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의 가치

2018. 4. 19. 10:34알아두면 조은글

한국의 고문서 / 고문서의 가치

 

 

 

 

사료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간의 국학분야 연구는 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것은 국가의 관찬사료, 혹은 지배층인 양반 사대부들이 만든 연대기류, 문집류 등의 사료에 너무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필연의 결과로서, 우리 국학분야 연구는 중앙(국왕) 중심, 지배층(양반) 중심의 역사, 철학, 문학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딸이 자기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모시겠다는 주체적 여성의 모습이나, 소가 남의 밭 곡식을 뜯어먹자 이를 한탄하면서 쓴 제주도 보통사람들의 시심(詩心), 그리고 관부의 관권과 사족의 신분적 영향력이 농축되어 있으면서 평민들의 삶의 몸부림이 숨쉬어 있는 거제도 어촌 구조라리 마을의 풍경 등이우리 문화 연구의 뒤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 문화의 주인공이 전체 ‘인간’이라 할 때 이것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과제라 하지않을 수 없다.

 

고문서는 바로 이러한 편향적인 국학분야 연구를 지양하고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문화 서술을 가능케 하는 자료이다. 즉 고문서는 일정한 시기 일정한 지역적 범주에 살았던 전 인간에 관한 삶의 기록이다. 지배층인 양반이라 할지라도 문집과 달리 그들이 남긴 고문서에는 그들 내면의 세계와 긴박한 삶의 문제를 담고 있다. 따라서 고문서가 그려주고 있는 인간상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이지만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한마디로 사료로서 꾸밈과 왜곡이 적다. 고문서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고문서가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일차 사료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문집을 비롯하여 공각된 기록물은 복본이 있다. 예컨대 인쇄된 문집은 발행자 주체인 사가(私家)에서 없어지면 다른 곳, 예컨대 다른 개인이나 도서관, 박물관등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하지만 고문서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부만 작성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그 자체가 유일성을 가진다. 고문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 조선왕조실록 등 관변측 자료나 개인 문집 등에서 찾을 수 없는 생활사의 여러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개인간에 서로 주고받은 간찰, 매매 등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계약 문서, 혹은 관혼상제 관계 문서, 각종 분쟁에 관련된 소송문서, 재산상속에 관한 문서, 관청에 대한 민의 청원서 등이 그것이다. 셋째, 지방사(향촌사) 연구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자료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시대 자료는 거의 전부가 중앙 중심의 기록인데 반해, 고문서는 비록 관부와 관련된 문서도 있지만 향촌사회의 구조와 운영의 실체, 그리고 개인의 일대기를 밝혀주는 기록이다. 우리의 역사를 비롯해 문학과 철학은 중앙중심으로 서술되었거나 연구되고 있으나 고문서는 지방의 역사, 민속, 신앙, 향촌사 등에 관계된 부분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문화 연구의 체계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료이다.

 

그러면 과연 고문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문서의 개념은 협의의 개념과 광의의 개념으로 구분하여 정의할 수 있다. 우선 협의의 개념에 따른 고문서의 정의를 살펴보자. 이 경우 고문서의 형식적 요건은 발급의 주체와 객체가 존재하고 그 사이에 관계성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이에 김동욱은 고문서의 작성 및 효력에 있어서 ‘타동적(他動的)’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타동적이라 함은 문서를 작성함에 있어 수수자(授受者) 사이에 어떤 작용을 미치는 요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승희의 경우도 ‘문서는 반드시 특정 대상이 있어야 하며, 갑이라는 주체가 을이라는 특정의 대상에 문서가 전달됨으로써 그 구실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즉 문서는 발급자가 수취자가 필수요건이며 양자 사이에 문서를 수수하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고 하였다. 현재까지 고문서의 정의를 분명히, 그리고 학술적으로 정리한 이론이다.

 

하지만 고문서의 요건을 이와 같이 수수자와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측면으로만 한정시킬 때, 고문서의 범주는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정의를 자료의 조사·수집·정리, 그리고 사료로서의 ‘이용’의 차원에서 본다면 수많은 기록류가 여기서 제외된다. 古書誌學에서는 그 주요 연구대상이 판본 활자 중심의 古書이다. 따라서 그간 성책 및 낱장의 고문서는 정리와 연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한 자료로는 치부류(秋收記, 田畓案, 奴婢案), 촌락문서류(鄕案·洞案 등), 문중문서류(族契 등), 개인생활기록류(日記類), 토지대장류(量案 등), 호적문서류(戶籍臺帳 등), 혼상제례류(扶助記, 時到記 등), 등록류(謄錄類)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자료는 특정 대상과 수수한 문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고기록(古記錄)’이라는용어를 쓰기도 하여, 또 다른 범주의 문헌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도서관 등에서 이러한 분류 영역을 두거나 채택하여 시용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고문서 개념은, 史料로서의 가치나 학술적 이용의 차원에서 볼 때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고문서를 직접 조사·수집·정리하는 기관에서는 이 같은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광의의 개념에서 고문서를 정의하는 연구자로는 정구복을 들 수 있다. 정구복은 우리의 전통적 문서개념은 ‘사료적 가치가 있는 모든 기록’을 의미하였다고 지적하고, 고문서란 ‘현대이전의 1차 사료로서의 유일한 가치를 갖는 필사된 기록’이라고 정의하였다. 특히 정구복은 낱장으로 전형적 고문서 이외에 필사된 기록류에 대하여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부여하였다. 이에 문집도 간행 이전의 초고본(草稿本)이라면 고문서로 간주해야 한다고 보았다. 윤병태는 이러한 광의의 고문서 개념을 받아들여 고문서분류체계를 완성하였는데, 한국고문서정리법(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이 바로 그것이다.

 

고문서의 정의는 자료의 조사 수집과 정리, 나아가 목록의 유형과 정리방법에까지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국학계의 커다란 학문적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고문서학 자체가 사료학에서 출발한, 다시 말해 사료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고문서의 개념에는 사료로서 유의미한 것들을 최대한 포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넓은 의미의 고문서 개념을 채택하여, 자료를 조사·정리·간행하고 있다. 동 연구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일련의 고문서 조사사업의 경우, 고문서 개념이나 정의에 구애됨에 없이 고문서 뿐만 고서와 필사본을 비롯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모든 자료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