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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9. 15:10성리학(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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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熹의 自我觀과 生死觀*1)


박 동 인
龍仁大學校講師

 


1. 머리말
2. 도덕주체로서의 나(性)와 사유주체로서의 나(心)
3. 朱熹의 인간 심성구조의
우주론적 정당화(宇宙發生論)와 죽음관
4. 꼬리말
논문투고: 2015. 11. 30, 심사완료: 2015. 12. 11, 게재확정: 2015. 12. 22.
* 본 논문은 2015년 8월 16일에서 19일까지 中國山東省濟南市에서 열렸던 第2屆中
韓儒學交流大會에서 발표했던 글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東洋哲學 第44輯

 


【논문 요약】
본 연구의 목적은 서구의 自我觀念을 준거로 삼아 宋代理學의 집대성자인
朱熹의 自我觀과 그가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構成한 宇宙發生論및 죽음
관(死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서구
가 思惟主體로서의 理性을 自我로 규정함으로써 나 밖의 존재들을 死物化시
킨 것과는 달리, 朱子는 道德主體로서의 性과 思惟主體로서의 心을 구분함으
로써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고려했음을 목도할 수 있었다.
性을 통해서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목표를 확정하고, 心을 통해서
는 本性(性)의 純善性을 인식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工夫할 수 있
도록 한 것이었다. 그가 구성한 우주론이나 죽음관도 이러한 관점을 정당화하
고, 또 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를 통해 朱子가 획득하고자 했던 것
은 다름 아닌 宇宙自然의 本原인 太極의 原理가 個體는 물론이거니와 社會ㆍ
國家에도 작동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른바 봉건적 도덕윤리인 삼강
오륜을 통해 사회ㆍ국가적 질서를 구축하여 잃어버린 中原을 회복하고 나라
를 부강하게 하며 민생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주요어: 朱熹, 自我, 道德主體로서의 性, 思惟主體로서의 心, 宇宙發生論,
죽음관

 

 

1. 머리말
지금은 근대적 주체라는 의미로서의 나(我=自我=주체=정체성)1)에 대해 무
관심하지만2), 전통사회에서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전통사회의 대
표적인 철학에서는 적어도 ‘인간이 어떤 존재’라는 규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그 규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인간은 어디에서 왔
는가’ 라는 소위 인간 존재의 근원(우주론)을 설정했고, 또 이 ‘인간의 존재규
정’을 강화시키기 위해 ‘죽고 나서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라는 죽음 이후의
상태를 설정했다. 그래야 그들이 설정한 ‘인간 존재규정’이 설득력 있고 권위
있게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는 동양의 유학이나 불교는 물
론이고 서양의 희랍철학이나 기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본 논문에
서는 주희의 인간존재 규정(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중심으로 그것을 정당화시
키기 위해 설정한 우주론과 그것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설정한 死後의 문제
를 연결시켜 다루고자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라는 물음인데, 이것은
‘자아(나=주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自我’라는 개념은 사실 다양한 의미로 정의되는 개념이지만3) 적어도 서양

 


1) 나(我)를 自我ㆍ주체ㆍ정체성과 동격의 것으로 본 이유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이들
개념이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나’는 ‘자아’와 동
의어라 보는데, ‘자아는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과 행위의 주체이며, 체험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고, 또 작용ㆍ반응ㆍ체험ㆍ사고ㆍ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
의 통일체’라 보고 있다. 한편 주체는 ‘실재하는 객관에 대립하는 의식하는 주관’이
라 정의하고 있고, 정체성은 ‘변화하지 아니하는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 규정했
다. 상호 대동소이한 함의를 지닌 것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들 개념들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국립국어연구원 엮음, 표준국어대사전(서
울: (주)두산동아, 1999), 5129, 2646, 2561쪽 참조.)
2) 후설의 현상학에서나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자아는 무시되거나 배경으로 밀려났고,
마르크스철학에서도 자아는 미래의 과제로 밀려났다.(申午鉉, 자아의 철학(서울: 문
학과지성사, 1987), 82-83쪽 참조.)
3)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인데, 이것은 이드(id)
와 초자아와 함께 성격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주로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양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국립국어 연구원 엮음, 앞의 책, 5129
쪽 참조.)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자아를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

 

 

철학의 큰 줄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理性’과 등치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희랍의 플라톤의 경우, 우주의 제작자인 데미우르고스(dēmiourgos)가
인간을 만들 때 그 육체는 그가 일차적으로 만든 신화적 신들로 하여금 만들
게 했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바로 그 인간되게 하는 실체’인 영혼만은 그가
직접 이데아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이 영혼(머리에 위치한 것)은 곧 이성
과 같은 개념인데, 희랍인들은 이것을 영원불변하는 실체로 규정했다.4) 그러
면서 이성은 선을 인식할 수 있고, 또 깊이 따져 생각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반대상황들 속에서 경중을 따져 그것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러한

 


하는 그의 신체ㆍ성격ㆍ능력에 대한 지각을 비롯하여 그의 가정ㆍ친구 등에 이르기
까지 모든 지각대상을 그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전체”라고 정의했다.(李鍾昇, 自
我槪念의 變化에 관한 實驗硏究(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0), 6쪽
재인용.) P. F. Secord와 C. W. Backman은 “각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과 인
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자아 또는 자아개념이라 한다”고 하면서 자아 개념은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평가하느냐에 대한 자신의 지각과 자기에 대한 자기 자
신의 평가를 사회규범이나 타인이 기대하는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지각이다”
라고 정의한다.(李鍾昇, 앞의 논문, 6과 9쪽 재인용.) 이들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 혹은 ‘그 자신의 것’이라는 의식과 연결된 것으로 자아를 보고 있다. 그리고 P.
F. Secord와 C. W. Backman의 경우 자아는 생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李
鍾昇은 자아를 성장하는 과정에서 접촉하게 되는 인물들과 중요한 경험의 결과로 학
습되어진 것으로 보았다.(李鍾昇, 앞의 논문, 12쪽 참조.) 그러나 본 논문에서 사용하
는 자아라는 용어는 영원불변하는 실체요, 또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실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4) 플라톤(Plato) 지음, J. Burnet 編, 박종현ㆍ김영균 공동 역주, 티마이오스(원서:
Timaios)(서울: 서광사, 2000), 82-131쪽 참조(원서: 29d~47e).(데미우르고스는 이 영
혼을 인간의 머리와 가슴 및 배에 각각 배치했다. 그리고 머리에 있는 영혼은 영원히
존재하는, 즉 영원불변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가슴에 있는 영혼은 이 머리에 있는 영
혼과 같아지고자 하는 ‘같음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게 하며, 배에 있는 영혼은 그것
과 달라지고자 하는 ‘다름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게끔 했다. 이 중 머리에 있는 영혼
이 곧 이성(nous)이고, 가슴에 있는 영혼이 기개(thymos)이며 배에 있는 영혼이 욕망
(epithymia)이다. 그리고 인간이 죽게 되면 가슴과 배에 있는 영혼은 육체와 함께 사
라지지만 머리에 있는 영혼만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보았다.(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에
대해 알 수 있는 에르의 신화는 플라톤의 국가론 권10장에 있다. 즉 플라톤(Platon)
지음, 이병길 번역, 국가론下(서울: 박영문고, 2001), 161-199쪽 참조.) 따라서 인간
으로 하여금 바로 그 인간되게 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 달리 말하면 인간의 자아
혹은 주체는 곧 이성이라 볼 수 있다.)

 

 

선택을 통해 자기의사를 결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영혼은 자기 스스로를 자기로 체험하는 그 모든 것의 총체로서 죽어도 사라
지지 않는 영원한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5)
이러한 관점은 문예부흥이라는 기치를 들고 등장한 근세철학의 자아개념으
로 부활하여 강화되었는데6), 이른바 데카르트(Descartes, René)의 사유하는 주
체로서의 이성이 그것이다.7) 데카르트는 확고부동한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하
면서 의심하고 또 의심해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현재 자신이 무엇인가를 의
심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우리
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이다. 이렇게하여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의 이성은 ‘나로 하여금
바로 나 되게 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사실 데카르트에게 있어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여 정
립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곧 실체로 여겨진다. 실체란 다른 어떠한

 


5) 프리도 릭켄(Friedo Ricken) 지음, 김성진 옮김, 고대 그리스 철학(원전:
Philosophie der Antike)(서울: 서광사, 2000), 157과 160쪽 참조.(이에 비해 기개는
권력ㆍ우월함ㆍ인정받음 등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그것이 판단력에 의해 해소
될 수 있는 한에서 이성에 동참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며 지식이 개
입하지도 않는다. 단지 속견만이 작용할 뿐이다. 한편 욕망은 이성과 무관한 본능적
충동으로 영양섭취와 종종번식과 관련된다.(프리도 릭켄 지음, 앞의 책, 159-160쪽
참조.))
6) 申午鉉교수는 서양 근대를 역사의 혁명기라 부르면서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혁명을 사고하는 자아의 혁명이라고 부르고,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Nicolaus)에서
뉴튼(Sir Isaac Newton)에 이르는 혁명을 조작하는 자아의 혁명이라 부르며, 루터
(Luther, Martin)에서 칼뱅(Calbin)에 이르는 혁명을 신앙하는 자아의 혁명으로 불렸
다.(申午鉉, 앞의 책, 81-82쪽 참조.) 그 정도로 자아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로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7) 물론 ‘주체’라는 개념의 그리스어 휘포케이메논(hypokeimenon)은 라틴어로 수비엑툼
(Subiectum)으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subject로 번역되었는데 그 의미는 ‘아래에 놓
다’ 혹은 ‘근저에 놓인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은 원래 술어들의 근저에 놓인
논리적 주어와 속성들의 담지자, 혹은 속성들의 바탕에 놓인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
러나 이것이 근대에 오면서 ‘생각의 근저에 놓인 것’, ‘사유활동의 바탕에 놓인 것’으
로 전이되어 근대의 주체는 의식의 주체, 즉 모든 생각과 인식의 바탕에 놓인 것으로
이해되었다.(김상봉, 나(自我) (우리사상연구소 엮음, 우리말 철학사전1(서울: 지식
산업사, 2001), 235쪽 注3 참조.)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데, 스피노자(Spinoza,
Baruch)가 “자기 속에 있으면서 자기를 통해 파악되는 것”(quad in se est &
per se concipur)8)이라 한 것이 그 의미이다. 그런데 김상봉 교수에 따르면,
‘내가 나를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의식함으로 나의 나됨을 정립한다
는 것은 내가 존재의 측면에서나 인식의 측면에서나 자립적이라는 것을 의미
한다.’9) 그러므로 이성은 독립성과 자립성을 특징으로 하는 실체인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생각은 칸트(Kant, Immanuel)를 거쳐 헤겔(Hegel, Georg
Wilhelm Friedrich)에 이르게 되면 ‘主體가 곧 神’이라 규정하는 데에 까지 나
아간다. 진정코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여기 혹은 저 곳에 존재하는
세계나 그 속에 포함된 객관사물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사유하는 나의 이성
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나 사물은 모두 내가 사유를 통해 인식
할 때만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에게 있어 이성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신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그러한가 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볼 때 우리는 우리
앞에 세계와 객관 사물이 있고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
이다. 또 데카르트에게 있어 육체는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는데, ‘과연 그
렇게 볼 수 있는가’ 라는 반성으로 감성과 실존을 각각 인간의 본질적 특성
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 등의 철학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하
튼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서양철학에서의 인간의 본질=주체=자아는 이성이었
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인식과 사유주체인 이성을 영원불변하는 실체요,
주체 및 자아로 설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동양, 그 중에서도 특히
유학의 재해석자로 여겨지는 南宋代의 주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 논제이다. 분명 이 양자 사이
에는 같은 점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측면도 존재할 것이다.

 


8) 김상봉, 앞의 책, 262쪽 재인용.
9) 김상봉, 앞의 책, 263쪽 참조.

 

 

2. 도덕주체로서의 나(性)와 사유주체로서의 나(心)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양에서의 인간의 본질(=자아)은 사유주체인 이성이
었다. 그럼 동양, 그 중에서도 특히 신유학의 종합자인 주희에게서 인간의 본
질은 무엇인가? 서양처럼 사유주체를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규정하였을까?
아니면 다른 방식을 선택하였을까? 그 대답은 후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
희는 도덕주체인 性과 사유주체인 心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10)

① 性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받은 理이다.11)

② 性은 곧 天理이니, 不善함이 있지 않다.12)

③ 대체로 주재하고 운용하는 것은 곧 마음이고, 性은 곧 이렇게 할 수
있는 理이다. 性은 반드시 마음 안에 있지만, [性을] 주재하고 운용하
는 것은 도리어 마음에 달려있다.13)

 

10) 현재까지 국내에는 성리학의 자아를 규정한 논문이 두 편 정도 있는데,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동희는 그것이 ‘도덕적 행위론과 일체화되어 있다’고 한 점으로 보아 ‘性’
을 자아로 본 것 같다.(이동희, 유가사상에 있어서 ‘자아’와 ‘개인’의 문제 (유교문
화연구 제15집,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0), 17쪽 참조.) 한편 신태수의 경
우 ‘理의 발출을 지켜보는 인식주체’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보아 ‘心’을 자아로 본
것 같다.(신태수, 退溪讀書法에 있어서 自我와 宇宙의 관계 (한민족어문학 제62
집, 한민족어문학회, 2012), 25쪽 참조.) 그러나 주자의 성리학은 이 우주만물을 理(=
道)와 氣(=器)로 나누고 이것을 그대로 심성론에도 적용하기 때문에 ‘나’ 혹은 ‘자아’
를 ‘性卽理’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우주만물의 이치요 본원인 太極, 혹은 理가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性)은 물론이고 ‘氣之精爽’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
질의 산물인 ‘心’도 동시에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둘을 결합하여 자아를
‘도덕주체로서의 나’와 ‘사유주체로서의 나’로 규정한다.

11) 孟子集註 告子章句上3, “性者, 人之所得於天之理也.”
12) 孟子集註 告子章句上2, “性卽天理, 未有不善者也.”
13) 朱子語類 5:62, “… 蓋主宰運用底便是心, 性便是會恁地做底理. 性則一定在這裏, 到
主宰運用卻在心. …”(여기에서 사용하는 텍스트는 다음 책을 사용했다. 즉 黎靖德編, 朱子語類(1-8)(北京: 中華書局, 1986). 앞으로의 인용은 冊名과 卷數및 卷數중의
글의 순서만 표시한다. 그리고 주자어류 번역은 다음 책을 기본으로 삼아 필요에
따라 필자가 수정한 것이다. 즉 [朱憙著], 黎靖德編, 이주행 [등] 옮김, 朱子語類

 

 

④ 마음이란 사람의 지각이며, 몸의 주인이 되며 만물에 응한다.”14)


⑤ 마음이라는 기관은 지극히 신령하여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고 다가올
일들을 [유추하여] 안다.15)

이상의 인용문은 朱子가 性과 心에 대해 언급한 대표적인 구절인데, ①과
②는 인간의 도덕주체로서의 性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다. 주자는
인간의 주된 본질을 性으로 규정하면서 그것의 존재론적 근거를 ①에서 표현
한 것처럼 ‘理’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의 ‘理’는 곧 ‘天理’인데, 그가 “性이란
사람이 태어나면서 품수받은 天理이다”16)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②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주자는 이 天理를 품수받은 인간의 본성(性)이 善하
다고 보고 있다.17) 이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본성의 준거인 천리, 곧 太極18)이
도덕적 가치(善)를 가진 것임을 표명하는 것이다.19) 태극이 善하지 않다면 그

 

(1-13卷)(서울: 소나무, 2001).)
14) 朱熹集 卷66-4(3436) 大禹謨, “心者, 人之知覺, 主於身而應事物者也.”(여기서 사
용하는 텍스트는 다음 책을 사용했다. 즉 郭齊ㆍ尹波點校, 朱熹集(成都: 四川敎育
出版社, 1996). 앞으로의 인용은 冊名과 卷數및 卷數중의 글의 순서와 쪽수만 표시
한다. 예컨대 본문에서 인용했듯이 朱熹集 卷66-4(3436)의 형식을 취한다.)(분문의
인용문과 유사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즉 “지각되는 것은 마음의 理이고, 지각할 수
있는 것은 氣의 신령함이다.”(朱子語類 5:27, “所覺者, 心之理也; 能覺者, 氣之靈
也.) 여기서의 ‘氣의 신령함’이라는 의미는 ‘마음의 신령함’을 지적하는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15) 朱子語類 5:29, “心官至靈, 藏往知來.”
16) 孟子集註 告子章句上1, “性者, 人生所稟之天理也.”(주자의 이러한 관점은 다음
구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성이란 곧 하늘의 리(天理)이다. 만물은 그것을
품수 받았으니, 하나의 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다.”(朱子語類 5:88, “性者, 卽天理也,
萬物稟而受之, 無一理之不具.”) 여기서 표현하고 있지만 천리를 품수 받은 것은 인간
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다 그렇다.)
17) “性은 곧 理이다. 마땅히 그러해야 할 이치는 善하지 않은 것이 있지 않다.”(朱子語
類 4:49, “性卽理也. 當然之理, 無有不善者.”)
18) 주자에게서 太極은 理혹은 天理와 같은 개념으로 여겨진다.(朱子語類 1:1, “太極
只是天地萬物之理.”; 朱子語類 1:4, “太極只是一箇“理”字.”)
19) 주자는 다음과 같이 우주만물의 본원인 太極을 道德化하여 至善한 도리로 보고 있다.
즉 “태극은 지극히 훌륭하고 지극히 선한 도리이다. … 이것은 천지간의 사람과 사물

 

 

것을 그대로 품수받은 인간의 본성도 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자의
이러한 이론구조는 존재와 당위를 일치시키는 사고법이다. 주자가 인성의 근
거로 인식한 태극 혹은 천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의 존재론적 근거요
본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도덕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20)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의 본성(性)을
우주자연의 원리나 법칙과 연결함으로써 그것의 純善性을 확보하기 위해서이
다. 주자가 다음에서 살펴볼 마음(心)을 인식주체와 실천주체로 인정했지만,
그것을 본체로 규정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21) 마음은 理와 氣가 결합
한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기질의 차이 때문에 純善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
비해 性은 천리로부터 품부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온전히 善하기 때문
이다. 여하튼 주자는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본성(性)의 純善性을 우주자연적으
로 정당화시켜 소위 仁ㆍ義ㆍ禮ㆍ智혹은 三綱五倫으로 대표되는 유가의 윤
리도덕을 어떤 상황이나 조건 속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절대규범으로 확정시
킨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자에게서 마음(心)은 ‘性’과 마찬가지로 중요
한 개념으로 여겨진다. 아니 性보다 현실적으로는 더 중요한 개념으로 여겨지
기도 한다. 위 인용문의 ③-⑤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마음은 만물을
인식하거나 사유하는 주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③과 ④에

 


의 온갖 선한 것과 지극히 훌륭한 것의 표준이 되는 덕이다.”(朱子語類 94:21, “太
極只是箇極好至善底道理. … 是天地人物萬善至好底表德.”)
20) 徐遠和는 주자에게서의 태극의 성격을 네 가지로 나누어 ‘천지만물의 본원, 형이상의
도로서 초감각ㆍ초시공의 절대정신, 인의예지를 종합한 이름이며 윤리도덕의 준칙,
사물의 준칙으로 자연계의 규율’이라 말했다.(徐遠和지음, 손흥철 옮김, 정ㆍ주 철
학의 뿌리를 찾아서(原題: 洛學源流)(고양: 동과서, 2000), 452-454쪽 참조.)
21) 徐遠和에 따르면, ‘주자가 마음을 인식과 실천의 주체라고 인정하였지만, 끝내 마음
을 本體로 끌어올리지 않은 이유는 윤리학설을 건립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性을 주축으로 삼아 그것을 천리와 등치시켜 그것을 윤리도덕이라는 名敎로 변화시
킨 것이다.’(徐遠和, 앞의 책, 474와 478쪽 참조.) 북경대학교에서 출판한 중국철학
사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이들은 “程朱가 말하는 ‘理’는 도덕의 기본적
인 원칙이나 표준이며, 실제로 程朱는 봉건시대의 도덕표준을 절대화ㆍ영구화하여,
그것을 우주의 근본이요, 모든 사물의 근원으로 보았다”고 주장했다.(北京大學哲學系
中國哲學敎硏室, 中國哲學史(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2), 359쪽 참조.)

 

 

서 마음의 성격으로 언급된 主宰나 運用및 知覺이라는 개념이나 ⑤에서 풀
어쓴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고 다가올 일들을 [유추하여] 안다’는 것이 곧 인
간의 마음의 그러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漢語大詞典22)
에서 主宰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그것은 어떤 일을 ‘主管’하고 ‘統治’하거나
‘지배적 위치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주관’이나 ‘통
치’는 어떤 일을 책임지고 맡아 관리하거나 관장하는 것을 뜻한다. 즉 인식이
나 사유주체인 나의 마음(心)이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運用’이라는 개념의 경우 ‘사물의 특성에 따라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풀고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어떤 사물의 특성이 무엇임을 인식하
여 그 기능에 맞게 활용하고 응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知覺의 경우 ‘知
道’ㆍ‘覺察’ㆍ‘領會’ㆍ‘感覺’으로 풀고 있는데, 각각 미미한 차이는 있지만23)
어떤 대상을 알고 이해하는 마음의 인식능력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⑤
에서 말하는 기억하고 유추하여 아는 능력도 당연히 마음의 인식과 사유기능
에서 말미암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 이제 문제는 주자가 ‘왜 자아를 도덕주체인 性과 사유주체인 心으로
구별해서 설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도
덕주체로서의 性을 통해 인간이 도덕적 존재임을 우주자연의 원리나 법칙(太
極=理=天理)으로 정당화했으면 된 것이지, 굳이 ‘마음(心)을 性과 구별해서 사
유주체로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
는 주자처럼 이렇게 性과 心이라는 이중주체를 상정하게 되면 ‘인간으로 하여
금 참으로 그 인간되게 하는 주체(=자아=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구심
을 자아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체의 분열은, 곧 우리로 하여금 어떤 주
체를 중시하고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
나 주자가 이런 이론구조를 구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이 理와 氣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22) 羅竹風主編, 漢語大詞典編輯委員會, 漢語大詞典編纂處編纂, 漢語大詞典(上海: 漢
語大詞典出版社, 1990).
23) ‘知道’는 ‘알다, 이해하다’는 의미이고, ‘覺察’은 ‘일의 기미를 눈치 채는 것’이며, ‘領
會’는 ‘깨달아 이해함’이고, ‘感覺’은 말 그대로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감각하는 것이
다.

 

 

사람이 태어난 이유는 理와 氣가 합해졌기 때문이다. 천리는 본래 넓고
끝이 없으나 氣가 아니면 비록 理가 있다고 해도 머물 곳이 없다.24)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에 반드시 이 理를 품수 받은 이후에 본성(性)이
있게 되며, 반드시 이 氣를 품수 받은 이후에 형체(形: 육체)가 있게 된
다.25)


즉 사람이 태어난 이유도, 사물이 존재하게 되는 이유도 모두 理와 氣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주
자의 경우 理가 아무리 온전하고 至善한 것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氣와 결합
하지 않으면 그것이 가진 특성을 발현할 길이 없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을 역으로 달리 말하면 주자가 온갖 범죄와 욕망이 들끓는 인간의 현실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26) 이런 상태에서 이제 중요한 것
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조건을 명시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
을 찾는 것이다. 주자가 찾은 것은 주재하고 지각하며 인식하고 사유하는 특
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마음(心)이었다. 마음의 인식하고 사유하는 영명한
기능을 잘만 이용한다면, 그가 규정한 이상적인 상태인 인간 본성(性)의 純善
性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태생적인 기질의 혼탁함을 극복하고 聖人과 賢
人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사회ㆍ국가의 질서를 구축할 수도 있기 때문이
다.27) 주자가 위 인용문 ③에서 “性은 반드시 마음 안에 있지만, [性을] 주재
하고 운용하는 것은 도리어 마음에 달려있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4) 朱子語類 4:41, “人之所以生, 理與氣合而已. 天理固浩浩不窮, 然非是氣, 則雖有是理
而無所湊泊.”
25) 朱熹集 58-7(2947) 答黄道夫, “人物之生, 必稟此理, 然後有性; 必稟此氣, 然後有形.”
26) 구스모토 마사쓰구는 주자가 理와 氣를 뒤섞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즉 “첫째는 理가 지극히 높으면서 치우침이 없으므로 이런 의미에서의 절
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며, 둘째는 이 세상의 차별상을 간과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구스모토 마사쓰구 지음, 김병화ㆍ이혜경 옮김, 송명유학사상사(원전: 宋明
時代儒學思想の硏究)(서울: 예문서원, 2005), 276쪽 참조.)
27) 주자는 “성인의 공부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 理를 궁구하고, [바로 그] 理에 순응함
으로써 [외부] 사물에 대응한다”(朱熹集 67-22(3541) 觀心說, “聖人之學, 本心以
窮理, 而順理以應物.”)고 보고 있다.

 

 

주자가 비록 “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道이고, 사물(만물)을 낳는 근본이다.
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그릇이고 사물을 낳은 도구이다”28)라고 말하여 간접적
으로 理로부터 품부된 性이 氣로부터 품부된 心보다 더 존귀함29)을 표명했다
고 해도, 마음을 등한시 할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30) 이렇게하여 주자
에게서 도덕주체로서의 본성(性)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고, 사유주체로
서의 마음(心)은 그 목표를 인식하여 공부를 통해 그것을 향해 전진할 수 있
는 힘과 수단이 된 것이다. 주자가 “마음은 性에 근거하여 情을 일으킨다 …
마음은 공부하는 곳이다”31)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
이다. 마음이 性이라는 기준(=준거)에 입각해서 감정(情)을 일으킬 수 있다면,
喜ㆍ怒ㆍ哀ㆍ樂등의 감정들이 모두 도리에 맞게 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중
용에서 이러한 상태를 中和라고 불렀다.32)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
유하는 특성을 지닌 마음의 영명한 기능을 통한 공부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가 없다.

 


28) 朱熹集 58-7(2947) 答黄道夫,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
下之器也.”(주자가 氣보다 理를 근본으로 보는 사고는 다음처럼 일반적이다. 즉 “이
理가 있으면, 곧 이 氣가 있다. 그러나 理가 근본이다.”(朱子語類 1:9 “有是理便有
是氣, 但理是本.”); “氣가 모이는 곳이면 理가 곧 그 속에 있다. 그러나 理가 종국적
으로 주인이 된다.”(朱熹集 49-11(2365) 答王子合11, “氣之所聚, 理卽在焉, 然理
終爲主.”)
29) 주자는 “性은 太極과 같고, 마음은 陰陽의 氣와 같다”(朱子語類 5:43, “性猶太極也,
心猶陰陽也.”)고 하여 이 둘의 층차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0) 주자는 “마음은 온갖 理를 갖추고 있다. 능히 마음을 보존한 뒤에야 理를 궁구할 수
있다”(朱子語類 9:44, “一心具萬理. 能存心, 而後可以窮理.”)고 했고, 또 “마음은 온
갖 理를 포함하고 있고, 온갖 理가 하나의 마음에 갖춰져 있다. 마음을 보존할 수 없
으면 理를 궁구할 수 없다”(朱子語類 9:45, “心包萬理, 萬理具於一心. 不能存得心,
不能窮得理.”)고 했으며, “마음을 떠나서는 성을 알 수 없다”(朱子語類 5:88, “舍心
無以見性.”)고 하여 마음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마음이 성과 정을 통괄한
다”(心統性情)고 하여 마음의 주재성을 오히려 강조한 부분도 있다. 한편 性이나 理
및 太極은 그 자체로 동작할 수 없는 것(無造作)이기 때문에 만약 사유주체인 마음
(心)이 없다면 그것을 인간의 사회ㆍ국가 현실에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朱子語類 1:13, “蓋氣則能凝結造作, 理卻無情意, 無計度, 無造作.”) 주자가 “理는
마음이 없으면 붙어 있을 곳이 없다”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31) 朱子語類 5:75, “心者, 主乎性而行乎情. … 心是做工夫處.”
32) 中庸集註 1장, “喜怒哀樂未發則謂之中, 發而皆中節則謂之和.”

 

 

주자는 이렇게 인간이 현실적으로 理와 氣로 구성되었음을 인정하고, 그것
을 토대로 현실적 대안을 찾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本然之性(=天地
之性=天命之性)과 氣質之性을 구분한 것이나 道心과 人心을 구분한 것도 그
의 이러한 관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천지의 性을 논하는 것은 오로지 理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요, 기질의
성을 논하는 것은 理와 氣를 뒤섞어서 말한 것이다.33)

어떤 사람이 “人心과 道心의 차이”를 물었다. 그러자 주자가 대답했다.
“단지 이 하나의 마음일 뿐인데, 지각이 귀와 눈의 욕망을 좇아가면 곧 인
심이요, 지각이 의리를 좇아가면 곧 도심이다.34)

즉 인간이 지향해야 할 본래(本然之性과 道心) 상태를 명시하는 동시에 인
간이 직면한 현실(氣質之性과 人心)도 동시에 고려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야
인간이 공부(수양)를 통해 도달해야 할 목표도 알 수 있고, 인간이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道心의 요구에 따
름으로써 人欲을 막고 天理를 보존(存天理, 去人欲)하여 궁극적으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조금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공자의 경지를
목표로 끊임없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이다.35) 여하튼 주자는 이러한 인

 

33) 朱熹集 56-53(2871) 答鄭子上14, “論天地之性, 則専指理言; 論氣質之性, 則以理
與氣雜而言之.”(이 구절과 동일한 구절이 주자어류 4:46에도 그대로 있는데, 바로
이 구절 다음에는 “아직 기가 있지 않을 때에도 이미 이 性은 있었다. 氣는 있지 않
을 때도 있지만, 性은 도리어 항상 있다. 비록 그것이 비로소 氣가운데에 있게 되어
도, 그러나 氣는 스스로 氣이고 性은 스스로 性이니, 또한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
未有此氣, 已有此性. 氣有不存, 而性卻常在. 雖其方在氣中, 然氣自是氣, 性自是性, 亦
不相夾雜.)라고 말하여 性을 氣와 구분하고 있다. 한편 주자어류 4:43에서는 기질
의 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여 그것을 돌이켜 천지의 성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기질에 어둡고 탁한 것이 있게 되면 막혀 버린다. 그러므로 ‘기질의 성을
군자는 성으로 여기지 않는다. 배워서 돌이키면 천지의 성이 보존될 것이다.’”(只被
氣質有昏濁, 則隔了,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學以反之, 則天地之性存矣.))
34) 朱子語類 78:189, “或問‘人心ㆍ道心之別.’ 曰: ‘只是這一箇心, 知覺從耳目之欲上去,
便是人心; 知覺從義理上去, 便是道心.’”
35) 어류 103:46 … “自始學至成德, 若未至‘從心所欲, 不踰矩’ㆍ‘從容中道’時, 皆要克.”

 

 

간의 心性의 구도를 보다 분명하게 정당화시키기 위해 우주발생론을 구축하
게 된다. 원시유학과는 달리 송대 성리학은 노장과 불교의 영향을 받아 인간
심성의 존재론적 근거를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이다.36)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인간이 그 본성(性)에 따라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
는 삶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죽음 이후에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3. 朱熹의 인간 심성구조의 우주론적 정당화(宇宙發生論)와 죽음관


주자가 周敦頤의 太極圖說을 받아들여 해설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재구성
한 그의 우주발생론은 그의 심성론의 이론구조를 보다 분명하게 논증하는 역
할을 하였다. 인간 본성의 존재론적 근거를 우주자연의 궁극적 본원인 太極에
서 말미암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점은 그가 程頤의 주장을 수용한 “性
이 곧 理”(性卽理)라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理’가 모든 理의 총합인
太極과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性)도 결국 우주자연의 太極에
다름 아니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자가 周敦頤의 태극도
설을 해설한 太極圖說解를 통해 태극을 어떻게 인간의 본성까지 연결하는
지를 주의해서 지켜보아야 한다. 그것이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는 보이지
않는 주자식의 우주발생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주자가 이
太極圖說解를 통해 마음(心)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
래야 현실적으로 육체를 가지고 사는 인간이 그 육체의 욕망(人欲)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의 존재론적 위상을 확보함
으로써 그것을 통해 육체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 인용문은 주돈이의 太極圖說과 그에 대한 주자의 太極圖說解
이다.

 


36) 이동희, 앞의 논문, 6-7, 21쪽 참조.(이동희는 불교는 인간존재와 이 우주의 존재를
존재론적으로 분석하게 하는 시각을 제공했다고 보았다.(이동희, 앞의 논문, 7쪽 참
조.))

 

 

①무극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낳고(生), 움직임이 지극
해지면 고요하게 되며, 고요하면 음을 낳는다. 고요함이 지극하면 다시 움
직이니,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 음으로 나뉘
고 양으로 나뉘어 兩儀가 세워진다. 양이 변화하고 음이 합하여 [오행인]
水ㆍ火ㆍ木ㆍ金ㆍ土를 낳는다. 다섯 가지 氣가 순리에 따라 골고루 펼쳐져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인] 四時가 운행된다. 五行은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
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이 생성되자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가진다.] 무극의 진실함과 음양ㆍ오행의 정수가 오묘하게 결합하여
응취되자 하늘의 도는 남성을 이루고, 땅의 도는 여성을 이룬다. [음양의]
두 氣가 교접하고 감응하여 만물을 변화시켜 낳으니(化生), 만물이 낳고 낳
아서 변화가 무궁하다.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남을 얻어서 가장 영명하니,
형체가 생겨나서 정신이 지각을 일으키면 다섯 가지 성품이 감응하고 움직
여 선과 악이 나뉘고 온갖 일들이 나온다.37)

 

②ⓐ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실제로는 조화의 중심축이
고, 만물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고 말했으니, 태극
밖에 다시 무극이 있는 것이 아니다. 태극이 움직이고 고요함을 가지고 있
는 것은 천명이 유행하는 것이다. … 태극이란 본연의 오묘함이고, 움직임
과 고요함이란 [태극이] 타는 기틀이다. 태극은 형이상의 道이고 음양은 형
이하의 器이다.… 태극이 있으면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하여 양의가
나누어진다. 음양이 있으면 한 번 운동하고 한 번 따라서 오행이 구비된다.
… 음양이 되는 근거의 경우에는 또 어디에서건 태극의 본래 모습이 아님
이 없다. … 그러나 무극의 오묘함은 또한 한 사물 가운데 각각 갖추어지
지 않은 적이 없다. … ⓑ태극이 되는 근거는 또 애초에 아무런 소리나 냄

 


37) 周敦頤撰, 周子全書(上) 卷1, 太極圖說,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
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
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
生生, 而變化無窮焉.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
出矣.”(周敦頤撰, 周子全書(上ㆍ下)(臺北: 臺灣商務印書館, 1968.)(본 원전과 다음
원전, 즉 周敦頤의 太極圖說과 朱熹의 太極圖說解의 번역은 다음 책을 기본으로
하여 필요에 따라 필자가 수정한 것이다. 즉 주희 지음, 곽신환ㆍ윤원현ㆍ추기연 옮
김, 태극해의(서울: 소명, 2009.))

 

 

새도 말할 수 없으니, 이는 性의 본체가 그러한 것이다. 세상에 어찌 성을
벗어난 사물이 있겠는가! 그러나 오행의 생성에 그 氣와 質에 따라 품수한
것이 같지 않으니, 이른바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가진다”라는 것이다.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가지면 혼연한 태극의 완전한 본체가 한 사물 가운데 각각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니 성이 있지 않은 곳이 없음을 또한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성을 벗어난 사물이 없고, 성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 성이 그
주체가 되지만 음양ㆍ오행이 종횡으로 얽히고, 또 각각 부류대로 응취하여
형체를 이룬다. … 이것이 사람과 사물이 처음에 氣化하여 생겨나는 것이
다. 기가 모여 형체를 이루면, 형체가 교접하고 기가 감응하여 마침내 形化
하며 사람과 사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다. … 종합해서 말하면 만물
의 통체는 하나의 태극이며, 나누어서 말하면 하나의 사물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구비하고 있다. …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태극의 도를 갖지 않
음이 없다. ⓒ그러나 음양ㆍ오행의 氣와 質이 교접하여 운행할 때 사람이
받은 것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었으므로 그 마음이 가장 영명하여 성의 온
전함을 잃지 않으니, 이른바 천지의 마음이고 사람의 표준이다. ⓓ그러나
형체가 음에서 생기고 정신이 양에서 일어나면 오사의 성이 외부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고 양의 선과 음의 악이 또 부류대로 나뉘어져 서로 다른
오성이 온갖 일들로 흩어진다. …38)

 


38) 周敦頤撰, 周子全書(上) 卷1, 太極圖說解, “上天之載, 無聲無臭, 而實造化之樞紐,
品彙之根柢也. 故曰: 無極而太極. 非太極之外, 復有無極也. 太極之有動靜, 是天命之
流行也. … 蓋太極者, 本然之妙也; 動靜者, 所乘之機也. 太極, 形而上之道也; 陰陽, 形
而下之器也. … 有太極, 則一動一靜而兩儀分; 有陰陽, 則一變一合而五行具. … 至其所
以爲陰陽者, 則又無適而非太極之本然也. … 而無極之妙, 亦未嘗不各具於一物之中也.
蓋五行異質, 四時異氣, 而皆不能外乎陰陽; 陰陽異位, 動靜異時, 而皆不能離乎太極. 至
於所以爲太極者, 又初無聲臭之可言, 是性之本體然也. 天下豈有性外之物哉! 然五行之
生, 隨其氣質而所稟不同, 所謂各一其性也. 各一其性, 則渾然太極之全體, 無不各具於
一物之中, 而性之無所不在, 又可見矣. 夫天下無性外之物, 而性無不在. … 蓋性爲之主,
而陰陽五行爲之經緯錯綜, 又各以類凝聚而成形焉. … 是人物之始, 以氣化而生者也. 氣
聚成形, 則形交氣感, 遂以形化, 而人物生生, 變化無窮矣. …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
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 所謂天下無性外之物, 而性無不在者, 於此尤可以見
其全矣. … 蓋人物之生, 莫不有太極之道焉. 然陰陽五行, 氣質交運, 而人之所稟獨得其
秀, 故其心爲最靈, 而有以不失其性之全, 所謂天地之心, 而人之極也. 然形生於陰, 神發
於陽, 五常之性, 感物而動, 而陽善 陰惡, 又以類分, 而五性之殊, 散爲萬事. …”

 

 

위의 ①은 주돈이의 태극도설인데, 이것은 주역의 영향을 받아 구성한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39) 陳來에 따르면 그 기본사상의 경우도 주역 계사
전의 “易에 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兩儀를 낳는다”(易有太極, 是生兩儀)는 구
절의 영향을 받아, 太極을 최고 범주로 삼았다. 그리하여 太極→陰陽→五行→
萬物이라는 순서로 우주발생 순서를 규정했다. 그런데 주돈이는 우주의 원초
적 실체인 太極을 漢ㆍ唐이래의 전통에 따라 아직 분화되지 않은 元氣로 보
았다. 그리고 ‘無極’을 渾沌으로 보았는데, 도설에서 ‘無極而太極’이라 했으니,
태극은 곧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혼돈된 상태의 원시물질(未分化的混沌的元始
物質)로 본래 無形ㆍ無限의 특성을 가진 것이 된다.40) 이렇게 되면 형태도 한
계도 없는 미분화의 元氣가 어느 날 갑자기 움직여 음양-오행-만물로 분화된
것이 된다. 아마도 陰陽二氣가 가진 動靜하는 부단한 운동성 때문에 그러한
분화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존재로 하여금 바로 그 존재되게 하는 원리나 법칙
없이 어떻게 단순한 물질이 스스로 분화하여 생명을 산출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을 의식한 주자는 주돈이의 이러한 우주발
생론의 체계를 자신의 이론구조에 맞게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가
장 큰 개조는 태극을 氣가 아니라 理로 규정한 것이다. 그가 ‘無極而太極’이
라 할 때의 ‘極’자를 풀면서 “‘極’은 이 理의 지극함을 명명한 것이다”41)라고
한 것이 그 예이다. 이렇게 태극을 理로 풀면 우주만물이 정신과 물질, 원리
ㆍ법칙과 그것을 실현하는 물질적 재료,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형상과
질료라는 이원론을 갖게 된다. 주자가 理氣二元論을 주장하는 것도 주돈이의
氣一元論이 가진 위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고자 했기 때
문이다. 주자의 太極圖說解는 전적으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위 인용문 ②를 살펴보면 우주발생의 기본구조는 주자가
설명을 보다 자세하고도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위에서 살펴본 주
돈이의 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자가 바꾼 것은 그 도설의 의미를 다르게
39) 陳來著, 宋明理學(沈陽: 遼寧敎育出版社出版, 1992), 48쪽 참조.(陳來는 太極圖說
의 원래 이름이 太極圖易說이었다는 점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40) 이상의 太極圖說 설명은 陳來著, 앞의 책, 48-49쪽 참조.
41) 朱熹集 36-11(1579), “‘極’是名此理之至極.”

 

 

해석한 것이다. 우선 ②-ⓐ에서 주자는 주돈이처럼 太極을 우주만물의 본원으
로 보고 있다. 그가 그것을 ‘조화의 중심축이고, 만물의 뿌리’라고 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주돈이와는 달리 주자는 태극을 元氣가 아니라 형이상의 道
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動靜과 陰陽같은 氣와 구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氣가 움직이거나 정지하는 경우 그것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하는
형이상의 원리(理)가 그것의 배면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주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②-ⓑ에서 어렴
풋이 확인 할 수 있듯이 그는 태극을 ‘性’과 연결시키고 있다. 소리도 냄새도
없는 태극의 성격을 ‘性의 본체’가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라 풀고 있는 것이
다. 즉 태극과 성을 등치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性
없는 사물은 없다’고 하면서, 性을 갖고 있는 각 사물은 결국 우주자연의 본
원인 ‘태극의 완전한 본체’를 그 자신 속에 온전히 갖추고(내재) 있다고 주장
한다. 그가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태극의 도를 갖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 그럼 왜 주자는 우주자연의 본원인 태극(統體一太
極)을 인간은 물론이고 사물까지도 하나씩 다 갖추고 있다(各具一太極)고 보
는 것인가?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善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즉 도덕주체로서의 인간
본성(性)의 純善性을 우주자연의 이법을 통해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논리의 이면에는 저 보잘 것 없는 미물조차도 자신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순선한 본성에 따라 사는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우는 인간이 그렇게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도덕적 비난을 정
당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덕주체의 존재론적 위상을 提高
하는 동시에 잘못에 대해서는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라면 마땅히 도덕적 행동을 해야 함을 주지시키고
자 하는 것이다.
한편 주자는 이 뿐만 아니라 ②-ⓒ를 통해 현실적으로 인간 자신이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온전히 지키고, 또 그것을 사회ㆍ국가 공동체에서 실천
할 수 있는 사유와 실천의 주체인 마음(心)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 점은 주돈
이의 태극도설에 없었던 부분인데, 주자가 이것을 덧붙인 것은 음양과 오행
이 결합될 때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더 빼어난 것을 얻은 마음의 기능을 통
해, ②-ⓓ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이 외부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

일 때 자칫 악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하기때문이다. 또 이
마음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혼탁한 기질을 극복
하고 유가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聖人과 賢人)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주자가 위 인용문과 이어지는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은 禽獸의 상태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42) 이상과 같이
볼 때 우리는 주자가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해석하면서 인간의 도덕주체로
서의 性과 사유주체로서의 心모두의 정당성을 우주론적으로 확보하고자 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죽음 이후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주
자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주자가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
는 이유는 그가 설정한 대로 ‘인간이 도덕적 존재로서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
한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러면서 강력하게 윤리도덕을 지키게 함으로써 인간 사회ㆍ국가질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간접적으로는 그가 心보다 性을 더 주된
주체로 설정한 이유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 예문이 그 대표
적인 주자의 생각이다.

① 氣가 모이면 태어나고, 氣가 흩어지면 죽는다.43)


② 대체로 陽魂은 神이라 하고, 陰魄은 鬼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 말한 것이다. 음양이 합해지면 魄이 응결하고 魂이 모여
서 태어나게 되고, 음양이 나누어지면 魂은 [하늘로] 올라가 神이 되
고, 魄은 [땅으로] 내려가 鬼가 된다.44)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주자의 太極圖說解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태

 


42) 周敦頤撰, 周子全書(上) 卷1, 太極圖說解, “自非聖人全體太極有以定之, 則欲動情
勝,利害相攻,人極不立,而違禽獸不遠矣.”
43) 朱子語類 3:17, “氣聚則生, 氣散則死.”
44) 中庸或問上, “蓋陽魂爲神, 陰魄爲鬼, 是以其在人也. 陰陽合, 則魂凝魄聚而有生. 陰
陽判, 則魂升爲神, 魄降爲鬼.”(朱熹撰, 四書或問(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1), 74
쪽 참조. 앞으로의 인용 방식은 책명과 면수 및 원문만 표시함.)

 

 

극, 즉 理와 음양ㆍ오행의 기질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주자가 대학혹문에서
“사람과 물이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이 理를 얻은 후에 健順ㆍ仁義禮智의 性
을 이루고, 반드시 이 氣를 얻은 후에 魂魄ㆍ五臟ㆍ百骸의 몸을 이루게 된
다”45)고 한 것이 이를 가장 잘 설명한 부분이다. 그러면 태어나는 것은 그렇
다고 치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위 인용문 ①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은 그
를 구성하고 있던 氣가 흩어지면 죽게 된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인용문 ②인데, 일단 인간은 음양이 합해지면 혼백이 모여서 태어나게
되지만, 죽게 되면 그를 구성하고 있던 혼백이 흩어져 비교적 가볍고 맑은 氣
에 속하는 魂은 하늘로 올라가 神이 되고, 상대적으로 탁하고 무거운 氣에 속
하는 魄은 땅으로 내려가 鬼가 된다. 주자가 다른 곳에서 “氣가 모이면 사람
이 되고, 흩어지면 鬼神이 된다”46)고 한 것이나, “精과 氣가 모이면 사람이
되고, 흩어지면 鬼가 된다”47)고 말한 것이 이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된다.
주자는 이러한 현상을 “사람이 막 죽으려 할 때 뜨거운 기가 위로 나오니, 이
른바 ‘혼이 올라간다’고 하는 것이다. 아래로는 몸이 점점 차가워지니, 이른바
‘백이 내려간다’고 하는 것이다”48)라고 말하여 일상적 경험으로 예를 들어 설
명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 말은 인간의 정신에 해당하는 魂도, 인간의 몸에
속하는 魄도 죽으면 모두 하늘과 땅으로 흩어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49)

 


45) 大學或問上(3),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
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46) 朱子語類 3:52, “氣聚則爲人, 散則爲鬼.”
47) 朱子語類 3:19, “曰: ‘精氣凝則爲人, 散則爲鬼.’”
48) 朱子語類 3:19, “人將死時, 熱氣上出, 所謂魂升也; 下體漸冷, 所謂魄降也.”(주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즉 “따뜻한 氣는 魂이고, 차가운 氣는 魄이다.”(朱子語類 3:25,
“煖氣便是魂, 冷氣便是魄.”))
49) 佛光大辭典에 따르면 魂은 정신(=마음)이고 魄은 육체이다.(心身之異名. 魂者心
識,有靈用而無形者. 魄者有形體而為心識之依處者.)(星雲大師監修, 慈怡主編, 佛光
大辭典(北京: 書目文獻出版社, 1993). 또 禮記 郊特牲의 “魂氣歸於天,形魄歸於
地” 부분의 註에서도 “魂者神也,陽也,氣也. 魄者精也,陰也,形也”이라 보고 있다.
한편 漢語大詞典에서는 “인체를 벗어나 독립하여 존재하는 정신”으로 보고 있다.
(古人想像中一種能脫離人體而獨立存在的精神. 附體則人生,離體則人死.) 그러나 주자
의 설명법에 따르면 魂은 정신이고 魄은 육체라 할 수 있다. 또 주자 자신도 “사람의
경우에는 마음이 바로 神이니, 이른바 ‘형체가 생기면, 神이 발동하여 지각한다’(周敦
頤, 太極圖說)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朱子語類 3:24, “在人則心便是, 所謂‘形旣

 

 

그런데 문제는 죽으면 혼백이 흩어져 하늘과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
한다고 하더라도, ‘그 흩어진 혼백은 결국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
다. 이것은 유학에서 강조하는 제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라 해결하지 않으
면 안 되는 것이었다. 만약 인간이 죽으면 혼백이 모두 흩어져 버린다면 굳이
제사를 지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일단 죽게
되면 애초에 氣로 구성된 혼백(정신과 육체)은 그렇다 치고 ‘인간으로 하여금
바로 그 인간되게 하는 도덕주체로서의 性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여
전히 남는다. 주자에게서 性은 곧 우주자연의 궁극적 본원인 太極과 같은 것
이니 태극으로 복귀하여 태극과 하나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氣와 마찬가지
로 ‘죽으면 이것도 흩어져 버리는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것조
차도 흩어져 버린다면 현대 유물론처럼 인간은 죽으면 끝인 것이 되어버린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힘들게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소위 말하는 부귀ㆍ권세ㆍ명예라는 세속적 탐욕에 입
각해서 떵떵거리며 살면 되는 것이다. 주자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
는가?

이 중 우선 사후 魂魄(鬼神)의 존재 문제부터 살펴보면, 이에 대한 주자의
관점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주자가 그것에 대해 같은 대화 장면에서도 ‘곧
장 흩어져 없어진다’고 하기도 하고, 또 ‘계속 존재한다’50)고 말하기도 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 누차 ‘귀신에 대한 일은 이차적인 것
이니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고 우선 일상의 긴요하고 절실한 것을 공부하
라’고 말하여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지적했다.51) 그래서 그런지 귀
신은 단지 펴지고 움츠러드는 자연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음과 양이 줄어
들고 늘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말하여 그것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5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은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보았다.
生矣, 神發知矣’, 是也.”)라고 하여 ‘神’을 마음(心=精神)이라 보았다.

 


50) 朱子語類 3:57, “問: ‘人之死也, 不知魂魄便散否?’ 曰: ‘固是散.’ … 便使其無子孫其
氣亦未嘗亡也.”
51) 朱子語類 3:1, “因說鬼神, 曰: ‘鬼神事自是第二著. 那箇無形影, 是難理會底, 未消去
理會, 且就日用緊切處做工夫. …’”
52) 朱子語類 3:5, “神, 伸也; 鬼, 屈也. 如風雨雷電初發時, 神也; 及至風止雨過, 雷住電
息, 則鬼也.”; 朱子語類 3:6, “鬼神不過陰陽消長而已.”

 

 

즉 제자가 “세간에 귀신을 본 사람이 매우 많은데,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묻자, “세간에 귀신을 본 사람이 매우 많은데, 어찌 없다
고 할 수 있겠는가!”53)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귀신을
세 종류로 구분하여 말하기도 했다. 첫째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달이 뜨며 밤과 낮이 되는 것으로 이것은 ‘바르고 공평한 귀신’이다. 둘째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바르지 않고 사악하고 어두운 귀신’
이다. 셋째는 ‘기도하여 부르면 응하고 복을 구하면 얻게 하는 귀신’이 그것
이다.54) 이 셋 중 우리가 다루는 주제와 관련된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인데,
이것은 제사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고, 또 인간의 사후 문제와 연결되어 중요
하게 여겨진다.
주자는 일단 사람이 죽으면 빨리 흩어지는가, 아니면 늦게 흩어지는가 하
는 차이55)는 있지만 결국 그 혼백, 즉 귀신은 흩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가
“죽으면 氣가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정상이다”56)라고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주자는 이러한 현상은 성인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막론하
고 모두 그렇다고 보았다.57) 그러나 현실적으로 만약 ‘죽으면 그 사람을 구성
하고 있던 혼백이 이렇게 모두 사라진다면 굳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필요
가 없지 않느냐’ 하는 문제와 ‘실제로 보았다고 보고되고 있는 각종 요괴 등
의 기괴한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제자들이 끊임없이 제기했던 문제인데, 주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① 사람이 죽게 되면 결국에는 다 흩어진다. 그러나 또한 곧 바로 다 흩
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제사 지낼 때 ‘감응하여 오는’ 이치가 있다.
세대가 먼 선조는 그 氣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사를

 


53) 朱子語類 3:19, “… 又問: ‘世之見鬼神者甚多, 不審有無如何?’ 曰: ‘世間人見者極多,
豈可謂無.”
54) 朱子語類 3:11, “雨風露雷, 日月晝夜, 此鬼神之跡也, 此是白日公平正直之鬼神. 若所
謂‘有嘯於梁, 觸於胸’, 此則所謂不正邪暗, 或有或無, 或去或來, 或聚或散者. 又有所謂
禱之而應, 祈之而獲, 此亦所謂鬼神, 同一理也.”
55) 朱子語類 3:20, “… 人鬼之氣則消散而無餘矣. 其消散亦有久速之異.”
56) 朱子語類 3:41, “死而氣散, 泯然無跡者, 是其常.”
57) 朱子語類 3:20, “… 用之問: ‘遊魂爲變, 聖愚皆一否?’ 曰: ‘然.’”

 

 

지내는 사람이 그의 자손이라면, 결국 같은 氣이기 때문에, 감응하여
통하는 이치가 있다.58)

② 예를 들어 백유가 악귀가 된 것에 대해 이천 선생은 ‘또 다른 이치이
다’라고 하셨다. 대개 그 사람의 氣가 아직 다할 때가 아닌데, 비명횡
사하게 되면 혼백이 갈 곳이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59)

③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죽어서도 그 기가 흩어지지
않기 때문에 요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흉하게 죽은 사람
이나 승려와 도사들은 죽었는데도 대부분 [그 氣가] 흩어지지 않는다.
승려와 도사는 精과 神을 기르는 데 힘쓰기 때문에 [氣가] 뭉쳐서 흩
어지지 않는 것이다.60)

위 ①은 우리가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구절
인데, 사람은 죽자마자 그 氣가 곧바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흩어지
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면 감응하게 된다는 것
이다. 그러나 주자는 여기서 약간 흐릿하게 우리와의 거리가 먼 선조들에 대
해 ‘그 氣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하여 제사 지내는 일정한 기간을
한정하는 듯한 표현을 쓰면서도, 여전히 또 祭主가 그의 자손이라면 氣가 같
기 때문에 감응하는 이치가 있다고도 말했다. 아마도 이것은 일반 백성들이
제사지내는 기간인 4대 奉祀의 경우61)와 성인이나 왕조의 始祖등 대대로 드
리는 제사를 동시에 설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특별히 한
가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자손이 있을 경우 그가 그 선조와 같은

 


58) 朱子語類 3:19, “然人死雖終歸於散, 然亦未便散盡, 故祭祀有感格之理. 先祖世次遠
者, 氣之有無不可知. 然奉祭祀者旣是他子孫, 必竟只是一氣, 所以有感通之理.”
59) 朱子語類 3:19, “… 如伯有爲厲, 伊川謂別是一理. 蓋其人氣未當盡而强死, 魂魄無所
歸, 自是如此.”(이와 유사한 구절이 본문과 같은 부분의 뒤에 실려 있다. 즉 朱子語
類 3:19, “至如伯有爲厲, 伊川謂別是一般道理. 蓋其人氣未當盡而强死, 自是能爲厲.
子産爲之立後, 使有所歸, 遂不爲厲, 亦可謂知鬼神之情狀矣.”)
60) 朱子語類 3:20, “人有不伏其死者, 所以旣死而此氣不散, 爲妖爲怪. 如人之凶死, 及僧
道旣死, 多不散. <僧道務養精神, 所以凝聚不散.>”
61) 주자가 “돌아가신지 아직 오래 되지 않은 조상이라면 감응하기 쉬운 것 같다”(朱子
語類 3:51, “然祖考卻去人未久, 求之似易.”)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의미이다.

 

 

 

氣, 즉 同氣이기 때문에 선조의 혼백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유학
에서 자식을 중시하는 사고의 단초를 읽어 낼 수 있다. 즉 유학에서 자식은
자신의 생명을 영구적으로 존속시키는 한 방편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주
자는 “결국 자손은 조상의 氣이다. 조상의 氣가 비록 흩어졌다고 해도 그 뿌
리는 자손에게 있다”62)라고 말했던 것이다.
한편 ②와 ③의 경우는 요괴 등 氣가 흩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인데, 억울하게 죽어 비명횡사한 사람의 경우와 생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히려 평소에 精과 神을 기른 사람들이 대표적이다.63)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정상적인 경우라 볼 수 없다. 주자가 “성현의 경우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니, 어찌 흩어지지 않고 괴이한 귀신이 되겠는가? 黃帝ㆍ堯
ㆍ舜같은 분들이 죽은 뒤에 괴이한 혼령이 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64)고
한 말에서 이에 대한 주자의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주자는 다
소 느리기는 하지만 죽은 자의 혼백, 혹은 기는 결국은 흩어진다고 보고 있
다. 그가 “그래도 오래되면 흩어지지 않을 수 없다. … 氣는 오래되면 반드시
흩어진다”65)고 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럼 死後의 혼백의 경우는 그렇다 치고, 이제 마지막으로 ‘사람으로 하여
금 바로 그 사람되게 하는 도덕주체로서의 性은 어떻게 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주자의 생각을 들여다 보자. 사실 주자는 죽음 이후(死後)의 性에 대해
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단지 몇몇 부분에서 간단하게 언급할 뿐이다.
예컨대 “그 氣가 이미 흩어졌더라도 이 천지ㆍ음양의 理는 낳고 또 낳아 끊
이지 않는다”66)라고 한 언급이나 “理와 같은 것은 다만 氣에 머물 뿐, 애초에

 


62) 朱子語類 3:57, “畢竟子孫是祖先之氣. 他氣雖散, 他根卻在這裏.”(이 밖에도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다. 즉 朱子語類 5:56, “子孫這身在此, 祖宗之氣便在此, 他是有箇血
脈貫通.”; 朱子語類 3:54, “我之氣卽祖先之氣, 亦只是一箇氣, 所以才感必應.”)
63) 이 밖에도 다음과 같은 예들도 있다. 즉 朱子語類 3:40, “問: ‘有人死而氣不散者,
何也?’ 曰: ‘他是不伏死. 如自刑自害者, 皆是未伏死, 又更聚得這精神.’”; 朱子語類
3:43, “… 然亦多是不得其死, 故强氣未散.”
64) 朱子語類 3:20, “若聖賢則安於死, 豈有不散而爲神怪者乎! 如黃帝堯舜, 不聞其旣死
而爲靈怪也. …”(다음 예도 동일한 의미이다. 즉 朱子語類 3:40, “安於死者便自無,
何曾見堯舜做鬼來!”)
65) 朱子語類 3:43 “… 要之, 久之亦不會不散. … 氣久必散. …”(다음 예도 동일한 의미
이다. 즉 朱子語類 3:45, “… 然不得其死者, 久之亦散.”)

 

응결하여 사물이 되고 性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 곧 理이다. 氣에는 모이고 흩어짐이 있으나 理의 경우는 모
이고 흩어지는 것으로 말할 수 없다”67)라고 한 부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
한 부분을 통해서는 죽음 이후의 性의 상태에 대해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다.
단지 천지와 음양으로 하여금 그것이 그렇게 생성되게 하고 작동하게 하는
이치(理=性)는 사후에도 계속 지속된다는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예문의 “理의 경우는 모이고 흩어지는 것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 말도
간접적으로 理(=性)의 연속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애초에
모이고 흩어지는 성향 자체가 없었으니 모이고 흩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68)
그러나 이상과는 달리 다음의 예는 주자의 死後性의 상태에 대한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천지의 성이 곧 나의 성이라면 어찌 죽자마자 갑자기 없어지는
이치가 있겠는가? 이 설 또한 아직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설을 만든 자가 천지를 위주로 삼은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주로 삼은 것
인지를 알 수 없다. 만약 천지를 위주로 삼았다면 이 性이 곧 본래 천지
사이의 하나의 公共의 道理여서 다시는 사람과 사물, 저것과 이것 사이나
죽고 사는 것과 옛날과 지금의 구별이 없다. 비록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고 말할지라도 내가 사사롭게 얻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나를 위
주로 삼는다면, 단지 자기 몸에서 하나의 정신혼백, 지각이 있는 것으로 인
식하여 곧 이러한 조목들이 자기의 性이라 여겨서 [그것을] 꽉 붙잡고 희롱
하면서 죽음에 이르러서도 놓지 못한다. [이것을]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私意가 심한 것으로 오히려 어찌 그와 더불어 생

 


66) 朱子語類 3:52, “… 其氣雖已散, 這箇天地陰陽之理生生而不窮. …”
67) 朱子語類 3:19, “… 若理, 則只泊在氣上, 初不是凝結自爲一物. 但人分上所合當然者
便是理, 不可以聚散言也. …”
68) 사실 두 번째 예문의 “理와 같은 것은 다만 氣에 머물 뿐, 애초에 응결하여 사물이
되고 性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부분은 오히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
다. 그 의미야 理는 직접 모이고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겠지만 ‘애초에 응결하여 사
물이 되고 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를 충분히 당황케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理와 氣가 결합하여 존재한다고 주자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에 관한 이론이나 성명의 이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69)

 

여기에서 일단 주자는 나의 性은 천지의 성(本然之性=天命之性)과 같기 때
문에 죽자마자 없어지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사후 본성(性)을 나를
중심으로 보느냐, 아니면 천지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제가 판이하게 달
라짐을 지적한다. 그것을 천지를 중심으로 볼 경우, 그 性은 본래 우주자연의
존재세계 전체가 함께 공유한 도리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나와 너, 인간과
사물, 삶과 죽음에 대한 구별, 혹은 차별 자체가 없게 된다. 따라서 그것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해도 나만의 것이라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만약 나
를 중심으로 보게 되면, 나를 나라고 규정할 수 있는 어떤 정신이나 혼백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집착하면서 죽음에 이르러서도 놓지 못하게 된
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나와 너, 삶과 죽음, 인간과 사물 등의 차별의식에 사
로잡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자는 그런 사람과는 더 이상 함께 생사의 문
제를 논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주자가 死後의 性의 문제를 나(我)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
들이 함께 공유한 公共의 道理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아마도 그것
은 그가 처한 시대적 문제들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철학은 시대의
산물이요,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그 주된 과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철학을 정치철학으로 규정하는 것만 보더라도 철학의 이러한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주자가 인간의 심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문제점을
수양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사회기풍을 진작시키고자 한 것도 이러한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그가 구축한 신유학을 공부한 改新유학
자들을 통해 새 시대를 열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특히 그가 위
인용문에서 性을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함께 공유한 공공의 도리로
파악한 이유 자체가 당시의 ‘性의 사유화’ 혹은 개체 중심의 인생관을 지향했

 


69) 朱熹集 41-5(1899) 答連嵩卿1, “… 所謂天地之性, 即我之性, 豈有死而遽亡之理,
此說亦未爲非. 但不知爲此說者以天地爲主耶? 以我爲主耶? 若以天地爲主, 則此性即自
是天地間一箇公共道理, 更無人物彼此之間, 死生古今之别. 雖曰: 死而不亡, 然非有我之
得私矣. 若以我爲主, 則只是於自己身上認得一箇精神魂魄, 有知有覺之物, 即便目爲己
性, 把持作弄, 到死不肯放舍. 謂之死而不亡, 是乃私意之尤者, 尚何足與語死生之說, 性
命之理哉? …”

 

 

던 도교와 불교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점은 더욱 부
각된다.70) 사상, 혹은 생각의 전환이 곧 삶의 전환을 야기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도교와 불교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전환시켜 인생과 우주를
새로운 각도로 보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ㆍ
불을 지향했던 결과물이 당시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을 조성했으니
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나’만이 아니라 ‘나’나, 심지어 인간은 물론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을 함께 포괄하는 ‘우리’라는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고, 나아가서
는 삶과 죽음의 문제도 보다 넓은 시각에서 관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매개체가 소위 ‘理’ 혹은 ‘性’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하튼 주자가 살던 때는 北宋이 거란의 요와 여진의 금에 시달리다가 수
도를 항주로 옮긴 南宋代였는데, 그가 태어난 건염 4년, 곧 1130년은 건염 원
년에 즉위한 남송의 초대 천자 고종이 또 다시 금나라의 군대에게 쫓겨 여러
곳을 전전할 때였다. 이 때문에 그의 아버지 朱松은 금군과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당시의 화평노선과 맞지 않아 실각하기도 했다. 따라서 주자
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중원을 회복하여 나라를 부강
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회ㆍ정치사
상이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고 사회의 기강을 확립하며, 충신과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며, 풍속을 변화시키고 사회의 불량한 기풍을 바로
잡는 것”71)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철학이 理氣二元論적 형이상학을 구
축하고 그 원칙을 개인과 사회ㆍ국가에 그대로 관철시키고자 한 것도 이 때
문이다. 따라서 주자는 死後세계에서의 性의 존재도 개체적 관점이 아니라
공동체적 관점으로 설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가 불교를 개체적 자아에 집
착하는 종교로 보고 “불가에서는 도리어 사람이 죽으면 鬼가 되고, 鬼가 다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천지간에는 항상 그 수많은 사람들이

 


70) 임병식, 주자는 어떻게 죽음의 불안을 극복했는가? (東洋哲學 제43집, 한국동양철
학회, 2015), 43-45쪽 참조.(임병식은 “생물학적 의미의 생의 장단에 골몰하기보다는
삶의 공공성에 입각하여 부단히 인륜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인문적으로 실현
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을 온전히 파악하는 길이며, 오직 이때에만 죽음의 가
치와 의의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71) 陳來撰, 앞의 책, 161쪽 참조.

 

 

계속 오고 가기만 할 뿐이고, 다시는 낳고 또 낳는(生生) [천지의] 조화가 이
루어지지 않을 것이니, 결코 그런 이치는 없다”72) 라고 비판한 이유도 이러한
시대상황 때문이다. 한 개인의 영존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안위가 더 중요
했던 것이다.

 


4. 꼬리말
이상에서 필자는 서구의 자아관념을 준거로 삼아 유학, 그 중에서도 宋代
理學의 집대성자인 주희의 자아관과 그가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구성한
그의 우주발생론 및 죽음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
던 것은 서구가 사유주체로서의 이성을 자아로 규정했던 것과는 달리 주자는
도덕주체로서의 性과 사유주체로서의 心을 구분함으로써 이상과 현실을 동시
에 고려했음을 목도할 수 있었다. 주희의 경우 이상적으로는 ‘인간으로 하여
금 바로 그 인간되게 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도덕성(性)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인간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인간은 어
쩔 수 없이 理와 氣로 결합되었기 때문에 氣의 淸濁에 따라 한계지어질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모색했다. 주희가 모색한
대안은 바로 인간이 부여받은 것 중 가장 맑고 영명한 가능을 갖춘 心이었다.
마음의 인식과 사유기능을 통해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순선한 본성을 인식하게
하고, 또 기질로 구성된 인간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서 본성을 목표로 삼아
부단히 공부해 나갈 수 있는 이론적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분명 주자가 이렇게 도덕주체로서의 性과 사유주체로서의 心을 구분한 것
은 어쩌면 주체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자는 오히려 그것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을 설정하는데나, 또
인간이 그것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게 하는데 더 유리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周敦頤의 太極圖說을 이용해 우주자연의
본원인 太極이 모든 개체 속에 내재한다는 理一分殊說을 주장하지도 않았을

 

72) 주자어류 3:19, “釋氏卻謂人死爲鬼, 鬼復爲人. 如此, 則天地間常只是許多人來來去
去, 更不由造化生生, 必無是理.”

 

 

것이다. 또 마음의 영명성을 우주발생론의 구조 속에서 확보하고자 하지도 않
았을 것이다. 어쩌면 주자의 이러한 구조가 서구의 이성이 가진 문제점을 극
복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서양 근세철학은 사유와 인식의 주체인 이성을 영원불변하는 실체요, 주체
및 자아로 설정했는데, 이렇게 되면 나 이외의 다른 존재,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 그것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나 밖의 모든
것은 나에 의해 인식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나를 제외한 나머지 존재는 모두 死物化되어 버린다. 또 데카르트적으
로 생각하게 되면 인간의 육체는 부수적인 지위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 인
간이 육체와 정신의 유기적 통일체라는 현실적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만다.73)
그에 비해 주자는 비록 육체의 한 요소인 心보다 우주자연의 태극(=理)과
하나인 본성(性)을 중심에 놓고 우리의 모든 육체성은 그것을 목표로 삼아 공
부해야 함을 강조하지만, 육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대안을 마련했다는 점에
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육체적 욕망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개별주체
에 매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공의 도리이며 영원불변한 실체
인 우리가 함께 공유한 性은 개체적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
다. 이 때문에 서구식의 대상 死物化라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는 누구나 모두가 함께 공유한 天理를 추구하고 자신의 개별적 욕구인 人欲
을 극복해야 할 존재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렇게 볼 때 주자의 자아관은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先秦이래의 유가의 중심 가치인 본성의 純善性을 이론적으로 확보함과 동시
에 인간이 지닌 사유기능도 충분히 고려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우주론
과 죽음에 대한 관점도 모두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었다. 이것
은 어쩌면 맹자가 중시한 본성(性)과 순자가 중시한 마음(心)을 하나로 통합
시켜 유가사상의 두 맥락을 하나로 결합한 것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를 신유학의 집대성자라는 평가에 더하여 유가철학의 종합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73) 김상봉, 앞의 책, 265-266과 25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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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주자는 어떻게 죽음의 불안을 극복했는가? (東洋哲學 제43집,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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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摘要>
朱熹的自我觀與生死觀
朴東仁
(龍仁大學校的講師)
本研究的目的在于以西方的自我观念为根据,研究宋代理学集大成者朱熹的自我
观和他为了将其正当化所构建的宇宙发生论和生死观。研究发现与我们了解的西欧
将思维主体的理性规定为自我,我之外的存在都看做死物不同,朱子区分道德主体
为性和思维主体为心,同时考虑了理想和现实。
通过性,人确定所志向的理想的目标, 通过心,人认识到本性的纯善性,以及
人为了做到这些,而不断学习。他构建的宇宙论和生死观,正是正当化和强化了上
述观点。通过这些,朱子想得到的是将宇宙自然的本源—太极的原理,不仅作用
于个体,也作用于社会和国家。因此,通过封建的道德伦理—三纲五伦来构筑社
会和国家的秩序,光复失去的中原地区,使国家富强,使民生安定。
關鍵詞: 朱熹,自我,道德主體的性,思维主体的心,宇宙发生论,生死观

 

 

 

출처 : 장달수
글쓴이 : 낙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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