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어보(御寶)와 어압(御押)

2018. 4. 19. 10:36알아두면 조은글

조선시대 어보(御寶)와 어압(御押)

 

 

 

전통시대의 인장, 서명 등에 관한 여러 제도적인 형식은 모두 예식(禮式)의 틀로써 규정되었다. 그래서 상하의 위계질서에 따라서 다양한 쓰임과 형식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어보의 쓰임은 법전에 규정되어 있다. 중국으로부터 하사받았던 대보(大寶)는 대중국 사대문서에서 사용되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는 교지(敎旨), 교명(敎命), 교서(敎書) 등에 사용되었다.

 

어보(御寶)는 국가의 위상에 따라서도 인문(印文)과 형식 등을 달리하였다. 조선이 대한제국의 황제국가가 되었을 때, 예전에 사용하던 시명지보는 제고지보(制誥之寶)나 칙명지보(勅命之寶)로 바뀌었으며, 인뉴(印鈕)도 귀뉴(龜鈕)에서 용뉴(龍鈕)로 변화되었다.

 

          문서에 사용된 다양한 어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보명칭

사용문서

대보(大寶)

사대(事大) 문서

시명지보(施命之寶)

교지(敎旨), 교명(敎命), 교서(敎書)

유서지보(諭書之寶)

유서(諭書)

과거지보(科擧之寶)

시권(試券), 홍패(紅牌), 백패(白牌)

동문지보(同文之寶)

내사본(內賜本) 서적

규장지보(奎章之寶)

어제(御製), 내사본 서적(內賜之記)

준철지보(濬哲之寶)

각신(閣臣) 교지

 

 

조선시대 국왕이 즉위를 하면 여러 대신들이 모여 국왕의 서명으로 사용할 글자를 정하였다. 서명은 글자의 초서체를 바탕으로 이를 더 추상적으로 변형하여 만들었는데, 대신들이 정한 글자를 국왕의 위엄과 웅장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변형하였다. 문서에 결재하는 국왕의 서명을 특별히 ‘어압(御押)’ 이라고 불렀다.

   

어압은 어보와 같이 어떤 형체화된 사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고, 또 어압이 있는 문서는 국왕의 승하와 함께 대부분 불태워지기 때문에 현재 전하는 국왕의 어압은 많지 않다. 국왕의 어압은 또한 비밀스런 문서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행정방식을 따르지 않는 인사발령이나 국왕의 특별명령이 있을 때 전령(傳令)이라는 문서를 사용하였고, 그 문서에는 국왕이 직접 어압을 하여 다른 관청이나 관원의 관여 없이 국왕의 직접적인 의지를 실현하였다.

  

고종이 윤시병을 별군직(別軍職)에 임명하면서 내린 전령(傳令)이다. 문서의 끝에는 고종의 친필 어압이 있다. 별군직은 효종 때 설치한 국왕의 친위조직으로, 국왕의 주위에서 늘 신변보호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이들은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관원의 비리 등을 조사하기도 하는 등 조선 후기에는 무반(武班)의 요직으로 활동하였다.

 

 

 류성룡의 교지, 류성룡을 영의정으로 임명하는 문서인데, 문서의 작성 시기를 기록한 곳에 ‘시명지보(施命之寶)’가 붉은 인주로 찍혀 있다.

 

 

 

제고지보의 용뉴와 인문

 

 

 

고종 때의 칙명지보

 

 

 

현종의 어압은 입(立)자를 변형하여 만들었다.

 

 

 

 고종이 발급한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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