연계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物에 있는 理를 얻음
이 곧 그 物의 知를 얻는 것이므로 ‘格物致知’는 곧 ‘格物窮理’로 해석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格物’이 곧 ‘窮理’이다.34) 程頤의 모든 개별적 物들의
理는 이러한 理의 총화인 보편적 理의 개별적 物에서의 내재적 구현이다.
이른바 程頤의 ‘理一分殊’35)가 그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전제 속에서 개별

 

32) 朱熹, 앞의 책, 2001a, 8쪽.
33) 󰡔易󰡕, 「說卦傳」, “窮理盡性以至於命.”
34) 程顥․程頤, 앞의 책, 1197쪽, “格猶窮也, 物猶理也, 若曰窮其理云爾.”
35) 程頤가 張載의 「西銘」에 대하여 이름 붙이고 그 사상을 의미지우며 쓴 말로서 程頤 사
상의 대표성을 띤 말 중의 하나가 됨.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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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物의 理를 궁구함은 결국 그를 통해 보편적 理를 획득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이러한 보편적 理를 얻으려면 세상의 모든 개별적 物들을 궁구하
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일반화를 통해서 보편 理를 얻을 수 있을 것이
다. 다시 말해 개별적 理를 얻어 그 개별적 理에 대한 귀납적 일반화를 통
해서 보편 理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程頤의 입장이다. 그러나 궁구대상은
무한하고 궁구하는 인간주체의 능력은 유한하다. 유한한 인간주체의 궁구능
력으로 무한한 궁구대상을 궁구할 수가 없다면 근본적으로 보편적 理는 획
득 불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 程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窮理에 힘쓴다는 것은 반드시 천하의 理를 모두 궁구해야 함을 말하
는 것도 아니요, 하나의 理를 얻으면 바로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험이 많이 누적된 후에 자연히 나타나게 될 뿐이다.36)
즉, 어느 정도의 경험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귀납적 비약을 통한 일반화
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곧 ‘豁然貫通’이다. 여기서 程頤가 또 말하는 것
은, 비록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으면 되지 모든 것을 경험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하나의 理를 얻으면 바로 된다는 것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성급
한 일반화의 오류’도 경계하였다. 程頤의 이러한 학설내용을, 朱熹는 그의
󰡔大學或問󰡕에서 인용, 언급하였다.37)
이렇게 보편 理를 얻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가. 程頤가 理
를 얻고자 함은 사물에 대한 사실적 지식을 얻는 것이 궁극 목표는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주체의 理, 곧 인간주체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 인간주체가 사물에 대해서 어떻게 도덕적인 처리를 할 것인가에
있다. 이렇게 되려면 인간주체와 사물객체의 연계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

 

36) 程顥․程頤, 󰡔二程集(上)󰡕, 北京: 中華書局, 2004, 43쪽.
37) 보편과 특수의 관계는 程頤의 理一과 分殊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朱熹는 여기서 특수를
말하는 分殊에서 보편의 理一로 나아감에 비약적 豁然貫通 뿐만 아니라 특수한 사물에
서 착실히 보편으로 나아가야 할 점도 강조하였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理一보다 分殊
를 중시한 李侗의 영향이 컸다. 陳來, 󰡔朱子哲學硏究󰡕, 上海: 華東師範大學出版社,
2000, 270~27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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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에 대해 程頤는
物과 我는 하나의 理이다. 이것을 밝히면 저것을 다하게 되고, 다하
면 통하니 이것이 안과 밖을 합하는 道이다.38)
라고 말하였다.39) 朱熹는 程頤의 이런 학설 부분 역시 󰡔大學或問󰡕에서
인용하고 있다.40)
朱熹 역시 程頤처럼 하나의 사물마다 理가 있음에서 출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物은 事物을 이르는 것”41)인데, “하나의 物이 있으면 하나의 理가
있다.”42)고 하고, 나아가 “위로 無極, 太極에서 아래로 하나의 풀, 하나의
나무, 하나의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각각 理가 있다.”43)고 한다. 格物은 곧
이러한 理를 궁구하는 것 즉 窮理이다. 그래서 그는 “格物이란 事事物物의
理를 궁구하는 것이다.”44)라고 한다. 또 그에 있어서 “致知는 事事物物의
理를 아는 것이다.”45) 이러한 致知는 참된 知를 구하는 것이어서, 그는
“致知는 眞知를 구하는 방법이다. 眞知는 뼛속까지 모두 철저히 꿰뚫는 것
이다.”46)라고 한다.47)

한편, 朱熹는 ‘格物致知’의 명제에서 사람들이 格物과 致知를 별개로 알

 

38) 程顥․程頤, 󰡔二程集(下)󰡕, 北京: 中華書局, 2004, 1272쪽.
39) 丁海王, 「程頤의 理와 性에 관한 硏究」, 󰡔人文論叢󰡕 46, 釜山大學校 人文大學, 1995,
128~132쪽 참조.
40) 朱熹, 󰡔四書或問󰡕, 上海: 上海古籍出版社․安徽敎育出版社, 2001b, 21쪽 참조.
41) 黎靖德(編), 󰡔朱子語類󰡕, 北京: 中華書局, 1986, 284쪽.
42) 위의 책, 289쪽.
43) 위의 책, 295쪽.
44) 위의 책, 305쪽.
45) 위의 책, 305쪽.
46) 위의 책, 283쪽.
47) 이때 ‘格物窮理’와 ‘格物致知’라는 명제들은 ‘格物’을 매개념으로 해서 결국 논리적으로
‘窮理’와 ‘致知’의 개념이 같은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논리적 형식 속에
있는 내용은 그 측면상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에 대해 陳來는, 窮理란 외재의 객체에
대한 고찰연구를 가리키고, 致知는 주체의 지식의 확충을 가리키며, 또 窮理는 주체가
실천행위함을 가리키고, 致知는 행위가 주체 쪽에서 일으킨 결과로 파악한다. 陳來, 앞
의 책, 278쪽 참조.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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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우려하여 “致知와 格物은 하나일 뿐이다.”48)라고 하였는데, 이 표현은
心學과 비슷해 보인다. 더구나 그가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知’를
가지고 있지만 이루지 못하면 모두 ‘知’가 없는 것이지만, 다만 그 知를 推
致하지 못할 뿐이다. 物의 理를 ‘格’하여 철저한 데 이르는 것이다.”49)라
고 하거나, “致知와 格物은 단지 하나의 일일 뿐이지, 오늘 格物하고 내일
또 致知하는 것은 아니다. 格物은 理로써 말한 것이고, 致知는 心으로써
말한 것이다.”50)라고 한 것은 더더욱 心學과 비슷해 보인다. 즉 그의 ‘知’
가 王守仁이 󰡔大學󰡕의 ‘知’를 도덕주체 내면의 ‘良知’로 간주한 취지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王守仁이 陸九淵의 취지를 이어받아 理를 도덕주
체인 ‘心’에서 구한 데 대해, 朱熹는 역시 事事物物에 있는 理를 구한 것이
므로 엄연히 다르다 할 것이다.
이렇듯 󰡔大學󰡕은 ‘格物致知’를 그 출발로 하기 때문에, 程頤와 이를 이
어받은 朱熹는 그 측면에 학설상의 공을 상당히 들였다. 따라서 朱熹의 󰡔大
學󰡕에 관한 학설은 格物致知가 상당한 역할을 한다. 특히 그의 이러한 학
설은 그의 전체 理學체계 확립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이런 점에 있
어서도 그 의의가 크다.
셋째 ‘誠意’, 넷째 ‘正心’, 다섯째 ‘修身’이다. 이것은 權近과 李滉이 格物
과 致知를 ‘知’로 분류한 데 대해서 ‘行’으로 분류한 바이다. 이것은 朱熹가
“格物은 ‘知’의 시작이고, 誠意는 ‘行’의 시작이다.”51)(󰡔朱子語類󰡕 第15)라
고 한 데서도 그 朱子學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훗날 王守仁이 知를 良知
로 보아 格物致知로부터 治國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도덕주체의
도덕행위에 관한 측면으로 본 것과는 달리, 비록 朱熹의 格物致知도 도덕
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그의 경우는 그것을 객관세계로부터 시작하여 誠
意에서 비로소 도덕주체의 문제에 접어들어 도덕행위에 연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誠意를 도덕주체의 도덕의지를 본질적이고도 엄정하게 확

 

48) 黎靖德(編), 앞의 책, 290쪽.
49) 위의 책, 292쪽.
50) 위의 책, 292쪽.
51) 위의 책,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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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함의 의미로 보는 것이다.
󰡔大學󰡕에 이 부분을 도덕적 주체의 떳떳함으로서의 ‘自謙’에 바탕하여
‘愼其獨’이라 말함으로써, ‘愼獨’이라는 중요한 술어가 생기는 것도 이러한
취지이다. 朱熹의 관점으로는 우리의 心은 그 내면의 도덕의지가 굳건하지
않아 마땅히 善을 실행해야 함을 알고서도 善을 실행하지 못하고, 마땅히
惡을 제거해야 함을 알고서도 惡을 제거하지 못하거나 하면, 도덕의지가
진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自欺)이다. 이렇게
자신을 속이지 않아 도덕적 양심에 있어서 자신이 떳떳하고 만족하게 됨(自
謙)으로부터 ‘誠意’의 의미가 있게 된다.52)
‘誠意’의 문제는 心의 핵심문제이다. 이렇게 핵심문제로서의 誠意가 전제
되고서야 心을 정립하는 ‘正心’이 있게 된다. 󰡔大學󰡕의 八條目이 연쇄적 연
결고리를 가지고 설명되고 있지만 앞의 誠意는 그 단독으로 설명된다. 그
런데 正心은 그 다음 연결고리인 修身과 더불어 설명되어 ‘이른바 修身은
그 心을 바르게 함(正)이 있음’을 말함으로 시작되어 心의 문제와 身의 문
제를 밀접히 연계시키고 있다. 이렇게 正心은 朱熹가 보기에 앞으로는 誠
意를 계승하고 뒤로는 修身齊家를 연 것이다.53) 󰡔大學󰡕의 연쇄적 연결고
리가 權近과 李滉에 의해 ‘格物․致知’, ‘誠意․正心․修身’, 그리고 ‘齊
家․治國․平天下’로 분류된 것은 朱熹의 학설과 관련시켜 볼 때 나름대로
의 내적 연계성을 가진다. 그래서 이 중 誠意․正心․修身은 밀접하여 나
누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즉 朱子學的 관점에서는 이 세 가지는 모두 도
덕주체의 측면으로 일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齊家’, 일곱째 ‘治國’, 여덟째 ‘平天下’이다. 이 세 가지는 儒家의
정치철학을 요약하여 말할 때의 ‘修己治人’ 중 ‘治人’의 측면이고, 孔子의
‘修己以安百姓’54) 중 ‘安百姓’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權近과 李滉의 그림
에서 三綱領 중 ‘新民’에 대응되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도덕주체로서의 자
신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자신과 남의 관계문제를 다루게 된

 

52) 岑溢成, 앞의 책, 127쪽 참조.
53) 위의 책, 133쪽 참조.
54) 󰡔論語󰡕, 「憲問(44)」.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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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것은 자신과 남들을 그 구성원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자신
의 도덕적 역량과 역할이 다른 구성원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
이다. 곧 󰡔大學󰡕은 위정자의 도덕적 수양의 결과가 어떻게 사회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 부분에서는 사회 각 구성원의 관계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大學󰡕에서는 사회 각 구성원의 관계문제를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덕목으
로서, 孔子가 말한 바 유가철학에서 ‘忠’과 더불어 중요한 ‘恕’를 제 9장에
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恕’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제 10장의 ‘絜矩之
道’이다. 제 9장에서는 “君子는 자신에게 이[善]를 갖춘 후에야 남에게 이
를 요구하는 것이며, 자신에게 이[惡]를 없게 한 후에야 이를 비난한다. 자
신에게 간직한 바가 恕하지 못하고서도 남에게 이를 깨우칠 수 있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다.”라고 하여 恕의 도리를 말하였다.
이러한 恕에 대해 朱熹는 󰡔大學或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恕’字의 취지는 ‘如心’을 그 뜻으로 하는 것이다. 이를 대략 말한다
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듯이 남을 다스리고,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듯
이 남을 사랑하는 것이지 구차하고 고식적으로 함을 이르는 것은 아니
다. 그러나 남의 마음이란 반드시 窮理함으로써 그것을 바르게 하고 나
서 자기를 다스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근거로 하여금 모두 바른 데서 나
오게 한 후에야, 여기에 나아가 그것을 미루어 남에게 미쳐갈 수가 있으
며 恕의 道됨도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大學󰡕의 傳 중 마지
막 두 章에서 비로소 여기(恕)에 미치어 나가면 그 힘쓸 순서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55)
이렇듯 󰡔大學󰡕에서 말하는 바의 정치철학이 밖으로 드러나는 治國․平
天下의 단계에서 강조되는 ‘恕’는 정치상의 인간관계를 말하면서, 정치행위
의 주체와 객체간의 인식의 차이를 해소하는 소통의 덕목으로 작용한다. 이

 

55) 朱熹, 앞의 책, 2001b,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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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恕’는 제 10장에서 유명한 ‘絜矩之道’로서 정리된다. 이 ‘혈구지도’는 󰡔大學󰡕
에서 ‘上下’, ‘前後’, ‘左右’로 표현되는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중심적이
고 이기적인 욕망에 터전한 대인관계를 극복하고 서로 간에 입장을 바꿔
생각하여 상대편을 헤아려주는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이다. 孔子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56)고 하는 도덕명제의 󰡔大學󰡕에
서의 표현이다.

朱熹는 󰡔大學或問󰡕에서 이를 재정의하기를,
‘絜’은 헤아림이며 ‘矩’는 모난 각을 만드는 도구이다. 자기의 마음으
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서 남이 싫어하는 바가 자기와 다르지 않음을 알
면 감히 자기의 싫어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 것이며, 나의 몸으로
하여금 여기에 한 번 처하게 하면 上下와 四方과 物我의 사이가 각각
그 분수를 얻어 서로 侵越하지 않고 각각 그 중도적 위치에 나아가 그
점유한 곳을 바로잡으면 그 넓거나 좁음, 길거나 짧음이 또한 모두 하나
같이 평균화되어 자른 듯이 方正하여 남거나 부족한 곳이 없게 되니, 이
것이 이른바 ‘絜矩’라는 것이다.57)

󰡔大學󰡕 자체에서도 그렇지만, 朱熹의 입장에서도 修身․齊家 이후 治
國․平天下함에 있어서 공동체 구성원의 바른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이 ‘絜
矩之道’가 그 잣대로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위정자의 입장에서 피치자
에 대한 올바른 통치행위가 이루어지려면 바로 이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래서 朱熹는 이에 이어서 말하기를,

천하와 나라와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 마음을 두고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하나같이 이 원칙에서 나온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있어 장차 한
가지 사물이라도 제자리를 얻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천하에서 효도
하고 공경하며 배반함이 없게 하려는 사람은 모두 이를 얻어 스스로 그
마음을 다하여 ‘均한가?’ 하는 탄식이 없게 될 것이니, (이렇게 한다면)

 

56) 󰡔論語󰡕의 「顔淵(2)」 및 「衛靈公(23)」, “己所不欲, 勿施於人.”
57) 朱熹, 앞의 책, 2001b, 36쪽.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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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에 ‘平’하지 않음이 있겠는가?58)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儒家의 정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5. 三綱領․八條目의 성립문제
󰡔大學󰡕의 문제를 다룰 때, 著者나 版本의 錯簡문제와 이에 기인한 二程
과 朱熹의 자의적 개편문제를 비롯하여 위에서 말한 ‘三綱領’, ‘八條目’의
의미나 각 개념들과 문장들의 상관관계 등은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자세히
논의한 바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하려는 문제는 이 ‘三綱領’, ‘八條目’이라
는 분류 자체가 그 성립면에서 타당한가 하는 문제이다. 즉, ‘三綱領’, ‘八
條目’이 󰡔大學󰡕의 원문 그 자체를 분석해 볼 때 과연 타당한 설정인가 하
는 것이다.59)

철학사를 통해서 볼 때, 朱熹가 󰡔大學󰡕의 주요 개념범주를 ‘三綱領’, ‘八
條目’으로 분류한 이후, 儒學者들은, 특히 理學者들은 이를 금과옥조로 여
겨 당연시하였다. 이미 말한 대로 󰡔大學󰡕의 텍스트 문장 자체가 그렇게 여
기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문장의 표현을 가만히 뜯어보면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의 근거는 지극히 단순명료하다. 이제
이 점에 대해 분석하려 한다.
먼저 이른바 三綱領으로 명명된 용어는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新民), 在止於至善.”이라는 󰡔大學󰡕의 첫 문장에 기인한다. 여기서 朱熹는
그가 三綱領이라 부르는 ‘明明德’, ‘親民(新民)’, ‘止於至善’의 세 가지 유가
정치철학 범주이자 그 이념적 강령을 끌어내었다. 그런데, 󰡔大學󰡕에서는 몇
줄 건너서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
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

 


58) 위의 책, 36쪽.
59) 󰡔大學󰡕의 문제 및 朱熹의 󰡔大學󰡕觀의 문제를 비교적 상세히 논한 陳來도 朱熹가 행한
‘三綱領’, ‘八條目’이라는 분류 자체는 일단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하였다. 陳來, 앞의 책,
1995 참조.
26 / 한국민족문화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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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
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이라
는 내용의 문장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朱熹의 이른바 八條目의 근거가
된 대표적 문장이다. 여기서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는 여덟 가지의 條目이 나왔는데, 이것은 三綱領을 목표
로 하는 구체적 실천과정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덟 가지는 앞의 범주가 뒤의 범주를 끌어내는 방식으
로 계속되는 연쇄논법을 취하고 있어서, 이러한 이른바 ‘條目’들은 먼저 뒤
의 조목이 앞의 조목을 이루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전제되어야 함을 말하고,
그 다음으로는 다시 역으로 그 선결조건이 이루어지면 연쇄적으로 그 결과
가 이루어진다는 논리를 채택하고 있다. 이때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로 말해지는 조목들은 각각의 맨 앞 글자가
타동사로서 그 다음의 명사를 목적어로 취하고 있는 구조를 가진다. 선결조
건이 이루어져 그 다음 조목이 연쇄적으로 달성되는 문장에 있어서는, ‘物
格’, ‘知至’, ‘意誠’, ‘心正’, ‘身修’, ‘家齊’, ‘國治’, ‘天下平’으로 표현되어 각
각의 명사가 주어로 되어 그 다음의 동사가 자동사로서 역할하고 있다.60)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의 핵심은 八條目을 이야기하는 문장의 맨
처음은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다음의 ‘先治其國’과 연결되어 ‘治國’을 해야 ‘明明德於天下’를 할 수 있음
을 말하고 있다. 즉 ‘平天下’라는 표현 대신에 ‘明明德於天下’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역순으로 문장을 구성할 경우에는 이 부분에 대
해 ‘天下平’이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는 직접 ‘平天下’라는 표현은 쓰지 않
고 있다. 다만 나중에 ‘絜矩之道’를 말하는 부분에서 “所謂平天下, 在治其
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

 

60) ‘致知’에서 ‘致’가 타동사로 쓰이고 ‘知’가 명사로서 목적으로 쓰였는데, 이 목적어인 ‘知’
가 주어로 되면 타동사 ‘致’는 자동사 ‘至’로 되어 ‘致知’는 ‘知至’가 된다. 여기서 ‘致’는
타동사로 ‘至’는 자동사로 쓰였지만, 다른 동사는 타동사와 자동사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
을 주목해 볼 때, 古代漢語에서 다른 동사와는 다른 ‘致’, ‘至’의 어법상의 특징도 알 수
있다.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27
- 89 -

 

矩之道也.”라고 하여 직접 ‘平天下’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大學󰡕의 저
자는 ‘平天下’를 ‘明明德於天下’와 같은 취지로 쓰고 있는 셈이다. 즉 ‘古之
欲明明德於天下者’는 말하자면 ‘古之欲平天下者’와 같은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朱熹의 의도와는 달리 ‘明明德’은 ‘三綱領’에도 해당되고
‘八條目’에도 해당되는 셈이어서 三綱領 아래 八條目이 포섭되는 수직구조
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다만 明明德이란 하나의
강령이 처음부터 平天下를 전제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明明德이라는 도덕
주체의 수양을 말하는 용어가 바로 천하에 적용되는 비약이 있게 되는 것
이다. 平天下는 사실상 明明德보다는 齊家, 治國과 더불어 親民에 관련된
다고 볼 수 있다. 󰡔大學󰡕 저자의 원래 의도는 三綱領 아래에 八條目이 하
위범주로 포섭되는 수직구조를 말하려 한 것이 아니라, 朱熹가 三綱領과
八條目으로 분류한 11가지 범주가 사실은 하나의 연속선 상에 있음을 언표
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大學󰡕의 저자는 먼저 ‘明明德’의 중요성을 말하고 이러한 것이 천하
에 그 효용을 드러내는 것을 최종 이상으로 삼아 그 목표가 이루어지는 과
정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근본적 관건을
‘修身’에 두고 이 修身의 내면적 실현을 위해 ‘格物’, ‘致知’, ‘誠意’, ‘正心’
을 둔 것이다. 따라서 朱熹가 말한 ‘三綱領’, ‘八條目’은 󰡔大學󰡕 원저자의
취지와 완전히 부합하는 분류범주가 아닌 朱熹의 시대에 朱熹가 그의 철학
체계를 구조화하기 위해 마련한 그 자신의 󰡔大學󰡕 관점일 뿐이다.61)
그나마 朱熹의 취지를 이해하는 입장에 선다 해도, 󰡔大學󰡕의 원문은 朱
熹 방식의 이해를 완전히 지지하는 구조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부
인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어쨌든 朱熹의 三綱領, 八條目이라는 방식의
󰡔大學󰡕 이해가 󰡔大學󰡕의 원문자체가 완전한 근거가 되어준다는 데 의문이

 

61) 勞思光도 朱熹의 三綱領, 八條目의 분류에 타당성이 없다고 보았는데, 그는 八條目은
그래도 8단계를 대표하지만, 三綱領은 후인의 杜撰이라고 본 것이다. 그가 보기에 ‘明明
德’과 ‘親民’은 곧 ‘平天下’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勞思光 역시 三綱領이 별도로 성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八條目으로 분류되는 여덟 항목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勞思光, 󰡔新編中國哲學史(2)󰡕, 桂林: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5, 40쪽 참조.
28 / 한국민족문화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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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은 󰡔大學󰡕 저자의 서술논리가 철저
하지 못하거나, 朱熹의 󰡔大學󰡕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무리가 있거나 하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三綱領과 八條目으로 명명된 11가지의 술어는 전면적으로 수직
적이지도, 전면적으로 연속적이지도 않다. 朱熹의 이해만을 두고 이야기한
다면, 󰡔大學󰡕의 원래 취지가 어떠하든, 朱熹에게는 그의 理學체계가 먼저
전제되어 있고, 이러한 그의 전제적 관점에 따라 󰡔大學󰡕을 이해하였다는
것이며, 󰡔大學󰡕의 원래 취지가 완전히 朱熹의 취지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다.62) 즉 三綱領, 八條目은 결국 원래의 󰡔大學󰡕 이해를 위한 범주이기보
다는 朱子學的 理學의 범주라는 것이다.

 

6. 맺음말
󰡔大學󰡕은 儒學의 정치철학을 선언적으로 압축 요약하여 그 윤곽을 그린
문헌이다. 󰡔大學󰡕의 저자는 儒學의 정치철학을 몇 가지의 중요한 술어를
62) 이 점은 다른 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王守仁의 󰡔大學󰡕 이해에는 󰡔大學󰡕
저자의 원래 취지가 어떠하든 心學的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朱熹의 理學的 전제이든
王守仁의 心學的 전제이든 그러한 전제를 통한 이해가 󰡔大學󰡕의 원저자의 취지와는 다
를 수 있다 하더라도, 朱熹나 王守仁의 󰡔大學󰡕 이해가 단순한 오류라고 평가할 수는 없
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한다면 朱熹와 王守仁의 철학사적 의의는 있을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들의 이해는 그 이해 그대로 그들의 철학이다. 이는 비단 󰡔大學󰡕의 경우뿐만이
아니다. 다른 문헌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러한 문헌들에 대해 후대 철학자들이 그들 나름
대로 해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대로 의의가 있다. 그래야 哲學史가 존재할
수 있고, 哲學史 속의 哲學者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후대의 철학자들은 이전 문헌
에 대한 해석을 그들의 철학사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했을 뿐이다.[朱熹의 󰡔大學󰡕개편에 관한 문헌학적 정당성은 이전에 李世東의 논문 「朱子의 󰡔大學󰡕改本에 대
한 考察」, 󰡔中語中文學󰡕 第29輯, 嶺南中國語文學會, 1997에서 상세히 밝혀진 바 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朱熹의 󰡔大學󰡕 개편은 사실상 문헌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상사
적인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즉 문헌학적으로는 古本 󰡔大學󰡕이 그 자체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역시 철학사의 관점에서는
朱熹의 시도는 여전히 그의 사상표출의 한 형태로서 의의가 있다. 다만 본 논문에서는
여러 사람이 이미 지적하고 분석해 놓은 문제와는 별개로 ‘三綱領’과 ‘八條目’이 그 자체
로 성립될 수 있는 분류인가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朱熹의 三綱領․八條目의 의미와 문제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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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여 체계화시켰는데, 이는 儒學의 정치철학을 구조화하기에 용이한
방법이었다. 이런 연유로 南宋代의 朱熹는 󰡔大學󰡕에서 ‘明明德’, ‘親民(新
民)’, ‘止於至善’이라는 술어를 뽑아 ‘三綱領’이라 명명하고,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는 술어를 추출하여 ‘八條
目’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러한 분류와 명명은 비록 󰡔大學󰡕 자체에 그 근거
가 없지는 않다 하더라도, 상당한 정도로는 哲學史에서 ‘朱子學’이라 불리
는 朱熹 자신의 理學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朱熹의 理學은 北宋代의 선배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그는
이들의 철학사상을 종합하고 체계화하여 그의 철학체계를 만들었다. 그는
北宋代의 철학자 중에서도 程顥, 程頤 二程 형제의 사상을 많이 받아 들였
는데, 특히 程頤의 영향이 커서 程頤와 朱熹의 學을 程朱學이라고 부르기
도 한다. 朱熹는 󰡔大學󰡕의 해석에 있어서도 程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그의 理學은, 程頤가 󰡔大學󰡕의 ‘格物致知’를 ‘格物窮理’로 해석하
여 ‘理’를 그 철학체계의 중심부에 놓은 데 영향 받았기 때문이며, 이에 관
한 한 朱熹는 程頤의 학설을 대폭 수용하였다. 나아가 그는 格物致知의 부
분을 매우 중시하여 󰡔大學󰡕에 이에 관한 부분을 새로 보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 역시 󰡔大學󰡕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가 그의 理學的 관점으
로 󰡔大學󰡕을 해석했음이 분명한 증거인 것이다. 朱熹는 程頤가 󰡔大學󰡕을
‘大人之學’으로 보고, ‘親民’을 ‘新民’으로 해석하는 학설을 받아들이며 이러
한 토대 위에서 그의 三綱領, 八條目을 뼈대로 하는 󰡔大學󰡕의 정치철학을
구조화한다.
朱熹의 󰡔大學󰡕觀은 원래의 󰡔大學󰡕 저자의 취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의
학문체계인 ‘朱子學的 理學’에 중심적 역할을 한다. 즉, 사실상 朱熹의 󰡔大
學󰡕觀은 그의 理學觀이 먼저 전제되어 있고, 이에 따라 성립된 부분이 많
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의 󰡔大學󰡕觀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大學󰡕
해석을 계기로 표출된 그의 理學的 철학이 어떠하냐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大學󰡕觀에 대한 대표적 비판자인 心學의
王守仁의 󰡔大學󰡕觀 역시 心學的 전제하에서 성립된 것이라는 점에서 󰡔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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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은 그 자체의 의미 못지않게 그에 대한 후대의 철학자들이 그 문헌에
대한 해석을 계기로 哲學史를 한층 풍성하게 했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
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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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提要>
朱熹之三綱領․八條目的意味和問題
丁 海 王
朱熹接受了其以前的哲學家的思想尤其是程頤的思想接受得很多, 他在解釋󰡔大學󰡕
的時候也受到了程頤的收到得很. 因爲程頤把󰡔大學󰡕的‘格物致知’解釋到‘格物窮理’而
把‘理’放在其哲學體系中心上而朱熹收到了這樣的程頤思想, 所以朱熹在這方面上远
远承受了程頤的學說. 同时他非常看重‘格物致知’部分, 所以他也補充󰡔大學󰡕當中與
‘格物致知’有關部分. 这些, 無論󰡔大學󰡕原著者的意图如何, 都是他把󰡔大學󰡕用以他的
理學觀點解釋的明白證據. 朱熹收到了程頤的以󰡔大學󰡕爲‘大人之學’的看法和把‘親民’
解釋到‘新民’的學說, 而他把以他的三綱領․八條目爲其框架的󰡔大學󰡕的政治哲學建
築在這樣的基礎上. 朱熹的󰡔大學󰡕觀, 無論󰡔大學󰡕的原著者的宗旨如何, 給他的學問
體系其‘朱子理學’起其中心作用. 其實朱熹的󰡔大學󰡕觀多有他的理學觀先在而後其外
的部分由此成立的因素. 但是, 可見在此更重要的不是朱熹的󰡔大學󰡕觀對不對, 却是
由他的󰡔大學󰡕觀显现出的他的理學性的哲學如何. 同样地, 考慮作爲针對朱熹󰡔大學󰡕
觀的代表批评者的心學的王守仁的󰡔大學󰡕觀也是建立在其心學前提下的, 可見󰡔大學󰡕
的重要意義不但在于󰡔大學󰡕其本身的意味, 也在于因後代哲學家們的對它的解釋哲學
史更丰赡了的.
* 關鍵詞: 朱熹, 理學, 󰡔大學󰡕, 三綱領, 八條目

ㆍ논문투고일: 2012년 10월 5일 ㆍ심사완료일: 2012년 11월 12일 ㆍ게재결정일: 2012년 11월 28일

출처 : 장달수
글쓴이 : 낙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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