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용9

2018. 1. 9. 07:48간찰

1)사제(社祭):입춘(立春) 이후 다섯 번째 무일(戊日)을 춘사(春社)라 하고, 입추(立秋) 이후 다섯 번째 무일을 추사(秋社)라 하는데, 춘사와 추사를 통틀어 사일(社日)이라 하는바, 사제는 사일에 토신(土神)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2)강동(江東)에만……아닐세:진대(晉代)의 문인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인 강동 오중(吳中)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하거늘, 어찌 수천 리 타관에서 벼슬하여 명작을 구할 수 있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 以要名爵乎]” 하고, 마침내 수레를 명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3)바다가……같고:백월(百越)은 지금의 절강(浙江), 복건(福建), 강서(江西), 광동(廣東) 등의 성(省)에서 안남(安南) 지방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통틀어 일컬은 말인데, 예로부터 이 지방은 어염(魚鹽), 즉 생선과 소금이 가장 많이 생산된 고장으로 유명하다.

4)땅은……만하네:삼오(三吳)는 장강(長江) 동쪽 지방의 범칭으로 쓰이는데, 예로부터 이 지방은 벼가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5)이……건너왔는걸:봉래산(蓬萊山)은 동해(東海) 가운데 있다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인데 자라가 신산(神山)을 이고 왔다는 전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발해(渤海)의 동쪽에는 대여(岱輿)․원교(員嶠)․방호(方壺)․영주․봉래의 다섯 신산이 있었는데, 이 산들이 조수(潮水)에 밀려 표류하며 정착하지 못하였다. 천제가 혹 이 산들이 서극(西極)으로 표류할까 염려하여 처음에 ‘금색의 자라[金鼇]’ 15마리로 하여금 이 산들을 머리에 이고 있게 함으로써 비로소 정착하게 되었는데, 뒤에 용백국(龍伯國)의 거인이 단번에 이 자라 6마리를 낚아 감으로 인하여 대여․원교의 두 산은 서극으로 표류하고, 방호․영주․봉래의 세 산만 남았다고 한다.

6)마음은……있구나:오색구름이 머문 곳은 본디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제왕(帝王)의 처소를 미화하여 선경(仙境)에 비유한 말이다. 봉래전(蓬萊殿)은 봉래궁(蓬萊宮)과 같은 뜻으로, 당대(唐代)에 장안(長安) 동쪽에 있었던 대명궁(大明宮)을 고종(高宗)이 봉래궁으로 고쳐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전하여 봉래전도 역시 대궐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의 〈효고(效古)〉 시에 “아침에 천원으로 들어가, 황제를 봉래궁에서 배알하였네.[朝入天苑中 謁帝蓬萊宮]”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23》

7)삼청전(三淸殿):강화도(江華島)의 마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塹城壇)을 가리킨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곳이라 한다.

8)황정경(黃庭經)……걸:황정경은 도가(道家)의 한 경전 이름인데, 여기에는 신선이 되는 방법 등이 적혀 있다. 성관(星官)은 곧 하늘의 성신(星辰)을 인간의 관원(官員)에 비유하여 일컬은 말로, 전하여 성신을 가리킨다.

9)고요한……반성하노라:두보(杜甫)의 〈유용문봉선사(遊龍門奉先寺)〉 시에 “깨려던 차에 새벽 종소리 들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깨달음 얻게 하네.[欲覺聞晨鐘 令人發深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

10)계양(桂陽):부평(富平)의 고호이다.

11)철적(鐵笛):흔히 은자(隱者)나 고사(高士)가 불었던 젓대라고 전해 온다. 주희(朱熹)의 〈철적정서(鐵笛亭序)〉에서 무이산(武夷山)에 사는 은자인 유군(劉君)이 철적을 잘 불었는데 “구름을 뚫고 돌을 찢는 소리가 난다.[有穿雲裂石之聲]”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9》

12)술잔……없고:이백(李白)의 〈파주문월(把酒問月)〉 시에서 온 말로, 그 대략에 “푸른 하늘에 달이 뜬 지 그 몇 해이던고. 내 지금 술잔 멈추고 한번 너에게 묻노라. 사람은 밝은 달을 부여잡을 수 없는데, 달은 도리어 사람과 함께 서로 따르는구나.[靑天有月來幾時 我今停杯一問之 人攀明月不可得 月行却與人相隨]”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19》

13)고토(顧兎):달 속에 토끼가 산다는 전설에서, 전하여 달을 가리킨다. 《초사(楚辭)》 〈천문(天問)〉에 “달에게는 무슨 덕이 있기에 죽었다가 곧 살아나는고. 그 속에는 무슨 이로움이 있기에 돌아보는 토끼가 항상 뱃속에 있는고.[夜光何德 死則又育 厥利維何 而顧兎在腹]”라고 하였다.

14)고래……천년이요:이백이 일찍이 채석강(采石江)에서 취중에 뱃놀이를 하다가 달을 잡으려고 물에 뛰어들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송(宋)나라 때 문인 마존(馬存)의 〈연사정(燕思亭)〉 시에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에 오르고 나니, 강남의 풍월이 한가해진 지 오래로다.[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라고 하였다.

15)적벽(赤壁)에선……추었던고:현학(玄鶴)은 검은 학을 말한 것으로, 소식(蘇軾)이 일찍이 임술년(1082)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적벽 아래 강에서 손들과 함께 선유(船游)를 즐기고 풍류를 만끽하면서 전후로 〈전적벽부(前赤壁賦)〉와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지었는데, 그 〈후적벽부〉에 “돌아와서 배에 올라 중류에 이르러 배가 그치는 대로 가서 쉴 제, 때는 한밤중이라 사방이 적적한데, 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가 강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날아오더니, 날개는 수레바퀴만 하고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끼룩끼룩 길게 소리 내어 울며 나의 배를 스쳐서 서쪽으로 날아갔다.[反而登舟 放乎中流 聽其所止而休焉 時夜將半 四顧寂寥 適有孤鶴 橫江東來 翅如車輪 玄裳縞衣 戞然長鳴 掠予舟而西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6)상방(上方):불가에서 주지승이 거주하는 내실을 말하는데 불사(佛寺)를 일컫기도 한다.

17)백운(白雲)은……있으랴:남제(南齊) 때의 은사(隱士) 도홍경(陶弘景)의 시에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고갯마루에 흰 구름이 참 많은데, 단지 혼자 즐길 수만 있을 뿐, 그대에게 갖다 줄 수는 없다네.[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8)동원(東院):당나라 때 고승 종심 선사(從諗禪師)가 일찍이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에 거주했는데, 이곳을 일명 동원이라고도 칭했던 데서, 전하여 고승의 처소를 가리킨다.

19)옛날에……맞았으련만:영운(靈運)은 곧 남조(南朝) 때의 문인으로 풍류가 뛰어났던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키는데, 그는 특히 깊고 험준한 명산(名山)을 오르기 좋아하여 매양 ‘밀 칠한 나막신[蠟屐]’을 신고 자주 등산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20)지금은……없네그려:원공(遠公)은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를 가리키는데, 그가 당대의 명유(名儒)인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할 목적으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서로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데서 온 말이다.

21)시냇가에서……숨고:진대(晉代)의 고승(高僧) 섭공(涉公)은 본디 서역(西域) 사람인데, 그가 부견(苻堅)의 요청으로 기우(祈雨)를 행할 때에 주문을 외워서 용을 굴복시켜 자신의 바리때 속으로 들어오게 하여 큰비를 쏟아지게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용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고승의 신통한 법력(法力)을 의미한다.

22)돌……테지:진(晉)나라 때 강거국(康居國) 출신의 고승(高僧) 축담유(竺曇猷)가 풍성(豐城)의 적석산(赤石山) 석실(石室)에서 불경을 외고 있을 적에 맹호(猛虎) 수십 마리가 축담유의 앞에 와서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이때 한 호랑이만 잠을 자고 있으므로, 축담유가 여의장(如意杖)으로 자는 호랑이의 머리를 두드리면서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왜 경을 듣지 않느냐?[何不聽經]”라고 했더니, 이윽고 뭇 호랑이들이 다 가서 설법을 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이 역시 고승의 신통한 법력을 가리킨다.

23)흰……있거니:두보(杜甫)의 〈봉선유소부신화산수장가(奉先劉少府新畫山水障歌)〉에 “약야계요 운문사로다. 나만 홀로 어이해 속세에 묻혀 있으랴, 짚신과 베 버선 차림이 이제부터 시작일세.[若耶溪 雲門寺 吾獨胡爲在泥滓 靑鞋布襪從此始]”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4》

24)서로……보세: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당시의 명유(名儒)인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노닐다가 그들을 전송할 때, 그들과 서로 의기가 투합한 나머지 이야기에 마음이 팔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虎溪)라는 시내를 건너가 범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세 사람이 서로 크게 웃었다[三笑]’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25)어느……지었던고:《불국기(佛國記)》에 의하면, 인도(印度)의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일찍이 세존(世尊)의 공덕(功德)을 듣고 그를 매우 존경한 나머지, 정사(精舍)를 건립하여 세존으로 하여금 그곳에 내림(來臨)하게 하려고 했다. 당시 기다태자(衹多太子)에게 마침 큰 원지(園地)가 있었으므로, 수달장자가 기다태자에게 그 원지를 사겠다고 청하자, 태자가 농담으로 황금(黃金)을 그 원지에 가득 깔면 팔겠다고 하니, 장자가 즉시 자기가 가진 황금을 몽땅 털어 내서 그의 말대로 그 원지에 가득 깔아 덮었다. 그러자 태자가 크게 감동하여 즉시 그 원지에 정사를 지어서 세존으로 하여금 그곳에 거주하게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26)백 척(尺)의……듯하네:원룡(元龍)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진등(陳登)의 자이다. 허사(許汜)가 일찍이 유비(劉備)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기가 한번은 진등을 찾아갔더니, 진등이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주인인 자신은 높은 와상(臥牀)으로 올라가 눕고, 손님인 자기는 아래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자,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는 국사의 명망을 지닌 사람으로,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서 임금이 처소를 잃은 판이라, 그대에게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자신을 잊어서 온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전답이나 살 집을 구하고 다닐 뿐, 아무런 채택할 만한 말이 없었으니, 원룡이 이것을 꺼렸던 것이다. 어찌 그대와 말할 가치가 있었겠는가. 나 같았으면 자신은 백척루 위로 올라가 눕고, 그대는 땅바닥에 눕게 했을 것이다. 어찌 와상을 위아래의 차이로만 하였겠는가.[君有國士之名 今天下大亂 帝主失所 望君憂國忘家 有救世之意 而君求田問舍 言無可采 是元龍所諱也 何緣當與君語 如小人 欲臥百尺樓上 臥君於地 何但上下牀之間耶]”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단지 높은 누각에 올라 풍류를 즐기는 것을 진등의 호기에 빗대서 말한 것이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

27)홀(笏)로……알맞겠네: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는 성품이 본디 잗단 세속 일에 얽매임이 없었다. 그가 환충(桓沖)의 기병 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적에 한번은 환충이 그에게 말하기를 “경(卿)이 부(府)에 있은 지 오래되었으니, 요즘에는 의당 사무를 잘 알아서 처리하겠지.”라고 하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쳐들고 홀로 턱을 괴고는 엉뚱하게 “서산이 이른 아침에 상쾌한 기운을 불러온다.[西山朝來 致有爽氣耳]”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홀로 턱을 괴고 산을 본다는 것은 곧 세속 일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히 유유자적하는 풍도를 의미한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28)감호(鑑湖)를 하사받는 건:감호는 경호(鏡湖)와 같은 뜻으로 호수의 이름이다. 당 현종(唐玄宗) 때 비서감(秘書監)을 지낸 시인 하지장(賀知章)이 만년에 도사(道士)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현종이 그에게 경호의 섬계(剡溪) 일곡(一曲)을 하사했던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賀知章》

29)물이……만하여라:춘추 시대에 한 어린애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하였다. 《孟子 離婁上》

30)나는……못해:도잠(陶潛)의 〈귀전원거(歸田園居)〉에 “젊어서부터 비속한 취미에 적응 못하고, 천성이 본래 산수를 좋아하노라.[少無適俗韻 性本愛邱山]” 하였다. 《陶淵明集 卷2》

31)늙었으니……삼으련다:한 고조(漢高祖)의 모신(謀臣) 장량(張良)이 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유후(留侯)에 봉해지고 나서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지금 세 치의 혀로써 제왕의 스승이 되어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가 되었으니, 이는 포의에게 극도의 영광이라, 나에게는 더없이 만족할 뿐이다. 이제는 인간의 일을 다 버리고 선인 적송자를 따라서 노닐고 싶을 뿐이다.[今以三寸舌 爲帝子師 封萬戶 位列侯 此布衣之極 於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游耳]”라고 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32)황학(黃鶴)은……오네:최후(崔侯)는 당대(唐代)의 문인 최호(崔顥)를 가리킨다. 그가 〈황학루(黃鶴樓)〉 시를 지어 세상에 널리 회자되었는데, 특히 이 시를 짓고 이백(李白)으로부터 당인(唐人)의 칠언율시(七言律詩) 가운데 제일이라는 격찬을 받기까지 했었다. 황학(黃鶴), 앵무주(鸚鵡洲)는 그의 〈황학루〉 시에 나온 것으로,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옛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는지라, 이 땅에는 공연히 황학루만 남았네그려. 황학이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흰 구름만 천재에 부질없이 왕래하누나. 날 갠 냇물엔 한양의 숲이 역력히 비치고, 향기로운 풀은 앵무주 물가에 무성하도다. 날은 저문데 향관이 그 어드메뇨, 연기 자욱한 강가에서 사람을 시름하게 하네.[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여기서는 단지 여강(驪江) 주변의 경치를 황학루 주변의 경치에 빗대서 한 말이다.

33)그대는……이어:여기서 그대는 당시 여주 목사(驪州牧使)였던 최숙정(崔淑精)을 가리킨다. 그 또한 성이 최씨(崔氏)이므로, 그를 최호(崔顥)의 동족(同族)으로 여겨 말한 것이다.

34)옛……늪인데:여주(驪州) 북쪽 3리쯤에 팔대수(八大藪)라는 늪이 있는데, 옛이름이 패다수(貝多藪)였다고 한다.

35)운몽수(雲夢藪):옛날 초(楚)나라에 있었다고 전하는 일곱 군데의 거대한 소택(沼澤) 중 하나인 운몽택(雲夢澤)을 말한다.

36)나는……못했었네:전국 시대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 굴원(屈原)이 일찍이 소인의 참소로 인해 조정에서 쫓겨나서 늪가를 행음(行吟)할 적에 안색은 초췌하고 형용(形容)은 수척했으므로, 어부(漁父)가 굴원을 보고 조정에서 쫓겨난 까닭을 묻자, 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다 흐리거늘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楚辭 漁父辭》

37)보제(普濟):고려 말기의 고승(高僧) 혜근(惠勤)을 가리키는데, 호는 나옹(懶翁)이다. 그가 왕사(王師)가 된 다음에는 왕으로부터 대조계대선교도총섭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보제존자(大曹溪大禪敎都總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의 호를 하사받기도 했는데, 그가 여흥(驪興)의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할 당시에 신령스러운 이적(異蹟)이 성대하게 일어났다 하여, 그를 먼 후세에까지 영원히 기리게 하기 위해 불당을 지어서 진영(眞影)을 걸고, 석종(石鐘)을 만들어 사리를 봉안했다. 이 내용이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여강현(驪江縣) 신륵사(神勒寺)의 보제 사리석종(普濟舍利石鐘) 기문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국역 목은집 10집 목은문고 제2권》

38)백련사(白蓮社):동진(東晉)의 고승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당대의 명유(名儒)들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할 목적으로 결성한 모임을 말한다. 164쪽 주 20) 참조.

39)영취산(靈鷲山):인도 마게타국(摩揭陀國)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가 일찍이 이곳에 거주하여 다년간 설법을 했다는 데서, 전하여 불교의 성지(聖地), 또는 불사(佛寺)의 뜻으로 쓰인다.

40)우리……얼룩졌구려:169쪽 주 37) 참조.

41)벽사(甓寺):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의 딴 이름이다.

42)내……놓을진댄:진 시황(秦始皇)이 일찍이 바다를 건너가서 해 뜨는 곳을 보고자 하여 석교(石橋)를 만들 적에 신인(神人)이 채찍으로 돌을 몰아서 바다로 내려 보냈는데, 이때 돌이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신인이 매양 돌에 채찍질하여 강제로 몰아 내렸으므로, 돌들이 모두 피를 흘려서 빨개졌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43)지주(砥柱):황하(黃河)의 중류에 마치 기둥처럼 우뚝 서 있어 격류(激流) 속에서도 꼼짝하지 않고 있던 산명(山名)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마암(馬巖)을 지주에 빗대서 한 말이다.

44)끝내……때우거든:상고 시대의 제왕(帝王)인 여와씨(女媧氏)가 하늘의 서북쪽이 이지러진 것을 보고는 오색(五色)의 돌을 달구어서 하늘을 때웠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45)교산(喬山)의 상설(象設)은 삼엄하고:교산은 옛날 황제(黃帝)를 장사 지냈던 곳으로, 전하여 제왕(帝王)의 능(陵)을 가리킨다. 상설은 왕릉(王陵)이나 원(園)에 만들어 비치한 여러 가지 석물(石物)의 시설을 말한다.

46)의관(衣冠)은 침전(寢殿)에 간직하였네:침전은 옛날 제왕의 능묘에 세운 정전(正殿)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제사지(祭祀志)〉에 의하면, 진대(秦代)에 처음 능묘 옆에 침전을 만들었는데, 한대(漢代)에도 그대로 따라서 능상(陵上)을 침전이라 일컬었고 여기에 죽은 제왕을 산 사람으로 간주해서 그가 생전에 착용했던 의관 등을 비치했던 것이다. 특히 한대의 제도에 매월 초하루마다 고제(高帝)의 의관을 침전으로부터 종묘로 옮겨 모시고 제사하는 것을 ‘유의관(遊衣冠)’이라 칭하기도 했었다.

47)우뚝하여라 금속산(金粟山)이여:금속산은 섬서성(陝西省) 포성현(蒲城縣)에 있는데, 당 현종(唐玄宗)의 유지(遺旨)에 따라 현종을 이곳에 장사 지냈던 데서, 전하여 왕릉을 가리킨다.

48)팔준마(八駿馬):본디 주 목왕(周穆王)의 여덟 필의 준마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흔히 제왕의 거가(車駕)를 말한다.

49)정호(鼎湖):하남성(河南省) 형산(荊山) 아래에 있는 지명으로, 황제(黃帝)가 형산 아래서 솥[鼎]을 주조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제가 솥을 다 주조하고 나서 용을 타고 승천할 적에 군신과 후궁으로 함께 따라 올라간 자는 70여 인이었고, 여기에 함께 따라가지 못한 소신(小臣)들은 용의 수염을 잡고 있다가 용의 수염이 빠지는 바람에 모두 떨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돌아간 선왕(先王)을 황제에 빗대서 한 말이다.

50)영릉(英陵):여주(驪州)에 있는 조선 세종의 능호(陵號)이다.

51)몽둥이로 황학루(黃鶴樓)를 쳐부쉈다는:이백(李白)의 〈강하증위남릉빙(江夏贈韋南陵氷)〉 시에 “나는 그대를 위해 몽둥이로 황학루를 쳐부술 테니, 그대 또한 나를 위해 앵무주를 밟아 무너뜨리게나.[我且爲君槌碎黃鶴樓 君亦爲吾倒却鸚鵡洲]”라고 하였고, 또 이백의 〈취후답정십팔이시기여퇴쇄황학루(醉後答丁十八以詩譏余槌碎黃鶴樓)〉 시에 “높다란 황학루를 이미 몽둥이로 쳐부수어, 황학 탄 선인이 의지할 곳 없게 되었다네. 황학이 하늘에 올라 상제께 호소하니, 되레 황학을 쫓아 강남으로 돌려보냈다네.[黃鶴高樓已槌碎 黃鶴仙人無所依 黃鶴上天訴玉帝 却放黃鶴江南歸]”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10, 卷18》

52)호기(豪氣)가……원룡(元龍)은:원룡은 삼국 시대 진등(陳登)의 자이다. 166쪽 주 26) 참조.

53)격양가(擊壤歌)……마시어라:격양가는 요(堯) 임금 때 한 노인이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흙덩이를 치면서[擊壤]’ 노래하기를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가서 쉬도다.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밭 갈아서 밥을 먹거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태평성대를 의미하고, 구준(衢樽)은 큰 길거리에 설치한 술동이를 말한 것으로,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 “성인의 도는 마치 큰 길거리 한가운데에 술동이를 두어 지나는 사람마다 크고 작은 양에 따라 각각 적당하게 떠 마시도록 하는 것과 같다.[聖人之道 猶中衢而致樽邪 過者斟酌 多小不同 各得所宜]”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인정(仁政)을 베푸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54)연사(煙寺):《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연촌(煙村)으로 되어 있다.

55)애련정(愛蓮亭):조선 세종 연간에 당시 이천 부사(利川府使) 이세보(李世寶)가 부(府)의 객사 남쪽에 기존의 작은 정자를 수리하고 그 아래 못을 파서 연(蓮)을 심고는, 당시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에게 정자 이름을 청하여 ‘애련(愛蓮)’이란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사가집》 14권에 거듭 나왔다.

56)그……말했는고:염계(濂溪)는 북송(北宋) 시대 학자인 주돈이(周敦頤)의 호이다. 그는 특히 연을 매우 사랑하여 〈애련설(愛蓮說)〉을 지어서 연을 극구 예찬했는데, 그 대략에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 속에서 나왔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 속은 텅 비어 통하고 겉은 곧으며, 덩굴도 가지도 뻗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만 있고 가까이 가서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라고 하였다. 《사가집》 14권에는 염계의 계(溪) 자가 옹(翁) 자로 되어 있다.

57)꽃이……보았네: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 “태화봉 꼭대기의 옥정에 자란 연은, 꽃이 피면 열 길이요 뿌리는 배만 한데, 차갑긴 눈서리 같고 달기는 꿀 같아서, 한 조각 입에 넣으면 고질병이 낫는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冷比雪霜甘比蜜 一片入口沈痾痊]”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58)대탄(大灘):양근군(陽根郡) 남쪽 10리 지점에 있다. 여강(驪江)의 하류로서 용진(龍津)과 합류하는데, 큰 돌이 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있어 물이 벌창할 때는 보이지 않고, 물이 얕아지면 거센 파도가 일어서, 특히 수운(輸運)하는 배들이 경유하는 데 몹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59)덕해원(德海院):도봉산(道峯山) 밑에 있었다고 한다.

60)밥……되다니:구 내공(寇萊公)은 송대(宋代)의 명상(名相)으로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진 구준(寇準)을 가리키고, 왕공(王公)은 당(唐)나라 왕파(王播)를 가리킨다. 벽사롱(碧紗籠)이란 시구(詩句)를 푸른 깁에 싸 놓은 것을 이르는 말로, 이는 곧 명사(名士)의 시문을 소중히 보호함을 의미한다. 당나라 왕파가 일찍이 미천했을 적에 집이 몹시 가난하여 양주(揚州) 혜소사(惠昭寺)의 목란원(木蘭院)에 한동안 우거(寓居)하면서 중의 재식(齋食)을 얻어먹고 지냈는데, 나중에는 중들이 그를 싫어하여 그가 오기 전에 밥을 먹어 버리곤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그가 고관(高官)이 되어 그 지방을 진무(鎭撫)하러 내려가서 옛날에 놀았던 그 절을 거듭 찾아가 보니, 자기가 옛날에 제(題)해 놓은 시들을 모두 깁으로 덮어서 보호하고 있으므로, 그가 다시 절구 2수를 지어 “당에 오르면 밥 다 먹고 동서로 각기 흩어졌기에, 스님네들 식사 후에 종 치는 게 부끄럽더니, 이십 년 동안 얼굴에 먼지 그득 분주하다가, 이제 비로소 푸른 깁에 싸인 시를 보게 되었네.[上堂已了各東西 慙愧闍黎飯後鐘 二十年來塵撲面 如今始得碧紗籠]”라고 한 고사와, 또 송대(宋代)의 시인 위야(魏野)가 명상 구준을 수행하여 섬부(陝府)의 승사(僧舍)에 가 노닐면서 각각 시를 유제(留題)한 적이 있었는데, 뒤에 다시 함께 그 승사에 놀러 가서 보니, 구준의 시는 이미 푸른 깁으로 잘 싸서 보호하였으나, 위야의 시는 그대로 방치하여 벽에 가득 먼지가 끼어 있었으므로, 이때 마침 그 일행을 수행했던 총명한 한 관기(官妓)가 즉시 자기의 붉은 옷소매로 그 먼지를 닦아 내자, 위야가 천천히 말하기를 “항상 붉은 소매로 먼지를 닦을 수만 있다면, 응당 푸른 깁으로 싸 놓은 것보다 나으리.[若得常將紅袖拂 也應勝似碧紗籠]”라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61)고목나무……옹위했었지:두목(杜牧)의 〈염석유(念昔遊)〉 시에 “이백이 일찍이 시를 제한 수서사에는, 고목나무 굽은 절벽에 누각 바람이로다.[李白題詩水西寺 古木回巖樓閣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62)벽사(碧紗)니……부끄럽고:벽사와 홍수(紅袖)에 대해서는 175쪽 주 60) 참조.

63)정성(井星)……만하리: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삼성 만지고 정성 지나 우러러 숨 헐떡거리고, 손으로 가슴 쓸며 앉아서 길이 탄식하네.[捫參歷井仰脅息 以手拊膺坐長歎]”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2》 여기서는 단지 높은 데 오른 뜻만 취하였다.

64)금은(金銀)으로……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요:불교의 천문학(天文學)에서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에 사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밖의 주위는 철위산(鐵圍山)으로 둘러쌌다고 하는바, 이것을 하나의 세계 또는 하나의 사천하(四天下)라 하는데, 이 사천하를 천 개 합한 것이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요, 소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이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요, 중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이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삼천대천세계는 천지 사방(天地四方), 즉 온 세상을 의미한다.

65)금수(錦繡)……요해(要害)거니:《사기(史記)》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진(秦)나라는 지세(地勢)가 뛰어난 나라로, 산하의 험고(險固)함을 띠고 천리 멀리 떨어져 있어, 제후의 창 가진 군사 백만을 대적함에 있어 진나라는 백분의 이로 당할 수 있다.[秦形勝之國 帶河山之險 縣隔千里 持戟百萬 秦得百二焉]”라는 말이 있다. 백이(百二)는 곧 100분의 2를 나타내는 말로, 전국 시대에 진나라의 지세가 매우 험고하여 진나라 군사 2만 명으로 제후의 군사 100만 명을 당해 내기에 충분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일설에 의하면 “제후의 창 가진 군사 백만에 대하여, 진나라 지세의 험고함이 천하의 갑절이 되므로, 백만의 두 배를 얻었다는 것이다.[諸侯持戟百萬 秦地險固 一倍於天下 故云得百二焉]”라고도 한다.

66)꽃비[花雨]:흔히 꽃 피는 계절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또는 부처의 설법의 공덕을 찬미하여 ‘꽃을 비처럼 쏟아 내린다.[散花如雨]’라고 하는 데서, 전하여 고승(高僧)의 설법에 비유하기도 한다.

67)청련사(靑蓮社)……싶구려: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일찍이 당대의 명유(名儒)인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할 목적으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서로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고사에 빗대서 한 말이다.

68)원숭이……찾는다오:남제(南齊) 때 공치규(孔稚圭)가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변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매우 못 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북산 신령(神靈)의 이름을 가탁하여 관청의 이문(移文)을 본떠서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그로 하여금 다시는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는 뜻을 서술했다. 그 대략에 “종산의 영령과 초당의 신령이 연기로 하여금 역로를 달려가서 산정에 이문을 새기게 하였다.……혜초 장막은 텅 비어 밤 학이 원망하고, 산중 사람이 떠나가니 새벽 원숭이가 놀란다.[鍾山之英 草堂之靈 馳煙驛路 勒移山庭……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驚]”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원숭이와 학은 곧 깊은 산중의 은자의 처소를 의미한다. 《古文眞寶 後集 卷2》

69)총림(叢林):승려들이 함께 모여서 거처하는 곳을 말한 것으로, 승사(僧舍)를 가리킨다.

70)도잠(陶潛)의……뿐이지만:삼경(三徑)은 세 오솔길이란 뜻으로, 본디 한(漢)나라 때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자기 집 대나무 밑에 세 오솔길을 내고 구중(求仲)과 양중(羊仲) 두 사람하고만 종유했던 데서, 전하여 은자의 처소를 가리킨다. 《三輔決錄》 동진(東晉)의 처사(處士) 도잠 또한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그만두고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陶淵明集 卷5》

71)양로(揚老)의 일구(一區):양로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자이고, 일구는 주택 한 채를 지을 만한 땅을 말한다. 《한서(漢書)》 권87 〈양웅전(揚雄傳)〉에, 그가 민산(崏山)의 남쪽에 살았는데 “토지 일전이 있고, 집 일구가 있었다.[有田一廛 有宅一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72)순채……일이요:순채를 찾고 죽순을 삶는다는 것은 곧 아주 평범한 야인(野人)의 생활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여이십이백동심범십은거(與李十二白同尋范十隱居)〉 시에 “종래에 귤송만 읊조려 왔거니, 누구와 함께 순챗국은 찾을거나.[向來吟橘頌 誰與討蓴羹]”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화채준낭중견요유서호(和蔡準郎中見邀遊西湖)〉 시에 “서로 이끌고 죽순 삶아 먹으러 고죽사에 가고, 다시 연꽃 물가에 내려와 연뿌리를 밟노라.[相携燒筍苦竹寺 却下踏藕荷花洲]”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蘇東坡詩集 卷7》

73)사군(使君)이……가득하구나:수(隋)나라 때 유광(劉曠)이 일찍이 평향 영(平鄕令)으로 나가서 선정을 베푼 결과, 재직한 7년 동안에 풍교(風敎)가 널리 펴져서, 옥중에 갇힌 죄수가 없고 송사(訟事)가 끊어짐으로 인하여 감옥 안에는 모두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송사하는 마당은 새그물을 칠 정도로 조용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隋書 卷72 劉曠列傳》

74)정인사(正因寺):고양군(高陽郡)에 있던 절인데, 조선 덕종(德宗)의 능, 즉 경릉(敬陵) 동쪽에 있었다. 세조 3년(1457) 경릉의 원당(願堂)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75)목어(木魚):불가에서 사용하는 불구(佛具)의 하나로, 나무로 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걸어놓고 두드리는 법구(法具)이다. 불경을 읽을 때나 승려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릴 때에도 이것을 두드리는데 특히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까닭은,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상징하여 승려들에게 밤낮으로 잠자는 것을 잊고 도에 정진하도록 경계하는 뜻에서라고 한다.

76)석마(石馬):돌로 조각한 말의 형상을 가리키는데, 옛날 제왕(帝王)이나 고관(高官)의 능묘(陵墓) 앞에 흔히 이것을 세웠다.

77)주수(珠樹):전설에 나오는 선경(仙境)의 나무를 가리키는데, 전하여 흔히 나무의 미칭(美稱)으로 쓰인다.

78)정호(鼎湖)에 용은 떠나고:171쪽 주 49) 참조.

79)독락정(獨樂亭):공주(公州)의 동쪽 30리쯤 되는 삼기촌(三岐村)에 있는데, 남수문(南秀文)의 〈독락정기(獨樂亭記)〉에 의하면, 삼기촌에 살았던 임후(林侯)라는 이가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원명(園名)인 독락(獨樂)을 본떠서 이렇게 이름했다고 한다. 〈독락정기〉에 의하면, 임후라는 이는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를 지냈다고만 했을 뿐, 그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敬齋遺稿 卷9》

80)다만……새김일세:명추(鳴騶)는 본디 귀인의 행차를 따르는 추종(騶從)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조서를 받든 사자의 추종을 가리킨다. 남제(南齊) 때 공치규(孔稚圭)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북산에 은거하다가 변절하여 벼슬길에 나간 주옹(周顒)을 몹시 책망하는 뜻을 서술했다. 그 대략에 “은자를 부르러 오는 사자의 행차가 골짜기로 들어오고, 징소의 조서가 밭두둑에 당도하자, 형체는 달려가고 넋은 산란해지고, 뜻이 변하고 정신이 동하였다.[及其鳴騶入谷 鶴書赴隴 形馳魄散 志變神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79쪽 주 68) 참조.

81)하씨(何氏)의……못했네:두릉(杜陵)은 곧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가 〈배정광문유하장군산림(陪鄭廣文遊何將軍山林)〉이란 시 10수를 지었고, 또 뒤에 지은 〈중과하씨(重過何氏)〉 시에 “돌난간에서 비스듬히 붓에 먹 찍어, 앉아서 오동잎에 시를 쓰노라.[石欄斜點筆 桐葉坐題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두보의 이 시들은 모두 하 장군(何將軍)의 임정(林亭)에 가 놀면서 지은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2, 卷3》

82)수레……한스럽지만:반곡(盤谷)은 바로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이곳은 골이 깊고 산세가 험준해서 은자(隱者)가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전한다. 당나라 때 문신 이원(李愿)이 일찍이 벼슬을 사직하고 물러가 이곳에 은거할 적에 한유(韓愈)가 그를 송별하는 뜻으로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 그곳의 경관과 부귀공명의 무상함 등을 자세히 설파하여 그를 극구 칭찬했다. 그 글의 대략에 “태항산 남쪽에 반곡이 있으니, 반곡 안에는 샘물이 맛 좋고 땅이 비옥하여, 초목이 무성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반곡의 샘물이여, 씻을 만하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반곡의 막힘이여, 누가 그대와 이 장소를 다투겠는가. 아늑하고 깊으니 넓어서 맘대로 활동할 수 있고, 빙 둘러 굽어 있으니 갔다가 돌아오는 것 같도다. 아 반곡의 즐거움이여, 즐거움이 장차 끝없으리로다.……내 수레에 기름 치고 내 말에 꼴을 먹여, 자네 따라 반곡에 가서, 나의 여생 마칠 때까지 노닐리라.[太行之陽 有盤谷 盤谷之間 泉甘而土肥 草木叢茂 居民鮮少……盤之泉 可濯可沿 盤之阻 誰爭子所 窈而深 廓其有容 繚而曲 如往而復 嗟盤之樂兮 樂且無央……膏吾車兮 秣吾馬 從子于盤兮 終吾生以徜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 後集 卷4》

83)눈……찾아가야지:진(晉)나라 때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막 개고 달빛이 휘영청 밝은 것을 보고는 홀로 술을 마시면서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조리다가 갑자기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자, 즉시 거룻배를 명하여 타고 밤새도록 가서 다음 날 아침에야 섬계에 당도했는데, 대규의 집 문 앞까지 가서는 흥이 다했다 하여 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되돌아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84)부디……말지어다: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의 대략에 “의당 산의 창문을 닫고 구름의 문을 가리며, 가벼운 안개를 거두고 흐르는 여울물을 감추어서, 주옹의 수레 끌채를 골짝 어귀에서 차단하고, 망녕된 고삐를 교외 첫머리에서 막아야 한다.[宜扃岫幌 掩雲關 斂輕霧 藏鳴湍 截來轅於谷口 杜妄轡於郊端]”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179쪽 주 68) 참조.

85)들으니……하더군:도리(桃李)는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를 가리키는데, 옛말에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으나 꽃과 열매가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절로 많아서 그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덕행이 있는 사람은 도리처럼 말이 없어도 남들이 자연히 심복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論》

86)안무정(按舞亭):공주(公州)의 금강(錦江) 아래에 있는 정자인데, 옛날 어느 안렴사(按廉使)가 이 정자에 올라가 먼 데를 조망하면서 술이 취해 춤을 추었다 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이 정자가 폐해진 지 오랜 뒤에 어느 목사(牧使)가 이를 중수(重修)하려 하다가 감사(監司)에게 견책을 받아 이루지 못하므로, 당시 사람들이 웃으며 말하기를 “전에는 술 취하여 춤추던 안렴사가 있더니, 뒤에는 술 깨어 읊조리는 감사가 있구나.[前有醉舞按廉 後有醒吟監司]”라고 했다 한다.

87)술……무너졌으니:진(晉)나라 때 산도(山濤)가 일찍이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사람됨을 평하여 말하기를 “혜숙야의 사람됨은 빼어난 풍채가 마치 홀로 우뚝 선 낙락장송과 같고, 그가 취했을 때는 기울어진 모습이 마치 옥산이 곧 무너지려는 것과 같다.[嵇叔夜之爲人也 巖巖若孤松之獨立 其醉也 傀俄若玉山之將崩]”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옥산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대단히 취한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숙야(叔夜)는 혜강의 자이다. 《世說新語 卷5 容止》

88)강산과……한가했구려:송(宋)나라 시인 마존(馬存)의 〈연사정(燕思亭)〉 시에서 따온 표현이다. 163쪽 주 14) 참조.

89)살풍경(殺風景):저속한 행위로 풍광 경물(風光景物)에 손상을 입혀 남의 흥취를 깨뜨리는 것을 말한다. 당대(唐代)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잡찬(雜纂)》에 “풍경을 손상하는 것은 바로 꽃 사이에서 갈도를 하는 것, 꽃구경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이끼 위에 자리를 펴는 것, 수양버들 가지를 잘라 내는 것, 꽃 아래서 잠방이를 말리는 것, 봄놀이할 때 음식을 가득 싣고 다니는 것, 석순에다 말을 매는 것, 달빛 아래 횃불을 잡는 것, 기녀를 거느린 주연에서 세속 일을 말하는 것, 과수원에 채소를 심는 것, 산을 등져서 누각을 짓는 것, 꽃 시렁 밑에 닭, 오리를 기르는 것이다.[殺風景 花間喝道 看花淚下 苔上鋪席 斫却垂楊 花下曬裩 游春重載 石筍繫馬 月下把火 妓筵說俗事 果園種菜 背山起樓 花架下養鷄鴨]”라고 하였다. 《雜纂 卷上》

90)옛사람이……부끄러워했다네:172쪽 주 51) 참조.

91)탁금강(濯錦江):본디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의 부근을 경유하는 민강(岷江)의 한 지류로, 일설에는 성도 완화계(浣花溪)의 별칭이라고도 한다. 이를 생략하여 ‘금강’이라고도 일컬으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공주의 금강을 성도의 금강에 빗대서 한 말이다.

92)십천(十千):만전(萬錢)의 돈을 가리킨 것으로, 왕유(王維)의 〈소년행(少年行)〉에 “신풍의 맛 좋은 술은 한 말에 십천인데, 함양의 유협들은 대부분이 소년이로세.[新豐美酒斗十千 咸陽游俠多少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王右丞集 卷14》

93)고래처럼……사양하랴:고래처럼 마신다는 것은,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좌상은 날마다 주흥으로 만전을 허비하여, 술을 큰 고래가 백천을 들이마시듯 하고, 술 마실 땐 청주만 즐기고 탁주는 피한다 하네.[左相日興費萬錢 飮如長鯨吸百川 銜杯樂聖稱避賢]”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무지개처럼 마신다는 것은, 옛날 무지개가 내려와서 물을 들이마셨다는 전설에서 온 말로, 전하여 모두 술을 많이 마시는 데에 비유한다. 《杜少陵詩集 卷2》  무지개를 토한다는 것은, 흔히 담소를 나누면서 강개한 기개를 떨치거나 훌륭한 문장을 지어 내는 것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94)당부하노니……말게나:송옥(宋玉)은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문인으로 굴원(屈原)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그가 일찍이 가을을 슬퍼하는 뜻으로 〈구변(九辯)〉을 노래했던 데서 온 말이다. 〈구변〉의 대략에 “슬프다, 가을의 기후여. 쓸쓸하여라, 초목은 낙엽이 져서 쇠하였도다. 처창하여라, 흡사 타향에 있는 듯하도다. 산에 올라 물을 굽어봄이여, 돌아가는 이를 보내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 憭慄兮 若在遠行 登山臨水兮 送將歸]”라고 하였다. 《文選 卷33 九辯五首》

95)사직(社稷)은……열리었네:당부(唐府)는 곧 당나라의 도독부(都督府)를 말한다. 당 고종(唐高宗)이 장군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신라의 김유신(金庾信)과 함께 백제를 쳐서 멸하고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어 군병을 주둔시켰던 데서 온 말이다.

96)금강(錦江)이라……유유하구나:금강루(錦江樓)를 황학루(黃鶴樓)에 빗대서 한 말이다. 168쪽 주 32) 참조.

97)양관곡(陽關曲):옛날의 이별곡 이름인데, 이것을 양관 삼첩(陽關三疊)이라고도 한다. 삼첩이란 바로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시 “위성의 아침 비가 가벼운 먼지를 적시니, 객사는 푸르고 푸르러 버들 빛이 새롭구나. 한 잔 술 더 기울이라 그대에게 권한 까닭은, 서쪽으로 양관 나가면 친구가 없기 때문일세.[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에서, 제1구만 재창(再唱)을 하지 않고 나머지 세 구는 모두 재창을 하는 것을 말한다.

98)지허(支許):진(晉)나라 때의 고승(高僧) 지둔(支遁)과 고사(高士) 허순(許詢)의 병칭인데, 이 두 사람이 친구를 맺어 불경과 현리(玄理)를 서로 담론하면서 매우 좋게 지냈던 데서, 전하여 승려와 문사 간에 교의(交誼)가 깊은 것을 비유한다.

99)결사(結社):수행을 목적으로 한 승속(僧俗)의 결사를 뜻한다. 164쪽 주 20) 참조.

100)내……싶네그려:용면(龍眠)은 송대(宋代)의 명화가(名畫家)로 호가 용면산인(龍眠山人)인 이공린(李公麟)을 가리킨다. 전하여 단지 화가의 뜻만을 취한 것이다. 삼소도(三笑圖)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65쪽 주 24) 참조. 여기서는 호계 삼소(虎溪三笑) 고사를 소재로 삼아서 그린 그림을 말한다.

101)도롱이……있는지:현진자(玄眞子)는 당나라 때의 은사(隱士) 장지화(張志和)의 호이다. 장지화는 일찍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江湖)에 살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라 자칭하고 또한 현진자라 자호했는데, 그의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대삿갓 쓰고 푸른 도롱이 걸쳤으니,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것 없고말고.[靑箬笠 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고 하였다.

102)창랑가(滄浪歌):춘추 시대에 한 어린애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세속을 초월해서 고결한 지조를 지키는 데에 비유한다. 《孟子 離婁上》  또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서도 이 창랑가를 인용하였는바, 여기서는 굴원의 〈어부사〉 내용을 취한 것이다.

103)황정(黃精):선가(仙家)에서 복용하는 약초인데, 이것을 복용하면 장수를 누린다고 한다.

104)학(鶴)……불며:난생(鸞笙)은 선인(仙人)이 부는 생소(笙簫)의 미칭(美稱)으로, 난생을 분다는 것은 곧 선경(仙境)에서 노니는 것을 의미한다. 이백(李白)의 시 〈고풍(古風)〉에 “학의 등에 올라탄 한 선객이, 날고 날아 하늘을 올라가서, 구름 속에서 소리 높이 외치어, 내가 바로 안기생이라고 하네. 좌우에는 백옥 같은 동자가 있어, 나란히 자란생을 불어 대누나.[客有鶴上仙 飛飛凌太淸 揚言碧雲裏 自道安期名 兩兩白玉童 雙吹紫鸞笙]”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1》

105)천손(天孫)이……내어:천손은 직녀성(織女星)의 별칭이고, 운금(雲錦)은 본디 구름무늬를 넣어서 짠 화려한 비단을 말하는데, 또는 화려한 아침 놀을 말하기도 한다.

106)어느……낫는다지: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 나온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173쪽 주 57) 참조.

107)창양(菖陽):중요 약재(藥材)로 쓰이는 창포(菖蒲)의 별칭이다. 이것을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져서 장수를 누리게 된다고 한다. 또한 옛날에 단오절이면 창포탕(菖蒲湯)으로 머리를 감고 창포주(菖蒲酒)를 마시어 온역(瘟疫) 등 불상(不祥)한 것들을 벽제(辟除)하던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108)구절(九節):창포의 한 치마다 아홉 개 이상의 마디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창포 중에 이것이 가장 상품이라고 한다. 《포박자(抱朴子)》 〈선약(仙藥)〉에 “창포는 반드시 돌 위에서 난 것으로, 한 치마다 아홉 마디 이상인 데다 자줏빛 꽃이 핀 것이 더욱 좋다.[菖蒲生須得石上 一寸九節已上 紫花者尤善也]”라고 하였다. 사방득(謝枋得)의 〈창포가(昌蒲歌)〉에 “사람들 말에 창포는 종류가 여러 가지로되, 상품은 아홉 마디로 선령을 통한다고 하네.[人言昌蒲非一種 上品九節通仙靈]”라고 하였다.

109)이것을……있거니:이백(李白)의 〈숭산채창포자(嵩山採菖蒲者)〉 시에 “나도 여기에 와서 창포를 캐어, 이것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으리.[我來採菖蒲 服食可延年]”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24》

110)요초(瑤草):선경(仙境)에 난다는 전설상의 향초를 말한다.

111)마읍(馬邑):한산(韓山)의 고호이다.

112)어느……지킬꼬:백조(白鳥)와의 맹세를 지킨다는 것은 곧 ‘갈매기와의 맹세[鷗盟]’를 지킨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속세를 떠나서 산수 좋은 곳에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113)만리(萬里)라……댔던고:《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있어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고, 이 고기가 변화하여 붕이라는 새가 되는데, 붕새의 등 넓이는 또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갈 때에는 물결을 치는 것이 삼천 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올라가 여섯 달을 가서야 쉰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不知其幾千里也……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남쪽을 도모한다는 것은 흔히 영웅호걸이 웅대한 포부를 펴는 것을 비유한다.

114)맑고……싶구나:전설에 의하면, 무소의 뿔에 불을 붙여 비추면 깊은 물속의 괴물들을 다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진(晉)나라 때 온교(溫嶠)가 일찍이 우저기(牛渚磯)에 이르렀을 때 그 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고, 또 괴물이 많이 있다고 세상에 알려진 곳이었으므로, 마침내 무소의 뿔에 불을 붙여 비추어 보니, 온갖 기형 이상(奇形異狀)의 수족(水族)들이 다 보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67 溫嶠列傳》

115)오잠(鼇岑):큰 자라가 머리에 이고 있다는 다섯 신산(神山)으로, 여기서는 여러 섬들을 가리킨다. 160쪽 주 5) 참조.

116)신기루(蜃氣樓):태양의 광선과 수증기와의 관계로 인하여 특히 해변의 상공에 산천(山川)이나 성곽(城郭) 등의 모양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117)약수(弱水):서해(西海) 가운데 위치한 선경(仙境) 봉린주(鳳麟洲)를 둘러싸고 있다는 강 이름이다.

118)동해(東海)……잔잔하고: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섭정하던 때에 천하가 태평해지자, 월상씨(越裳氏)가 중역(重譯)을 통하여 와서 주공에게 꿩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저희 나라의 노인들이 말하기를 ‘하늘이 오래도록 거센 비바람을 내리지 않고 바다에도 파도가 일지 않은 지 지금 3년이 되었으니, 아마도 중국에 성인(聖人)이 있는 듯한데, 왜 가서 조회하지 않느냐.’라고 하므로, 왔습니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나라가 태평함을 의미한다.

119)일생……한 벌인데:양구(羊裘)는 양피(羊皮)로 지은 갖옷을 말하는데,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어릴 적 학우(學友)이기도 했던 은사(隱士) 엄광(嚴光)이 광무제가 등극한 이후로는 광무제의 간곡한 부름을 끝내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면서 양구를 입고 동강(桐江)에서 낚시질을 하며 일생을 보냈던 데서 온 말이다.

120)금오(金鼇)를……쉬었네:금오는 발해(渤海) 동쪽에 있는 다섯 신산(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금색의 자라이다. 160쪽 주 5) 참조. 금오를 낚는다는 것은 곧 남아의 장한 기개와 원대한 포부를 비유한다. 이백(李白)이 한 재상을 알현하면서 ‘해상조오객(海上釣鼇客)’이라 자칭하자, 재상이 묻기를 “선생이 창해에 임하여 큰 자라를 낚으려면 무엇을 낚시와 줄로 삼겠는가?[先生臨滄海 釣巨鼇 以何物爲鉤絲]” 하니, 이백이 말하기를 “무지개를 낚싯줄로 삼고, 밝은 달을 낚시로 삼겠소.[以虹霓爲絲 明月爲鉤]” 하므로, 재상이 또 묻기를 “미끼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何物爲餌]” 하니, 이백이 말하기를 “천하에 의기 없는 장부를 미끼로 삼겠소.[以天下無義氣丈夫爲餌]”라고 했다 한다. 《唐語林 卷5 李白謁相》

121)철적(鐵笛):은자(隱者)나 고사(高士)가 불었던 젓대이다. 162쪽 주 11) 참조.

122)종소리가……일으켜:161쪽 주 9) 참조.

123)세류영(細柳營):한 문제(漢文帝) 때의 명장(名將) 주아부(周亞夫)의 군영(軍營) 이름이다. 당시 주아부의 군영에는 군령(軍令)이 대단히 엄격하였으므로, 문제가 일찍이 여러 군영을 두루 시찰하고 나서 유독 주아부를 일러 진장군(眞將軍)이라고까지 칭찬했던 데서, 전하여 명장의 군영을 의미한다. 《漢書 卷40 周勃傳》

124)온종일……들리누나:후한(後漢) 때 제준(祭遵)은 장군이 되었을 때 항상 유술(儒術)이 있는 선비들만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반드시 아시(雅詩)를 노래하고 투호(投壺)를 즐겼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진영(鎭營)에서 투호를 한다는 것은 곧 유장(儒將)의 한아(閒雅)한 기상을 의미한다.

125)또……한도(漢都)이며:이 부분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거하여 ‘又遷北漢山城卽今漢都也’ 11자를 보충하여 번역한 것이다.

126)순치보거(脣齒輔車)의 형세:순치는 입술과 이를 말하고, 보거는 광대뼈와 잇몸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피차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여 서로서로 의지하는 사물에 비유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보거는 수레의 덧방나무와 수레의 몸통을 가리킨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조에 “광대뼈와 잇몸이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게 된다.[輔車相依 脣亡齒寒]”라고 하였다.

127)오룡(五龍)이……마치었네:오룡은 천자의 수레를 오룡거(五龍車)라 칭하는 데서, 전하여 여기서는 천자의 군대, 즉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치기 위해 거느리고 온 당군(唐軍)을 가리키고, 쌍봉(雙鳳)은 백제의 의자왕(義慈王)과 그의 비(妃)를 가리킨다. 천안부(天安府)를 쳤다는 것은 곧 직산(稷山)의 고호가 위례성(慰禮城)인데, 당시 위례성이 천안부의 소속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128)누런……가고:누런 구름이란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을 형용한 말이다.

129)붉은……시름겹네:붉은 비단이란 붉게 물든 단풍잎을 형용한 말이다.

130)분주하는……같아라:목우인(木偶人)은 나무로 만든 인형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목우인 같다는 것은 곧 동서남북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처지를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인형에 비유한 것이다.

131)곧장……올라오니:큰 자라가 동해(東海) 가운데 신산(神山)들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160쪽 주 5) 참조.

132)이에……노래하노라:원유편(遠遊篇)을 노래한다는 것은 곧 굴원(屈原)의 〈원유〉에 선인(仙人)들과 함께 유희하면서 천지 사방을 이르지 않은 데 없이 두루 유람하고자 하는 뜻을 피력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방을 유람하거나 먼 길에 여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133)양곡(陽谷):해가 뜨고 해가 목욕한다는 곳, 즉 양곡(暘谷)과 같은 뜻으로, 전하여 태양(太陽)의 뜻으로도 쓰인다.

134)금계(金鷄)는……노래졌네:《고려사(高麗史)》 권93 〈최승로전(崔承老傳)〉에 의하면 “금계가 자멸한 때를 만나서, 병록이 재차 일어날 운세를 탔다.[値金鷄自滅之期 乘丙鹿再興之運]”라고 하였는데, 금계는 곧 고호가 계림(鷄林)인 신라를 가리키고, 병록(丙鹿)은 여(麗) 자의 파자(破字)로, 즉 고려를 가리킨다. 그리고 잎이 노래졌다는 것은 곧 계림, 즉 신라가 멸망한 것을 이른 말이다.

135)박조(朴祖)는……전하였고:박조는 바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를 가리키고, 작조(鵲祖)는 곧 신라의 제4대 임금인 석탈해왕(昔脫解王)을 가리킨 것으로, 성(姓)은 석씨(昔氏)이다. 석탈해왕에 관한 신화에 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신라 제2대 남해왕(南解王) 때에 아진포(阿珍浦)에 거주하던 한 노파가 어느 날 바다에서 까치들이 떼 지어 날며 우짖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가 보니, 거기에 배 한 척이 있고 배 안에 큰 궤짝이 있어 열어 본 결과, 그 속에 단정하게 생긴 한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곧 용성국(龍城國)의 왕비에게서 알[卵]로 태어나 버려져서 배에 띄워져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뒤에 남해왕의 사위가 되고 대보(大輔)에 올라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아 보다가 후일 남해왕의 유언에 따라 왕위에 오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136)김왕(金王)은……똑같았네:김왕은 곧 신라왕(新羅王)을 말하고, 전왕(錢王)은 당나라 말기에 소항(蘇杭) 지방에 웅거하여 오월국왕(吳越國王)에 봉해진 전류(錢鏐)를 가리키는데, 그가 죽고 그의 아들 원관(元瓘)을 거쳐 손자 숙(俶)에 이르기까지 80여 년 동안 오월국왕을 세습해 오다가, 송 태종(宋太宗) 연간에 이르러 숙(俶)이 자기의 관할지 30주(州)를 몽땅 송(宋)에 바치고 등왕(鄧王)에 봉해졌다. 여기서는 곧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것을 오월국왕의 일에 빗대서 한 말이다.

137)상심스러워라……전복되어:삼성(三姓)은 곧 신라 왕족의 세 성씨, 즉 박(朴), 석(昔), 김(金)을 말한 것으로, 신라가 완전히 멸망했음을 의미한다.

138)깨진……보이고:김생(金生)은 신라 시대 명필가로, 예서(隸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모두 뛰어나 해동(海東)의 초성(草聖)으로까지 일컬어졌다고 한다.

139)옛……남기었네:최치원(崔致遠)은 신라의 학자로 특히 문장이 뛰어났고, 만년에는 명산(名山), 대찰(大刹) 등지를 두루 유람하면서 지냈다.

140)포석정(鮑石亭):신라 시대 경주부(慶州府)의 남쪽, 금오산(金鼇山) 서쪽 기슭에 있던 정자 이름인데, 돌을 다듬어 포어(鮑魚)의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여기에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유적이 완연히 남아 있다고 한다. 신라 경애왕(景哀王)이 비빈(妃嬪), 종척(宗戚)들과 함께 포석정에 나아가 잔치를 벌이고 질탕하게 즐기다가 마침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입을 받아 속수무책으로 당함으로써 끝내 신라가 멸망하고 말았다. 유상곡수란 곧 굽어 꺾여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마시며 흥겹게 놀던 풍류 놀이인데, 진(晉)나라 때 왕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의 연회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141)오릉(五陵):경주(慶州) 탑정동(塔亭洞)에 있는 신라의 다섯 능묘(陵墓)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그의 비(妃) 알영(閼英), 제2대 남해왕(南解王),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4대 파사왕(婆娑王)의 능묘로 알려져 있다.

142)석보(石堡)와 금성(金城):금성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 때에 경주(慶州) 동쪽에 쌓은 토성(土城)이라고 전하는데, 석보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143)까마귀……생각나고:신라 소지왕(炤智王) 10년 1월 15일에 임금이 천천정(天泉亭)에 거둥할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쫓아가 보라.” 하므로, 임금이 기사(騎士)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였다. 기사가 남쪽으로 피촌(避村)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또 두 마리 돼지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머뭇거리고 서서 그것을 구경하다가 문득 까마귀의 간 곳을 잃었는데, 이때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글을 올렸다. 겉봉에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라고 쓰여 있었으므로, 마침내 열어 보니 “거문고의 갑을 쏘아라.[射琴匣]”라고 되어 있어, 임금이 즉시 궁에 들어가 금갑을 쏘아 놓고 보니, 바로 내전에서 공불(供佛)하던 중이 궁주(宮主)와 간통을 하고 마침내 왕을 살해하려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끝내 까마귀에 힘입어 그 중을 죽이고 화를 면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금갑(金甲)은 금갑(琴匣)의 착오인 듯하다. 《三國遺事 卷1 射琴匣》

144)개구리……생각나네: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서 한겨울에 개구리들이 3, 4일 동안을 울어 대자, 나라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물으니, 왕이 급히 각간(角干) 알천(閼川)․필탄(弼呑) 등에게 명하기를 “정병 2000명을 이끌고 속히 서쪽 교외로 나가서 여근곡이 어딘지 물어보아라. 거기에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그들을 기습하여 쳐 죽여라.[鍊精兵二千人 速去西郊 問女根谷 必有賊兵 掩取殺之]” 하므로, 두 각간이 명을 받들어 각각 군사 1000명씩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 가서 물어보니, 과연 부산(富山) 아래에 여근곡이 있었고, 백제 군사 500명이 그곳에 와서 숨어 있었으므로, 마침내 그들을 기습하여 모두 쳐 죽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三國遺事 卷1 善德王知幾三事》

145)흰……숭상했었고:신라 법흥왕(法興王) 때 내사사인(內史舍人) 이차돈(異次頓)이 불교를 매우 신봉했는데, 당시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삼고자 했으나 평소 무교(巫敎)에 젖어 온 조신(朝臣)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차돈이 홀로 불교의 숭상을 주장하다가 순교(殉敎)를 자청하여 마침내 주살(誅殺)당하게 되자, 그가 “부처님이 신령하다면 내가 죽은 뒤에 반드시 이적(異蹟)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의 목을 베자, 과연 머리는 멀리 날아가 금강산(金剛山) 꼭대기에 떨어지고, 잘린 목에서 흰 젖이 수십 길[丈]이나 솟아올랐으며, 갑자기 캄캄해진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고 땅이 크게 진동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146)황동(黃童)은……갚았었지:황동은 신라 시대 황창랑(黃倡郞)을 가리킨다. 전설에 의하면, 황창랑이 나이 7세 때 백제의 시가(市街)에 들어가서 칼춤을 추자, 구경꾼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백제왕이 그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다 보고는 이어 전당(殿堂)에 올라와서 춤을 추게 하자, 황창랑이 그 틈을 타서 백제왕을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백제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므로, 신라 사람들이 그를 슬프게 여겨 그의 모습을 본떠서 칼춤 추는 형상의 탈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그 탈춤이 전해 오고 있다고 한다.

147)북해(北海)의……씻어야겠네:북해는 후한 때의 학자로 일찍이 북해 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그는 본디 선비를 좋아하고 후진들을 교도하기 좋아하여 빈객(賓客)이 항상 그의 문에 가득했던바, 탄식하여 말하기를 “자리에는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동이에는 술이 항상 떨어지지만 않으면 나는 근심이 없겠다.[坐上客恒滿 樽中酒不空 吾無憂矣]”라고 했었다. 《後漢書 卷70 孔融列傳》

148)시림(始林):경주부(慶州府) 남쪽에 있던 수풀 이름이다. 탈해왕(脫解王) 연간에 시림 속에서 닭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대보(大輔) 호공(瓠公)을 보내서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궤(金櫃)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으므로, 임금이 그 궤를 가져오게 하여 열어 보니 그 안에 한 사내아이가 있는지라, 임금이 기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훌륭한 아들을 보내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곧 그를 거두어 양육하면서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로 하였으며, 그 수풀 이름을 계림(鷄林)으로 바꾸었다 한다. 《三國遺事 卷1 奇異》

149)옥적(玉笛):《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옥적의 길이는 한 자 아홉 치인데, 소리가 아주 맑았다고 한다. 동해(東海)의 용이 바친 것이라 하며, 신라의 역대의 임금들이 보배로 전했다고 한다.

150)능히……없는데:전삼(前三)은 불가의 용어인 전삼삼 후삼삼(前三三後三三)에서 온 말이다. 전과 후는 피차(彼此)와 같은 뜻이고, 삼삼은 무수 무량(無數無量)의 뜻을 나타낸 말로서, 즉 피차가 똑같이 무수 무량함을 의미한다. 당나라 때 무착 선사(無著禪師)가 남방(南方)인 항주(杭州)로부터 문수 보살(文殊菩薩)을 알현하기 위해 북방(北方)인 오대산(五臺山)에 당도하여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이 무착에게 “어디서 왔는가?” 하자, 무착이 “남방에서 왔습니다.” 하고, 이어서 묻기를 “북방의 불법은 어떻게 주지(住持)합니까?” 하니, 그 노인이 “용사(龍蛇)가 혼잡하고 범성(凡聖)이 동거(同居)한다.”라고 하므로, 무착이 “그것이 얼마나 됩니까?” 하자, 노인이 “전삼삼 후삼삼이니라.”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151)부질없이……있구려:장륙(丈六)은 곧 불상의 높이가 일장 육척(一丈六尺)이라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불상을 가리킨다.

152)법흥왕(法興王)……같았던고:법흥왕은 신라 제23대 왕으로, 불교를 크게 일으키려 했으나 귀족들의 반대에 의해 이루지 못하던 중,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마침내 불교를 국교로 삼아서 불교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요진(姚秦)은 후진(後秦)의 제2대 임금인 요흥(姚興)을 가리키는데, 그 또한 불법을 매우 좋아하여 일찍이 서역(西域)의 중 구마라습(鳩摩羅什)을 데리고 와서 불교의 여러 경(經), 논(論) 등을 번역하여 읽히게 함으로써 마침내 중국에 불교가 크게 행해져서 사녀(士女)로서 승니(僧尼)가 된 자가 무려 10인 중 6, 7인에 이르렀다고 한다.

153)노인들은……말하거니와: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당 태종(唐太宗) 연간에 영묘사(靈妙寺)를 창건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154)옛……있네:종(鐘)은 신라 혜공왕(惠恭王) 때에 주조(鑄造)한 봉덕사종(奉德寺鐘)을 가리키는데,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봉덕사로부터 이 종을 영묘사로 옮겨 달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혜공왕 시대가 당 대종(唐代宗) 연간에 해당한 것으로 보아, 여기 당황(唐皇)은 곧 당 대종을 가리킨 듯하다.

155)서라벌(徐羅伐):신라의 고호이다.

156)말이……황당커니와:용이 낳았다는 것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5년에 용이 우물에서 나와 오른쪽 갈빗대 사이로 여아(女兒)를 낳았는데, 한 노파가 이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그 여아를 거두어 길러서 후일 시조의 왕비인 알영(閼英)이 되었으므로, 뒤에 그 우물을 알영정(閼英井)이라고 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말이 울었다는 것은 자세하지 않다.

157)옥대(玉帶)의……사라졌고:옥대는 옥으로 만든 띠인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원년에 신인(神人)이 궁전에 내려와서 임금에게 말하기를 “상제(上帝)께서 나에게 명하여 옥대를 전하라 하였습니다.” 하고 이것을 임금에게 바치자, 임금이 꿇어앉아서 받았고, 교묘(郊廟)의 대사(大祀)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착용하였으며, 역대에 보물로 전해 왔다고 한다. 금궤(金櫃)에 대해서는 206쪽 주 148) 참조.

158)동타(銅駝)의……흔들리네:동타는 한(漢)나라 때 낙양(洛陽)의 궁문 밖에 비치한, 동(銅)으로 주조한 낙타(駱駝)를 가리키는데, 진(晉)나라 때 색정(索靖)이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알고는 그 동타를 가리키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네가 곧 가시덤불 속에 묻히는 것을 보게 되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나라가 망한 것을 뜻한다. 석양(石羊)은 옛날 왕이나 귀인(貴人)의 능묘(陵墓)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양을 가리킨다. 《晉書 卷30 索靖列傳》

159)다시……없고:치병(齒餠)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임금을 정할 때, 떡을 먹어 보아서 이[齒]의 자국을 보아 이의 숫자가 많은 사람을 임금으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160)성곽(城郭)은……아니라:한(漢)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으로 변화하여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성문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는데, 한 소년이 활을 가지고 그를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가, 집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예전 같은데 사람은 그때 사람 아니어라, 어이해 신선 안 배우고 무덤만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오랜 세월의 변천을 의미한다. 《藝文類聚 卷78》

161)알영전(閼英殿)……떠났으려니와:208쪽 주 156) 참조.

162)탈해(脫解)가……사라졌구나:202쪽 주 135) 참조.

163)나정(蘿井):경주(慶州)에 있는 우물 이름인데, 신라 소지왕(炤智王) 연간에 이 우물에 용이 나타났다고 한다.

164)죽릉(竹陵):신라 제13대 미추왕(味鄒王)의 능을 가리킨다.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에 이서국(伊西國) 사람이 금성(金城)을 침공해 왔으나 막을 길이 없었는데, 갑자기 댓잎[竹葉]으로 귀고리를 한 이상한 군사들이 와서 도와주어 적병을 무난히 물리칠 수 있었다. 적병이 물러간 뒤에 그 이상한 군사들은 간 곳을 알 수 없고 다만 미추왕릉 앞에 댓잎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선왕의 음공(陰功)이라 여기고 인하여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 또는 죽장릉(竹長陵)이라고 칭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165)삼보(三寶):신라 시대 대대로 전해 왔다는 세 가지 보물, 즉 장륙금상(丈六金像), 구층탑(九層塔), 그리고 일명 성제대(聖帝帶)로 일컬어졌던 옥대(玉帶)를 합칭한 말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그중 옥대는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항복한 뒤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한다. 이 옥대를 바치기에 앞서 신라의 사자 김률(金律)이 고려에 갔을 때, 고려 태조가 그에게 묻기를 “들으니, 신라에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장륙금상, 구층탑, 그리고 성제대라 하더라. 그것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김률이 성제대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태조가 웃으며 이르기를 “경은 귀한 신하로서 어찌 모른단 말인가.” 하니, 김률이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 그것을 수소문하여 찾아서 고려에 바쳤다고 한다.

166)금여(金輿)……임금이며:금여는 임금의 수레를 말한 것으로, 여기서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한 것을 이른 말이다.

167)옥적(玉笛)이……해이던고:옥적은 신라의 보물이다. 206쪽 주 149) 참조.

168)삼롱(三弄):옛 악곡(樂曲) 이름인 매화삼롱(梅花三弄)의 약칭인데, 또는 세 곡조 연주의 뜻으로도 쓰인다. 진(晉)나라 때 환이(桓伊)는 본디 젓대를 잘 불었는데, 그가 청계(淸溪)를 지날 적에 서로 전혀 알지 못하던 왕휘지(王徽之)가 사람을 시켜 그에게 젓대 한 곡을 불어 달라고 요청하자, 그가 문득 수레에서 내려 호상(胡牀)에 걸터앉아서 세 곡조를 연달아 불어 마치고 갔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81 桓伊列傳》

169)석수(石獸):옛날 제왕(帝王)이나 고관(高官)의 능묘 앞에 흔히 세우는 짐승 모양의 석조물(石雕物)을 가리킨다. 원(元)나라 조맹부(趙孟頫)의 〈악악왕묘(岳鄂王墓)〉 시에 “악왕의 무덤 위엔 잡초가 무성하여라, 가을날 황량한 곳에 석수만 덩그렇네.[鄂王墓上草離離 秋日荒涼石獸危]”라고 하였다.

170)윤건 백우(綸巾白羽)로……이루었는데:윤건은 깁[紗]으로 만든 두건(頭巾)을 가리키고, 백우는 백조(白鳥)의 깃으로 만든 부채, 즉 백우선(白羽扇)을 말한다.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진중(陣中)에서 항상 소여(素輿)를 타고 윤건을 쓰고 백우선을 손에 들고 삼군(三軍)을 지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171)단려 황초(丹荔黃蕉)는……일으키네:단려는 남방(南方)에서 나는 과일, 즉 붉은 여지(荔枝)를 가리키고, 황초는 역시 남방에서 나는 과일, 즉 노란 바나나를 가리키는바, 한유(韓愈)의 〈유주나지묘비(柳州羅池廟碑)〉에 “여지는 빨갛고 바나나는 노란데, 고기와 채소 곁들여 자사의 사당에 올리네.[荔子丹兮蕉黃 雜肴蔬兮進侯堂]”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단려와 황초는 곧 제사에 쓰는 제수를 의미한다.

172)요리(要離)……없구려:요리는 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자객(刺客)이다. 오왕 합려(吳王闔閭)가 일찍이 자객 전제(專諸)를 시켜 오왕 요(吳王僚)를 죽이고, 또 요리를 시켜 위(衛)나라에 망명해 있는 오왕 요의 아들 경기(慶忌)를 죽이게 하였다. 이에 요리가 오왕에게 청하여 자기 오른팔을 자르고, 처자(妻子)를 다 죽인 다음, 죄인을 사칭(詐稱)하고 위나라에 들어가 경기를 만나서 오왕 합려를 공격하자는 뜻으로 모의를 하고는 함께 배를 타고 오나라로 돌아가던 중, 경기를 죽여서 강물에 던져 버리고 요행히 자기 목숨은 부지했다. 그러나 요리가 스스로 인(仁), 의(義), 용(勇)을 저버린 악인이 무슨 면목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면서 마침내 복검 자살(伏劍自殺)했는데,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그를 충렴(忠廉)한 사람으로 평하였다.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은 본디 평릉(平陵) 사람으로, 평생 동안 이리저리 은거 생활을 하다가 만년에는 오(吳)나라에 들어가 은거했다. 그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친구 고백통(皐伯通) 및 회계(會稽)의 사대부들에게 말하기를 “옛날에 연릉계자도 죽어서 영박 사이에 장사 지냈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으니, 행여도 내 처자식들이 내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해 가도록 들어주지 말아다오.[昔延陵季子葬嬴博之間 不歸故鄕 愼勿聽妻子持尸柩去]”라고 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과연 고백통 등이 그의 장사 지낼 곳을 찾다가, 요리의 고총(古冢) 곁의 지세가 높고도 건조함을 보고는 여러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요리는 옛 열사인데, 지금의 백란 또한 청백하고 고결하니, 두 사람의 묘소를 서로 가까이 두는 게 좋겠다.[要離古烈士 今伯鸞亦淸高 令相近]” 하고, 마침내 양홍을 그곳에 장사 지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梁鴻》

173)옛날의……전하누나:천관사(天官寺)는 김유신(金庾信)이 일찍이 사랑했던 기생(妓生) 천관(天官)의 집을 절로 바꾸어 창건한 것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김유신이 어렸을 적부터 그의 어머니에게 날마다 교유(交遊)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엄한 훈계를 받아 오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천관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집에 돌아갔다가 어머니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자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서 다시는 그 집 문 앞을 지나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나, 또 어느 날 술에 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말이 잘못 이전에 다니던 길을 따라 다시 그 집으로 갔는지라, 김유신이 잘못을 깨닫고 마침내 타고 갔던 말의 목을 베어 죽이고 돌아왔더니, 천관이 그 광경을 보고는 원사(怨詞)를 지어 노래했다고 한다. 후일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뒤에 옛 여인을 위하여 그녀의 집에 절을 세우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174)기럭은……잠기네:여기서 ‘글자’라고 한 것은 곧 열(列)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안자(雁字)라고 하는 데서 온 말인데, 기러기 떼는 흔히 일(一) 자, 또는 인(人) 자 모양으로 열을 지어 날아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175)양장판(羊腸坂):산서성(山西省)에 위치한 비탈길을 말한다. 비탈길이 마치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여 매우 험난하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이것을 흔히 험난한 세로(世路)에 비유하기도 한다.

176)양양(襄陽):예천(醴泉)의 고호이다.

177)화산(花山):안동(安東)의 고호이다.

178)괴안국(槐安國):당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술에 취하여 자기 집 남쪽에 있는 홰나무[槐樹] 밑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대괴안국(大槐安國)이란 나라로부터 초빙을 받고 가서 남가군 태수(南柯郡太守)가 되어 부귀영화를 실컷 누리다가 깨었다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낮잠, 또는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의미한다. 《南柯記》

179)조용히……얻었더니:두보(杜甫)의 시에서 따온 표현이다. 161쪽 주 9) 참조.

180)다시……잃어버렸네:여기서 내가 가진 것이란 바로 도(道)를 가리킨다. 《장자》 〈전자방(田子方)〉에 의하면, 전국 시대 초왕(楚王)이 범(凡)나라 임금과 마주 앉았을 적에 초왕의 좌우에서 “범나라가 망할 조짐이 세 가지가 있다.[凡亡者三]”라고 말하자, 범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범나라가 망한다 해도 내가 가진 것을 잃는 것은 아니다. 대저 범나라가 망한다 해도 내가 가진 것을 잃는 것은 아니거니, 초나라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존재한 것을 항상 존재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본다면 우리 범나라는 애당초 망한 적이 없었고, 초나라 또한 애당초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凡之亡也 不足以喪吾存 夫凡之亡 不足以喪吾存 則楚之存 不足以存存 由是觀之 則凡未始亡 而楚未始存也]”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181)촉도난(蜀道難):촉도는 사천성(四川省) 촉중(蜀中)의 매우 험준한 길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의 〈촉도난〉에 “우와 위험하고도 높아라, 촉도의 험난함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렵도다.[噫吁戱危乎高哉 蜀道之難難於上靑天]”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흔히 세로(世路)의 험난함을 촉도에 비유하기도 한다. 《李太白集 卷2》

182)반드시……아니로다: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모신(謀臣)인 범려(范蠡)가 일찍이 오왕(吳王) 부차(夫差)로부터 회계(會稽)의 치욕을 당한 월왕의 보복을 위해, 미인 서시(西施)를 오왕에게 바쳐서 그의 마음을 현혹되게 하여 끝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이내 월왕에게 하직하고, 다시 서시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배를 띄워 함께 떠나 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흔히 신하가 공을 이룬 뒤에는 미련 없이 은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183)금오(金鼇)를……못한다오:금오를 낚는다는 것은 남아의 장한 기개와 원대한 포부를 의미한다. 194쪽 주 120) 참조.

184)구름은 무심히 나온다지만: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에서 나오고, 새는 날다가 지쳐 돌아올 줄을 아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85)물……그만이거니: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서 따온 표현이다. 173쪽 주 57) 참조.

186)옥삭(玉槊):벽옥(碧玉)의 창대 같다는 뜻에서, 본디 대나무를 비유한 말인데, 여기서는 쪽곧은 삼나무에 비유하였다.

187)무수한……이어졌는데:단정(短亭)은 5리마다 설치한 역참(驛站)을 말하고, 장정(長亭)은 10리마다 설치한 역참을 말한다.

188)양관곡(陽關曲):이별곡을 뜻한다. 188쪽 주 97) 참조.

189)해마다……이루리:동지 이후 세 번째 술일(戌日)에 지내는 제사를 납제(臘祭)라 하는데, 삼백(三白)은 납제 이전에 눈이 세 차례 내리는 것을 말한다. 농가의 말에 납제를 지내기 전까지 세 차례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이것을 흔히 납전삼백(臘前三白)이라고 한다.

190)구름을……말했던고:218쪽 주 184) 참조.

191)용면(龍眠):송대(宋代)의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이다. 188쪽 주 100) 참조.

192)금계(金鷄):본디 천상에 산다는 금계성(金鷄星)의 닭을 가리키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닭이 천상에서 새벽을 알리면 지상의 모든 닭이 그 소리에 응하여 다 같이 울어 댄다고 한다.

193)육룡(六龍)이……나오니:육룡이란 본디 천자의 어가(御駕)에 채우는 육마(六馬)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태양의 운행을 천자의 행차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194)구오(九烏):태양의 별칭이다.

195)삼백(三白):납제(臘祭) 이전에 눈이 세 차례 내리는 것을 말한다. 219쪽 주 189) 참조.

196)누리가……테니:누리는 메뚜기 비슷한 것으로 떼를 지어 날아다니면서 벼에 큰 해를 끼치는 곤충인데, 눈이 많이 오면 이 곤충이 땅속 깊이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설후서북대벽(雪後書北臺壁)〉 시에 “누리가 응당 천척의 땅속으로 들어가리니, 하늘 닿게 자란 보리 몇 집이나 풍년을 맞을꼬.[遺蝗入地應千尺 宿麥連雲有幾家]”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2》

197)명년에는……거두겠구나:백 전(廛)의 벼란, 《시경(詩經)》 〈위풍(魏風) 벌단(伐檀)〉에 “심지 않고 수확하지 않으면, 어떻게 삼백 전의 벼를 수확하랴.[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집주(集註)에 전(廛)은 곧 한 가구의 주택이라고 하였다.

198)유수곡(流水曲):본래는 옛날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연유된 금곡(琴曲)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단지 흐르는 물소리를 형용한 것일 뿐이다.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친구 종자기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는데, 백아가 일찍이 ‘높은 산[高山]’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듣고 말하기를 “좋다, 높다란 것이 마치 태산과 같구나.[善哉 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백아가 ‘흐르는 물[流水]’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또 말하기를 “좋다, 광대한 것이 마치 강하와 같구나.[善哉 洋洋兮若江河]”라고 하여, 백아가 생각한 것은 종자기가 반드시 다 알아들었다. 종자기가 죽은 뒤로는 백아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하여 마침내 거문고를 부숴 버리고 종신토록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199)풍류(風流)는……할는지:영화(永和)는 진 목제(晉穆帝)의 연호이고, 왕 우군은 곧 우군 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진 목제 영화 9년(353) 삼월 삼짇날, 즉 상사일(上巳日)에 왕희지,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당대의 명사(名士) 40여 인이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행하고, 이어 ‘곡수에 술잔을 띄우고[流觴曲水]’ 시를 읊으면서 성대한 풍류놀이를 했다. 이때 〈난정기(蘭亭記)〉를 왕희지가 직접 짓고 쓰고 하여 명문 명필(名文名筆)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200)부별(富別)이나 빈별(貧別):부별은 부자의 이별을 말하고, 빈별은 빈자의 이별을 말한다. 맹교(孟郊)의 〈장안유별이관한유인헌장서주(長安留別李觀韓愈因獻張徐州)〉 시에 “부자의 이별은 시름이 낯에 있거니와, 빈자의 이별엔 시름이 뼈를 녹인다오.[富別愁在顔 貧別愁銷骨]”라고 하였다.

201)여구가(驪駒歌):〈여구〉는 일시(逸詩)의 편명으로, 이는 송별할 때에 부르는 노래인데, 전하여 이별가의 뜻으로 쓰인다. 그 가사에 “검은 망아지가 문에 있으니, 마부가 다 함께 있도다. 검은 망아지가 길에 있으니, 마부가 멍에를 다스리도다.[驢駒在門 僕夫具存 驢駒在路 僕夫整駕]”라고 하였다.

202)인대(麟臺)며 황각(黃閣):인대는 한 선제(漢宣帝)가 곽광(霍光), 장안세(張安世), 소무(蘇武) 등 공신 11인의 초상을 그려서 걸게 했던 전각, 즉 기린각(麒麟閣)을 말한 것으로, 이는 곧 국가에 공훈을 세워 공신에 책록되는 것을 말하고, 황각은 바로 재상이 집무하는 전각을 말한다. 전하여 인대와 황각은 부귀공명을 의미한다.

203)금장니(錦障泥):비단으로 장식한 말다래를 말한다.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의 옷에 진흙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죽 같은 것으로 만들어 안장 양쪽에 늘어뜨리는 물건을 이른다.

204)제영(題詠)……같구려:붓이 깃대 같다는 것은 곧 웅건한 문장력을 비유한 말이다. 구양수(歐陽脩)의 〈여산고(廬山高)〉 시에서 그곳 여산에 은거한 유환(劉渙)의 고상한 절조를 찬미한 끝에 “장부의 장절치고 그대만 한 이 드물거니, 아 내가 그걸 말하려면 깃대 같은 큰 붓을 어떻게 얻을꼬.[丈夫壯節似君少 嗟我欲說安得巨筆如長杠]”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205)청천(晴川)의……있는고: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 시에서 온 표현이다. 168쪽 주 32) 참조.

206)고목(孤鶩)의……없다마다:당 고조(唐高祖)의 아들인 이원영(李元嬰)이 홍주 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 화려한 누각을 짓고, 당시 그가 등왕(滕王)에 봉해졌었기 때문에 이 누각을 등왕각이라 불렀는데, 그 후 고종(高宗) 연간에 홍주 목사(洪州牧使) 염백서(閻伯嶼)가 이 누각을 중수(重修)한 기념으로 9월 9일 중양일(重陽日)에 여기에서 큰 연회를 베풀 적에 초당 사걸(初唐四傑) 가운데 한 사람인 왕발(王勃)이 여기에 참석하여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어 그의 명성이 천재로 일컬어졌던바, 그 〈등왕각서〉 중에서도 “저녁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고 한 구절이 가장 회자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207)역려(逆旅)에……듯하고:역려는 여관을 가리키고, 광음(光陰)은 세월을 가리키는바,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대저 천지는 만물의 여관 같은 것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 같은 것인데, 덧없는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거니, 즐기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 而浮生若夢 爲歡幾何]”라고 하였다.

208)금강사(金剛社):김해부(金海府)의 북쪽 대사리(大寺里)에 있는데,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합포(合浦)에 행차했을 때 여기에 와서 놀았다 한다. 여기에는 또 불훼루(不毁樓)가 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2 金海都護府》

209)분성(盆城):김해(金海)의 고호이다.

210)금관(金官)은……늙었는데:금관은 역시 김해의 고호이다. 하늘땅이 늙었다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의미한다.

211)장군수(將軍樹):김해의 금강사에는 예로부터 산다수(山茶樹)가 있어 온 뜰을 다 덮었는데, 고려 충렬왕이 여기에 와서 어가를 멈추고 놀면서 이 산다수를 장군(將軍)이라 호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212)금릉(金陵)의 지난 일:금릉은 지금의 남경(南京)이다. 전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일찍이 이곳에 금을 묻어서 왕기(王氣)를 진압했기 때문에 금릉이라 이른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금릉의 지난 일이란 곧 제왕의 발상지를 가리키는바, 여기서는 바로 가야국(伽倻國)의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가리켜 한 말이다.

213)구지곡(龜旨曲)은……않지만:〈구지가〉는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고대 가요로서 〈영신군가(迎神軍歌)〉, 〈구지봉영신가(龜旨峯迎神歌)〉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가야국(伽倻國)의 고대 설화에 의하면 대략, 서기 42년 3월 계욕(禊浴)의 날에 구지봉(龜旨峯)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나 그 형상은 숨기고 소리만 내어 묻기를 “여기에 누가 있는가?”라고 하므로, 구간(九干) 등이 “우리가 있소.”라고 대답하니, 그는 또 “내가 있는 곳이 어딘가?”라고 하므로, 구간 등이 “구지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다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워 임금이 되라 하였으므로 이에 내려왔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정봉(頂峰)을 파서 흙을 모으면서 ‘……’라고 노래를 하라. 그리하면 곧 대왕을 맞이하여 너희들은 매우 기뻐서 춤을 추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는바, 〈구지가〉는 바로 그 노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 구간 등이 그의 말대로 따랐더니, 얼마 후에 자주색 노끈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으므로, 그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金合)이 싸여 있어, 이것을 열어 보니 그 속에는 해와 같이 둥근 황금빛 알 여섯 개가 있어 모든 사람이 서로 놀라고 기뻐하여 여기에 절을 하고 아도간(我刀干)의 집에 모셔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이 금합을 열어 보니 알 여섯 개가 모두 동자로 변해서 용모가 매우 준수하여 모두 6가야국의 왕이 각각 되었는데, 김수로왕 또한 그중의 한 사람으로,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수로(首露)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대가야국(大伽倻國)의 왕이 되었다 한다.

214)동타(銅駝):208쪽 주 158) 참조.

215)옹중(翁仲):전설에 의하면, 진 시황(秦始皇)이 처음 천하를 통일했을 때 임조현(臨洮縣)에 거인이 나타났던바, 키가 무려 5장(丈)에 발자국이 6척(尺)이나 되었으므로, 동인(銅人)을 주조(鑄造)하여 그를 상징하여 ‘옹중’이라 칭했다고 한 데서, 전하여 동상(銅像)이나 혹은 제왕 및 대신의 능묘에 세우는 석상을 말하기도 한다.

216)금사진(金蛇陣):고대(古代) 일종의 진법(陣法)으로 대오(隊伍)를 기다랗게 편성하는 것을 사진(蛇陣), 또는 일자장사진(一字長蛇陳)이라 칭하는 것이 있는바, 금사진 또한 여기에서 온 말이 아닌가 싶으나 자세하지 않다.

217)백이(百二)의 산하(山河):험고(險固)한 지형을 뜻한다. 178쪽 주 65) 참조.

218)백성은……있고:우모(羽旄)는 새의 깃으로 장식한 깃발을 이른다. 맹자(孟子)가 양 혜왕(梁惠王)에게 이르기를 “지금 왕께서 여기서 사냥을 하시면 백성들이 왕의 거마 소리를 듣고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흔연히 기쁜 기색이 있어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이 행여 병환이 없으신가. 어떻게 사냥을 하시는고.’라고 하면, 이는 다름이 아니라 백성으로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한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으로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하신다면 왕천하를 하실 것입니다.[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旄之美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 此無他 與民同樂也 今王與百姓同樂則王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下》

219)손수……버렸네:두보(杜甫)의 〈세병행(洗兵行)〉에 “어찌하면 장사로 하여금 은하수를 끌어와서, 갑병을 깨끗이 씻어 영원히 쓰지 않게 할꼬.[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오랑캐를 평정하고 전쟁을 중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杜少陵詩集 卷6》

220)단구(丹丘):신선이 산다는 선경(仙境)을 가리킨다.

221)지척(咫尺)……있거니:160쪽 주 5) 참조.

222)나는야……걸터타고:왕자진(王子晉)은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晉)을 가리키는데, 그가 일찍이 생(笙)을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이락(伊洛) 사이에 노닐다가 뒤에 신선이 되어 백학(白鶴)을 타고 승천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列仙傳》

223)십이동천(十二洞天):도가에서 말하는 열두 골짜기의 별천지, 즉 선경(仙境)을 이른다. 남창부(南昌府) 서산(西山)에 십이동천이 있다고 전한다.

224)철성(鐵城):고성(固城)의 고호이다.

225)기준(箕準)의……비꼈을꼬:후조선(後朝鮮)의 임금 기준은 기자(箕子)의 41대손인데, 그가 일찍이 위만(衛滿)의 난을 피하여 바다에 떠내려가 지금의 익산(益山) 땅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 호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226)금마(金馬):익산(益山)의 고호이다.

227)석양(石羊):옛날 왕이나 귀인(貴人)의 능묘(陵墓)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양을 가리킨다.

228)청수(淸瘦)함은……갑절일세:심랑(沈郞)은 송(宋), 제(齊), 양(梁) 삼조(三朝)에 걸쳐 벼슬이 상서령(尙書令)에 이르고 시문이 당대에 으뜸이었던 심약(沈約)을 가리키는데, 그가 평소에 워낙 청수하고 병이 많았던 데서 온 말이다. 그가 서면(徐勉)에게 준 서신(書信)에 의하면, 노쇠함에 따라 병이 점점 중해져서 외출하기도 극히 어렵고, 특히 상열 하냉(上熱下冷)의 증세가 극심하여 몸이 점점 수척해지고 있으니, 어찌 오래 지탱할 수 있겠느냐는 등등의 말이 있다. 《梁書 卷13 沈約列傳》 또 소식(蘇軾)의 〈차운왕공안부동범주(次韻王鞏顔復同泛舟)〉 시에 심약을 일러 “심랑은 청수하여 옷도 감당하지 못했는데, 변로는 똥똥한 배에 허리띠가 십위였다네.[沈郞淸瘦不勝衣 邊老便便帶十圍]”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7》

229)해……싶어라:초당(草堂)은 두보(杜甫)가 일찍이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 가의 초당에 우거했던 데서, 전하여 두보를 가리킨다. 두보의 〈강상(江上)〉 시에 “훈업을 염려해 자주 거울을 보고, 출처엔 어두워 홀로 누각 기대노라.[勳業頻看鏡 行藏獨倚樓]”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5》

230)꿈은……나누나:남조(南朝) 송(宋)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일찍이 영가(永嘉)의 서당(西堂)에서 온종일 시를 생각했으나 이루지 못했다가, 꿈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만나서 ‘못 둑에 봄풀이 난다.[池塘生春草]’라는 시구를 얻고는 대단히 만족하게 여겨 말하기를 “이 말에는 귀신의 도움이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此語有神助 非吾語也]”라고까지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못 둑의 봄풀이 난 꿈이란 곧 명작(名作)을 의미한다. 《南史 卷19 謝惠連傳》

231)황원(黃原):본디 영암(靈巖)의 속현(屬縣) 이름인데, 혹은 인명(人名)인지 자세하지 않다.

232)어부(魚符):조정에서 관원을 지방에 파견할 때 내주는 부신(符信)인데, 물고기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233)작아령(鵲兒嶺)……섰고:순천(順天)과 남원(南原)의 경계 지점에 오수(獒樹)가 있는바, 그에 얽힌 고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옛날에 남원 거령현(居寧縣)에 살던 김개인(金蓋仁)이란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개를 몹시 사랑했는데, 하루는 개인의 출행(出行) 길에 개가 따라갔던바, 개인이 술에 취하여 길가에서 잠이 들었을 때 들불이 일어나 개인의 누운 자리 가까이로 타 들어오자, 그 개는 근처의 냇물로 뛰어가 몸에 물을 적셔 와서 개인이 누워 있는 주위의 풀을 물로 적시되, 이 짓을 수없이 반복하여 불은 껐으나 개는 기진하여 죽고 말았다. 개인이 술 깬 뒤에 개의 모습을 보고는 매우 감동하여 노래를 지어 슬픔을 표하고 인하여 개를 묻어 주고 봉분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지팡이를 꽂아 표시를 해 놓았더니, 그 지팡이가 잎이 피는 나무가 되었는지라, 이로 인하여 그 지명을 ‘오수’라고 했다 한다.

234)연자루(燕子樓)……지었다네:손랑(孫郞)은 옛날 순천부(順天府)의 태수였던 손억(孫億)을 가리키고, 연자루(燕子樓)는 바로 순천부의 남쪽 옥천(玉川) 위에 걸쳐 있는 누각 이름이다. 옛날에 태수 손억이 관기(官妓) 호호(好好)와 이곳의 연회로 인해서 서로 사랑했던바, 그가 뒤에 관찰사가 되어 다시 그곳에 가 보니, 호호는 이미 늙어 버렸더라는 고사가 유명하다. 이 고사를 두고 통판(通判) 장일(張鎰)이 지은 시에 “서리 내린 달밤 처량도 해라 우뚝한 연자루에, 낭군이 한번 가고 나니 꿈만 유유하였네. 당시 한자리에 앉았던 손을 늙었다 꺼려 마소, 누각 위의 호호도 또한 백발이 되었는걸.[霜月凄涼燕子樓 郞官一去夢悠悠 當時座客休嫌老 樓上佳人亦白頭]”이라 하였다. 팔마비(八馬碑)에 대한 고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문신 최석(崔碩)이 승평 부사(昇平府使)가 되었다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적에, 앞서 승평부(昇平府)의 풍속에 수령이 갈릴 때마다 말 8필(匹) 씩을 주었던 터라, 그에게도 그 고을 사람들이 관례에 따라 말을 골라 가기를 청하였으나, 최석은 말을 고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 도착한 뒤에는 억지로 서울까지 딸려 보낸 말들을 다시 모두 되돌려 보냈다. 이때 상경 도중에 낳은 망아지까지 딸려 보내자, 고을 사람들이 그의 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워 ‘팔마비’라 이름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또한 이 고을에 수령에게 말을 주는 폐단이 없어졌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0 順天都護府》  목지(牧之)는 두목(杜牧)의 자이고, 〈자지시(子枝詩)〉란 두목이 지은 시이다. 두목이 일찍이 호주 자사(湖州刺史)로 있던 친구를 찾아가 노닐 적에 그곳의 이름난 미인들을 다 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어 자사(刺史)에게 청하여 물놀이[水戱]를 베풀어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게 하도록 하고는, 자신이 직접 구경꾼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살펴보니, 그중에 할미를 따라 구경 나온 10여 세쯤 된 여아가 있었는데, 참으로 국색(國色)이었다. 그래서 두목이 그 할미에게 “지금은 여아를 맞아들일 수 없고 후일로 미루어야겠으니, 내가 10년 뒤에 호주 자사가 되어 와서 여아를 맞을 것이로되, 만일 그때 오지 않으면 다른 데로 시집을 보내시오.”라고 말하고, 그에게 중폐(重幣)를 주어 약혼했다. 그 후 두목의 일이 늦어져서 14년 만에야 호주 자사로 부임하여 가 보니, 그 여아는 이미 다른 데로 시집간 지 3년이 되었고 두 아들까지 낳았다. 두목이 그들 모자를 불러 만나 보고 돌려보내면서 이별을 슬퍼하여 읊은 시에 “내가 본디 봄을 찾은 게 워낙 더디었으니, 서글피 꽃다운 시절을 한할 것도 없고말고. 거센 바람이 불어 짙붉은 꽃 다 떨어뜨리니, 푸른 잎새 그늘 이루고 가지엔 열매가 가득하구나.[自是尋春去較遲 不須惆悵恨芳時 狂風吹盡深紅色 綠葉成陰子滿枝]”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235)누각 밖엔……졌구나:235쪽 주 234) 참조.

236)신야(莘野)는 이윤(伊尹)에 대하여:신야는 유신국(有莘國)의 들이란 뜻이고, 이윤은 탕(湯) 임금의 현상(賢相)으로 일찍이 여기에서 농사를 지으며 은거했었다. 탕 임금이 그가 어질다는 명성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서 그를 초빙하였으나, 처음에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세 번째 사자가 왔을 때는 문득 마음을 바꾸어, 요순(堯舜)의 도를 직접 세상에 한번 행해 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가서 마침내 탕 임금을 도와서 그로 하여금 왕천하(王天下)를 이루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上》

237)위수(渭水)는 여상(呂尙)에 대하여:위수는 강 태공(姜太公) 여상이 출사(出仕)하기 전에 낚시질을 하며 은거하던 물 이름인데, 그가 뒤에 주 문왕(周文王)의 초빙을 받고 나가서 주나라를 도와 왕업을 이루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238)융중(隆中)은 공명(孔明)에 대하여:융중은 산명(山名)이고, 공명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의 자이다. 제갈량은 후한 말기 난세를 피하여 남양(南陽) 융중의 초려(草廬)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촉한 선주(先主)의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정성에 감동하여 나가서 마침내 촉한을 건국하게 하고 인하여 한실(漢室)의 회복에 충성을 다하였다. 선주가 죽은 뒤에는 다시 후주(後主) 선(禪)을 도와서 국궁 진췌(鞠躬盡瘁)하다가 끝내 진중(陣中)에서 전사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239)엄릉뢰(嚴陵瀨)는 엄광(嚴光)에 대하여:엄광은 후한 때의 은사(隱士)로 부춘산(富春山) 아래서 낚시질을 하며 은거한 데서, 엄릉뢰는 곧 그가 낚시질했던 곳을 일컬은 말인데, 엄광의 자가 자릉(子陵)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엄광은 본디 광무제(光武帝)와는 학창 시절의 친구 사이로, 광무제가 등극한 뒤에는 성명을 바꾸고 은거하다가, 광무제의 간절한 초빙에 의해 한번 대궐에 들어가서 광무제를 한번 만나만 보았을 뿐, 광무제의 간절한 요청을 뿌리치고 끝내 부춘산 아래로 돌아가 은거하여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240)창려(昌黎)는 퇴지(退之)에 대하여:창려는 현명(縣名)이고, 퇴지는 창려가 고향인 한유(韓愈)의 자이다. 한유는 벼슬이 이부 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는데, 죽은 뒤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고 창려 백(昌黎伯)에 봉해졌다.

241)기주(夔州)는 자미(子美)에 대하여:자미는 두보(杜甫)의 자인데, 두보가 기주 지방에 노닐 때 그곳 산천을 몹시 좋아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고 봉절현(奉節縣)의 산간에 흐르는 양수(瀼水)의 동쪽, 서쪽 등으로 세 번이나 집을 옮겨 살았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의 〈기주가(夔州歌)〉에 “양수 동쪽 양수 서쪽은 집이 일만 가호요, 강 북쪽 강 남쪽엔 봄이나 겨울이나 꽃이로다.[瀼東瀼西一萬家 江北江南春冬花]” 하였고, 또 〈자양서형비차이거동둔모옥(自瀼西荊扉且移居東屯茅屋)〉 시에는 “양수의 동쪽과 양수의 서쪽에서, 한결같이 시냇가에 머물다 보니, 오거나 가거나 모두가 띳집인데, 머무름은 농사를 짓기 위함일세.[東屯復瀼西 一種住淸溪 來往皆茅屋 淹留爲稻畦]”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5, 卷20》

242)미산(眉山)은 소씨(蘇氏)에 대하여:여기서 말한 소씨는 곧 고향이 미산인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삼부자(三父子)를 가리키는바, 이 삼부자는 모두 문장이 천하에 뛰어나서 다같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들었다.

243)부주(涪州)는 황정견(黃庭堅)에 대하여:황정견은 송대(宋代)의 뛰어난 시인이며 문장가였던바, 그가 일찍이 사관(史官)을 지내고 장돈(章惇), 채변(蔡卞) 등 소인들의 미움을 사서 마침내 부주 별가(涪州別駕)로 폄척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244)제주(滁州)는 구양수(歐陽脩)에 대하여:구양수는 송대(宋代)의 명상(名相)이며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는데, 일찍이 지제주사(知滁州事)로 있으면서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라 자호(自號)하고 고서에 탐취하여 유유자적하였던바, 이로 인하여 특히 제주에 구양수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245)벽옥잠(碧玉簪):본래는 벽옥으로 만든 비녀를 말하는데, 흔히 파랗게 빼어난 산봉우리를 비유한다.

246)아마도……있어:옛날 남해(南海)에는 교인(鮫人)이 있어 고기처럼 물속에 살면서 끊임없이 길쌈을 하고, 울기만 하면 구슬 눈물을 쏟아내는데, 그가 일찍이 물 밖에 나와 인가에 우거하다가, 그가 떠날 무렵에 주인이 구슬을 요청하자, 그가 울어서 구슬을 쟁반 가득히 받아 주인에게 주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蒙求 卷上 淵客泣珠》

247)그……아는고:약야사(若耶詞)는 이백(李白)의 〈채련곡(採蓮曲)〉을 가리킨다. 소흥부(紹興府) 약야산(若耶山)에서 나온 시내를 약야계(若耶溪)라 하는데, 미인 서시(西施)가 일찍이 여기서 비단을 빨았다 하여 일명 완사계(浣紗溪)라고도 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연(蓮)의 명소(名所)이기도 했으므로, 이백의 〈채련곡〉에 “약야계 가에 모여 연을 따는 아가씨들이, 연을 사이에 두고 서로 웃고 얘기 나누니, 해는 화장한 얼굴을 비춰 물속에 환히 비치고, 바람은 향기론 소매에 불어 공중에 펄럭이네.[若耶溪傍採蓮女 笑隔荷花共人語 日照新粧水底明 風飄香袖空中擧]”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3》

248)은해(銀海)가……얼겠지:은해는 도가(道家)에서 사람의 눈동자를 가리킨 말이고, 옥루(玉樓)는 역시 도가에서 사람의 어깨뼈[肩骨]를 가리킨 말로, 전하여 은해가 어른거린다는 것은 곧 하얀 눈빛에 눈이 부시어 어른거리는 현상을 형용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설후서북대벽(雪後書北臺壁)〉 시에 “얼음은 옥루에 얼어 추워서 소름이 일고, 빛은 은해를 흔들어 현란하게 어른거리네.[凍合玉樓寒起粟 光搖銀海眩生花]”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2》

249)절……있으리오:한산(寒山)은 당대(唐代)의 문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 시에 “달 지고 까마귀 울고 서리는 하늘 가득한데, 강가의 단풍 고기잡이불 곁에 시름겨이 조노라니, 멀리 고소성 밖의 한산사에서, 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배에 들려오누나.[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소릉(少陵)은 두보(杜甫)의 호로, 깊은 깨달음이란 곧 그의 〈유용문봉선사(游龍門奉先寺)〉 시에 “깨려던 차에 새벽 종소리 들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깨달음 얻게 하네.[欲覺聞晨鐘 令人發深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

250)용두(龍頭) 제일인(第一人):용두는 과거에 장원한 사람을 가리킨 말로, 여기서는 곧 풍천(豐川)이 관향인 임원준(任元濬)이 1456년(세조2)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한 것을 가리켜 한 말이다.

251)나는……날아오누나:요지연(瑤池宴)의 요지는 선녀인 서왕모(西王母)가 거주하던 곤륜산(崑崙山)의 선경이고, 요지연이란 바로 목천자(穆天子)가 일찍이 서왕모를 찾아가 요지 가에서 함께 연회를 가졌던 데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에 “마침내 서왕모의 빈이 되어 요지 가에서 연회를 가졌다.[遂賓于西王母 觴于瑤池之上]”라고 하였다. 파랑새는 곧 서왕모의 사자(使者)를 말하고, 벽도(碧桃)는 선경에 있는 큰 복숭아로, 3천 년 만에 한번씩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반도(蟠桃)를 가리킨다. 《한무고사(漢武故事)》에 의하면, 7월 7일에 갑자기 파랑새가 서방(西方)에서 날아와 승화전(承華殿) 앞에 내려앉으므로, 무제(武帝)가 그 연유를 동방삭(東方朔)에게 묻자, 동방삭이 말하기를 “서왕모가 오려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한참 뒤에 과연 서왕모가 오자, 파랑새 두 마리가 서왕모의 양쪽에서 시립(侍立)했다고 한다.

252)염예퇴(灩澦堆):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서남쪽으로 양자강(揚子江) 구당협(瞿塘峽)의 어귀에 큰 암석이 우뚝 서 있는 곳을 이르는데, 이 부근은 격류(激流)가 극심하여 배가 다니기 매우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다. 전하여 흔히 세상길의 험난함을 염예퇴의 격류에 비유하기도 한다.

253)양장(羊腸):양장판(羊腸坂)과 같은 말로 험난한 세로(世路)를 뜻한다. 214쪽 주 175) 참조.

254)예부터……아니라: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공자가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겼으니,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다른 물은 물이 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 종유한 사람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은 말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上》

255)내……찾아가:단구(丹丘)는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 것으로,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단구로 신선에게 나아감이여, 죽지 않는 고장에 머무르련다.[仍羽人於丹丘兮 留不死之舊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56)삼도(三島)를……싶네:삼도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를 말하고, 십주(十洲)는 신선이 거주한다는 10곳의 섬으로, 즉 조주(祖洲)․영주(瀛州)․현주(玄洲)․염주(炎洲)․장주(長洲)․원주(元洲)․유주(流洲)․생주(生洲)․봉린주(鳳麟洲)․취굴주(聚窟洲)를 말한다.

257)뽕나무……주오:《동파지림(東坡志林)》 〈삼로어(三老語)〉에, 일찍이 세 노인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중, 어떤 이가 나이를 묻자 그중 한 노인이 말하기를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변할 때마다 내가 산가지 하나씩을 내려놓았는데, 지금까지 내 산가지는 이미 열 칸의 집에 가득 찼다.[海水變桑田時 吾輒下一籌 邇來吾籌已滿十間屋]”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258)대추가……볼거나:안기생(安期生)은 전설상의 신선 이름인데,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소군(少君)이 임금에게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해상(海上)에 노닐면서 신선 안기생을 만나 보았는데, 그는 크기가 오이만 한 대추를 먹고 있었습니다.[臣嘗游海上 見安期生 食巨棗 大如瓜]”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28 封禪書》

259)아득한……범했는데:두우(斗牛)는 북두(北斗)와 견우(牽牛) 두 별을 가리킨다. 한 무제(漢武帝) 때 장건(張騫)이 사명을 받들고 서역(西域)에 나갔던 길에 뗏목을 타고 황하(黃河)의 근원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다가 한 성시(城市)에 이르니, 한 여인은 방 안에서 베를 짜고, 한 남자는 소를 끌고 은하(銀河)의 물을 먹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여기가 어디인가?”라고 묻자, 그 여인이 지기석(支機石) 하나를 장건에게 주면서 “성도(成都)의 엄군평(嚴君平)에게 가서 물어보라.” 하므로, 돌아와서 엄군평을 찾아가 지기석을 보이자, 엄군평이 “이것은 직녀(織女)의 지기석이다. 아무 연월일에 객성(客星)이 견우, 직녀를 범했는데, 지금 헤아려 보니, 그때가 바로 이 사람이 은하에 당도한 때였도다.”라고 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博物志

260)한번……찾음으로부터:박망후(博望侯)는 장건(張騫)의 봉호이다. 위의 주 259) 참조.

261)지기석(支機石):베틀에 괴는 돌을 말한다. 244쪽 주 259) 참조.

262)나는……하노라:여와씨(女媧氏)의 전설에서 온 말이다. 170쪽 주 44) 참조.

263)십홀(十笏):방(房)의 가로와 세로가, 2척 6촌 되는 홀(笏) 열 개를 합한 정도의 길이밖에 안 되는 아주 조그마한 선방(禪房)을 십홀방(十笏房)이라 칭하는 데서 온 말이다.

264)육오(六鼇)는……들었고:육오는 여섯 자라를 말하는데, 곧 다섯 신산(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큰 자라를 가리킨다. 160쪽 주 5) 참조.

265)구룡(九龍)은……통하였네:중국 각처에는 서수(瑞獸)인 용을 상징하여 우물을 구룡정(九龍井)이라 명명한 것이 아주 많거니와, 그중에 특히 녹읍현(鹿邑縣) 동고향(東皐鄕)의 태청궁(太淸宮)에 있었던 구룡정이 유명한데, 여기에는 노자(老子)가 탄생할 때에 구룡이 물을 토해 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전하여 여기서는 아마 온천수(溫泉水)를 신성시하여 구룡을 일컬은 듯하다. 《明一統志 卷27》

266)법천사(法泉寺)……놓았고:조선 초기의 학자인 유방선(柳方善)은 권근(權近), 변계량(卞季良)의 문인(門人)으로 당시에 문명(文名)이 었었다. 그는 본래 원주(原州)에 살면서 법천사에서 강학(講學)을 했던바, 서거정이 원주에 가서 글을 읽을 적에 바로 그의 문하에서 수업했었다.

267)태봉(泰封):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신라의 왕족인 궁예(弓裔)가 철원(鐵原)에 세웠던 국호로서, 전하여 철원의 고호로 쓰인다.

268)지금은……되었고:춘추 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일찍이 월(越)나라를 격파하고 나서 미인 서시(西施)를 얻고는 고소산(姑蘇山) 위에 고소대(姑蘇臺)를 지어 놓고 날마다 서시와 함께 그 위에서 유연(游宴)만 즐기다가 끝내는 월나라의 침공을 받아 멸망당하고 말았다. 한(漢)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장군 오피(伍被)와 함께 모반할 적에 오피가 회남왕에게 간하여 말하기를 “천자께서 대왕을 관대히 용서하시었는데, 왕께서 어떻게 다시 이런 망국(亡國)의 말씀을 할 수 있습니까. 신이 듣건대, 오자서(伍子胥)가 일찍이 오왕(吳王)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자, 오자서가 말하기를 ‘신이 지금 황무지가 된 고소대에서 미록(麋鹿)이 노는 것을 보았다.’라고 했다더니, 지금 신 또한 이 궁중에 가시나무[荊棘]가 나고 이슬이 옷을 적시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나라가 망했음을 의미한다.

269)예전과……가을이로다:두보(杜甫)의 〈추흥팔수(秋興八首)〉 가운데 장안(長安)의 상란(喪亂)을 염려하여 지은 제사수(第四首) 시에 “어룡이 적막해진 가을 강은 썰렁도 해라, 고국 장안은 평소에 사모하는 바이로다.[魚龍寂寞秋江冷 故國平居有所思]”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망국의 적막한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7》

270)당시……돌아갔으니: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건국한 것을 예언한 데서 온 말이다. 후량 말제(後梁末帝) 4년(918)에 객상(客商) 왕창근(王昌瑾)이 저잣거리에서 거사(居士) 차림을 한 노인으로부터 고경(古鏡) 하나를 샀던바, 거기에 “상제가 아들을 진한과 마한 지경에 내려 보내어,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칠 것이다.[上帝降子於辰馬 先操鷄後搏鴨]”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여기서 닭은 경주(慶州)의 고호인 계림(鷄林)을 가리키고, 오리는 압록강(鴨綠江)을 가리키므로, 즉 왕건이 신라를 차지한 다음에 압록강 유역을 정벌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高麗史 卷1 太祖世家》

271)양양(襄陽):예천(醴泉)의 고호이다.

272)태수(太守)의……하리:진(晉)나라의 명장(名將) 양호(羊祜)가 일찍이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있으면서 대단히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그가 죽은 뒤에 그 지방 백성들이 현산(峴山)에 비를 세워서 그의 덕을 기렸는데, 이 비를 바라보고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하여, 이 비를 두예(杜預)가 일찍이 타루비(墮淚碑)라 이름했던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여기서는 예천의 고호가 양양(襄陽)이기 때문에 양양 군수(襄陽郡守) 진극충(陳克忠)을 예전의 양양 태수 양호에 빗대서 한 말이다.

273)강개(慷慨)한……짓는구려:백석음(白石吟)이란, 춘추 시대 위(衛)나라 영척(甯戚)이 미천했을 때, 제 환공(齊桓公)에게 등용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나라에 들어가 남의 소를 먹이면서 제 환공의 행차를 바라보고는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했던 데서 온 말인데, 이때 환공은 그 노랫소리를 듣고 그를 현자로 여겨 등용했다고 한다. 그 노래는 대략 다음과 같다. “남산은 빛나고, 백석은 깨끗하도다. 태어나서 서로 선양하던 요순 시대 못 만나, 짧은 베 홑옷도 겨우 정강이만 가릴 뿐인데,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소를 먹이자니, 긴 밤이 지루해라 언제나 아침이 올런고.[南山粲 白石爛 生不逢堯與舜禪 短布單衣裁至骭 從昏飯牛薄夜半 長夜漫漫何時旦]” 전하여 불우한 선비가 세상에 쓰이기를 바라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樂府詩集 卷83》

274)옛날……길리로다:1478년(성종9)에 세종의 비(妃)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태실(胎室)을 예천(醴泉)의 용문산(龍門山)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275)인지 종사(麟趾螽斯)의 경사:인지는 기린의 발이란 뜻으로, 기린은 본디 인후(仁厚)한 짐승이라, 산 풀도 밟지 않고, 산 벌레도 밟지 않는다 하여, 주 문왕(周文王)과 후비(后妃)의 인후한 성덕(聖德)에 의해 수많은 자손 종족들 또한 모두 인후한 것을 기린에 견주어, 《시경》 〈주남(周南) 인지지(麟之趾)〉에 “기린의 발이여, 인후한 공자로소니, 아 이들이 바로 기린이로다.[麟之趾 振振公子 于嗟麟兮]”라고 하였다. 종사는 수많은 베짱이를 말한 것으로, 《시경》 〈주남 종사(螽斯)〉에 “수많은 베짱이들 화목하게 모여드니, 의당 네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리라.[螽斯羽 詵詵兮 宜爾子孫 振振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또한 문왕(文王)의 후비가 투기하지 않고 모든 궁녀들과 화목하여 자손을 많이 두게 되었으므로, 궁녀들이 그를 한 번에 99개의 알을 낳는 베짱이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276)광릉(廣陵):경기(京畿) 광주목(廣州牧)을 말한다.

277)화산(花山) 권공(權公):권반(權攀, 1419〜1472)이다. 자는 자룡(子龍), 호는 무진(無盡)이며, 권근(權近)의 손자이고 권람(權擥)의 아우이다.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화산은 안동(安東)의 옛 이름이다.

278)관진(關津):관문과 나루인데, 수로와 육로의 요충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279)음양 굴신(陰陽屈伸):음과 양이 상호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280)소식영허(消息盈虛):주역 박괘(剝卦) 단전(彖傳)에, “군자가 소식영허를 숭상함은 천도(天道)에 합치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치는 소쇠(消衰)하고 식장(息長)하고 영만(盈滿)하고 허손(虛損)하는데 군자는 이 이치에 순종하여 하늘을 섬긴다는 뜻이다. 장자 추수(秋水)에, “도는 소식영허하여 끝이 나면 시작이 있다.[消息盈虛 終則有始]” 하였다. 음양의 기운과 계절의 순서가 순환한다는 말이다.

281)형은……드러났다:형은 권반(權攀)을 가리킨다. 1455년(세조1)에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를 세우는 데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좌익 공신의 공신호를 내렸는데, 그 2등에 해당하는 수충경절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에 권반이 참여하였다.

282)조정에서 퇴근하여:시경 고양(羔羊)에, “조정에서 퇴근하여 집에서 밥 먹으니 여유롭고 여유롭네.[退食自公 委蛇委蛇]”라고 하였다. 이 시는 훌륭한 군주 밑에서 벼슬살이하는 관리들의 검소함과 평화로움을 노래한 시이다.

283)종남(終南):서울의 남산(南山)이다.

284)흰 구름을……생각함에:당(唐)나라 때에 적인걸(狄仁傑)이 병주(幷州)로 부임하면서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 하늘을 보니 어버이가 있는 하양(河陽) 쪽 하늘에 흰 구름이 한 조각 떠 있었는데, 적인걸이 말하기를 “우리 어버이가 사시는 곳이 저 구름 아래이다.” 하고, 구름이 옮겨 갈 때까지 오래도록 서 있었다고 한다. 흰 구름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버이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285)논밭……자:농공상(農工商)이 아닌 사대부의 신분으로 농촌에 은거해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286)소자첨(蘇子瞻)은……표현했다:자첨은 송(宋)나라 동파(东坡) 소식(蘇軾, 10371101)의 자이다. 그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변화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자면 천지도 일찍이 한 순간도 불변일 수가 없고, 불변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자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진하다.” 하였다.

287)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귀거래사는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작품이다.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귀거래사를 읊는다는 것은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288)요조장(窈窕章)을 노래하면서:소식(蘇軾)의 전적벽부에, “임술년 가을 7월 16일에 내가 손과 함께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를 하는데, 맑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물결이 잔잔하였다.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면서 명월시를 외고 요조장을 노래하였다.” 하였다. 요조장은 시경 월출(月出)에, “하얀 달은 환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이쁘지. 깊은 시름 풀고파, 애가 타는 내 마음.[月出皎兮 佼人僚兮 舒窈糾兮 勞心悄兮]”이라 하였는데, 이것을 말한다. 요규(窈糾)는 요조(窈窕)와 같은 말이라 한다.

289)삼조선(三朝鮮):단군조선(檀君朝鮮),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51 평안도 평양부(平壤府)에, “당요(唐堯) 무진년에 신인(神人)이 태백산(太伯山)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사람들이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아 평양에 도읍하고 단군이라 일컬었다.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을 이기고 기자를 여기에 봉했는데,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다. 기자의 41대 후손 준(準)에 이르러 연(燕)나라 위만이 그 땅을 빼앗아 평양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조선이다.” 하였다.

290)고려가……따랐다:위 자료에 “고려 태조 1년(918)에 대도호부(大都護府)를 삼았고, 얼마 뒤에 서경(西京)을 삼았다. 목종(穆宗) 1년(998)에 호경(鎬京)이라 하였다. 공민왕(恭愍王) 18년(1369)에 만호부(萬戶府)를 설치하였다가 뒤에 평양부(平壤府)로 고쳤다. 본조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두고 관찰사가 부윤(府尹)을 겸하게 하였다.” 하였다.

291)광산(光山) 김후 겸광(金侯謙光):1419∼1490. 본관은 광산, 자는 위경(撝卿)이다. 신숙주(申叔舟)의 종사관으로 건주위(建州衛)의 야인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고, 승지를 거쳐 평안도 관찰사, 호조 참판, 평안도 절도사, 예조 판서, 경상도 관찰사,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1463년(세조9) 6월에 평안도 관찰사에 제수되어 1465년 3월까지 재임하였다.

292)오후 백창(吳侯伯昌):1415∼1472. 본관은 두원(荳原), 자는 겸문(謙文)이다. 1450년(세종32)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정랑, 예조 참판, 평안도 관찰사, 대사헌, 경상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양체(襄替)이다. 1465년(세조11) 4월에 평안도 관찰사에 제수되어, 1468년 8월까지 재임하였다.

293)오후(吳侯)는……담당하였고:1459년(세조5) 11월에 병조 판서 한명회를 황해도와 평안도의 군용도체찰사(軍容都體察使)에 제수하고 당시 병조 정랑이던 오백창을 종사관으로 삼았다. 오백창은 이때부터 146412월, 우부승지에 제수될 때까지 종사관으로 복무했다.

294)목은(牧隱)……기록하였다:목은은 이색(李穡)의 호이다. 한국문집총간 5집에 수록된 목은고(牧隱藁) 목은문고 권1에 서경풍월루기(西京風月樓記)가 실려 있다.

295)악양루(岳陽樓):황학루(黃鶴樓), 등왕각(滕王閣)과 함께 중국 강남(江南) 3대 명루(名樓)에 포함되는 3층 누각으로, 중국 호남성 악양시(岳陽市)에 있다. 삼국 시대 오(吳)나라 노숙(魯肅)이 이곳에 누각을 지어 군대를 훈련시키는 장소로 사용했었는데, 당나라 때에 중서령(中書令) 장열(張說)이 파릉 태수(巴陵太守)로 좌천되어 나가 있으면서 이 누각이 있던 자리에 악양루를 짓고는 수시로 재사(才士)들을 거느리고 올라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북송(北宋) 때에 등종량(騰宗諒)이 파릉 태수로 부임하여 중수하였고, 범중엄(范仲淹)이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지었다.

296)등왕각(滕王閣):당나라 고조(高祖)의 아들 이원영(李元嬰)이 홍주 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에 지은 누각이다. 현재 중국 강남성(江南省) 남창시(南昌市)에 있다. 나중에 이원영이 등왕(滕王)에 봉해졌기 때문에 이 누각을 등왕각이라 불렀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가 유명하다.

297)죽루(竹樓):대나무를 사용해서 지은 누각이다. 황강(黃岡)은 호북성(湖北省) 황주부(黃州府)에 있던 현 이름인데, 송(宋)나라 왕우칭(王禹偁, 954〜1001)이 일찍이 그곳 태수(太守)로 있을 때에 황주의 명산(名産)인 큰 대나무를 베어다가 기와 대신 그것으로 지붕을 덮어 누각을 짓고, 직접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를 지어 그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298)황학루(黃鶴樓):중국 호북성(湖北省) 무한시(武漢市) 사산(蛇山)에 있는 누각이다. 삼국 시대 오(吳)나라 때에 처음으로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나라 시인 최호(崔顥)가 지은 황학루, 이백(李白)이 지은 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이라는 시가 유명하다.

299)한퇴지……여겼었다:당나라 한유(韓愈, 768〜824)의 신수등왕각기(新修滕王閣記)에 그 내용이 나온다. 퇴지는 한유의 자이다. 삼왕(三王)은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은 왕발(王勃), 등왕각부(滕王閣賦)를 지은 왕서(王緖), 중수등왕각기(重修滕王閣記)를 지은 왕중서(王仲舒)를 말한다. 한유의 신수등왕각기의 대략에, “한유가 젊었을 때, 강남에 화려하고 구경할 만한 많은 누각들 중에서 등왕각이 제일이라는 말을 들었다. 등왕각에 대해 삼왕이 지은 서(序), 부(賦), 기(記) 등을 읽어 보니 그들의 글솜씨가 훌륭한지라, 더욱 한번 가서 보고 싶었다. 벼슬살이로 조정에 매인 몸이라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다가 뒤에 강서 관찰사(江西觀察使) 왕중서가 등왕각을 새로 중수하고 한유에게 그 기문을 짓게 하자, 한유가 이름이 등왕각 위에 기재되고 글이 삼왕의 다음에 놓이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 마침내 기문을 지었다.”라고 하였다.

300)경(經)에……하였고:효경 간쟁장(諫諍章)에, “옛날에 천자는 간쟁하는 신하 일곱 사람이 있어서, 비록 무도하더라도 천하를 잃지 않았고, 제후는 간쟁하는 신하 다섯 사람이 있어서, 비록 무도하더라도 그 나라를 잃지 않았고, 대부는 간쟁하는 신하 세 사람이 있어서, 비록 무도하더라도 그 집안을 잃지 않았다. 선비는 간쟁하는 친구가 있으면 몸이 훌륭한 명성을 떠나지 않으며, 아비는 간쟁하는 아들이 있으면 몸이 불의에 빠지지 않는다.” 하였다. 소학 명륜(明倫) 등에도 실려 있다.

301)춘추전(春秋傳)에는……하였으니:이 내용은 고열녀전(古列女傳),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 고금사문유취신집(古今事文類聚新集)21 간원(諫院) 등에 나온다. 고금사문유취신집의 해당 부분 위 조항에 그 출전을 ‘여씨춘추주(呂氏春秋注)’라고 밝혀 놓았는데, 서거정이 이것을 해당 조항의 주석으로 생각하고, 여기에 인용한 부분의 출전을 춘추전이라 한 듯하다.

302)한(漢)나라……800석(碩)이었고:한서(漢書)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에, “무제 원수 5년(기원전 118)에 처음으로 간대부를 두고 관질을 800석에 준하였다.[武帝元狩五年 初置諫大夫 秩比八百石]”라고 하였다.

303)광무제(光武帝)는……600석이었다: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간의대부는 관질이 600석이다.” 하였다.

304)당(唐)나라……소속되었다:신당서(新唐書) 백관지(百官志)에 의하면, 당나라 때에는 문하성(門下省)에 정3품하(正三品下)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2인, 정4품하(正四品下)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4인, 종7품상(從七品上) 좌보궐(左補闕) 6인, 종8품상(從八品上) 좌습유(左拾遺) 6인이 있었으며, 중서성(中書省)에 같은 품계의 우산기상시 2인, 우간의대부 4인, 우보궐 6인, 우습유 6인이 있었다.

305)건염(建炎):남송(南宋) 고종(高宗)의 연호이다. 1127〜1130년에 해당한다.

306)직문하(直門下):대본에는 ‘直門下府’로 되어 있는데, 고려 관직 명칭에 의거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307)조선이……있었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기사에, “문하부(門下府)는, 재신(宰臣)은 온갖 서무를 관장하고, 낭사(郞舍)는 헌납하는 일, 간쟁하는 일, 차제(差除)를 박정(駁正)하는 일, 교지(敎旨)를 수발(受發)하는 일, 계(啓)나 전(牋) 등을 소통하여 진달하는 일 등을 담당한다. 영부사(領府事) 1명, 좌우 시중(左右侍中) 각 1명은 정1품이다. 시랑찬성사(侍郞贊成事) 2명은 종1품이다. 참찬부사(參贊府事) 4명, 지부사(知府事) 1명, 정당문학(政堂文學) 1명, 상의부사(商議府事) 2명은 정2품이다. 좌우 산기상시(左右散騎常侍) 각 1명은 정3품이다. 좌우 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 각 1명, 직문하(直門下) 1명은 종3품이다. 내사 사인(內史舍人) 1명은 정4품이다. 기거주(起居注) 1명, 좌우 보궐(左右補闕) 각 1명은 정5품이다. 좌우 습유(左右拾遺) 각 1명은 정6품이다. 주서(注書)와 도사(都事) 각 1명은 정7품이다.” 하였다. 낭사(郎舍)는 산기상시에서 습유까지를 가리키는 듯하다.

308)태종(太宗) 2년 신사년:신사년은, 태종 즉위년인 경진년을 기준으로 기산하면 태종 2년이 되며, 해를 넘겨 원년 신사년을 기준으로 기산하면 태종 1년이 된다. 통상 신사년을 태종 1년으로 보나 서거정의 표기도 오류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교감하지 않았다.

309)우리……정6품이었다:태종실록 1년 7월 13일 기사에, “문하부라는 호칭을 혁파하고, 낭사를 사간원으로 개칭하였다. 산기상시를 혁파하고, 간의대부를 승격하여 좌우 사간대부를 삼고 자급을 통정으로 하였다. 직문하를 지사간원사로 하고, 보궐을 헌납으로 하고, 습유를 정언으로 하였다.” 하였다.

310)거정(居正)도……되어:세조실록에 의하면, 서거정은 1457년(세조3) 2월 9일에 사간원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에 제수되었다.

311)김공 종순(金公從舜):1405∼1483. 1455년(세조1) 좌익 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그 뒤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 좌사간대부, 도승지, 이조 참판, 경기 관찰사, 대사헌, 경상도 관찰사, 평안도 관찰사, 지중추부사 등을 거쳤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시호는 공호(恭胡)이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김종순은 1457년 2월 9일에 사간원 좌사간대부에 제수되었다. 성종실록 14년 11월 2일 기사에 졸기(卒記)가 실려 있다.

312)송공 처검(宋公處儉):1434년(세종16)에 알성시(謁聖試)에 급제하였고, 그 뒤 병조 정랑, 대사성 등을 거쳤다. 1459년(세조5) 기묘년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일본 통신사가 되어 가는 길에 배가 침몰하여 죽었다.

313) 이공 숙감(李公淑瑊):1454년(단종2) 식년시, 1457년(세조3) 중시(重試),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였다. 예조 참의, 부제학, 첨지중추부사, 이조 참의 등을 지냈다. 그의 형이 이숙기(李淑琦)와 이숙규(李淑珪)이다.

314)산기(散騎) 안경검(安景儉):태조실록 2년 6월 7일 기사 등에, 간관(諫官) 또는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서 아뢴 말이 기록되어 있으며, 태조실록 3년 3월 24일 기사에 실려 있는 안종원(安宗源)의 졸기에, 안종원의 넷째 아들로서 벼슬이 공조 전서(工曹典書)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315)후세……있겠는가: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의 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의 내용이다. 인용한 내용이 고문진보후집에 실린 것과 글자에 다소 차이가 있다.

316)선생:사마광(司馬光)을 가리킨다.

317)사마자장(司馬子長)과 같은 뜻:자장은 전한(前漢)의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의 자이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의하면, 사마천은 용문(龍門)에서 태어나 20세에는 남쪽으로 강수(江水)와 회수(淮水)를 유람하고 회계산(會稽山)에 올랐다가 우혈(禹穴)을 탐방하고 구의산(九疑山)과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등지를 여행하였고, 북쪽으로는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옛날 제(齊)나라와 노(魯)나라 지역에서 강학(講學)을 하며 공자(孔子)의 유풍을 익혔다고 한다. 사마자장과 같은 뜻이란, 조국 강산을 두루 유람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우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

318)김공 담(金公淡):1416〜1464. 자는 거원(巨源)이다. 1435년(세종17)에 과거에 급제하여, 충주 목사, 경주 부윤, 이조 판서 등을 거쳤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세조실록 10년 7월 10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19)등왕각(滕王閣)은……지었습니다:당나라 원화 15년(820)에 어사 중승(御史中丞) 왕중서(王仲舒)가 등왕각을 중수하고 당대의 문장가 한유(韓愈)를 불러서 기문을 짓게 했는데, 이때 지은 글이 신수등왕각기(新修滕王閣記)이다. 7쪽 주 24) 참조.

320)객관이……보냈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에 서거정이 지은 동헌기(東軒記)가 실려 있다.

321)이후 염의(李侯念義):1409∼1492. 재령 군사(載寧郡事), 호군(護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순천 도호부사(順天都護府使)를 거쳐 1467년(세조13)에 가선대부 경주 부윤(慶州府尹)에 제수되었다.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해주 목사(海州牧使),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호려(胡戾)이다. 그의 아내는 세조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언니이다. 성종실록 23년 9월 29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22)전동생(田秱生):태종 초기의 원종공신(原從功臣) 전흥(田興)의 아들로, 판승문원사, 첨지중추원사, 청주 목사 등을 역임하고, 1469년(예종1) 윤2월 경주 부윤에 제수되었다. 1472년(성종3) 1월에, 경주 부윤으로 재임하면서 풍교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고신(告身)을 환수당하고 원방(遠方)에 유배되었다.

323)이인(異人):신라를 건국했다고 일컬어지는 박혁거세를 말한다.

324)삼성(三姓):옛날 신라의 왕족인 세 성씨, 즉 박(朴), 석(昔), 김(金)을 가리킨다.

325)당사(唐史)에……곳:신당서(新唐書) 권220 동이열전(東夷列傳) 신라(新羅)에 의하면, 당나라 현종(玄宗) 25년(737)에 형도(邢璹)를 신라에 사신으로 보내면서 조칙하기를, “신라는 군자의 나라로 일컬어지며 그들은 시서(詩書)를 안다.” 하였다.

326)오월(吳越)의 전왕(錢王):전류(錢鏐)가 당나라 말기에 소항(蘇杭) 지방에 웅거하여 오월국왕에 봉해졌는데, 아들 전원관(錢元瓘)을 거쳐 손자 전숙(錢俶)에 이르기까지 80여 년 동안 오월국왕을 세습하였다. 그러다 송나라 태종이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해 나가자 전숙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영토를 전부 송나라에 바쳤다.

327)경순왕(敬順王)에……왔다:신증동국여지승람21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의 대략에, “고려 태조 18년(935)에 경순왕 김부(金傅)가 항복하니, 나라는 없어지고 경주라 하였다. 뒤에 대도독부(大都督府)가 되었다가, 현종(顯宗) 때에 강등하여 경주 방어사(慶州防禦使)로 하였고, 또 안동 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고쳤다가 다시 동경 유수(東京留守)로 하였다. 신종(神宗) 때에 동경야별초(東京夜別抄)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평정되었는데, 뒤에 또 동경 사람들이 신라의 회복을 위해 반란을 도모하였으므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하고, 관내의 주(州),부(府), 군(郡), 현(縣)을 빼앗아 안동(安東), 상주(尙州)에 나누어 예속시켰다. 고종 때에 다시 유수로 고쳤고, 충렬왕 때에 계림부(鷄林府)로 고쳤다. 조선에서는 태종 때에 경주라는 옛 이름을 다시 썼다.” 하였다.

328)가정(稼亭) 이 선생(李先生)의 기문:가정은 이곡(李穀)의 호이다.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가정집(稼亭集) 권10에 계림부공관서루시서(雞林府公館西樓詩序)가 실려 있고, 동문선 권85에도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기문이라는 것이 이 시서(詩序)를 가리키는 것인지 별도의 기문이 있었는지는 미상이다.

329)성조(聖朝):조선 왕조를 가리킨다.

330)첨유(襜帷):수레에 둘러치는 휘장인데, 수레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331)계극(棨戟):검은 비단으로 싸거나 검은 칠을 한 목극(木戟)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서 높은 벼슬아치가 행차할 때에는 목극을 든 자를 앞에 세웠다고 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좋은 명망을 지닌 도독 염공은 계극을 앞세우고 멀리서 부임해 왔고, 훌륭한 의범을 갖춘 새로운 태수 우문은 휘장 친 수레를 잠시 멈추었다.[都督閻公之雅望 棨戟遙臨 宇文新州之懿範 幨帷蹔駐]”라고 하였다.

332)동서 이경(二京):서경(西京)인 개성(開城)과 동경(東京)인 경주(慶州)를 말한다.

333)남곽선생(南郭先生):남곽은 도성의 남쪽을 말한다. 장자에 남곽자기(南郭子綦)라는 인물이 나오고 한비자에 남곽처사(南郭處士)라는 인물이 나온다. 여기서는 도성의 남쪽에 살고 있던 손순효(孫舜孝, 1427〜1497)를 가리킨다. 손순효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이다.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1451년(문종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53년(단종1)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1457년(세조3) 문과(文科) 중시(重試)에 급제하였다. 대사헌, 병조 판서,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서거정과는 문과 중시의 동방(同榜)으로서 친분이 두터웠다. 서거정과는 7살 차이이므로 번역문의 대화에 상호 경어체를 써야 마땅할 듯하나, 번역의 편의상 그렇게 하지 않았다.

334)사가은자(四佳隱者):서거정 자신을 가리킨다.

335)사(四)로……짓고도:서거정이 자신의 정자를 ‘사가정(四佳亭)’이라고 한 것을 말한다.

336)공적을……천도(天道)이다:노자 제9장에 나온다.

337)은총과……된다: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훈계한 말을 기록한 서경 태갑 하(太甲下)에, “군주는 능란한 말솜씨로 이전의 정사를 어지럽히지 말아야 하며, 신하는 은총과 이익을 얻는 재미에 빠져 성공의 결과를 차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나라가 정말 오래오래 아름다울 것이다.” 하였다.

338)만족할……않다:노자 제44장에 나온다.

339)유후(留侯)가 물러난 일:유후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모신(謀臣)인 장량(張良)의 봉호이다. 장량은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한 뒤에 유후에 봉해졌다. 장량이 말하기를,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습니다. 한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한나라를 위해 진(秦)나라에 원수를 갚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세 치의 혀로써 제왕의 스승이 되어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졌으니, 이는 포의(布衣)로서는 극도의 영광이라 더없이 만족할 뿐입니다.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다 버리고 신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고 싶습니다.” 하고, 사직하였다.

340)양소(兩疏)가……일:양소는 서한(西漢) 선제(宣帝) 때의 태자태부(太子太傅) 소광(疏廣)과 그의 조카인 태자소부(太子少傅) 소수(疏受)를 말한다. 선제 3년에 소광이 소수에게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하지 않다고 한다. 이제 높은 벼슬에도 올랐고 명성도 높아졌다. 이러한데도 물러나지 않다가는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염려된다.” 하고는, 그날로 병을 핑계로 상소하여 두 사람이 함께 사직하였다.

341)도 팽택(陶彭澤)이……일:도 팽택은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동진(東晉)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그가 팽택 영으로 있을 때, 군(郡)의 독우(督郵)가 순시하러 나오게 되자 아전이 도잠에게 의관을 갖추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하였다. 도잠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어찌 녹봉 닷 말을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히겠는가.” 하고, 전원으로 돌아가면서 귀거래사를 지었다.

342)전약수(錢若水)가……일:송나라 때에 전약수라는 사람이 화산(華山)에 가서 도사(道士) 진희이(陳希夷)를 만나니, 마의도인(麻衣道人)이 진희이와 함께 화롯불을 쬐며 앉아 있다가 전약수를 한참 쳐다보고는 화로의 재 위에다가 부젓가락으로 “안 된다.”라고 쓰고 말하기를, “이 사람은 급류(急流)에서 용퇴(勇退)할 사람이다.” 하였다. 뒤에 전약수는 벼슬이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이르러, 겨우 마흔 살에 과연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안 된다고 한 것은 전약수가 신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뜻이고, 급류에서 용퇴한다는 것은 물살이 센 곳을 지나가는 배처럼 벼슬이 한창 치솟을 때에 용감하게 물러나 몸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343)굴신소장(屈伸消長):굴신은 굽힘과 폄이고 소장은 사라짐과 자라남이니, 음양이 순환하고 사물이 성쇠하는 등의 변화를 말한다.

344)출처진퇴(出處進退):벼슬길에 나아감과 벼슬길에서 물러남을 말한다.

345)사공도(司空圖)는……하였다:사공도(837〜908)의 자는 표성(表聖)이며, 호는 지비자(知非子), 휴휴정(休休亭), 내욕거사(耐辱居士)이다. 만당(晚唐) 때의 시인이자 시론가(詩論家)이다. 신당서 권194 사공도열전(司空圖列傳)에 의하면, 사공도가 만년에 중조산(中條山) 왕관곡(王官谷)에 은거해 살며 휴휴정을 세우고 글을 짓기를, “휴(休)는 미(美)이다. 쉬면 아름다움이 갖추어진다. 재주를 헤아려 보니 쉬어야 마땅하고, 분수를 헤아려 보니 쉬어야 마땅하고, 늙어 귀가 어두우니 쉬어야 마땅하다. 또한 어려서는 게을렀고 젊어서는 거칠었고 늙어서는 우활하다. 이 셋은 시대에 쓰임이 될 수 없으니 쉬어야 마땅하다.” 하였다.

346)손방(孫昉)은……기록하였다:손방은 북송(北宋) 때의 태의(太醫)로, 자호가 사휴거사(四休居士)이다. 황정견(黃庭堅)의 산곡집(山谷集) 사휴거사시서(四休居士詩序)에 의하면, 산곡 황정견이 ‘사휴’의 뜻을 묻자 손방이 답하기를, “거친 차와 덤덤한 밥에 배부르면 쉬고, 해진 옷 기워 추위 막아 따스하면 쉬고, 평온하게 지내 하루가 가면 쉬고, 탐욕 부리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늙으면 쉰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347)여관에서……피한다:장자 우언(寓言)에, “양자거(陽子居)가 처음 노자의 가르침을 들으러 갈 때에는 함께 묵는 여관의 손님들이 영접하고 배웅하였으며 여관집 주인은 방석을 들고 그 아내는 수건과 빗을 들고 모셨으며, 함께 묵는 손님들은 자리를 피하고 불을 때던 자들은 아궁이 앞을 피했다. 그런데 노자의 가르침을 받고 돌아올 때에는 함께 묵는 손님들이 그와 자리를 다투었다.” 하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양자거의 위엄에 주눅이 들어 두려워하였는데 양자거가 노자의 가르침을 들은 뒤로는 겸손해져서 사람들이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348)남쪽으로……같아서: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남극 바다로 이동할 때에는, 물 위에서 물을 차며 3천 리를 달려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를 올라가서 날아가는데, 6개월을 날아 도착하여 쉰다.” 하였다.

349)녹이(騄駬)와 요뇨(騕褭):모두 고대의 준마(駿馬) 이름이다. 요뇨는 하루에 5천 리를 달렸다고 한다.

350)구궤(九軌):차량 9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넓은 길이다. 일반적으로 넓은 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351)치관(豸冠)을 쓰고:치관은 해치관(獬豸冠)을 말한다. 해치는 뿔이 하나인 신수(神獸)로, 성질이 충직하여 곡직을 잘 분변하며,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 그중에 사악하고 부정한 자를 뿔로 받아 버린다고 한다. 치관을 썼다는 것은 집법관(執法官)이 되었다는 뜻이다.

352)상홀(象笏)을 잡고:상홀은 상아(象牙)로 만든 홀이다. 옛날에 품계가 높은 벼슬아치가 군주를 알현할 때에 이것을 잡고 군주의 명령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353)선민(先民)의……하였다:선민은 옛 현인(賢人)을 말한다. 송나라 정호(程顥)의 춘일우성(春日偶成)에, “만물은 고요히 관찰해 보면 모두가 자득하여, 사시의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똑같네.[萬物靜觀皆自得 四時佳興與人同]” 하였다.

354)사헌부 장령 손순효(孫舜孝):세조실록에 의하면, 손순효는 1466년(세조12) 5월과 1468년 7월에 사헌부 장령에 제수된 기록이 있으며, 1467년과 1469년(예종1)에 장령으로 재임한 기록이 있다.

355)주례에……있다:주례 춘관(春官) 종백(宗伯)에, “어사(御史)는 방국(邦國)의 도비(都鄙) 및 만민(萬民)의 치령(治令)을 담당하여, 총재(冢宰)를 돕는다.” 하였다.

356)상서(尙書)……하였다:진한(秦漢) 때에 상서를 중대(中臺), 어사를 헌대(憲臺), 알자(謁者)를 외대(外臺)라 하여, 이것을 삼대(三臺)라 통칭하여 불렀다.

357)당(唐)나라……두었다:신당서(新唐書) 백관지(百官志) 어사대(御史臺)에 의하면, 어사대에 대부 1인, 중승(中丞) 2인을 두어, 대부는 형법과 전장(典章)을 담당하여 백관의 죄악을 규정(糾正)하였고 중승은 대부를 보좌하였으며, 휘하에 대원(臺院), 전원(殿院), 찰원(察院)이 있었다.

358)현공 석규(玄公碩圭):1430∼1480.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덕장(德璋), 호는 청단(淸湍)이다. 1453년(단종1) 진사시에 오르고, 1460년(세조6)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도승지, 대사헌, 형조 판서, 평안도 관찰사, 우참찬 등을 거쳤다. 시호는 정경(貞景)이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성종3) 12월에 집의에 제수되어, 1474년 8월에 동부승지로 승진할 때까지 집의로 재임하였다. 성종실록 11년 11월 12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59)허공 적(許公迪):본관은 양천, 자는 여길(汝吉)이다. 성종실록에, 1472년(성종3) 3월에 겸장령(兼掌令)에 제수되어, 1474년 4월까지 재임한 기록이 있다. 이해 윤6월에 전설사 수(典設司守)의 직임으로 윤대(輪對)에 참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장령에서 체직된 것으로 짐작된다.

360)김공 자정(金公子貞):본관은 김해이며, 1453년(단종1)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성종3) 12월에 장령에 제수되었으며,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대사헌, 개성 유수, 한성 판윤 등을 지냈다.

361)김공 윤종(金公潤宗):본관은 광주(光州)이고 자는 효부(孝夫)이며, 1454년(단종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종실록에, 1473년(성종4) 2월에 지평에 제수되어, 이해 11월까지 재임한 기록이 있다.

362)안공 호(安公瑚):1437〜1503.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가헌(可獻)이다. 1466년(세조1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성종3) 12월에 지평에 제수되었으며, 그 뒤 홍문관 부제학, 대사간, 전주 부윤, 형조 참의, 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363)대장(臺長):성종실록 3년 7월 7일 기사에, 사헌부의 대사헌, 집의, 장령, 지평과 사간원의 대사간, 사간, 헌납, 정언을 대장이라 한다고 하였다. 대사헌이나 대사간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사헌부의 경우 대사헌과 집의에 상대하여 장령 2인과 지평 2인을 사대장(四臺長)이라 일컬었다.

364)치관(豸冠)을……자:치관은 해치관(獬豸冠)으로 법관이 쓰는 관이며, 백필(白筆)은 간관(諫官)이 조정에 들어갈 때에 관(冠) 곁에 꽂는 붓으로, 기록을 하기 위한 필기구이다. 치관을 쓰고 백필을 꽂고 이 기문을 읽는 자란, 미래에 사헌부 관원이 되어 이 기문을 읽을 자를 가리킨다.

365)옷깃을 당기고:위(魏)나라 문제(文帝) 조비(曹丕)가 일찍이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10만 호(戶)를 기주(冀州)로부터 하남(河南)으로 강제 이주시키려 하였다. 이때 직간(直諫)을 잘하던 신비(辛毗)가 재차 간했는데도 조비가 노하여 대답도 않고 안으로 들어가자, 신비가 조비를 뒤따라가서 옷깃을 끌어당기며[牽裾] 간언을 올렸다고 한다. 이후로 견거는 직언 극간(直言極諫)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366)머리를 부수던 충성:춘추 시대 진(秦)나라 대부(大夫) 금식(禽息)이 진나라 목공(穆公)에게 백리해(百里奚)를 천거하였으나 목공이 받아들이지 않자, 금식이 자기 머리를 문지방에 부딪쳐 머리가 부서져 죽으니, 목공이 애통해하며 백리해를 등용했다고 한다. 머리를 부순다[碎首]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올리는 것을 형용할 때에 쓰는 말이다.

367)백공(百工)이……간하였고:서경 윤정(胤征)에, “매년 맹춘(孟春)에 명령을 선포하는 관리가 목탁을 치면서 도로를 순행하며, ‘관원들은 서로를 규찰하고, 백공은 기예의 일을 잡고 간하라. 혹시라도 공경히 받들지 않는 자가 있으면, 나라에는 일정한 형법이 있다.’ 하였다.” 하였다.

368)지와(蚳鼃)는 사사(士師)로서 간하였으며:지와는 전국 시대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며, 사사는 법관(法官)을 말한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지와가 왕에게 간언을 올렸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자 사직을 하고 떠났다.” 하였다.

369)남의……일이다: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지위가 낮으면서 높은 벼슬의 일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고, 남의 조정에 있으면서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수치이다.” 하였다.

370)남양(南陽) 홍후(洪侯):홍경손(洪敬孫, 1409〜1481)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길보(吉甫), 호는 우국재(友菊齋)이다. 1435년(세종17)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3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금구 현령(金溝縣令), 경상도 도사, 형조 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5년(성종6) 10월에는 성균관 동지사로, 1477년 11월에는 성균관 사성으로 나오고, 1478년 4월에는 다시 성균관 동지사로 나온다.

371) 옛사람……사람입니다: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음주(飮酒)에,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그윽이 남산을 바라보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하였고,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진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홀로 국화를 좋아하였다.” 하였다.

372) 위로……삼자면:맹자 만장 하에 “천하의 선사(善士)를 벗으로 삼고도 부족하면 또 위로 옛사람을 논한다. 그들의 시를 외고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을 모르면 옳겠는가. 그러므로 그 시대를 논하는 것이니, 이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벗 삼는 것이다.” 하였다.

373) 이윤(伊尹)과 주공(周公):이윤은 상(商)나라 탕왕(湯王)의 신하이다. 탕왕을 도와 걸왕(桀王)을 쳐서 천하를 평정하게 하였다. 주공은 문왕(文王)의 아들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나라 주왕(紂王)을 칠 때에 도왔고 예악과 제도를 정비하여 주나라를 공고히 하였으며 어린 성왕(成王)을 잘 보좌하였다.

374) 관중(管仲)과 안영(晏嬰):모두 춘추 시대 제(齊)나라의 명상(名相)이다. 관중은 포숙아(鮑叔牙)의 추천으로 환공(桓公)에게 등용되었는데 부국강병책을 써서 환공을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게 하였다. 안영은 영공(靈公)과 장공(莊公)을 섬겼고, 경공(景公) 때에는 재상으로서 강직한 지조를 지키며 경공을 보좌하였다.

375)소하(蕭何)와 장량(張良):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공신들이다.

376)왕도(王導)와 사안(謝安):왕도는 진(晉)나라 원제(元帝) 때의 승상(丞相)으로 조야에서 중보(仲父)라 일컬었다. 유조(遺詔)를 받들고 명제(明帝)와 성제(成帝)를 보좌한 사직지신(社稷之臣)이다. 사안 역시 진나라의 현신인데, 은둔하여 세상에 나오지 않고 지내다가 만년에 고관으로 등용되었다. 통감절요 권29 진기(晉紀)에 “사안이 재상으로 있을 때에 진(秦)나라가 자주 노략질을 해 와 대중들이 두려워하였는데, 사안이 진정시켰다. 그의 정사는 큰 강령을 힘쓰고 작은 일을 하나하나 따지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사안을 왕도에 견주었고, ‘문아하기로는 왕도보다 낫다.’라고 하였다.” 하였다. 대본에는 ‘王謝’로 되어 있는데, ‘王’을 왕탄지(王坦之)로 보기도 한다.

377)옛사람이……하였으니: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에 “국화는 꽃 중에서 은자(隱者)에 해당하고, 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자에 해당하고, 연꽃은 꽃 중에서 군자에 해당한다.” 하였다.

378)한……삼는다:맹자 만장 하에 나온다.

379)국화를……있으랴: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에 나온다.

380)도연명의……없겠습니까:용릉(舂陵)은 주돈이가 살던 곳이니, 곧 주돈이를 가리킨다. 도연명을 이어 국화를 사랑한 이로는 홍경손(洪敬孫)이 있고, 주돈이를 이어 연꽃을 사랑한 이로 서거정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381)이후(李侯):서거정의 자형(姊兄) 이소생(李紹生)을 말한다. 자는 기익(其益)이다. 한국문집총간 10집에 수록된 사가집에는 이소생의 시에 차운한 시, 59세에 향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시, 곡(哭)하는 시 등이 몇 편 실려 있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이소생은 경기 찰방(京畿察訪), 부사정(副司正) 등의 벼슬을 하였으며, 1467년(세조13) 11월에 겸 사헌부 집의(兼司憲府執義)에 제수되었다.

382) 벼슬길에……돌아왔다:대본에는 ‘初復’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復’은 ‘服’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383) 소는……있고: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운 것을 끌고 먼 곳에까지 이르게 하여 천하를 유익하게 한다.” 하였고, 논어 태백에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아서는 안 된다. 짐이 무겁고 길이 멀다.” 하였다.

384)우계(愚溪)라는……바인데: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우계시서(愚溪詩序)에, 유종원이 영주(永州)로 귀양을 갔을 때에 그곳에 있던 염계(冉溪)를 우계로 이름을 바꾼 뒤, 자호를 우계라 하고 시를 지어 돌에 새기고 우계시서를 지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385)어떠한……어려워했으니:맹자 공손추 상에 “벼슬하는 것이 옳을 때에는 벼슬을 하고 그만두는 것이 옳을 때에는 그만두고, 오래 있는 것이 옳을 때에는 오래 있고 당장 그만두어야 할 때에는 당장 그만둔 분은 공자이시다.” 하였다.

386)양소(兩疏)가……일:소광(疏廣)과 소수(疏受)가 함께 사직을 청했던 일을 말한다. 16쪽 주65) 참조.

387)이원(李愿)이……일:당나라 이원이 벼슬을 버리고 반곡(盤谷)으로 은둔하였는데, 이원의 벗이었던 한유(韓愈)가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서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388)명철해야……가르침:시경 증민(蒸民)에 나온다. 윤길보(尹吉甫)가,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신하 중산보(仲山甫)가 선왕의 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을 묘사하면서, “이치에 밝은 데다 일을 잘 살펴서, 그 몸을 보전했네.[旣明且哲 以保其身]”라고 하였다.

389)만족할……말씀:노자 제44장에, “만족할 줄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하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라고 하였다.

390)칠원(漆原) 윤군(尹君):윤자영(尹子榮)을 말하는 듯하다. 윤자영은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담수(淡叟), 호는 방헌(厖軒)이다. 1466년(세조12) 병술년 발영시(拔英試)에 동갑인 서거정과 함께 급제하였다.

391)맹자의……걸고: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본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392)성인(聖人)의……있었고:논어 공야장(公冶長)에, “자공이 말하기를, ‘부자의 문장(文章)은 들을 수가 있었지만 부자께서 성(性)과 천도(天道)를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가 없었다.’ 하였다.” 하였다. 주자의 주에, “부자의 문장은 날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는 자들이 누구나 들을 수 있었지만, 성과 천도는 부자께서 말씀하시는 일이 드물어 배우는 자들이 들을 수가 없었다. 대개 성인의 교육 방법은 등급을 뛰어넘어 가르치지 않는데, 자공이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그것을 듣고서 그 아름다움을 찬탄한 것이다.” 하였다.

393)지혜로운……장수한다:논어 옹야(雍也)에 나온다.

394)천지에……경지:중용장구 제22장에 “사물의 본성을 극진히 하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함께할 수 있다.[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라고 하였다.

395)이공 극돈(李公克墩):1435〜1503. 자는 사고(士高), 봉호는 광원군(廣原君)이며,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강원도 관찰사, 예조 참판, 경상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예종실록성종실록에 의하면, 이극돈은 1469년(예종1) 10월에 대사헌에 제수되어, 1470년(성종1) 3월까지 대사헌으로 재임하였다. 연산군일기 9년 2월 27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96)한치형(韓致亨):1434〜1502.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형지(亨之)․통지(通之)이며, 시호는 질경(質景)이다. 함길도 관찰사, 경기 관찰사, 호조 판서, 좌참찬, 영의정 등을 지냈다. 1504년 갑자사화 때에 부관참시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에 신원되었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한치형은 1470년(성종1) 4월부터 1471년 윤9월까지 대사헌으로 재임하였다. 연산군일기 8년 10월 3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97)권감(權瑊):1423〜1487.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차옥(次玉), 봉호는 화천군(花川君)이며,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도승지, 이조 판서, 평안도 관찰사, 좌참찬 등을 거쳤다. 권감은 1472년(성종3) 6월에 김지경(金之慶)의 후임으로 대사헌에 제수되어 이해 12월 8일까지 재임하였고, 이달 9일에 서거정이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성종실록18년 9월 6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98)이공 예(李公芮):1419〜1480.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가성(可成)이며, 시호는 문질(文質)이다. 이조 참의, 동지중추부사, 황해도 관찰사, 공조 판서, 한성 판윤, 형조 판서 등을 지냈다. 1474년(성종5) 1월 23일에 대사헌에 제수되었고, 이해 4월 25일쯤에 좌천되었다. 성종실록 11년 12월 25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99)이공 서장(李公恕長):1423〜1484.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충(子忠)이다. 봉호는 전성군(全城君)이고, 시호는 양간(襄簡)이다. 함길도북도 관찰사, 한성 좌윤, 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성종실록 15년 10월 11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400)현공 석규(玄公碩圭):1430∼1480.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성종3) 12월에 집의에 제수되어, 1474년 8월에 동부승지로 승진할 때까지 집의로 재임하였다. 21쪽 주 83) 참조.

401)이공 경동(李公瓊仝):생몰년 미상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옥여(玉如)이다. 황해도 관찰사, 호조 참판, 형조 참판, 대사헌, 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402)신후 숙서(申侯叔胥):생몰년 미상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451년(문종1) 신미년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성종실록 9년 1월 11일 기사에 제천 현감(堤川縣監)으로 한 번 나온다.

403)이때에……있었다:실록에 의하면, 서거정은 1467년(세조13)경부터 1484년(성종15)경까지 성균관 지사(成均館知事)에 재임한 것으로 나온다.

404)칠현(七賢):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에 의하면, 진(晉)나라 때에 완적(阮籍), 혜강(嵇康), 산도(山濤), 유령(劉伶), 완함(阮咸), 상수(向秀), 왕융(王戎) 등 7인이 죽림(竹林)에서 모여 마음껏 술을 마시며 즐기곤 하였는데, 그들을 죽림칠현이라 하였다.

405)육일(六逸):구당서(舊唐書) 권190하 문원열전(文苑列傳) 이백(李白)에 의하면, 이백이 공소보(孔巢父), 한준(韓準), 배정(裴政),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과 함께 조래산(徂來山) 아래에 있는 죽계(竹溪)에서 지내면서 날마다 마음껏 술을 마시고 노래하면서 지냈는데, 그들을 죽계육일이라 하였다.

406)자유(子猷):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의 자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인사부(人事部) 언어(言語)에, “왕자유가 일찍이 남의 빈집에 잠시 들어가 살 적에 대나무를 심으니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잠시 사는 것인데 무어 그리 번거롭게 대나무를 심는가?’ 하였다. 왕자유가 시를 읊으며 한참 있다가 대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이후 차군은 대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407)원찬(袁粲):420〜477. 남북조 시대의 송(宋)나라 사람이다. 고금사문유취후집(古今事文類聚後集) 권24 죽순부(竹笋部)에 의하면, 원찬이 단양 윤(丹陽尹)으로 있을 때에 어떤 집에 좋은 대나무가 있자 곧바로 그 집의 대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시를 읊으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408)장후(蔣詡)는 삼경(三徑)을 열었고:장후는 서한(西漢) 때의 사람이다. 장후가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해 살면서 집 안 대숲에 세 갈래 사잇길[三徑]을 만들어 놓고 오직 구중(求仲), 양중(羊仲)과 어울려 지냈다고 한다.

409)공숙(公叔)은 죽소(竹所)를 두었으며:공숙은 남송(南宋) 때 오송년(吳松年, 1119〜1180)의 자이다. 동시대의 문인 양만리(楊萬里)가 지은 죽소기(竹所記)에, 영가(永嘉)의 오공숙이 죽소를 만들고 양만리에게 기문을 청한 내용이 실려 있다.

410)낙천(樂天)은 기(記)가 있고:낙천은 당나라 문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자이다. 백거이가 양죽기(養竹記)를 지었다.

411)두목(杜牧)은 부(賦)가 있으며:두목(803〜852)은 당나라의 문인이다. 두목이 대나무를 소재로 하여 지은 반죽통점(斑竹筒簟), 재죽(栽竹), 제유수재신죽(題劉秀才新竹), 황주죽경(黃州竹逕) 등의 시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412)양정수(楊廷秀)는 문장에 드러냈고:양정수는 남송의 문인 양만리(楊萬里, 1127〜1206)이다. 정수는 그의 자이며, 호는 성재(誠齋)이다. 고금사문유취후집 권24 죽순부에 양만리가 지은 죽소기(竹所記)차군헌부(此君軒賦) 등이 실려 있다.

413)소자첨(蘇子瞻)은 시에서 논하였는데:소자첨은 송나라 문인 소식(蘇軾, 1036〜1101)이다. 자첨은 그의 자이며, 호는 동파(東坡)이다. 소식이 오잠(於潛) 승려에게 지어 준 녹균헌(綠筠軒)에, “밥 먹을 때에 고기는 없을 수 있지만 사는 데에 대나무가 없어선 안 되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수척하게 하고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지. 수척한 건 살찌게 할 수 있으나 속된 선비는 고칠 수가 없는 거라네.” 하였다.

414)양주(揚州)의……되었고:서경 우공(禹貢)에 “회수(淮水)와 바다 사이에 양주가 있다.……그곳의 공물(貢物)은 금(金), 은(銀), 동(銅)과 요(瑤), 곤(琨), 소(篠), 탕(簜)과 치(齒), 혁(革), 우(羽), 모(毛)와 나무[木]이다.” 하였다.

415)위천(渭川)의……같았으며:사기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재산을 많이 가진 경우를 하나하나 거론하며 그러한 재산을 소유한 자들은 천호후(千戶侯)와 대등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목록에 ‘위천의 천 이랑 대나무 밭’을 포함하고 있다.

416)영륜(伶倫)은 율려(律呂)를 만들었고:영륜은 황제(皇帝) 때의 악관(樂官)이라 일컬어지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영륜이 대나무를 취해 처음으로 악률(樂律)을 만들었다고 한다.

417)창힐(蒼頡)은 간책(簡策)을 만들었습니다:창힐은 황제 때의 사관(史官)이라 일컬어지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새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418)인(仁)이 사덕(四德)을 포괄함이고:원형이정(元亨利貞) 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사덕이라 하는데, 인의예지를 하나씩 나눌 때에는 네 가지이지만 포괄해서 볼 때에는 인이 의, 예, 지를 아우른다.

419)겨울과……속하며:대나무는 겨울에 그 절조가 드러나므로 겨울과 맞다고 한 것이다. 인의예지를 춘하추동에 해당시킬 때에 지(智)가 겨울에 해당한다.

420)부자께서……않았으니:논어 술이(述而)에 “부자께서 제(齊)나라에 계실 때에 소소(簫韶)를 들으시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르셨다.” 하였다. 소소는 순임금 때의 음악이라 하는데, 대나무 퉁소를 사용하였다.

421)암부(巖夫)는……지었고:당나라 문인 유암부(劉巖夫)가 식죽기(植竹記)를 지었는데, 그 말미에 “유씨(劉氏)의 식죽기는 덕을 숭상하는 것이다.” 하였다. 식죽기고금사문유취후집 권24 죽순부(竹笋部)에 실려 있다.

422)관부(寬夫)는……지었는데:당나라 문인 유관부(劉寬夫)가 과죽기(竹記)를 지었는데, 위 자료에 실려 있다.

423)염계(濂溪)……하였고:염계는 주돈이(周敦頣)의 호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태극도(太極圖說) 등에는 주돈이가 태극에 대해 토론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근사록(近思錄) 존양(存養) 등에 주돈이의 글이 인용되어 있는데, “욕(欲)이 없으면 정허동직(靜虛動直)하다. 정허하면 밝고 밝으면 통하며, 동직하면 공평하고 공평하면 넓다.” 하였다.

424)추원방(鄒元方):명나라 문인 추구(邹矩, 1368〜1398)를 말하는 듯한데, 확실하지 않다. 추구의 자가 원방(元方)이다.

425)기욱(淇)은……삼았습니다:시경 기욱은 3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의 첫 구절에 ‘첨피기욱 녹죽의의(瞻彼淇奧綠竹猗猗)’, ‘첨피기욱 녹죽청청(瞻彼淇奧綠竹靑靑)’, ‘첨피기욱 녹죽여책(瞻彼淇奧綠竹如簀)’이라 하여, 모두 대나무로 흥을 일으켰다. 대학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경문(經文)은 공자의 말을 증자(曾子)가 기술한 것으로 보고 전문(傳文)은 증자의 뜻을 그 제자가 기술한 것으로 본다. 그 전문 3장에 기욱을 인용하고, “여절여차(如切如磋)라는 것은 배움을 말한 것이고, 여탁여마(如琢如磨)라는 것은 자신을 수양함이다.” 하였다. 여기서 서거정은 대학 전체를 증자의 저술로 보고 이 구절을 인용한 듯하다.

426)왕원지(王元之)가……것:원지는 송나라 문인 왕우칭(王禹偁, 954〜1001)의 자이다. 그가 지은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에 이 내용이 나온다.

427)기(蘷)와 용(龍):모두 순(舜) 임금의 신하이다. 서경 순전(舜典)에 의하면, 순 임금이 기를 전악(典樂)에, 용을 납언(納言)에 임명하였다.

428)소보(巢父)와 허유(許由):모두 요(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이다.

429)창녕(昌寧) 성후(成侯):성임(成任, 1421〜1484)을 말한다. 자는 중경(重卿), 호는 일재(逸齋)․안재(安齋)이며,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1447년(세종29) 정묘년 식년시, 1466년(세조12) 병술년 발영시(拔英試) 등에 급제하여, 전라도 관찰사, 형조 판서, 이조 판서 등을 거쳤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송설체(松雪體)의 대가였다. 1438년(세종20)에 서거정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므로 동년이라 한 것이다.

430) 금양(衿陽):오늘날의 시흥(始興)이다.

431)사부(謝傅)가 동산(東山)을:진서(晉書) 권79 사안열전(謝安列傳)에 의하면, 진나라 태부(太傅) 사안이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해 산수를 즐기며 지냈다고 한다.

432)하감(賀監)이 경호(鏡湖)를:하감은 당나라 현종 때의 시인 하지장(賀知章, 659〜744)이다. 신당서(新唐書) 권196 은일열전(隱逸列傳) 하지장에 의하면, 하감은 비서감(秘書監)을 지냈고 만년에 경호로 돌아가서 산수를 즐기며 살았다고 한다.

433)반랑(潘閬)이 삼봉(三峯)을:반랑은 송나라 때의 시인이다. 그의 문집인 소요집(逍遙集)에 실린 과화산(過華山)에, “허공에 꽂혀 있는 삼봉이 너무 좋아, 고개 흔들며 시 읊으며 나귀 돌려 탄 것 같네. 사람들 껄껄껄 웃건 말건 그냥 둬라. 경치 좋은 이곳으로 집을 옮겨 살아 볼까.[高愛三峯揷太虛 掉頭吟望倒騎驢 旁人大笑從他笑 終擬移家向此居]”라고 하였다.

434)화정(和靖)이 서호(西湖)를:화정은 송나라 은자 임포(林逋, 967〜1028)이다. 자는 군복(君復), 호는 고산(孤山)이다. 화정은 그의 시호이다. 서호의 고산에 20년 동안 은거해서, 집 둘레에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면서 살았다고 한다.

435)어진 이는……좋아하니:논어 옹야(雍也)에 나온다.

436)소명윤(蘇明允)이……하였습니다:명윤은 송나라 문인 소순(蘇洵, 1009〜1066)의 자이다. 호는 노천(老泉)이다. 그가 지은 목가산기(木假山記)에, “내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은, 한갓 그것이 산과 흡사함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또 느끼는 바가 있어서이며, 한갓 느끼는 바가 있어서일 뿐만 아니라 또 공경스러운 바가 있어서이다.” 하였다. 본문에 가산기라고 한 것은 이 목가산기를 말한다.

437)국간 씨는……복종하였다:조선 초기에 신주(辛柱)는 부령 부사(富寧府使), 온성 부사(穩城府使) 등 변방의 수령을 지냈다.

438)북청(北靑)의 전란:1467년(세조13)에 함경도의 호족(豪族) 이시애(李施愛)가 일으킨 반란을 말한다.

439)세시 명절:대본에는 ‘세시복랍(歲時伏臘)’으로 되어 있다. 복(伏)은 삼복(三伏), 즉 하지 뒤 세 번째 경일(庚日)의 초복(初伏), 네 번째 경일의 중복(中伏), 입추 뒤 첫 번째 경일의 말복[終伏]을 말하며, 납(臘)은 동지 뒤 세 번째 술일(戌日)을 말한다. 복랍을 ‘명절’로 번역하였다.

440)큰 효도는……사모한다: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큰 효도는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니[大孝 終身慕父母], 50이 되어서도 사모한 것을, 나는 순 임금에게서 그러한 경우를 보았다.” 하였다. 여기서 글자를 따와서 종모당(終慕堂)이라 한 것이다.

441)한창……나이:예기 곡례(曲禮)에, “마흔 살을 강(强)이라 하니 벼슬을 한다.” 하였다.

442)사비(泗沘):대본에는 ‘泗泚’로 되어 있다. 고전 자료에는 두 가지가 모두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泗沘’를 쓰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443) 거닐 만하나:대본에는 ‘可庚猶矣’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庚’은 ‘夷’가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444)홍석(洪錫):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공서(公敍)․군서(君敍), 호는 손우(遜愚)이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4년(성종5) 2월 10일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행 공주 목사(行公州牧使)에 제수되었다.

445)감당나무를……생각하듯이:시경 감당(甘棠)에 나온다. 주나라 소백(召伯), 즉 소공(召公)이 남방을 순행하면서 문왕의 정치를 펼 적에 감당나무 아래에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뒤 그곳 백성들이 소공의 덕을 그리워하며 그 감당나무를 보호했다는 내용이다.

446)위수(渭水)……일:사기 권32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의하면, 주나라 서백(西伯)이 사냥을 떠나기에 앞서 점을 치니, “사냥에서 노획할 것은 용도 이무기도 아니고 범도 큰곰도 아니다. 노획할 것은 패왕(覇王)을 보좌할 사람이다.” 하였다. 서백이 사냥을 나가서 과연 위수 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누고는 크게 기뻐하며 수레에 태워 돌아왔다고 한다. 여상처럼 낚시를 하면서 현군(賢君)을 기다리려는 의도인지를 묻는 것이다.

447)부춘산(富春山)에……일:후한서 권83 일민열전(逸民列傳) 엄광(嚴光)에 의하면, 엄광은 광무제와 함께 공부하였는데, 광무제가 즉위한 뒤 엄광은 이름을 바꾸고 부춘산에 은둔하여 살았다. 하루는 광무제가 엄광과 함께 잠을 자는데, 엄광의 발이 광무제의 배 위에 걸쳐졌다. 이튿날 아침에 천문을 관측하던 사관이, “떠돌이별이 군주의 자리를 침범했습니다.”라고 다급하게 보고하니, 광무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의 친구 엄자릉과 함께 잤다.” 하였다.

448)치유(緇帷)의……가버리거나:장자 어부(漁父)에 나온다. 공자가 치유의 숲을 노닐다가 쉬면서 노래하며 금(琴)을 연주하고 있으니, 강가 배에서 수염과 눈썹이 하얀 어부가 내려서 멀찍이 앉아 턱을 괴고 공자의 곡조를 들었다. 공자에게, 권세도 없고 벼슬도 없으면서 예악을 꾸며 백성을 교화하려 하고 있으니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는 배를 저어 떠나니 공자가 망연자실했다. 치유는 검은 휘장이라는 말인데, 우거진 숲을 뜻한다.

449)초택(楚澤)의……가버려서:전국 시대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굴원이 추방되어 초택에서 노닐 때에 그곳의 어부가 굴원에게 “왜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지 않고 혼자 고고하게 처신하여 추방을 당했는가?” 하자, 굴원이 답하기를, “차라리 소상강(潚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먹이가 될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쓰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어부가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며 배를 저어 떠났다.

450)첨하(詹何)가……올렸다거나:첨하는 전국 시대 초나라 사람이다. 누에고치 실 한 가닥으로 낚싯줄을 만들고 까끄라기 같은 것으로 낚싯바늘을 만들어 낚시를 해서, 깊은 연못에서 수레를 채울 만큼 큰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고 한다. 첨하에 대한 이야기들은 열자, 한비자, 회남자, 논형 등에 나온다.

451)용백(龍伯)의……잡았다거나:열자 탕문(湯問), 태평어람 인사부(人事部) 장절역인(長絶域人) 등에 실려 있다. 발해(渤海)의 동쪽에 대학(大壑)이 있고 그곳에 산이 다섯 있었다. 천제(天帝)가 큰 자라 열다섯 마리를 시켜 6만 년에 한 번씩 3교대로 산을 떠받치고 있게 하였는데, 용백국에 사는 거인이 낚시 한 번으로 자라 여섯 마리를 잡아서 짊어지고 가 버리자 산 두 개가 바다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452)수인씨(燧人氏)는……가르쳤고:고금사문유취전집(古今事文類聚前集)37 어자(漁者)에 나온다.

453)복희씨(伏羲氏)는 그물을 만들었으며: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복희씨가 줄을 엮어 그물을 만들었다.” 하였다.

454)순(舜) 임금은……하였고:맹자, 사기, 주역 등에 의하면, 순 임금은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짓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구웠다고 한다.

455)우(禹) 임금은……전파하였습니다:서경 익직(益稷)에 나온다. 우가 순 임금에게 한 말의 대략에,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에, 산에서 나무를 베어 홍수를 막아 내고 익과 함께 선식(鮮食)을 백성들에게 먹게 하였으며, 구천(九川)의 물길을 터놓아 사해(四海)에 이르게 하고 직과 함께 파종을 하여 간식(艱食)과 선식을 백성들에게 먹게 하였다.” 하였다. 채침(蔡沈)의 주에, ‘파(播)’를 ‘오곡(五穀)을 파종하는 것’이라 하고, ‘선식’을 ‘혈식(血食)’, 즉 조수어별(鳥獸魚鼈)의 날고기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큰 뜻만 취하여 의역하였다.

456)부자께서는……취하였으며:주역 계사전 하에 “복희씨가 줄을 엮어서 그물을 만들어서 짐승을 잡거나 물고기를 잡았으니, 대개 리(離)에서 취한 것이다.” 하였다. ‘리’는 ‘걸리다’의 뜻이므로 ‘그물을 이용하여 새나 짐승이나 물고기들이 걸리면 그것을 잡는다.’는 의미이다. 계사전은 공자의 저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457)맹자도……하였습니다: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농사 시기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것이며, 물고기를 잡을 때에 촘촘한 그물을 쓰지 않으면 물고기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것이며, 자귀와 도끼를 때에 맞게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458) 천하의……것들입니다:송나라 장재(張載)가 지은 서명(西銘)에 “백성은 나의 동포(同胞)이고 만물은 나와 함께하는 것들이다.” 하였다.

459)재단하여……일들:주역 태괘(泰卦) 상전(象傳)에, “하늘과 땅이 사귐이 태(泰)이니, 군주가 이것을 보고 하늘과 땅의 도(道)를 재성(裁成)하고 하늘과 땅의 의(宜)를 보상(輔相)하여 백성을 도와 보호한다.” 하였다. 그 집전(集傳)과 본의(本義)에 의하면, 재성은 ‘재단하여 이루어 줌’을 말하는데, 하늘과 땅이 사귀는 도를 체득하여 조절해 지나친 부분을 줄여서 정치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상은 ‘화육(化育)하는 일을 보조하여 풍성한 이익을 이루어 줌’을 말하는데, 하늘과 땅의 사귐으로 인해 만물이 풍성해지면 군주가 이런 이치를 체득하여 법제를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이용하게 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는 것이다.

460)우형(虞衡):주나라 때에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을 맡아 관리했던 관직이다.

461)물고기가 못에서 뛴다:시경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어노네.[鳶飛戾天 魚躍于淵]”라고 하였다.

462)물고기가……드러난다:시경 정월(正月)에, “물고기가 못에 있으니 또한 즐거울 수가 없구나. 비록 깊이 잠겨 있으나 또한 환히 다 보이네.[魚在于沼 亦匪克樂 潛雖伏矣 亦孔之炤]”라고 하였다.

463)자사(子思)가……해당시켰고:중용장구 제12장에 비은(費隱)을 설명하면서 시경 한록의 ‘연비여천 어약우연(鳶飛戾天 魚躍于淵)’을 인용하였는데, 주희의 주에, “자사가 이 시를 인용하여, 화육(化育)의 유행(流行)이 위로 아래로 환히 드러나는 것이 이 이치의 쓰임이 아닌 것이 없음을 밝혔으니, 이른바 비(費)이다.” 하였다.

464)하학근독(下學謹獨)의 요체를 삼았습니다:중용장구 제33장에 시경 정월의 ‘잠수복의 역공지소(潛雖伏矣 亦孔之昭)’를 인용하였는데, 주희의 주에 “이것은 군자(君子)가 근독(謹獨)하는 일이다.” 하였다. 하학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쉬지 않고 공부해 나가는 것을 말하며, 근독은 나만 알 수 있는 마음의 은밀한 곳을 늘 유념하여 삼가는 것을 말한다. 중용장구에 인용된 시는 시경에 있는 것과 다소간의 글자 차이가 있다.

465)이천(伊川)이……이야기:송(宋)나라 정이(程頤)가 지은 양어기(養魚記)를 말한다. 가인(家人)이 돌을 쌓아 동이만 한 작은 못을 하나 만들어서 물고기 새끼를 사다 길러 고양이 먹이로 썼는데, 그것이 불쌍해서 살려 주고 그것을 관찰하면서 느낀 바를 기록한다는 내용이다.

466)중화(中和)를……육성되는:중용장구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에 있고 만물이 육성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다.

467)믿음이……미침:주역 중부괘(中孚卦) 단전(彖傳)에 “돈어길(豚魚吉)이라는 것은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미친 것이다.[信及豚魚]” 하였다. 돼지는 조급한 짐승이고 물고기는 아는 것이 없는 동물인데, 가장 감동시키기 어려운 이들을 감동시켜 이들에게 신뢰를 얻는다면 신뢰의 지극함이 되므로 길하다는 것이다.

468)깊은……것:시경 소민(小旻)에,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가에 있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디디듯이 한다.” 하였다. 깊은 못가에 있다는 것은 추락하여 못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469)나무에……것:맹자 양혜왕 상에 나온다. 얻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한다.

470)현(玄)하고……것:노자 제1장에, “현하고 또 현한 것이 중묘(衆妙)의 문(門)이다.”라고 하였다.

471)삼현법문(三玄法門):3종의 심오한 법문이라는 뜻의 불교 용어이다.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 천복고선사(薦福古禪師)에, 삼현은 현중현(玄中玄), 구중현(句中玄), 체중현(體中玄)이라고 하였다.

472)음이……것: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도라고 한다.” 하였다.

473)추기(樞機):추는 문의 돌쩌귀이고 기는 활의 오늬이다. 추기는 움직임을 제어하는 중심축이기 때문에 일이나 물건에서 관건이 되는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474)선불장(選佛場):당나라 때 천연 선사(天然禪師)가 과거를 보러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에 선승(禪僧)을 만나 “관리를 뽑는 곳[選官場]이 부처를 뽑는 곳[選佛場]만 못하다.”라는 말을 듣고 출가하여 선승이 되었다고 한다. 불당(佛堂)이나 불사(佛寺)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475)법뢰(法雷):불교 용어이다. 불법(佛法)이 우레와 같아서 미혹한 자들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을 법뢰라고 한다.

476)조음(潮音):불법을 강송(講誦)하는 소리를 뜻한다.

477)만물을……것:장자 산목(山木)에, “만물의 처음에 노닐어, 만물을 사물로 부리고 만물에게 사물로 부려지지 않는다면, 이런 이를 어찌 얽어맬 수 있겠는가.” 하였다.

478)완전히……이룬다:노자 제16장에, “완전히 빈 상태를 이루어 고요함을 지키면, 만물이 모두 생성활동을 한다.” 하였다.

479)상덕(上德):노자 제41장에 나오는 말로, “고상한 덕[上德]은 계곡과 같다.[若谷]” 하였다.

480)오통(五通):불교 용어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세상의 모든 빛을 다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만물의 소행(所行)을 다 알 수 있는 숙명통(宿命通), 타인의 마음에 있는 생각을 다 알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으며 모든 행위에 아무런 장애도 없는 신족통(神足通) 등 다섯 가지 신통력을 말한다.

481)육통(六通):오통(五通)에, 번뇌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인 누진통(漏盡通)을 더한 여섯 가지 신통력을 말한다. 오통은 위의 주 205) 참조.

482) 뭇 이치를……것이다:대학장구 경 1장의 ‘재명명덕(在明明德)’에 대한 집주에 “명덕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중리(衆理)를 갖추고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 하였고, 맹자 진심 상 제1장의 집주에 “심(心)이라는 것은 사람의 신명(神明)이니, 중리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 하였다.

483) 하늘과……것이다:중용장구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제 위치에 안정되고 만물이 생육을 이룰 것이다.” 하였다.

484) 선유(先儒)가……하였다: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유석동이지변(儒釋同異之辨)에 나온다. 동문선 권105에 실려 있다.

485) 한유(韓愈)가……여겼다:당나라 한유가 지은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에 나온다.

486)안서 도호부(安西都護府):대본에는 ‘安西大都護府’로 되어 있는데, 세종실록 등의 자료에 의거하여 ‘大都護府’를 ‘都護府’로 고쳐 번역하였다.

487)대수갑(大首岬), 소수갑(小首岬):세종실록 지리지 황해도 해주목(海州牧)에 해주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首岬’은 실록에 ‘睡鴨’으로 표기되어 있다.

488)이후 염의(李侯念義):12쪽 주 46) 참조.

489)거정이……때:1476년(성종7) 1월, 명나라 사신 기순(祈順)과 장근(張瑾)이 황태자 책봉을 알리는 조칙을 반포하기 위해 나왔다. 이때 서거정은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압록강까지 마중을 나갔으며, 한 달쯤 뒤에 다시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황해도까지 갔다.

490)상고(上古)에는……지었습니다: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에는 굴에서 살고 들에서 살았는데, 후세에 성인이 집으로 바꾸었다.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처마를 늘여 비와 바람을 막았으니, 대개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한 것이다.” 하였다. 대장은 장대하고 튼튼함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뜻을 취하여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대한 집을 지었음을 뜻한다.

491)태종 공정대왕(太宗恭定大王)께서……승격시켰다:태종실록 4년 2월 6일 기사에, “성국공(郕國公) 증자(曾子)와 기국공(沂國公) 자사(子思)를 선성(先聖)의 배향위(配享位)로 올렸다. 처음에 증자는 십철(十哲)의 위(位)에 있고, 자사는 종사(從祀)의 열(列)에 있었는데, 좌정승 하륜(河崙)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입조(入朝)하였다가 두 분의 도상(圖像)을 얻어 와서 헌의(獻議)하여 상(像)을 만들어 배위(配位)에 승향(陞享)시킨 것이다. 또 자장(子張)의 상을 만들어 십철에 참렬(參列)시켰다.” 하였다. 십철은 공자 문하의 뛰어난 제자 열 사람인데, 안회(顔回),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재아(宰我), 자공(子貢), 염유(冉有), 자로(子路), 자유(子游), 자하(子夏)이다. 당나라 때에는 안회를 배향하고 증삼을 올리기도 하였고 뒤에는 또 증삼을 배향하고 자장을 올리기도 하였다. 후대에는 유약(有若)과 송나라 주희(朱熹)를 넣어서 ‘12철’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492)대뢰(大牢):소, 양, 돼지 등 세 가지 희생을 써서 지내는 제사이다.

493)벽옹(辟雍):주나라 때 도읍에 설치했던 학교 이름이다. 천자는 벽옹을 설치하고 제후는 반궁(泮宮)을 설치했다. 반궁은 학교 주변의 절반 정도를 물로 두르고 벽옹은 전체를 물로 둘렀다.

494)많고……편안하셨다:시경 문왕(文王)에 나온다.

495)새서(璽書):군주의 어새(御璽)가 찍혀 있는 문서를 말한다. 특별히 권면하거나 포상하는 경우에 새서를 하사한다.

496)반맹견(班孟堅)이……삼았다:반맹견은 후한(後漢) 사람인 반고(班固)이다. 맹견은 그의 자이다. 순리(循吏)는 위로 국가의 법을 잘 지키며 아래로 민심을 잘 따른 관리를 말하는데, 반고가 한서(漢書)를 지으면서 순리열전의 앞부분에 왕성(王成), 황패(黃覇), 공수(龔遂), 소신신(召信臣)을 실었다.

497)윤후 효손(尹侯孝孫):1431〜1503.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유경(有慶), 호는 추계(楸溪)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453년(단종1)에 식년시에 급제하였으며, 1457년(세조3)에 서거정과 함께 문과 중시(重試)에 급제하였다. 장흥 부사, 전주 부윤, 경상도 관찰사, 대사헌, 형조 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일기 9년 5월 24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498)남궁(南宮):예법을 다루는 관청을 말하는데, 대개 통례원과 예조가 있다. 윤효손은 예조 정랑, 통례원 좌통례 등을 거쳤다. 여기서는 예조를 가리키는 듯하다.

499)연로한……하였다:성종실록에 의하면, 윤효손은 1473년(성종4) 12월에 병든 모친을 봉양하겠다는 이유로 예조 참의를 사직하고 전주 부윤에 제수되어, 1476년 9월 공조 참판에 제수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500)견씨(甄氏):전주를 도읍으로 하여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을 말한다.

501)표리(表裏):옷 한 벌을 지을 수 있는 겉감과 안감을 말한다.

502)유서(諭書)를……융숭하였다:성종실록에 의하면, 윤효손(尹孝孫)은 1475년(성종6) 6월 22일에 진휼을 잘한 공로를 포상하는 내용의 유서(諭書)와 당표리(唐表裏)를 하사받았다.

503)사람을……있다:서경 고요모(皐陶謨)에 나오는 말로, 고요가 우(禹)에게 한 말이다.

504)이종검(李宗儉):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쌍계(雙溪)이다. 1429년(세종11) 기유년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예문관 검열․정언․지평․사간․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용인(龍仁)의 남곡(南谷)에 은거하여, 이맹전(李孟專), 김시습(金時習) 등과 교유하며 지냈다.

505)동년 김맹 자진(金孟子進):1410〜1483.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진이다. 1438년(세종20) 무오년에 서거정과 함께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1441년 신유년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506)복날과 납일(臘日):하지를 지나고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이고 네 번째 경일이 중복이고 입추를 지나고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다. 대한을 지나고 첫 번째 술일(戌日)이 납일이다.

507)양소(兩疏):서한(西漢) 선제(宣帝) 때의 태자태부(太子太傅) 소광(疏廣)과 그의 조카인 태자소부(太子少傅) 소수(疏受)를 말한다. 16쪽 주 65) 참조.

508)오덕(五德):인(仁), 의(義), 예(禮), 지(知), 신(信)을 말한다.

509)주나라에서……삼았다:주례에, 백성을 가르치고 천거하는 기준을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라 하였다. 그 육덕은 지인성의충화(知仁聖義忠和)이고 육행은 효우목인임휼(孝友睦姻任恤)인데, 효우가 육행의 맨 앞에 놓여 있다.

510)선유는……하였다:정현(鄭玄)이 주례》 〈지관사도(地官司徒)의 ‘효우목인임휼(孝友睦姻任恤)’을 주해하면서 효우에 대해서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이르고 우는 형제에게 잘 하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이 풀이는 이후 논어, 소학 등에서 효우를 풀이하는 데에 인용되었다.

511)훈지(壎篪)처럼 창화하여:시경 하인사(何人斯)에, “백씨가 훈을 불면 중씨가 지를 부네.” 하였다. 형제간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뜻한다.

512)소식(蘇軾)과 소철(蘇轍):송나라 소순(蘇洵)의 두 아들인데, 형제가 쌍벽을 이루며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513)육기(陸機)와 육운(陸雲):진(晉)나라 때의 형제 문인이다.

514)상체(常棣)를……읊조리니:시경 상체는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시이다. 그 시에 “아가위[常棣] 꽃이여! 꽃잎이 아주 선명하구나. 많은 사람들 있어도 형제만 한 이는 없느니라.” 하였고, 또 “할미새[鶺鴒]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어려움을 구해 주네. 매양 좋은 벗이야 있더라도 길이 탄식만 해 줄 뿐이지.” 하였다.

515)성왕(成王)이……칭찬했고:주나라 주공이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정벌하고 은나라의 완악한 백성들을 낙양에 옮겨 감독하였는데, 주공이 죽은 뒤에 성왕(成王)이 군진(君陳)에게 명하여 주공 대신 이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이때 군진에게 명령한 말을 기록한 것이 서경 군진(君陳)이다. 그 첫머리에, “군진아! 너의 훌륭한 덕은 효성과 공손함이다.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여 정치에 베푸는 법이니, 너에게 이 동교(東郊)를 다스릴 것을 명한다.” 하였다.

516)윤길보(尹吉甫)가……노래했다:성왕(成王)과 강왕(康王) 이후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북쪽 오랑캐인 험윤(玁狁)이 침략해 왔다. 선왕(宣王)이 윤길보에게 명하여 정벌하게 하니, 윤길보가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시인이 그 공적을 기리어 지은 시가 시경 유월(六月)이다. 그 시에, “여러 벗들에게 술잔치를 열어 주니 자라 요리와 잉어회가 있구나. 이 자리에 누가 있나? 효성스럽고 우애 있는 장중(張仲)이 있구나.” 하였다. 서거정은 시에서 장중을 찬미하는 주체를 윤길보라고 보았다.

517)봉래(蓬萊)와 영주(瀛州):신선이 산다고 하는 산 이름이다.

518)부상(府相) 이공(李公):이신효(李愼孝)를 말한다. 생몰년 미상이다. 여주 목사를 거쳐 1475년(성종6)에 강릉 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에 제수되었으며, 1480년에 형조 참의가 되었다. 이후 충청도 관찰사를 지냈다.

519)이덕숭(李德崇):1462년(세조8)에 임오년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집의, 동부승지, 전주 부윤,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520)가정(稼亭) 이 선생(李先生)의 동유기(東遊記):가정은 이곡(李穀, 1298〜1351)의 호이다. 이곡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中父)이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동유기동문선 권71과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가정집 권5 등에 실려 있다.

521)근재(謹齋) 안 상국(安相國)의 와주(瓦注):근재는 안축(安軸, 1282〜1348)의 호이다. 안축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와주는 안축이 강원도 안렴사로 있을 때에 지은 시문을 모은 관동와주(關東瓦注)를 말한다. 나중에 근재집(謹齋集)의 근간이 되었다.

522)한송금곡(寒松琴曲)은 중국에까지 전해졌고:한송금곡한송정곡(寒松亭曲)을 말한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한송정곡을 설명하기를, “고려 장연우(張延祐)라는 사람이 현종(顯宗) 때 벼슬길에 나아가 호부 상서(戶部尙書)에 이르렀다. 장연우의 다른 이름은 장진산(張晉山)이다. 당시에 한송정곡이라는 악부(樂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곡조를 비파의 밑바닥에 적었는데, 그 비파가 바다로 떠내려가서 중국 강남에 이르렀다. 강남 사람들이 그 가사(歌詞)를 해석하지 못하였다. 광종(光宗) 때 장진산이 강남에 사신으로 가자, 강남 사람들이 그 곡조의 뜻을 물었다. 장진산이 시를 지어 해석하기를, ‘달빛 하얀 한송정의 밤, 파도 잔잔한 경포대의 가을. 슬피 울며 오가는 것은 신의 있는 갈매기 한 마리.[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鷗]’라고 하였다.” 하였다. 청나라 왕사정(王士禎, 16341711)의 거이록(居易錄)에도 이 내용이 실려 있다.

523)박혜숙(朴惠肅)과……일:박혜숙은 박신(朴信, 1362〜1444)으로, 본관은 운봉(雲峯), 자는 경부(敬夫), 호는 설봉(雪峯)이다. 혜숙은 그의 시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태조 때에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고, 대사성, 대사헌, 동북면도순문찰리사(東北面都巡問察理使), 공조 판서, 이조 판서, 찬성사 등을 거쳤다. 둘째 아들 박종우(朴從愚)는 태종의 사위이다. 세종실록 26년 윤7월 12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조석간(趙石磵)은 조운흘(趙云仡, 1332〜1404)로, 본관은 풍양(豐壤)이다. 상주 노음산(露陰山)에 은거하면서 석간서하옹(石磵棲霞翁)이라 자호하였다. 그 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계림 부윤(鷄林府尹)을 거쳐 1392년(태조1) 강릉 대도호부사에 제수되었는데, 이듬해 병으로 사직하였다. 성품이 호탕하고 속세에 구애되지 않았고 은거생활을 할 때에는 소를 타고 다녔으며 죽을 때에는 스스로 묘지(墓誌)를 짓고 태연히 앉아서 죽었다고 한다. 태종실록 4년 12월 5일 기사에 졸기와 묘지가 실려 있다. 해동잡록(海東雜錄)에, 박신이 강릉 기생 홍장(紅粧)을 사랑한 이야기와 강릉 부사 조운흘이 박신을 초청하여 경포(鏡浦)에서 잔치를 베풀고 짐짓 홍장이 죽었다고 장난을 치며 즐긴 이야기가 실려 있다.

524)호종단(胡宗旦)이……일:호종단은 중국 사람으로서 고려 때에 우리나라에 와서 벼슬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비석을 보면 글자를 뭉개거나 부수고 비석을 물속에 넣었다고 한다. 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제주목 등에 호종단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525)누워서……지가:송서(宋書) 권93 은일열전(隱逸列傳) 종병(宗炳)에 의하면, 송나라 때의 종병이 노병이 들어 유람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동안 다녔던 명승지를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 두고 누워서 그림을 보며 즐겼다고 한다.

526)부상(扶桑):동해의 해가 돋는 곳에 있다는 신목(神木)이다. 높이가 2천 길이고 둘레가 2천 아름이나 되며, 같은 뿌리에서 두 줄기가 짝으로 자라나서 서로 의지하므로 ‘부상’이라 한다고 한다. 동해, 해 뜨는 곳, 태양 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527)양곡(暘谷):동해에 있다는 전설상의 장소로서, 해가 맨 처음 돋는 곳이라 한다.

528)소자첨(蘇子瞻)의……있었다:소자첨은 송나라 문장가인 소식(蘇軾)이다. 자첨은 그의 자이다. 소식의 화문여가양천원지(和文與可洋川園池)라는 시가 30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두 번째 시가 횡호(橫湖)이다. 그 시에, “푸른 연잎이 붉은 연꽃을 가려 주는 것을 유심히 보느라 하룻밤 사이에 호숫가에 서리 내린 것도 몰랐네. 천기의 운금단을 말아 와서 그 하얀 비단 위에 가을빛을 쏟아부었구나.[貪看翠蓋擁紅粧 不覺湖邊一夜霜 卷却天機雲錦段 從敎匹練寫秋光]”라고 하였다. 하화시(荷花詩)라고 한 것은 시 내용에 연꽃을 거론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듯하다.

529)속은……말하였다: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는 홀로,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오염되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면서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겉은 곧으며 덩굴지지도 않고 가지를 치지도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하게 서 있어서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음을 사랑한다.” 하였다.

530)어진……좋아한다:논어 옹야(雍也)에 나온다.

531)연안(延安) 이후(李侯):당시의 진위 현령(振威縣令) 이숙규(李淑珪)이다. 그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532)무송(茂松) 윤 상국(尹相國):윤자운(尹子雲, 1416〜1478)이다.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지망(之望), 호는 낙한재(樂閑齋)이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윤회(尹淮)의 손자이고, 신숙주가 그의 매부이다. 도승지, 병조 판서, 우참찬, 영의정 등을 거쳤다. 성종실록 9년 5월 14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533)조군 유(趙君愉):미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0 충청도 신창현(新昌縣)에는 ‘조후 침(趙侯琛)’으로 되어 있다.

534)공북(拱北):논어 위정(爲政)에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신(北辰)이 제자리에 있고 뭇 별들이 그 둘레를 싸고 있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眾星共之]”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따온 말이다.

535)서원(西原):청주(淸州)를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 충청도 청주목에, “청주는 본래 백제의 상당현(上黨縣)이었는데, 신라 신문왕(神文王) 때에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다가 경덕왕(景德王) 때에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고, 고려 태조 때에 청주로 고쳤다.” 하였다.

536)공성(公城):공주(公州)를 말한다. 공주 북쪽을 두르고 있는 성이 공산성(公山城)이므로 공주를 공성이라 하기도 한다.

537)김률(金慄):문종실록에 의하면, 1451년(문종1) 7월 13일에 사조(辭朝)하고 신창 현감(新昌縣監)으로 부임하였다.

538)작은……한다:노자 제60장에,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마치 작은 생선을 찌듯이 해야 한다.[治大國 若烹小鮮]” 하였다. 서거정이 노자의 이 글을 응용한 것이다.

539)윤 사문 호(尹斯文壕):1424〜1496.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보(叔保)이며,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 1462〜1530)의 아버지이다. 연산군일기 2년 4월 9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중종실록 등에 의하면, 정현왕후는 윤호가 신창 현감(新昌縣監)으로 재임하던 때에 태어났다고 하였으므로, 대략 1462년(세조8)을 전후한 시기에 윤호가 신창 현감으로 재임했음을 알 수 있다.

540)왕실을……의리:춘추는 공자가 기록한 춘추 시대의 역사서로 알려져 있다. 춘추 시대 중국 중심부에 위치한 나라들이 변방의 나라들을 ‘이적(夷狄)’이라 불렀다. 중심부 나라들이 패권을 다툴 때에는 항상 ‘주(周)나라 왕실을 높이고 이적을 물리친다.’는 뜻의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웠다.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에도 이 대의명분을 중시하였다. 이후 이러한 대의명분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는 데에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1)사민(四民):사(士), 농(農), 공(工), 상(商)을 말한다.

2)육경(六卿):육관(六官)의 장관들로서, 총재(冢宰), 사도(司徒), 종백(宗伯), 사마(司馬), 사구(司寇), 사공(司空)을 말한다.

3)공조:산택(山澤), 공장(工匠), 영선(營繕), 도야(陶冶) 등의 일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4)영조사(營造司):궁실, 성지(城池), 공해(公廨), 옥우(屋宇), 토목 공역(土木工役), 피혁(皮革) 등과 관련한 일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5)공야사(攻冶司):백공(百工)의 제작, 금․은ㆍ주옥ㆍ동ㆍ납ㆍ철의 야주(冶鑄), 도와(陶瓦), 권형(權衡) 등과 관련한 일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6)산택사(山澤司):진량(津梁), 원유(園囿), 종식(種植), 탄(炭), 목(木), 석(石), 주거(舟車), 필묵(筆墨), 칠기(漆器) 등과 관련한 일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7)김공 양경(金公良璥):?〜1484.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자보(子寶),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1442년(세종24)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에 제수되었고, 석성 현감(石城縣監), 판결사(判決事), 전라도 관찰사, 경기 관찰사, 공조 판서 등을 지냈다. 성종실록 15년 6월 21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8)선생안(先生案):선생은 선배라는 뜻이다. 선생안은 각 관청에서 벼슬한 사람들을 부임한 순서대로 적은 장부인데, 부임하고 이임한 날짜 및 간단한 신상 정보를 적는다.

9) 최후(崔侯):조선 초기의 문신 최선문(崔善門)이다.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경부(慶夫), 호는 동대(東臺),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慶濂書院)에 배향되었다. 한국문집총간 9집에 수록된 원호(元昊)의 관란유고(觀瀾遺稿) 현시배향위차(現時配享位次)에는 ‘최선문(崔善問)’으로 되어 있다.

10)행주(行廚):객관에 있는 임시 부엌으로, 나그네들을 위해서 음식을 마련해 주는 곳이다.

11)무릇……둔다:주례 지관사도(地官司徒)에 나온다.

12) 왕인(王人):왕이 내려보내는 사신을 뜻한다.

13)은혜로운……하였으니: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관문 출입을 기찰만 하고 세금을 매기지 않으면 천하의 나그네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길에 나오기를 원할 것이다.” 하였는데, 여기서 따와서 응용한 것이다.

14)중천축(中天竺):고대 인도를 천축국이라 하여 동, 서, 남, 북, 중으로 나누어 불렀는데, 그중의 하나이다.

15) 거대한 산악:대본에는 ‘臣岳’으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臣’은 ‘巨’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6)계룡산은……것인데: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오악(五嶽)은 신라 때에 제사를 올리던 대표적인 다섯 개의 산, 즉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 팔공산을 말한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상도 경주부에 의하면, 토함산을 동악(東嶽)으로, 금강산을 북악으로, 선도산(仙桃山)을 서악으로, 함월산(含月山)을 남악으로 한다고 하고, 선도산을 서술산(西述山), 서형산(西兄山), 서연산(西鳶山)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하였다. 선도산은 경주부 서쪽 7리에 있다고 하였으니, 현재의 계룡산과는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다. 아마도 서거정이 경주부 서악인 선도산을 신라의 서악인 계룡산의 옛 이름으로 착각한 듯하다.

17) 간담을 서늘하게:대본에는 ‘可’으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은 ‘愕’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18)육왕탑(育王塔):육왕은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 왕을 말한다. 아소카 왕이 불교에 귀의한 뒤에 8만 4천 개의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에 바위가 탑처럼 솟아 있는 것을 두고 아소카 왕이 만들어 땅속에 묻어 두었던 탑이 솟아난 것이라 한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19)비해당(匪懈堂):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호이다.

20)결하(結夏):하안거(夏安居)를 시작하는 것을 말하는데, 결제(結制)라고도 한다. 하안거의 ‘안거’는 범어의 ‘비오는 시기’라는 뜻이다. 하안거는 인도의 승려들이 우기(雨期)에 해당하는 석 달 동안 밖에서 수행하기가 어렵고 또 빗속에서 초목과 벌레들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외출을 삼가고 일정한 곳에 머물며 수행과 참선을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21)산림인가……하는구나:장자 지북유(知北遊)에 나온다. 산림이든 물가든 나와는 특별히 관련이 없지만 이런 자연 경관들을 보면 내 마음에 흐뭇한 기쁨이 생긴다는 뜻이라 한다.

22)향기가……맑다: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온다.

23)명장(名場):공명을 추구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과거 시험장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24)하후 금(河侯襟):하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단종실록 2년 12월 5일 신사 기사에, 임진 현감(臨津縣監) 하금을 태인 현감(泰仁縣監)으로 삼은 것에 대해 사헌부에서 부당함을 아뢰는 내용이 실려 있고, 세조실록 6년 5월 25일 기사에는 현감 하금을 원종 3등공신으로 삼을 것을 명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25)소 강공(召康公)이……않았는데:시경 감당(甘棠)에, “무성한 감당나무, 자르지 말고 꺾지 말라. 소백(召伯)이 쉬셨던 곳이니라.” 하였다. 소백은 주나라 소공(召公)을 말하며 ‘강(康)’은 그의 시호이다. 소공이 정치를 잘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그의 덕화를 사모하여, 순행 길에 소백이 쉬어 갔던 감당나무를 잘 보호하여 길렀다고 한다.

26) 영정:대본에는 ‘睟客’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客’은 ‘容’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27) 가장 크다:대본에는 ‘最臣’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臣’은 ‘巨’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28)김담(金淡):1416〜1464.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이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천문과 역법 등에 밝았다. 1435년(세종17)에 정시(庭試)에 급제하였고, 장령, 직제학, 안동 부사, 첨지중추원사 등을 거쳐, 1460년(세조6) 1월에 경주 부윤에 제수되었다. 1463년 7월에 중추원부사가 되었고, 이조 판서를 지냈다. 세조실록 10년 7월 10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저서로는 무송헌집이 있다.

29)복천(福川) 권공(權公):권개(權愷, ?∼1468)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만년에 급제하여 병조 정랑이 되었다. 세조의 계유정난을 도운 공로로 좌익 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봉되었고, 그 뒤 황해도 관찰사, 병조 참의,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냈으며, 1462년(세조8)에 복천군(福川君)에 봉해지고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세조실록 14년 5월 24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0)신공 숙주(申公叔舟):14171475.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희현당(希賢堂)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438년(세종20)에 진사시에 장원하고, 143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446년에 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를 지었다. 도승지, 병조 판서, 대사성, 좌찬성, 영의정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보한재집이 있다. 성종실록 6년 6월 21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1)김공 영유(金公永濡):1418〜1494.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택부(澤夫)이며, 시호는 공평(恭平)이다. 1438년(세종20)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47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감찰, 정언, 형조 좌랑을 거쳐 1466년(세조12) 1월에 대사성이 되어 이해 6월까지 재임하였다. 그 뒤 예조 참의, 동지중추부사, 대사헌, 개성 유수 등을 지냈다. 성종실록 25년 12월 6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2)최공 선복(崔公善復):생몰년 미상이다.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자초(子初), 호는 두곡(豆谷)이다. 1447년(세종29)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정자(正字)가 되었고, 그 뒤 부수찬, 정언, 지평, 보덕, 우부승지, 호조 참의 등을 지냈다.

33)예원(藝苑):예문관을 말한다. 이 글에 거론된 김영유(金永濡)가 대사성이었을 때가 1466년(세조12)이므로, 이 글은 이때쯤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서거정은 당시에 예문관 제학이었으며, 1467년 가을에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다.

34)성목대왕(聖穆大王):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고조인 목조(穆祖)를 말한다.

35)덕음(德音):백성들에게 은혜를 주는 것이라는 뜻에서 군주가 내리는 명령이나 조칙을 뜻한다. 선현의 훌륭한 말씀과 문장, 또는 존경하는 상대의 편지나 소식 등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36)이후 언(李侯堰):생몰년 미상이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남원 부사, 중추원부사 등을 거쳐, 1461년(세조7)에 정조사 부사로 명나라를 다녀온 뒤에, 3월에 전주 부윤에 제수되었다.

37)이후 형손(李侯亨孫):1418〜1496.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창백(昌伯)이며, 시호는 평호(平湖)이다. 1467년(세조13)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공을 세워 적개 공신(敵愾功臣)에 녹훈되고, 전라도절도부사 겸 전주부윤에 제수되었다.

38)이번(李蕃)이 부윤이 되고:예종실록에 의하면, 이번은 1469년(예종1) 1월에 전주 부윤에 제수되었다.

39) 태빈(邰豳):대본에는 ‘邵豳’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邵’는 ‘邰’가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40)목조(穆祖)께서……것이리라:주(周)나라의 시조인 후직(后稷)이 살던 곳이 태(邰)이고 그 증손인 공류(公劉)가 이주해 살던 곳이 빈(豳)이다. 조선 태조의 시조인 목조가 살던 전주를 태빈에 견준 것이다. 태왕(太王)은 공류의 9세손 고공단보(古公亶父)인데, 무왕(武王)이 태왕이라 추존하였다. 태왕의 아들이 계력(季歷)이고 계력의 아들이 문왕(文王)이고 문왕의 아들이 무왕이다. 태왕이 빈에서 살 때에 오랑캐가 침략해 오니 태왕이 그곳을 버리고 기산(岐山) 아래로 이주하였다. 목조도 전주에서 강원도 삼척(三陟)으로 이주하였고 다시 덕원(德原)으로 이주하였다.

41)일선(一善):선산(善山)의 옛 이름이다.

42)금릉(金陵):금산(金山)의 옛 이름이다.

43)성악(星嶽):성주(星州)를 말한다.

44)상산(商山):상주(尙州)의 옛 이름이다.

45) 유능한 인재로서:대본에는 ‘斡能’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斡’은 ‘幹’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46) 불룩 솟아:대본에는 ‘窮然屹然’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窮’은 ‘穹’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47)산천……같았다:당나라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고무담서소구기(鈷鉧潭西小丘記)에, “맑은 형상은 눈과 대화하고, 졸졸 물소리는 귀와 대화하고, 그윽이 비어 있는 것은 정신과 대화하고, 깊숙이 고요한 것은 마음과 대화한다.[淸泠之狀與目謀 瀯瀯之聲與耳謀 悠然而虛者與神謀 淵然而靜者與心謀]”라고 하였다.

48)은천군(銀川君):이찬(李穳, 1421〜1481)이다. 태종 공정대왕(太宗恭定大王)의 서자(庶子)인 경녕군(敬寧君) 이비(李裶)의 아들이다. 세조가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할 때에 이찬을 겸대사헌으로 임명하여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시호는 공무(恭武)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었으므로 세조의 신임이 남달랐으며, 평생 나무 가꾸기를 좋아하여 집의 정원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성종실록12년 10월 16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49)장강(長江)과……것:맹자 등문공 상에 나온다. 증자가 공자의 덕을 찬양하며 말하기를 “장강과 한수(漢水)에 씻은 것과 같고 가을볕에 쐰 것과 같다.” 하였다.

50)사람의……않아서:맹자 고자 상에,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서 드나드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그 향하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것은,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하였다.

51)어진……좋아한다:논어 옹야에 나온다.

52)신후 자즙(申侯子楫):신말주(申末舟, 1429〜1503)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자즙(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이다. 대사간, 형조 참의, 전주 부윤, 진주 목사, 창원 부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첨지중추부사, 전라 수군절도사 등을 지냈다.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舟)의 동생이다.

53)귀거래(歸去來):진(晉)나라 도잠(陶潛, 365〜427)이 지은 귀거래사에 나오는 ‘귀거래’를 말한다.

54) 그 벼슬을……돌아온다:서거정 이전의 시대에 ‘귀거래’를 이와 같이 풀이한 사람이 있었던 듯하나 미상이다. 이 내용은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권4 관직부(官職部) 치사(致仕)에 채집되어 실려 있는데, 그곳에, “도연명은 을축년(365)에 태어났다. 을사년(405)에 귀거래사를 지었는데, 당시에 나이가 41세였으니 대개 강사(彊仕)의 나이였다. ‘귀거래(歸去來)’라고 한 것은, 그 벼슬을 돌려주고[歸其官] 그 직임을 버리고[去其職] 그 집으로 돌아온다[來其家]는 의미이다.” 하였다.

55)밖에서……충분하다:대본에는 ‘無不外求而足’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가 통하지 않으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39 전라도 순창군(淳昌郡)에 의거하여, ‘無不’을 ‘不待’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56)지족편(止足篇):노자 제44장에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 하였다. 지족편이란 이 구절을 말하는 듯하다.

57)호부(戶部)……때에:성종실록 7년 1월 27일(임신), 2월 5일(기묘), 2월 10일(갑신), 2월 20일(갑오) 기사에 의하면, 이해 봄에, 정사(正使)인 호부 낭중(戶部郞中) 기순(祈順)과 부사(副使)인 행인사 좌사부(行人司左司副) 장근(張瑾)이 황태자 책봉을 알리는 교서와 칙서를 반포하기 위해 사신으로 나왔다.

58)권정(權侹):권근(權近)의 증손자이다. 서거정은 권근의 외손자이므로, 권정을 족질이라 한 것이다.

59) 김백겸(金伯謙):1429〜1506.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양(子讓),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공조 참의, 의주 목사, 평안도 절도사 등을 지냈다.

60) 이후 맹현(李侯孟賢):1436〜1487. 본관은 재령, 자는 사성(師聲), 호는 근재(覲齋)이다. 1460년(세조6)에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관찰사, 홍문관 부제학, 병조 참의, 나주 목사 등을 지냈다.

61)편안하게……않는다: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62)무릇……어렵다:북송의 문장가 증공(曾鞏, 10191083)의 문집인 증공집(曾鞏集)17 번창현흥조기(繁昌縣興造記)에 나온다. 증공의 자는 자고(子固), 호는 남풍선생(南豐先生)이며,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63)남원군(南原君):양성지(梁誠之, 1415〜1482)를 말한다. 본관은 남원, 자는 순부(純夫), 호는 눌재(訥齋)․송파(松坡)이다. 시호는 문양(文襄)이다. 1441년(세종23)에 사마 양시에 이어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조 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을 거쳤다. 성종실록 13년 6월 11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64)수역(壽域):태평성대를 만나 모든 사람들이 천수를 누릴 수 있는 지역이라는 뜻도 있고, 죽기 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묘역이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인 듯하다.

65)양찬(梁瓚):14431496. 양성지(梁誠之)의 셋째 아들이다. 웅천 현감(熊川縣監), 제주 목사, 동부승지, 영해 부사(寧海府使), 수원 부사, 포도대장 등을 지냈다.

66)이사(里社):토지 신과 곡식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을 단위로 만든 사당이다.

67)양원(梁瑗):양성지의 첫째 아들이다.

68)양호(梁琥):양성지의 넷째 아들이다.

69)안남산(安南山):부평의 진산(鎭山)이다. 계양산(桂陽山)이라고도 한다.

70)은 도장:한(漢)나라 때에 작질이 2000석(石) 이상인 관리는 은으로 만든 관인(官印)을 사용하였는데, 이후로 높은 벼슬아치의 관인을 은장이라 하며, 벼슬아치의 신분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71)붉은 실띠:옛날에 높은 벼슬아치들은 자색(紫色) 실로 만든 끈을 띠처럼 둘렀다. 신분을 상징하는 표식이다.

72)줄줄이……것:대본에 ‘연주첩벽(聯珠疊璧)’으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번역하였다. 연주와 첩벽은 여러 명의 훌륭한 형제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73)인각(麟閣):기린각(麒麟閣)을 말한다. 기린각은 한나라 때의 전각의 이름인데, 선제(宣帝) 때에 곽광(霍光) 등 공신 11명의 화상을 그곳에 그려 놓았다고 한다. 후세에서는 공신이 되었다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74)갑과(甲科):문과 시험에서 1등부터 3등까지를 갑과라 한다.

75)뒷날……경사:대본에는 ‘적경(積慶)’으로 되어 있다.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그 후손에게 큰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에서 따온 듯하다.

76)가지런한……곳이로다:시경 사간(斯干)에 나온다.

77)자손들이……하리라:시경 초자(楚茨)에 나온다.

78)이유인(李有仁):?〜1492. 본관은 경주이다. 헌납, 이천 부사(利川府使), 장례원 판결사, 호조 참의 등을 거쳐 1479년(성종10) 2월에 전주 부윤에 제수되었다. 그 뒤 우부승지, 강원도 관찰사, 대사헌, 예조 참판 등을 지냈다.

79) 우뚝 솟고:대본에는 ‘窮’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窮’은 ‘穹’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80)산을……기르며:논어 옹야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하였다.

81)솔개와……것입니다:시경 한록(旱麓)에, “솔개는 하늘 높이 날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네.”라고 하였다. 중용장구에 이 시를 인용하였는데, 주자의 주에 “화육(化育)이 유행(流行)하여 위와 아래에 환히 드러나는 것이 이치의 효용이 아닌 것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하였다.

82)화육(化育)에……것입니다:중용장구 제22장에 “사물의 성(性)을 극진히 하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함께할 수 있다.” 하였고, 맹자 진심 상에 “군자는 지나가는 곳이 교화되며 지닌 바가 신묘하기 때문에 위아래로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흐른다.” 하였다. 눈과 귀에 들어오는 만물의 본성을 모두 깊이 연구해서 알게 되면 천지가 하는 일에 동참하여 천지와 일체가 된다는 뜻이다.

83)한 고을의……벗한다:맹자 만장 하에 나온다.

84)무우(舞雩)에서……천성:논어 선진(先進)에 나온다. 각자의 뜻을 이야기해 보라는 공자의 질문에 증점(曾點)이 대답하기를, “늦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관례(冠禮)를 지낸 자 대여섯과 동자(童子) 예닐곱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하였는데, 주자의 주에, “그 가슴이 넓고 그윽하여 천지 만물과 더불어 위아래로 함께 흘러 각각 득기소(得其所)한 오묘함이 은연히 절로 말 밖으로 드러났다.” 하였다. 번역문의 ‘천성’은 자연과 일체가 된 증점의 성품을 말한다.

85)태산에……기상:맹자 진심 상에, “공자가 동산(東山)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泰山)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 하였다.

86)민월(閩越)은……되었다:상곤(常袞)과 구양첨(歐陽詹)은 모두 당나라 때의 인물이다. 당나라 덕종(德宗) 초기에 상곤이 민월 지역의 관찰사가 되어 향교를 세우고 교육을 하니 민월 지방에 문치가 이루어졌으며, 그 지역 사람으로서 구양첨이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87)정주(程朱):송나라의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와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이들이 이룬 학문을 정주학이라 한다.

88)양 판상(梁判相):판서를 지낸 양성지(梁誠之)를 말한다.

89)양찬(梁瓚)이……있으면서:성종실록에 의하면, 양찬은 1478년(성종9) 8월에 통정대부 행 제주 목사에 제수되었다.

90)모라국(毛羅國):세종실록, 동사강목(東史綱目), 해동역사(海東繹史) 등의 기록에 의하면, 제주도는 탁라(乇羅), 탐모라(耽牟羅), 담모라(耼牟羅) 등으로 불렸다.

91)구한(九韓):동사강목 부록 권상 고이(考異) 구이(九夷)삼국유사를 인용하여, “구한은 일본(日本), 중화(中華), 오월(吳越), 탁라(乇羅), 응유(鷹遊), 말갈(靺鞨), 단국(丹國), 여진(女眞), 예맥(濊貊)이다.” 하였다.

92)기 황후(奇皇后):원나라 순제(順帝)의 비(妃)이다. 고려 기자오(奇子敖)의 딸이다.

93)세 고을:대본에는 ‘삼도(三道)’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전라도 제주목(濟州牧)에는 ‘삼읍(三邑)’으로 되어 있다.

94)상산(常山)의 형세:양쪽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상호 보조하는 형세를 갖춤을 말한다. 손자병법, 태평어람 등에 나온다. 상산에 솔연(率然)이라는 뱀이 있는데, 머리를 치면 꼬리가 와서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와서 덤비며,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와서 덤빈다고 한다. 또는 솔연은 머리가 둘이 달린 뱀인데 한쪽을 치면 다른 한쪽이 와서 덤비며, 중간을 치면 두 머리가 함께 덤빈다고도 한다. 용병을 잘하는 것을 비유할 때에 쓰는 말이다.

95)고조기(高兆基):?〜1157. 초명(初名)은 당유(唐愈)이다. 경서와 역사에 달통하였고 오언시를 잘하였다고 한다. 벼슬이 중서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

96)고득종(高得宗):제주 사람으로서 조선 초기에 승문원 교리, 예조 정랑, 예조 참의, 한성 부윤 등을 지냈다.

97)좌윤(左尹) 고태필(高台弼):고득종(高得宗)의 아들이다. 과거에 올라 조선 초기에 헌납, 청주 목사, 이조 참판, 전라도 관찰사, 황해도 관찰사, 개성 유수(開城留守) 등을 지냈다. 좌윤을 지냈다는 것은 미상이다.

98) 개와 말들이:대본에는 ‘駒馬’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狗馬’가 흔히 쓰이는 단어이므로 ‘駒’를 ‘狗’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99) 상락(上洛) 김후(金侯):김뉴(金紐)를 말한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고(子固), 호는 금헌(琴軒)․쌍계재(雙溪齋)․상락거사(上洛居士) 등이다. 대사헌, 예조 참판, 이조 참판 등을 지냈다. 1466년(세조12)에 서거정과 함께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에 급제하였다.

100)고양(臯壤)이……못했다:‘고양’과 ‘산림(山林)’은 장자 지북유(知北遊)에서 따온 말이다. ‘고양’은 ‘평원(平原)’이라 하기도 하고 ‘택변(澤邊)’이라 하기도 한다. 둘 다 자연 풍광을 가리킨다.

101) 고량진미:대본에는 ‘膏梁’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梁’은 ‘粱’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02)산……몽(蒙)이다:주역 몽괘(蒙卦) 상전(象傳)에, “산 아래에서 샘물이 나옴이 몽이니, 군자가 그것을 보고 실천하기를 과단성 있게 하고 덕을 기른다.” 하였다.

103)부자는……하셨고:논어 자한(子罕)에, “부자께서 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다. 밤낮을 쉬지 아니한다.’ 하셨다.” 하였다.

104)근원이……흐른다: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온다.

105)아래에서……공부:아래에서 비근한 인사(人事)를 배워서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는 공부를 말한다.

106)중화위육(中和位育)의 공부:중용장구 제1장에, “중과 화를 미루어 끝까지 가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아 안정이 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다. 학문의 극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107)현종(顯宗)이……파천하여:1011년(고려 현종2)에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開京)이 점령당하자 현종이 나주(羅州)로 피난하였다.

108) 넉넉하고:대본에는 ‘鐃’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饒’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09)월성(月城) 김후(金侯):김춘경(金春卿, 1441〜?)을 말한다. 사헌부 집의, 나주 목사,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 등을 지냈다.

110)편안하게……않는다: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111)지달산(只怛山):대본에는 ‘只恒山’으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0 경상도 합천군(陜川郡)에 의거하여 ‘恒’을 ‘怛’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12)비바시불(毗婆尸佛):불교에서 말하는 과거칠불(過去七佛) 가운데 첫째 불(佛)이다.

113)팔공덕수(八功德水) 노대(櫨臺):팔공덕수는 극락세계에 있는 8종의 공덕을 갖춘 샘물이라 한다. 8종의 공덕은, 달고[甘], 차고[冷], 부드럽고[軟], 가볍고[輕], 맑고[淸淨], 냄새가 없고[不臭], 목을 아프게 하지 않고[不損喉], 배를 아프게 하지 않는[不傷腹] 것이라 하기도 하고, 맑고[淸], 차고[冷], 향기롭고[香], 부드럽고[柔], 달고[甘], 맑고[淨], 상하지 않고[不饐], 병을 낫게 하는[除疴] 것이라 하기도 하고, 맑고[澄淨], 시원하고[淸冷], 감미롭고[甘美], 부드럽고[輕軟], 윤택하고[潤澤], 온화하고[安和], 근심을 없애고[除患], 이익을 주는[增益] 것이라 하기도 한다. 노대는 녹로(樚櫨)를 설치하여 물을 긷는 곳을 말하는 듯하다.

114)권총(權聰):1413〜1480.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시호는 영정(靈靖)이다.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태종의 셋째 딸 경안공주(慶安公主)이다.

115) 고량진미:대본에는 ‘膏梁’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梁’은 ‘粱’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16)윤후(尹侯):윤지(尹志)를 말한다. 인적 사항은 미상이다.

117) 내가:대본에는 ‘子’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予’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18)학이……들린다:시경 학명(鶴鳴)에 나온다.

119)송숙기(宋淑琪):세조〜성종 연간에 장단 군사(長湍郡事), 사헌부 지평,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풍덕 군수(豐德郡守), 한성 서윤(漢城庶尹), 덕원 부사(德源府使), 사섬시 정(司贍寺正) 등을 지냈다.

120)조지주(趙之周):세조〜성종 연간에 연안 부사(延安府使), 풍천 도호부사(豊川都護府使), 여주 목사(驪州牧使), 대구 도호부사(大丘都護府使), 성주 목사(星州牧使), 강화 부사(江華府使) 등을 지냈다.

121)이신효(李愼孝):세조〜성종 연간에 의금부 도사, 황해 도사, 온양 군사(溫陽郡事), 장단 군수(長湍郡守), 강릉 대도호부사,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122)스물네 칸:대본에는 ‘二十四楹’으로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스물세 칸’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나, 당시에는 ‘영(楹)’과 ‘칸[間]’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대략 섞어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어, 이렇게 번역하였다.

123)임치(林㮹):고려 시대 임견미(林堅味)의 아들로서 우왕(禑王) 때에 총애를 받아 상호군, 밀직사 등을 지냈다. 그 외 인적 사항은 미상이다.

124)한옹(韓雍):1352〜1425. 본관은 곡산(谷山), 시호는 평절(平節)이다. 태종〜세종 연간에 장령,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대호군(大護軍), 병조 참의, 충청도 도관찰사, 한성 부윤(漢城府尹), 경상도 도관찰사, 판충주목사(判忠州牧事) 등을 지냈다. 세종실록 7년 7월 20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25)박여거(朴與居):신증동국여지승람 권11 경기 적성현(積城縣)에는 ‘박흥군(朴興君)’으로 되어 있다.

126) 겨를도 없었다:대본에는 ‘未假’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假’는 ‘暇’가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127)편안히……않는다: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1)정(政)이라는……뜻이다:논어 안연(顔淵)에, “계강자(季康子)가 공자께 정치[政]를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정치라는 것은 바룬다[正]는 뜻이다. 그대가 바름으로써 이끌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하였다.

2)일곱 가지 일:수령이 수행해야 할 일곱 가지 일, 즉 수령칠사(守令七事)이다. 농업과 양잠을 번성하게 하기[農桑盛], 호구를 증가시키기[戶口增], 학교를 일으키기[學校興], 군정을 제대로 다스리기[軍政修], 부역을 고르게 하기[賦役均], 송사를 잘 처리하기[詞訟簡], 간사한 짓 금지하기[奸猾息]를 말한다. 임지로 떠나는 수령이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릴 때 이것을 외웠다고 한다.

3)대성(大成):맹자 만장 하의 주자 주에, “성(成)은 음악이 한 번 마무리되는 것이다. 여러 음악의 작은 완성품들을 모아서 하나의 큰 완성품[大成]을 만든다.” 하였다.

4)삼년유성(三年有成):논어 자로에 “공자가 말하기를, ‘정말이지 나를 등용하는 자가 있다면, 1년만 지나도 볼만하게 될 것이고, 3년이면 이룸이 있으리라.’ 하였다.” 하였다.

5)삼이(三異):후한(後漢) 때 중모(中牟)의 수령 노공(魯恭)이 덕정(德政)을 시행하자 일어났다고 하는 세 가지 기이한 일을 말한다. 노공이 정치를 잘하자, 명충(螟蟲)이 국경에 들어오지 않고, 조수(鳥獸)까지도 교화되었으며, 어린이들이 인심(仁心)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6)오고(五袴):바지가 다섯 벌이라는 말이다. 후한 때 촉군(蜀郡)에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밤에 불을 켜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이 있었다. 백성들이 법령을 어기고 밤에 몰래 일을 하곤 하였는데, 염범(廉范)이 촉군의 태수가 되어 그 법령을 폐지하고 대신 화재 발생 시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을 준비하게 하였다. 백성들이 밤에도 일을 하여 생활이 넉넉해지자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염숙도(廉叔度)가 어찌 이리 늦게 오셨나. 불을 금지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편안해졌네. 전에는 저고리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되었네.” 하였다. 숙도는 염범의 자이다.

7)좌의정 윤공(尹公):당시의 좌의정 윤필상(尹弼商)을 말한다.

8)문후지명(文侯之命):서경의 편명이다. 주나라 유왕(幽王)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당하자 진(晉)나라 문후가 정(鄭)나라 무공(武公)과 함께 태자 의구(宜臼)를 세우니, 이가 평왕(平王)이다. 평왕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문후를 방백으로 삼고 거창(秬鬯)과 궁시(弓矢)를 하사하였다. 이때에 책서(策書)를 만들어 명하였는데, 그 기록이 문후지명이다.

9)동궁(彤弓):시경의 편명이다. 천자가 공적을 세운 제후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고 활과 화살을 하사하는 것을 노래한 시이다.

10)상공(相公):당시의 좌의정인 윤필상(尹弼商)을 말한다.

11)강한(江漢):시경의 편명이다. 주나라 선왕(宣王)이 소목공(召穆公)을 시켜 회수(淮水) 남쪽의 오랑캐를 정벌한 것을, 윤길보(尹吉甫)가 찬미한 내용이다.

12)상무(常武):시경의 편명이다. 선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회수 북쪽의 오랑캐를 정벌한 것을, 소목공이 찬미한 내용이다.

13) 서방(徐方):대본에는 ‘西方’으로 되어 있는데, 시경 주석에 의거하여, ‘西’를 ‘徐’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4)아장(雅章):시경의 내용상 분류 중 아체(雅體)를 말한다.

15) 비궁당(匪躬堂):창덕궁에 있던 건물 이름이다. 1483년(성종14) 12월에 왕명에 의하여 서거정이 비궁당기를 지었다.

16)베 이불로……낚고:한(漢)나라 때 공손홍(公孫弘)이 검소한 생활을 하였는데, 삼공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베옷을 입고 다녔다. 급암(汲黯)이 비판하기를, “공손홍은 삼공의 지위에 있어서 봉록이 매우 많다. 그런데도 베옷을 입고 다니니, 이는 속임수이다.” 하였다.

17)상아 주판으로……셈하며:진(晉)나라 때 왕융(王戎)은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았는데도 상아로 만든 주판으로 재산을 계산해 보면서 늘 부족하게 여겼다고 한다.

18)반식(伴食)이나 한다는 비판:당(唐)나라 때 노회신(盧懷愼)이 요숭(姚崇)과 함께 정승으로 있으면서 자기의 재주가 요숭에게 뒤진다는 것을 알고, 일을 모두 요숭에게 미루어 요숭이 결정하는 대로 따랐다. 사람들이 그를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고 하였다. 반식은, 함께 밥이나 먹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용렬하여 직무를 수행할 능력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자를 비유하는 말이다.

19)솥이나 엎는다는 비방:주역 정괘(鼎卦) 구사(九四)에 “솥이 발이 부러져 음식을 쏟으니, 그 얼굴에 땀이 흐르니 흉하다.” 하였다. 대신(大臣)의 지위에 있으면서 무능하여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20)이공(貳公):삼공(三公)을 보좌하는 찬성(贊成), 참찬(參贊) 등의 벼슬을 말한다.

21) 각종:대본에는 ‘凡白’으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白’은 ‘百’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22)공경하여……보필하는:서경 주관(周官)에 “소사(少師), 소부(少傅), 소보(少保)를 삼고(三孤)라 하니, 삼공의 다음이 되어 조화를 넓혀 천지를 공경하여 밝혀 나 한 사람을 보필한다.” 하였다.

23)비록……않는다:전국 시대(戰國時代)에 금식(禽息)이 진 목공(秦穆公)에게 백리해(百里奚)를 천거하였는데, 목공이 들어주지 않자 물러나 머리를 땅에 찧으며 호소하다가 죽으니, 이에 목공이 백리해를 등용하였다고 한다.

24)솥에 삶긴들:원문은 ‘정확(鼎鑊)’이다. 정확은 전국 시대 때에 죄인을 삶아 죽이는 형구(刑具)였다. 큰 형벌을 받는 것을 비유할 때에 이 말을 쓴다.

25)옷자락을 당기는 일:위(魏)나라 때에 신비(辛毗)가 문제(文帝)의 옷자락을 붙들고서 끝까지 충언을 했던 일을 말한다.

26)난간을 부러뜨리는 일: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에 주운(朱雲)이 성제에게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劒)으로 간사한 장우(張禹)를 베겠다고 했다가, 성제가 노해서 어사를 시켜 끌어내게 하니, 주운이 난간을 붙들고 놓지 않아서 난간이 부러진 일을 말한다.

27)입을 봉한 금인(金人):금인은 쇠로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공자가어에 “공자가 주(周)나라 태조 후직(后稷)의 사당에 들어가 보니, 사당의 오른쪽 계단 앞에 쇠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입이 세 번 꿰매져 있고 그 등에는 ‘옛날에 말을 신중하게 하던 사람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하였다.

28)입을 다문 촉초(蜀椒):촉초는 초피나무 열매를 말한다. 초피 열매의 껍질은 약재로 쓰이기도 하고 식용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익으면 벌어 씨앗이 나온다. 벌지 않은 것은 그 독성이 사람을 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29) 야경을 도는:대본에는 ‘繫柝’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繫’는 ‘擊’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30)우서(虞書)에……것:서경 순전(舜典)에 의하면, 순(舜) 임금이 우(禹)를 사공(司空)으로, 기(棄)를 후직(后稷)으로, 설(挈)을 사도(司徒)로, 고요(皐陶)를 사(士)로, 수(垂)를 공공(共工)으로, 익(益)을 우(虞)로, 백이(伯夷)를 질종(秩宗)으로, 기(夔)를 전악(典樂)으로, 용(龍)을 납언(納言)으로 삼았다.

31)상훈(商訓)에……것:서경 이훈(伊訓)에, “궁(宮)에서 늘 춤이나 추고 방에서 늘 술 마시고 노래나 하는 것을 무풍(巫風)이라 하고, 늘 재화, 여색, 유람, 사냥에 빠져 즐기는 것을 음풍(淫風)이라 하고,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충직한 말을 막고 나이와 덕이 있는 이를 멀리하고 완악한 녀석들과 어울리는 것을 난풍(亂風)이라 한다. 이 삼풍십건(三風十愆)이 경사(卿士)의 몸에 한 가지라도 있으면 집안이 반드시 망하며, 군주의 몸에 한 가지라도 있으면 나라가 반드시 망한다. 신하가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 죄가 묵형(墨刑)이다.” 하였다.

32)주관(周官)에……것:서경 주관(周官)에 의하면, 군주는 육직(六職)을 두고 각각 관속을 거느리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데, 육직은 총재(冢宰), 사도(司徒), 종백(宗伯), 사마(司馬), 사구(司寇), 사공(司空)이다. 한편 ‘주관’은 주례(周禮)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는데, 주례 천관(天官)에, 나라를 다스리는 여섯 가지 직무를 나누어 놓았으니, 치직(治職), 교직(敎職), 예직(禮職), 정직(政職), 형직(刑職), 사직(事職)이다. 둘 다 문맥이 통하나, 여기서는 서경의 내용을 가져온 듯하다.

33)왕우칭(王禹偁):954〜1001. 송나라 때의 학자로, 대루원기(待漏院記)를 지었다. 대루원은 재상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군주의 정사(政事)를 기다리던 집이다.

34)군주의……않다:논어 자로(子路)에 나온다.

35)화산(花山):안동(安東)의 옛 이름이다.

36)권후 륜(權侯綸):1415〜? 1447년(세종29) 정묘년 친시(親試)에 정과(丁科) 9위로 급제하였다. 예조 정랑, 의정부 사인, 사헌부 집의,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성균관 대사성, 예조 참의,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37) 대궐:대본에는 ‘魏’으로 되어 있으나 ‘’은 ‘闕’이 타당할 듯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38)무하유(無何有)의……곳:장자 소요유에 나온다.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없는 광활한 천연의 장소를 뜻한다.

39)아지랑이와……것인지:장자 소요유에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들이 서로 숨을 불어 주는 것들이다.” 하였다.

40)산림인지……없다:장자 지북유(知北遊)에 “산림이여! 물가여! 나로 하여금 흐뭇이 즐겁게 하는구나! 그러나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또 이어지네. 슬픔과 즐거움이 오는 것은 내가 막을 수 없고 그것들이 가는 것도 내가 멈출 수 없네.” 하였다. 여기서는 초야에서 지내면서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41)오리의……것이며:장자 변무(騈拇)에, “길다고 해서 남는 것이 아니며 짧다고 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다. 오리의 다리가 짧지만 이어 주면 근심하고 학의 다리가 길지만 자르면 슬퍼한다.” 하였다.

42)솔개에게……취하랴:장자 열어구(列禦寇)에 나온다. 장자가 죽을 때에 제자들이 후하게 장례를 치르려고 하자, 장자가 그리 못하게 하였다. 제자가 “그냥 시신을 내다 버리면 솔개가 선생님을 먹을까 염려가 됩니다.”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땅 위에 있으면 솔개의 먹이가 될 터이고 땅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의 먹이가 될 터인데, 솔개의 먹이를 빼앗아서 땅강아지에게 주려 하다니, 어쩌면 그리도 치우친 생각을 하는가!” 하였다.

43)고금(古今)은……담비이고:원문은 ‘고금일맥(古今一貉)’이다. ‘일맥(一貉)’은 ‘일구지맥(一丘之貉)’의 줄임말로 ‘동일한 산에 사는 담비’라는 뜻인데, 차별이 없는 동류(同類)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44)만물은……말[馬]이다:장자 제물론에, “천지는 다 같은 손가락이고 만물은 다 같은 말이다.” 하였다. 피아(彼我)의 차이가 없는 동일한 사물이라는 뜻이다.

45)육기(六氣):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는 여섯 가지 기운을 말한다. 음(陰), 양(陽), 풍(風), 우(雨), 회(晦), 명(明)이다. 평단(平旦)의 기운, 일중(日中)의 기운, 일몰(日沒)의 기운, 야반(夜半)의 기운, 하늘의 기운, 땅의 기운을 육기로 보는 학설도 있다.

46)팔극(八極):팔방의 궁극의 지역을 말한다. 아주 먼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47)쑥대밭이나 느릅나무 사이:장자 소요유에, 구만 리를 날아서 남명(南冥)으로 가는 붕새를 보고 뱁새가 “나는 훌쩍 날아올라도 불과 몇 길을 못 가서 내려온다. 쑥대밭 사이를 날아다녀도 이 또한 날아다님의 지극함이다. 저 붕새는 장차 어디를 가려는 것인가?” 하였고, 매미와 메추라기는 “나는 훌쩍 날아올라 느릅나무로 날아가도 때로는 그곳에도 못 이르고 땅에 떨어진다. 무엇 때문에 구만 리나 날아서 남쪽으로 가는가?” 하였다.

48)혜자(惠子)가……하였다:장자 추수(秋水)에 나온다.

49)상당(上黨) 한 상공(韓相公):한명회(韓明澮, 1415〜1487)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이고,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1453년(단종1) 계유정난 때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을 위해 공을 세워 정난 공신이 되었고, 1455년(세조1)에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 공신(佐翼功臣)이 되었다. 우승지, 도승지, 이조 판서를 거쳐 1461년에 상당부원군이 되었으며,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되었다가 뒤에 신원되었다.

50)한림(翰林)의 예 학사(倪學士):명(明)나라 한림학사 예겸(倪謙)을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6 경기 광주목(廣州牧)에 예겸이 지은 기문이 실려 있다.

51)압구(狎鷗):열자(列子) 황제(黃帝)에,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갈매기와 친해서, 매일 아침에 바닷가로 가서 갈매기들과 놀았는데, 늘 갈매기 수백 마리가 모여들었다. 하루는 그 아버지가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논다고 하는데, 네가 잡아 오면 나도 가지고 놀고 싶다.’ 하였다. 그래서 이튿날 갈매기를 잡아 올 생각을 품고 바닷가에 나가니, 갈매기들이 너울너울 하늘을 날며 내려앉지를 않았다.” 하였다. ‘압구’는 여기에서 따온 말인데, ‘기심(機心)’을 지니지 않고 자연 속에 은둔해 사는 것을 비유한다.

52)한 위공(韓魏公)의……지었으며:한 위공은 송(宋)나라의 명신 한기(韓琦)를 말한다.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다. 한기가 압구정을 짓자 구양수(歐陽修)가 시를 지어 보냈는데, 그 시에 “어찌 기심(機心)을 잊어 갈매기가 믿는 데에 그쳤으랴. 만물을 다스림에 본래 마음을 두지 않았으리.” 하였다. 예겸(倪謙)이 지은 압구정 기문에 이런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53)구슬을……듯하며:대본에는 ‘연주편패(聯珠編貝)’로 되어 있다. 이는 주로 아름다운 눈[目]과 가지런한 이[齒]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문장의 아름다움을 비유한다.

54) 좋은 돌:대본에는 ‘貞泯’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泯’은 ‘珉’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55)순(舜) 임금의 선기옥형(璇璣玉衡):서경 순전(舜典)에 의하면, 순 임금이 섭위(攝位)하여 맨 처음으로 선기옥형을 살펴서 해와 달과 다섯 별들의 운행을 고르게 하였다고 한다. 선기옥형은 혼천의(渾天儀) 같은 천체 관측 기구이다.

56)하(夏)나라의 구정(九鼎):하나라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솥을 만들었는데, 하, 은, 주 삼대(三代)가 국가의 보물로 전수하였다고 한다.

57)탕(湯) 임금의 목욕통:상(商)나라 탕 임금이 목욕통에 명(銘)을 새기기를, “진실로 어느 하루 새로워졌으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 하여, 자신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58)주(周)나라의 궤안(几案):대대례기(大戴禮記) 무왕천조(武王踐阼)에 의하면, 주나라 무왕이 즉위하여 사상보(師尙父) 등의 의견을 듣고는 석(席), 궤(几), 감(鑑), 관(盥), 영(楹), 장(杖), 대(帶) 등에 명(銘)을 새겼다고 한다. 궤안은 여기에 나오는 ‘궤’를 가리키는 듯하나 분명하지 않다.

59)전모(典謨):서경요전(堯典), 순전(舜典)대우모(大禹謀), 고요모(皐陶謀)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60)훈고(訓誥):서경이훈(伊訓)탕고(湯誥), 강고(康誥), 소고(召誥)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61)정원 도호부(靖原都護府):대본에는 ‘서원도호부(瑞原都護府)’로 되어 있으나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원주목(原州牧)에 의거하여, ‘정원 도호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62)계수관(界首官):한 도(道)의 으뜸이 되는 고을을 말한다. 대개 도명(道名)은 계수관의 글자를 조합하여 만든다.

63)연우(延祐):원나라 인종(仁宗)의 연호이다. 1314년에서 1319년까지이다.

64)철성(鐵城) 이후(李侯):이지(李墀, 1420〜?)이다. 장령, 지사간(知司諫), 괴산 군수(槐山郡守), 안변 부사(安邊府使) 등을 지냈다. 철성은 경상도 고성(固城)의 옛 이름이다.

65) 권공 륜(權公綸):1415〜1493. 본관은 안동, 호는 소요(逍遙)이다. 의정부 사인, 사헌부 집의, 대사성,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만년에 함경도 덕원(德源) 소라리(素羅里)에 우거하였다고 한다.

66)상고시대에는……지었다: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시대에는 굴에서 살고 들판에서 지냈는데, 후세에 성인이 집으로 바꾸었다.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처마를 늘여 지어 비바람을 막았으니, 대개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한 것이다.” 하였다. 대장은 장대하고 튼튼함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뜻을 취하여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대한 집을 지었음을 말한다.

67) 편안히……않는다: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68)금상(今上) 16년 봄:창경궁을 신축한 해는 1484년(성종15)인데, 여기서는 즉위년을 기준으로 계산하였기 때문에 ‘16년’이라고 한 것이다.

69)백성은……것들이니:송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나온다.

70)가까운……사랑하기를: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71)천지가……육성되어:중용장구 제1장에 나온다.

72)응벽(凝碧):여기서는 수나라라고 하였으나, 당나라 때 금원(禁苑)에 있던 연못인 응벽지(凝碧池)를 가리키는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73)낭풍(閬風):곤륜산 정상에 신선이 산다고 하는 산이 하나 있는데 이곳을 낭풍전(閬風巓)이라 하였다. 수나라와 낭풍과의 관계는 자세하지 않다.

74)침향(沈香):당나라 때 궁궐에 있던 정자인 침향정을 말한다.

75)태액(太液):당나라 때 궁궐에 있던 연못인 태액지(太液池)를 말한다. 그 안에 태액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76)한 번……즐기심:맹자 양혜왕 하에, “우리 임금이 유람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쉬겠으며 우리 임금이 즐기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받겠는가. 한 번 유람하고 한 번 즐기심이 제후들의 본보기가 된다.” 하였다.

77)백익(伯益)이……것:서경 대우모(大禹謨)에 나온다. 익(益)이 순 임금에게 경계하는 말을 올리기를, “아! 경계하소서.……나태하지 않고 황폐하지 않으면, 사방의 오랑캐들이 와서 왕으로 받들 것입니다.” 하였다.

78)양희지(楊熙止):1439〜1504. 자는 가행(可行)․정보(楨父), 호는 대봉(大峯), 본관은 중화(中和)이다. 1478년(성종9)에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천 현령(泗川縣令)으로 나갔다. 형조 판서,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대봉집(大峯集)이 있다.

79)정석견(鄭錫堅):?〜1500.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건(子健), 호는 한벽재(寒碧齋)이다. 이조 좌랑, 지성균관사, 대사간, 이조 참판 등을 지냈다.

80)설곡(雪谷) 정 선생(鄭先生):고려 때 학자인 정포(鄭誧, 1309〜1345)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부(仲孚)이며, 설곡은 그의 호이다.

81)가정(稼亭) 이 선생(李先生):이곡(李穀, 1298〜1351)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中父)이며, 가정은 그의 호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저서로는 가정집이 있다.

82)양촌(陽村) 권 선생(權先生):권근(權近, 1352〜1409)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이다. 양촌은 그의 호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양촌집이 있다.

83)등왕각(滕王閣)의 삼왕(三王):한유(韓愈)의 신수등왕각기(新修滕王閣記)에 그 내용이 나온다. 삼왕은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은 왕발(王勃), 등왕각부(滕王閣賦)를 지은 왕서(王緖), 중수등왕각기(重修滕王閣記)를 지은 왕중서(王仲舒)를 말한다.

84)옛사람……있었는데: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황학루(黃鶴樓)에 올라서 시를 지으려다가 최호(崔顥)가 지은 황학루를 보고 탄복하여 다시 시를 짓지 못하고, 봉황대로 가서 부(賦)를 지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두고 후세의 어떤 선승(禪僧)이 “한 주먹으로 황학루를 때려 부수고, 한 발길로 앵무주를 뒤엎으려 했네. 눈앞의 경관을 표현할 수 없었으니, 최호의 시가 최고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一拳搥碎黄鹤楼 一脚踢翻鹦鹉洲 眼前有景道不得 崔颢题诗在上头]”라고 읊었다고 한다.

85)지금……아니겠는가:황학루의 경우처럼, 선배들의 시가 너무 좋아서 후인이 차라리 누각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랄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누각의 중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86)희문(希文)이 악양루(岳陽樓)에서:희문은 송나라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자이다. 1044년에 등자경(滕子京)이 파릉군(巴陵郡)으로 좌천되어, 이듬해에 악양루를 중수하고 범희문에게 기문을 짓게 하였는데, 그것이 악양루기이다.

87)최호(崔顥)가 황학루에서:당나라 시인 최호(?〜754)가 황학루라는 시를 지었다.

88)조하(趙嘏)가 위남(渭南)에서:당나라 시인 조하가 선종(宣宗) 때에 위남 위(渭南尉) 벼슬을 하면서 지은 시에, “남은 별이 몇 개 반짝이니 기러기는 변방 하늘을 날아가고, 한 가락 긴 피리 소리 들리니 사람이 누각에 기대어 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이 워낙 절창이라 조의루(趙倚樓)라는 별칭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89)왕반산(王半山)과 곽공보(郭功甫):반산은 송나라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호이고, 공보는 송나라 시인 곽상정(郭祥正)의 자이다.

90)구공 겸(具公謙):생몰년 미상이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5년(성종6) 7월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다.

91)설무림(薛茂林):생몰년 미상이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8년(성종9) 9월에 경상좌도 절도사에 제수되었다.

92) 김영유(金永濡):1418〜1494.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택부(澤夫)이다. 1447년(세종29)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 호조 참의, 황해도 관찰사, 충청도 관찰사, 경상도 관찰사, 대사헌, 전라도 관찰사, 형조 참판 등을 지냈다. 성종실록 25년 12월 6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93)강좌(江左):장강(長江) 하류 동남방 지역인데, 주로 위진 남북조 시대의 동진(東晉)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94)왕 장군(王將軍) 일소(逸少):일소는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자이다. 우군장군(右軍將軍) 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왕 우군(王右軍)’ 또는 ‘왕 장군(王將軍)’이라 부르기도 한다.

95)일소가……일:산음(山陰)에 어떤 도사(道士)가 좋은 거위를 기르고 있었는데, 거위를 특별히 좋아하는 왕희지가 가서 보고는 팔기를 청하였다. 도사가 “도덕경(道德經)을 필사해 주면 거위들을 주겠다.”라고 하자, 왕희지가 기꺼이 필사해 주고 거위를 통에 넣어 돌아왔다고 한다. 일소는 왕희지의 자이다.

96)자유가……일: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눈이 많이 내린 밤에 잠이 깨어 갑자기 섬계(剡溪)에 사는 벗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나서 배를 타고 만나러 갔다. 그런데 새벽에 그 문앞에 이르러서는 들어가지 않고 돌아왔다.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본래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는데 굳이 대안도를 만나야 하랴?” 하였다. 자유는 왕휘지의 자이다.

97)주의(周顗)가……먹였고:주의는 진(晉)나라 때의 명사(名士)이다. 왕희지가 13세 때에 주의를 알현하여 말석에 앉아 있었는데, 주의가 왕희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기특하게 여겨 소 염통 구이를 잘라서 먹게 했다고 한다. 당시에 소 염통 구이는 귀한 음식이어서 좌중에 있는 이들이 아무도 먹지 못했는데 특별히 왕희지만 그것을 먹었고, 이로 인해 왕희지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98)치감(郗鑑)이 사위로 뽑았으며:진(晉)나라 태위(太尉) 치감이 왕씨 집안에서 사윗감을 고르기 위해 사람을 시켜 살피고 오게 하자, 다른 형제들은 서로 잘 보이려고 단정히 차려입고 있었지만 왕희지는 동쪽 평상에 태연히 배를 드러내고 누워서는 못들은 체하고 있었다. 치감이 이것을 전해 듣고 왕희지를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99) 대를……일: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좋아하여, 좋은 대나무를 기르는 집이 있자 그곳에 가서 주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나무를 감상하며 시를 읊었다고 한다. 또한 남의 빈집에서 살면서 대나무를 많이 심어 기르며,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이 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100)뺨을……일:왕휘지가 환충(桓沖)의 기병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때에, 환충이 말하기를 “경(卿)이 부(府)에 있은 지 오래되었으니, 이제 사무를 잘 처리하시겠지?”라고 하니, 왕휘지가 대답하지 않고 수판(手板)으로 뺨을 괴고는 “서산이 아침이 되면 상쾌한 기운을 불러온다.[西山朝來 致有爽氣]”라고 하였다 한다. 세속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마음이 한가로움을 뜻한다.

101)황려(黃驪):여주(驪州)의 옛 이름이다.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물에서 나왔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02)서하(西河) 임 선생(任先生):임원준(任元濬, 1423∼1500)이다.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자심(子深),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1456년(세조2) 문과에 급제하였고, 호조 참판, 병조 참판, 예조 판서, 우참찬 등을 지냈다. 시호는 호문(胡文)이다.

103)지족(止足)의 경계:노자 제44장에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하지 않다.” 하였다.

104)벌목(伐木)의 아취:시경 벌목을 말하는 듯하다. 벌목은 벗들과 잔치를 하는 즐거움을 읊은 시이다.

105)호량(濠梁)의 흥취:장자 추수(秋水)에, “장자가 혜자(惠子)와 함께 호수(濠水)의 돌다리[梁] 위에서 노닐다가 말하기를, ‘물고기들이 나와서 저렇게 자연스럽게 헤엄치고 다니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다.’ 하니, 혜자가 말하기를,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들의 즐거움을 알겠는가?’ 하였다. 장자가 말하기를, ‘자네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들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겠는가?’ 하니, 혜자가 말하기를, ‘내가 자네가 아니니 본디 자네를 모르네. 마찬가지로 자네가 본디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이 분명하네.’ 하였다.” 하였다.

106)친척을……사랑한다: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107)백성은……것들이다:송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나온다.

108)도연명(陶淵明)이……삼고:연명은 동진(東晉) 때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은 국화를 좋아했는데, 그의 시 음주(飮酒)에 나오는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109)왕자유(王子猷)가……삼고:자유는 동진 때 왕휘지(王徽之)의 자이다. 왕휘지는 대나무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166쪽 주 99) 참조.

110)화정(和靖)이……삼고:화정은 송나라 임포(林逋)의 시호이다. 임포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홀로 살면서 스스로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한다.

111)염계(濂溪)가……일:염계는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호이다. 주돈이가 연꽃을 좋아하여, 애련설(愛蓮說)을 지었다.

112)김경지(金敬之):김구용(金九容, 1338〜1384)이다. 본관은 안동, 호는 척약재(惕若齋)․약재(若齋)이며, 경지는 그의 자이다. 고려 우왕 초기에 여흥(驪興)에서 대략 7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육우당(六友堂)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급암(及菴) 민사평(閔思平)의 외손자이다.

113)눈, 달, 바람, 꽃:송나라 소옹(邵雍)이 지은 한적음(閑適吟)에, “봄에는 낙성의 꽃을 구경하고, 가을에는 천진의 달을 감상하고, 여름에는 숭산의 바람을 쐬고, 겨울에는 용산의 눈을 구경하네.[春看洛城花 秋翫天津月 夏披嵩岑風 冬賞龍山雪]”라고 하였다.

114)군……것이다:‘영(永)’ 자를 파자(破字)하면 ‘이(二)’와 ‘수(水)’가 된다.

115)자모산(子母山):신증동국여지승람 권22 경상도 영천군(永川郡)에는 ‘모자산(母子山)’으로 되어 있다. 영천군의 진산(鎭山)이다.

116)멀리……밝아지네:한유(韓愈)의 성남연구(城南聯句)에 나온다.

117)명성(明星):계명성(啓明星)이다. 샛별이라고도 한다.

118)홍구(紅寇)의 변란:중국 원(元)나라 말기에 지배 세력인 몽골족에 대항하여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일어난 홍건적(紅巾賊)의 난리를 말한다. 홍건적은 공민왕 때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범하였는데, 평양, 개성 등을 함락하고 약탈을 자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공민왕이 안동까지 피난을 하였다.

119)읍도 차츰 쇠락해지니:대본에 탈락된 글자가 있으나 확인할 수 없어 추측하여 번역하였다.

1)박 판서(朴判書):박원형(朴元亨, 1411〜1469)을 말한다.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도승지가 되었고 좌익 공신(佐翼功臣)에 책봉되었다. 호조, 형조, 이조, 예조의 판서 및 함길도 도순찰사,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468년(예종 즉위년) 12월에 영의정이 되었다. 예종실록 1년 1월 22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진감(陳鑑), 진가유(陳嘉猷), 장녕(張寧) 등이 사신으로 나왔을 때에 원접사, 관반, 반송사 등의 직무를 담당하였다.

2)춘추 시대……있었다:춘추좌씨전에 의하면, 당시 각국의 대부들은 국내에서는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여 응대하고 주선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외국에 나가서는 왕명을 수행하는 외교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시경의 구절을 읊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였다. 아송(雅頌)은 시경의 풍, 아, 송 중에서 정악(正樂)인 아와 송을 말한다.

3)지금의 황제께서……보냈다:명나라는 영종(英宗)이 1449년(세종31)까지 재위하고 그 뒤에 7년 남짓을 경제(景帝)가 통치하였으며, 1457년(세조3)에 다시 영종이 복위하였다. 영종은 진감(陳鑑)과 고윤(高閏)을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들 사신은 1457년 6월 3일에 서울에 들어와 황제의 조칙(詔勅)을 반포하였다.

4)형과 급사중(刑科給事中)……나왔는데:조선이 야인(野人)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자, 명나라는 진가유(陳嘉猷)와 왕월(王軏) 등을 사신으로 보내 이를 경계하였다. 진가유 일행은 1459년(세조5) 4월 8일에 서울에 들어와 칙서(勅書)를 전하였다. 또 조선이 모련위 도독첨사(毛憐衛都督僉事) 낭발아한(浪孛兒罕)을 유인하여 살해한 까닭을 추궁하기 위해, 명나라가 장녕(張寧), 무충(武忠) 등을 사신으로 보내왔는데, 이들은 1460년 3월 2일에 칙서를 가지고 서울에 들어왔다.

5)상국을……보내니:1459년(세조5) 7월 27일에 형조 판서 박원형(朴元亨)과 호조 참의 이승소(李承召)가, 조선과 야인과의 관계를 추궁하는 명나라의 칙서에 답하기 위해 방물(方物)을 갖추어 명나라로 출발하였다.

6)예겸(倪謙)……있고:1450년(세종32) 윤1월 1일에 명나라 사신 예겸과 사마순(司馬恂) 등이 경제(景帝)의 등극 조칙을 반포하기 위해 서울에 들어왔었다.

7)평무속(平茂續):대마도 사람이다. 1461년(세조7)에 겸사복에 제수되어 조정에 자주 드나들었고, 대마도와 우리나라 사이를 오가며 외교관 역할을 많이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고려 사람이었는데 고려 말에 대마도로 잡혀갔다고 한다.

8)유월(六月)과 강한(江漢):모두 시경의 편명이다.

9)경성(景星)과 가화(嘉禾):경성은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별을 말한다. 가화는 다른 이랑에서 자라는 두 개의 벼 싹이 맞붙어 이삭을 맺은 것으로, 역시 천하가 화합을 이룰 때에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식물이다.

10)훈고(訓誥)와 서명(誓命):모두 서경의 문체들이다. 서경에는 6종류의 문체가 있는데, 요전(堯典)순전(舜典) 등의 전, 대우모(大禹謨)고요모(皐陶謨) 등의 모, 이훈(伊訓)의 훈, 탕고(湯誥)강고(康誥) 등의 고, 목서(牧誓)진서(秦誓) 등의 서, 열명(說命)문후지명(文侯之命) 등의 명이 그것이다.

11)신장(宸章):왕이 지은 시문(詩文)을 말한다.

12)얼음이……주었다:세조실록 7년(1461) 9월 19일(병진) 기사에 그 구체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9월 18일에 얼음이 처음으로 얼자, 세조가 비빙가를 지어 신숙주의 집에 보내 신숙주를 시험하였고, 신숙주가 답시를 지어 대궐에 나오자, 세조가 인견하여 잔치를 베풀고 참석한 신료들에게 차운(次韻)하게 하였다. 그 비빙가는 다음과 같다. “배부른 백로는 이미 날아갔으나 뜰 안의 국화는 그대로 서리 속에 꿋꿋하네. 아침 해가 우리 동방을 비추니 거북과 물고기가 물결 위에 뛰는구나. 꿈 깨어 일어나 나랏일을 경영하는데 잠자는 이는 아직도 깊은 방에 누워 있네.[鶖鷺旣飽飛 庭菊猶傲霜 旭日照海東 龜魚躍滄浪 夢覺起經營 睡者臥深房]”

13)세(世)와 출세(出世):불교 용어에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세간은 세속, 번뇌 등을 뜻하고, 출세간은 그와 상대되는 불법(佛法), 해탈(解脫) 등을 뜻한다.

14)칙천(勅天)과 구공(九功)의 노래:서경 익직(益稷)에, “순 임금이 노래를 짓고는 말하기를 ‘하늘의 명에 대해 조심하고 삼간다면 때마다 삼가고 기미마다 삼가야 한다.[勅天之命 惟時惟幾]’ 하고, 노래하기를, ‘고굉이 기쁘게 일하면 군주의 다스림이 흥기하고 백공이 기뻐하리라.[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熙哉]’ 하였다. 고요(皐陶)가 이어 이루어 노래하기를[賡載歌], ‘군주가 현명하시면 고굉이 선량하고 모든 일이 편안할 것입니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하고, 또 노래하기를, ‘원수가 잗달면 고굉이 게으르고 만사가 허물어질 것입니다.[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墮哉]’라고 하였다.” 하였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우(禹)가 순 임금에게 말하기를, ‘훌륭한 덕(德)은 정사에 잘 적용되어야 하고 정사는 백성을 잘 기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곡(穀)이 닦여지고,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이 조화롭게 되어 구공(九功)이 펴지고, 아홉 가지 펴진 것이 노래가 되거든 경계하고 깨우쳐서 칭찬해 주고 독책(督責)하여 징계하시며, 구가(九歌)로써 권면하여 허물어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하였다.

15)갱재(賡載)의 법:서경 익직에 고요(皐陶)의 갱재가(賡載歌)가 나오는데, 채침(蔡沈)의 주에, “갱은 잇는다는 뜻이고 재는 이룬다는 뜻이니, 제순(帝舜)의 노래에 이어서 그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였다. 갱재의 법이란, 군주의 시문에 화답하는 글을 짓는 방법이나 제도를 말한다. 갱재가는 183쪽 주 14) 참조.

16)녹명(鹿鳴)……시:녹명 이하 다섯 편이란, 시경녹명, 사모(四牡), 황황자화(皇皇者華), 상체(常棣), 벌목(伐木)을 말하는데, 모두 아랫사람에게 잔치를 열어 주는 내용의 시이다. 모서(毛序)에 의하면, 녹명은 신하와 손님들에게 잔치를 열어 주는 내용이고, 사모는 사신이 옴을 위로하는 내용이고, 황황자화는 군주가 사신을 보낼 때에 예악을 갖추어 전송하는 내용이고, 상체는 형제에게 잔치를 열어 주는 내용이며, 벌목은 벗에게 잔치를 열어 주는 내용이다.

17)천보(天保)……시:시경 천보의 모서(毛序)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답하는 내용의 시이다. 군주는 아랫사람에게 몸을 낮추어 그 정사를 완성하고, 신하는 아름다움을 군주에게 돌려 그 윗사람에게 보답한다.” 하였다.

18)부절(符節)을……여시어:단종을 몰아내고 세조가 정권을 탈취한 것을 말한다.

19)율려(律呂)에 맞추어:율려는 고대에 음악의 표준으로 삼았던 12종류의 음률을 말한다. 율려에 맞춘다는 것은, 시에 음률을 붙인다는 뜻이다.

20)시물(時物):계절에 따라 나오는 사물을 말한다. 여기서는 겨울이 되어 얼게 된 얼음을 가리킨다.

21)대신(大臣):여기서는 신숙주를 가리킨다. 얼음이 처음으로 얼자 세조가 신숙주를 생각하여, 시를 지어 보내서 나오게 하였다. 183쪽 주 12) 참조.

22)교태(交泰):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사귀어 만물이 각기 그 삶을 이룬다는 뜻이다.

23)유자(孺子)의 자취(自取):맹자 이루 상에 “어린이[孺子]가 동요를 부르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는다네.’ 하니,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얘들아, 잘 들어 보아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것[自取]이다.’ 하였다.” 하였다.

24)군자의 불소(不素):시경 벌단(伐檀)에, “저 군자여! 공밥을 먹지 않는도다.[彼君子兮 不素餐兮]” 하였다. 맹자 진심 상에 “공손추가 ‘시에 소찬(素餐)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군자가 농사도 짓지 않고 먹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물으니,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이 나라에 있음은, 그 군주가 군자를 등용하면 안정되고 부유해지고 존귀해지고 영화로워지며, 그 자제들이 군자를 따르면 효도할 줄 알게 되고 공경할 줄 알게 되고 충성할 줄 알게 되고 신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소찬하지 아니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25)무풍(巫風):춤추고 노래하며 즐기는 풍속을 말한다.

26)골계전(滑稽傳):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들어 있는 골계열전(滑稽列傳)을 말한다.

27)성화중(成和仲):성간(成侃, 1427〜1456)이다. 호는 진일재(眞逸齋)이며, 화중은 그의 자이다. 1441년(세종23)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453년(단종1)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집현전 박사, 수찬 등을 지내고, 1456년(세조2)에 사간원 좌정언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30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28)육경(六經):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경, 악경을 말한다.

29)군자는……하며:주역 대축괘(大畜卦) 상전(象傳)에, “하늘이 산 안에 있는 것이 대축이니, 군자는 그것을 보고 옛사람의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그 덕을 쌓는다.” 하였다.

30)유자(儒者)는……하니:예기 유행(儒行)에, “유자는 널리 끝없이 배우고 독실히 행하여 게으름 부리지 않으며 홀로 지내면서도 분수를 넘지 않는다.” 하였다.

31)긴장만……않았습니다:예기 잡기(雜記)에, “긴장시키기만 하고 이완시키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완시키기만 하고 긴장시키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번 긴장시키고 한 번 이완시키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통치 방법이었다.[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하였다. 활을 사용할 때에는 활줄을 걸어 팽팽하게 해 놓아야 하고 활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활줄을 풀어 놓아야 하듯이, 백성을 다스릴 때에도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 사람도 적절히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대본에 ‘只張而弛 文武不爲’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弛’는 ‘不弛’가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32)중경(重卿):성임(成任, 1421〜1484)의 자이다. 성임은 호는 일재(逸齋)․안재(安齋),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전라도 관찰사, 형조 판서,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33)삼장(三章)의 법: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처음 관중(關中)에 들어갔을 때에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모두 폐지하고 세운 세 종류의 법을 말한다. 그 내용에,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 사람을 다치게 한 자와 도둑질한 자는 처벌한다.” 하였다. 통상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 한다.

34)육전(六典):당나라 현종 때에 만든 법전인 당육전(唐六典) 30권을 말한다.

35)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1444〜1470. 본관은 전주, 자는 준지(俊之), 호는 명신당(明新堂)이며,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아들이다. 성종실록 1년 4월 1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36)하성군(河城君) 정현조(鄭顯祖):본관은 하동(河東), 시호는 편정(褊玎)이다. 정인지(鄭麟趾)의 아들이다. 1455년(세조1)에 세조의 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혼인하여 하성위(河城尉)에 봉해졌고, 1467년(세조13)에 하성군이 되었다. 1471년(성종2)에 좌리 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하성부원군이 되었다.

37)주관(周官)에……배치하였으니:서경 주관에 의하면, 육경(六卿)의 분직(分職)이 천관경(天官卿) 총재(冢宰), 지관경(地官卿) 사도(司徒), 춘관경(春官卿) 종백(宗伯), 하관경(夏官卿) 사마(司馬), 추관경(秋官卿) 사구(司寇), 동관경(冬官卿) 사공(司空)으로 이루어져 있다.

38)세 분 군주:정종, 태종, 세종을 말한다.

39)어기지도……않는다면:시경 가락(假樂)에, “어기지도 않고 잊지도 않으며 옛 전장을 따르는도다.[不愆不忘 率由舊章]”라고 하였다.

40)운성부원군(雲城府院君) 박 상공(朴相公):박종우(朴從愚)를 말한다. 본관은 운봉(雲峰), 시호는 성렬(成烈)이다. 태종의 첫째 딸 정혜옹주(貞惠翁主)와 혼인하였으며, 1453년(단종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을 도운 공로로 정난 공신이 되고 운성부원군에 봉해졌다.

41)하동(河東) 정공(鄭公):하동부원군 정인지(鄭麟趾)를 말한다.

42)화성의 맑은 꽃이다:맹자 만장 하에, “백이(伯夷)는 성인 가운데 맑은 성인[聖之淸者]이고, 이윤(伊尹)은 성인 가운데 책임을 떠맡은 성인[聖之任者]이고, 유하혜(柳下惠)는 성인 가운데 화합을 이룬 성인[聖之和者]이고, 공자는 성인 가운데 시의(時宜)에 딱 맞게 하신 성인[聖之時者]이다.”라고 한 데서 따온 말이다.

43)형제에 가탁하기도 하고:북송의 황정견(黃庭堅)이 지은 수선화(水仙花)에, “산반은 아우요 매화는 형이네.[山礬是弟梅是兄]”라고 하였다. 통상 대나무와 매화를 아울러 일컬을 때에 죽우매형(竹友梅兄) 또는 죽제매형(竹弟梅兄)이라고 한다.

44)장인(丈人)으로 일컫기도 하고:북송의 당경(唐庚)이 지은 이월견매(二月見梅)에, “다만 이제는 장인의 항렬이니 어찌 소년들과 봄바람을 다투리.[只今已是丈人行 肯與年少爭春風]”라고 하였다. 여기서 장인은 나이 많은 어른을 뜻하는데, 곧 매화를 비유한 것이다.

45) 급박하고……둔다:송나라 양정수(楊廷秀)가 지은 조호화매시서(洮湖和梅詩序)에 나온다. 이 작품은 고금사문유취후집 권28 화훼부(花卉部) 매화(梅花)에 실려 있다.

46) 음을 억제하는:대본에는 ‘㧆陰’으로 되어 있으나 ‘㧆’은 ‘抑’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47)욕심을……비슷하다:맹자 진심 하에,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하였다.

48)말로……무리이다:맹자 등문공 하에 나온다.

49)조계(曹溪):불교에서 천태종(天台宗)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일 때에는 조계종(曹溪宗)을 의미하는데, 통상 불교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50)열반경(涅槃經):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날 때의 설법을 기록한 불교 경전이다.

51)관광록(觀光錄):성현(成俔)이 사행길에 동료들과 수창한 시를 모아 엮은 시집이다. 1472년(성종3) 1월에, 진하사 상사(上使) 공조 판서 성임(成任), 부사(副使) 호조 참판 박건(朴楗)이 표문을 받들고 황태자의 책봉을 하례하기 위하여 중국에 갔는데, 성임의 아우 예문관 수찬 성현이 한학훈도(漢學訓導)로서 따라갔다. 함께 수창한 동료는 최후(崔侯), 이후(李侯)인데, 구체적인 인적 사항은 미상이다.

52)장회(長淮)와 대강(大江):장회는 회수(淮水)이고, 대강은 장강(長江) 즉 양자강을 말한다.

53)제나라……가 보고는:공자와 맹자가 살던 지역을 가 보았다는 뜻이다.

54)삼려(三閭):초나라 때에 소(昭), 굴(屈), 경(景) 등 세 성(姓)의 귀족과 관련된 일들을 담당한 벼슬이 삼려대부였는데, 굴원이 이 직임을 맡은 적이 있으므로 후세에는 굴원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삼려에 가 보았다는 것은 굴원이 귀양 살던 소택지(沼澤地), 투신하여 죽은 멱라수(汨羅水) 등에 가 보았다는 뜻인 듯하다.

55)원수(沅水)와 상수(湘水):굴원이 방축되어 유랑 생활을 하던 강 이름이다.

56)검각(劍閣):중국 사천성(四川省) 검각현에 있는 관문 이름이다. 장안(長安)에서 촉(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으며 요해처로 유명하다.

57)사마자장이……얻었다:송나라 마존(馬存)이 지은 자장유증합방식(子長遊贈蓋邦式)에 나온다.

58)왕유(王維):699〜759. 당나라 때의 시인, 화가이다. 자는 마힐(摩詰)이다. 산수시(山水詩)를 잘 지었는데, 불교를 믿어 그의 시는 불교적 색채가 짙다. 소식(蘇軾)이 그를 두고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관찰하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고 하였다. 맹호연(孟浩然)과 병칭하여 ‘왕맹(王孟)’이라 일컬어진다.

59)위응물(韋應物):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산수전원시(山水田園詩)를 주로 지었다. 소주 자사(蘇州刺史)를 지냈기 때문에 위 소주라 불리며, 왕유, 맹호연, 유종원 등과 아울러 ‘왕맹위유(王孟韋柳)’라 일컬어진다.

60)맹교(孟郊):751〜814.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동야(東野), 사시(私諡)는 정요선생(貞曜先生)이다. 백성의 고통, 사회의 불평등, 관리의 악행 등을 읊은 시가 많다.

61)가도(賈島):779〜843.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낭선(浪仙)이다. 일찍 승려가 되어 호를 무본(无本)이라 하다가 나중에 환속하였다. 시를 지을 때에 매우 고심하여 글자 한 자도 빈틈없이 사용하는 시인으로 유명했다. 그가 지은 제이응유거(題李凝幽居)의 “새는 못가의 나무에 깃들이고 중은 달 아래 대문을 두드린다.[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라는 구절에서, ‘퇴고(推敲)’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대본에는 ‘鳥’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島’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62)원진(元稹):779〜831.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백거이(白居易)이와 아울러 ‘원백(元白)’이라 일컬어졌으며, 그의 시체(詩體)를 ‘원화체(元和體)’라 하였다.

63)백거이(白居易):772〜846.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작품으로는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등이 있다.

64)유우석(劉禹錫):772〜842. 당나라 때의 문장가이다. 자는 몽득(夢得)이다. 작품으로는 누실명(陋室銘), 추풍인(秋風引), 죽지사(竹枝詞) 등이 있다. 대본에 ‘劉’로 되어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당나라 때의 유명한 문학가로는 유우석과 유장경(劉長卿)이 있다. 우선 ‘유우석’으로 번역하였으나, ‘유장경’일 가능성도 있다. 유장경은 자가 문방(文房)이고 수주 자사(隨州刺史)를 지냈으며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였다.

65)허혼(許渾):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용회(用晦)이다.

66)매요신(梅堯臣):1002〜1060. 북송(北宋) 때의 시인이다. 자는 성유(聖兪)이다. 사람들이 완릉선생(宛陵先生)이라 불렀다.

67)구양수(歐陽脩):1007〜1072. 송나라 때의 문장가이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68)요습(遼霫):습은 중국 요 지방에 살던 옛 부족 이름이라 한다. 요습은 대개 요령(遼寧) 지역을 가리킨다.

69)여갈(閭碣):요령성(遼寧省)에 있는 의무려산(醫巫閭山)과 갈석산(碣石山), 또는 그 산들이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70)유계(幽薊):유주(幽州)와 계주(薊州) 지방을 말한다. 오늘날의 요령성 일대에 있었다.

71)한도(漢都):한양(漢陽), 즉 서울을 말한다.

72)연산(燕山):연경(燕京), 즉 북경(北京)을 말한다.

73)유연(幽燕):하북(河北) 북부와 요령 일대를 가리킨다. 옛날의 연나라 지역이며 유주(幽州)가 있던 지역이므로 유연이라 부른다.

74)어양(漁陽):북경 근처에 있던 지명이다. 이곳은 사람들의 기질이 호협하고, 힘차게 달리는 훌륭한 말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당나라 때에 안녹산이 이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75)종횡으로……같고:소진과 장의는 전국 시대의 변사들로서,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의 책략을 각각 주장하였다. ‘종횡으로 여닫는다.’라는 것은 이 합종과 연횡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76)북정고(北征稿):서거정이 사은사 부사(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올 때에 지은 시집이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1460년(세조6) 6월에 사은사 김수(金脩)와 부사 서거정이 칙유(勅諭)에 대한 회주(回奏)를 가지고 명나라에 들어갔다.

77)기름 덩이에……같아:고생만 하고 공효가 별로 없음을 뜻한다.

78)주옥(珠玉)이……깨닫는다:진(晉)나라 표기장군(驃騎將軍) 왕제(王濟)는 위개(衛玠)의 외숙으로, 위개를 볼 때마다 “주옥이 곁에 있으니 나의 모습이 초라함을 깨닫는다.[珠玉在側 覺我形穢]”라고 하였으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위개와 함께 있으면 마치 명주(明珠)가 곁에 있어서 맑게 사람을 비추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한다.

79)녹명서(祿命書):복록(福祿)과 명운(命運)을 다루는 책을 말한다. 사람의 성쇠, 화복, 수요(壽夭), 귀천이 모두 하늘로부터 정해진다는 운명론적인 이론이 기록되어 있다.

80)계주(季主):한(漢)나라 때의 복술가(卜術家) 사마계주(司馬季主)이다. 장안(長安)의 동시(東市)에서 점을 치며 살았는데, 당시의 중대부(中大夫) 송충(宋忠)과 박사(博士) 가의(贾谊)가, “들으니, 옛날의 성인은 조정에 있지 않으면 복의(卜醫) 가운데에 있다고 하였다.”라고 하면서, 가서 그와 토론을 해 보고 그의 해박함에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81)곽박(郭璞):동진(東晉) 때의 학자, 문인이다. 주역, 산해경(山海經), 이아 등을 주석하였으며, 오행(五行), 천문(天文), 복서(卜筮)에 통달하였다고 한다.

82)명가(命家):오행, 천문, 지리 등을 연구하는 사람, 또는 그러한 집단을 말한다.

83)가령(假令):‘임시 지침서’ 또는 ‘가짜 법령’ 정도의 뜻인 듯하나, 미상이다. 주로 점술서, 사주책 등을 말한다.

84)삼명(三命):술수가(術數家)에서 수명(受命), 조명(遭命), 수명(隨命)을 삼명이라 하는데, 수명(受命)은 연수(年數)를, 조명은 선행을 했는데도 흉사를 당하는 것을, 수명(隨命)은 선악에 따라 보답받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85)일자(日者)의……하여:일자는 천문, 지리, 복술 등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사(漢史)는 사마천의 사기를 가리킨다. 사기일자열전(日者列傳)이 들어 있다.

86)성요(星曜):별을 보고 점치는 것을 말한다.

87)사척경(沙擲經):점술가가 모래 등을 던져서 점치는 방법을 적은 책인 듯하나, 미상이다.

88)예정수(豫定數):음양오행의 숫자를 사용해 미래의 운수를 점치는 방법인 듯하나, 미상이다.

89)여재(呂才):당(唐)나라 때의 철학가이다. 천문, 지리, 의술, 음양오행 등에 능통하였으므로 태종이 그에게 음양에 관한 잡서(雜書)를 정리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90)송렴(宋濂):명나라 초기의 대표적 학자이다. 신선(神仙), 불석(佛釋)을 부정하고 고문을 중시하였으며, 명나라의 공덕과 태평을 칭송하는 시를 많이 지어 대각체(臺閣體)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91)진(晉)나라의……국사(國史)였습니다:맹자 이루 하에 “진나라의 승(乘)과 초(楚)나라의 도올(檮杌)과 노(魯)나라의 춘추(春秋)는 다 같은 역사서이다.” 하였다.

92)한기(漢紀):후한 말에 순열(荀悅)이 한서의 내용을 춘추의 편년체 형식으로 재편하여 만든 역사서이다.

93)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남송(南宋)의 이도(李燾)가 북송(北宋) 9조(朝)의 편년사를 정리하여 만든 역사서이다.

94)통감속편(通鑑續篇):명(明)나라의 진경(陳桱)이 자치통감의 미흡함을 보충하기 위해 만든 역사서이다.

95)전사(全史):원(元)나라 우승상 탈탈(脫脫) 등이 편찬한 송사(宋史) 등을 가리킨다.

96)존신(存神)의 오묘함:존신은 과화존신(過化存神)에서 온 말이다. 과화란 성인은 덕이 성대하여 지나가는 곳은 사람들이 모두 그에 감화된다는 뜻이고, 존신이란 성인이 마음에 보존하고 있는 것은 신묘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97) 사군(四郡):한 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그 지역에 설치했다고 하는 낙랑(樂浪), 임둔(臨屯), 진번(眞番), 현도(玄菟)를 말한다.

98) 이부(二府):삼국유사에 의하면, 한사군(漢四郡)이 없어진 뒤에 그 자리에 설치한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와 동부도위부(東部都慰府)를 말한다.

99) 모용(慕容):북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선비족(鮮卑族)의 일파로, 중국의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에 연(燕)나라를 세웠다. 자주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100)남북조(南北朝):동진(東晉)이 망한 뒤 대략 420년에서 589년 사이에 중국 남부 지방에 세워졌던 송(宋), 남제(南齊), 양(梁), 진(陳) 등을 남조라 하고, 비슷한 시기에 중국 북부 지방에 세워졌던 북위(北魏), 북제(北齊), 북주(北周) 등을 북조라 하는데, 이들을 합쳐서 남북조라 한다. 이들은 나중에 수(隋)나라로 통일되었다.

101)오계(五季):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일어나기 전인 907년부터 959년까지 후량(後粱),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가 이어서 명멸하였는데, 이 오대(五代)를 오계라 한다.

102)삼장(三長):역사를 기술하는 자가 겸비해야 할 세 가지 특장인 재주[才], 학문[學], 식견[識]을 말한다.

103)구사(舊史):삼국사기를 가리킨다.

104)모기(某紀):《자치통감》에서는 권수(卷首)마다 왕조명을 기록하였는데, 이를테면 주기(周紀), 진기(秦紀), 한기(漢紀), 당기(唐紀) 같은 표기를 말한다.

105)유향(劉向):한(漢)나라 때의 학자이다. 홍범오행전(洪範五行傳), 신서(新序), 설원(說苑) 등을 저술하였다.

106)양웅(揚雄):한나라 때의 학자이다. 법언(法言), 태현경(太玄經) 등을 저술하였다.

107) 고결하고……왔는데:대본에는 ‘淸脩苦節 水蘖其操’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水’는 ‘氷’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08)지난번에……주셨다:성종실록에 의하면, 서거정은 1477년(성종8) 4월에 북경에 들어가는 천추사(千秋使) 통사(通事)에게 베[布]를 주어서 당물(唐物)을 사 오게 하였다는 혐의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당시에 서거정은 우찬성으로 사역원 제조를 겸하고 있었다. 성종은 대각의 탄핵을 누차 물리쳤으며, 마지못해 잠시 파직했다가 오래지 않아 등용하여 끝까지 서거정을 보호해 주었다.

109)희학을 잘함이여:시경 기욱(淇奧)에, “희학을 잘함이여! 침학이 되지 않는구나.[善戱謔兮 不爲虐兮]”라고 하였다. 이는 위나라 사람들이 무공(武公)의 덕을 찬미하여, 즐겁고 화락하면서도 절도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110)문무이장(文武弛張)의 도:문왕과 무왕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하는 통치 방법을 말한다. 186쪽 주 31) 참조.

111)제해(齊諧):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제해자(齊諧者)는 지괴자(志怪者)이다.”라고 하고 붕새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재해’가 서명인지 인명인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의 논란이 있다.

112)사마천의 사기:대본에는 ‘班史’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반고(班固)의 한서를 말한다. 그러나 한서에는 골계전(滑稽傳)이 없고, 사기 권126에 골계열전이 실려 있으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13)장기바둑이라도……낫다:논어 양화(陽貨)에, “밥이나 배불리 먹고 하루를 다 보내면서 마음 쓰는 바가 없으면 곤란하다. 장기바둑이 있지 않느냐?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弈者乎 爲之猶賢乎已]”라고 하였다.

114)정석견(鄭錫堅):?〜1500. 본관은 해주, 자는 자건(子健), 호는 한벽재(寒碧齋)이다. 1469년(예종1) 기축년 증광 생원시(增廣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474년(성종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이조 좌랑, 사헌부 장령, 김해 부사, 병조 참의, 대사간 등을 지냈다.

115)입신양명(立身揚名):효경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몸과 사체와 털과 살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다. 대저 효도는 처음에는 어버이를 섬기고 중간에는 군주를 섬기고 마지막에는 몸을 세우는 것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夫孝 始於事親 中於事君 終於立身]”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116)아침저녁으로……드린다:예기 곡례에 “무릇 아들이 행해야 할 예법은,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봐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하여 안부를 살펴야 한다.” 하였다.

117)도하(都夏):본관은 팔거(八莒), 자는 성보(聖輔)이다. 1447년(세종29) 정묘년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8년(세조4) 무인년 윤2월 별시 문과에 을과 1위로 장원하였다.

118) 큰 고을:대본에는 ‘臣邑’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臣’은 ‘巨’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19)민월(閩越)은……배출되었다:당나라 한유(韓愈)가 지은 구양생애사(歐陽生哀辭)에 나온다.

120)국가에서……한다: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인재를 구하려고 곽외(郭隗)에게 합당한 자를 살펴보라고 하였다. 이에 곽외가 말하기를, “옛날에 어떤 군주가 천 금(金)을 주어 사람을 보내서 천리마를 사 오게 했는데, 그 자가 천리마는 구하지 못하고 천리마 뼈를 오백 금에 사 왔습니다. 군주가 꾸짖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죽은 천리마를 오백 금에 샀다는 소문이 나면 산 천리마를 끌고 오는 자가 많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과연 한 해도 가기 전에 천리마가 세 필이나 왔습니다. 왕께서 참다운 인재를 구하시려면 먼저 곽외를 등용하십시오.” 하였다. 소왕이 곽외를 등용하여 섬겼더니, 과연 훌륭한 인재들이 모여들어 연나라가 강국이 되었다.

121) 강호(康浩):성종실록에는 ‘강호(姜浩)’로 되어 있다.

122)성화……하였다:성종실록에 의하면, 예종이 승하하고 성종이 즉위하자, 명나라가 김흥(金興)과 강호(姜浩)를 조선에 보내 예종에 대한 제사와 시호를 내리고, 성종의 왕위 승습을 인정하는 고명(誥命)과 관복을 내렸다. 이 사신들은 1470년(성종1) 5월 1일 서울에 도착하여 행례(行禮)하였다. 이에 성종은 이달에 곧바로 정사(正使) 좌의정 김국광(金國光), 부사(副使) 동래군(東萊君) 정난종(鄭蘭宗), 서장관 박숙진(朴叔蓁)을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하여, 표문을 받들고 가서 사례하게 하였다. 이들은 이해 10월에 돌아와 복명하였다.

123)고령(高靈) 신 상공(申相公):신숙주(申叔舟)를 말한다.

124)광악(光嶽):삼광(三光)과 오악(五嶽) 곧 천지자연을 가리킨다. 삼광은 하늘에 있는 빛인 해와 달과 별인데, 별은 오성(五星)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악은 중국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방위를 대표하는 산으로,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崇山)을 말한다.

125)문궤(文軌)가 동일한:천하가 통일된 것을 의미한다. 중용장구 제28장에 “수레는 바퀴의 폭이 같고 글은 문자가 같다.[車同軌 書同文]” 하였다.

126)오(吳)나라……칭송하였다:춘추좌씨전에 의하면, 노나라 양공(襄公) 29년(기원전 544) 여름에 오나라 계찰(季札)이 노나라에 빙문(聘問)을 가서 각국의 음악을 듣고, 품평을 하였다. 주나라에 간 사실은 미상이다.

127)쇠퇴한……것:오나라 계찰(季札)이 춘추 열국의 음악을 품평했던 일을 말한다. 위의 주 126) 참조.

128)나라의……이롭다:주역 관괘(觀卦) 육사(六四)에 나온다. 그 전(傳)에 의하면, ‘관괘의 구오효(九五爻)가 성덕(聖德)을 갖춘 군주이니 그 아래에 있는 육사효(六四爻)는 군주와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군주의 훌륭함을 관찰할 수 있는 빈객이다. 빈객은 마땅히 군주의 성덕을 받들어서 지혜를 다 바쳐 군주를 보필하여 천하에 은택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북경에 들어가는 정사(正使)의 이름이 김국광(金國光)이므로 연계하여 인용한 것이다.

129)부도씨(浮屠氏)는……않으며:후한서 권30하 양해열전(襄楷列傳)에, “부처는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을 이어서 묵지 않았습니다. 오래 있다가 애착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니, 지극한 정진(精進)입니다.[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也]” 하였다.

130)호(胡)와 월(越):호는 중국의 북쪽 지방에 있고 월은 중국의 남쪽 지방에 있으므로, 서로의 거리가 현격히 먼 것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131)삼계(三界):불교에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욕계는 음욕(婬欲), 정욕(情欲), 색욕(色欲), 식욕(食欲) 등의 다양한 욕구가 존재하는 세계이고, 색계는 음욕과 식욕이 전혀 없고 청정한 형질만 존재하는 세계이고, 무색계는 형질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데, 인간은 무한히 이 세 공간을 윤회한다고 한다.

132)인천(人天):불교에서 육도(六道) 가운데의 인도(人道)와 천도(天道), 또는 십계(十界) 가운데의 인계(人界)와 천계(天界)를 가리키는 말로, 인간 세상을 뜻한다. 육도는 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영역인데, 천도, 인도, 아수라도(阿修羅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이며, 십계는 불계(佛界), 보살계(菩薩界), 연각계(緣覺界), 성문계(聲聞界), 천계, 인계, 아수라계, 아귀계, 축생계, 지옥계를 말한다.

133)은 태사(殷太師)를 조선에 봉하고도:은 태사는 기자(箕子)를 말한다. 대본에는 ‘對殷太師’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對’는 ‘封’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134)구영(九瀛)과 구주(九洲):구영은 구주(九州)의 바깥에 있는 바다로, 해외의 각국을 가리킨다. 구주(九洲)는 구주(九州)와 마찬가지로 대륙 전체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135)무송부원군(茂松府院君) 윤 상공(尹相公):윤자운(尹子雲, 1416〜1478)을 말한다. 본관은 무송, 자는 지망(之望), 호는 낙한재(樂閑齋)이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444년(세종26) 갑자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부수찬, 도승지, 이조 참판, 병조 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에 함길도 체찰사(咸吉道體察使)로서 반란군에 포위되었다가 살아서 돌아왔다. 그 뒤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성종실록 9년 5월 14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36)보존한……때문이다:인(仁)과 예(禮)를 지닌 본래의 참마음을 잘 보존하고 그 올바른 성품을 잘 기른다는 뜻의 존심양성(存心養性)에서 따온 말이다.

137)맹분(孟賁)과 하육(夏育):모두 전국 시대의 용사(勇士)이다. 맹분은 살아 있는 소의 뿔을 손으로 뽑고 물에서는 교룡(蛟龍)도 피하지 않으며 뭍에서는 시호(兕虎)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육은 천 균(鈞)의 무게를 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138)손무(孫武)와 오기(吳起):모두 춘추전국 시대의 병가(兵家)이다.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과 오기가 지은 오자(吳子)가 있다.

139)장의(張儀)와 소진(蘇秦):모두 전국 시대의 변설가이다.

140)적들이……소식:이시애(李施愛)의 난을 말한다. 길주의 호족 출신인 이시애가 세조의 중앙집권적 정책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주도하여, 함길도 절도사 강효문(康孝文), 길주 목사, 부령 부사 등을 살해하였고, 남하하면서 함흥을 점령하고 관찰사 신면(申㴐)을 죽이고 체찰사 윤자운(尹子雲)을 사로잡았다. 이 반란은 대략 4개월 만에 평정되었다.

141) 양성(陽城) 이윤보(李胤保):이승소(李承召, 1422〜1484)이다. 본관이 양성이고 호는 삼탄(三灘)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윤보는 그의 자이다. 1438년(세종20)에 17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7년(세종29)에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대사성, 충청도 관찰사, 이조 판서, 좌참찬 등을 지냈다. ‘양성(陽城)’은 대본에 ‘역성(易城)’으로 되어 있으나 ‘陽’의 고자(古字)가 ‘昜’이므로 ‘陽’으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42)맹자가……하였다:맹자 공손추 상에 나온다.

143)율정(栗亭) 선생:윤택(尹澤, 1289〜1370)이다. 동문선 윤씨분묘기(尹氏墳廟記)에 의하면, 윤택은 윤소종(尹紹宗)의 조부이다. 그렇다면 윤택은 윤자운(尹子雲)의 5대조가 되는데, 여기서 고조라 한 것은 미상이다.

144)동헌(桐軒) 선생:윤소종(尹紹宗, 1345〜1393)이다. 자는 헌숙(憲叔), 호는 동헌(桐軒)이다. 병조전서 지제교 동지춘추관사(兵曹典書知製敎同知春秋館事)를 지냈다. 태조실록 2년 9월 17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45)대제학공(大提學公):윤회(尹淮, 1380〜1436)를 말한다.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이다. 1401년(태종1)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좌랑, 병조 참의를 지냈으며, 세종 때에 집현전 부제학을 지냈고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세종실록 18년 3월 12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46)시례(詩禮)의 은택:부형(父兄)에 의한 가정교육을 뜻한다. 논어 계씨(季氏)에 의하면, 공자의 아들 리(鯉)가 뜰을 지나갈 때에 공자가 “시를 배웠느냐?”라고 하여, 리가 배우지 않았다고 대답하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잘할 수가 없다.” 하였고, “예를 배웠느냐?”라고 하여, 배우지 않았다고 대답하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147)맹상군(孟嘗君)이……벗어나고:전국 시대 제(齊)나라 맹상군 전문(田文)이 인재를 좋아하여 그의 집에서 먹고사는 문객이 3천 명이나 되었다. 맹상군이 한번은 진(秦)나라에 들어갔다가 소왕(昭王)에게 구금되어 죽을 상황에 처했다. 이에 맹상군은 문객 중 도둑질을 잘하는 자에게 호백구(狐白裘)를 훔쳐 내게 하여 소왕의 총희에게 뇌물로 주고는 도망쳐 나왔다.

148)범수(范睢)가……것: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정승 위제(魏齊)가 범수에게 매질을 하여 거적에 말아 버려두고 사람들에게 그곳에 오줌을 누게 하였는데, 범수는 죽은 듯이 있다가 도망쳐서 진(秦)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149)환온(桓溫)이……꺾었고:동진(東晉) 때에 환온이 어느 날 사안(謝安)과 왕탄지(王坦之)를 신정(新亭)으로 불렀다. 당시는 ‘환온이 사안과 왕탄지를 죽이고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라는 소문이 무성할 때였다. 왕탄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매우 두려워하였는데, 사안은 변함없는 얼굴빛으로 환온과 차분하게 담소하며 여러 날을 함께 지냈고, 마침내 화를 면했다.

150)조원호(趙元昊)가……돌아갔다:조원호는 송나라 서북방에 있던 서하국(西夏國)의 군주이고, 한기(韓琦)는 송나라 때의 명재상이다. 서하국은 송나라에 대해 신하로 복종하다가, 1038년에 조원호가 황제를 자처하며 국호를 대하(大夏)라 고친 뒤로 송나라와 마찰이 많았다.

151)상락군(上洛君) 김공(金公):김질(金礩, 1422〜1478)을 말한다. 본관은 안동, 자는 가안(可安), 호는 쌍곡(雙谷)이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경오년 식년시에 급제하였고, 평안도 관찰사, 공조 판서, 경상도 관찰사,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1469년(예종1)에 상락부원군에 봉해졌다. 성종실록 9년 2월 24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52)충렬공(忠烈公)으로부터……분입니다:김질의 7대조는 고려 충렬왕 때 첨의중찬(僉議中贊)을 지낸 김방경(金方慶, ?〜1300)인데 봉호는 상락군, 시호는 충렬공이며, 6대조는 김순(金恂)인데 시호가 문영(文英)이며, 5대조는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지낸 상락후(上洛侯) 김영후(金永煦, ?〜1361)인데 시호가 정간(貞簡)이다. 증조부는 조선 태조 때의 상락부원군 김사형(金士衡, 1341〜1407)인데 개국 공신으로서 벼슬이 문하우시중 겸 판사헌부사(門下右侍中兼判司憲府事)에 이르렀고 시호가 익원공(翼元公)이다. 할아버지는 김승(金陞)이고 아버지는 김종숙(金宗淑, ?〜1470)이다. ‘공이 된 네 분’이란 시호를 받은 이 네 사람을 가리킨다.

153)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공(閔公):민제(閔霽, 1339〜1408)를 말한다. 자는 중회(仲晦), 호는 어은(漁隱)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태종의 국구(國舅)이다. 태종실록 8년 9월 15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54)전긍(戰兢):전전긍긍(戰戰兢兢)의 줄임말이다. 시경 소민(小旻)에, “감히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지 않고 감히 배 없이 강을 건너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나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른다.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며 얇은 얼음을 디디는 듯이 해야 한다.[不敢暴虎 不敢馮河 人知其一 莫知其他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하였다.

155)호정(浩亭) 하 문충공(河文忠公):하륜(河崙, 1347〜1416)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림(大臨), 자호는 호정이고, 시호는 문충이다. 태종실록 16년 11월 6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56)독곡(獨谷) 성 문경공(成文景公):성석린(成石璘, 1338〜1423)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修), 호는 독곡이다. 시호는 문경이다. 고려 공민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양광도 도관찰사(楊廣道都觀察使), 문하시랑 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좌정승(左政丞), 영의정 등을 지냈다. 태종이 즉위한 뒤 좌명 공신(佐命功臣)이 되어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세종실록 5년 1월 12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157)금릉 봉사(金陵奉使) 단목(端木) 선생:단목지(端木智)를 말한다. 1402년(태종2) 1월에 명나라 사신 병부 주사(兵部主事) 단목지가 말을 무역하는 일로 서울에 와서, 여러 달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금릉은 남경(南京)을 말한다. 14026월에 연왕(燕王) 체(棣)가 남경을 점령하고 즉위하여 명나라의 정권이 교체되었는데, 이가 성조(成祖)이다. 성조는 뒤에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금릉 봉사는 성조 이전의 혜제(惠帝) 때에 파견된 사신이라는 뜻으로 쓴 듯하다.

158)병자년의 변고: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에 김질(金礩)은 이들과 함께 거사를 모의했는데, 장인인 정창손(鄭昌孫)에게 이 사실을 일러, 거사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159)좌익(佐翼)의 반열: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운 자들에게 내려진 공신호가 좌익 공신이다. 그 뒤 단종 복위 계획을 무산시키는 데에 공을 세운 자들도 좌익 공신에 책봉되었는데, 김질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160)송나라……하였다:왕 진공(王晉公)은 송나라 병부 시랑(兵部侍郞) 진국공(晉國公) 왕호(王祜)를 말한다. 왕호가  재상의 덕망이 있었으나 직언(直言)으로 송 태조의 뜻을 거슬러 재상이 되지 못하자, 뜰에 홰나무 세 그루를 심고는, “내 자손 가운데 반드시 삼공이 되는 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뒤 진종(眞宗) 때에 둘째 아들 왕단(王旦, 957~1017)이 과연 재상이 되었다. 왕단은 위국공(魏國公)에 책봉되었고 시호가 문정(文正)이다. 소식(蘇軾)의 삼괴당명(三槐堂銘)에 이 내용이 실려 있다.

161)한(漢)나라의……석이었는데:한나라 때 석분(石奮)의 집안을 말한다. 그의 네 아들 석건(石建), 석갑(石甲), 석을(石乙), 석경(石慶)이 각각 2천 석의 녹봉을 받는 벼슬을 하여, 집안의 전체 녹봉이 만 석에 이르렀으므로 ‘만석군(萬石君)’이라 일컬어졌다.

162)원씨(袁氏)는……났는데:동한(東漢) 때 원안(袁安)의 집안을 말한다. 그의 아들 원창(袁敞), 원창의 아들 원탕(袁湯), 원탕의 아들 원봉(袁逢), 원봉의 아우 원외(袁隗)가 모두 높은 벼슬을 하여, 오공(五公)의 집안이라 일컬어졌다.

163)대명(大明)……한록(旱麓):모두 시경의 편명으로, 문왕(文王)과 주나라 선대의 덕을 읊은 시이다.

164)태자를……보내왔다:성종실록에 의하면, 명나라 헌종(憲宗)이 아들 우탱(祐樘)을 황태자로 세우고 이 사실을 공지하기 위해 기순(祈順)과 장근(張瑾)을 조선에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1476년(성종7) 2월 20일에 서울에 들어왔다. 우탱이 나중에 효종(孝宗)이 된다.

165)네……했다면:시경 사모에 “네 필의 말이 쉬지 않고 달리니……[四牡騑騑……]”라고 하였고, 황황자화에 “휘황한 꽃이여! 저 언덕과 습지에 있네. 달려가는 사신이여! 매양 미치지 못할 듯이 생각하네.[皇皇者華 于彼原隰 駪駪征夫 每懷靡及]”라고 하였다.

166) 존신(存神)의 오묘함:성인의 마음에 보존하고 있는 것은 신묘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167)성인이……만드니:중국 상고시대에 복희씨(伏羲氏)가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긋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고 한다.

168)전모(典謨)를……안다:전모와 훈고(訓誥)와 서명(誓命)은 모두 서경의 문체들이다. 서경에는 6종류의 문체가 있다. 182쪽 주 10) 참조.

169)문선(文選):남조 시대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이 선진(先秦) 시대에서 양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문학 작품을 뽑아서 엮은 책이다.

170)문수(文粹):송나라 요현(姚鉉)이 당나라 때의 문장을 모아서 엮은 당문수(唐文粹)를 말한다.

171)문감(文鑑):송나라 여조겸(呂祖謙)이 송나라의 문장을 모아 엮은 책이다. 송문감(宋文鑑) 또는 황조문감(皇朝文鑑)이라고도 한다.

172)문류(文類):원나라 소천작(蘇天爵)이 원나라 때의 문장을 모아 엮은 원문류(元文類)를 말한다.

173)근세에……하였는데:원나라 오징(吳澄)이 지은 별조자앙서(別趙子昂序)에 나온다. 오문정집(吳文正集) 권25와 원문류(元文類) 권34에 실려 있다.

174) 나라의……있었다:대본에는 ‘得紵國患’으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紵’는 ‘紓’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75)삼광(三光)과 오악(五岳):해와 달과 별을 삼광이라 하고, 중국의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崇山)을 오악이라 한다.

176)김태현(金台鉉):1261〜1330. 고려 말의 정치가, 학자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불기(不器), 호는 쾌헌(快軒)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의 시문들을 모아 동국문감(東國文鑑)을 엮었는데, 해동문감(海東文鑑)이라고도 한다.

177)최해(崔瀣):1287〜1340. 고려 말의 정치가,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언명(彥明)․수옹(壽翁), 호는 예산농은(猊山農隱)․졸옹(拙翁) 등이다. 동인지문(東人之文)을 엮었다.

178) 한 질의 책을 만들도록:대본에는 ‘粹爲一帙’로 되어 있으나 ‘粹’는 ‘稡’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79)주역에……하였다:주역 비괘(賁卦) 단전(彖傳)에, “천문을 관찰하여 시변을 살피고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한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하였다.

180)소자첨이 지은 서(序):전당근상인시집서(錢塘勤上人詩集序)를 가리키는 듯하다. 자첨은 소식(蘇軾)의 자이다.

181)최영호(崔永灝):서거정의 누이의 아들이다. 최영호의 아버지는 최항(崔恒)이다.

182)지거원(池巨源) 선생:자세한 인적 사항은 미상이다. 다만 태종실록 2년 2월 5일 기사에, “태종이 하륜(河崙)에게 이르기를 ‘서운 판사(書雲判事) 황하준(黃河濬)과 지거원 등은 모두 천문과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인데도 오래도록 서운 판사로 있다.’라고 하였다.” 하였다. 대본에는 ‘池先生臣源’으로 되어 있으나 ‘臣’은 ‘巨’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83)옛날에……보였다:예기 내칙(內則)에 나온다. 원대한 뜻을 품고 큰일을 성취하라고 축복하는 의미이다.

184)문을……안다:노자 제47장에, “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을 내다보지 않고도 천도를 안다.[不出戶 知天下 不闚牖 見天道]” 하였다.

185)오(吳)나라……칭송하였고:오나라 계찰(季札)이 노(魯)나라에 빙문(聘問)을 가서 각국의 음악을 듣고 품평했던 일이 있다. 주나라에 간 일은 미상이다.

186)소철(蘇轍)은……생각하였다:한 태위(韓太尉)는 송나라 때의 위국공(魏國公) 한기(韓琦)를 말하고, 구양 학사(歐陽學士)는 구양수(歐陽修)를 말한다. 소철이 한기에게 보낸 상추밀한태위서(上樞密韓太尉書)에 개략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187)칼을……것:장자 양생주에 나온다. 포정(庖丁)이 두께가 없는 칼날을 틈새가 있는 뼈마디 사이에 넣어 소를 해체하니 칼을 놀리는 데에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188)은 태사(殷太師):은나라 태사인 기자(箕子)를 말한다.

189)사역원 강례관(司譯院講隸官):조선 초기 사역원에 소속되어 중국어를 전문적으로 학습하던 미관말직의 통역관이다. 외교 문서의 투식을 학습하는 승문원의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과 함께 당시의 외교 업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이극배(李克培):1422〜1495.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겸보(謙甫), 호는 우봉(牛峰)이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1447년(세종29) 정묘년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 공신이 되었으며, 예조 참의, 경상도 관찰사, 경기도 관찰사, 평안도 관찰사, 우참찬을 지냈고, 이후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제수되었다. 광릉부원군(廣陵府院君)에 봉해졌다.

191)김자정(金自貞):조선 초기의 인물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453년(단종1) 계유년 식년시에 급제하였고,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 공신이 되었다. 1476년(성종7)에 선위사로 대마도에 다녀왔다.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한성 판윤 등을 지냈다.

192)사방관(四方館):동서남북 각 나라들과의 무역, 외교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수(隋)나라 때에 설치되어,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명칭과 업무는 다소 변하였지만, 대체적인 역할은 그대로 지속되었다.

193)천명을……의리:맹자 양혜왕 하에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천명을 즐기는 자이고,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천명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천명을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천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 나라를 보전한다.” 하였다.

194)칠음(七音):순음(唇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치음(齒音), 아음(牙音), 반순음(半唇音), 반치음(半齒音)을 말한다.

195)사성(四聲):평성(平聲), 상성(上聲), 거성(去聲), 입성(入聲)을 말한다.

196)경위(經緯):사성이 날줄[經]이고 칠음이 씨줄[緯]이다.

197)지원(至元)……설치하였고:지원은 원(元)나라 세조(世祖)의 연호로 1264년부터 1293년까지 해당한다. 방성(房星)은 28수(宿)의 하나로 거마(車馬)를 주관하는 별자리이다. 따라서 천사(天駟) 혹은 방사(房駟)라고도 한다. 1275년(충렬왕1)에 원나라가 탐라 총관(耽羅摠管)을 설치하여 소, 말, 낙타, 나귀, 양 등을 방목하였다는 기록이 《기언(記言)》 권48 〈탐라지(耽羅誌)〉에 보인다.

198)옛……삼고:신라가 처음에 탐라라는 국호를 내려 주었으나, 1295년에 고려가 원나라로부터 탐라를 돌려받아 이름을 제주(濟州)로 고쳤기 때문에 한 말이다.

199)양후의 존대인(尊大人) 공판공(工判公):양찬(梁瓚)의 아버지 양성지(梁誠之)를 말한다. 존대인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공판공은 양성지의 관직인 공조 판서를 줄여 부른 것이다.

200)소자(蘇子)가……하였으니:소자는 송나라의 문장가 소식(蘇軾)을 존숭하여 칭한 것이다. 인용한 구절은 《동파전집(東坡全集)》 권36 〈등현공당기(滕縣公堂記)〉에 나온다.

201)범 문정공(范文正公):문정은 송나라의 명신(名臣)인 범중엄(范仲淹)의 시호이다.

202)채 판관(蔡判官):채신보(蔡申保)로, 자는 자휴(子休)이다. 《四佳詩集 卷13 壬午秋七月旣望……》

203)공성(孔聖)은 위리(委吏)가 되었고:공성은 공자(孔子)를 말하고, 위리는 곡식 창고를 관리하는 낮은 벼슬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공자가 일찍이 위리가 된 적이 있었다.” 하였는데, 그 주에 “이것은 공자가 가난 때문에 벼슬한 것이다.” 하였다.

204)맹가(孟軻) 씨는……않았고:가(軻)는 맹자의 이름이다. 《맹자》 〈만장 하〉에서 맹자는 가난 때문에 하는 벼슬은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처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한 자리로는 관문을 지키는 직책이나 목탁을 치면서 순찰을 도는 직책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205)공명을……보전하는:《동파전집》 권87 〈부정공신도비명(富鄭公神道碑銘)〉에 “공(功)이 높으면 몸이 위태롭고, 명(名)이 중하면 비방이 생긴다. 그러므로 당세에 저명한 선비치고 능히 공명으로 처음과 끝을 둔 자는 드물다.……공명을 온전히 하여 처음과 끝을 보전하였으니,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206)오사(五事):수령이 힘써야 할 다섯 가지 일인 수령 오사(守令五事)를 말한다. 전야를 넓힐 것[田野闢], 호구를 늘릴 것[戶口增], 부역을 고르게 할 것[賦役均], 송사를 간편하게 할 것[詞訟簡], 도적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盜賊息] 등인데, 도적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 대신에 학교를 일으킬 것[學校興]이 들어가기도 한다. 후에는 수령 칠사(守令七事)가 되었다. 《국역 성호사설 3 권8 인사문 칠사》

207)남전 현승(藍田縣丞)처럼……신세:한유(韓愈)의 〈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廳壁記)〉에 최사립(崔斯立)이 남전 현승으로 좌천되어 가서 현승을 낮은 관직이라 여기지 않고 잘해 보려다가 좌절되자 “승이여 승이여, 나는 승을 저버리지 않았건만 승이 나를 저버리는구나.[丞哉丞哉 余不負丞而丞負余]”라고 탄식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현승이라는 직책이 사안의 가부를 결정하는 권한이 없어 내용도 모른 채 아전이 짚어 주는 대로 그 자리에 조심스레 서명이나 하는 자리임을 말한 것이다. 《古文眞寶 後集》

208)혜장왕(惠莊王)……방문하였는데:혜장은 명나라로부터 받은 세조의 시호이다. 인 상인(藺上人)이 1468년(세조14)에 우리나라에 왔다가 세조의 명을 받들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임무를 완수하고 세조에게 복명하기 위해 다시 왔는데, 이때는 이미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을 이어 성종이 즉위한 다음 해이다. 인 상인이 우리나라에 온 시기에 대해서는 한국문집총간 12집에 수록된 《점필재집(佔畢齋集)》 문집 권1 〈일본으로 돌아가는 인 상인을 전송하는 서[送藺上人還日本序]〉에는 1465년(세조11)에 우리나라에 왔다가 5년 만인 1470년(성종1)에 다시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한국문집총간 9집에 수록된 《식우집(拭疣集)》 권4 〈일본 인 상인에게 주다[贈日本藺上人]〉에는 세조 때에 왔다가 3년 만에 다시 온 것으로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인 상인의 이름은 수인(秀藺)이다.

209)그……행위이고:능가(能可)는 선종(禪宗)의 제2조인 혜가 선사(慧可禪師)와 제6조인 혜능 선사(慧能禪師)의 병칭이고, 임제(臨濟)는 임제종(臨濟宗) 혹은 임제종의 창시자인 혜조 선사(慧照禪師)를 말한다고 볼 수 있으니, 그 의미는 불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10)계자(季子):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공자(公子) 계찰(季札)로,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周)나라의 음악을 듣고 열국(列國)의 치란(治亂)과 흥망을 안 것으로 유명하다.

211)이……없으며:《노자(老子)》 제25장에 “그러므로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또한 크다. 세계 속에 네 가지 큰 것이 있으니, 왕이 그 가운데 하나를 차지한다.[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하였는데, 여기에서 ‘王’은 ‘人’과 같은 의미이다. 이 말 역시 《노자》의 위 구절을 차용한 것으로 ‘왕만 한 것이 없다.’는 말은 ‘사람만 한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212)사람은……태어났으니:이윤(伊尹)의 어머니가 임신하였는데, 꿈속에서 신이 “절구에서 물이 나올 것이니, 동쪽으로 달아나라.”라고 하므로, 다음 날 절구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동쪽으로 달아나, 10리쯤에서 동네가 물에 모두 잠긴 것을 보고 그대로 변하여 공상(空桑)이 되었는데, 후에 그 공상에서 이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로 인하여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않고 다른 데서 뚝 떨어진 사람을 말할 때 ‘공상에서 났다’고 말한다. 당나라 때에 부혁(傅奕)이 불교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리자 소우(蕭瑀)가 성인을 비난하는 자라고 공격하니, 부혁이 “소우는 공상에서 태어나지 않았건만 부모를 무시하는 가르침을 따른다.”라고 말했는데, 불교가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끊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아무리 불가에 몸담은 사람이라도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뜻을 담은 듯하다. 《通鑑節要 卷10 唐紀 高祖》

213)이른바……있겠는가:사대(四大)는 《노자》 제25장에 나오는 이 세계 속의 네 가지 큰 것으로, 곧 도(道), 천(天), 지(地), 인(人)을 말한다. 즉 이 말은 관계론을 말하는 것으로, 불교를 단순히 세속과 인연을 끊는 것이라는 관점으로만 본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도리도 없다는 말이다.

214)이름을……것:인(藺)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명신(名臣)인 인상여(藺相如)를 의미하고, 전벽(全璧)은 옥벽(玉璧)을 보전한다는 뜻으로, 사신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한다는 의미가 있다.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화씨벽(和氏璧)을 얻자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빼앗을 요량으로 15개 성(城)과 바꾸기를 청하니, 인상여가 자청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소양왕의 계략을 간파하고 마침내 화씨벽을 온전히 보전하여 본국으로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이름과 호를 취한 것이다. 《史記 卷81 藺相如列傳》

215)이불……고작인데:이 말은 한유(韓愈)가 〈회골로 사신 가는 은 원외를 전송하는 서[送殷員外使回鶻序]〉에서 만리 타국으로 떠나면서도 태도가 의연한 은 원외를 참으로 경중을 아는 대장부라고 칭송하면서, “지금 사람들은 수백 리 길만 가려 해도 문을 나서면 망망하여 이별을 슬퍼하는 기색이 있고, 이불을 들고 삼성에 들어가 번만 서려 해도 계집종을 돌아보며 시시콜콜 당부하기를 마지않는다.[今人適數百里 出門惘惘 有離別可憐之色 持被入直三省 丁寧顧婢子 語刺刺不能休]”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216)너의……닦을지어다:《시경》 〈문왕(文王)〉에 나오는 구절인데, 대본의 ‘無忝’이 《시경》에는 ‘無念’으로 되어 있다. ‘無念’의 용법은 ‘豈得無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부정의 뜻이 아니라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강한 긍정의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긍정적 의미인 ‘念’ 자를 부정적 의미인 ‘忝’ 자로 바꿔 인용하였으므로 ‘어찌 더럽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豈得無忝]’로 보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더럽히지 말라.’는 금지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217)화엄경(華嚴經)에……하여:화엄경》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에 법기보살(法起菩薩)이 나오고, 이 법기보살이 금강산을 주처(主處)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여기의 원살(院薩)은 법기보살을 말하는 듯하다. 참고로 임하필기(林下筆記)37 금강산의 유래와 고사에 “화엄경에 이르기를, ‘바다 가운데에 금강이라 불리는 산이 있는데, 예부터 여러 보살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현재 있는 보살은 법기라고 하는데, 자기 권속과 여러 보살들 1200인과 함께 항상 그곳에 있으면서 불법을 강한다.’ 하였다.[華嚴經曰 海中有處 名金剛山 從昔已來 諸菩薩衆中止住 現有菩薩 名曰法起 與其眷屬諸菩薩衆千二百人 俱常在其中而演說法]”라는 내용이 있다.

218)지원(至元)과 연우(延祐) 연간:지원은 원 세조(元世祖)의 연호로 1264년에서 1294년까지 해당하고, 연우는 원 인종(元仁宗)의 연호로 1314년에서 1320년까지 해당한다.

219)보제 국사(普濟國師):고려 공민왕 때의 고승으로, 이색(李穡)이 쓴 〈보제존자(普濟尊者) 시호 선각(禪覺)의 탑명(塔銘)〉에 “휘(諱)는 혜근(惠勤)이고, 호는 나옹(懶翁)이며, 초명(初名)은 원혜(元惠)이다. 향년은 57세이고 법랍(法臘)은 38세이다. 영해부(寧海府) 출신으로서 속성(俗姓)은 아씨(牙氏)이다.” 하였다. 《국역 목은집 11 목은문고 권14》

220)산융(山戎):북쪽 만주(滿洲) 지역에 거주하는 야인(野人)으로 말갈(靺鞨), 거란(契丹), 여진(女眞) 따위를 말한다. 《東史綱目 凡例 朝會》

221)조두(刁斗)의……가운데:조두는 도두(刀斗)라고도 하는데, 다리가 셋이고 작은 자루가 달린 그릇이다. 군중(軍中)에서 낮에는 밥 짓는 그릇으로 쓰고, 밤에는 이것을 두드려 야경(夜警)의 신호로 삼았다. 곧 산융의 침략이 늘 있었다는 의미이다.

222)참방(參訪):승려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도(道)를 탐구하고 수행하는 일을 말한다.

223)누워서……것:남조(南朝)의 송(宋)나라 종병(宗炳)이 산수를 좋아하고 원유(遠遊)를 사랑하였는데, 병이 들어 강릉(江陵)으로 돌아와서는 탄식하여 말하기를, “늙음과 병이 한꺼번에 이르니, 명산을 두루 보기 어렵겠구나. 오직 마땅히 마음을 맑게 하고 도를 보아 누워서 유람하리라.[老疾俱至 名山恐難遍覩 唯當澄懷觀道 臥以游之]” 하고, 그동안 다녔던 명승지를 모두 그림으로 그려 방에 걸어 놓고 누워서 산수를 감상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宋書 卷93 隱逸列傳 宗炳》

224)순리(循吏):법을 지키고 이치를 따르는 관리라는 뜻으로, 백성에게 선정(善政)을 베푼 지방관을 말한다. 《사기(史記)》에 〈순리열전(循吏列傳)〉이 실려 있는데, 이에 대해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이르기를, “법을 받들고 이치를 따르는 관리는 공로를 자랑하고 능력을 과시하지 않아 백성의 칭송도 없지만 또한 잘못된 행적도 없다.” 하였다.

225)이치(吏治):지방관의 치적(治績)을 말한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순(舜) 임금의 동생인 상(象)이 자기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여 “천자가 관리를 파견하여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天子使吏治其國]”라는 말에서 나온 의미이다.

226)상당(上黨) 한공(韓公):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 1415〜1487)로,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자준(子濬)이다.

227)주서(周書)의……글:〈주서〉와 〈상서(商書)〉는 모두 《서경》의 편제이다. 〈주서〉에 〈대고(大誥)〉, 〈강고(康誥)〉, 〈주고(酒誥)〉, 〈소고(召誥)〉, 〈낙고(洛誥)〉 등 다섯 편의 고(誥)가 실려 있는데, 〈상서(商書) 반경(盤庚)〉과 아울러 한유(韓愈)는 〈진학해(進學解)〉에서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까다롭다.[佶屈聱牙]” 하였고, 양웅(揚雄)은 《법언(法言)》 〈문신(問神)〉에서 “상서는 한없이 넓고 주서는 엄숙하다.[商書灝灝爾 周書噩噩爾]” 하였다.

228)순 임금의……노래:순 임금이 “신하가 즐겁게 일에 임하면 임금의 다스림이 흥기되어 백공의 일이 넓혀질 것이다.[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熙哉]”라는 노래를 지어 신하를 면려하면서 노래를 짓는 뜻을 먼저 서술하여 “하늘의 명을 계칙하여 때마다 삼가고 기미마다 삼가야 한다.[勑天之命 惟時惟幾]” 하였으므로, 순 임금이 지은 위의 노래를 ‘칙천(勑天)의 노래’라고 한 것이다. 《書經 益稷》

229)고요(皐陶)가……기상:갱재(賡載)는 순 임금의 노래를 이어 그 뜻을 이룬다는 뜻으로, 순 임금이 신하를 면려하는 노래를 부르자 고요 역시 “임금이 자잘한 일에 신경을 써 신하가 할 일을 하면 신하가 태만해져서 만사가 폐해질 것이다.[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墮哉]”라고 하여 임금을 면려하는 노래로 화답한 것을 말한다. 《書經 益稷》

230)위공(魏公):북송(北宋) 시대 명상(名相)으로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진 한기(韓琦)이다. 자는 치규(稚圭)이고 시호는 충헌(忠獻)으로, 그의 실명(室名)도 압구정(狎鷗亭)이다. 덕량(德量)과 문장(文章), 정사(政事)와 공업(功業)에 있어서 송나라 제일의 정승으로 일컬어진다.

231)문무께서……되었도다:《시경》 〈강한(江漢)〉은 소목공(召穆公)이 주 선왕(周宣王)의 명으로 회남(淮南)을 정벌하는 내용으로, 소목공은 소공(召公)의 후손이다. 이 구절은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천명을 받아 천하를 다스릴 때에 소공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듯이 조상의 업적을 계승하여 소목공도 공적을 이루라고 주 선왕이 당부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의 문무는 주나라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말하는 것으로, 위 〈유월〉 시의 문무와 의미가 다르고 사가(四佳)가 말하려는 의도와도 다르다. 그러나 사가가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용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시경》의 내용대로 번역하였다.

232)육생(陸生)의 논설: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에 한림학사를 지낸 육지(陸贄)의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를 말하는 듯하다. 선공(宣公)은 육지의 시호이다.

233)가만히……것쯤은:《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5〉에 “준조의 사이에서 성을 함락하고, 자리 위에서 적을 제어하여 승리를 취한다.[拔城於樽俎之間 折衝席上者也]” 하였는데, 준(樽)은 술동이이고 조(俎)는 고기를 담는 그릇으로 무력을 쓰지 않고도 연회하는 자리에서 담판을 지어 적을 제압한다는 뜻이다. 또 당(唐)나라의 재상 배도(裴度)가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사직하자 천자가 “짐을 위하여 북문을 와호하라.[為朕臥護北門可也]”라고 선유(宣諭)하였는데, 와호(臥護)는 병으로 누워서도 넉넉히 수호(守護)한다는 뜻이고, 북문은 북쪽 변방을 뜻한다. 《新唐書 卷173 裴度列傳》

234)숭고(崧高)……칭송하였으니:《시경》 〈숭고〉는 주 선왕이 외숙인 신백(申伯)을 포상하여 사읍(謝邑)에 봉하고 전송하는 내용으로 구절 중에 “신후와 보후는 주나라의 정간(楨幹)이다.[維申及甫 維周之翰]”라고 하였고, 〈증민(蒸民)〉은 주 선왕이 중산보(仲山甫)를 등용한 것을 찬미한 내용으로 구절 중에 “왕의 직책에 잘못됨이 있거든 중산보가 보좌하도다.[袞職有闕 維仲山甫補之]”라고 하였다.

235)목여(穆如)의……있겠는가:목여는 뜻이 깊고 멀다는 뜻으로, 이 말은 윤길보(尹吉甫)처럼 훌륭하게 표현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시경》 〈증민〉은 윤길보가 중산보를 전송하며 지은 시로, 이 시의 제8장에 “윤길보가 시를 지으니, 뜻이 깊고 멀기가 맑은 바람과 같도다.[吉甫作誦 穆如淸風]” 하였다.

236)옛날에……있었다:삼부(三釜)의 박봉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부모가 살아 계셔서 섬길 수 있음을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증자(曾子)가 일찍이 이르기를 “내가 부모가 살아 계실 때 한 벼슬은 삼부의 녹봉만 받았어도 마음이 즐거웠는데, 그 뒤에 한 벼슬은 삼천 종의 녹봉을 받았으나 부모에게 봉양할 수 없어 내 마음이 슬펐다.[吾及親仕 三釜而心樂 後仕 三千鍾而不洎親 吾心悲]” 하였다. 《莊子 寓言》

237)추로지향(鄒魯之鄕):추(鄒)는 맹자의 고향이고, 노(魯)는 공자의 고향이다. 이로 인하여 문화가 발달하고 예의가 있는 지방을 뜻한다.

238)윤길보와……없으나:윤길보처럼 훌륭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30쪽 주 39) 참조.

239)남해(南陔)……없으니:〈남해〉와 〈백화(白華)〉는 모두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으로 곡조만 남아 있고 가사는 없는 시이다. 〈모시서(毛詩序)〉에 〈남해〉는 효자가 서로 경계하도록 하여 부모를 봉양함을 읊은 시라고 하였고, 〈백화〉는 효자의 결백함을 읊은 시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결백한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권면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240)창룡(蒼龍):태세(太歲)와 같은 말로, 태세는 간지(干支)를 뜻하는 말이니, ‘창룡 병신년’이란 곧 ‘간지(干支)가 병신인 해’라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권35 〈장순열전(張純列傳〉에 “지금 섭제격의 해인 창룡 갑인년에 덕이 동궁에 있다.[今攝提之歲 倉龍甲寅 德在東宮]” 하였는데, 그 주에 “태세가 인(寅)에 있는 것을 섭제격(攝提格)이라고 한다.” 하였고, 또 “창룡은 태세이다.” 하였다.

241)권 화천(權花川):권함(權瑊, 1423〜1487)으로, 자는 차옥(次玉)이고, 호는 지수암(知守菴)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화천은 봉호이니, 1486년(예종 즉위년)에 남이(南怡)의 역모가 평정되고 나서 익대 공신(翼戴功臣) 3등으로 화천군(花川君)에 봉해졌고, 성종(成宗)이 즉위했을 때 청승습사(請承襲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242)황제……해:황제 폐하는 명나라의 헌종(憲宗)을 말한다. 헌종의 연호는 성화(成化)이니, 이해는 성화 14년(1478)으로 조선 성종 9년이다.

243)은 태사(殷太師):기자(箕子)를 가리킨다.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의 숙부로 태사 삼공(太師三公)을 지냈다. 은나라가 망한 뒤 주나라의 신복(臣僕)이 되지 않았으므로 ‘은 태사’로 불린다. 《書經 微子》

244)강헌대왕(康獻大王):강헌은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시호로, 명나라 황제가 하사하였다.

245)주나라의……풍화(風化):이남(二南)은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으로, 주로 문왕(文王)과 후비(后妃)의 덕화(德化)를 읊은 것이다. 주남과 소남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채읍(采邑)으로 문왕의 덕화가 잘 베풀어진 곳으로 꼽힌다.

246)한혁의……것:〈한혁〉은 한후(韓侯)가 즉위한 처음에 조회 와서 비로소 왕명을 받고 돌아갈 때에 시인이 전송하며 지은 시이다. 한 방면의 장(長)을 백(伯)이라고 하니, 문왕(文王)이 서백(西伯)이 된 경우가 이 예이다. 이 시의 제6장에 “문득 북쪽 나라를 받아서 인하여 백이 되도다.[奄受北國 因以其伯]” 하였는데, 이것은 한후의 선대(先代)가 백만(百蠻)으로 인하여 장(長)이 되었기 때문에 왕이 한후에게 추이(追夷)와 맥이(貊夷)를 내려 주어 백이 되게 하였다는 말이다. 《詩經 韓奕》

247)증민의……것:〈증민〉은 주 선왕(周宣王)이 중산보(仲山甫)에게 명하여 제나라에 성을 쌓게 하니, 윤길보(尹吉甫)가 전송하며 지은 시이다. 이 시의 제3장에 “밖에 정사를 베푸니, 사방이 이에 일어나 호응하도다.[賦政于外 四方爰發]” 하였는데, 이것은 중산보가 밖으로 제후들을 거느려 사방을 경영함을 말한 것이다. 《詩經 蒸民》

248)숭고의……것:〈숭고〉는 주 선왕이 외숙인 신백(申伯)을 포상하여 사읍(謝邑)에 봉하니, 윤길보가 전송하며 지은 시이다. 이 시의 제1장에 “사국에 울타리가 되며, 사방에 덕택을 베풀도다.[四國于蕃 四方于宣]” 하였는데, 이것은 신백이 주나라의 정간(楨幹)과 울타리가 되어 그 덕택을 천하에 베풀 것임을 말한 것이다. 《詩經 崧高》

249)윤길보와……기풍:윤길보처럼 훌륭하게 표현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30쪽 주 39) 참조.

250)빈아(豳雅):정현(鄭玄)이 《시경》의 〈칠월(七月)〉 시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정사(情思)를 말한 부분을 풍(風)에, 예절을 바르게 한 부분을 아(雅)에, 성공을 즐거워한 부분을 송(頌)에 해당시킴으로 인해 〈칠월〉 시를 빈아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혹은 아(雅)와 송(頌)의 시들 가운데 농사에 관한 시에 빈(豳) 자를 붙여 빈아, 빈송(豳頌)이라고 한다는 설에 따라 〈소아(小雅)〉의 〈초자(楚茨)〉, 〈신남산(信南山)〉, 〈보전(甫田)〉, 〈대전(大田)〉 시를 빈아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후자를 뜻한다. 《詩經 豳風, 大田》

251)보전(甫田):《시경》의 편명으로 녹봉으로 농토를 지닌 공경(公卿)이 농사에 힘써 풍작을 이루고 사방의 신과 곡식 신에게 공경히 제사하는 내용이다.

252)선대인(先大人) 문열공(文烈公):선대인은 돌아가신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칭호이다. 문열공은 관찰사 이봉(李封)의 아버지인 이계전(李季甸, 1404〜1459)의 시호이다.

253)평중(平仲)과 번중(蕃仲) 형제:문열공 이계전의 두 아들로, 평중은 이파(李坡, 1434〜1486)의 자이고, 번중은 이봉(李封, 1441〜1493)의 자이니, 번중이 바로 이 관찰사이다.

254)나는……간인데:사가의 어머니와 이계전의 어머니가 모두 양촌 권근(權近)의 딸로 자매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255)한(漢)나라의……일컬었고:이군(二君)으로 일컬었다는 것은 풍야왕(馮野王)과 풍립(馮立) 형제가 연달아 상군 태수(上郡太守)가 되어 훌륭한 치적을 이루었으므로 백성들이 그들의 공을 기려 형인 풍야왕을 대풍군(大馮君)이라고 하고 동생인 풍립을 소풍군(小馮君)이라고 칭한 것을 말한다. 《漢書 卷79 馮奉世傳》

256)양(梁)나라의……한다:남조(南朝)의 양 간문제(梁簡文帝)가 임해 태수(臨海太守) 유효의(劉孝儀)와 촉군 태수(蜀郡太守) 유효승(劉孝勝)을 전별하면서 지은 시에 “예전에 양두가 하수를 끼고 군수가 되더니, 지금 이룡이 태수로 나가는구나.[兩杜昔夾河 二龍今出守]” 하였다.

257)선성(宣聖):공자(孔子)의 시호에서 연유하여 공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공자의 시호는 후한 평제(後漢平帝) 때에는 ‘포성선공(褒成宣公)’이라 하였고, 당 현종(唐玄宗) 때에는 ‘문선왕(文宣王)’이라 하였고, 송 진종(宋眞宗) 때에는 ‘지성문선왕(至聖文宣王)’이라 하였고, 원 성종(元成宗) 때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 하였다.

258)안으로……것:《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나오는 내용으로 우(禹) 임금의 훈계이다. ‘음악을 즐기는 것’은 대본에는 ‘嗜飮’으로 되어 있는데, 《서경》에 의거하여 ‘嗜音’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259)요 임금……정일(精一):정일은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다.[惟精惟一]’는 말이다.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선위할 때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만 진실로 중도를 잡을 것이다.[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말로 전수하였고, 순 임금이 우왕에게 선위하면서는 이 말에 8자를 보태어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약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만 진실로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말로 전수한 것을 말한다. 書經 大禹謨

260)탕왕(湯王)의……극(極):중(中)은 집중(執中)을 말하고, 극은 황극(皇極)을 말한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탕왕은 과불급이 없는 중을 잡아 지키며, 현자를 등용하되 부류를 가리지 않았다.[湯執中 立賢無方]” 하였고, 《서경》 〈홍범(洪範)〉은 기자(箕子)가 무왕에게 올린 것인데, 다섯 번째가 ‘건용황극(建用皇極)’으로, 황극은 제왕이 천하를 통치하는 준칙, 즉 대중지정(大中至正)한 도를 말한다.

261)삼로오경(三老五更):《예기》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마침내 삼로와 오경을 설치하였다.[遂設三老五更]” 하였으니, 원래는 주대(周代)에 천자가 노인을 부형(父兄)의 예로 봉양하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관직이나 여기에서는 노인을 뜻한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설이 있다. 삼로는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일을 아는 사람이라는 해설과 삼덕(三德) 즉 정직(正直), 강(剛), 유(柔)가 있는 사람이라는 해설, 삼신(三辰)을 본뜬 것이라는 해설이 있고, 오경은 오행(五行)이 바뀌어 갈음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해설과 오사(五事) 즉 모(貌), 언(言), 시(視), 청(聽), 사(思)에 능한 사람이라는 해설, 오성(五星)을 본뜬 것이라는 해설이 있다. 경(更) 자는 노(老) 자의 뜻으로, 늙어서 일에 경험[更]이 있다는 뜻이다. 혹은 수(叟) 자의 잘못으로 보기도 한다.

262)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아서:대본의 ‘도유우불(都兪吁咈)’은 모두 감탄사인데, 《서경》의 〈요전(堯典)〉과 〈익직(益稷)〉을 보면 군신 간에 정사를 논하고 의견을 개진하면서 찬성의 의미로 도(都) 자와 유(兪) 자를 쓰고, 반대의 의미로 우(吁) 자와 불(咈) 자를 쓴 것이 보인다. 이로 인하여 군주와 신하가 허심탄회하게 정사를 논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이른다.

263)예의(禮儀)가……못하였는데:정성이 부족하였다는 뜻이다. 《서경》 〈낙고(洛誥)〉를 보면,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조향(朝享)은 예의가 많으니, 예의가 예물에 미치지 못하면 이것은 조향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享多儀 儀不及物 惟曰不享]”라고 한 말이 나온다.

264)환영(桓榮):용항(龍亢) 사람으로 자(字)는 춘경(春卿)이고, 경학(經學)에 밝았다. 광무제(光武帝) 때에 태자소부(太子少傅)가 되어 당시 태자인 명제(明帝)에게 오경(五經)을 가르쳤다. 명제가 즉위해서는 스승으로 예우하여 오경(五更)에 임명하고, 태학(太學)에 행차하면 반드시 절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37 桓榮列傳》

265)주옹(周雍)과 노반(魯泮)의 시편이니:주옹은 주나라의 벽옹(辟雍)을 말하고, 노반은 노나라의 반수(泮水)를 말하니, 벽옹과 반수는 모두 태학으로 곧 성균관을 비유한 것이다. 《시경》 〈주송(周頌)〉에 〈옹(雝)〉 시가 있고, 〈노송(魯頌)〉에 〈반수〉 시가 있으니, 주옹과 노반의 시편이라는 말은 《시경》의 시와 같은 훌륭한 시편이라는 뜻인 듯하다.

266)자하(子夏)의 뜻을 계승하여:〈모시서(毛詩序)〉에 대서(大序)와 소서(小序)가 있는데, 대서를 자하가 지었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자하가 《시경》의 서문을 지은 뜻을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267)소영빈(蘇潁濱):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철(蘇轍, 1039〜1112)로, 호가 영빈이다. 자는 자유(子由) 또는 동숙(同叔)이며,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268)마자재(馬子才):송나라 때의 문인 마존(馬存)의 자가 자재로, 문장이 웅혼(雄渾)하고 강직(剛直)하다는 평이 있다.

269)경숙(磬叔)……태허(太虛):경숙은 성현(成俔, 1439〜1504)의 자이고, 기지(耆之)는 채수(蔡壽, 1449〜1515)의 자이고, 자진(子珍)은 안침(安琛, 1444〜1515)의 자이고, 헌지(獻之)는 허침(許琛, 1444〜1505)의 자이고, 태허는 조위(曺偉, 1454〜1503)의 자이다. 《속동문선(續東文選)》 권21에 채수가 쓴 〈유송도록(遊松都錄)〉이 실려 있는데, 1476년(성종7)에 특별히 휴가를 받아 산방(山房)에서 글을 읽던 중에 송도를 유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70)의로운……일: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한 일을 말하니, 늙은 장수와 교활한 아이는 고려 말의 최영(崔瑩) 장군과 우왕(禑王)이다.

271)목청전(穆淸殿):개성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옛집으로, 태조의 어진(御眞)이 봉안되어 있는 곳이다.

272)민월(閩越)……이루어졌다:이 부분은 한유(韓愈)의 〈구양생애사(歐陽生哀辭)〉에 나오는데, “문화가 흡연히 이루어졌다.[文化翕然]”라는 구절이 “모두 흡연히 교화되었다.[皆化翕然]”로 되어 있다.

273)멀리……기색:대본은 ‘無持被刺刺之色’인데, ‘지피(持被)’는 이불을 들고 간다는 뜻으로 며칠 집을 떠나 숙직하러 가는 것을 말하고, ‘자자(刺刺)’는 집을 못 잊어서 식구들에게 시시콜콜 당부한다는 말이다. 13쪽 주19) 참조.

274)소명윤(蘇明允)이……족하다:명윤은 송나라의 문장가인 소순(蘇洵)의 자이고, 호는 노천(老泉)이다. 인용한 글은 〈북사가 되어 가는 석창언을 보내는 인[送石昌言爲北使引]〉에 나오는데, ‘장수가 될 수 없다면[不得爲將]’이 ‘태어나 장수가 되지 않으면[生不爲將]’으로 되어 있다.

275)태어날……둔다:대본은 ‘自弧矢’인데, ‘호시(弧矢)’는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옛날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 사방에 쏘는 시늉을 함으로써 원대한 뜻을 지니도록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로 인하여 ‘호시’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비유한다. 《禮記 內則》

276)그……받아:동쪽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에 해당하고,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춘에 해당하며,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277)공자가……사자(使者):거백옥(蘧伯玉)이 보낸 사자가 “선생께서는 무얼 하시냐?”라는 공자의 질문에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시나 아직 능치 못하시다.[欲寡其過而未能也]”라고 답하니, 공자가 사자의 말이 스스로 겸손하지만 자기 주인의 훌륭함을 더욱 드러낸 점을 들어 “훌륭한 사자로다, 훌륭한 사자로다.[使乎使乎]”라고 칭송한 것을 말한다. 《論語 憲問》

278)견성(甄城):전주의 고호(古號)이다. 견훤(甄萱)이 900년(효공왕4)에 후백제의 도읍을 무주(武州)에서 전주로 옮겨 백제의 부흥을 꾀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279)풍패(豐沛)의 고을:풍패는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이다. 이로 인해 왕조의 발상지 또는 제왕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선대 고향으로, 조경묘(肇慶廟)와 경기전(慶基殿)이 있다.

280)윤길보(尹吉甫)가……것:두 구절 모두 《시경》 〈증민〉에 나오는 구절로 첫 구절은 제2장에, 다음 구절은 제4장에 나온다. 〈증민〉은 주 선왕(周宣王)이 중산보(仲山甫)에게 명하여 제나라에 성을 쌓게 하니, 윤길보가 전송하며 지은 시이다.

281)고령(高靈) 신 문충공(申文忠公):신숙주(申叔舟, 14171475)로, 고령은 본관이고, 문충은 시호이다. 후에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에 봉해졌으며, 문집으로 보한재집(保閑齋集)이 있다.

282)청화절(淸和節):날씨가 청명하고 따뜻한 초여름으로, 음력 4월을 말한다.

283)세표는……그쳤다:삼대(三代)는 하(夏), 은(殷), 주(周)이다. 《사기》 권13은 〈삼대세표(三代世表)〉이고, 권16은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이다.

284)상원갑자(上元甲子):술수가(術數家)의 경우 180년을 일주(一周)로 하고, 일주를 상원갑자(上元甲子), 중원갑자(中元甲子), 하원갑자(下元甲子)로 나누는데, 상원갑자는 첫 번째 갑자 60년을 이르는 말이다.

285)주(周)나라가……이후:삼진(三晉)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세 대부였던 위사(魏斯), 조적(趙籍), 한건(韓虔)이 주나라 위열왕(威烈王)의 명으로 제후에 봉해져 세운 위(魏), 조(趙), 한(韓) 세 제후국을 말하는데, 《자치통감(資治通鑑)》의 기록이 이 세 대부를 제후로 봉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전국 시대 이후의 시기를 말한다.

286)진경(陳桱)의 통감속편(通鑑續編):진경은 명(明)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경(子經)이다. 집안 대대로 사학(史學)을 전공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과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이 모두 오대(五代)에서 끝나고, 김이상(金履祥)의 《통감전편(通鑑前編)》은 위로 도당(陶唐)까지만 기록되어 있다 하여 《통감속편》 24권을 지었는데, 권1은 반고(盤古)로부터 고신씨(高辛氏)까지의 기록으로 김이상의 《통감전편》을 보충한 것이고, 권2는 거란(契丹)의 역사이고, 나머지 22권은 송나라의 역사이다. 《자치통감》의 뒤를 이었다 하여 이름을 《통감속편》이라고 한 것이다. 《四庫全書 通鑑續編提要》

1)영가(永嘉) 권 문순공(權文順公):권홍(權弘, 1360〜1446)으로, 호는 송설헌(松雪軒)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영가는 안동(安東)의 고호이고, 문순은 시호이다.

2)백향산(白香山):당(唐)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로, 자는 낙천(樂天)이다. 호가 향산거사(香山居士)인데,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향산의 승려 여만(如滿)과 종유하며 얻은 자호(自號)이다.

3)공은 후비(后妃)의 친속이요:태종의 빈(嬪)인 의빈(懿嬪) 권씨(權氏)가 권홍의 딸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4)각궁(角弓)……것:〈각궁〉은 《시경》의 편명이고, 가수(嘉樹)는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한 선자(韓宣子)가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노 소공(魯昭公)이 한 선자에게 향연을 베풀어 주자 한 선자가 양국이 서로 화친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각궁〉 시를 노래하였다. 그리고 다시 계무자(季武子)의 연회에 참석하여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나무를 보고 칭찬하니, 계무자가 “숙이 감히 이 나무를 잘 길러서 〈각궁〉 시를 노래해 주신 은혜를 깊이 새기지 않겠습니까.[宿敢不封殖此樹 以無忘角弓]”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2年》

5)소무(蘇武)와 이릉(李陵)에서 시작하여:소무는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19년간 억류되어 온갖 고초를 겪고 귀국하였고, 이릉 역시 한 무제 때에 흉노를 정벌하러 갔다가 패하여 결국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투항한 뒤 그곳에서 20년간 지내다가 병사하였는데, 소무가 흉노를 떠나올 때에 작별하면서 주고받은 〈하양별(河梁別)〉이란 오언시(五言詩)가 전한다. 《漢書 卷54 李廣蘇建傳》

6)강동(江東)과 위북(渭北)의 구절:두보(杜甫)가 지은 〈봄날에 이백을 생각하며[春日憶李白]〉라는 시에 나오는 말로, “위수 북쪽은 봄날의 나무요, 장강 동쪽은 해 지는 구름이라.[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한 두 구절을 말한다.

7)거공(蚷蛬) 편과 운룡(雲龍) 시:한유(韓愈)가 지은 〈취하여 동야에 머물다[醉留東野]〉라는 시를 말한다. 시 구절 중에 “시종일관 거공처럼 함께 살고 싶은데, 동야는 머리 돌려 보지도 않는구나.[願得終始如駏蛩 東野不廻頭]”라고 한 구절과 “나는 원하노니 내 몸은 구름 되고 동야는 변하여 용이 되어[我願身爲雲 東野變爲龍]”라고 한 구절이 있다. 거공(蚷蛬)은 거공(駏蛩)이라고도 하는데, 거허(駏虛)와 공공(蛩蛩)이라는 두 짐승의 이름으로 보기도 하고, 공공거허(蛩蛩駏虛)라는 한 짐승의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공총자(孔叢子)》에 의하면, 궐(蟨)이라는 짐승은 다리가 짧아 잘 달리지 못하는데, 궐은 감초(甘草)를 얻으면 씹어서 공공거허에게 주고, 공공거허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궐을 업고 도망한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거공은 항상 함께 지내며 서로 의지함을 의미한다. 동야는 맹교(孟郊)의 자이다.

8)구양수(歐陽脩)가……시:매 도관(梅都官)은 송나라 때 도관원외랑(都官員外郞)을 지낸 매요신(梅堯臣)으로, 자는 성유(聖兪)이다. 이 시는 〈수곡야행(水穀夜行)〉으로, 구양수가 자신의 저서 《육일시화(六一詩話)》에서 매요신과 소순흠(蘇舜欽)의 시를 평론하고, 두 사람의 시체(詩體)의 특성을 〈수곡야행〉 시에 담았다고 하였다.

9)채붕(彩棚)을……바치며:임금이나 중국의 칙사(勅使)가 행차할 때에 환영하기 위해 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기로(耆老)와 유생 및 교방(敎坊)이 나와서 각자 가요를 바치며, 거리와 골목에 결채(結綵)하고 궐문 밖 좌우에 채붕을 설치한다고 한다.

10)나는……있겠는가:〈모시서(毛詩序)〉에 대서(大序)와 소서(小序)가 있는데, 대서를 자하(子夏)가 지었다는 설이 있다. 이 말은 여러 공들이 지은 시는 윤길보(尹吉甫)를 본받아 《시경》의 시와 같으나 자신은 《시경》의 서문을 지은 자하만 못하다는 겸손의 말이다.

11)검소하고……못하겠으며:〈고양(羔羊)〉은 《시경》의 편명으로, 남국(南國)이 문왕(文王)의 덕에 감화되어 모든 벼슬아치들이 검소하고 정직한 것을 노래한 시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12)곧고……못하겠으며:〈채빈(采蘋)〉도 《시경》의 편명으로, 이 역시 문왕의 덕화를 입어 대부(大夫)의 아내가 제사를 잘 받드는 것을 찬미한 시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13)초목과……못하겠는가:〈추우(騶虞)〉도 《시경》의 편명으로, 이 역시 문왕의 덕화가 초목과 금수에게까지 미친 것을 노래한 시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14)남곡(南谷)의 별장:남곡은 용구산(龍駒山) 동쪽에 있는 지명으로, 이색(李穡)의 남곡기(南谷記)와 사가의 효우정기(孝友亭記)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東文選 卷72 續東文選 卷13

15)길이……있다:《시경》 〈상체(常棣)〉에 나오는 말이다. 〈상체〉는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시로, 제6장에 “형제가 모두 있고 나서야 화락하고 또 친근할 수 있다.[兄弟旣具 和樂且孺]” 하였고, 제7장에 “형제가 화합하고 나서야 화락하고 또 길이 즐길 수 있다.[兄弟旣翕 和樂且湛]” 하였다.

16)기두(萁豆)의 시:일명 칠보시(七步詩)로,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동생 조식(曹植)의 재능을 시기하여 일부러 벌하려고 일곱 걸음을 걷는 사이에 짓게 한 시이다. 시에 “콩대는 솥 밑에서 활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울어 대네.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서로 볶기를 어찌 그리 급하게 하는가.[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하였으니, 이 시는 콩대와 콩을 비유로 들어 형제간의 골육상잔을 나타낸 것이다. 《世說新語 文學》

17)형수(荊樹)가……슬퍼하며:오균(吳均)의 속재해기(續齊諧記)에 나오는 이야기로, 경조(京兆) 사람 전진(田眞) 삼 형제가 재산을 똑같이 나누면서 당 앞에 있는 자형수(紫荊樹) 한 그루를 셋으로 쪼개어 나누기로 하자 자형수가 바로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初學記 卷18 人部

18)복사꽃과……펴고: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복사꽃 오얏꽃이 만발한 동산에 모여, 천륜의 즐거운 일을 편다.[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형제가 모여 즐겁게 노는 것을 말한다.

19)바람……나누어:위응물(韋應物)의 시에 “누가 알리 비 오고 바람 부는 밤에, 다시 침상을 마주하고 잘 것을.[那知風雨夜 復此對牀眠]”이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소철(蘇轍)이 어려서 형 소식(蘇軾)과 떨어져 지내지 않다가 벼슬살이하면서는 함께 있는 날이 드물었는데, 마침 위응물의 이 시를 보고 서글픈 생각이 들어 일찍 벼슬을 버리고 한가하게 지내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자고 약속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事文類聚 兄弟》

20)상체꽃의……답하니:모두 형제간에 우애가 있음을 비유한 말로, 《시경》 〈상체〉에 “상체의 꽃이여, 꽃받침이 화사하구나.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 한 이가 없도다.[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 하였는데, 당 현종(唐玄宗)이 이 뜻을 취하여 흥경궁(興慶宮) 서남쪽에 화악상휘지루(花萼相輝之樓)를 세우고 여러 아우들과 이 누각에 올라서 서로 즐기며 우애 있게 지냈다고 한다. 《通鑑節要 卷12》 또 같은 시에 “척령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어려움에 급히 가도다.[脊令在原 兄弟急難]” 하였는데, 척령새가 몸을 흔들면서 가는 모습이 어려움을 구하러 급히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말하며, 또 《시경》 〈하인사(何人斯)〉에 “백씨가 훈을 불거든 중씨는 지를 분다네.[伯氏吹壎 仲氏吹篪]” 하였는데, 형제간에 마음이 서로 친애하여 소리가 서로 화응함을 말한 것이다.

21)추로(鄒魯)의 고장:추는 맹자가 태어난 곳이고, 노는 공자가 태어난 곳으로 곧 예의와 학문이 흥성한 고장이라는 말이다.

22)이소(二疏):한 선제(漢宣帝) 때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지낸 소광(疏廣)과 그의 조카인 태자소부(太子少傅)를 지낸 소수(疏受)를 말한다. 이 두 사람이 부와 명예가 가득 차고 넘침을 경계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당시 사람들이 어질게 여겼다. 《漢書 卷71 疏廣傳》

23)군진(君陳)과 장중(張仲):군진은 주나라 성왕(成王) 때의 신하이고, 장중은 선왕(宣王) 때의 신하인데, 《서경》 〈군진〉에 “형제에게 우애하여 능히 정사에 베푼다.[友于兄弟 克施有政]” 하였고, 《시경》 〈유월(六月)〉에, “누가 이 자리에 있는가. 효도하고 우애하는 장중이로다.[侯誰在矣 張仲孝友]” 하였으니, 두 사람 모두 효도와 우애로 유명하다.

24)부디……바라니:황 승상(黃丞相)은 《한서(漢書)》 권89 〈순리전(循吏傳)〉에 나오는 황패(黃霸)로 태수를 거쳐 승상이 되었으며, 어진 지방관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곧 김후가 훌륭한 지방관이 되기를 당부하는 말로, 훗날 자신이 김후를 위한 순리전을 지어 《한서》 〈순리전〉의 황패 뒤에 붙이기를 바란다는 뜻인 듯하다.

25)서리와……감회:계절이 바뀜에 따라 감회가 일어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는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픈 마음이 있으니, 날씨가 추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젖으면 군자는 이것을 밟고 깜짝 놀라는 마음이 있어 마치 부모를 뵐 듯이 여긴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凄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 하였는데,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것은 가을을 말한다.

26)태사(太師):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으로, 고려 때 태사 벼슬을 지냈다. 본성(本姓)은 김(金)이다. 신라 말에 안동의 고호인 고창(古昌)의 수령으로 있다가 고려 태조를 도와 견훤(甄萱)을 무찌르고 공을 세웠다. 이에 태조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고 안동을 봉토(封土)로 하사받았다.

27)기어(綺語):불교의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에 해당하는 열 가지 죄악 가운데 하나로 교묘하게 꾸며서 아름답게 만든 말인데, 문장에 있어 화려한 말을 일컫기도 한다. 열 가지 죄악은 몸에 해당하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과 입에 해당하는 망어(妄語), 기어, 양설(兩舌), 악구(惡口)와 마음에 해당하는 탐(貪), 진(嗔), 치(癡)이다.

28)화중(和仲):성간(成侃, 1427〜1456)의 자이다. 호는 진일재(眞逸齋)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29)중경(重卿):성임(成任, 1421〜1484)의 자이다. 호는 일재(逸齋) 또는 안재(安齋)이고,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30)난파(鑾坡):금란파(金鑾坡)의 약칭이다. 당나라 때에 한림원(翰林院)의 학사들이 금란전(金鑾殿)에 있었으므로 한림원의 이칭으로 쓰인다.

31)전하(殿下) 4년:전하는 세조(世祖)를 말한다. 세조 4년은 무인년으로 서기 1458년이다.

32)난새와……처하였으니: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하찮은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때에 고성 영(考城令) 왕환(王渙)이 엄격하고 매서운 정치를 숭상하였는데, 구람(仇覽)이 덕으로 사람을 교화한다는 말을 듣고 발탁하여 주부로 삼았다. 구람에게 말하기를, “주부는 진원(陳元)의 잘못을 듣고도 처벌하지 않고 그를 교화했다고 하니, 응전(鷹鸇) 같은 매서운 뜻이 너무 적은 것은 아닌가?” 하니, 구람이 말하기를, “응전이 되는 것이 난봉(鸞鳳)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이에 왕환이 사죄하고 그를 보내며 말하기를, “가시나무는 난봉이 깃들 곳이 아니니, 100리의 작은 고을이 어찌 대현이 갈 길이겠는가.[枳棘非鸞鳳所棲 百里豈大賢之路]”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76 循吏列傳 仇覽》

33)옛사람……있었으니:옛사람이란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와 자로(子路)를 말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자로가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옛날에 제가 양친을 섬기고 있을 때에는 항상 나물국만 먹으면서 부모를 위해 100리 밖에서 쌀을 져 오곤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남쪽으로 초나라에 가서 벼슬하여 뒤따르는 수레만도 100승이고 쌓아 놓은 곡식도 1만 종이나 되며, 자리를 여러 겹 포개어 앉고 솥을 여러 개 늘어놓고 먹습니다만, 나물국을 먹으며 부모를 위해 쌀을 져 오고 싶어도 다시 할 수가 없습니다.[昔者由也 事二親之時 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親歿之後 南遊於楚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願欲食藜藿 爲親負米 不可復得也]” 하였다. 증자의 일에 대해서는 32쪽 주 40) 참조.

34)주금(晝錦):낮에 비단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간다는 금의환향(錦衣還鄕)과 같은 의미이다. 한나라 때에 무제(武帝)가 주매신(朱買臣)을 그의 고향인 회계(會稽)의 태수로 임명하고 이르기를, “부귀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다니는 것과 같다.[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라고 한 것과 반대로 쓴 말이다. 《漢書 卷64 朱買臣傳》

35)오마(五馬):한나라 때 태수가 다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녔던 데에서 유래하여 지방 수령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36)마치……맛있듯이:진(晉)나라 때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를 먹을 때마다 항상 끝에서부터 밑동으로 먹어 들어가자,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니, 고개지가 말하기를, “점점 더 좋은 데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漸入佳境]” 하였다. 갈수록 흥미가 점점 더해지는 것을 비유한다. 《晉書 卷92 顧愷之列傳》

37)부전(不傳):불법을 전함에 있어 문자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곧장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을 말하니, 여기에서는 오직 남아 있는 시를 통해 성석린(成石璘)의 도덕과 업적이 전해질 수 있다는 말인 듯하다.

38)파리가……바람:이 자리에 모인 훌륭한 분들의 후광을 의지하여 사가 자신도 이름이 나기를 바란다는 겸사의 말이다. 사기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안연이 비록 학문이 독실하나 천리마 꼬리에 붙어 행실이 더욱 드러났다.[顔淵雖篤學 附驥尾而行益顯]” 하였는데, 사기의 주석서인 색은(索隱)에 “파리가 천리마 꼬리에 붙어 천리를 가는 것으로 안회가 공자를 인하여 이름이 드러난 것을 비유한 것이다.[蒼蠅附驥尾而致千里 以譬顔回因孔子而名彰也]” 하였다.

39)불법을……들었는데:《후한서》 권30 〈양해열전(襄楷列傳)〉에 “불법을 닦는 승려는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 밤을 계속 머물지 않으니, 시간이 오래 흘러 애착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하였다.

40)자기 스승의 뜻:자기 스승이란 석가를 말하는 것으로,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뜻을 말하는 듯하다.

41)시가의 쉰 떡:산도(酸饀)란 떡이 상하여 신맛을 띠는 것이니, 곧 시가 속되고 고상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42)가난에……소리:대본은 ‘無寒乞飢鳶之聲’인데, ‘한걸(寒乞)’은 의복이 남루한 걸인으로 시격(詩格)이 수척한 것을 뜻하고, ‘기연(飢鳶)’은 굶주려 뱃속에서 솔개 울음 같은 소리가 난다는 말이니, 대개 승려의 시가 메마르고 팍팍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43)어일호단 전대법륜(於一毫端轉大法輪):《능엄경(楞嚴經)》 권4에 나오는 말로, “한 털끝에서 보왕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을 굴린다.[於一毛端 現寶王刹 坐微塵裏 轉大法輪]” 하였다.

44)왼쪽으로……마땅하도다:《시경》 〈상상자화(裳裳者華)〉에 나오는 구절로, 원시에는 “왼쪽으로 하고 왼쪽으로 함에 군자가 마땅하며, 오른쪽으로 하고 오른쪽으로 함에 군자가 지니고 있도다.[左之左之 君子宜之 右之右之 君子有之]”라고 하여 4구로 되어 있는 것을 2구로 줄여 인용한 것이다. 이 구절은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구비되어 있음을 말한 것이다.

1)인종(仁宗):명나라 태종의 장자로 태종 2년에 황태자에 책봉되고,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나 재위 1년 만에 승하하였다. 《明史 卷8 仁宗本紀》

2)상왕(上王):단종(端宗)을 말한다. 단종이 문종을 이어 즉위한 지 4년 만에 세조에게 선위하고 물러나자 세조가 높여 상왕으로 삼았다.

3)기미를……평정:안평대군(安平大君),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의 역모를 처단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말한다. 사실상 이를 계기로 세조는 왕위에 오를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4)고명(誥命)과 관복:명나라 황제가 세조의 선위를 인정하는 고명과 왕과 왕비에게 하사하는 관복이다. 《세조실록》 2년 4월 20일 기사에 황제의 제서(制書), 조서(詔書), 칙서(勅書) 및 왕과 왕비에게 내린 관복 일습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5)상부(相府):한대(漢代)의 승상부(丞相府)에서 나온 말로, 의정부를 지칭한다.

6)왕세자빈:추숭된 덕종(德宗)의 비인 인수왕비(仁粹王妃)이다. 처음에 수빈(粹嬪)으로 책봉되고, 후에 덕종이 추숭되면서 인수왕비가 되었다. 덕종은 세조의 첫째 아들로 즉위하지 못하고 1456년(세조2)에 승하하여 후에 아들 성종이 추숭하였다. 《국역 연려실기술 1 권5 덕종고사》

7)종사(螽斯)의 상서:〈종사〉는 《시경》의 편명으로, 후비의 덕이 훌륭하여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는 내용이니, 곧 왕세자빈이 원손(元孫)과 군주(郡主)를 낳은 것을 말한다.

8)초방(椒房)에서……쌓았으니:초방은 후비(后妃)의 궁이고, 대본의 육경(毓慶)은 자식을 많이 두는 것을 말하며, 저상(儲祥)은 왕위를 이을 자식을 둔 것을 뜻한다. 왕세자빈이 된 딸이 성종을 낳은 것을 말한다.

9)여칙(女則):후한(後漢) 반고(班固)의 누이동생 반소(班昭)가 지은 것으로 모두 7편이다. 반소는 화제(和帝)의 부름을 받고 궁중에 들어가 황후(皇后)와 귀인(貴人)의 스승이 되었으며, 《여칙》 외에 《여계(女誡)》, 《여헌(女憲)》을 지었다. 《국역 국조보감》 권23 〈명종조〉에 “조대고(曹大家)의 《여계》, 《여칙》, 《여헌》을 내전에 진헌하라.”라는 기사가 있다. 조대고는 반소의 호이다.

10)작자(作者)의 기운:작자는 창시(創始)하는 사람으로, 《예기》 〈악기(樂記)〉에 “작자를 성(聖)이라 하고, 술자(述者)를 명(明)이라 한다.” 하였다.

11)공정왕(恭靖王):공정은 조선 2대 왕 정종(定宗)이 명나라에서 받은 시호이다. 정종은 숙종 때까지 묘호가 없이 시호인 공정으로 호칭되다가 1681년(숙종7)에 이르러서야 묘호를 ‘정종’으로 올렸다. 《宗廟儀軌 卷3 追上尊號》

12)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가 고명(誥命)을 하사하였으므로:태종 문황제는 명나라 성조(成祖)로 조카인 혜제(惠帝)를 몰아내고 즉위하였다. 혜제는 태조(太祖)의 손자이며 의문태자(懿文太子)의 아들로 의문태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1392년에 황태손(皇太孫)으로 책봉되고 1398년에 태조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세력이 큰 제왕(諸王)들을 제거하려다가 당시 연왕(燕王)이었던 성조에 의해 축출되고 건문(建文)이라는 연호도 혁제(革除)되었다. 태종이 즉위하여 혜제로부터 고명을 받았으나 이때에 이르러 그 고명을 반납하고 성조로부터 다시 받은 것이다. 《明史 卷4 恭閔帝本紀》 《太宗實錄 3年 4月》

13)공의……주었다:잘 알려지지 않은 잘못이란 내은달(內隱達)의 딸을 두고 홍여방(洪汝方)과 서로 첩으로 들이려고 다툰 일이다. 이 일이 탄로 나 탄핵을 받았으나 태종이 여러 정황을 살펴 죄를 묻지 않은 일을 말한다. 《太宗實錄 18年 6月 10日》 《世宗實錄 8年 3月 15日》

14)군기 총랑(軍器摠郞):한국문집총간 7집에 수록된 《용헌집(容軒集)》 권4 부록(附錄) 〈신도비명(神道碑銘)〉에는 군부 총랑(軍簿摠郞)으로 되어 있다. 군부(軍簿)는 군부사(軍簿司)의 약칭으로 조선조의 병조에 해당한다.

15)함양군(咸陽君) 이희(李䛥):태종의 장남이며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의 둘째 아들이다. 《선원강요(璿源綱要)》와 실록에는 이름이 포()로 기록되어 있다.

16)참교공(參校公):이원(李原)의 7남으로 후취인 전주 최씨 소생이고, 이름은 지(墀)이다. 승문원 참교(承文院參校)를 지냈으므로 참교공이라고 한 것이다.

17)12년:《성종실록》 11년 11월 11일 기사에 실린 김국광(金國光)의 졸기(卒記)와 《문과방목》에는 모두 김광국의 졸년이 성종 11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종 11년 11월 11일이 간지로 정해일이고 보면 12년은 오류인 듯도 한데,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어 대본대로 번역하였다.

18)중씨(仲氏) 광성(光城):김국광의 동생 김겸광(金謙光, 1419〜1490)으로, 자는 위경(撝卿)이고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광성은 봉호이다.

19)조반(趙胖)의 옥사:조반(1341〜1401)은 고려 말 문신으로 태조 이성계를 도와 개국 공신(開國功臣) 2등에 녹훈되고 복흥군(復興君)에 봉해진 사람이다. 옥사란 조반이 고려 우왕 때 권력을 부리던 염흥방(廉興邦)의 가노(家奴) 이광(李光)을 죽이고 역적으로 몰려 투옥된 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도리어 권력을 전횡한 임견미(林堅味)와 염흥방을 제거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역 고려사절요 권32 정묘년, 권33 무진년》

20)대복(代服):손자가 아버지 대신 복을 입고 상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

21)위용장군(威勇將軍)에……가자하여:《태조실록》 1년 7월 28일 기사에 실린 문무백관의 관제에 의하면 위용장군은 무반(武班)의 정4품 품계이고, 중훈대부(中訓大夫)는 문반(文班)의 종3품 품계이다.

22)살아서는 세상이……것:생전과 사후에 모두 극진한 대접을 받은 사람에 대한 칭송으로, 《논어》 〈자장(子張)〉에서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 대해 “살아서는 세상이 다 그를 존경하고, 죽어서는 세상이 다 그를 슬퍼하나니, 어떻게 그분에게 미칠 수 있으리오.[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3)계책을……삼았다네:〈군진(君陳)〉은 《서경》의 편명이자 주 성왕(周成王)의 신하 이름이다. 《서경》 〈군진〉에 성왕이 군진에게 동교(東郊)를 맡기면서 이르기를, “네가 착한 꾀와 착한 도가 있거든 돌아와서 임금에게 고하라.”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24)장막……사람이었다오:자방(子房)은 한 고조(漢高祖)를 도와 한나라를 건국하는 데에 기여한 장량(張良)의 자(字)이다. 한 고조가 장량을 평하여 “장막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자방만 못하다.[夫運籌策帷幄之中 決勝於千里之外 吾不如子房]”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史記 卷8 高祖本紀》

25)어찌……않아:대본의 불은(不憖)은 불은유(不憖遺)와 같은 뜻으로, 시경 시월지교(十月之交)에 “한 원로를 남겨 두어, 우리 임금을 지키게 하지 않고[不憖遺一老 俾守我王]”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은(憖)’ 자에 대해 주자는 ‘마음은 하고자 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억지로 함을 이르는 말[心不欲而自强之詞]’이라고 하였다. 주로 대신(大臣)의 죽음을 애도하는 말로 쓰인다.

26)공신의……있으나:대본의 한려(漢礪)는 ‘한나라의 대려(帶礪)’라는 말인 듯하다. 대려는 산하대려(山河帶礪)의 준말로 태산(泰山)이 닳아 숫돌이 되고 황하(黃河)가 말라 띠가 된다는 뜻인데, 한 고조가 공신(功臣)들에게 봉작(封爵)을 내리면서 맹세한 말에 “황하가 말라 띠만큼 좁아지고, 태산이 닳아 숫돌만큼 작아지도록 나라를 길이 보존하여 먼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하자.[使黃河如帶 太山如礪 國以永存 爰及苗裔]”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三國志 卷54 吳書 周瑜

27)거울삼을……없나니:거울삼을 신하는 당나라 때의 재상인 위징(魏徵)과 같은 신하라는 말이다. 위징이 죽자 당 태종(唐太宗)이 한탄하기를 “구리를 거울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옛 사적을 거울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삼으면 잘잘못을 밝힐 수 있다. 짐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보전하여 안으로 나의 과실을 예방하였는데,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가 없어졌구나.” 하였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28)웅강(熊江)은……푸르디푸른데:웅강은 충청도 부여현(扶餘縣)에 있는 백마강(白馬江)을 말하고 계악(鷄岳)은 충청도 연산현(連山縣)에 있는 계룡산(鷄龍山)을 말한다.

29)삼한삼중(三韓三重):삼한은 벽상삼한(壁上三韓)의 준말이고, 삼중은 삼중대광(三重大匡)의 준말로, 고려 때 정1품 품계이다. 충선왕 때 처음으로 정1품을 두면서 삼중대광이라고 하였는데 다시 벽상삼한이라는 칭호를 더했다가 없앴고, 공민왕 때에는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였는데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고쳤다가 다시 특진보국삼중대광(特進輔國三重大匡)으로 고쳤다. 《국역 동사강목 1 도하 관직연혁도》

30)안평(安平):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으로, 이름은 용(瑢), 자는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강화(江華)에 안치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시호는 장소공(章昭公)이다. 《국역 연려실기술 1 권4 단종조 고사본말》

31)연릉(延陵)의 절개:연릉은 오나라 왕 수몽(壽夢)의 넷째 아들인 계찰(季札)이다. 연릉에 봉해져서 호를 연릉계자(延陵季子)라고 한다. 수몽이 계찰을 어질게 여겨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은 절개를 말한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32)한 고조가……썼다:문신의 계책도 필요하지만 훌륭한 무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은 한 고조의 모신(謀臣)이고,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는 당 태종 때 함께 정치를 담당했는데, 방현령은 계획을 잘 세우고, 두여회는 결단을 잘 내린다는 평가가 있다. 포공(褒公)과 악공(鄂公)은 당나라의 개국에 공헌한 명장(名將)으로 포국공(褒國公)에 봉해진 단지현(段志玄)과 악국공(鄂國公)에 봉해진 울지경덕(尉遲敬德)을 가리킨다.

33)욕지도(浴知島):대본은 ‘浴花島’인데, 《세조실록》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34)노인(路引):일종의 통행권으로 상인에 대한 징세(徵稅)와 통제, 그리고 군사적인 목적 이외에 조선에 도항(渡航)하는 왜인들에 대한 통제의 수단으로서 도서(圖書), 서계(書契)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35)북정(北征):1460년(세조6)에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양정(楊汀)이 야인(野人)의 침략을 장계로 급히 알리자 신숙주(申叔舟)를 시켜 모련위(毛憐衛)의 야인을 정벌한 일을 말한다. 《世祖實錄 6年 3月 22日》

36)영안남도 절도사(永安南道節度使):영안남도는 함경남도의 이칭이다. 1467년(세조13)에 일어난 이시애(李施愛)의 난으로 1470년(성종1)에 함흥부가 함흥군으로 강등되고 관찰사의 본영을 영흥부(永興府)로 옮기면서 영흥부와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의 이름을 따서 영안도(永安道)라고 하였고, 1509년(중종4)에 다시 함흥부와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의 이름을 따서 함경도라고 한 것이다.

37)이시애(李施愛)의 난:1467년(세조13)에 함경도에서 일어난 난이므로 한 말이다.

38)왕비……일:왕비는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를 말한다. 1479년(성종10)에 폐비 윤씨가 쫓겨나고, 이듬해에 숙의(淑儀) 윤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는데, 이 책봉을 주청한 일이다. 궁각(弓角)은 활을 만드는 재료인 무소뿔로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중국에서도 귀하여 매년 한 차례 50부(副)만 수매(收買)하도록 허락한 품목인데, 한정한 액수를 풀어 줄 것을 주청한 일이다.

39)말가죽에……돌아와:전쟁터에서 전사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명장 마원(馬援)이 “남아는 의당 변방에서 죽어 말가죽에 시체를 싸서 반장하면 그만이지, 어찌 와상에 누워 아녀자의 손에 죽겠는가.[男兒要當死於邊野 以馬革裹屍還葬耳 何能臥牀上在兒女子手中耶]”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40)과인에게는……있으니:성종의 첫째 비인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韓氏)가 한명회(韓明澮)의 딸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공혜왕후는 1467년(세조13)에 당시 자산군(者山君)이었던 성종에게 출가하여 성종이 즉위한 해인 1469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명이 짧아 1474년(성종5)에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국역 연려실기술 2 권6 성종조 고사본말》

41)30여 년:대본은 ‘餘二十年’인데, 《동문선(東文選)》 권20에 수록된 〈의정부 영의정 상당부원군 한공 신도비명〉에 의거하여 대본의 ‘二’를 ‘三’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42)규벽(奎璧)의……빛나:규와 벽은 28수(宿) 가운데 두 별의 이름으로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이다. 주로 문필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어제시(御製詩)를 칭송한 것이다.

43)태재(泰齋) 유 선생(柳先生):유방선(柳方善, 1388〜1443)으로, 권근(權近), 변계량(卞季良)의 문인(門人)이다. 금고를 당하여 벼슬은 하지 않았으나 문명(文名)이 있었고, 원주(原州)에서 살았다. 자는 자계(子繼)이고, 태재는 호이다. 《국역 연려실기술 1 권3 세종조 명신》

44)공이……지녔더니:동산(東山)은 진(晉)나라 사람 사안(謝安)이 젊은 시절 관직을 버리고 은거했던 회계(會稽)의 동산을 말하는데, 혹은 임안(臨安)과 금릉(金陵)에도 동산이 있어 후에 사안이 이곳을 유람하며 휴식을 취했으므로 임안과 금릉의 동산을 말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동산은 은거하는 곳, 혹은 유람하며 휴식을 취하는 곳의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한명회가 오랫동안 벼슬길에 들어서지 못하면서도 유유자적하며 지냈던 것을 말한다.

45)때에……용이었구려:남양(南陽)의 용이란 남양의 초당에 은거하였으며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고 불렸던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을 말한다. 제갈량이 유비(劉備)를 만나 나라를 경륜한 공에 비유한 것이다.

46)나이……같다네:노국(潞國)은 송 신종(宋神宗) 때의 재상 문언박(文彦博)의 봉호이고, 분양(汾陽)은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으로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문언박은 장수를 누려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고, 곽자의는 자손이 많고 다복(多福)하기로 유명하다.

47)거울 하나가 없어졌구려:당 태종(唐太宗)이 재상 위징(魏徵)을 잃고 거울 하나가 없어졌다고 한탄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133쪽 주 27) 참조.

48)기수(箕宿)의……되었고:기수는 28수 가운데 하나이고, 부열(傅說)은 은 고종(殷高宗)의 재상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이 도를 얻어서 무정(武丁)을 도와 천하를 소유하였고, 동유(東維)를 타며 기미(箕尾)를 타고 올라가 별이 되었다.” 하였다. 무정의 묘호가 고종이다.

49)숭악(嵩岳)의……되었다:신백(申伯)은 주 선왕(周宣王) 때의 신하이다. 《시경》 〈숭고(崧高)〉에 “높고 높은 산악이 치솟아 하늘에 이르도다. 산악이 신을 내려 보와 신을 낳았도다.[崧高維嶽 駿極于天 維嶽降神 生甫及申]” 하였는데, 보는 중산보(仲山甫)이고 신은 신백이다. 신백과 중산보가 높은 산악의 정기를 타고났음을 노래한 것이다.

50)홍무(洪武) 임오년:홍무는 명나라 태조의 연호로 1368년부터 1398년까지이다. 임오년은 1402년으로, 태조를 이어 즉위한 혜제(惠帝)의 연호인 건문(建文) 4년이다. 그런데 성조(成祖)가 혜제를 내쫓고 건문 연호를 혁제(革除)하여 홍무 연호로 돌렸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연호를 홍무로 쓴 것이다.

51)화전(花磚):꽃무늬가 있는 벽돌이다. 당 덕종(唐德宗) 때 한림원(翰林院)의 앞길에 화전을 깔아 놓았던 것으로 인하여 한림원 또는 한림학사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집현전을 말한다.

52)등영주(登瀛洲):영주는 신선이 사는 선계(仙界)로, 등영주는 영주에 오른다는 뜻인데, 당 태종(唐太宗)이 지은 문학관(文學館)을 지칭한다.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등 18학사를 문학관에 불러들인 뒤 정사를 자문하기도 하고 함께 전적(典籍)을 토론하기도 하면서 극진히 예우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곳을 등영주라고 일컬었다.

53)독격골(獨擊鶻):《패문운부(佩文韻府)》에 매의 한 종류로 나오는데, 송나라 때의 명신(名臣)인 왕소(王素)가 대헌(臺憲)에 올라 기백이 더욱 매서우니, 사람들이 독격골로 지목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54)오류가 많다:이 뒤에 ‘一乎否 安手執他而有所接物則否手’라는 15자가 실려 있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아 착간된 것으로 보고 번역하지 않았다. 《세조실록》 4년 12월 12일 기사에도 이 부분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삭제한 부분인데 잘못되어 오류인 채로 남아 있는 듯하다.

55)나이……같도다:노국공(潞國公)은 송 신종(宋神宗) 때의 재상 문언박(文彦博)이고, 분양(汾陽)은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 곽자의(郭子儀)이다. 자세한 내용은 151쪽 주 46) 참조.

56)그……성대하도다:오(吳)나라 계찰(季札)이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위(魏)나라의 시를 듣고 말하기를, “중용(中庸)의 소리로다. 크면서도 요약되고, 검소하여 행하기 쉽다.[渢渢乎 大而婉 險而易行]” 하였는데, 두예(杜預)가 ‘풍풍(渢渢)’은 중용의 소리라고 해석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9年》

57)춘주(春州):평주(平州)의 오류인 듯하다. 평주는 황해도 평산(平山)의 이칭이다.

58)각……청하니:서사법(署謝法)은 관원을 임명할 때에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을 거쳐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고려 시대에 시행되던 법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와서 태조가 4품 이상의 관원을 임명할 때에는 서사를 거치지 않고 교지(敎旨)로 임명하는 관교(官敎)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태종 때부터 관교를 폐지하고 서사를 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太宗實錄 13年 11月 4日》

59)의정부의 서사(署事):육조(六曹)의 정무를 먼저 의정부에 보고하여, 토의한 후 임금에게 계주(啓奏)하는 것을 말한다.

60)공정왕(恭靖王):조선 2대 왕인 정종(定宗)이다. 태조의 둘째 아들이고 태종의 형으로 태조를 이어 왕위에 올랐고, 재위 2년 만에 태종에게 선위하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1419년(세종1)에 승하하였다. 공정은 명나라에서 받은 시호이다.

61)공의……만하다:생전이나 사후나 모두 임금의 두터운 총애를 입었다는 뜻이다. 애영(哀榮)은 132쪽 주 22) 참조.

62)언충신 행독경 소심익익 대월상제(言忠信行篤敬小心翼翼對越上帝):‘언충신 행독경’은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나오는데 “말은 충성스럽고 믿음직하게 하며 행실은 독실하고 공경스럽게 한다.”라는 뜻이고, ‘소심익익’은 《시경》 〈대명(大明)〉의 “오직 이 문왕이 조심조심하여 공손하고 삼간다.[維此文王 小心翼翼]”에서 온 말로 조심하고 공경한다는 뜻이며, ‘대월상제’는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 나오는데, “상제를 대하듯 한다.”라는 뜻으로 경(敬)을 중시하는 말이다.

63)9남:한국문집총간 8집에 수록된 신개(申槩)의 문집 《인재집(寅齋集)》 권4 〈부록 신도비명〉에는 ‘8남(八男)’으로 기록되어 있다.

64)모양도정(牟陽都正):이직(李稙)으로, 태종의 아들인 경녕군(敬寧君) 이비(李)의 아들이다.

65)산악이……태어났도다:위대한 인물의 탄생은 산천과 하늘이 주관한다는 말로, 시경 숭고(崧高)에 “산악이 신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후(申侯)를 내셨도다.[維嶽降神 生甫及申]” 하였다.

66)충성스러운 신하:대본의 ‘신신(藎臣)’은 《시경》 〈문왕(文王)〉의 ‘왕지신신(王之藎臣)’이라는 구절에서 온 말로 ‘藎’은 ‘進’의 뜻으로 왕이 진용(進用)한 신하라는 뜻이다. 후에 충성스러운 신하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67)자기……절개이리라:《주역(周易)》 〈건괘(蹇卦) 육이(六二)〉의 효사(爻辭)에 “왕의 신하가 국가의 어려움에 힘을 다해 애쓰는 것이 자기의 몸 때문이 아니다.[王臣蹇蹇 匪躬之故]”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중정(中正)한 군주에게 신임을 받기 때문에 왕신(王臣)이라고 한 것이고, 건건(蹇蹇)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68)공이 납록(納麓)에 있고:납록은 《서경》 〈순전(舜典)〉의 ‘납우대록(納于大麓)’에서 나온 말로,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는 뜻이다. 요(堯) 임금이 신하인 순(舜)에게 국정을 맡기기 전에 시험한 방법 중 하나인데, “세찬 바람이 불고 천둥 치고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烈風雷雨 弗迷]” 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는 ‘비상(非常)한 변고를 만났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상도(常道)를 잃지 않은 것은 참으로 총명하며 성실하고 지혜롭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여 순의 뛰어난 도량을 표현한 말로 보았다. 여기에서는 신개가 순과 같은 도량이 있어 총재의 자리에 발탁되었다는 말인 듯하다.

69)거울은 없어졌으나:당 태종(唐太宗)이 재상 위징(魏徵)을 잃고 거울 하나가 없어졌다고 탄식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133쪽 주 27) 참조.

70)태실(太室)에 올라 배향되니:태실은 종묘(宗廟)를 말한다. 신개는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71)그……성대하도다:162쪽 주 56) 참조.

72)운한(雲漢)을……충분하고: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서쪽으로 함지에 노닐고 부상에 다다르니, 초목에까지 은하수 밝은 빛을 입히었도다.[西游咸池略扶桑 草木衣被昭回光]” 한 데서 온 말이다.

73)임진일:1409년(태종9) 12월에 임진일이 없다. 아마도 간지에 오류가 있는 듯하다.

74)영릉(英陵):세종의 능호(陵號)이다.

75)지재(止齋) 권 문경공(權文景公):권제(權踶, 13871445)로, 지재는 호이고 문경은 시호이다.

76)누이의 딸:누이는 사가의 어머니 권씨(權氏)이니, 곧 사가와 최항(崔恒)은 처남 매부 사이이다.

77)의발을……장원급제하였다:의발(衣鉢)을 전한다는 것은 본래 불교 선종(禪宗)에서 법통(法統) 계승의 신증(信證)으로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전해 주는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도통을 계승할 때에도 쓰인다. 노공(魯公) 범질(范質)의 고사란, 북송(北宋) 초기에 범질이 진사과에 응시했는데 과거를 주관한 화응(和凝)이 범질을 제13인으로 등제(登第)시키고 이르기를, “그대의 글이 당연히 다사(多士)의 으뜸이지만, 그대를 제13인으로 낮춘 것은 내가 일찍이 그 숫자로 급제를 했기 때문에 그대 또한 그 숫자로 급제시켜 이 늙은이의 의발을 전하려는 뜻에서이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邵氏聞見錄》 《舊五代史 周書 卷127 和凝列傳》

78)현릉(顯陵):문종(文宗)의 능호이다.

79)직전(直殿):집현전(集賢殿)에 소속된 정4품 벼슬이다.

80)광릉(光陵):세조의 능호이다.

81)창릉(昌陵):예종(睿宗)의 능호이다.

82)사전(四典):〈이전(吏典)〉, 〈예전(禮典)〉, 〈병전(兵典)〉, 〈공전(工典)〉이다.

83)세남 비서(世南秘書):세남은 당 태종(唐太宗) 때 사람 우세남(虞世南)을 가리키고, 비서는 정부에 비장(秘藏)한 서적(書籍)을 말한다. 당 태종이 출행할 때에 유사가 서적의 부본(副本)을 싣고 따라갈 것을 청하자 태종이 “그럴 필요 없다. 우세남이 여기 있으니, 그는 걸어 다니는 비서이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隋唐嘉話 卷中》

84)회간왕(懷簡王):세조의 첫째 아들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즉위하지 못하고 20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후에 아들 성종이 즉위하여 덕종(德宗)으로 추숭(追崇)하였다. 회간은 명나라로부터 받은 시호이다. 《국역 연려실기술 1 권5 세조조 고사본말 덕종고사》

85)무송군(茂松君) 이전(李恮):효령대군(孝寧大君)의 손자이다.

86)옥병에……성품이요:‘옥병에 담긴 얼음’은 고결하고 바른 성품의 소유자를 비유한다.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 포조(鮑照)의 시에 “곧은 절조는 붉은 거문고 줄과 같고, 맑은 성품은 옥병 속의 얼음 같네.[直如朱絲繩 淸如玉壺氷]”라고 하였다. 《鮑參軍集 卷3 代白頭吟》

87)연성(連城)과……진가로세:‘연성과 바꾼 백옥구슬’은 값이 귀한 보물을 뜻한다.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초(楚)나라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15개의 성(城)과 맞바꾸자는 제의를 하자 인상여(藺相如)가 자청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화씨벽을 온전히 보전하여 돌아온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88)천근(天根)을……더듬었지:《국역 성호사설》 11 권29 〈천근․월굴(月窟)〉에 “월굴은 음의 뿌리이니 음의 뿌리는 양이고, 천근은 양의 뿌리이니 양의 뿌리는 음이다.” 하였고, 또 “사람은 양에 속하고 물(物)은 음에 속하며, 양은 하늘을 맡고 음은 달을 맡았으니, 사람을 알려면 하늘을 알아야 하고, 물을 알려면 달을 알아야 한다. 하늘을 아는 것도 그 뿌리로부터 추구해야 하고, 달을 아는 것도 그 굴(窟)로부터 추구해야 하니, 그러므로 천근을 밟아 사람을 알고, 월굴을 더듬어 물을 안다고 한 것이다.” 하였는데, 이 말은 소옹(邵雍)의 〈관물음(觀物吟)〉에 나온다.

89)대려(帶礪)의 맹서:대려는 산하대려(山河帶礪)의 준말로 한 고조가 공신에게 한 맹서이다. 133쪽 주 26) 참조.

1)우모(虞謨):《서경》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와 〈고요모(皐陶謨)〉를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서경》의 이칭으로 쓰였다.

2)노사(魯史):공자(孔子)가 노나라의 역사를 인하여 《춘추(春秋)》를 지었으므로 《춘추》의 이칭으로 쓰였다.

3)자장(子長):《사기》를 편찬한 사마천(司馬遷)의 자(字)이다.

4)온공(溫公)이 장편(長編)을 만들자:온공은 온국공(溫國公)의 준말로, 사마광(司馬光)의 봉호(封號)이고, 장편은 편년사(編年史)를 편찬하기 전에 미리 자료를 수집하여 순차대로 배열해 놓은 것을 말하는데, 사마광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으면서 먼저 장편을 만들었으므로 《자치통감》의 이칭으로 쓰였다.

5)자양(紫陽):송나라 주희(朱熹)의 별호로, 본래 주희의 아버지 주송(朱松)이 자양산에서 독서하였는데, 후에 주희가 청사(廳事) 이름을 자양서실(紫陽書室)이라고 하여 잊지 않는 뜻을 나타냈으므로 후인들이 주자의 별호로 삼았다.

6)자장과……범주:동양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 기전체(紀傳體)와 편년체(編年體)가 있는데, 사마천의 《사기》는 기전체(紀體)의 대표적인 사서이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편년체의 대표적인 사서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7)천작(天作)의 땅:한유(韓愈)의 〈연희정기(燕喜亭記)〉에 “이곳은 대개 하늘이 만들어 놓고 땅이 감추어 두었다가 진짜 임자에게 준 것이다.[凡天作而地藏之 以遺其人乎]”라는 말이 나온다.《韓昌黎集 卷13》

8)사군(四郡):사군은 한 무제(漢武帝) 원봉(元封) 3년(기원전 108)에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없애고 그 옛 땅에 둔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도(玄菟), 진번(眞番)의 네 군을 말하는데, 각 군에는 한 나라의 군현제(郡縣制)에 따라 여러 속현(屬縣)이 설치되었다.

9)인경(麟經):공자가 《춘추》를 짓다가 기린이 잡힌 대목에서 붓을 내려놓고 끝낸 일로 인하여 《춘추》의 이칭으로 쓰인다.

10)믿을……것:《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환공(桓公) 5년 조에 “《춘추》의 사건을 기록하는 원칙은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함으로써 믿을 만한 것을 전하고, 의심스러운 것을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의심스러운 것을 전하는 것이다.[春秋之義 信以傳信 疑以傳疑]”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관의 객관적 태도를 말한다.

11)주고(周誥)와……엄정하셨습니다:주고는 《서경》 〈주서(周書)〉의 고체(誥體)로 된 편들을 말하고 은반(殷盤)은 《서경》 〈상서(商書) 반경(盤庚)〉을 말하는데, 대개는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까다로운 글을 비유한다. 여기에서는 주고는 《서경》의 〈주서〉를, 은반은 《서경》의 〈상서〉를 뜻하는 말로,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문신(問神)〉에 “상서는 한없이 넓고, 주서는 엄정하다.[商書灝灝爾 周書噩噩爾]”라고 한 것을 끌어다 쓴 것이다.

12)동관(東觀):한나라 때 궁궐 안에 있던 건물 이름인데, 명제(明帝)가 반고(班固) 등에게 명하여 이곳에서 한기(漢記)를 편수하도록 하였고, 또 장제(章帝)와 화제(和帝) 때에는 궁중의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로 인해 후에는 국사(國史)를 편찬하는 곳이란 의미로 쓰인다.

13)사관이……장점:세 가지 장점은 재(才), 학(學), 식(識)이다. 사관의 재능으로 이 세 가지 장점이 필요한데,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관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14) 오늘날의 일도 거울삼고:대본은 ‘今爲鑑’으로 되어 있으나,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진삼국사절요전〉에는 ‘人爲鑑’으로 되어 있다.

15)결승(結繩)에서……담았으니:결승은 상고 시대 문자가 없을 때에 끈이나 새끼 따위로 매듭을 지어서 일을 기록했던 것을 말하고, 서계(書契)는 최초의 문자로, 한(漢)나라 때 공안국(孔安國)이 쓴 〈상서 서(尙書序)〉에 의하면 “옛날에 복희씨(伏羲氏)가 천하의 왕이 되어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긋고 서계를 만들어 결승으로 하던 정치를 대신하니, 이로부터 문적(文籍)이 생겼다.” 하였다. 오도(吾道)는 유가(儒家)의 도를 말하니,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가 증자에게 “오도는 하나로 관통한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16)우전(虞典)과 하모(夏謨)의 정미함:우전은 《서경》 〈우서(虞書)〉의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이고, 하모는 《서경》의 〈하서(夏書)〉이다. 요(堯)․순(舜)․우(禹) 시대의 치도(治道)가 실려 있어 유가(儒家)의 정치 전범으로 일컬어진다.

17)주고(周誥)와……엄정함:〈주고〉는 《서경》의 〈주서(周書)〉를 말하고, 〈은반(殷盤)〉은 《서경》의 〈상서(商書)〉를 말한다. 192쪽 주 11) 참조.

18)소명태자(昭明太子)가……만들었기에:소명태자는 중국 남조(南朝) 양 무제(梁武帝)의 장자인 소통(蕭統, 501~531)으로, 서사(庶事)에 밝고 문사(文辭)에 능하였다. 주(周)나라에서 양나라에 이르는 1000년 동안 130여 명이 지은 문장(文章)과 시부(詩賦)를 수록한 《문선(文選)》을 편찬하였다.

19)진덕수(眞德秀)가……만들었기에:진덕수(1178〜1235)는 남송(南宋)의 성리학자로 주자학을 계승하여 ‘소주자(小朱子)’로 불린 사람이다. 자는 경원(景元) 또는 희원(希元)이고, 호는 서산(西山)이다. 《문장정종(文章正宗)》은 당나라 이전의 글을 사명(辭命), 의론(議論), 서사(敍事), 시가(詩歌)의 넷으로 분류하여 20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20)요사(姚姒):요는 우순(虞舜)의 성(姓)이고, 사는 하우(夏禹)의 성인데, 여기에서는 《서경》의 〈우서(虞書)〉와 〈하서(夏書)〉를 말한다.

21)노추(魯鄒):공자는 노나라 사람이고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므로 대개 공자와 맹자를 뜻하나, 여기에서는 《논어》와 《맹자》를 말한다.

22)반마(班馬):《한서》를 쓴 반고(班固)와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을 병칭한 말로, 한나라 때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다.

23)굴송(屈宋):전국 시대 초(楚)나라 사람인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인 송옥(宋玉)을 병칭한 말로, 사부(辭賦)의 대가이다.

24)물……것:한유(韓愈)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서 “음악은 마음속의 답답함을 밖으로 쏟아 내는 것이다. 잘 우는 것을 택하여 그것을 빌려서 우니, 금․석․사․죽․포․토․혁․목 여덟 가지는 물 중에 잘 우는 것이다.[樂也者 鬱於中泄於外者也 擇其善鳴者而假之鳴 金石絲竹匏土革木八者 物之善鳴者也]”라고 하면서 맹교(孟郊)를 선명자(善鳴者)에 비유한 데서 온 말로, 시문(詩文)으로 세상에 명성을 드날리는 것을 비유한다.

25)문이……않겠는가:공자가 광(匡) 지방에서 위협을 당할 때,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문이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文王旣沒 文不在玆乎]”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論語 子罕》

26)김태현(金台鉉)이 편찬한 국감(國監):김태현(1261〜1330)은 고려 말기의 명신(名臣)으로, 자는 불기(不器), 호는 쾌헌(快軒),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국감》은 《동국문감(東國文鑑)》의 약칭으로 한국문집총간 7집에 수록된 《양촌집(陽村集)》 권35 〈동현사략(東賢史略) 김 정승 휘 태현(金政丞諱台鉉)〉에는 《해동문감(海東文鑑)》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고대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는 제가(諸家)의 시문을 수록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시문을 수록한 것으로는 최초이다.

27)최해(崔瀣)가 저술한 동문(東文):최해(1287〜1340)의 자는 언명보(彦明父) 또는 수옹(壽翁)이며, 호는 졸재(拙齋) 또는 예산농은(猊山農隱)이다. 《동문(東文)》은 《동인지문(東人之文)》의 약칭으로 모두 25권으로 되어 있는데, 한국문집총간 3집에 수록된 《졸고천백(拙藁千百)》 권2 〈동인지문서(東人之文序)〉에 의하면, 신라 최치원(崔致遠)부터 고려 충렬왕 때까지의 명가(名家)들의 작품을 담았으며, 시는 오칠(五七)이라 하고, 문(文)은 천백(千百)이라 하고, 변려문(騈儷文)은 사륙(四六)이라 하여 유별로 분류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28)순 임금의 정일(精一):정일은 정밀하고 한결같다는 뜻이다.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선위하면서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允執闕中]”라는 네 글자를 전수하였는데, 순 임금은 우 임금에게 선위하면서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만 중을 잡을 것이다.[唯精唯一 允執闕中]”라는 말로 전수하였다. 《書經 舜典》

29)요 임금의 문사(文思):문사는 요 임금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문장이 드러나고 생각이 심원하다는 뜻이다. 《서경》 〈요전(堯典)〉에 “옛날 요 임금을 상고하건대 방훈이라고 하니, 공경하고 통명하며 문장이 드러나고 생각이 심원함이 모두 자연스러움에서 나와 억지로 힘씀이 없으셨다.[曰若稽古帝堯 曰放勳 欽明文思安安]” 하였다.

30)본래……못하니: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구방고(九方皐)에게 천리마를 구해 오도록 하자 구방고가 3개월 만에 천리마를 구해 왔다. 진 목공이 어떤 말인지를 묻자 구방고가 암말이고 색깔은 누렇다고 답하였는데, 사실은 수말이고 색깔은 검었다. 진 목공이 실망하여 말의 암수와 색깔도 구분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자 백락(伯樂)이 말하기를, “구방고가 본 것은 천기(天機)이니, 정(精)한 것은 얻고 추(麤)한 것은 잊은 것이며, 내면(內面)에 뜻을 두고 외면(外面)은 잊은 것입니다.” 하였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로, 여기에서는 시문을 알아보는 안목을 말한다. 《列子 卷8 說符》

31)오이를……끝에:한 무제(漢武帝) 때 사군(四郡)을 설치한 것과 한 소제(漢昭帝) 시원(始元) 5년(기원전 82)에 사군을 다시 합하여 평주(平州)와 동부(東府) 두 도독부(都督府)를 둔 것을 말한다. 사군에 대해서는 191쪽 주 8) 참조.

32)태봉(泰封):고구려의 옛 땅을 점거하여 철원(鐵原)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태봉이라고 한 궁예(弓裔)를 말한다.

33)삼종(三宗):정종(定宗), 태종(太宗), 세종(世宗)을 말한다.

34)양 문양공(梁文襄公):양성지(梁誠之, 1415〜1482)로, 문양은 시호이다. 자는 순부(純夫)이고, 호는 눌재(訥齋)이다.

35)삼청(三淸):도교의 세 신선이 산다는 세 군데의 청경(淸境)인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세 신선인 옥청경동(玉淸境洞)의 진교주(眞敎主)인 원시천존(元始天尊), 상청경동(上淸境洞)의 현교주(玄敎主)인 영보천존(靈寶天尊), 태청경동(太淸境洞)의 신교주(神敎主)인 도덕천존(道德天尊)을 말한다.

36)태허정집(太虛亭集):최항(崔恒, 1409〜1474)의 문집으로, 최항은 사가의 자부(姊夫)이다. 자는 정보(貞父)이고, 호는 태허정(太虛亭)이다. 정조가 “태허정 최항은 남긴 문집을 보면 기상이 매우 웅장하니 국가 초기의 원기(元氣)가 왕성하였음을 오히려 상상할 만하다. 다만 몇 편밖에 남아 있지 않아 거장의 솜씨를 충분히 다 볼 수 없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하였다. 《국역 홍재전서 16 권161 일득록》

37)서경(西京):전한(前漢)의 수도 장안(長安)의 이칭이다. 전한이 장안에 도읍하고 후한(後漢)이 동쪽의 낙양(洛陽)에 도읍함으로 인한여 전한을 서한(西漢), 후한을 동한(東漢)이라고 하며, 아울러 장안을 서경, 낙양을 동경(東京)이라고 한다.

38)동 강도(董江都):강도(江都)의 상(相)을 지낸 동중서(董仲舒)이다.

39)가 태부(賈太傅):한 문제(漢文帝) 때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를 지낸 가의(賈誼)이다.

40)한 이부(韓吏部):당 헌종(唐憲宗) 때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이다.

41)유 유주(柳柳州):당나라의 유주 자사(柳州刺史)를 지낸 유종원(柳宗元)이다.

42)두소릉(杜少陵):당나라의 두보(杜甫)이다. 두보가 스스로 호를 ‘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두소릉으로 일컬었다.

43)이 적선(李謫仙):당나라의 이백(李白)이다. 적선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의 작품 〈촉도난(蜀道難)〉을 읽고 찬탄하여 ‘적선’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다.

44)구왕황소(歐王黃蘇):구양수(歐陽脩), 왕안석(王安石), 황정견(黃庭堅), 소식(蘇軾)을 병칭하여 부른 말이다.

45)양우게범(楊虞揭范):원대(元代)의 사대가(四大家)로 불리는 양재(楊載), 우집(虞集), 게혜사(揭傒斯), 범형(范梈)을 병칭하여 부른 말이다.

46)광악(光岳):광은 해, 달, 별의 삼광(三光)을 가리키고, 악은 태산(泰山), 숭산(嵩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의 오악(五岳)을 가리키는데, 곧 천지(天地)와 같은 말이다.

47)난파(鑾坡):당 덕종(唐德宗) 때 학사원(學士院)을 금란전(金鑾殿) 옆의 금란파(金鑾坡) 위로 옮겼는데, 이로 인해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으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집현전(集賢殿)을 말한다.

48)영호(永灝):대본은 ‘永’인데, 〈사가문집보유〉 권1 〈최 문정공 비명(崔文靖公碑銘)〉에 의거하여 ‘’을 ‘灝’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49)육 선공(陸宣公):당 덕종(唐德宗) 때의 한림학사(翰林學士) 육지(陸贄)로, 선공은 시호이고, 자는 경여(敬輿)이다. 천자에게 올린 주의(奏議)를 모아 엮은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로 유명하다.

50)용집(龍集):연차(年次)를 의미하는 말로 세차(歲次)와 같다. 《국역 성호사설》 1 권2 〈용집〉에 “세성(歲星)은 12년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 하늘은 12차(次)가 있으니 1년에 1차씩 옮겨 가기 때문에 12년을 1기(紀)라 하며 지금 천문학에서 태세(太歲)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용집이라고 쓰는데 용집은 곧 세재(歲在)라는 말과 같다. 《서경》에, ‘진성(辰星)이 방성(房星)을 따르지 않는다.[辰不集于房]’ 하였으니, 집(集)은 따른다는 뜻이다.” 하였다. 용은 세성이다.

1)갱가(賡歌):순(舜) 임금 조정에서 부른 창화가(唱和歌)로, “대신들이 즐거우면 임금이 흥성하고 백관도 화락하리라.[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熙哉]”라는 순 임금의 노래와 이에 고요(皐陶)가 화답한 “임금님이 밝으시면 신하들도 훌륭하여 만사가 안정되리이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는 노래, 그리고 이어서 부른 “임금님이 잗달게 굴면 신하들도 해이해져서 만사가 실패하리이다.[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墮哉]”라는 노래를 가리킨다. 書經 益稷

2)아송(雅頌):아(雅)는 조정의 악곡(樂曲)이고 송(頌)은 종묘의 악곡이다. 시경에 이들 노래가 실려 있다.

3)이두(李杜):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병칭(幷稱)이다.

4)소황(蘇黃):송나라의 문학가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의 병칭이다.

5)은반(殷盤):서경 상서(商書)의 편명인 반경(盤庚) 상․중․하를 말한다.

6)주고(周誥):서경 주서(周書)의 편명인 대고(大誥), 강고(康誥), 주고(酒誥)를 말한다.

7)반마(班馬):전한(前漢)의 문장가로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과 후한(後漢)의 문장가로 한서(漢書)를 지은 반고(班固)를 가리킨다.

8)한구(韓歐):당송팔가(唐宋八家)의 한 사람인 당나라 한유(韓愈)와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를 말한다.

9)기운과……깨끗해:이 부분이 대본에는 ‘氣格溫醇▨▨’로 되어 있는데, 신용개(申用漑)의 이요정집(二樂亭集) 권8 삼탄집 서(三灘集序)에 의거해 ‘簡素’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10)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강중(剛中), 초자(初字)는 자원(子元)이다.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이다. 조수(趙須)와 유방선(柳方善) 등에게 배워 학문이 매우 넓어서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약(醫藥), 복서(卜筮), 성명(性命), 풍수(風水)에까지 관통하였으며,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詩)에 능하였다. 오랫동안 문형(文衡)의 자리에 있으면서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동문선(東文選) 등을 편찬하였다.

11)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1410〜1481. 본관은 영동(永同), 자는 문량(文良), 호는 괴애․식우(拭疣)이다. 세종 때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존경하던 고승 신미(信眉)의 동생으로 불경(佛經)에 달통하였고 제자백가(諸子百家)와 육경(六經)에 해박하여 세조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특히 시문에 뛰어나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한림(翰林) 진감(陳鑑)과 희청부(喜晴賦)로써 화답한 내용은 명나라에까지 알려졌으며,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이석형(李石亨)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며 문명을 다투었다. 후대에 장유(張維)는 김종직(金宗直), 최립(崔岦)과 아울러 조선의 삼대 문장가 중의 한 사람으로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거정이 오랫동안 문형의 자리에 있었던 관계로 문형을 잡지는 못하였다. 저서로는 식우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12)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이다. 인품이 겸손하고 치밀하여 맡은 일을 잘 처리했으며, 또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한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였다.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문인이면서도 농촌 사회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설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관인문학(官人文學)의 고답적인 자세를 스스로 파괴하였다. 그의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은 생활 주변에서 채집한 농요(農謠)를 모아 정리한 것으로 농민들의 애환과 당시 농정(農政)의 실상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그의 시 중에서 이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소나무와 대나무 및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으며, 글씨에도 아주 뛰어났다. 그러나 역시 서거정으로 인해 문형을 잡지는 못하였다. 저서로는 사숙재집금양잡록(衿陽雜錄) 등이 전하고 있으며,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13)옥이……빛나고:훌륭한 재주와 덕을 속에 품고 있다는 뜻이다.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이르기를, “돌이 옥을 싸고 있으니 산은 빛나고, 물이 구슬을 품고 있으니 냇물은 아름답도다.[石韞玉而山輝 水懷珠而川媚]” 하였다.

14)사탕수수를……자:점점 더 깊은 맛을 음미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사람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를 항상 꼬리 부분부터 먼저 먹자,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점차 좋은 맛을 보려고 해서이다.”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

15)입을……자:옳으니 그르니 하면서 마구 떠들어대며 논란하는 자를 말한다.

16)창룡(蒼龍):태세(太歲)라는 뜻의 말로, 세차(歲次)를 뜻한다.

17)신용개(申用漑):1463〜1519.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개지(漑之), 호는 이요정(二樂亭)․송계(松溪)․수옹(睡翁)이다. 신숙주(申叔舟)의 손자이며,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대제학과 우찬성을 지냈다. 기품이 높고 총명하여 문명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활쏘기 등 무예에도 뛰어나 문무를 겸비하였다. 인품 또한 꿋꿋하여 함부로 범하지 못할 점이 있어 당시 선비들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저서로는 이요정집이 있다.

18)괴애(乖崖)……강경순(姜景醇):괴애 김문량(金文良)은 김수온(金守溫)을 가리키고, 사가(四佳) 서강중(徐剛中)은 서거정(徐居正)을 가리키고, 사숙재(私淑齋) 강경순은 강희맹(姜希孟)을 가리킨다. 이들 세 사람과 삼탄이 활동한 시기는 조선조 문학의 전성기로 불린다.

19)선릉(宣陵):성종(成宗)의 능호(陵號)이다.

20)그……하였다:연산군일기 4년(1498) 9월 6일 기사에 따르면, 조위(曺偉)가 성종조에 도승지로 있을 적에 성종의 명을 받고 삼탄의 시문 6권과 김종직의 시문 17권을 교정하여 올렸으나 권질(卷帙)이 호번(浩繁)해서 간행하지 못하고 마침내 문(文)만을 초하여 한 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21)택상(宅相):외손(外孫)을 말한다. 진(晉)나라의 위서(魏舒)가 고아가 되어 외가(外家)인 영씨(甯氏) 집에서 양육되고 있었는데, 영씨가 집을 짓게 되어 가상(家相)을 보니, 풍수가(風水家)가 “귀한 외생(外甥)이 나올 것이다.” 하기에 외조모가 내심 위서를 생각했다. 이에 위서가 “응당 외가를 위하여 택상을 이루겠다.” 했는데, 과연 마흔 남짓한 나이에 상서랑(尙書郞)이 되었다. 晉書 卷41 魏舒列傳

22)알봉(閼逢) 엄무(閹茂):고 간지(干支) 이름으로, 알봉은 갑(甲)을 말하고, 엄무는 술(戌)을 말하는바, 갑술년인 중종 9년(1514)을 가리킨다.

23)남곤(南袞):1471〜1527.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지족당(知足堂)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516년(중종11)에 문한(文翰)의 제일인자로 인정받아 홍문관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1519년에 심정(沈貞)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趙光祖), 김정(金淨) 등 신진사림파를 숙청한 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죽은 뒤 문경(文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나 사림파의 세력이 강해지자 그들의 탄핵을 받아 1558년(명종13)에 관작과 함께 삭탈당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하였으나, 사화를 일으킨 인물이어서 후대 사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저서로는 유자광전(柳子光傳)지정집이 있다.

24)당숙(堂叔)인 이기(李):양성이씨세보(陽城李氏世譜)에 의하면 이기는 삼탄의 당숙이 아니라 백부(伯父)이다. 삼탄의 할아버지인 이사근(李思謹)의 장남은 이기, 차남은 이온(李蒕), 삼남은 이애(李藹), 사남은 이진(李蓁), 오남은 이음(李蔭)이며, 이온의 장남은 승주(承周), 차남은 승소(承召), 삼남은 승려(承呂)이다.

25)관시(館試)와……차지하였다:관시는 성균관에서 치르는 과거 시험이고, 예위(禮闈)는 예조에서 주관하는 시험이며, 전시(殿試)는 어전(御殿)에서 치르는 시험이다.

26)집현록(集賢錄):후대의 홍문록(弘文錄)과 같은 것으로, 집현전의 벼슬아치를 뽑을 때 집현전의 관원들이 각각 뽑을 사람의 이름 아래에 권점(圈點)을 찍어 그 점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뽑은 다음, 그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놓은 책을 말한다. 집현전에 결원이 생겼을 때에는 이조에서 이 책에 기록된 자들 가운데 세 사람을 추천하면, 임금이 낙점하여 뽑는다.

27)회간왕(懷簡王):세조(世祖)의 장자(長子) 이장(李暲)에게 명나라에서 내려준 시호(諡號)이다. 성종(成宗)의 생부로, 나중에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었다. 이장은 1455년(세조1)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457년에 죽었다. 그 뒤 성종이 즉위하자 1472년(성종3)에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이라 추숭하고 연경궁(延敬宮)에 별묘(別廟)를 지어 월산대군(月山大君)으로 하여금 봉사(奉祀)하게 하였으며, 이어 시호를 의경왕(懿敬王)이라 하고 능호(陵號)를 경릉(敬陵)이라고 하였다. 삼탄집 권12에 이에 대한 헌의(獻議)가 나온다.

28)정동(鄭同):황해도 신천(信川) 사람으로 세종(世宗) 때 중국에서 화자(火者)를 바치라고 요구해 옴에 따라 조공(朝貢)으로 바쳐져 중국에 들어가 선종(宣宗)을 모신 환관(宦官)으로서 태감(太監)의 지위에까지 오른 인물인데, 우리나라와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사신이 중국에 가게 될 경우에는 정동을 통해서 중국 조정과 통하였는데, 정동은 가끔 뇌물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나, 모든 일에 성심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위하여 주선하였다. 또한 중국 측에서도 정동을 네 차례나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었다. 첫 번째는 1469년(예종1)에 제사(祭祀)와 시호(諡號) 및 부의(賻儀)를 하사하는 사신으로 왔고, 두 번째는 1480년(성종11)에 백금(白金)과 문기(紋綺)를 하사하는 사신으로 왔으며, 세 번째는 1481년에 계비(繼妃)를 책봉한 데 대한 고명(誥命)을 하사하는 사신으로 왔고, 네 번째는 1483년에 세자를 책봉하는 사신으로 왔다. 정동은 명나라에서 병들어서 졸하였는데, 황제가 특별히 우리나라로 귀장(歸葬)하게 하였다. 삼탄집에는 정동에 관한 시가 여러 편이 나온다. 海東繹史 卷70 人物考 名宦

29)한씨(韓氏)의……되었으니:한씨 가운데 중국에 들어가 황제의 후비(后妃)가 된 여인이 세 사람이 있으므로 한 말이다. 첫 번째는 명나라 태조(太祖)의 비(妃) 한씨(韓氏)로, 함산공주(含山公主)를 낳았는데, 언제 뽑혀 들어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두 번째는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한영정(韓永矴)의 딸이 영락(永樂) 15년(1417, 태종17)에 뽑혀 들어가 태종(太宗)의 여비(麗妃)가 되었으며, 세 번째는 선덕(宣德) 3년(1428, 세종10)에 역시 한영정의 딸이 선발되어 들어가 선종(宣宗)의 공신부인(恭愼夫人)이 되었다. 명신록(名臣錄)에 이르기를, “여비의 오라비인 한확(韓確)은 나이 19세 때 태종이 불러 경사(京師)에 갔는데, 태종이 특별히 총애하면서 우대해 광록소경(光祿少卿)을 제수하였다. 우리 세종이 선위(禪位)를 받자, 한확이 책봉 정사(冊封正使)가 되어 나왔는데, 황제의 칙지로 인해 드디어 머무른 채 돌아가지 않았으며, 부사(副使)로 왔던 유천(劉泉)이 복명(復命)하였다. 그 뒤에 다시 소명(召命)을 받고 경사로 갔는데, 인종(仁宗)의 딸에게 장가들이려 하자 노모(老母)가 계시다는 이유로 사양하여 장가들지 않았다.” 하였다. 海東繹史 卷70 人物考 后妃

30)이른바……것: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있으면 자신의 더러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사람인 위개(衛玠)의 풍신(風神)이 아주 빼어났었는데, 그의 외삼촌인 표기장군(驃騎將軍) 왕제(王濟)가 위개를 볼 때마다 말하기를, “주옥이 곁에 있으면 나의 더러운 모습을 깨닫게 된다.” 하였다. 晉書 卷36 衛玠列傳

31)대문……만하였으므로:문호(門戶)가 쇠락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청탁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사기(史記) 권120 급정열전(汲鄭列傳)에 이르기를, “처음에 적공(翟公)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적에는 문정에 빈객이 그득하였는데, 관직을 잃자 문정이 쓸쓸하여 새그물을 펼칠 만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복직되자 빈객들이 찾아오려고 하니, 적공이 대문에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을 알겠고, 한 번 가난해지고 한 번 부자가 되는 데에서 교제하는 태도를 알겠으며, 한 번 귀해지고 한 번 천해지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이 드러난다.’ 하였다.” 하였다.

32)예겸(倪謙):중국의 한림원 시강(翰林院侍講)으로, 1450년(세종32)에 공과 급사중(工科給事中) 사마순(司馬恂)과 함께 명나라 경제(景帝)의 등극 조서(登極詔書)를 반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나왔던 인물인데, 그가 지은 요해편(遼海編)에는 우리나라의 여러 사람들과 화답한 시와 작별할 때 지어준 시가 수록되어 있다.

33)죽백(竹帛):옛날에는 글을 대쪽이나 헝겊에 썼는바, 사서(史書)나 서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34)노래자(老萊子)의 춤: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추는 춤을 말한다. 옛날에 초(楚)나라의 효자(孝子)인 노래자가 일흔 살의 나이가 되어서도 두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하여 어린애처럼 색동저고리를 입고서 춤을 추었으며 새 새끼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놀았다. 北堂書鈔 卷129

35)공거(貢擧):지공거(知貢擧)로, 시관(試官)을 말한다.

1)반곡(盤谷):태항산(太行山)의 남쪽 제원현(濟源縣)에 있는 골짜기인데, 골짜기가 깊고 산세(山勢)가 험준해서 은자(隱者)가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한다. 당(唐)나라 때 문신으로 한유(韓愈)의 벗이기도 한 이원(李愿)이 이곳에 숨어 살았다. 韓昌黎集 補遺 送李愿歸盤谷序

2)시내와……같다네:시경 대아(大雅) 한혁(韓奕)에 이르기를, “아주 즐거운 한나라 땅이여, 시내와 못이 매우 크고 너르네.[孔樂韓土 川澤訏訏]” 하였다.

3)부온(富媼):지신(地神)을 말한다.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이르기를, “후토(后土)의 부온이 삼광(三光)을 밝힌다.” 하였는데, 그 주에 “온(媼)은 노모(老母)를 칭하는 말인데, 땅[坤]이 어머니[母]가 되므로 온이라 한다.” 하였다.

4)이의(二儀):천지(天地)를 가리키기도 하고 일월(日月)을 가리키기도 한다.

5)양후(陽侯):전설 속에 나오는 파도의 신이다.

6)감일(坎一):감(坎)은 8괘(卦)의 하나로서 물을 나타내는바, 여기서는 원천(源泉)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周易 說卦傳

7)손목(巽木):손(巽)은 8괘(卦)의 하나로서 나무를 나타내는바, 여기서는 나무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周易 說卦傳

8)영위(榮衛):의학 용어로, 영(榮)은 혈(血)이 순환하는 것을 말하고, 위(衛)는 기(氣)가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9)삼팽(三彭):삼시신(三尸神)으로, 병마가 찾아드는 것을 말한다. 도가(道家)의 설에 의하면, 사람 몸속에 빌미를 일으키는 세 신이 있어 이를 삼시신이라고 하는데, 경신일(庚申日)마다 사람의 잘못을 천신에게 아뢰면 천신이 그 사람의 수명을 줄인다고 한다.

10)어찔하게 하는 양약:병을 잘 낫게 하는 좋은 약을 말한다.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이르기를, “약이 어찔하도록 독하지 않으면 그 병을 고칠 수 없다.” 하였다.

11)수역(壽域):사람마다 모두 천수(天壽)를 누리는 태평성대를 말한다.

12)요명(窈冥):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그윽하고 깊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그윽하고 아스라함이여, 그 속에 도(道)가 있도다.[窈兮冥兮 其中有精]” 하였는데, 요명에 대해 하상공(河上公)의 주(注)에서는 형체가 없는 도(道)의 모습이라고 하였고, 왕필(王弼)의 주에서는 심원하여 볼 수 없는 모양이라고 하였다.

13)신농씨(神農氏)가……검증하였고:신농씨는 전설 속에 나오는 삼황(三皇)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편(赭鞭)이라는 채찍을 가지고 백초의 성질과 맛을 검증하여 식용(食用)과 약용(藥用) 등을 구별하였다고 한다.

14)편작(扁鵲):주(周)나라 때의 의원으로, 대표적인 명의(名醫)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15)오악(五岳):중국의 다섯 명산으로, 태산(泰山), 숭산(嵩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을 가리킨다.

16)항해(沆瀣):한밤중에 생겨나는 감로(甘露)로, 선인(仙人)들이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17)지화(至和):천지 사이에 있는 상서롭고 따사로운 기운을 말한다.

18)호생(好生)하는 뜻:만물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뜻을 말한다.

19)피부……거고:열어구(列禦寇)는 열자(列子)의 이름이다. 열자는 전국 시대 정(鄭)나라 사람으로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도를 숭봉했으며, 열자를 지었다. 신분(神瀵)은 호령산(壺領山)에 있다고 하는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신령스러운 샘물을 말하는데, 그 샘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에 광택이 돈다고 한다. 列子 湯問

20)고질이던……거네:위징(魏徵)은 당나라 태종 때의 공신이자 명신으로, 많은 치적을 남긴 인물이다. 당나라 정관(貞觀) 6년에 태종이 섬서(陝西)의 구성궁(九成宮)에서 피서를 하다가 물맛이 단 샘물을 찾아내고는 샘의 이름을 예천(醴泉)이라고 붙이고 위징에게 명하여 명(銘)을 짓게 하고 구양순(歐陽詢)에게 명해 돌에 써서 새기게 하였다.

21)정국공(鄭國公):당나라 위징(魏徵)의 봉호이다.

22)천 년……시기:성인(聖人)이 태어날 시기라는 말이다. 황하(黃河)의 물은 본디 탁하여서 맑을 때가 없으나 천 년마다 한 차례씩 맑아지는데, 이는 성인이 태어날 조짐이라고 한다.

23)취화(翠華):임금이 행차할 때 가지고 가는 깃발로, 물총새의 깃털로 장식한다. 전하여 어가(御駕)를 뜻한다.

24)탕반(湯盤):스스로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탕 임금이 목욕하는 그릇에 “참으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 새롭게 하며, 또다시 날로 새롭게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는 명(銘)을 새겨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大學章句 傳2章

25)주나라의……하리:주나라의 왕은 문왕(文王)을 가리키는데, 문왕은 97세까지 수를 누렸다. 작인(作人)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고무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역복(棫樸)에 이르기를, “주나라의 왕께서 수를 누리시니, 어찌 사람들을 진작하지 아니하겠나.[周王壽考 何不作人]” 하였다.

26)고 태상(高太常):태상박사(太常博士) 고윤(高閏)으로, 1457년(세조3)에 명나라 영종(英宗)이 복위(復位)한 데 대한 등극 조서(登極詔書)를 반포하기 위하여 정사(正使)인 진감(陳鑑)과 함께 부사(副使)로 나왔다. 이때 삼탄은 접반사(接伴使) 박원형(朴元亨)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함께 가서 접빈하였다.

27)훤당(萱堂):훤(萱)은 원추리로, 흔히 다른 사람의 어머니를 칭할 적에 이 풀을 끌어다가 쓰는바, 어머니가 있는 집을 말한다.

28)조치규(趙稚圭):조근(趙瑾:1417〜1475)으로, 치규는 그의 자이다. 본관은 양주(楊州)로, 조말생(趙末生)의 아들이다. 예조와 형조의 참의, 강원도 관찰사, 전주 부윤 등을 지냈다. 문장이 뛰어나고 해서(楷書)에 능하여 외교 문서와 전적(典籍)의 작성에 공헌이 컸다.

29)장수유식(藏修游息):장수는 항상 학문을 닦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유식은 정해진 과정에 따라 학문을 닦는 이외의 쉬는 시간에도 학문에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한다.

30)육예(六藝):선비로서 배워야 할 여섯 가지 일로,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가리킨다.

31)기쁜……떴네:좋은 소식이 있을 조짐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옛날 관상을 보는 법에 누런색은 대표적인 기쁜 기운으로, 이 기운이 이마 위에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길한 일이 있을 조짐으로 보았다.

32)의복(倚伏):화(禍)와 복(福)이 서로 원인이 되어 변천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老子)58장에 이르기를, “화는 복이 기대어 있는 바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바이다.” 하였다.

33)산……알았네:예순의 나이를 살았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대부인 거백옥(蘧伯玉)이 쉰 살 때 마흔아홉 살이 되기까지 행한 잘못을 알고 고쳤다고 하는 데서 따온 말이다. 論語 憲問 集註

34)삼괴(三槐) 육극(六棘):삼공(三公)과 육경(六卿)을 말한다. 옛날 주(周)나라 때에 외조(外朝)에다 회화나무와 가시나무를 심어 조신(朝臣)들이 서는 자리를 만들었다. 주례(周禮) 추관(秋官)에 이르기를, “왼편 구극(九棘)이 있는 곳에는 고(孤)․경(卿)․대부(大夫)가 자리하고, 오른편 구극이 있는 곳에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이 자리하며, 앞 삼괴가 있는 곳에는 삼공이 자리한다.” 하였다.

35)해로(薤露)……노래하누나:해로는 아침에 맺히는 이슬을 말하는데, 흔히 상여를 따라가면서 부르는 만가(挽歌)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고금주(古今注) 중권(中卷)에 이르기를, “해로는 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소리이다. 전횡(田橫)의 문인(門人)에게서 나왔는데, 전횡이 자살하자 문인들이 슬퍼하여 그를 위해 비가(悲歌)를 지은 것으로, 사람의 목숨이 풀잎의 이슬방울같이 쉽게 사라짐을 노래한 것이다.” 하였다.

36)대들보 달[梁月]:친구를 생각하는 정이 간절한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당나라 두보(杜甫)가 강남(江南)에 유랑하는 이백(李白)을 생각하여, 그의 꿈을 꾸고 지은 시인 몽이백(夢李白)에 이르기를, “달빛이 들보에 가득 비추니, 흡사 그대 안색을 본 듯하오.[落月滿屋梁 猶疑見顔色]” 하였다.

37)영통사(靈通寺):장단(長湍)의 오관산(五冠山)에 있는 절이다.

38)주역……끊기고:부지런히 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말년에 역경(易經)을 좋아하여 많이 읽은 탓에 역경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39)하루……쓰소서:증자(曾子)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해 주면서 충성스럽지 못하였는가? 붕우와 사귀면서 성실하지 못하였는가? 전수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았는가?” 하면서, 자신에 대해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하였다고 하였다. 論語 學而

40)소진(蘇秦)은……났는데:전국 시대 유세객(遊說客)인 소진이 처음에 진(秦)나라에 가서 벼슬을 구하면서 진왕에게 글을 열 번 올렸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진나라를 떠나 초췌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괄시하였다. 그 뒤에 다시 제(齊), 초(楚) 등 7국에 유세하여 합종(合從)하게 하고는 6국의 재상이 되어 6국의 재상인(宰相印)을 한꺼번에 차고 다녔다. 戰國策 秦策1

41)묵적(墨翟)은……없었네:전국 시대 송나라의 사상가인 묵적은 겸애설(兼愛說), 숭검설(崇儉說), 비공설(非攻說) 등을 주창하면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돌아다니느라 거처하는 집에 구들이 검게 그을릴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戲)에 이르기를, “공자의 앉은 자리는 따스해질 겨를이 없었고, 묵적의 구들은 검어질 겨를이 없었다.[孔席不暖 墨突不黔]” 하였다. 文選 卷45

42)막고야산(藐姑射山)……희디희다네:막고야산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산 이름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이르기를, “먼 곳에 있는 막고야산에 선인이 살고 있는데, 살갗은 얼음이나 눈과 같고 나긋나긋하기는 어린 여자와 같으며,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부리면서 사해(四海) 밖에 노닌다.” 하였다.

43)제어액(䱥魚額):제어라는 물고기의 이마 부분을 말하는데, 전하여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말한다. 제어는 남월(南越) 지방에서 나는 물고기인데, 길이가 5, 6촌가량 되며, 맛이 아주 좋아서 그 지방 사람들이 몹시 좋아하므로 세속에서 말하기를, “차라리 여러 대 동안 살아온 집은 버릴지언정, 제어 고기 이마는 버릴 수 없다.[寧去累世宅 不去䱥魚額]” 하였다. 異魚圖贊箋 卷3

44)매 밤마다……하리:세월이 가고 좋은 경치가 사라지는 것이 애석하므로 제때에 미쳐 실컷 놀아야 한다는 말이다. 고시(古詩)에 이르기를, “낮은 짧은 데다 긴 밤이 괴로우니, 어찌 촛불 잡고 놀지 않겠느냐.[晝短苦夜長 何不秉燭遊]” 한 데서 온 말이다.

45)주문(朱門):붉은 칠을 한 대문으로, 부귀한 사람의 집을 가리킨다.

46)백원(白猿):전설 속에 나오는 검술(劍術)이 뛰어난 사람이다.

47)천교(天驕):하늘이 낸 교만한 자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북방의 오랑캐를 부르는 말이다. 한서(漢書) 권94 흉노전(匈奴傳)에 이르기를, “북방 오랑캐는 하늘이 낸 교만한 자들이다.[胡者 天之驕子也]” 하였으며, 두보(杜甫)의 시에 이르기를, “화문 땅의 교만한 자들, 고기 먹고 호기 부리네.[花門天驕子 飽肉氣勇決]”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7 留花門

48)농수(隴水):섬서성(陝西省)의 농현(隴縣) 서북쪽에 있는 농산(隴山)에서 발원하는 물인데, 이 지역은 중국 서쪽 변경의 요해처이므로 흔히 변경 지방에 있는 물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49)채련곡(採蓮曲):연밥을 따는 모습을 읊은 노래로, 악부(樂府)의 청상곡(淸商曲) 가운데 하나이다. 그 내용은 주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50)약야계(若耶溪):중국 절강성(浙江省) 회계현(會稽縣) 동남쪽에 있는 시내 이름인데, 춘추 시대 월나라의 미녀 서시(西施)가 그곳에서 빨래를 하였다 하여 아름다운 여인들이 모여 노니는 물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51)새……되리:좋은 활이 감춰진다는 것은 본디 임금이 큰 공을 이룬 다음에 함께 일하였던 공신(功臣)을 죽이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참새들이 모두 죽어 없어져서 활을 쓸 일이 없게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전국 시대 월(越)나라 사람인 범려(范蠡)가 말하기를, “하늘을 나는 새가 다 떨어지면 좋은 활이 창고 속에 들어가게 되고, 약삭빠른 토끼가 다 죽으면 잘 달리는 사냥개를 삶게 된다.” 하였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52)너희……알겠니:참새는 붕새의 뜻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양각풍(羊角風)은 회오리바람을 말한다. 장자 소요유에 이르기를,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이 물고기는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으며, 이것이 변하면 붕(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그 날개의 길이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붕새가 남쪽 바다에서 옮겨갈 때에는 물을 3천 리를 치고 힘차게 날아올라 한 번의 날갯짓에 9만 리를 날아간다.” 하였다.

53)권사룡(權士龍)……읊다:권사룡과 하응천(河應千), 최운장(崔雲章)은 자세하지 않으며, 성화중(成和仲)은 성간(成侃:1427〜1456)이다. 성간은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화중, 호는 진일재(眞逸齋)이다. 유방선(柳方善)의 문인으로, 경사(經史)는 물론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도 두루 섭렵하여 문장(文章), 기예(技藝), 음률(音律), 복서(卜筮) 등에 밝았다. 저서로는 진일재집이 있다. 흥덕사(興德寺)는 서울 동부(東部) 연희방(燕喜坊)에 있던 절인데, 주위에 연못이 있었다.

54)압록(鴨綠):오리의 머리에 있는 푸른빛을 말한다.

55)청루(靑樓):푸른색으로 칠해 아름답게 장식한 누각으로, 전하여 기원(妓院)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56)해어화(解語花):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으로, 꽃과 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킨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태액지(太液池)에 천엽백련화(千葉白蓮花)가 활짝 피었을 때 귀척들과 주연을 베풀고 그 꽃을 완상하다가 좌우 신하들에게 양 귀비(楊貴妃)를 가리키며 이르기를, “어찌 말할 줄 아는 나의 이 꽃만이야 하겠느냐.[爭如我解語花]”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說郛 卷52上

57)오아(吳兒)……간장:오아는 진(晉)나라 때 오(吳) 땅의 은사(隱士)인 하통(夏統)을 가리킨다. 하통이 일찍이 낙양(洛陽)의 물 위에서 가충(賈充)과 어울려 노닐 적에, 가충이 미녀들을 실은 배로 하통의 배 주위를 세 겹이나 둘러싸게 하였다. 그런데도 하통이 여전히 단정하게 앉아 미동도 하지 않자, 가충이 “이 오아는 정말 목인(木人)이요, 석심(石心)이다.” 하면서 탄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夏統

58)무장공자(無腸公子):창자가 없는 공자라는 뜻으로, 게의 별칭이다.

59)뱃속……것:게가 알을 잔뜩 품고 있는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60)장륙술(藏六術):거북이가 머리와 꼬리, 네 발 등 여섯 부분을 자신의 껍데기 속에 숨기는 것을 말하는데, 전하여 선비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시골에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61)거품……다투누나:게가 흰 거품을 내뿜는 것이 마치 구슬을 토해 내는 것과 같음을 형용한 것이다. 교읍경(鮫泣瓊)은 교인(鮫人)들이 눈물을 흘려 만들어 내는 구슬로, 전설에 의하면 남해의 바다 속에는 교인이라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데, 이들은 베를 잘 짜며,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이 진주가 된다고 한다.

62)소선(蘇仙)은……좋아하였구나:소선은 송나라의 시인인 소식(蘇軾)을 말하고, 게 눈[蟹眼]은 차가 막 끓기 시작할 때 마치 게의 눈처럼 자잘하게 일어나는 기포(氣泡)를 말한다. 소식의 시원전다(試院煎茶) 시에, “게의 눈을 이미 지나서 고기 눈이 나오니, 설설 소리가 솔바람 소리와 흡사하구나.[蟹眼已過魚眼生 颼颼欲作松風鳴]” 하였다.

63)포단(蒲團):부들로 만든 둥근 방석을 말하는데, 흔히 승려들이 좌선할 때나 예배할 때에 사용한다. 이해에 삼탄은 진사시에 급제하고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백씨인 이승주(李承周)는 영통사(靈通寺)에서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

64)색동옷을……건: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면서 헌수(獻壽)하는 것을 말한다. 23쪽 주34 참조.

65)사마상여(司馬相如)……영광:벼슬길에 나아가 공명을 이루는 영광을 말한다. 사마상여는 한(漢)나라 때의 문장가이고, 사마(駟馬)는 말 네 마리가 끄는 수레이다. 한나라 성도(成都)의 북쪽에 승선교(升仙橋)란 다리가 있었는데, 사마상여가 처음 장안(長安)에 들어가서 공명을 구할 적에 이 다리를 지나면서 다리 기둥에 제하기를, “말 네 마리가 끄는 높은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다시 건너오지 않겠다.” 하였는데, 뒤에 사마상여는 높은 자리에 올라 사마를 타고 이 다리를 다시 건넜다. 太平御覽 卷73

66)살……고달프며:늘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당나라 섭이중(聶夷中)의 상전가(傷田家) 시에, “이월에 새 고치실을 미리 팔고, 오월이면 새 곡식 미리 팔아 세금 바쳐, 우선 눈앞의 부스럼은 고치지만, 도리어 심장의 살을 도려내누나.[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醫得眼前瘡 剜却心頭肉]” 하였다.

67)아들……끊어내네:한유의 부강릉도중(赴江陵道中) 시에, “아들 팔아 쌀 한 말과 바꾸고서는 대꾸조차 아니 하고 훌쩍 떠나네.[持男易斗粟 掉臂莫肯酬]” 하였다. 韓昌黎集 卷1

68)중양절에……오르다:중양절은 9월 9일을 말하는데, 이날은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는 풍습이 있다.

69)머리……꽂았도다:중양절에 수유(茱萸)를 머리에 꽂으면 삿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70)강장(康莊):강구(康衢)와 같은 뜻으로, 번화한 거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서울 거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아(爾雅) 석궁(釋宮)에, “오달(五達)의 길을 강(康)이라 하고, 육달(六達)의 길을 장(莊)이라 한다.” 하였다.

71)허공에다……했네:속마음이 불평스러우면서도 밖으로는 표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은호(殷浩)가 중군장군(中軍將軍)이 되었다가 남의 모함을 입어 신안(信安)으로 쫓겨났는데, 밖으로는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이 없이 평상시와 같이 담소하였으나, 매일처럼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대고 무슨 글자를 썼다. 이에 사람들이 몰래 엿보니 ‘돌돌괴사(咄咄怪事)’라는 글자를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한다. 世說新語 黜免

72)회음후(淮陰侯)가……기자:한순간의 굴욕을 참는 것을 말한다. 회음후는 한(漢)나라의 명장(名將)으로 회음후에 봉해진 한신(韓信)을 가리킨다. 한신이 처음에 미천할 적에 회음(淮陰)의 시장에 나갔더니 시장의 무뢰배들이 한신을 모욕하면서 가랑이를 벌리고 서서, “네가 차고 있는 칼로 나를 찌르든가, 그렇지 않으면 나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하니, 한신이 그를 바라보다가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그러자 시장 사람들이 모두 한신을 보고 비겁하다고 비웃었다. 그 뒤에 한신이 초왕(楚王)이 된 뒤에 그 소년들을 불러서 “그때에 한칼로 죽이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죽이는 것이 명분이 없었으므로 내가 참은 것이다.” 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73)성 진사(成進士):성임(成任:1421〜1484)을 가리키는 듯하다. 성임은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경(重卿), 호는 일재(逸齋)․안재(安齋)이다. 지중추부사 성염조(成念祖)의 아들이다. 1438년(세종2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47년에 식년(式年) 문과(文科)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제수되었다. 삼탄보다 한 살 위였으며, 같은 해에 사마시에 급제해 아주 친하게 지냈다.

74)초복(初服):입사(入仕)하기 전에 입는 옷으로, 벼슬길에 나오기 전을 말한다.

75)삼소(三蘇):북송(北宋) 시대의 문장가였던 소순(蘇洵)과 그의 아들인 소식(蘇軾), 소철(蘇轍) 형제를 합칭한 말이다.

76)적벽부(赤壁賦):소식이 7월 기망(旣望)에 적벽(赤壁) 아래에서 배를 띄우고 놀면서 지은 부로, 천고의 명문으로 칭해진다.

77)어찌……다르랴:중달(仲達)은 위(魏)나라의 장수로 지략에 뛰어났던 사마의(司馬懿)의 자(字)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죽으면서 양의(楊儀)에게 뒷일을 부탁하여 그대로 행하였더니 사마의가 제갈량이 살아 있는 것으로 여기고 도망을 쳤다.

78)못가에서……배우니:서법(書法)을 부지런히 익혔다는 뜻이다. 후한의 명필가로 초서(草書)에 특히 뛰어났던 장지(張芝)가 처음에 최원(崔瑗)과 두도(杜度)에게 서법을 배웠는데, 못가에서 글씨 쓰는 법을 연습하여 못물이 검게 변하였다고 한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79)초서(草書)……빨랐네:글씨가 아주 뛰어났다는 뜻이다. 놀란 뱀은 필묵(筆墨)이 날아 춤추는 듯한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초서를 잘 쓰는 것을 형용할 때 흔히 ‘놀란 뱀과 전갈 꼬리[驚蛇蠆尾]’라는 말로 표현한다.

80)가군(家君)께서……있었거니와:가군은 성임의 아버지인 성염조(成念祖)를 가리키는 듯한데, 성염조는 문형(文衡)을 지낸 일이 없는바, 여기서는 대제학을 지낸 것이 아니라 당시의 문단을 주도하였다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81)큰 집……쓰이었다네:나라의 중요한 글을 모두 지었다는 뜻이다. 동진(東晉)의 왕순(王珣)이 재학(才學)과 문장으로 효무제(孝武帝)의 총애를 받아 상서성(尙書省)의 고위직에 있을 때 어느 날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서까래처럼 큰 붓을 줬는데, 꿈을 깨고 옆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는 필시 큰 문장을 지을 일이 있을 징조이다.”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효무제가 죽었는데, 효무제의 애책(哀冊)과 시의(諡議)를 왕순이 모두 맡아 지었다. 晉書 卷65 王珣列傳

82)여경(餘慶)……오리라:조상들이 선행을 베푼 덕분으로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란 뜻이다. 여경은 조상의 적선(積善)에 대한 보답으로 후손이 경사(慶事)를 받는 것을 말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하였다.

83)연벽(連璧):두 개의 아름다운 구슬이 서로 이어졌다는 말로, 흔히 형제가 똑같이 뛰어난 것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성임(成任)․성간(成侃)․성현(成俔) 형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84)양관곡(陽關曲):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를 말한다. 양관은 중국 돈황(燉煌)이다. 이곳은 아주 먼 곳이므로, 흔히 이곳으로 떠나는 사람을 송별하는 노래인 양관삼첩곡(陽關三疊曲)은 이별을 슬퍼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칭해졌다.

85)청녀(靑女):서리와 눈을 주관하는 전설 속의 여신으로,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이르기를, “삼추(三秋)가 되면 청녀가 나와서 서리와 눈을 내린다.” 하였다.

86)황차……데이랴:양양(襄陽)은 성당(盛唐) 시대 양양 출신의 시인인 맹호연(孟浩然)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삼탄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맹호연은 젊어서부터 절의(節義)를 숭상하여 일찍이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어서야 장구령(張九齡)의 부름을 받고 형주 종사(荊州從事)가 되었으나, 그 후 등창이 나서 신음하다가 죽었다. 그가 지은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 시에 이르기를, “재주가 없으니 명군도 날 버리고, 병이 많으니 친구도 소원해진다.[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 하였다. 新唐書 卷203 文藝列傳下 孟浩然

87)물고기를……탔네:사리에 맞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물고기는 본시 물에서만 사는 것인데 나무에 올라가서 고기를 찾는다면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래서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는 것이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이르기를, “그러한 행위로 그러한 욕망을 구한다면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같다.” 하였다.

88)봉장단(封將壇):대장을 임명하는 의식을 거행할 때 만들어 놓는 단으로, 옛날 한나라 때 고조(高祖)가 한신(韓信)을 대장으로 임명하면서 특별히 단을 만들고서 의식을 거행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89)함양(咸陽)……했네:진(秦)나라가 망하게 되자 천하의 영웅들이 앞 다투어 일어나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함양의 사슴은 진나라 이세(二世) 황제 호해(胡亥)를 가리키고, 망이궁(望夷宮)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경양현(涇陽縣) 동남쪽에 있는 궁궐인데, 진나라의 간신 조고(趙高)가 이세와 함께 이곳으로 가 있다가 이세를 살해하였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90)코 큰 사람:한 고조 유방(劉邦)을 가리킨다. 유방의 코가 유난히도 높았으므로 융준공(隆準公)이라고 불렀다.

91)삼척(三尺):삼척수(三尺水)와 같은 말로, 검(劍)을 가리키는데, 좋은 칼의 빛이 가을 물 같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당나라 이하(李賀)의 춘방정자검자가(春坊正字劍子歌)시에 이르기를, “선배의 칼집 속의 삼척수는, 일찍이 오 연못에 들어가서 용자를 베었다네.[先輩匣中三尺水 曾入吳潭斬龍子]” 하였다.

92)흰색……내던지자:한 고조가 일찍이 술에 취해 길을 가다가 길을 막고 있는 흰 뱀을 칼로 쳐서 죽였다. 그날 밤 어떤 노파가 길에서 울고 있다가 말하기를, “흰 뱀은 나의 아들로 백제(白帝)인데, 뱀으로 화해 있다가 적제(赤帝)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는데, 백제는 진나라를 가리키고, 적제는 한나라를 가리킨다. 漢書 卷1上 高帝紀

93)맘……참았다네:진나라의 함양이 함락되기 전에 한 고조와 항우(項羽)가 서로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이 황제가 되기로 약속하였다. 그 뒤에 한 고조가 먼저 함양에 들어갔으나, 자신의 힘이 항우보다 못하다고 판단하여 억울함을 참고서 한중왕(漢中王)에 봉해진 다음 힘을 길렀다. 漢書 卷1上 高帝紀

94)초 원숭이[楚猴]:항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항우를 보고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워 놓은 것과 같다.[沐猴而冠]”라고 한 말에서 기인되었다. 史記 卷7 項羽本紀

95)그……했네:소하(蕭何)는 한 고조가 나라를 세우는 데에 으뜸가는 공을 세운 명신(名臣)이다. 치속도위(治粟都尉)는 한신을 가리킨다. 한신이 처음에 항우의 휘하에 있다가 도망하여 한왕(漢王)에게로 갔으나 별로 쓰이지 못하고 법에 걸려 참형을 받게 되었는데, 하후영(夏侯嬰)이 한신을 기이하게 여겨 석방하고 한왕에게 말하여 치속도위를 시켰다. 한 고조가 대장감을 뽑을 때 소하가 치속도위로 있던 한신을 천거하면서 “여러 장수들은 쉬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나, 한신 같은 이는 국사(國士)라 짝할 만한 사람이 없다.” 하자, 한 고조가 대장단(大將壇)을 설치하고 특별한 예를 베풀어서 한신을 대장에 제수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96)구지(九地):먼 변경 지방까지 포함하는 전체의 땅을 말한다.

97)물고기가……듯:어진 임금과 현명한 신하가 만난 것을 가리킨다.

98)강관(絳灌):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여 강후(絳侯)에 봉해진 주발(周勃)과 영음후(潁陰侯)에 봉해진 관영(灌嬰)을 가리키는데, 이들 역시 모두 명장이었다.

99) 항왕(項王)……뒤:항우(項羽)가 한나라 군사에게 마지막으로 패하고서 강동(江東)으로 가기 위해 오강(烏江)에 이르러서는, “내가 강동의 자제 8천 명을 거느리고 중원(中原)으로 왔다가, 지금 한 사람도 살아가지 못하는데 나 혼자서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겠는가.” 하고는,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100)새……치웠는가:임금이 큰 공을 이룬 다음에 함께 일하였던 공신(功臣)을 죽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45쪽 주51 참조.

101)대풍가(大風歌):한나라 고조(高祖)가 경포(黥布)의 반란을 평정한 뒤 자신이 자란 패읍(沛邑)에 돌아와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면서 직접 불렀다고 하는 노래로, 그 가사에 “대풍이 일어나니 구름이 날리누나. 위엄을 천하에 떨치고서 고향에 돌아왔네. 어찌하면 맹사들을 얻어서 사방을 지킬꼬.[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 하였다. 史記 卷8 高祖本紀

102)대루원(待漏院):본디는 당(唐)나라 때에 설치한 관아의 이름으로, 백관(百官)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참조(參朝)의 시각까지 기다리던 곳이다.

103)은전(銀箭):은으로 장식한, 시간을 표시하는 화살같이 생긴 침을 말한다.

104)화성(火城):궁정 안에 횃불이 죽 늘어서 있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때 원단(元旦)이나 동지(冬至)가 되면 크게 조회를 열면서 촛불 수백 개를 켜 두었는데, 이를 화성이라 하였다. 唐國史補

105)구첨(具瞻):여러 사람이 함께 우러러본다는 뜻으로, 재상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06)주공(周公)……걸:주공은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숙부로서 성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섭정을 하면서 성왕이 훌륭한 정사를 펴도록 잘 보좌한 인물이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주공은 삼왕(三王)을 겸하시고 사사(四事)를 시행하되, 합치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낮부터 밤까지 계속해서 생각하여 다행히 얻어지면 앉아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였다. 孟子 離婁下

107)중산보(仲山甫)가……걸:중산보는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의 명신이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에 이르기를, “엄숙한 왕의 명령을, 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도다. 나라의 선악을, 중산보가 밝히는도다. 이미 밝고 또 현철하여, 그 몸을 보전하는도다.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아서, 천자를 섬기는도다.[肅肅王命 仲山甫將之 邦國若否 仲山甫明之 旣明且哲 以保其身 夙夜匪懈 以事一人]” 하였다.

108)봉지(鳳池):옛날 당나라의 중서성(中書省)에 있던 봉황지(鳳凰池)로, 흔히 중서성의 별칭으로 쓰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의정부(議政府)의 별칭으로 쓰인다.

109)명량(明良):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를 말한다.

110)한때……뵈네:순 임금이 정사를 잘 펼치자 봉황이 와서 춤을 추어 축하한 일이 있었다. 서경 익직(益稷)에 이르기를, “소소(簫韶)가 구성(九成)이 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추어 축하하였다.” 하였다.

111)헌지(軒墀)에서 총애받은 학:헌지는 조정의 수레와 섬돌을 말하는데, 옛날 춘추 시대 위(衛)나라 의공(懿公)이 학 기르는 것을 좋아한 나머지 대부(大夫)나 탈 수 있는 수레에 학을 태우고 돌아다녔던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閔公2年

112)권아편(卷阿篇)의……시:권아편은 시경 대아(大雅) 권아를 말하는데, 이 시는 정교(政敎)가 화협(和協)하여 천하가 태평한 것을 읊은 시이다. 그 시에 이르기를, “봉황이 날아오르거니, 그 날개를 치는구나.[鳳凰于飛 翽翽其羽]”라고 하였다.

113)팔준도(八駿圖):팔준은 여덟 필의 준마(駿馬)를 가리키는데, 고려 말엽에 이성계(李成桂)가 혁명을 하던 무렵, 그에게 여덟 필의 준마가 있어 전공(戰功)을 세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에 그 일을 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1445년(세종27)에 안견(安堅)을 시켜 팔준도를 그리게 한 다음 집현전(集賢殿)의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찬(贊)을 짓게 하였다.

114)일덕(一德):순일(純一)한 덕을 일컫는다. 서경의 편명에 함유일덕(咸有一德)이 있다.

115)근양(覲揚):보고 드날리게 한다는 뜻이다. 주(周)나라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경계하면서 말하기를, “능히 왕의 전투복과 병기를 다스려서 우왕(禹王)의 옛 자취에 올라 사방 천하에 행해서 해외에까지 다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하시어, 문왕(文王)의 밝은 빛을 보시고, 무왕(武王)의 큰 공렬을 드날리소서.[其克詰爾戎兵 以陟禹之迹 方行天下 至于海表 罔有不服 以覲文王之耿光 以揚武王之大烈]”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立政

116)단서(丹書)와……함께하였다:단서는 붉은 글씨로 쓴 문서이고, 철권(鐵券)은 임금이 공신에게 내리는 철로 만든 패(牌)인데, 공신의 지위를 세습하여 향유하며 죄를 지어도 면죄해준다는 특권을 부여한 증명서이다. 漢書 卷1 高帝紀 대려(帶礪)의 맹세는 공신이 맹세하는 것으로, 황하(黃河)가 띠와 같이 가늘어지고 태산(泰山)이 숫돌처럼 작아질 때까지 영원히 나라와 함께 복을 누린다는 뜻이다. 史記 卷18 高祖功臣侯者年表

117)목야(牧野)……굳세었나:목야는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기현(淇縣) 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주 무왕(周武王)이 은(殷)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제후들과 군사를 합하여 주왕(紂王)의 군사를 대파하였던 곳이다.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이르기를, “목야가 넓고 넓으니, 박달나무 수레가 휘황하며, 네 필의 말이 건장하도다.[牧野洋洋 檀車煌煌 駟騵彭彭]” 하였는데, 이 시는 무왕이 상(商)을 정벌할 때의 정경을 표현한 시이다.

118)소릉(昭陵)……준마:소릉은 당나라 태종(太宗)의 묘(墓)로, 섬서성(陝西省) 예천(醴泉)의 구준산(九峻山)에 있다. 여섯 준마는 태종이 수나라를 정벌할 때 타고 다녔던 권모왜(拳毛騧), 십벌적(什伐赤), 백제오(白蹄烏), 특륵표(特勒驃), 삽로자(颯露紫), 청추(靑騅)의 여섯 마리 말인데, 당 태종이 친히 육마도찬(六馬圖贊)을 짓기까지 하였다.

119)닭을……업적: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한 업적을 말한다. 후량 말제(後梁末帝) 연간에 객상(客商) 왕창근(王昌瑾)이 저잣거리에서 거사(居士) 차림을 한 노인으로부터 고경(古鏡) 하나를 샀던바, 거기에 “상제가 아들을 진한․마한의 지경에 내려보내어,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칠 것이다.[上帝降子於辰馬 先操鷄後搏鴨]”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 닭은 경주(慶州)의 고호(古號)인 계림(鷄林)을 가리키고 오리는 압록강(鴨綠江)을 가리키므로, 즉 신라(新羅)를 차지한 다음에 압록강 유역을 정벌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高麗史 卷1 太祖世家1

120)곡령(鵠嶺)……솔:고려의 사직(社稷)을 가리킨다. 신라 말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흥할 것을 알고, 고려 태조에게 “곡령에 솔이 푸르고 계림엔 잎이 누르다.[鵠嶺靑松 鷄林黃葉]”라는 글을 올렸다.

121)진인(眞人)……잡았거니:진인은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가리키고, 삼척(三尺)은 검(劍)을 가리킨다. 삼척에 대해서는 58쪽 주91 참조.

122)조아(爪牙):맹수의 어금니와 발톱을 말하는데, 전하여 임금을 잘 보필하는 훌륭한 장수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123)용매(龍媒):준마(駿馬)를 가리킨다.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천마가 왔으니, 용이 오게 될 매개이다.[天馬徠龍之媒]”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24)이……구했고:멀리 장수를 보내어 좋을 말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뜻이다. 이사(貳師)는 한나라의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를 가리킨다. 한 무제(漢武帝) 때 이광리가 대완국(大宛國)을 정벌하면서 대완왕의 머리를 베고 한혈마(汗血馬)를 잡아 바쳤다. 漢書 卷6 武帝紀

125)이……아니했네:십 금(金)은 천 금의 잘못인 듯하다.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제(齊)나라에 패한 뒤에 어진 자를 초빙해 원수를 갚으려고 하자, 곽외(郭隗)가 아뢰기를, “어떤 나라의 임금이 천 금을 주고 천리마를 구하려고 하였으나 3년이 지나도록 얻지를 못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백 금을 주고 죽은 천리마의 머리뼈를 사 가지고 와서 보고하니, 임금이 몹시 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죽은 말도 오백 금을 주고 사는데, 하물며 산 말이겠습니까. 천하 사람들이 왕께서 말을 살 것이라고 여기고 천리마를 끌고 올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연 천리마 세 마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반드시 선비들을 오게 하고자 하신다면 먼저 부족한 저 곽외부터 잘 대우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이 곽외보다 더 어진 자들이 어찌 천리를 멀다고 여기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소왕이 곽외를 위하여 궁실을 개축하고 스승으로 섬기자, 악의(樂毅)가 위(魏)나라에서 오고, 추연(鄒衍)이 제(齊)나라에서 오고, 극신(劇辛)이 조(趙)나라에서 오는 등 선비들이 다투어서 연나라로 달려와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戰國策 燕策1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126)비유하면……것이네:한 시대에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감응하여 회합하였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현신 대신 좋은 말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였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 한 데서 온 말이다.

127)한 몸……만했거니:천리마는 덕을 칭하는 것이지 힘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옛말이 있는데, 태조가 타던 팔준마는 덕과 힘을 다 칭할 만하다는 뜻이다.

128)일각(日角):이마의 중앙 부분이 불쑥 튀어나와 해의 모양과 같은 것으로, 관상가(觀相家)는 이를 제왕(帝王)의 상으로 보았다.

129)창칼……답하였거니:운예(雲霓)는 구름이 끼면 비가 오고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뜬다는 뜻으로, 즉 비가 내리는 것을 말하는데, 전하여 무도한 나라를 정벌하여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탕(湯) 임금이 처음 정벌을 갈(葛)나라로부터 시작하니, 천하가 탕 임금을 믿어서, 동으로 향하여 정벌을 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으로 향하여 정벌을 하면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째서 우리를 뒤로 미루는고.’ 하여, 백성들이 탕 임금에게 기대하기를 마치 큰 가뭄에 비를 바라듯 했다.[湯一征 自葛始 天下信之 東面而征 西夷怨 南面而征 北狄怨 曰奚爲後我 民望之若大旱之望雲霓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梁惠王下

130)말……뒤부터는:고려 우왕 14년(1388)에 이성계가 우군 도통사(右軍都統使)로 요동(遼東) 정벌차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威化島)까지 이르렀다가, 시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다시 개성(開城)으로 회군(回軍)했던 사건을 말한다.

131)전청(甸靑):무슨 뜻인지 분명치 않다. 혹 청구전(靑丘甸)으로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132)영성(盈成) 경계:영성은 지영수성(持盈守成)의 준말로, 이루어놓은 것을 지킬 때에는 물이 가득 찬 그릇을 드는 것처럼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이 처음 나라를 세우는 것을 창업이라 하고, 자손이 계승하여 지키는 것을 수성(守成)이라 한다.

133)선계선술(善繼善述):선계는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하며, 선술은 어버이의 일을 잘 따라서 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는 효자일 것이다. 효란 것은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며, 어버이의 일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일 뿐이다.” 하였다. 中庸章句 第19章

134)우러러서……힘썼다네:선대에서 이루어놓은 업적을 잘 이어 나가기를 힘썼다는 뜻이다. 서경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이르기를, “그 아버지가 밭을 일구었거늘, 그 자식이 기꺼이 파종도 하려고 하지 않는데, 하물며 기꺼이 수확하려 하겠는가. 부로(父老)가 공경히 섬기는 자들이 기꺼이 ‘내 후손이 있으니 기업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겠는가.[厥父菑 厥子乃弗肯播 矧肯穫 厥考翼 其肯曰 予有後 弗棄基]” 하였는데, 이에 대해 서경집전(書經集傳)에 “고익(考翼)은 부로가 공경히 섬기는 자들이다.”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부로로 우대하여 존경하는 자’로 보아야 한다는 설도 있다.

135)구연(九淵):아홉 겹의 못으로, 아주 깊은 못을 말하는데, 흔히 용이 사는 곳을 말한다.

136)한구(汗溝)에선……흘렀으며:한구는 말의 흉․복부와 퇴부(腿部)가 서로 연결된 곳으로, 땀이 흘러내리는 부분인데, 명마(名馬)는 이곳에서 붉은 피 같은 땀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137)꽁무니는……같았다네:말의 엉덩이 부분이 튼실하여 꽁무니가 아주 깊숙하였다는 뜻이다. 음전(飮箭)은 화살이 화살 깃까지 깊이 박히는 것을 말한다.

138)정호(鼎湖)……없으니:정호는 하남성(河南省) 형산(荊山) 아래에 있는 지명(地名)이다. 황제(黃帝)가 일찍이 형산 아래서 솥[鼎]을 다 주조하고 나서 용을 타고 승천할 적에 군신과 후궁으로 함께 따라 올라간 자는 70여 인이었고, 여기에 함께 따라가지 못한 소신(小臣)들은 모두 용의 수염을 잡고 있다가 그것이 빠지는 바람에 모두 떨어져 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선왕(先王)인 태조를 그리는 뜻에서 한 말이다. 史記 卷12 孝武本紀

139)후삭(朽索):썩은 새끼줄로, 매우 위태로움을 뜻하는 말이다.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나는 백성을 대함에 있어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것처럼 두려움을 느끼나니, 남의 윗사람이 된 자가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予臨兆民 凜乎若朽索之馭六馬 爲人上者 奈何不敬]” 하였다.

140)미앙궁(未央宮):한나라 고조(高祖) 때 지은 궁전으로, 조현(朝見)을 하던 곳이다. 여기서는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을 뜻한다.

141)삼호(三呼):임금에게 경축하는 뜻으로 세 번 만세를 부르는 것을 말하는데, 황제의 경우에는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부르고, 우리나라 임금의 경우에는 ‘천세 천세 천천세’라고 부른다. 산호천세(山呼千歲)라고도 한다.

142)일찰(一札):임금의 친서(親書)를 말한다.

143)좋은……하고:좋은 잔치는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잔치를 말한다. 임금과 신하가 연회를 즐기면서 부르는 노래인 시경 소아(小雅) 초자(楚茨)에 이르기를, “악기를 모두 들여다 연주하여 뒤 복이 안정되게 한다.[樂具入奏 以綏後祿]” 하였다.

144)좋은 손님……보여주는구나:신하들에게 잔치를 후히 베풀어 화합을 도모하니, 신하들이 감복하여 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대도(大道)를 피력했다는 뜻이다. 시경 소아 녹명(鹿鳴)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여, 나에게 대도를 제시해주네.[人之好我 示我周行]” 하였다.

145)간우(干羽):고대에 춤추는 자들이 춤출 때 잡는 도구로, 문무(文舞)를 출 때에는 우(羽)를 잡고, 무무(武舞)를 출 때에는 간(干)을 잡는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이르기를, “제(帝)가 문덕(文德)을 크게 펼치니 양 섬돌 앞에서 간우를 추었다.” 하였다.

146)풍아(風雅):시경국풍(國風)소아(小雅)대아(大雅)를 말한다.

147)왕세자를……하례하다:왕세자는 단종(端宗)을 가리킨다. 단종은 1448년(세종30)에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문종 즉위년) 7월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452년 5월에 왕위에 올랐다.

148)용이……어루만지니:임금이 등극하였다는 뜻이다. 구오(九五)는 임금 자리를 뜻한다. 주역 건괘(乾卦)에,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九五飛龍在天 利見大人]” 한 데서 나온 말로, 천자의 자리를 뜻한다.

149)원량(元良)……책봉하였네:원량이나 저군(儲君)은 모두 태자(太子)나 세자(世子)를 가리키는 말이다.

150)작은……하네:하찮은 정성을 바친다는 뜻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미나리를 먹어보고 맛있다고 여겨 부자에게 이를 바쳤는데, 부자가 먹어보고는 맛이 쓰고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원망하였으므로 그가 몹시 무안해하였다. 列子 楊

151)삼성(三聖):태조(太祖), 정종(定宗), 태종(太宗) 세 임금을 말한다.

152)서로……맘이었네:한 맘은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전해주었다고 하는 심법(心法)인 유정유일(惟精惟一)을 말한다. 서경 대우모에 이르기를,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만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하였다.

153)단지……점쳤거니와:장수를 누릴 줄 알았다는 뜻이다. 천세(千歲)는 임금에게 경축하는 뜻으로 부르는 만세를 말한다.

154)팔음(八音):여덟 가지 재료, 즉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으로 만든 악기의 소리를 말한다. 여기서는 정악(正樂)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155)함령(含靈):영성(靈性)을 가진 존재인 인류를 말한다.

156)주(周)나라가……발하였다네:조선의 태조가 고려조에 덕을 쌓아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는 뜻이다. 주나라의 선조인 공류(公劉)가 상나라 때 빈(邠) 지방에 처음으로 옮겨 왔고, 그 뒤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岐山)으로 옮겨 와서 주나라의 기반을 닦았으며, 무왕(武王) 때에 이르러 상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157)인지(麟趾)……노래했거니:인지는 시경 주남(周南)의 편명인 인지지(麟之趾)를 말한 것으로, 공족(公族)의 번성함을 노래한 것이며, 공성(公姓)은 공족을 말한다. 주남 인지지에 이르기를, “기린의 이마여, 인후한 공성이니, 아, 이들이 기린이로다.[麟之定 振振公姓 于嗟麟兮]” 하였다.

158)초료(椒聊)……읊조리었네:초료시경 당풍(唐風)의 편명으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시이다. 그 시에 이르기를, “산초 열매 주렁주렁, 한 됫박을 채우고도 남네.[椒聊之實 蕃衍盈升]” 하였다.

159)구족(九族):위로 고조에서부터 곁으로 삼종형제에 미치고 아래로 현손에 이르기까지 석 달 복을 입는 친족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모든 친족을 뜻한다.

160)삼조(三朝) 봉양:하루에 세 차례 조현(朝見)하는 것으로, 예기 문왕세자(文王世子)에 이르기를, “문왕이 세자로 있을 적에는 왕계(王季)에게 매일 세 번씩 조현하였다.” 하였다.

161)빈천(賓天):하늘에 빈객 노릇을 하러 간다는 뜻으로, 전하여 임금이 죽는 것을 말한다.

162)보력(寶曆):천자가 반포하는 책력(冊曆)으로, 전하여 임금의 지위를 뜻한다.

163)요도(瑤圖):나라의 형세를 그린 판도(版圖)나 도적(圖籍)을 말하며, 또는 왕가(王家)의 족보(族譜)를 말한다.

164)우검(禹儉):우(禹) 임금의 검소함이란 뜻으로, 순(舜) 임금이 우 임금의 덕을 말하면서, “이리 오라, 우야! 홍수가 나를 경계시켰는데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룸은 너의 어짊이며, 나랏일에 부지런하고 집안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대단한 체하지 않음은 너의 어짊이다.[來 禹 洚水儆予 成允成功 惟汝賢 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 하였다. 또 우 임금이 8년 동안 밖에서 치수하면서 세 차례나 자기 집 문밖을 지난 일이 있었지만 한 번도 들르지 않았고, 아들 계(啓)가 태어나 응애응애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자식보다는 수토 평정을 위해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書經 大禹謨, 益稷

165)문모(文謨):문왕(文王)의 법이란 뜻으로 서경 군아(君牙)에 이르기를, “크게 나타났도다, 문왕의 법이여. 크게 계승하였도다, 무왕의 공이여.[丕顯哉 文王謨 丕承哉 武王烈]” 한 데서 나온 말이다.

166)교산(喬山):옛날에 황제(黃帝)를 장사 지낸 곳으로,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지역에 있다. 전하여 임금을 장사 지내는 곳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167)오복(五福)……응했고:오복은 서경 홍범(洪範)에 나오는 다섯 가지 복으로, 오래 사는 것[壽], 부유함[富], 안락함[康寧], 미덕을 닦는 것[攸好德], 늙어서 죽는 것[考終命]이다. 은나라가 망한 뒤 기자(箕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짓으로 미치광이가 되어 종노릇을 하고 있다가 숨어버렸는데, 무왕(武王)이 방문하자 홍범을 올리고 조선(朝鮮)에 봉해졌다. 書經 洪範 史記 卷38 宋微子世家

168)중화(重華):요 임금의 덕을 계승하여 거듭 광화(光華)를 발하였다는 뜻으로, 순(舜)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69)강공(康功):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공을 말한다.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훈계하기를, “문왕께서는 허름한 옷을 입고 백성을 편히 해주는 일과 농사일을 하셨습니다.[文王卑服 卽康功田功]” 한 데서 나온 말이다. 書經 無逸

170)맑은……했네:맑은 물음은 임금의 물음을 말한다. 추요(蒭蕘)는 꼴을 베고 나무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현명한 임금은 아무리 하찮은 사람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쓸 만한 말이 있으므로 이를 취한다고 한다.

171)주아(周雅):시경대아(大雅)소아(小雅)를 말하는데, 전하여 조정의 정악(正樂)을 가리킨다.

172)의관(衣冠)은……따라잡았네:한나라 조정 관원들의 복식과 전례(典禮), 제도를 따라잡았다는 뜻으로, 번성한 중국의 문물과 제도에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왕망(王莽)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가 다시 광복(光復)한 뒤에 유수(劉秀)가 보낸 관리들이 한관(漢官)의 의식(儀式)을 회복하니, 백성들이 감탄하여 말하기를, “오늘날에 한관의 위의(威儀)를 다시 볼 줄을 몰랐다.” 하였다. 後漢書 卷1 光武帝紀上

173)기형(璣衡)……조절하였고:기형은 서경 순전(舜典)에 나오는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데 쓰는 기계인 선기옥형(璿璣玉衡)의 약칭이다. 칠정(七政)은 일․월과 금․목․수․화․토 다섯 별인데, 춘․하․추․동․천문(天文)․지리(地理)․인도(人道)라는 설도 있다. 순전에 이르기를, “선기옥형을 관측하여 칠정을 조정한다.” 하였다. 여기서는 세종이 천체를 관측하는 데 쓰는 혼천의(渾天儀), 혼상(渾象), 앙부일구(仰釜日晷) 등 다수의 기계를 제작한 것과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등의 역서(曆書)를 편찬한 것을 가리켜 한 말이다.

174)그물……몰았네:아주 어진 성품을 지녔다는 뜻이다. 주역 비괘(比卦) 구오(九五)에 “임금이 삼면으로 몰이를 한다.[王用三驅]”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임금이 사냥할 때에는 일면은 틔워 두고 삼면으로만 몰이를 하는 것이니 짐승을 다 죽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 탕(湯) 임금이 들에 나갔다가 사냥꾼들이 그물을 사면으로 치고 사냥하는 것을 보고는, “다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그물의 일면을 열어 준 고사도 있다.

175)현가(絃歌):수령이 정사를 베풀 때 법도가 있어 백성들이 안락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노(魯)나라의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예악(禮樂)으로 가르쳤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가 소리를 울렸다고 한다. 論語 雍也

176)예 내한(倪內翰):예겸(倪謙)으로, 중국의 한림원 시강(翰林院侍講)을 지낸 인물이다. 19쪽 주32 참조.

177)사성(使星)……내려오니:사성은 사신(使臣)을 가리킨다. 금란전(金鑾殿)은 당나라 때 학사(學士)와 문인(文人)들이 있던 궁전으로,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킨다.

178)삼장(三長):사관(史官)으로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장점, 즉 높은 재지(才智), 깊은 학문, 뛰어난 식견을 말한다.

179)이 참의(李參議)가……시:삼탄이 1459년(세조5)에 호조 참의로 있던 중 주문 부사(奏聞副使)가 되어 북경에 조회하러 갔을 적에 받은 시이다.

180)오운향(五雲鄕):다섯 가지 빛깔을 내는 상서로운 구름이 떠 있는 곳으로, 흔히 임금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명나라의 서울인 북경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181)순(恂):대본에는 ‘詢’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세종실록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사마순(司馬恂)은 공과 급사중(工科給事中)으로, 1450년(세종32)에 예겸(倪謙)과 함께 사신으로 나왔던 인물이다.

182)금규(金閨)에서……들었네:금규는 한(漢)나라 때 궁궐의 문인 금마문(金馬門)으로, 본디 학사(學士)들이 대조(待詔)하던 곳이었는데, 전하여 조정(朝廷)을 가리킨다. 사마순이 공과 급사중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183)주미(麈尾)……놀래켰고:언론이 아주 유창한 것을 뜻한다. 주미는 고라니의 꼬리털로 만든 먼지떨이인데, 옛날에 청담(淸談)을 논하던 사람들이 이것을 많이 지니고 다녔다.

184)서까래와……끌었다네:문장 솜씨가 아주 뛰어난 것을 뜻한다. 56쪽 주81 참조.

185)청해(靑海):중국 중부의 서쪽에 있는 지명이다. 황하의 발원이 되는 호수인 청해가 있어서 이렇게 불렀으며, 서쪽 변경의 오랑캐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186)수레와……되었네:온 천하가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규격의 수레바퀴를 쓴다는 뜻으로, 전하여 천하가 통일된 것을 뜻한다.

187)조석(祖席):먼 여행길에 무사하기를 비는 제사를 도신(道神)에게 올리는 자리인데, 흔히 떠나가는 사람을 전송하면서 베풀어주는 잔치를 가리킨다.

188)녹명(鹿鳴) 잔치:녹명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임금이 신하들과 잔치를 할 때 이 노래를 불렀으므로, 전하여 천자가 군신과 빈객(賓客)에게 잔치를 베풀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 시에 이르기를, “화락하게 우는 사슴의 울음소리여, 들판의 대쑥을 뜯는도다.[呦呦鹿鳴 食野之苹]” 하였다.

189)조양(朝陽)에서……같았네:조양은 아침 해가 뜨는 동산이다. 조양에서 봉황이 운다는 것은 흔히 덕이 출중하고 정직하여서 과감하게 직간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이르기를, “봉황이 우니, 저 높은 산에서 우는도다. 오동이 자라니, 저 조양에서 자라는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하였다.

190)그림……주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9 칠언절구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191)매미를……제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9 칠언절구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다 실려 있지는 않고 둘째 수만 실려 있다.

192)백이(伯夷):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의 주(紂)를 정벌하는 것을 반대해서 간하다가 듣지 않자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지내다가 굶어 죽은 사람인데, 순결한 사람의 대표로 칭해진다. 맹자가 “백이는 성인 가운데 순결한 자이다.” 하였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孟子 萬章下

193)황정경(黃庭經):도교의 경전(經典) 이름이다.

194)바람 먹는 신선:매미를 가리킨다.

195)준조(樽俎)에서……하네:준조는 연회 석상으로, 무력을 쓰지 않고 연회 석상에서 외교적으로 담판을 벌여 적을 제압하는 것을 말한다. 오병(五兵)은 싸움에 소용되는 다섯 가지 병기로, 주례 하관(夏官) 사우(司右)에서는 활과 화살[弓矢], 창[矛], 몽둥이[殳], 가지창[戈], 미륵창[戟]이라고 하였고, 회남자(淮南子) 시칙훈(時則訓)에서는 도(刀), 검(劍), 창, 미륵창, 화살이라고 하였다.

196)원문(轅門):군문(軍門)을 말한다.

197)연막(蓮幕):홍련막(紅蓮幕)으로, 장군이 머무는 막부(幕府)를 말한다.

198)칠찰(七札) 능히 꿰뚫으니:활을 아주 잘 쏘는 것을 말한다. 칠찰은 일곱 겹으로 된 갑옷미늘을 말한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인 양유기(養由基)가 활을 잘 쏘기로 이름났는데, 100보 바깥에서 버들잎을 쏘면 백발백중이었고, 일곱 겹의 갑옷미늘도 뚫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관덕정(觀德亭)이 활을 쏘는 곳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戰國策 西周策

199)쌍건(雙鞬)……울리누나:팔뚝 힘이 좋아서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건(鞬)은 활과 화살을 넣는 동개를 말한다. 후한 때 동탁(董卓)이 팔뚝 힘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양쪽에 동개를 차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좌우로 활을 쏘았다고 한다. 後漢書 卷72 董卓列傳

200)담소만을……물리치고:말만 가지고도 적들을 물리칠 것이란 뜻이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노중련(魯仲連)이 조(趙)나라에 머물러 있을 적에 진(秦)나라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다. 그때 조나라에 와 있던 위(魏)나라의 신원연(辛垣衍)이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 왕을 황제로 추대하여 군대를 철수시키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노중련이 신원연을 만나서 진나라가 무도한 나라임을 역설한 뒤, 진나라가 칭제(稱帝)한다면 자신은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하여 중지시키니, 진나라 군사들이 퇴각하였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201)촉(蜀)에……정사고:북쪽 지역에 문교(文敎)를 활짝 펼칠 것이라는 뜻이다.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문옹(文翁)이 촉군(蜀郡)의 태수(太守)가 되어 학교를 세워 문풍(文風)을 크게 진작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 각 고을마다 학교를 세우게 하였다. 漢書 卷89 文翁傳

202)황패(黃霸)……걸세:지방 수령으로 있으면서 이룬 치적(治績)이 뛰어나서 반드시 조정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크게 쓰일 것이라는 뜻이다. 한(漢)나라 때 양하(陽夏) 사람인 황패가 무제(武帝)의 말기부터 벼슬하기 시작하여 여러 지방관을 거치는 동안 치적이 천하에 제일로 알려졌다. 그러자 황제가 영천 태수(潁川太守)로 있는 황패를 불러들여 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았다. 漢書 卷89 黃霸傳

203)천교(天驕):하늘이 낸 교만한 자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북방의 오랑캐를 부르는 말이다. 42쪽 주47 참조.

204)비장군(飛將軍):흉노(匈奴)들이 한나라 때 장수인 이광(李廣)을 부른 칭호이다. 이광은 본디 활을 잘 쏘기로 이름 높았는데, 명을 받고 가서 우북평(右北平)에 주둔하자 흉노들이 이를 듣고는 “한나라의 비장군이 왔다.” 하면서 몇 년 동안 감히 우북평으로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였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205)박연폭포도(朴淵瀑布圖)에 제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206)여산(廬山) 폭포:중국 여산에는 큰 폭포가 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어서 이 백(李白)이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읊었다. 李太白文集 卷18 望廬山瀑布 二首

207)달사(達士):널리 도리에 통달한 사람을 말한다.

208)와각(蝸角)……알겠으며:자신이 이 세상에 잠시 와서 머물면서 작은 것을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겠다는 뜻이다. 와각은 달팽이 뿔이다. 장자 칙양(則陽)에 이르기를,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촉씨(觸氏)라 하고, 달팽이의 오른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만씨(蠻氏)라 하는데, 이 두 나라가 서로 영토를 다투어서 전쟁을 한다.” 하였다.

209)괴가(槐柯)의……믿겠구나:한바탕의 헛된 꿈을 아직도 깨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괴가는 회화나무의 남쪽 가지로,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고사를 말한다. 당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술에 취하여 회화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대괴안국(大槐安國)의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리면서 20년간이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깨어나서 보니, 남가군은 바로 회화나무 남쪽 가지 아래에 있는 개미굴이었다고 한다. 南柯記

210)문충공(文忠公):누구에게 준 시인지 분명치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권근(權近)을 가리키는 듯하다.

211)이제……거며:연명(淵明)은 진(晉)나라의 도잠(陶潛)으로, 도잠이 일찍이 자신의 다섯 아들이 모두 못난 것을 한탄하는 시인 책자(責子) 시를 지어 읊었는데, 그 시에서 “천운이 참으로 이와 같으니, 이제 술잔 속의 물건이나 마시리라.[天運苟如此 且進盃中物]” 하였다.

212)왕연(王衍)처럼……마소:아들이 죽은 데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의 명신인 왕연이 일찍이 어린 아들을 잃고 슬픔을 감당치 못하여 괴로워하자, 그의 친구인 산간(山簡)이 조문을 가서 “어린애가 죽은 것을 가지고 어찌 이토록 슬퍼하는가?” 하니, 왕연이 말하기를, “성인은 정을 잊고, 최하는 정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정을 한쪽으로 모으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聖人忘情 最下不及情 然則情之所鍾 正在我輩]” 하였다. 晉書 卷43 王衍列傳

213)초료(椒聊)……마소:여러 자식 중에서 한 자식이 죽은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다. 초료는 산초나무를 말한다. 76쪽 주158 참조.

214)고반(考槃):덕을 이루고 도를 즐긴다는 뜻으로, 은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시경 위풍(衛風) 고반에 이르기를, “고반이 시냇가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澗 碩人之寬]” 하였다.

215)신구(神駒):신령스러운 망아지로, 큰 뜻을 품은 뛰어난 인재를 가리킨다.

216)득현신송(得賢臣頌):어진 임금이 현명한 신하를 얻은 것을 축하하는 내용의 글인데, 한나라 때 왕포(王褒)가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을 지은 일이 있다.

217)양양(襄陽):성당(盛唐) 시대 양양 출신의 시인인 맹호연(孟浩然)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병을 앓고 있는 삼탄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57쪽 주86 참조.

218)기인(畸人):성질이나 언행이 일상적인 법도에서 벗어난 사람인 기인(奇人)이나 몸이 불구인 사람을 말한다.

219)조릉(雕陵)에는……없느니라:조릉은 장자(莊子)가 노닐었던 밤나무 밭의 이름이다. 장자가 조릉에서 이상한 까치를 발견하고 그를 잡기 위해 탄궁(彈弓)을 손에 들고서 노리고 있었는데, 그때 보니 한 마리의 매미가 나무에 앉아서 신이 나게 울고 있고, 그 뒤에는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고, 그 뒤에서는 그 이상한 까치가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 그 뒤에서는 장자 자신이 그 이상한 까치를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莊子 山木

220)나부산(羅浮山)에……자태거니:나부산은 광동성(廣東省)의 동강(東江) 북안(北岸)에 있는 산 이름이며, 눈과 서리 같은 자태는 매화를 가리킨다.

221)회진시(會眞詩):미인을 만나는 시를 말한다. 당나라의 시인인 원진(元稹)이 지은 회진기(會眞記)에, “정원(貞元) 연간에 미인 최앵앵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장안(長安)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포동(蒲東)의 보구사(普救寺)에 머물다가 장생을 만나 서로 시(詩)를 지어 화답하고 정까지 통했다.”라고 하였는데, 그 안에 장생이 지어준 회진시 30운(韻)이 나온다.

222)정 정언(丁正言)이……전송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9 칠언절구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전체가 다 실려 있지는 않고 둘째 수와 넷째 수만 실려 있다. 정극인(丁克仁:1401〜1481)은 본관은 영성(靈城), 자는 가택(可宅), 호는 불우헌(不憂軒)․다헌(茶軒)․다각(茶角)이다. 1453년(단종1)에 문과에 올랐으며, 70세에 정언에 임명되었는데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벼슬을 그만두고는 태인(泰仁)으로 물러가서 후진들을 가르치고 또 고을 사람들과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불우헌곡(不憂軒曲)을 지어 노래하였다. 여기서 말한 고향은 태인을 말하는데, 정극인은 광주(廣州) 태생이며, 태인은 정극인의 고향이 아니라 처가(妻家)가 있는 곳이다.

223)당생(唐生)……거로: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결정했을 것이란 뜻이다. 당생은 전국 시대 양(梁)나라 사람으로 상술(相術)에 정통하였던 당거(唐擧)를 가리킨다. 연(燕)나라 사람인 채택(蔡澤)이 각지로 유세(遊說)를 하고 다녔으나 벼슬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당거를 찾아가서 자신의 관상을 보아 달라고 하면서 “부귀를 구하는 것은 내가 자신이 있으니, 얼마나 살겠는지 그것만 말해 달라.” 하였다. 그러자 당생이 “지금 이후로 43년을 더 살 것이다.” 하니, 채택이 기뻐하면서 사례하고 갔다. 史記 卷79 蔡澤列傳

224)잠거(簪裾):벼슬하는 사람의 의관으로, 전하여 관복(官服)을 가리킨다.

225)어찌……하리:고향 산을 떠나 있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남제(南齊)의 공치규(孔稚珪)가 자신과 함께 북산에 은거하던 주옹(周顒)이 벼슬길에 나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북산이문(北山移文)이란 글을 지어 다시는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글 가운데 “혜장이 텅텅 비자 밤중에 학 원망하고, 산인이 떠나가자 새벽에 납 슬피 우네.[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惊]”라는 구절이 있다.

226)머리……막혔으리:대궐 모습이 구름에 가려서 안 보일 것이란 뜻이다. 고릉(觚稜)은 높이 치솟은 전당(殿堂)의 지붕을 말하고, 오운(五雲)은 다섯 가지 빛깔을 내는 상서로운 구름으로, 흔히 임금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227)박 도절제사(朴都節制使):박호문(朴好問:?〜1453)으로, 1419년(세종1)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그 뒤 함길도(咸吉道)로 가서 당시에 변경에 출몰하던 야인(野人) 이만주(李滿住) 등의 실정과 파저강(婆猪江) 일대의 형세를 살피고 돌아왔으며, 평안도 절제사 최윤덕(崔潤德)의 부장이 되어 파저강 일대의 여진을 정벌하였다.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에는 김종서(金宗瑞)의 심복이라는 이유로 파면된 이징옥(李澄玉)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가 되었으나, 이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이징옥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228)대수장군(大樹將軍):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 때의 장군인 풍이(馮異)를 가리키는데, 흔히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 장군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풍이는 사람됨이 겸손하여 길을 가다가 다른 장군을 만나면 항상 한쪽 옆으로 피하였으며, 휴식을 취할 때 다른 장수들은 서로 모여 전공(戰功)을 떠들어대었으나 풍이는 항상 큰 나무 아래로 가 쉬고 있었다. 이에 군중 사람들이 대수장군이라 부르면서 좋아하였다. 太平御覽 卷423

229)북문(北門)……나누었네:함길도(咸吉道) 지방의 방비를 맡아 다스렸다는 뜻이다. 북문은 본디 도성의 북쪽 문으로, 옛날에 장수가 출정(出征)할 때에는 흉문(凶門)인 북문을 열고 나가 결사 항전할 결심을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박호문(朴好問)이 함길도 지방에서 야인들을 막았으며, 계유정난 이후에는 함길도를 맡고 있다가 이징옥(李澄玉)에게 살해되었으므로, 우리나라의 북쪽 관문인 함경도 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230)반초(班超)……보고서:훌륭한 장수가 변경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뜻으로, 박호문이 함경도에서 죽었다는 뜻이다. 반초는 동한(東漢) 때 사람으로 반고(班固)의 동생인데, 서역(西域)의 50여 국을 정벌하여 모두 중국에 조공하게 하는 큰 공을 세우고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231)마원(馬援)……듣누나:역시 박호문이 죽었다는 뜻이다. 마원은 후한의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건무(建武) 연간에 교지(交趾)를 평정하고 난 뒤에 한나라의 끝 지점에 구리 기둥을 세워 국경을 표시하고 자신의 공을 기록하는 큰 공을 세웠으며, 그 뒤에 다시 무릉(武陵) 오계(五溪) 지역의 오랑캐들을 토벌하던 중 병들어 죽었다.

232)고당(高唐):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누대(樓臺) 이름으로, 운몽택(雲夢澤)에 있다. 초나라 양왕(襄王)이 송옥(宋玉)과 고당에서 놀았는데, 송옥이 말하기를, “옛날에 선왕께서 고당에서 노시다가 낮잠이 들어 꿈속에서 무산(巫山)의 선녀(仙女)를 만나 놀았는데, 그 선녀가 이별하는 즈음에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산속에 사는데, 아침이면 떠가는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내리는 비가 되어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양대(陽臺)의 아래로 내려옵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文選 卷19 高唐賦

233)임우(霖雨):단비로,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이르기를, “만약 큰 가뭄이 들면 너를 사용하여 단비로 삼을 것이다.[若歲大旱 用汝作霖雨]” 하였다.

234)김 문학(金文學):김수령(金壽寧:1436~1473)으로, 본관은 안동이고, 김숙(金潚)의 아들이다. 1453년(단종1)에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에 장원급제하였다. 시호는 문도(文悼)이고, 좌리 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복창군(福昌君)에 봉해졌다.

235)금련(禁臠):어린 돼지의 목덜미 살로, 아주 맛있는 고기를 말한다. 진서(晉書)권79 사혼열전(謝混列傳)에 이르기를, “동진(東晉)의 효무제(孝武帝)가 사혼을 부마(駙馬)로 삼으려다가 얼마 안 되어 붕어한 뒤에 원숭(袁崧)이 다시 그를 사위로 삼으려 하자, 왕순(王珣)이 원숭에게 ‘금련을 가까이하지 말라.’라고 농담하였다. 금련이란 원래 진 원제(晉元帝)가 강남으로 옮겼을 때 경제가 어려워서 돼지 새끼가 들어와도 그 목덜미의 고기는 원제에게만 드린 데서 생긴 용어이다.” 하였다.

236)잔고(殘膏):남은 기름과 남아 있는 향기란 뜻인 잔고잉복(殘膏馥)으로, 자신이 쓰고 남은 좋은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의 훌륭한 시구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신당서(新唐書) 권201 문예열전 상(文藝列傳上) 두보(杜甫) 찬(贊)에 이르기를, “다른 사람은 부족하나 보(甫)는 남아돌아서 그 잔고와 잉복을 후세 사람에게 준 것이 많았다.” 하였다.

237)속안(俗眼):세속 사람들의 평범한 안목으로, 범속한 견해를 말한다.

238)길이……배우련다:손에 붓을 들고서 문장 짓는 법이나 배우겠다는 뜻이다. 모추(毛錐)는 모추자(毛錐子)로, 붓의 이칭(異稱)이다. 한당(漢唐)은 한나라 때의 문장과 당나라 때의 시를 가리킨다.

239)십천미주(十千美酒):아주 좋은 술을 말한다. 십천은 만 전(錢)의 돈을 가리킨다. 왕유(王維)의 소년행(少年行)에, “신풍의 맛 좋은 술은 한 말에 십천인데, 함양의 유협들은 대부분이 소년이로세.[新豊美酒斗十千 咸陽游俠多少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40)가을날의……구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네 수가 다 실려 있다.

241)누런……재촉하니:세월이 무정하게 흘러간다는 뜻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취가시기인상영롱(醉歌示妓人商玲瓏) 시에 이르기를, “누런 닭은 새벽을 재촉하느라 축시에 울고, 하얀 해는 한 해를 재촉하느라 유시 전에 넘어가네.[黃雞催曉丑時鳴 白日催年酉前沒]” 하였다.

242)마구간서……됐거니:몸이 늙어 젊은 시절의 호기롭던 뜻이 사그라졌다는 뜻이다. 좋은 말은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고 하는데, 늙은 뒤에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마음만은 천 리를 내달리는 데에 가 있다고 한다.

243)바람……내리:원대한 뜻을 품지 못한다는 뜻이다. 45쪽 주52 참조.

244)허리……많았었고:계자(季子)는 전국 시대의 유세가인 소진(蘇秦)을 가리킨다. 그는 동시에 6국의 정승이 되어 6국에서 봉급으로 받는 황금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245)머리……느꺼웠네:풍당(馮唐)은 한나라 사람으로, 고조(高祖) 때부터 벼슬길에 나갔으나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급 관리인 중랑장(中郞將)으로 있었는데, 문제(文帝) 때에 이르러서 문제가 낭서(郎署)를 지나다가 풍당과 문답해 보고는 현명한 사람인 줄 알아 등용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다 늙어서 머리카락이 허옇게 세었다고 한다. 漢書 卷50 馮唐傳

246)어느……오를거나:언제쯤에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서 모시면서 즐겁게 해 드리겠느냐는 뜻이다. 노래자(老萊子)에 관한 내용은 23쪽 주34 참조. 북당(北堂)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다.

247)백가의체(百家衣體):옛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씩을 따서 서로 맞추어 시를 짓는 것으로, 태원(大原) 왕서왕(王舒王)이 제창하였고, 황산곡(黃山谷) 같은 이들이 뒤를 이어받아 화작(和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임유정(任惟正)이 가장 유명하여 백가의집(百家衣集)을 남겼다.

248)허혼(許渾):만당(晩唐)의 시인으로, 자는 중회(仲晦)이고, 목주(睦州)와 영주(郢州)의 자사(刺史)를 역임하였으며, 시(詩)에 능하여 정묘집(丁卯集)을 남겼다.

249)대숙륜(戴叔倫):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문학가로, 자는 유공(幼公)이다.

250)은유(殷侑):당나라 때 사람으로 경술(經術)에 뛰어났으며, 원화(元和) 8년에 회골(回鶻)에 사신으로 갔다. 이때 회골의 가한(可汗)이 몹시 교만하였는데, 은유가 의리를 들어 힐책하여 깨우쳐 주었다. 韓昌黎集 卷21

251)상국(上國)……것이며: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대부인 계찰(季札)이 상국에 두루 조빙하면서 당시의 어진 사대부들과 사귀었으며, 노(魯)나라에 조빙하면서는 주(周)나라의 음악을 듣고 열국의 치란과 흥망을 알았다고 한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252)명정(明庭)에서……보리:황궁의 뜰에서 중국 조정의 문물과 제도를 볼 것이란 뜻이다. 명정은 황제가 조회를 받는 정전의 뜰을 말한다. 한(漢)나라의 의관은 한나라 조정 관원들의 복식과 전례(典禮), 제도로, 번성한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말한다. 78쪽 주172 참조.

253)영천군(永川君):대본에는 ‘永川尹’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영천군은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아들 이정(李定)을 가리킨다. 그는 시주(詩酒)를 매우 즐겼고,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다고 한다. 일찍이 영천군에 봉해졌는데, 당시에 영천공(永川公), 영천공자(永川公子), 영천경(永川卿) 등으로 일컬어졌다. 삼탄집에는 영천군과 더불어 읊은 시가 아주 많다.

254)임궁(琳宮):사찰을 가리킨다.

255)도원(桃源):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진(秦)나라 때에 몇몇 백성들이 포악한 정치를 피하여 이 골짜기에 숨어 살면서 태평을 누렸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256)산 오르는 나막신:밀랍을 발라서 광택이 나게 한 나막신으로, 남송(南宋) 때의 시인인 사영운(謝靈運)이 산을 유람하기를 즐겼는데, 산을 오를 때에는 나막신의 앞 굽을 빼고 오르고, 내려올 때에는 뒤 굽을 빼고 내려왔다고 한다. 南史 卷19 謝靈運列傳

257)명량(明良):현명한 임금과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를 가리킨다.

258)녹평(鹿萍) 잔치:임금이 신하들을 대접하는 잔치를 말한다. 84쪽 주188 참조.

259)포상(苞桑):근본을 단단히 한다는 뜻이다. 포(苞)는 밑동을 뜻하는 말로, 뽕나무는 본래 밑동이 깊이 박혀 있어 무척 견고하므로 무슨 물건을 매어 놓아도 든든하다고 한다. 주역 비괘(否卦)에 이르기를, “나라가 망할까 망할까 염려하면서 뽕나무 밑동에 매어 두라.[其亡其亡 繫于苞桑]” 하였다.

260)부휴(浮休):잠깐 머물다 가는 무상한 인생을 뜻하는 말이다. 장자 각의(刻意)에 이르기를, “거품이 일어나듯 잠깐 살다가, 지친 몸 휴식하듯 죽음의 세계로 돌아간다.[其生若浮 其死若休]”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261)기구(箕裘):조상들의 세업(世業)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쇠를 잘 불리는 자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고, 활을 잘 만드는 자의 아들은 반드시 키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 한 데서 나온 말이다.

262)단혈(丹穴):전설 속에 나오는 산 이름으로, 봉황이 산다고 하는 산이다.

263)은장(銀章):한(漢)나라 때 2천 석(石) 이상의 관원이 찼던 은인(銀印)으로, 보통 중간급의 관원이 차는 인장을 말한다.

264)소대(蕭臺):진(秦)나라 목공(穆公)이 그의 딸인 농옥(弄玉)을 위하여 만들어준 누각으로, 봉루(鳳樓)라고도 한다. 농옥이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소사(蕭史)가 퉁소를 잘 불어서 봉새가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에 목공이 농옥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누각을 지어주었는데, 이들 두 사람이 퉁소를 불면 봉황이 날아와서 모였으며, 이들 두 사람은 그 뒤에 봉황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列仙傳

265)임 필선(任弼善):임원준(任元濬:1423〜1500)으로,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자심(子深),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1456년(세조2)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교리가 되었다. 1471년(성종2) 좌리 공신(佐理功臣) 3등이 되고 서하군(西河君)에 봉해졌다. 문장으로 이름이 났고, 풍수(風水)와 의복(醫卜)에도 능통하였다. 세조 3년 11월 10일에 한명회(韓明澮)와 예조 참판 구치관(具致寬)을 명나라에 보내어서 해양대군(海陽大君)을 세자로 봉(封)하여 줄 것을 청할 적에 종사관(從事官)으로 갔는데, 이때 임원준의 관직이 세자 좌필선(世子左弼善)이었다.

266)신경(神京):신성한 서울로, 명나라 서울인 북경에 대한 미칭(美稱)이다.

267)해낭(奚囊):해노(奚奴), 즉 어린 종자(從者)가 가지고 다니는 시고(詩稿)를 넣는 주머니를 말한다. 당(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하소전(李賀小傳)에 이르기를, “이장길(李長吉)이 매일 아침 해가 뜨면 제공(諸公)들과 노닐면서 항상 어린 종자를 데리고 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어린 종자에게 오래 묵은 비단 주머니를 등에 지고 따라다니게 하였다. 그러고는 우연히 좋은 시구를 얻으면 즉시 시구를 써서 그 주머니에 넣었다.” 하였다.

268)합환상(合歡床):두 사람이 잘 수 있는 신혼부부의 침상을 말한다.

269)어찌……하겠는가:머리를 잡는다는 것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면서 옛날 일을 회상하며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270)오리와……거네:장자 변무(騈拇)에 이르기를,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길게 이어주면 걱정거리가 될 것이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짧게 잘라주면 슬퍼하게 될 것이다.” 하였다.

271)꽃……말아야지:두자(杜子)는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의 강반독보심화(江畔獨步尋花) 시에, “강가에 꽃이 피니 산란한 맘 끝없는데, 하소연할 곳 없어서 단지 미칠 것만 같네.[江上被花惱不徹 無處告訴只顚狂]” 하였다.

272)조상(糟床):술을 거르는 기구 이름으로, 쳇다리 혹은 술주자라고도 한다.

273)양주(楊州)에서 낙백(落魄)한 건: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이 일찍이 양주에서 회남 절도사(淮南節度使) 우승유(牛僧孺)의 막료로 있으면서 몰래 기루(妓樓)를 출입하는 등 방탕하게 지낸 것을 말한다. 낙백은 어디에 구애되지 않고 방탕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두목의 견회(遣懷) 시에, “강호에서 낙백하여 술을 싣고 다닐 적에, 초 땅 기생 가는허리 한 손에 다 잡히었네.[落魄江湖載酒行 楚腰纖細掌中輕]” 하였다.

274)초택(楚澤)에서……건:전국 시대 초(楚)의 문호(文豪)이자 충신인 굴원(屈原)이 간신의 참소로 인해 조정에서 쫓겨나 초택으로 귀양 가 있으면서 시를 읊으며 지낸 것을 말한다. 초택은 초 지방에 있는 호수로, 이곳에서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이르기를, “못가를 거닐며 시를 읊조린다.[行吟澤畔]” 하였다.

275)북해(北海)에게……것이며:북해는 한(漢)나라 때 건안칠자(建安七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북해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공융은 성품이 너그럽고 거리낌이 없었으며, 선비들을 좋아하고 후생들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였다. 한직(閑職)으로 물러난 다음에는 빈객들이 항상 집에 가득하였는데, 항상 말하기를, “좌상에는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주전자엔 술이 빌 때가 없으니, 나는 걱정할 것이 없다.” 하였다. 後漢書 卷70 孔融列傳

276)고당(高唐):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누대(樓臺) 이름으로, 운몽택(雲夢澤)에 있는데, 운우지정(雲雨之情)의 고사가 있던 곳이다. 103쪽 주232 참조.

277)명교(名敎):인륜(人倫)의 명분을 밝히는 유교를 말한다.

278)글……못했거니: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글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여상(藜床)은 명아주 줄기로 엮어 만든 탑상(榻床)으로, 보통 간소한 좌탑(座榻)을 이른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인 관녕(管寧)은 항상 단정한 생활을 하면서 55년 동안 나무로 만든 탑상에 앉아 있었는데, 단정한 자세를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으므로 무릎 닿는 곳에 모두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三國志 卷11 魏書 管寧傳

279)금란전(金鑾殿):당나라 때 학사와 문인들이 있던 궁전으로, 한림원을 가리킨다.

280)금릉(金陵)으로……갔거니:금릉은 지금의 남경(南京)으로, 명나라의 시조인 주원장(朱元璋)이 처음 일어난 곳이다. 일동(日東)은 일본을 가리킨다. 1372년(공민왕21)에 정몽주가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풍랑으로 파선을 당하여 일행 12인은 익사하고, 정몽주는 13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명나라 구조선에 구출되어 이듬해 귀국하였다. 또 1377년(우왕3)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교린(交隣)의 이해를 개진하여 사명을 다하고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왜구에게 잡혀갔던 고려 백성 수백 명을 귀국시켰다. 그 뒤에도 두 차례나 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 관계를 원만하게 처리하였다.

281)먼……같았으리:자장(子長)은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의 자이다. 사마천은 천성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남쪽으로 강수(江水), 회수(淮水)를 유람하고 회계(會稽)로 올라가서 우혈(禹穴)을 보고 구의산(九疑山)을 보았으며, 북쪽으로는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제(齊)․노(魯)를 거쳐 양(梁)․초(楚) 지역까지 두루 유람하였다. 이때 얻은 산천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명문장가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282)곡령(鵠嶺)에다 청송(靑松):고려의 사직(社稷)을 가리킨다. 67쪽 주120 참조.

283)신장(宸章):임금이 지은 시문(詩文)을 말한다.

284)정호(鼎湖)에서……유람하여:임금이 죽은 것을 말한다. 71쪽 주138 참조.

285)팔음(八音):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으로 만든 여덟 가지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

286)동조(東朝):동궁(東宮)과 같은 말로, 세자가 왕을 대신하여 임시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문종은 세종 말년에 세종을 대신하여 정무를 처리하였다.

287)구오(九五) 자리:천자의 자리에 오른 것을 말한다. 74쪽 주148 참조.

288)금등(金縢):서경(書經)의 한 편명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혁명한 후 병이 들었을 때 주공(周公)이 그에게 청명(請命)한 말을 적어서 궤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 두었다는 일종의 비장(秘藏)이다.

289)말명(末命)은……기대:말명은 임금이 죽기 직전에 내린 유교(遺敎)로, 임금이 죽은 것을 말한다. 서경 고명(顧命)에 이르기를, “왕이 물로 손을 씻고 얼굴을 씻자 부축하는 자가 면복(冕服)을 입히니, 왕이 옥궤에 기대었다.[王 乃洮頮水 相 被冕服 憑玉几]” 하였다.

290)활을……못하겠네:임금이 죽어서 한스럽다는 뜻이다. 71쪽 주138 참조.

291)중화(重華)와……이으니:순 임금이 요 임금을 계승한 것처럼 문종이 선대의 왕인 세종의 뒤를 잘 계승하였다는 뜻이다. 중화는 ‘요 임금의 덕을 계승하여 거듭 광화(光華)를 발하였다.’라는 뜻으로, 순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방훈(放勳)은 ‘상대(上代)의 공화(功化)를 본받아서 천하에 교화를 베풀었다.’라는 뜻으로, 사관(史官)이 요 임금을 찬미한 말인데, 뒤에는 요 임금의 호나 이름으로 쓰였다.

292)삼 년……효였었고:임금으로서 아주 효성이 뛰어났다는 뜻이다.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이르기를, “왕이 택우하여 3년을 양암했다.[王宅憂亮陰三祀]” 하였다. 양암(亮陰)은 임금이 부모의 상중에 정무를 보지 않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93)구서(九敍)를……힘썼다네:순(舜) 임금 때에 우(禹)가 순 임금에게 말하기를, “구서,즉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이 다 질서가 잡혔으니, 그것을 노래할 만합니다.” 하였다. 書經 大禹謨

294)별은……우러렀네:규벽(奎璧)은 28수 가운데 규수(奎宿)와 벽수(璧宿)로, 둘 다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인바, 화려한 문장을 말한다. 건문(乾文)은 하늘의 문양으로, 천문(天文)을 말한다.

295)인산(因山):국왕이나 왕후, 세자, 세자빈의 국장(國葬)을 말한다.

296)간죽(簡竹):간책(簡策)과 같은 말로, 역사서를 말한다.

297)습진(習陣):대본에는 ‘習陳’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습진은 군사훈련의 일종으로, 진 치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298)비태(否泰):본래는 주역의 두 괘(卦) 이름으로, 운명의 좋고 나쁨과 사정의 순탄과 역경을 말한다. 여기서는 특히 세도(世道)의 길흉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299)취화(翠華):푸른 깃털 장식을 한 깃발이나 수레로, 흔히 대가(大駕)나 제왕의 대칭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300)위엔……있어:구천(九天)은 하늘의 중앙과 팔방(八方)으로, 하늘 전체를 말한다. 구지(九地)는 먼 변경 지방까지 포함하는 땅 전체를 말한다.

301)팔진(八陣):진(陣)의 여덟 가지 형식으로, 상고(上古)의 팔진, 풍후(風后)의 팔진, 손무자(孫武子)의 팔진, 오기(吳起)의 팔진, 제갈량(諸葛亮)의 팔진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제갈량의 팔진으로 동당(洞當), 중황(中黃), 용등(龍騰), 조비(鳥飛), 호익(虎翼), 연횡(連衡), 절충(折衝), 악기(握機) 등의 진법이 있다. 小學紺珠 制度類

302)육화(六花):육화진(六花陣)의 준말로, 당나라 이정(李靖)이 제갈량의 팔진도(八陣圖)를 모방하여 만든 진법이다. 宋史 卷195 兵志9 陣法

303)음우(陰雨) 경계:위험스런 사태를 미연에 방비하라고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빈풍(豳風) 치악(鴟鶚)에 이르기를,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을 적에, 저 뽕나무 뿌리를 주워다가, 틈과 구멍 튼튼히 얽어매라.[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 하였다.

304)월상씨(越裳氏)의……걸:월상씨는 중국의 남해(南海)에 있는 나라이며, 중구역(重九譯)은 통역관으로, 흔히 사신(使臣)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5에 이르기를,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 월상씨의 중구역이 와서 주공(周公)에게 흰 꿩을 바쳤다.” 하였다.

305)담담정(淡淡亭):마포(麻浦)의 북쪽 언덕에 있던 정자로,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지은 것이다. 서적 만 권을 갖추고 선비들을 불러 모아서 십이경시문(十二景詩文)과 사십인영(四十人詠)을 지었다. 나중에 신숙주(申叔舟)의 별장이 되었다.

306)섬계(剡溪):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시내 이름이다.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한밤중에 눈이 내리자 친구인 대규(戴逵)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에 즉시 밤을 새워 배를 타고 가 대규가 사는 집 문 앞까지 갔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온 것이다.” 하였다. 世說新語 任誕

307)망천(輞川):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왕유가 이곳에 별장을 짓고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 20곳을 골라 각기 이름을 붙인 다음 시를 읊었는데, 세상에서는 이를 망천이십경(輞川二十景)이라고 한다. 王右丞集 卷14

308)해낭(奚囊):해(奚)는 수행하는 어린 종자(從者)를 가리키며, 낭(囊)은 시고(詩稿)를 넣는 주머니를 말한다. 116쪽 주267 참조.

309)엄광(嚴光) 낚시하던 칠리탄(七里灘):칠리탄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여울로, 두 산의 골짜기 사이로 동양강(東陽江)이 흐르는데 빠른 물살이 7리나 흐르므로 칠리탄이라고 불렀으며, 또 엄릉뢰(嚴陵瀨)라고도 한다. 이 여울의 북쪽 강안(江岸)에 있는 산이 부춘산(富春山)인데, 동한(東漢)의 엄광이 이곳에 은거하여 농사를 짓고 살면서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낚시질을 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

1)박 판서(朴判書):박원형(朴元亨:1411〜1469)으로,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이다. 계유정난에 수양대군을 도와 승지를 지내고, 좌익 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59년(세조5)에는 주문 겸 사은사(奏聞兼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이때 삼탄이 부사(副使)가 되어 함께 갔다. 이후 우의정까지 올랐다. 예종이 즉위하고서는 원상(院相)이 되었고, 익대 공신(翊戴功臣) 2등에 책록되고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이 되었다. 성품이 청렴하였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과문(科文)에 특히 뛰어났다.

2)의주(義州)에……차운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9 칠언절구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다 실려 있지는 않고 둘째 수만 실려 있다. 이 시부터 165쪽 고 태상에게 이별하면서 주다[贈別高太常]까지는 1457년에 명나라 사신 진감(陳鑑)이 나올 때 원접사(遠接使)인 박원형과 함께 가 사신을 영접하면서 읊은 시이다.

3)성초(星軺):사신(使臣)이 타는 수레를 말한다.

4)안화(眼花):눈앞에서 불똥 같은 것이 어른어른하여 잠시 어지러워지는 것을 말한다.

5)맥추(麥秋):보리가 익는 계절로, 음력 5월을 가리킨다.

6)의주 목사(義州牧使):삼탄이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박원형(朴元亨)의 종사관이 되어 의주에 간 해인 1457년(세조3)에 의주 목사로 있던 사람은 이인(李茵)이다. 이인은 1456년 3월 20일에 의주 목사에 제수되었다.

7)갈고(羯鼓):서방 오랑캐인 갈족(羯族)이 치는 장구의 일종으로, 말가죽으로 메워 대(臺) 위에 올려놓고 두 개의 채로 친다.

8)봉도(蓬島)에서……같네:신선들이 마시는 술을 마시고 취한 것 같다는 뜻이다. 봉도는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봉래도(蓬萊島)를 말하고, 하상(霞觴)은 신선들이 마신다고 하는 자하주(紫霞酒)를 담은 술잔을 말한다.

9)지주(地主):의주 목사를 가리킨다.

10)전봉(轉蓬):쑥대가 뭉쳐져서 바람에 굴러가는 것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한다.

11)가평관(嘉平館):가산(嘉山)에 있는 객관(客館)이다.

12)율미(栗尾):율서(栗鼠)의 꼬리로 만든 붓을 말한다.

13)상강(湘江) 가의 대나무:상강은 중국 남쪽 지방의 이름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라기로 유명한 곳이다. 옛날에 요 임금의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순 임금에게 시집가 비(妃)가 되었는데, 순 임금이 남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죽어 창오(蒼梧)의 들에 묻혔다. 그러자 두 비가 순 임금을 그리워하면서 통곡하여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떨어져 반점이 생겼다고 한다. 그 뒤에 두 비가 상강에서 죽으니, 사람들이 상부인(湘夫人)이라고 칭하였다. 列女傳

14)섬계(剡溪) 가의 등지(藤紙):섬계는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시내 이름으로, 물가에 특히 등나무가 많이 자라는데, 이를 가지고 질이 아주 좋은 종이를 만든다고 한다.

15)비태(否泰):본래는 주역의 두 괘(卦) 이름으로, 운명의 좋고 나쁨과 사정의 순탄과 역경을 말한다. 여기서는 특히 세도(世道)의 길흉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16)문성(文星):문운(文運)을 맡은 별로, 문곡성(文曲星)이라고도 칭한다.

17)빙호(氷壺):얼음이 담긴 옥으로 만든 그릇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인품과 덕성이 청백하고 개결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18)도선(逃禪):참선(參禪)으로부터 도망친다는 뜻으로, 술에 잔뜩 취한 상태를 말한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문신인 소진(蘇晉)은 특히 술을 즐겨 마셨는데,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이르기를, “소진은 수불 앞에서 장기간 재계를 했지만, 취중에는 가끔 좌선을 도피하기 좋아했다네.[蘇晉長齋繡佛前 醉中往往愛逃禪]” 하였다.

19)양춘(陽春)의 옛 곡조: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고아(高雅)한 가곡으로, 일반적으로 고상하고 아취 있는 곡이나 아름다운 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옛날에 초나라의 서울인 영(郢)에서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 불렀는데 처음에는 보통 유행가인 하리파인(下里巴人) 같은 것을 불렀더니, 같이 합창하여 부르는 자가 수만 명이었다. 그러나 보다 고급의 노래를 부르니 따라서 합창하는 자가 수백 명에 지나지 않았고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최고급의 노래를 부를 적에는 따라 부르는 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樂書 卷161 歌下

20)채전(彩牋):채색의 무늬를 새긴 종이로, 시를 쓰는 시전지(詩牋紙)를 말한다.

21)척호(陟岵):초목이 우거진 산에 오른다는 뜻으로, 고향을 떠난 아들이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위풍(魏風) 척호에 이르기를, “저 산에 오름이여, 어버이를 바라본다.[陟彼岵兮 瞻望父兮]” 하였다.

22)금규(金閨):한나라 때 궁궐의 문인 금마문(金馬門)으로, 본디 학사(學士)들이 대조(待詔)하던 곳이었는데, 전하여 조정(朝廷)을 가리킨다.

23)영곡(潁谷)……이:춘추 시대 정(鄭)나라 영곡(潁谷)에 봉해진 영고숙(潁考叔)을 가리킨다. 당시에 정 장공(鄭莊公)이 아우 숙단(叔段)의 반란과 관련하여 친어머니인 강씨(姜氏)를 유폐시켰는데, 영고숙이 장공이 내려준 고기를 어머니를 생각해 먹지 않자, 마침내 영고숙의 행실에 감동하여 정상적인 모자 관계를 회복하였다. 春秋左氏傳 隱公1年

24)붓을……내달리니:글씨가 아주 힘차고 뛰어났다는 뜻이다.

25)조류(曹劉):삼국 시대의 문장가인 위(魏)나라 조식(曹植)과 유정(劉楨)을 말한다.

26)천파(天葩):천연의 아름다운 꽃이란 뜻으로, 전하여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뜻한다.

27)용문(龍門) 위에 올랐기에:어진 이를 가까이에서 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동한(東漢) 때 이응(李膺)이 어질다는 명성이 있었는데, 그가 직접 접견한 사대부들의 신분이 크게 높아졌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용문에 올랐다고 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後漢書 卷67 李膺列傳

28)울음……비슷하네:지위가 상승해서 높은 곳으로 옮겨간 듯하다는 뜻이다.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이르기를,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날아가는도다.[出自幽谷 遷于喬木]” 하였다.

29)자색……내려오니:중국 사신이 조서(詔書)를 가지고 왔다는 뜻이다.

30)아침 구름[朝雲]:아름다운 선녀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기생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양왕(襄王)이 송옥(宋玉)과 운몽택(雲夢澤)에 있는 고당(高唐)이란 누대(樓臺)에서 놀았는데, 송옥이 말하기를, “옛날에 선왕께서 고당에서 노시다가 낮잠이 들어 꿈속에서 무산(巫山)의 선녀를 만나 놀았는데, 선녀가 이별하는 즈음에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산속에 사는데, 아침이면 떠가는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내리는 비가 되어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양대(陽臺)의 아래로 내려옵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여기에서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文選 卷19 高唐賦

31)용이……하니:임금이 등극하였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명나라 영종(英宗)이 등극한 것을 뜻한다. 구오(九五)는 임금 자리를 뜻한다. 주역 건괘(乾卦)의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九五飛龍在天 利見大人]” 한 데서 나온 말로, 천자의 자리를 뜻한다.

32)성초(星軺):사신(使臣)이 타는 수레를 말한다.

33)진 내한(陳內翰)의……차운하다:중국 사신 진감(陳鑑)이 연꽃 그림을 보고 시를 짓기를, “쌍쌍이 떠 있는 물새는 다정도 하고, 물 위에 솟은 홍련은 핍진도 하구나. 칭송의 소리 널리 퍼지는 것은 손이 있기 때문이니,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주염계 뒤에 없겠는가. 멀리서 보면 저절로 무더위를 쫓을 수 있고, 나란히 선다고 어찌 세속의 티끌에 물든 적 있나. 화공이 이 뜻을 알았음이 짐작되니, 거위와 오리가 옆에서 번뇌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雙雙屬玉似相親 出水紅蓮更逼眞 名播頌聲緣有客 愛從周後豈無人 遠觀自可祛煩暑 竝立何曾染俗塵 料得丹靑知此意 絶勝鵝鴨惱比隣]” 하였는데, 삼탄이 이에 화답하여 이 시를 짓자 진감이 크게 칭찬하면서 말하기를, “동방의 문사(文士)와 중화(中華)의 문사가 다를 것이 없다.” 하였다고 한다. 燃藜室記述別集 卷5 事大典故 詔使

34)옥서(玉署) 있던 유선(儒仙):옥서는 홍문관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한림원을 가리키며, 유선은 진감(陳鑑)을 가리킨다.

35)한(漢)……글:열 줄의 글은 임금이 내리는 조서를 의미한다. 한나라 무제(武帝)가 조서를 내릴 때 한 장의 종이에 열 줄로 가늘게 글을 써서 내린 데에서 나온 말이다.

36)상나라 비[商霖]:상나라 탕왕(湯王)이 5년간 수확을 못 거둘 정도로 가뭄이 들자 상림에서 기우제를 지내면서 “정치에 절도가 없는가? 백성들이 직업을 잃었는가? 궁궐을 너무 호화롭게 지었는가? 부녀자의 청탁이 성행하는가? 뇌물이 행해지고 있는가? 참소하는 사람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자책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가 내렸다고 한다. 荀子 大略

37)활화(活畫):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을 말한다.

38)수로(獸爐):짐승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향로를 말한다.

39)우군(右軍):동진(東晉) 사람으로 우군장군(右軍將軍)에 봉해졌던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왕희지는 자가 일소(逸少)이며, 장지(張芝)에게서 서법을 배워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모두 뛰어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법가로 칭해진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40)이부(吏部):당나라의 문장가로,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한유는 문장으로 이름이 높아 태산북두(太山北斗)에 비할 정도였으므로 이부는 곧 한유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41)삼소(三蘇):송나라의 대문장가인 소순(蘇洵)과 그의 아들인 소식(蘇軾), 소철(蘇轍) 형제를 가리킨다.

42)목란주(木蘭舟):심양강(潯陽江)의 목란주(木蘭洲)에서 자라는 목란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하는 배인데, 일반적으로 배의 미칭(美稱)으로 쓰인다.

43)혼화(昏花):정신이 어질어질하여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말한다.

44)조종(朝宗):양자강(揚子江)이나 한수(漢水)와 같은 천하의 모든 물은 결국 바다로 향하여 들어간다는 뜻인데, 전하여 모든 속국(屬國)들이 대국(大國)을 우러러 섬기는 것을 말한다.

45)자양(紫陽):송나라의 학자인 주희(朱熹)의 별호(別號)이다.

46)전장(顚張):당나라의 서예가인 장욱(張旭)의 별호이다. 장욱은 초서(草書)를 아주 잘 썼는데, 술이 한껏 취하면 머리털에 먹을 묻혀 미친 듯이 초서를 썼으므로 사람들이 ‘미치광이 장욱[顚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新唐書 卷202 文藝列傳中 張旭

47)조석(祖席):도신(道神)에게 먼 여행길에 무사하기를 비는 제사를 올리는 자리인데, 흔히 떠나가는 사람을 전송하면서 베푸는 잔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48)청상(淸商):상(商)은 오음(五音) 가운데 하나인데, 사시(四時)로 치면 가을에 해당하므로 추성(秋聲)을 상성(商聲)이라고 한다.

49)영주도(瀛洲島):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으로, 여기에는 신선들이 살며 불사약(不死藥)이 있고 새와 짐승이 모두 희며,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50)약수(弱水):선경(仙境)에 있다고 하는 물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기러기의 털조차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51)양관(陽關)에서 마시던 술:양관은 돈황(燉煌)으로 아주 먼 곳이어서 흔히 이곳으로 떠나는 사람을 전별할 때 술 마시며 시를 읊었다. 후대에는 이별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52)신주(神州):중국을 말한다. 전국 시대 학자인 추연(鄒衍)이 중국을 신주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는 중국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53)빙호(氷壺):얼음이 담긴 옥그릇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인품과 덕성이 청백하고 개결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54)양관곡(陽關曲):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를 말한다. 양관은 중국 돈황(燉煌)이다. 이곳은 아주 먼 곳이므로, 흔히 이곳으로 떠나는 사람을 송별하는 노래인 양관삼첩곡(陽關三疊曲)은 이별을 슬퍼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불렸다.

55)천하……쓰고:온 천하가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규격의 수레바퀴를 쓴다는 뜻으로, 전하여 천하가 통일된 것을 뜻한다.

56)구름과……만나니:어진 임금과 훌륭한 신하가 서로 만났다는 뜻으로,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從龍 風從虎]”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57)금란전(金鑾殿)서……노닐고:금란전은 당나라 때 학사(學士)와 문인(文人)들이 있던 궁전 이름으로, 흔히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머리에 붓을 꽂은 것은, 옛날에 사관(史官)이나 간관(諫官)이 기록할 때 편하도록 붓을 귀에 꽂고 조정에 나아갔는바, 사관이나 간관을 가리킨다.

58)강연(講筵)에서……모셨네:황제 곁에서 강론하였다는 뜻이다. 옛날에 상서랑(尙書郞)이 임금에게 아뢸 때에는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하여 계설향(鷄舌香)을 입에 머금었다고 한다.

59)사륜(絲綸):황제의 칙서(勅書)를 형용하는 말로, 예기 치의(緇衣)에 이르기를, “왕의 말이 실과 같으면 나오는 것은 수실과 같으며, 왕의 말이 수실과 같으면 나오는 것은 새끼줄과 같다.[王言如絲 其出如綸 王言如綸 其出如綍]” 하였다.

60)큰……상상되었네:황제를 잘 보좌하는 어진 재상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내가 쇠라면 그대를 숫돌로 삼겠고, 만약 큰 냇물을 건너게 되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겠소.”라고 하면서 자신을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書經 說命上

61)쑥대가……많았거니와:쑥대가 삼 속에서 자라면 저절로 곧아지듯이 함께 지내는 동안 도움을 받은 것이 많았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이르기를, “쑥대가 삼 속에서 자라면 자연히 곧아지고, 흰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똑같이 검어진다.” 하였다.

62)어찌……견주었으리:자신의 자질이 부족하여 서로 대등한 입장이 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63)국……것이리:뒷날에는 국정을 다스리는 재상이 될 것이란 뜻이다. 은 고종(殷高宗)이 신하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내가 만약 술을 만들면 네가 누룩이 되고, 만약 국을 만들면 염매(鹽梅)가 되라.” 하였다. 書經 說命下

64)상태(上台):성좌(星座)의 이름으로, 흔히 재상(宰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65)영주도(瀛洲島)라……취해볼꼬:영주도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을 말한다. 154쪽 주49 참조. 자하주(紫霞酒)는 신선들이 마신다고 하는 술이다.

66)염계(濂溪)……것이리:어린아이들처럼 연꽃의 꽃만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연꽃의 기품까지 좋아한 것이란 뜻이다. 염계는 송나라 도학자 주돈이(周敦頤)의 호이다. 그는 꽃 중에서도 특히 연꽃을 좋아하여 이를 군자(君子)에 비유하면서 애련설(愛蓮說)이라는 글을 짓기도 하였는데, 그 글을 보면 염계가 연꽃에 너무 빠져 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연꽃을 좋아하고 있다.

67)양관삼첩(陽關三疊):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를 말한다. 157쪽 주54 참조.

68)황화(皇華):본디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인데, 임금의 명을 받들고 지방으로 가 임무를 수행하는 관원을 뜻한다. 여기서는 사신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69)해기(駭機):돌연히 촉발한 노기(弩機)라는 뜻으로, 갑자기 발생한 화난(禍難)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後漢書 卷71 皇甫嵩列傳

70)솔과……기뻤네:귀거래사를 지은 진(晉)나라의 도잠(陶潛)은 솔과 국화를 아주 좋아하였다.

71)상안(商顔)……고사리네:상안은 진(秦)나라 말기에 진나라의 학정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고 하는 네 사람의 은사(隱士)인 동원공(東園公), 녹리 선생(甪里先生),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산속에서 풀을 뜯어 먹고 살았다. 수양산(首陽山)은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무왕이 주(紂)를 정벌하는 것을 반대해 간하다가 듣지 않자 도망가서 숨어 살았던 산으로, 이들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72)부상(扶桑):부상은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나무 이름으로, 흔히 해가 뜨는 곳에 위치한 우리나라나 일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일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73)상서(象胥):통역관(通譯官)을 말한다. 주례(周禮) 추관(秋官)에 이르기를, “상서는 오랑캐를 맡으니, 오랑캐 나라의 사신과 연락하며 왕의 말을 전달해 알리는 것을 맡는다.” 하였다.

74)훼복(卉服):풀을 엮어 만든 옷으로, 남방 오랑캐들이 입는 옷이다. 여기서는 일본 사신을 뜻한다.

75)균천(鈞天):균천광악(鈞天廣樂)의 준말로, 신선들이 사는 하늘나라의 음악을 말하는데, 흔히 궁궐의 정악(正樂)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76)잠로(湛露):아주 짙게 내리는 이슬로, 큰 은혜를 뜻한다.

77)왕회(王會):천자에게 조공하기 위하여 제후나 번국들이 모이는 모임을 말한다.

78)중구역(重九譯)이……같네:중구역은 아홉 번의 통역을 거쳐야 의사가 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아주 먼 곳에서 온 사신을 뜻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5에 이르기를,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 월상씨(越裳氏)의 중구역이 와서 주공(周公)에게 흰 꿩을 바쳤다.” 하였다. 한주(漢周)는 한나라와 주나라를 말한다.

79) 둔형시(屯亨詩):주역(周易) 둔괘(屯卦)에, “둔은 크게 통하고 곧아야 이롭다. [屯之亨利貞]”라는 내용을 읊은 시이다. 진룡(震龍)이 감수(坎水)를 얻어 험난을 극복하고 등룡(登龍)한다는 뜻이다.

80)의복(倚伏):화(禍)와 복(福)이 서로 원인이 되어 변천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老子)에 이르기를, “화는 복이 기대어 있는 바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바이다.” 하였다.

81)구환단(九還丹):아홉 차례 달여서 만든 단약(丹藥)으로, 이를 먹으면 도로 젊어져서 신선이 된다고 한다.

82)다시 요동에 도착하다:원 제목은 다시 요동에 도착하여 며칠간 머물러 있다가 비로소 마중 나온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다[還到遼東留數日始得國人來迎]로, 217쪽에 나온다.

83)연경(燕京)에 조회:삼탄은 1459년(세조5) 여름에 호조 참의로 있던 중, 판서 박원형(朴元亨)이 주문사(奏聞使)로서 경사(京師)에 조회하러 갈 적에 부사로 갔다가 가을에 돌아왔다.

84)학야(鶴野):요동 벌판을 말한다. 한나라 때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서는, 천 년이 지난 뒤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시를 지은 고사가 있으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搜神後記

85)금원(金源):여진(女眞)의 후예인 금(金)나라의 별칭이다. 금나라가 요동을 근거지로 하여 일어났으므로 이렇게 칭하는 것이다.

86)백안동(伯顔洞):우리나라에서 북경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지명으로, 원(元)나라 초기에 세조(世祖) 홀필렬(忽必烈)의 신하로서 송나라를 공벌하는 공을 세우고 그 후 태부(太傅)까지 지낸 백안(伯顔)이 군사들을 주둔시켰다고 하는 곳이다.

87)전봉(轉蓬):쑥대가 뭉쳐져서 바람에 굴러가는 것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한다.

88)막북(漠北):고비사막 북쪽의 땅, 즉 외몽고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오랑캐들이 살고 있는 북방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89)밭을……알랴:백성들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면서 태평성대를 즐긴다는 뜻이다. 요 임금 때 어떤 노인이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를 본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요 임금의 덕이여!” 하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서 음식을 먹는데, 요 임금이 무슨 힘을 썼는가.” 하였다. 論衡 藝增

90)사마자장(司馬子長):자장은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의 자이다. 사마천은 천성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남쪽으로 강수(江水), 회수(淮水)를 유람하고 회계(會稽)로 올라가서 우혈(禹穴)을 보고 구의산(九疑山)을 보았으며, 북쪽으로는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제(齊)․노(魯)를 거쳐 양(梁)․초(楚) 지역까지 두루 유람하였다. 이때 얻은 산천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명문장가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91)수역(壽域):사람마다 모두 천수(天壽)를 누리는 태평성대를 말한다.

92)어찌……걱정하랴:북쪽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올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93)의무려산(醫巫閭山):중국 유주(幽州)의 광녕우위(廣寧右衛) 서쪽 5리에 있는 산으로, 중국의 사방을 진압하는 네 개의 큰 산 가운데 하나이다. 사산(蛇山), 반산(盤山), 첨산(添山), 백운산(白雲山), 안산(鞍山) 등 12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讀史方輿紀要 卷37 山東條

94)제우(齊竽):함께 우(竽)를 분다는 뜻으로, 재주와 학식이 없는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사람들에게 우(竽)를 불게 하면서 반드시 300명을 채워 합주로 불게 하였는데, 남곽(南郭)에 사는 처사(處士)가 왕을 위하여 우를 불기를 청하니, 선왕이 몹시 기뻐하였다. 그 뒤에 선왕이 죽고 민왕(緡王)이 즉위하여서 한 사람씩 부는 연주를 듣기 좋아하자, 그 처사가 도망가고 말았다. 韓非子 內儲說上

95)헌면(軒冕):옛날에 대부(大夫) 이상의 고관이 타던 수레와 복식으로, 현달하여 고관이 되는 것을 말한다.

96)태사(太史)가……아니었고:먼 곳을 유람하고 싶은 뜻은 없었다는 뜻이다. 태사는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을 가리킨다. 175쪽 주90 참조.

97)우공(禹貢):서경의 편명으로, 여기에서는 중국 각 지방의 산천 형세와 토산물에 대해 말하였다.

98)하청(河淸) 노래:성인(聖人)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노래를 말한다. 황하의 물은 본디 탁하여서 맑을 때가 없으나, 천 년마다 한 차례씩 맑아지는데, 이는 성인이 태어날 조짐이라고 한다.

99) 나는……의심했고:구해(九垓)는 하늘의 끝을 말한다. 주역 곤괘(坤卦)에 이르기를,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도 누르도다.[龍戰于野 其血玄黃]” 하였다.

100)다시금……의심했네:공공(共工)은 옛날 수토(水土)를 다스리던 사람의 이름이고, 부주산(不周山)은 곤륜산(崑崙山) 서북쪽에 있다고 하는 산 이름이며, 천주(天柱)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기둥을 말한다. 옛날에 공공이 전욱(顓頊)과 더불어 임금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화가 나서 부주산을 들이받자, 천주가 부러지고 지유(地維)가 끊어져 하늘은 서북쪽으로 기울고 땅은 동남쪽으로 꺼졌다고 한다. 淮南子 天文訓

101)율미(栗尾):율서(栗鼠)의 꼬리로 만든 붓을 말한다.

102)비익조(比翼鳥):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짝을 짓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로, 흔히 남녀의 지극한 정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103)쌍검(雙劍):부부가 합장(合葬)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명검을 얻어 하나는 자기가 차고 하나는 장화(張華)에게 주었는데, 그 뒤에 장화가 복주(伏誅)되면서 그 칼도 없어졌다. 그런데 뇌환의 칼을 그의 아들이 차고 다니다가 복건성(福建省) 연평진(延平津)에 이르렀을 때, 차고 있던 칼이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어, 없어졌던 장화의 칼과 합한 후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뒤 사라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104)그댄……걸:요(堯) 임금의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떨어져 반점이 생겼다고 한다. 143쪽 주13 참조.

105)돌에다가……흘렀네:진(秦)나라 때 시황(始皇)이 바다를 건너서 해 돋는 곳을 보고자 하여 돌다리를 놓으려고 하였다. 이때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바다로 돌을 내몰자 돌들이 저절로 바다로 달려갔다. 돌이 빨리 가지 않자 신인이 돌을 채찍질하니 돌에서 피가 흘렀는데, 지금도 그 돌들은 모두 붉다고 한다. 藝文類聚 卷79

106)수졸(戍卒)……불탔으니:진(秦)나라 말기에 백성들이 가혹한 정사에 시달리자, 수졸로 있던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죄를 짓고는 처형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농민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로 말미암아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끝내 진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史記 卷48 陳涉世家

107)백이(伯夷)……노래하였네:백이와 숙제 형제가 주(周)나라를 떠나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살다가 굶어 죽은 고사이다. 166쪽 주71 참조.

108)태사(太史):한나라의 태사 사마천(司馬遷)을 말한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백이열전(伯夷列傳)이 있다.

109)어양역(漁陽驛):당 현종(唐玄宗) 때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켰던 하북성(河北省) 소속의 고을 이름이다.

110)개원(開元)……지켜서:개원은 당나라 현종의 연호이다. 영성(盈成)은 지영수성(持盈守成)의 준말로, 이루어놓은 것을 지킬 때에 물이 가득 찬 그릇을 드는 것처럼 조심해서 잘 지켰다는 뜻이다. 임금이 처음 나라를 세우는 것을 창업이라 하고, 자손이 계승하여 지키는 것을 수성(守成)이라 한다.

111)상원(上苑)이나 화청지(華淸池):상원은 상림원(上林苑)의 준말로, 진(秦)나라 때 세워진 궁궐의 정원인데, 진나라가 패망한 뒤 한나라 무제(武帝)가 증축하였다. 화청지는 섬서성(陝西省)의 여산(驪山) 기슭에 있는 화청궁(華淸宮) 안의 온천으로, 당 현종의 총비(寵妃)인 양 귀비(楊貴妃)가 목욕하던 곳이다.

112)예상우의(霓裳羽衣):당나라 때의 이름난 악곡으로, 개원(開元) 연간에 하서 절도사(河西節度使) 양경충(楊敬忠)이 바친 곡이다.

113)오랑캐……삼고서는:오랑캐 애는 안녹산(安祿山)을 가리킨다. 양 귀비가 안녹산을 양자로 삼고 총애하였다가 끝내는 화를 당하였다.

114)유연(幽燕)……뒤엔:유연 지방은 하북(河北) 지방을 가리키는데, 예로부터 이곳의 군사들은 강성하다고 칭해졌다. 안녹산은 하북 절도사로 나가 병권을 쥐고 있다가 반란을 일으켰다.

115)신주(神州):중국을 말한다. 157쪽 주52 참조.

116)다행히도……돌아오니:안녹산의 반란으로 현종이 촉(蜀) 지방으로 피란 가던 도중 마외(馬嵬)에 이르렀을 때 부로(父老)들이 길을 가로막고 당시에 태자(太子)로 있던 숙종을 머물게 하여 적을 치도록 해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숙종이 곧바로 영무(靈武)로 돌아와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현종을 높여 상황천제(上皇天帝)로 삼고 곽자의(郭子儀)에게 명하여 반란을 평정하게 하였다. 新唐書 卷6 肅宗皇帝本紀

117)이곽(李郭):안녹산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삭방 절도사(朔方節度使) 곽자의(郭子儀)와 하동 절도사(河東節度使) 이광필(李光弼)을 가리킨다. 이 두 사람은 평소에 서로 원한이 있었는데, 안녹산의 난을 만나서는 서로 원한을 잊고 합심하여 난을 평정하였다.

118)곡강(曲江):당나라 현종 때의 명신인 장구령(張九齡)의 별호이다. 장구령은 성품이 준엄하고 곧으며 강하고 방정하였는데, 일찍이 현종에게 “안녹산은 반역할 상을 가진 자이니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될 것입니다.”라고 간쟁하였다. 그러나 현종이 장구령의 말을 따르지 않아 끝내는 화를 당하였다.

119)어양(漁陽)……울렸으랴: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였을 것이란 뜻이다. 비고(鼙鼓)는 기병(騎兵)들이 쓰는 작은북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이르기를, “어양에서 비고 소리 땅 울리며 침입하니, 예상우의곡의 노래 놀라서 다 깨졌다네.[漁陽鼙鼓動地來 驚破霓裳羽衣曲]” 하였다.

120)태진(太眞):양 귀비(楊貴妃)의 이름이다.

121)명황(明皇):현종을 가리킨다.

122)삼보군(三輔郡):한나라 때 서울 근교를 경조(京兆), 풍익(馮翊), 부풍(扶風)의 세 구역으로 나누고는 삼보라고 불렀다. 전하여 서울 근교 지방을 가리킨다. 통주(通州)가 북경과 아주 가까우므로 한 말이다.

123)촉(蜀)……장경(長卿):장경은 한나라 사람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이다. 촉 땅 사람인 사마상여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벼슬하면서 중랑장(中郞將)에 제수되어 자신의 고향인 촉 땅에 사신으로 가자, 촉 땅의 태수 이하가 모두 나와 영접하는 영광을 누렸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124)주(周)나라 본 계자(季子):계자는 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대부인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계찰은 상국(上國)에 두루 조빙하면서 당시의 어진 사대부들과 사귀었으며, 노(魯)나라에 조빙하면서는 주나라의 음악을 듣고 열국의 치란과 흥망을 알았다고 한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125)동이……다행으로:넓은 세상을 보게 되어 다행스럽다는 뜻이다. 해계(醢雞)는 술 단지 위에 날아다니는 초파리로, 좁은 지역에 오래도록 머물러 살아 견문이 좁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126)화익(畵鷁):익(鷁)은 바람을 잘 타는 새로, 뱃사람들이 뱃머리에다 이 새의 그림을 그려 놓는다.

127)쌀……드물었네:물산(物産)이 풍부하여 태평을 누린 시절이 아주 드물었다는 뜻이다. 당나라 태종(太宗) 때에는 쌀이 워낙 풍부해서 쌀 한 말의 값이 겨우 돈 서 푼이었다고 한다.

128)옥서(玉署):중국의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킨다. 진감(陳鑑)이 한림원의 관원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129)노 동년(魯同年):노삼(魯參)으로, 이력은 자세치 않다. 세조실록에 의거하면, 노삼이 그 당시 중국에 가서 송골매 세 마리를 바쳤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리고 이후 1463년(세조9) 1월에 중국에서 바닷가의 짠물이 스민 곳에도 심을 수 있는 볍씨를 가져왔으며, 다시 9월에 중국에 가서 해동청(海東靑)을 바치고 오던 중 1464년 1월에 요동(遼東)에서 죽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130)후온(后媼)께서……있다네:후온은 땅을 말하고, 천옹(天翁)은 하늘을 말한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시에,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늘에는 주성이 없을 것이며,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땅에는 주천이 없으리라.[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한 구절이 있다.

131)도연명(陶淵明)과 유령(劉伶):도연명은 진(晉)나라의 은사(隱士)인 도잠(陶潛)으로, 술과 국화를 몹시 좋아하였으며, 유령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으로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

132)취향(醉鄕):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경지를 말한다. 당(唐)나라 왕적(王績)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두강(杜康)과 의적(儀狄) 이래의 애주가들을 모아 취향기(醉鄕記)라는 주보(酒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王績

133)순우곤(淳于髡)의……술:순우곤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 변사(辯士)로 학문이 깊고 넓어서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찍이 순우곤이 제왕(齊王)에게 말하기를, “촛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다른 손님은 모두 내보내고 나만 남겨두고서 마음대로 마시게 하면 술 한 섬을 먹을 수 있다.” 하였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134)단지 사이 이부(吏部):진(晉)나라에서 이부랑(吏部郞)으로 있었던 필탁(畢卓)을 가리킨다. 필탁이 이부랑이 되었는데, 원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매일처럼 술독에 빠져 직무를 폐하였다. 필탁의 이웃에 사는 낭중(郎中)의 집에 술이 익자 그 집으로 몰래 숨어들어 가서 술을 훔쳐 마시다가 주인에게 들켜 포박당하였는데, 다음 날 보니 이부랑이었으므로 풀어주었다. 그러자 필탁은 다시 주인을 불러 그 술을 마시고 진탕 취한 다음에 돌아왔다. 晉書 卷49 畢卓列傳

135)음중신선(飮中神仙):술을 마신 신선이란 뜻으로, 대표적으로는 당(唐)나라 때 술을 즐겨 마시며 풍류를 만끽하여 음중팔선(飮中八仙)이라 불렸던 이백(李白), 하지장(賀知章), 이적지(李適之), 여양왕(汝陽王) 이진(李璡),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장욱(張旭), 초수(焦遂)가 있는데, 두보(杜甫)가 일찍이 이들을 두고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지었다. 그리고 더 좁은 의미로 보면 곧 이백을 가리키기도 하는바, 두보의 음중팔선가에 “이백은 술 한 말에 시가 백 편인데, 장안의 저잣거리 술집에서 자기도 하고,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으면서, 신이 바로 술에 빠진 신선이라 자칭하였네.[李白一斗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라고 하였다.

136)하마연(下馬宴):말에서 내리자마자 차리는 잔치라는 뜻으로, 사신이 도착하면 베푸는 환영연을 말한다.

137)춘경(春卿):중국 예부의 상서(尙書)를 가리킨다.

138)자하액(紫霞液):신선들이 마신다고 하는 음료인데, 여기서는 아주 좋은 술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139)도로(都盧):서역(西域)에 있는 나라 이름인데, 그곳 사람들은 몸이 가벼워 나무를 잘 탄다고 한다.

140)백희(百戲):어룡놀이, 땅재주 넘기 등 여러 가지 잡기(雜技)를 말한다.

141)청명(靑冥)에서……알겠구나:임금에게 큰 은혜를 받았다는 뜻이다. 청명은 본디 하늘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임금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우로(雨露)는 비와 이슬인데, 역시 임금의 은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142)문궤(文軌):글자와 수레바퀴로, 온 천하가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규격의 수레바퀴를 쓴다는 뜻으로, 전하여 천하가 통일된 것을 뜻한다.

143)경천석주(擎天石柱):자금성(紫禁城) 금천교(禁川橋)의 다리 앞 좌우에 세워져 있는 높이가 7, 8장이나 되는 석주로, 용의 형상을 새겨 꼭대기까지 틀어 올렸다.

144)오운(五雲):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떠 있는 곳으로, 임금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145)사람들은……의심하고:노반(露盤)은 이슬을 받기 위해 동으로 만든 승로반(承露盤)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술에 미혹되어 감로를 받아 마시고서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였다. 이에 건장궁(建章宮)에 신명대(神明臺)를 세우고 동으로 선인장(仙人掌) 모양을 만들어 세워서 동반(銅盤)을 떠받쳐 감로를 받게 하였다. 漢書 卷25 郊祀志上

146)학은……의심하네:화표(華表)는 화표주(華表柱)로, 무덤 앞에 있는 망주석을 말한다. 170쪽 주84 참조.

147)호추(胡雛):되놈으로, 여기서는 당 현종 때 역모(逆謀)를 감행했던 호인(胡人) 안녹산(安祿山)을 가리킨다.

148)무릎……걱정하였으랴:안녹산이 자신의 아들에게 죽을 줄은 걱정도 안 했다는 뜻이다. 무릎 위 애는 안녹산의 아들 안경서(安慶緖)를 가리키는 듯하다. 현종 14년(755)에 안녹산이 범양(范陽)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을 함락하고 자칭 대연황제(大燕皇帝)가 되었다. 그런데 안녹산은 몸이 너무 비대하여 배가 늘어져 무릎 아래에까지 처졌으므로 옷을 입거나 할 때 매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저아(李猪兒)는 어려서부터 안녹산의 곁에서 이런 일 등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안녹산이 자주 매질을 하였으므로, 안녹산에게 원망을 품고 있었다. 또 안녹산의 아들 안경서는 안녹산이 다른 아들을 총애하자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안경서가 이저아를 위협하고 꾀어서 이저아로 하여금 안녹산의 배를 칼로 찔러 죽이게 하였다. 안녹산이 죽은 뒤에 안경서는 다시 사사명(史思明)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사사명이 죽은 후 그 아들 사조의(史朝義)가 뒤를 이었다가 대종(代宗) 원년(763)에 적장 이회선(李懷仙)에 의해 베임으로써 전후 9년에 걸친 난리가 비로소 막을 내렸다. 新唐書 卷225上 逆臣列傳上 安祿山

149)옥호(玉壺)에다 추수(秋水):청정하고 고결한 품격을 지녔다는 뜻이다. 옥호는, 남조(南朝) 송나라의 시인인 포조(鮑照)의 백두음(白頭吟)에 이르기를, “충직하기론 붉은색 밧줄이요, 청정하기론 옥병 속의 얼음일세.[直如朱絲繩 淸如玉壺氷]”라고 한 표현에서 유래된 시어(詩語)이다. 추수는 가을날의 맑은 물을 말한다.

150)형박(荊璞)이야……하거니:좋은 재주는 끝내 드러나게 될 것이란 뜻이다. 형박은 형산(荊山)에서 나는 질이 아주 좋은 옥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초나라의 여왕(厲王)에게 바쳤는데, 여왕은 가짜라 하여 그의 왼발을 베었고, 다시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무왕 역시 알아보지 못하고 오른발을 베었다. 그 뒤에 문왕(文王) 때 변화가 박옥을 안고 3일 밤낮을 피눈물을 흘리며 울자, 문왕이 옥인에게 쪼아보게 하였더니 과연 아주 좋은 보옥이었다. 韓非子 和氏

151)우문(禹門)에선……울리리라:잉어가 용문(龍門)을 올라가는 것처럼 끝내 과거 시험에 급제할 것이란 뜻이다. 우문은 용문을 가리킨다. 중국 황하가 산간지대를 흘러 평야지대로 나오는 곳이 바로 하남성(河南省)의 용문인데, 수세가 매우 험하기로 유명하다. 옛날에 대홍수 시대에 우(禹) 임금이 도끼로 이곳을 쪼개어서 물길을 통하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또 잉어가 이 용문을 올라가면 용이 된다는 말이 전한다.

152)모추자(毛錐子):붓의 이칭(異稱)이다.

153)백두음(白頭吟):악부(樂府) 초조(楚調)의 악곡 이름으로,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에 이르기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무릉(茂陵) 사람의 딸을 첩으로 삼으려고 하자, 탁문군(卓文君)이 백두음을 지어 읊고는 절교를 하였다.” 하였다.

154)패교(覇橋):섬서성(陝西省) 장안의 동쪽에 있는 강인 파수(灞水)에 놓여 있는 다리로, 파교(灞橋) 또는 소혼교(銷魂橋)라고도 한다. 버드나무가 많고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 일찍이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눈이 내리는 속에 비쩍 마른 나귀를 타고 패교에 가서 매화를 구경한 일이 있었으므로, 송나라 소식(蘇軾)의 시에 “또한 보지 못했는가, 눈 속에서 나귀를 탄 맹호연이 이마 잔뜩 찌푸린 채 시 지으며 웅크리고 있는 거를.[又不見 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155)상군(湘君):요(堯) 임금의 딸로 순(舜) 임금의 비(妃)가 된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가리킨다. 143쪽 주13 참조.

156)창염수(蒼髥叟):푸른 수염의 늙은이로, 소나무의 이명(異名)이다.

157)백족존(白足尊):본디는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제자인 담시(曇始)를 가리키는데, 발이 얼굴보다도 더 희고, 진흙을 밟아도 발이 더러워지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이적(異蹟)이 많아 뒤에는 고승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158)월탑(月榻):달빛이 스며들어 비치는 의자나 자리를 말한다.

159)육진(六塵):불교 용어로, 빛,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을 말한다.

160)회암사(檜巖寺):양주(楊州)의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사찰로, 목은(牧隱)은 이곳의 기문(記文)을 짓기도 하였으며, 이곳에서 많은 시를 지었다.

161)저녁……생각:붕우 간에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 그리워하는 정을 뜻하는 말이다. 두보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 이르기를, “위수 북쪽의 봄날 나무이고, 강 동쪽의 저물녘 구름이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한 구절에서 온 말이다.

162)정운(停雲):멈춰 있는 구름이라는 뜻으로, 정겨운 벗을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시 가운데 정운(停雲) 4수가 있는데 그 자서(自序)에 “정운은 친구를 생각하는 시이다.”라고 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163)역사(驛使):공문서나 서신을 전달하는 사람을 말한다. 남북조(南北朝) 시대 송나라의 육개(陸凱)와 범엽(范曄)이 서로 친하게 지냈는데, 육개가 강남(江南)에서 매화 한 가지를 장안에 있는 범엽에게 부쳐 보내면서 시를 짓기를, “역사를 만나서 꽃가지 꺾어, 농두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주누나. 강남땅엔 있는 것이 별로 없기에, 애오라지 한 가지의 봄을 보내네.[折花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寄一枝春]” 하였다. 太平御覽 卷970

164)십신(十臣):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을 도와서 주(紂)를 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이 모두 열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모두 주나라의 큰 공신이 되었다.

165)삼걸(三傑):한 고조(漢高祖)를 도와서 천하를 통일시킨 훌륭한 세 인물로, 장량(張良), 소하(蕭何), 한신(韓信)을 가리킨다.

166)범의……구제했네: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하여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제하였다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반초(班超)가 오랑캐를 밤에 습격하면서 말하기를,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범의 새끼를 얻지 못한다.[不入虎穴 不得虎子]” 하였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167)고기와……했다네:임금과 신하 사이의 정이 아주 도타웠다는 뜻이다. 삼국 시대 촉(蜀)나라의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에게 이르기를, “내가 공명(孔明)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168)옥촉(玉燭):사철의 기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데, 임금의 덕이 옥처럼 아름다워서 사시 화기의 상서를 이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아(爾雅) 석천(釋天)에 이르기를, “사시가 순조로운 것을 옥촉이라고 한다.” 하였다.

169)책훈(策勳)하니……맹세했고:책훈은 공신을 책봉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공신을 봉할 적에 흰말을 잡아 희생으로 쓰고, 태산이 닳아 숫돌처럼 작아지고 황하가 말라 띠처럼 될 때까지 영원히 국가와 운명을 같이할 것을 맹세하였다. 史記 卷18 高祖功臣侯者年表

170)신한(宸翰):임금이 직접 지은 글이나 직접 쓴 글씨를 말한다.

171)십행 일찰(十行一札):임금이 내리는 조서(詔書)를 의미한다. 한나라 때 무제(武帝)가 조서를 내릴 적에 한 장의 종이에 열 줄로 가늘게 글을 써서 내린 데에서 나온 말이다.

172)이전 삼모(二典三謨):이전은 서경요전(堯典)순전(舜典)을 가리키고, 삼모는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을 가리킨다.

173)하청(河淸) 노래:성인(聖人)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노래를 말한다. 186쪽 주98 참조.

174)삼장(三長):사관(史官)으로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장점, 즉 높은 재지(才智), 깊은 학문, 뛰어난 식견(識見)을 말한다.

175)상당군(上黨君):한명회(韓明澮)의 봉호(封號)이다. 한명회는 어린 단종이 즉위하여 김종서(金宗瑞) 등 대신이 집권하자, 친구인 교리(校理) 권람(權擥)의 주선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만나게 되었으며, 이후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의 심복 참모로서 큰 공을 세워 정난 공신(靖難功臣) 1등에 봉해졌고, 세조가 즉위한 뒤 좌익 공신(佐翼功臣) 1등에 봉해졌으며, 1456년(세조2)에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이조 판서에 오르고 상당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영의정을 지냈다.

176)요지(瑤池) 잔치:요지는 곤륜산(崑崙山)에 있다고 하는 선경(仙境)으로,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곳인데, 서왕모가 이곳에서 신선들을 모아서 잔치를 하였다고 한다.

177)장자방(張子房)이……으뜸이고:장자방은 장량(張良)을 가리키고, 삼걸(三傑)은 장량, 소하(蕭何), 한신(韓信)을 가리킨다.

178)중령(中令)……진동했네:중령은 당나라의 명장으로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곽자의는 숙종(肅宗) 때 삭방 절도사(朔方節度使)가 되어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해 1등 공신이 되어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졌으며, 대종(代宗) 영태(永泰) 원년(765)에 복고(僕固)와 회은(懷恩)이 토번(吐蕃), 회흘(回紇), 당항(黨項) 등의 종족을 꾀어 침입해 오자 이를 격파하였으며, 덕종(德宗) 때 상보(尙父)의 호를 하사받고 태위 중서령(太尉中書令)이 되어 천하의 안위(安危)를 한 몸에 걸머지고 있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세상에서는 곽 분양(郭汾陽) 또는 곽 영공(郭令公)이라고 칭한다. 新唐書 卷137 郭子儀列傳

179)연연산(燕然山)에……되리:오랑캐를 정벌하는 큰 공을 세울 것이란 뜻이다. 연연산은 몽고 지방에 있는 산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고도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에게 명해 명(銘)을 짓게 한 다음 그곳에 비석을 세웠다. 後漢書 卷23 竇憲列傳

180)장수유식(藏修游息):장수는 항상 학문을 닦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유식은 정해진 과정에 따라 학문을 닦는 이외의 쉬는 시간에도 학문에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한다.

181)저녁……생각:붕우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정을 뜻하는 말이다. 219쪽 주161 참조.

182)오고(五袴)와 양기(兩岐)의 노래:오고는 바지가 다섯 벌이란 뜻이고, 양기(兩岐)는 보리 한 줄기에 이삭이 두 갈래 달린 것인데, 모두 수령이 정사를 잘하는 것을 칭송하는 노래이다. 후한(後漢) 때 화재를 방비하기 위하여 밤에 불을 피우는 것을 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괴롭게 여겼는데,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蜀郡太守)가 되어서 불을 피우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그러자 백성들이 편하게 여겨서 “염숙도(廉叔度)가 온 것이 어찌 이리 늦었는가. 불 피우는 것을 금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편안하네. 평생토록 옷 없다가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이네.” 하였다. 또 후한 때 장감(張堪)이 어양 태수(漁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여 노래하기를, “뽕나무엔 붙은 가지가 없고 보리 이삭은 두 갈래가 생겼네. 장군이 고을을 다스리니 즐거움을 감당치 못하겠네.[桑無附枝 麥穗兩岐 張君爲政 樂不可支]” 하였다. 後漢書 卷31 廉范列傳, 張堪列傳

183)근궁(芹宮):성균관의 별칭이다. 시경 노송(魯頌) 반수(泮水)에 이르기를, “반수에서 미나리를 캐리로다.”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184)주미(麈尾):고라니 꼬리털로 만든 먼지떨이인데, 흔히 청담(淸談)을 나누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진(晉)나라 때 청담을 논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손에 쥐고 휘두르면서 청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185)전봉(轉蓬):쑥대가 뭉쳐져서 바람에 굴러가는 것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한다.

186)삼백 편의 시:시경에 나오는 시를 말한다. 시경에 나오는 시가 모두 311편인데, 이 가운데 생시(笙詩) 5편과 노송(魯頌) 6편을 제하면 꼭 300편이 된다.

187)두십천(斗十千):아주 맛 좋은 술을 말한다. 십천은 만 전(錢)의 돈을 가리킨다. 왕유(王維)의 소년행(少年行)에, “신풍의 맛 좋은 술은 한 말에 십천인데, 함양의 유협들은 대부분이 소년이로세.[新豊美酒斗十千 咸陽游俠多少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88)성사(星槎):본디는 한나라 때 장건(張騫)이 사신으로 가면서 탄 배를 가리키는데, 흔히 사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한나라 때 무제(武帝)가 장건으로 하여금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을 타고 가다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났다고 한다. 荊楚歲時記

189)상원(上苑):상림원(上林苑)의 준말로, 후대에는 궁궐의 동산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197쪽 주111 참조.

190)경개(傾蓋):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서 수레의 휘장을 기울이고서 잠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이르기를, “공자가 담(郯)에 가서 길에서 정자(程子)를 만나서는 경개하고서 종일토록 이야기하고는 서로 몹시 친해졌다.” 하였다.

191)좋은……던져지고:아주 아름다운 시를 지었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시문(詩文)을 잘 지었는데, 일찍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어 범영기(范榮期)에게 보이면서 “그대는 이것을 땅에 던져보라. 응당 쇳소리가 날 것이다.” 하였다. 晉書 卷56 孫綽列傳

192)정운(停雲):멈춰 있는 구름이라는 뜻으로, 정겨운 벗을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219쪽 주162 참조.

193)태액지(太液池):한나라 때 장안에 있던 궁전인 건장궁(建章宮)의 북쪽에 있던 연못이다. 후대에는 흔히 궁궐 안에 있는 연못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194)장대(章臺):한나라 때 장안에 있던 궁전 이름인데, 그 궁전 아래에는 화류가(花柳街)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버드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고 한다.

195)가풍대(歌風臺):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인 패현(沛縣)의 동북방에 있는 포하(泡河) 가에 있는 누대 이름으로, 한 고조가 천하를 통일하고 돌아와서 옛날에 알던 사람들과 자제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면서 대풍가(大風歌)를 노래했던 곳이다.

196)백이 산하(百二山河)……무너졌고:험고한 지형을 가지고 있던 진(秦)나라가 한 고조에게 무너졌다는 뜻이다. 백이 산하는 산천의 형세가 아주 험고한 것을 뜻한다. 사기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이르기를, “진나라는 지형이 아주 험고한 나라로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바, 진나라의 군대 100만은 다른 나라의 군대 200만과 마찬가지이다.” 하였다.

197)오강(烏江)……말았구나:초나라의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에게 패한 것을 말한다. 오강은 항우가 죽은 곳이다. 항우가 해하(垓下)의 싸움에서 패하고서 간신히 탈출하여 오강에 이르렀으나, 사세가 이미 어긋났음을 알고 자신의 옛 친구로서 한나라의 기사마(騎司馬)로 있던 여마동(呂馬童)에게 “한나라에서 내 머리를 천 금과 만호(萬戶)의 식읍(食邑)으로 사들인다 하니 내가 그대의 덕이 되리라.” 하고 스스로 자살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198)못……울고:한 고조(漢高祖)가 일찍이 술에 취해 길을 가다가 길을 막고 있는 흰 뱀을 칼로 쳐서 죽였다. 그날 밤 어떤 노파가 길에서 울고 있다가 말하기를, “흰 뱀은 나의 아들로 백제(白帝)인데, 뱀으로 화해 있다가 적제(赤帝)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하였는데, 백제는 진나라를 가리키고, 적제는 한나라를 가리킨다. 漢書 卷1上 高帝紀

199)어조연(魚藻筵):임금이 신하들에게 베풀어주는 주연(酒宴)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어조(魚藻)에, “물고기가 마름 풀 속에 있으니, 그 머리가 크기도 하도다. 왕께서 호경에 계시니, 즐거워서 술을 마시는도다.[魚在在藻 有頒其首 王在在鎬 豈樂飮酒]” 하였는데, 이는 주(周)나라 임금이 제후들에게 주연을 베풀어주는 것을 읊은 시이다.

200)교룡기(蛟龍旗):임금이 거둥하여 군사들을 사열할 때 들고 가는 깃발이다.

201)장릉(長陵):한 고조의 능 이름이다.

202)희마대(戲馬臺):강소성(江蘇省) 동산현(銅山縣)의 남쪽에 있는 누대(樓臺)로, 초한(楚漢) 시절에 항우(項羽)가 세운 누대인 양마대(凉馬臺)를 말한다.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자칭하고는 이 성의 동쪽에 도읍을 정했다.

203)일찌감치……두었다네:유랑(劉郞)은 한 고조 유방(劉邦)을 가리킨다. 처음에 항우와 유방이 진나라를 칠 적에 먼저 함양을 함락하는 사람이 왕이 되기로 하였는데, 유방이 먼저 함양을 함락하였으나 항우가 이를 시기하여 유방을 한쪽 구석에 치우쳐 있는 한중(漢中)의 왕이 되게 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204)제홍(啼紅):붉은 눈물이라는 뜻으로, 여인이 이별하면서 흘리는 눈물을 말한다. 위(魏)나라 때의 미녀인 설영운(薛靈芸)이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는데, 곡습(谷習)이 상산 태수(常山太守)로 있을 적에 위나라 원제(元帝)가 미녀를 뽑아 들이라고 명하자, 천 금을 주고 설영운을 사서 황제에게 바쳤다. 설영운이 그 소식을 듣고는 매일 눈물로 보냈으며, 수레를 타고 떠나기 직전에 옥병에다 눈물을 받아 부모에게 주었는데 눈물이 모두 붉은색으로 변하였고, 서울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병 속에 든 눈물이 피로 변하였다. 拾遺記 卷7

205)천망(天亡)이니……한하리오:천망은 하늘이 자신을 망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항우가 유방의 군사와 더불어 해하(垓下)에서 싸워 패하고 100여 기(騎)만을 거느리고 도망치다가 길을 잃었는데, 어떤 농부에게 길을 물으니, 농부가 항우임을 알아보고 거짓으로 속여서 왼쪽으로 가라고 하였다. 이에 항우가 왼쪽으로 갔다가 늪지대에 빠져 유방 군사들이 추격해 올 수 있었다. 그러자 항우가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가 지금까지 8년인데, 그동안 70여 차례나 싸우면서 일찍이 패한 적이 없어 드디어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곤궁하게 된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하고는, 남은 군사들과 함께 결사적으로 싸워 겨우 포위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史記 卷7 項羽本紀

206)운(運)……부끄러우리라:유방을 죽이라고 한 범증(范增)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것이란 뜻이다. 아보(亞父)는 범증을 가리킨다. 범증은 처음에 항우를 섬겼다가 나중에 유방을 섬겨 패업을 이루게 하였다. 처음에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다툴 적에 유방이 먼저 진나라의 서울인 함양(咸陽)을 함락한 뒤 군사를 파견하여 함곡관(函谷關)을 지켰는데, 얼마 뒤에 항우가 40만의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와서 홍문(鴻門)에 주둔하였다. 이때 유방이 직접 홍문으로 와서 항우를 만나보았다. 이에 항우와 유방이 술을 마셨는데, 연회 도중에 범증이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라는 신호를 몇 번 보냈으나, 항우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이에 범증이 항장(項莊)에게 명하여 유방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항백(項伯)이 일어나서 칼춤을 추면서 몸으로 유방을 가렸다. 최후에는 번쾌(樊噲)가 칼을 들고 방패를 잡고서 뛰어 들어가자, 유방이 그 틈에 그 자리를 벗어나 뒤에 패업을 이룰 수 있었다. 史記 卷7 項羽本紀

207)해가……가니:오추마(烏騅馬)는 항우가 타던 검은 말이다.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포위되어 곤경에 빠졌을 때에 밤에 일어나 사랑하는 우(虞) 미인과 술을 마시며 노래 부르기를,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건만, 때가 불리(不利)함이여, 오추마가 가지 않누나.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할까.” 하니, 우 미인이 화답하기를, “대장께서 의기(意氣)가 다하였으니 천첩(賤妾)이 어찌 사오리까.” 하고는 먼저 칼을 받아 자살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208)여러……하였구나:항우가 한나라 군사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하여 오강(烏江)에 당도하니, 정장이 배를 대고 기다리다가 “대왕은 속히 건너시오. 강동(江東)도 지방이 천 리니 왕 노릇할 만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항우가 말하기를, “내가 처음 강동에서 8천 자제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왔다가 지금 한 사람도 같이 가는 자가 없으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부로(父老)들을 대한단 말이냐.” 하고는, 스스로 칼을 찔러 자살하자, 유방 휘하의 왕예(王翳)가 머리를 취하고, 나머지 여러 군사들이 항우의 시신을 차지하려고 다투었는데, 양희(楊喜), 여마동(呂馬童), 여승(呂勝), 양무(楊武)가 각각 한 부분씩을 차지하여 이들은 모두 후(侯)에 봉해졌다. 史記 卷7 項羽本紀

209)어원(御苑):궁중의 장원(莊園)으로, 임금이 사냥하는 곳이다.

210)기문(期門):왕을 호종(扈從)하는 호위병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미행(微行)할 때면 기사(騎射)에 능한 무사들과 궁전 문 앞에서 몰래 만나기로 약속하고 출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기문이라고 불렀다. 그 뒤 한 평제(漢平帝) 때에 관명(官名)을 호분랑(虎賁郞)으로 고쳤는데, 이들 중에서 명장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漢書 卷28 地理志下

211)여강(呂强):후한(後漢) 영제(靈帝) 때의 환관으로, 자는 한성(漢盛)이다. 어려서 소황문(小黃門)이 되었으며,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자 먼저 측근의 탐관오리를 숙청할 때 극력 간청하여 당인(黨人)을 구한 공이 있다. 뒤에 모함에 걸려 자살했다.

212)역사(力士):당 현종(唐玄宗) 때의 환관(宦官)으로 이름을 떨친 고역사(高力士)를 가리킨다. 고역사는 소잠(蕭岑) 등을 평정한 공으로 은총과 신임이 지극하여 벼슬이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에까지 이르렀다.

213)하루저녁……꿈꾸었거니:어느 날 저녁에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뜻이다. 괴안(槐安)은 한바탕의 헛꿈이라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고사에 나오는 나라이다. 당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술에 취하여 회화나무 아래에서 잠을 잤는데, 꿈에 대괴안국(大槐安國)의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리면서 20년간이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깨어나서 보니, 남가군은 바로 회화나무 남쪽 가지 아래에 있는 개미굴이었다고 한다. 南柯

214)죽사(竹史):청사(靑史)로, 사적(史籍)을 말한다. 고대에는 죽간(竹簡)에 역사를 기록하였으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215)영친연(榮親宴):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베푸는 잔치이다. 권람(權擥)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다가 35세 되던 해인 1450년(문종 즉위년)에 비로소 과거에 응시하여 한꺼번에 초시(初試), 회시(會試), 전시(殿試)에 급제하였는데, 전시에서는 본디 4등이었으나 장원으로 급제한 김의정(金義精)의 출신이 한미하다는 이유로 장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영친연을 베푼 것은 이해가 아니라, 아래에 나오는 시의 내용이나 신숙주(申叔舟)가 지은 권람의 묘비명(墓碑銘)으로 볼 때 이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에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216)나조(羅祖)에서……이어지다:나조는 신라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를 가리키며, 선련(蟬聯)은 고관대작이 계속 이어져 나오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 왕족을 뜻하기도 한다.

217)처음으로……하사받았다네: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본성이 김씨(金氏)인데, 안동의 호족(豪族)으로 있던 중 930년(태조13)에 고려 태조가 견훤(甄萱)과 싸울 적에 안동 장씨의 시조인 장길(張吉), 안동 김씨의 시조인 김선평(金宣平)과 함께 태조를 도와 고창군(高昌郡) 병산(甁山)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고려는 이 전투로 전세에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이에 태조가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안동을 식읍(食邑)으로 내림과 동시에 권씨(權氏) 성을 내리고는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하였으며, 대상(大相)이라는 관계(官階)를 내려주었다.

218)시례(詩禮):시경예기로, 자식이 부친에게서 받은 교훈을 말한다. 공자가 그의 아들인 백어(伯魚)를 보고 시경예기를 배우라고 하였다.

219)초당(貂璫):초미(貂尾)와 황금(黃金)으로 된 구슬이 달려 있는 관(冠)으로, 한나라 때 내시(內侍)들이 이 관을 썼으므로, 전하여 환관(宦官)의 별칭이 되었다. 여기서는 고관(高官)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220)한……교육:한나라의 위씨(韋氏) 집안은 대대로 경학만을 부지런히 익혀, 그 학문의 힘으로 모두 정승이 되었다.

221)만석(萬石)으로 이름 칭함:한나라 석분(石奮)의 집안을 말한다. 석분과 그의 네 아들이 모두 2천 석(石)의 관직에 이르렀으므로 경제(景帝)가 석분에게 내린 호(號)로, “만석군의 질행(質行)은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의 제유(諸儒)들도 모두 미칠 수 없다.” 하였다. 史記 卷103 萬石張叔列傳

222)구군(九君):안동 권씨인 권보(權溥:1261~1364)는 고려 때에 주자학 발전의 선구적인 학자로, 사서집주(四書集註), 은대집(銀臺集), 효행집(孝行集) 등의 저서를 남긴 청백리(淸白吏)였으며,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권준(權準)은 고창부원군(古昌府院君)에, 권종정(權宗頂)은 광복군(廣福君)에, 권고(權皐)는 영가군(永嘉君)에, 권후(權煦)는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권겸(權謙)은 복안부원군(福安府院君)에 봉해져 다섯 형제가 봉군(封君)되었으며, 사위인 이제현(李齊賢)은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왕숙(王璹)은 순정대군(順正大君)에, 왕순(王珣)은 회안대군(淮安大君)에 봉군되어 ‘당대구봉군(當代九封君)’으로 명성을 떨쳤다.

223)큰……태어나니:세상을 울릴 만한 큰 인재는 오백 년마다 태어난다고 한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오백 년마다 반드시 왕자가 나오니, 그사이에는 반드시 세상에 유명한 자가 있다.[五百年 必有王者興 其間必有名世者]” 하였는데, 오백 년마다 반드시 왕자가 나왔다는 것은 요순(堯舜)으로부터 탕(湯)까지가 오백 년이고, 탕으로부터 문왕(文王)․무왕(武王)까지가 오백 년이므로 오백 년 만에 반드시 왕자가 나온다고 한 것이다.

224)문충공(文忠公):조선 태조를 도와 조선의 기반을 확립한 권근(權近:1352〜1409)의 시호이다.

225)찬후(酇侯)의……맹세했고:찬후는 한나라 때 삼걸(三傑) 중의 한 명으로 고조(高祖)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공을 세워 공신에 봉해진 소하(蕭何)의 봉호(封號)이다. 소하는 고조가 한왕(漢王)으로 있으면서 공전(攻戰)에 주력할 적에 승상(丞相)으로서 군량과 병사를 끊임없이 조달하는 큰 공을 세웠다. 또 옛날에 임금과 공신(功臣)이 회맹(會盟)을 할 적에 산하지맹(山河之盟)을 맺었다. 221쪽 주169 참조.

226)사마(司馬)……알았네:사마는 송나라 때의 명상(名相)으로 이름을 떨친 사마광(司馬光)을 말한다. 사마광이 재상으로 있다가 물러나 낙양(洛陽)에서 살았는데, 천하 사람들이 모두 진재상(眞宰相)이라고 하였으며, 시골 사람들까지도 모두 사마 상공(司馬相公)이라고 불렀다. 소식(蘇軾)이 사마광을 두고 지은 시에, “심부름하는 군사도 사마를 알고, 아동들도 군실(君實)을 외운다.” 하였다. 宋史 卷336 司馬光列傳

227)대아(大雅):덕이 높으면서 큰 재주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228)고황(高皇)께서 지은 어제시(御製詩):고황은 명나라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를 가리킨다. 권근이 사신으로 갔을 적에 명 태조가 불러 보고는 세 수의 시를 지어 하사해 주었는데, 압록강에 제하다[題鴨綠江], 고려의 고경[高麗古京], 사행이 요동을 지나다[使經遼左]라는 제목의 시이다. 시는 양촌집 권수(卷首)에 실려 있다.

229)문경공(文景公):권제(權踶:1387〜1445)의 시호이다. 권제는 권근의 아들이고, 권람의 아버지로, 자가 중의(仲義)․중안(仲安)이고, 호는 지재(止齋)이다. 이조 판서, 예조 판서, 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냈으며, 고려사(高麗史) 찬수에 참여하였다.

230)기구(箕裘):조상들의 세업(世業)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쇠를 잘 불리는 자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고, 활을 잘 만드는 자의 아들은 반드시 키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 한 데서 나온 말이다.

231)대려(帶礪):공신을 책봉할 때 하는 맹세이다. 221쪽 주169 참조.

232)학문……뒤따랐고:사관(史官)의 재주가 있었다는 뜻으로, 권제가 고려사를 찬수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마사(馬史)는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를 가리킨다. 삼장(三長)은 221쪽 주174 참조.

233)관직……다가갔네:팔좌(八座)는 재신급(宰臣級)의 8명의 고위 관료로, 각 시대마다 지칭하는 바가 약간씩 다른데, 동한 시대에는 육조(六曹)의 상서와 영(令), 복야(僕射)를 말하였다. 권제가 판서를 지냈으므로 한 말이다. 태전(台躔)은 성좌(星座)의 이름으로, 삼태(三台)를 말하는데, 삼태는 상태(上台)․중태(中台)․하태(下台)로, 삼정승(三政丞)을 의미한다.

234)하늘에서……하였거니:권근이 예문관 대학사를 지내고, 권제가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으며, 권람이 집현전 대제학을 지냈으므로 한 말이다.

235)계원(桂苑)……비치었네:계원은 계방(桂坊)과 같은 말이다. 옛날에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것을 ‘계수나무를 꺾었다.’라고 하였으므로, 이를 인하여 계수나무가 과거시험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권제가 태종 14년(1414)에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권람이 향시와 회시(會試)에서 모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이어 전시(殿試)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236)비조(鼻祖)께선……치켜세웠는데:비조는 권행(權幸)으로, 권행이 고려 태조를 도와 견훤을 물리치는 공을 세운 것을 말한다. 240쪽 주217 참조.

237)이손(耳孫):운손(雲孫)과 같은 말로, 먼 후대의 후손을 말한다.

238)삼방(三榜):과거(科擧)의 초시(初試), 회시(會試), 전시(殿試)를 말한다.

239)기(夔):순(舜) 임금 때의 어진 신하로, 음악을 맡은 관원이었는데, 후대에는 임금을 잘 보필하는 어진 신하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240)나쁜……어둑하였는데:문종(文宗)이 죽고 어린 단종(端宗)이 즉위하자, 권력이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등 대신들의 손에 들어가고, 안평대군(安平大君)이 대신들과 결탁하여 세력을 키워가던 상황을 말한다. 이에 한명회(韓明澮)와 권람 등이 수양대군(首陽大君)과 함께 집권을 모의하였다.

241)친히……올렸다네:일곡(日轂)은 해 바퀴로, 흔히 임금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바, 일곡을 붙잡았다는 것은 임금을 보좌하여 세웠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 것을 가리킨다.

242)괴당(槐堂)에서……전하였고:괴당은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은 당으로, 송나라 때에 왕호(王祜)가 자기 마당에 손수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말하기를, “내 자손은 반드시 삼공이 될 것이다.”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의 둘째 아들 왕단(王旦)이 재상에 올랐다. 古文眞寶後集 卷8 三槐堂銘 세 정승은 권씨 집안에서 세 정승이 잇달아 나왔으므로 한 말이다.

243)기린각(麒麟閣)에……공이었네:기린각은 공신들의 화상을 모셔놓은 전각을 말한다. 한나라 선제(宣帝) 때 곽광(霍光) 등 11명의 공신 화상을 그려서 미앙궁(未央宮) 안에 기린각을 짓고 모시어 그들의 공적을 기렸다. 권람은 정난 공신(靖難功臣)과 좌익 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훈되었다.

244)분양(汾陽)같이……보전하리:분양은 당나라 장수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222쪽 주178 참조. 권람 역시 세조를 도와 여러 차례 공을 세운 덕으로 만년에는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남산 아래에 화려한 집을 짓고 살았다.

245)북당(北堂):부모님이 계신 집을 말한다.

246)채의(彩衣)……둘렀으며:높은 관직에 올라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는 뜻이다. 채의는 색동옷으로, 옛날에 초나라의 효자인 노래자(老萊子)가 일흔 살이 되어서도 두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하여 어린애처럼 색동저고리를 입고서 새 새끼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놀았다. 北堂書鈔 卷129 황금 띠는 고관이 차는 띠이다.

247)지란(芝蘭):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남의 집안의 우수한 자제(子弟)를 예찬하는 말이다.

248)난형(難兄)에다……있구나:여러 자손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뜻이다. 동한(東漢) 때 진식(陳寔)에게 뛰어난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인 진기(陳紀)는 자가 원방(元方)이고, 동생인 진심(陳諶)은 자가 계방(季方)으로, 모두 문장의 재주가 있어서 사람들이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62 陳寔列傳

249)김장(金張):한나라 때의 김일제(金日磾)와 장안세(張安世)를 가리킨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당대에 현달하였으며, 7대의 후손들까지 현달하였으므로, 흔히 현달한 관원의 대명사로 쓰인다.

250)금방(金榜):전시(殿試)의 합격자를 게시하는 방(榜)이다.

251)용손(龍孫)께서……놀랐으며:임금이 직접 헌수하였다는 뜻이다. 용손은 임금을 뜻하고, 코가 높다는 것은 한나라 고조(高祖)인 유방의 코가 아주 컸는바, 임금이 될 관상임을 뜻한다. 신숙주가 지은 권람의 묘비명에 “영친연을 베풀 때 임금이 영의정과 더불어 또한 잔치에 참석하여 친히 대부인에게 축수하니, 영화가 온 세상에 빛났다.” 하였다. 東文選 卷121 權擥碑銘

252)하액(霞液)은……내려왔네:대궐에서 술을 하사해주었다는 뜻이다. 하액은 아주 좋은 술을 말하고, 자신(紫宸)은 임금이 있는 궁궐을 뜻한다.

253)전두(纏頭):노래나 춤을 추는 예인(藝人)에게 주는 재물로, 행하(行下)를 말한다.

254)태사(太師):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인해 태사가 되었다. 안동에 삼태사묘(三太師廟)가 있다. 240쪽 주217 참조.

255)문정공(文正公):권보(權溥)의 시호(諡號)이다. 241쪽 주222 참조.

256)지재공(止齋公):권제(權踶)를 가리킨다. 242쪽 주229 참조.

257)사씨(謝氏) 집안 지란옥수(芝蘭玉樹):훌륭한 자식들을 말한다. 사씨 집안은 진(晉)나라 때 태부(太傅)를 지낸 사안(謝安)의 집안을 말하는데, 이 집안에는 자질이 우수한 자제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란옥수는 남의 집안의 우수한 자제(子弟)를 예찬하는 말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258)녹명(鹿鳴) 노래:과거에 급제한 것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옛날에 향시(鄕試)를 치른 다음 날, 그 고을의 장리(長吏)가 거인(擧人)과 시관(試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주었는데, 그 잔치에서 시경녹명을 노래했으므로 이를 녹명연(鹿鳴宴)이라 하였다.

259)범상(范相):송나라의 명신인 범중엄(范仲淹)을 가리키는 듯한데, 범중엄이 삼장에서 잇달아 장원한 고사는 찾을 수가 없다.

260)거룩한……이뤘거니:거룩한 분은 세조(世祖)를 가리키는 말로,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공을 이룬 것을 말한다.

261)소장(蕭張):한 고조(漢高祖)를 도와서 천하를 통일시킨 소하(蕭何)와 장량(張良)을 가리킨다.

262)수성(壽星):남쪽에 떠 있는 별인 노인성(老人星)으로,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별이라고도 한다.

263)마씨(馬氏)……나았으니:마씨는 삼국 시대 촉(蜀)나라의 마량(馬良) 집안을 말하고, 백미(白眉)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아들을 말한다. 마량은 형제가 다섯으로 모두 재명(才名)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에 모두 상(常) 자가 들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 마량이 가장 뛰어났는데, 마량의 눈썹이 희었으므로 사람들이 “마씨의 오상(五常) 가운데 백미가 가장 뛰어나다.” 하였다. 三國志 卷39 蜀書 馬良傳

264)채의(綵衣):색동옷으로, 색동옷을 입고서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245쪽 주246 참조.

265)훤당(萱堂):훤(萱)은 원추리로, 흔히 다른 사람의 어머니를 칭할 적에 이 풀을 끌어다가 쓰는바, 어머니가 있는 집을 말한다.

266)이원(梨園):본디는 당나라 현종(玄宗)이 속악(俗樂)을 익히게 했던 곳인데, 전하여 악공들이 있는 곳을 말한다.

267)청상(淸商):청상악(淸商樂)으로, 본디 고대 한족(漢族)의 민간 음악인데, 여기서는 아름다운 음악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268)내주(內廚):궁궐 안의 주방(廚房)을 말한다.

269)일표(日表):용안(龍顔)으로, 임금의 얼굴을 말한다.

270)당 태종이……차렸었네:진왕(秦王)은 당 태종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의 봉호(封號)이다. 왕규(王珪)는 본디 태자인 이건성(李建成)의 세마(洗馬)로 있으면서 태자를 섬기던 인물이었는데, 태종이 형 이건성을 죽이고 황제에 오른 뒤에 위징(魏徵)과 함께 태종에게 등용되어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구당서신당서왕규열전(王珪列傳)을 보면 태종이 왕규의 집에 갔을 때 왕규의 어머니가 머리칼을 잘라 술상을 차렸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단지 방현령과 위징 등이 왕규의 집에 갔을 적에 왕규의 어머니 이씨가 술상을 차려주고 두 사람의 관상을 살펴보았다는 이야기만 나온다. 삼탄이 이곳에서 한 말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가 없다. 新唐書 卷98 王珪列傳

271)분양(汾陽):당나라 장수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222쪽 주178 참조.

272)맹자(孟子)……규범: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던 맹자(孟子) 어머니의 좋은 규범을 말한다.

273)내가……얻으리오:삼탄 자신의 문장 솜씨가 졸렬하여 제대로 형용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서까래와 같이 큰 붓은 문장 솜씨가 아주 뛰어난 것을 뜻하는 말이다. 동진(東晉)의 왕순(王珣)이 재학(才學)과 문장으로 효무제(孝武帝)의 총애를 받아 상서성(尙書省)의 고위직에 있을 때 어느 날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서까래처럼 큰 붓을 줬는데, 꿈을 깨고 옆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는 필시 큰 문장을 지을 일이 있을 징조이다.”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효무제가 죽었는데, 효무제의 애책(哀冊)과 시의(諡議)를 왕순이 모두 맡아 지었다. 晉書 卷65 王珣列傳

1)조개(皀蓋):검정 비단으로 만든, 수레 위에 치는 일산(日傘)을 말하는데, 지방 관원이 행차할 때의 의장이다.

2)헌지(軒墀):조정의 섬돌을 말하는데, 전하여 대궐 안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3)지극(枳棘)……됐네:뛰어난 재주를 가지고서 낮은 관직에 제수되었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지방관으로 가게 된 것을 말한다. 지극은 가시나무이다. 동한(東漢) 때 구람(仇覽)이 덕으로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소문이 있자, 왕환(王渙)이 불러서 주부로 삼고 말하기를, “주부는 진원(陳元)의 허물을 듣고서 죄주지 않고도 교화했다고 하는데, 매나 새매가 될 뜻은 없는가?” 하니, 구람이 “매나 새매가 되는 것은 봉새나 난새가 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왕환이 사죄하면서 말하기를, “탱자나무나 가시나무는 봉새나 난새가 깃드는 곳이 아니다.” 하였다. 後漢書 卷76 循吏列傳 仇覽

4)삼첩가(三疊歌):이별을 슬퍼하는 대표적인 노래이다. 56쪽 주84 참조.

5)영재(鈴齋):주군(州郡)의 수령이 있는 관아(官衙)를 말한다.

6)신자(信字):서신(書信)을 말한다.

7)계옥(桂玉):땔나무와 곡식을 말한다. 흉년이 들면 땔나무는 계수나무와 같이 구하기 어렵고 곡식은 옥과 같이 귀하므로 이렇게 이른다.

8)돈……치고는:돈을 던져서 육효(六爻)를 구성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을 말한다.

9)날……있구나:양거(羊車)는 양이 끄는 수레를 말하고 상양궁(上陽宮)은 궁전 이름이다. 진(晉)나라 무제(武帝)는 총애하는 후궁이 많아 어디로 가서 잘지를 모르면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양이 끄는 대로 따라가 묵었으므로, 황제의 총애를 받고자 후궁들이 그 양을 유인하기 위하여 서로 댓잎을 문에다 꽂아두고 소금물을 땅에다 뿌려 양이 오게 하였다. 晉書 卷31 后妃列傳上 胡貴嬪

10)수벽(繡壁)에다 문창(文囱):수벽은 비단으로 바른 벽을 말하고, 문창은 창살을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짜서 분합문 위에 끼우는 창을 말한다.

11)선오(仙璈):신선의 음악을 말한다. 오(璈)는 악기 이름이다.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이르기를, “서왕모(西王母)가 시녀에게 명하여 팔랑(八琅)의 오(璈)를 연주하고 운화(雲和)의 곡(曲)을 불게 하였다.” 하였다.

12)북극(北極)에는……나직하고:임금이 있는 대궐을 말한다. 임금의 자리를 하늘의 북극성(北極星)에 비유하는데, 공자의 말에 “덕으로써 정치를 하면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뭇별이 우러러 그리로 향하는 것과 같다.” 하였다. 論語 爲政 그리고 임금이 있는 곳에는 항상 오색구름이 떠 있다고 한다.

13)남궁(南宮)에는……있네:남궁은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이기도 하며 예조(禮曹)의 별칭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예조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지음(知音)은 음(音)을 알아주는 사람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뜻한다. 옛날에 백아(伯牙)는 금(琴)을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소리를 잘 들었는데, 백아가 금을 타면서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아아(峨峨)하기 태산과 같구나.”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양양(洋洋)하기 강하(江河)와 같구나.” 하였다. 그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고 하는 데에서 온 말이다. 列子 湯問

14)제미(齊眉):밥상을 눈썹과 나란하게 받드는 것으로, 부부간에 서로 손님을 대하듯이 공경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아내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후한(後漢) 때 양홍(梁鴻)의 처 맹광(孟光)이 남편을 공경하여 음식을 올릴 때 항상 밥상이 눈썹과 나란할 정도로 높이 들어서 올렸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梁鴻

15)어헌(魚軒)의 낙:귀부인의 즐거움을 말한다. 어헌은 어피(魚皮)로 장식한 수레로, 제후의 부인이 타는 것이다.

16)나비의 꿈:이 세상에서 사는 헛꿈을 말한다. 옛날에 장주(莊周)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자신이 장주인 줄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깨어나니 바로 장주였다. 이에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莊子 齊物論

17)색동옷의……됐고: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슬피 통곡하였다는 뜻이다. 색동옷의 춤은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하여 추는 춤을 말한다. 옛날에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났던 노래자(老萊子)가 70세가 되어서도 항상 색동옷을 입고서 어린아이 시늉을 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北堂書鈔 卷129 반백(攀柏)은 무덤 곁의 잣나무를 잡고 통곡하는 것으로, 진(晉)나라 사람인 왕부(王裒)는 아버지가 사마소(司馬昭)에게 살해되자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무덤에 엎드려 절을 하고는 옆의 잣나무에 매달려 울부짖었는데, 나무에 눈물이 흘러 그 나무가 말라죽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晉書 卷88 孝友列傳 王裒

18)이천(移天)……견디네:남편이 아내가 죽은 것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이천은 남편을 말한다. 여인은 어려서는 아버지를 하늘로 삼고 시집와서는 그 하늘을 옮겨 남편을 하늘로 삼는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고분가(鼓盆歌)는 동이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로, 옛날에 장자가 아내가 죽었을 때 동이를 치면서 노래한 고사가 있다. 莊子 至樂

19)대들보 달[梁月]:본디는 친구를 생각하는 정이 간절한 것을 표현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죽은 아내를 그리는 뜻으로 쓰였다. 당나라 두보가 강남(江南)에 유랑하는 이백을 생각하여 그의 꿈을 꾸고 지은 시인 몽이백(夢李白)에 이르기를, “달빛이 들보에 가득 비추니, 흡사 그대 안색을 본 듯하오.[落月滿屋梁 猶疑見顔色]” 하였다.

20)이슬 쉽게 마름:사람의 목숨이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이 햇볕에 마르듯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옛날에 전횡(田橫)이 자살하였을 때 그의 문인(門人)들이 슬퍼하여 전횡을 위해 이런 내용으로 해로가(薤露歌)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21)판환(坂丸):산비탈을 굴러가는 탄환(彈丸)으로, 아주 빠른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22)하룻밤에……시들었네: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23)맹모삼천(孟母三遷)……있고:맹모삼천은 맹자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던 고사를 말한다. 관사(管史)는 동관(彤管), 즉 자루가 붉은 붓으로 쓴 역사서로, 여인들에 대한 역사 기록을 말한다. 옛날 주나라 때 여사(女史)가 자루가 붉은 붓을 가지고 궁중의 정령(政令)이나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하였다. 詩經 邶風 靜女

24)사씨(謝氏)……풍기네:자식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뜻이다. 사씨는 사안(謝安)을 말한다. 247쪽 주257 참조.

25)어찌……걸:죽은 것이 산 것이고 산 것이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260쪽 주16 참조.

26)되레……뒤따르네:죽어서 남편을 만나 함께 노닐 것이란 뜻이다.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딸 농옥(弄玉)이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소사(蕭史)가 퉁소를 잘 불어서 봉새가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에 목공이 농옥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누각[簫臺]을 지어주었는데, 이들 두 사람이 퉁소를 불면 봉황이 날아와서 모였으며, 이들 두 사람은 그 뒤에 봉황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列仙傳

27)조송(祖送):장사를 지낼 때 발인(發靷)을 하기 전에 영결(永訣)을 고하는 제사를 지내면서 조전(祖奠)을 올려 가는 이를 전송하는 의식을 말한다.

28)산 오르니[陟岵]:고향을 떠난 아들이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위풍 척호(陟岵)에, “저 산에 오름이여, 어버이를 바라본다.” 하였다.

29)오마(五馬):다섯 필의 말이 끄는 지방 장관의 수레를 말한다.

30)고당(高堂):모친이 거처하는 집으로, 여기서는 부모님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31)구경(俱慶):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는 경사를 말한다.

32)성중경 임(成重卿任):성임(成任:1421〜1484)이다. 55쪽 주73 참조.

33)홍응지 응(洪應之應):홍응(洪應:1428〜1492)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이다. 1463년(세조9)에 도승지로 있을 때에 영응대군(英膺大君)과 함께 명황계감(明皇誡鑑)을 국역하였다. 1468년에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 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며, 이후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군되어 좌의정까지 올랐다. 풍채가 단아하고 몸가짐에 법도가 있었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34)현포(玄圃):전설 속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고 하는 신선이 사는 곳인데, 그 속에는 기화요초와 기석(奇石)이 있다고 한다.

35)감천(甘泉):섬서성(陝西省) 감천산(甘泉山)에 있는 한나라 때의 궁전으로, 본디는 진(秦)나라의 궁궐이었는데 한나라 무제(武帝)가 증축하고는 피서지로 삼았다.

36)청문(靑門):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을 말하는데, 흔히 도성의 동쪽 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37)노 직강(盧直講):성균관 직강을 지낸 노사신(盧思愼:1427〜1498)을 가리킨다.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자반(子胖), 호는 보진재(葆眞齋)․천은당(天隱堂)이다.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연산군 4년(1498)에 일어난 무오사화 때에는 윤필상(尹弼商)과 유자광(柳子光) 등에게 미온적으로나마 동조하였으나 유자광 등이 옥사를 확대하려는 것을 극력 견제하여 사림파의 피해를 줄이는 데 힘을 기울였다.

38)구만……날았다네:영웅호걸이 웅대한 포부를 크게 펼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이르기를,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갈 때에는 물결을 치는 것이 삼천 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올라가 여섯 달을 날아가서야 쉰다.[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39)매번……접하면서:경연(經筵)을 열어 자주 접견하였다는 뜻이다. 향악(香幄)은 향악차(香幄次)로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40)은장(銀章):한나라 때 2천 석(石) 이상의 관원이 찼던 은인(銀印)으로, 보통 중간급의 관원이 차는 인장을 말한다.

41)헌면(軒冕):옛날에 대부 이상의 고관이 타던 수레와 복식으로, 현달하여 고관이 되는 것을 말한다.

42)영천경(永川卿):효령대군(孝寧大君)의 아들 이정(李定)을 가리킨다. 111쪽 주253 참조.

43)기주(蘄州) 자리:기주는 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지명인데, 이곳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며, 이곳에서 만든 대자리가 아주 좋다고 한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시에 “단계에선 이운 달 모양 베개를 만들어내고, 기주에선 두 물결무늬 자리를 짜내었네.[端谿作出缺月樣 蘄州織成雙水紋]” 하였다. 文忠集 卷8

44)초소(楚騷):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離騷)를 말한다.

45)서호(西湖):송나라 사람인 임포(林逋)가 살던 곳이다. 임포는 자가 군복(君復)인데, 명리(名利)를 구하지 않고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해 살면서 20년 동안 성시(城市)로 나오지 않았다. 서화를 잘 그리고 시를 잘 지었으며, 장가도 들지 않고 자식도 두지 않은 채 매화나무를 심고 학을 기르면서 지냈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宋史 卷457 隱逸列傳上 林逋

46)매우(梅雨):매실이 누렇게 익는 계절인 초여름에 내리는 긴 장맛비를 말한다.

47)공황(龔黃):전한(前漢) 시대 때의 순리(循吏)인 공수(龔遂)와 황패(黃覇)로, 이들은 모두 훌륭한 수령의 대명사로 쓰인다.

48)조감(藻鑑):인재나 시문 등의 품질을 알아내는 식견을 말한다.

49)경위(涇渭):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두 물 이름인데, 경수(涇水)는 물이 탁하고 위수(渭水)는 맑기 때문에 옳고 그름과 맑고 탁함에 대한 분별을 엄격히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50)율미(栗尾):율서(栗鼠)의 꼬리로 만든 붓을 말한다.

51)진관사(津寬寺):삼각산 서쪽에 있는 절이다.

52)삼생(三生):불가(佛家)의 용어로, 사람이 태어난 과거, 현재, 미래, 즉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을 가리킨다.

53)조계(曹溪):중국 광동성 남쪽에 있는 시내 이름으로, 양(梁)나라 때 중 지약(智藥)이 이곳의 물맛을 보고는 상류에 훌륭한 터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드디어 터를 잡아 보림사(寶林寺)라는 절을 세웠다. 후대에는 절 주위에 흐르는 시냇물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54)묵명(墨名)으로……사람이네:유자(儒者)와 불자(佛者)가 각기 자기의 도를 벗어나서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가 이르기를, “묵적(墨翟)의 도를 떠나면 반드시 양주(楊朱)의 도로 돌아가고, 양주의 도를 떠나면 반드시 유자(儒者)의 도로 돌아간다.” 하였고,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에 이르기를, “사람들 중에는 진실로 유자의 이름을 가지고 묵자의 행실을 하는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물어보면 옳고 그 행실을 따져보면 그를진댄 그와 더불어 교유할 수 있겠는가? 만일 묵자의 이름을 가지고 유자의 행실을 하는 자가 있어 그 이름을 물어보면 그르고 그 행실을 따져보면 옳을진댄 그와 더불어 교유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55)소순기(蔬筍氣):소순은 나물과 죽순을 말한다. 중이 지은 시문(詩文)은 고담(枯淡)한 데에 가까우므로 나물과 죽순의 기운이 있다 한다. 그것은 채식만 한다는 뜻이다.

56)금총(琴聰)이나 밀수(蜜殊):금총은 거문고를 잘 탄 전당(錢塘)의 시승(詩僧) 사총(思聰)으로, 거문고와 시를 아주 좋아하였는데, 시를 지으면 기이한 구절이 많았다고 한다. 밀수는 송나라 때 승천사(承天寺)의 중인 중수(仲殊)를 가리키는데, 천성이 꿀을 좋아하였으므로 이런 별명을 얻었으며, 소식(蘇軾)과 교유가 있었고 시사(詩詞)에 능하였다.

57)지난날엔……태어났네:혜원(惠遠)은 동진(東晉)의 승려로, 대체로 ‘慧遠‘으로 쓰이나 문헌에 따라 ’惠遠‘으로 표기된 곳도 있다. 도연명(陶淵明)은 동진의 은사(隱士)인 도잠(陶潛)이다. 혜원이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승인(僧人)과 속인(俗人) 18명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고서는 백련사(白蓮社)라고 하였다. 여산의 앞에는 호계(虎溪)가 흐르는데, 혜원 법사가 동림사에 있으면서 손님을 전송할 때 호계를 지난 적이 없었으나, 도잠과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하면서는 함께 이야기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를 지나 세 사람이 함께 웃고 작별했다는 고사가 있다.

58)법왕(法王):본디 부처님을 지칭한 말이었으나 진리를 깨달은 높은 스님에게도 쓴다.

59)고부(姑婦)간에……하였거니:마음속에서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하였다는 말이다. 장자 외물(外物)에 이르기를, “방 안에 빈 곳이 없으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다투게 되고, 마음이 자연의 경지에 노닐지 못하면 온갖 욕정이 갈등을 빚게 된다.[室無虛空 則婦姑勃磎 心無天遊 則大鑿相攘]” 하였다. 또 송나라의 유학자인 여대림(呂大臨)의 극기명(克己銘)에 “사욕을 이기지 못하면, 내 마음속의 공간을 군색하게 하여, 마치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갈등을 빚는 것처럼 만들 것이니, 그 나머지야 취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方其未克 窘吾室廬 婦姑勃磎 安取厥餘]” 하였다.

60)방편(方便):권도(權道)로 통달하게 하는 지혜로, 보살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써서 중생을 진실한 대도로 이끌어 들이는 권지(權智)를 말한다.

61)팔연(八埏):팔연은 팔방의 끝닿는 곳으로, 천지의 끝을 말한다.

62)埏:대본의 글자가 흐려서 판독하기 어려운 것을 문맥을 살펴 보충한 것이다.

63)야호선(野狐禪):불가에서 쓰는 말로, 참선을 실제로 하지 않고 들여우가 사람을 속이는 것처럼 허위로 하는 것을 말하는데, 외도선(外道禪)이라고도 한다.

64)각해(覺海):불교 용어로 깨달음의 바다를 말한다.

65)涯:대본의 글자가 흐려서 판독하기 어려운 것을 문맥을 살펴 보충한 것이다.

66)통진(通津):사방으로 두루 통할 수 있는 사통팔달의 나루터를 말한다.

67)輝:대본의 글자가 흐려서 판독하기 어려운 것을 문맥을 살펴 보충한 것이다.

68)국미춘(麴米春):당나라 때의 술 이름이다. 주소사(酒小史)에 “운안(雲安)의 국미주(麴米酒)이다.”라고 하였고, 두보의 시에 “이 술 한 잔을 마시면 곧 취한다.” 하였다.

69)안지(安止):1377~1464.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이다. 태종 때부터 벼슬길에 나와 세종 때에 공조 판서까지 올랐으며, 세조 때 조정으로 불러 관작을 주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80이 넘었는데도 강건하였므로 세조가 기뻐하여 시를 지어 하사하였다. 시에 뛰어나서 시를 지을 때 속된 말을 섞어서 빨리 잘 짓고, 짧은 서간에서까지도 거의 시로 말뜻을 이끌어갔다. 또 해서(楷書)를 잘 써서 일찍이 세종의 명으로 태종을 위하여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베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70)구장(鳩杖):손잡이 부분에 비둘기 모양을 새긴 지팡이로, 옛날에 나라에서 공로가 많은 늙은 신하에게 하사하던 물품이다.

71)달존(達尊):천하에서 공통적으로 존중하는 세 가지로, 관작(官爵), 고령(高齡), 덕행을 가리킨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이르기를, “천하에는 세 가지의 달존이 있으니, 작(爵)이 그 하나요, 치(齒)가 그 하나며, 덕(德)이 그 하나이다. 조정에는 작만 한 것이 없고, 마을에는 치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덕만 한 것이 없다.” 하였다.

72)주나라의……하였는데:은(殷)나라 말기에,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은 주나라 문왕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주나라로 갔다.

73)단할(袒割):왕이 노인을 존경하여 거행하는 예이다. 예기 악기(樂記)에 이르기를,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을 태학(太學)에서 먹일 때에는 천자가 직접 웃옷을 벗고[袒] 희생을 칼질[割]한다.” 하였다.

74)신한(宸翰):임금이 직접 지은 글이나 직접 쓴 글씨를 말한다.

75)규벽(奎璧):28수 가운데 규수(奎宿)와 벽수(壁宿)로, 둘 다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인바, 화려한 문장을 말한다.

76)갱재(賡載):순(舜) 임금의 조정에서 부른 창화가(唱和歌)로,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나오는데, “대신들이 즐거우면 임금이 흥성하고 백관도 화락하리라.[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熙哉]”라는 순 임금의 노래와 이에 고요(皐陶)가 화답한 “임금님이 밝으시면 신하들도 훌륭하여 만사가 안정되리이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는 노래와 또 이어서 부른 “임금님이 잗달게 굴면 신하들도 해이해져서 만사가 실패하리라.[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墮哉]”라는 노래를 가리킨다.

77)국과……효성:누군가를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태조를 우러러 사모하는 뜻으로 쓰였다. 옛날에 요(堯) 임금이 죽자 순(舜) 임금이 3년 동안을 우러러 사모하였는데, 앉아 있을 때면 요 임금의 모습이 담벼락에 나타나고, 밥을 먹을 때면 국그릇에 나타났다고 한다.

78)이필(珥筆):옛날에 사관(史官)이나 간관(諫官)이 기록할 때 편하도록 붓을 귀에 꽂고 조정에 나갔는바, 사관이나 간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79)이미……독해주어서:잘 화육(化育)해 준다는 뜻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51장(章)에 이르기를, “정해주고 독해준다.[亭之毒之]” 하였는데, 그 주에 이르기를, “정(亭)은 그 형(形)을 품(品)하는 것이요, 독(毒)은 그 질(質)을 이루는 뜻으로, 화육한다는 말이다.” 하였다.

80)수역(壽域):사람마다 모두 천수(天壽)를 누리는 태평성대를 말한다.

81)강구(康衢)에서……못했네:격양가(擊壤歌)를 불렀다는 뜻이다. 강구는 큰길을 말한다. 요 임금 때 어떤 노인이 땅을 두드리면서 불렀다는 노래로, 태평성대를 뜻한다. 논형(論衡) 예증(藝增)에 이르기를, “나이 50이 된 어떤 사람이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를 본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요 임금의 덕이여.’ 하자,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하고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서 음식을 먹는데, 요 임금이 무슨 힘을 썼는가?’ 하였다.” 하였다.

82)寵:대본에는 ‘龍’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아 문맥을 살펴 바로잡았다.

83)발계(勃磎):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갈등을 말한다. 276쪽 주59 참조.

84)궁(窮)……기다림:당나라 때 한유(韓愈)가 글을 지어서 자신을 곤궁하게 하는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의 다섯 귀신을 자신에게서 쫓아버리고자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3 送窮文

85)주홀(拄笏)하고 산을 보자:세속 일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히 유유자적하는 풍도를 의미한다. 주홀은 관원들이 가지고 다니는 홀(笏)을 턱에 괴는 것이다.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는 성품이 본디 잗단 세속 일에 전혀 얽매임이 없었는데, 그가 일찍이 환충(桓沖)의 기병 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적에 한 번은 환충이 그에게 말하기를, “경(卿)이 부(府)에 있은 지 오래되었으니, 요즘에는 의당 사무를 잘 알아서 처리하겠지?” 하였으나, 왕휘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쳐들고 홀로 턱을 괴고는 엉뚱하게 “서산이 이른 아침에 상쾌한 기운을 불러온다.[西山朝來 致有爽氣耳]”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簡傲

86)잠불(簪紱):관원들이 차는 비녀와 인끈으로, 전하여 벼슬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87)대은(大隱):큰 은자(隱者)로, 중은(中隱)이나 소은(小隱)과 달리 참으로 크게 깨달아 환경에 구애받음이 없이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은자를 말한다. 그래서 “소은은 산속에 숨고 대은은 저잣거리에 숨는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 하였다.

88)단표(簞瓢):밥을 담는 대그릇과 물을 담는 표주박이란 뜻으로, 전하여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보잘것없는 음식을 뜻한다. 논어 옹야(雍也)에 이르기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질도다, 안회(顔回)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一簞食一瓢飮]로 누추한 시골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 걱정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 하였다.” 하였다.

89)녹의(綠蟻):술의 별칭이다.

90)문원(文園):한나라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사마상여는 일찍이 효문원(孝文園)의 영(令)으로 있었는데, 항상 소갈증(消渴症)을 앓아 고생하였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91)경고(更鼓):밤 시간을 알리기 위하여 북을 치는 것을 말한다.

92)화성(火城):궁정 안에 횃불이 죽 늘어서 있는 것을 말한다. 61쪽 주104 참조.

93)천리마에 붙은 파리:파리나 모기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천 리를 가는 것처럼 선배나 혹은 이름난 사람 덕분에 높은 자리에 올라감을 뜻한다. 사기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이르기를, “안연(顔淵)이 비록 학문에 독실하였으나,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행실이 더욱 드러났다.” 하였다.

94)장대……메기:메기는 비늘이 없지만 대나무에 오르는 재능이 있어, 물이 내리흐르는 곳이 있으면 훌쩍 뛰어서 대나무 잎을 입에 물고서 계속 뛰어 대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송나라 사람 매성유(梅聖兪)의 아내가 이 말을 인용하여 그의 남편에게 “당신이 벼슬길에 오르는 것은 메기가 대나무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였다.

95) 장생(莊生)은……했나:장생은 장자를 가리킨다. 장자는 모든 사물을 한결같이 똑같은 것으로 보아 제물론(齊物論)을 지었다. 제물론에서 장자는 이 세상의 진위와 시비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함께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즉 모든 현상은 유기적으로 연관된 하나의 전체이므로 그 기능의 우열을 논할 수는 없으며, 만물은 일체의 무차별 평등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수양의 궁극점이라고 설명하였다.

96) 서검(書劍):문인이 지니고 다니는 책과 칼인데, 옛날 사람들은 책과 칼을 몸에 지니고 사방으로 유학하여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97) 직설(稷契):순 임금의 명신(名臣)이었던 후직(后稷)과 설(契)을 이른다.

98) 당우(唐虞) 시대:요 임금과 순 임금의 시대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99) 희아(曦娥):희화(曦和)와 항아(嫦娥)로, 전하여 해와 달을 가리킨다.

100)유산(儒酸):한산(寒酸)과 같은 말로, 가난에 찌든 선비의 모습을 말한다. 글을 읽는 사람은 빈한하고 검소한 자가 많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임소에서 고향에 있는 옛 친구에게 부치다[任所寄鄕關故舊] 시에 이르기를, “늙은 나는 나서부터 골성이 차가워서, 벼슬 정은 옛날의 유산함을 고치지 아니했네.[老子生來骨性寒 宦情不改舊儒酸]” 하였다.

101)천 금……것인가:배운 바의 학문을 쓸 곳이 없다는 뜻이다. 옛날 주평만(朱泙漫)이란 사람이 용을 베는 기술을 지리익(支離益)에게 배우면서 천 금의 가산을 모두 소비하였는데, 3년 만에 기술을 익혔으나 쓸 곳이 없었다고 한다. 莊子 列禦寇

102)들새……생각하랴:은사(隱士)는 세속의 번잡함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장자 지락(至樂)에 이르기를, “옛날에 바닷새가 노(魯)나라의 교외에 날아와 앉았는데, 노나라 임금이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가서 잔치를 베풀고 구소(九韶)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안주로 주었으나, 그 새는 눈을 멍하니 뜬 채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않고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다가 사흘 만에 죽어버렸다. 이는 사람인 자신을 기르던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고 하고,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하였다. 여기서는 바닷새 대신 들새로 표현하였다.

103)반림(泮林):반궁(泮宮)의 숲으로, 성균관을 말한다. 시경 노송(魯頌) 반수(泮水)에, “이리저리 나는 저 올빼미, 저 반궁의 나무숲에 모였도다.[翩彼飛鴞 集于泮林]” 한 데서 온 말이다.

104)연방(蓮榜):조선 왕조 때 사마시(司馬試)인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게시하던 방이다.

105)난파(鑾坡):당나라 때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으로, 우리나라의 예문관(藝文館)에 해당된다.

106)양양(襄陽):성당(盛唐) 시대 양양(襄陽) 출신의 시인인 맹호연(孟浩然)을 말한다. 맹호연은 젊어서부터 절의를 숭상하여 일찍이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어서야 장구령(張九齡)의 부름을 받고 형주 종사(荊州從事)가 되었으나, 그 후 등창이 나서 신음하다가 죽었다. 新唐書 卷203 文藝列傳下 孟浩然

107)이부(吏部)에게……했나:이부는 당나라의 문장가로,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한유의 진학해(進學解)에 이르기를, “삼 년 동안 박사로 있을 적에는 한직이라 치적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운명이 원수와 도모하여 실패한 때가 그 얼마인가.[三年博士 冗不見治 命與仇謀 取敗幾時]” 하였는데, 여기서 운명이 원수와 도모하여 실패하였다는 것은 운이 아주 나빴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2

108)노위(魯衛):서로 이웃해 살면서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노나라는 주공(周公)의 봉국(封國)이고 위나라는 강숙(康叔)의 봉국인데, 주공과 강숙은 형제간으로서 논어 자로(子路)에 “노와 위의 정사는 형제간이다.”라는 말이 있다.

109)세상의……같고:작은 일을 가지고 아옹다옹 다투는 것을 말한다. 만(蠻)과 촉(觸)은 달팽이의 양쪽 뿔에 있다고 하는 나라이다. 장자 칙양(則陽)에 이르기를,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촉씨(觸氏)라 하고, 달팽이의 오른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만씨(蠻氏)라 하는데, 서로 영토를 다투어서 전쟁을 한다.” 하였다.

110)대롱……것:대롱 구멍을 통하여 표범 무늬를 보면 한 점만 보여서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소견이 아주 협소한 것을 비유한다.

111)귀전부(歸田賦):후한 장형(張衡)이 지은 귀전부가 있으나, 여기서는 도잠의 귀거래사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112)교태(交態):서로 간에 교제하는 태도를 말한다. 한나라 때 적공(翟公)이 정위(廷尉) 벼슬을 할 때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파직당하자 참새 그물을 쳐놓아도 좋을 정도로 문 앞이 한산하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복직된 뒤에 빈객들이 서로 앞 다투어 찾아오려고 하자, 그 문에 큰 글씨로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을 알겠고, 한 번 가난해지고 한 번 부자가 되는 데에서 교제하는 태도를 알겠으며, 한 번 귀해지고 한 번 천해지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이 드러난다.[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이고는 손님을 일절 사절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論

113)구름과……않네:손바닥을 위로 젖히면 구름이 되고 아래로 뒤집으면 비가 되는 것처럼 세속의 인정이 쉽사리 변하는 것을 말한다. 두보의 빈교행(貧交行)에 이르기를, “손 젖히면 구름 일고 손 엎으면 비 오나니, 어지러이 경박함을 따질 필요 뭐 있으랴.[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하였다.

114)간장(干將):명검(名劍)의 이름이다. 옛날에 오(吳)나라의 무고(武庫) 안에 두 마리의 토끼가 있어서 무기의 쇠를 모두 먹어치웠는데, 이를 잡아 배를 가르니 쇠로 된 쓸개가 나왔다. 오왕이 검공(劍工)에게 명해서 이 쓸개로 검 두 개를 만들게 하였는데, 하나는 간장으로 수컷이고, 다른 하나는 막야(鏌鎁)로 암컷이었다. 오왕은 이를 돌 상자에 넣어서 깊숙이 감추어두었다. 그 뒤 진(晉)나라 때에 이르러 오 땅에서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보물이 있는 것을 안 다음, 뇌환(雷煥)을 보내어 이 두 검을 얻고서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拾遺記 卷10

115)촉도(蜀道):중국 사천성(四川省)의 촉 땅으로 통하는 고갯길인데, 길이 몹시 험하여서 험한 길의 대명사로 쓰인다. 여러 시인들이 촉도난(蜀道難)을 읊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당나라 이백이 지은 촉도난이 가장 유명하다.

116)양춘(陽春) 노래:전국 시대 초나라의 고아(高雅)한 가곡으로, 일반적으로 고상하고 아취 있는 곡이나 아름다운 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옛날에 초나라의 서울인 영(郢)에서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 불렀는데 처음에는 보통 유행가인 하리파인(下里巴人) 같은 것을 불렀더니, 같이 합창하여 부르는 자가 수만 명이었다. 그러나 보다 고급의 노래를 부르니 따라서 합창하는 자가 수백 명에 지나지 않았고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최고급의 노래를 부를 적에는 따라 부르는 자가 아주 없었다고 한다. 樂書 卷161 歌下

117)어느……알겠는가:자신을 알아주는 친구가 죽은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259쪽 주13 참조.

118)경개(傾蓋):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서 수레의 휘장을 기울이고서 잠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이르기를, “공자가 담(郯)에 가서 길에서 정자(程子)를 만나 경개하고서 종일토록 이야기하고는 서로 몹시 친해졌다.” 하였다.

119)어소(魚素):서신(書信)을 말한다. 옛날에 어떤 나그네가 잉어를 사서 배를 갈라보니 그 속에서 고향 편지가 나왔다고 한다. 문선(文選) 권27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나그네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내게 잉어 한 쌍을 주었네. 아이 불러 잉어를 삶게 했더니, 뱃속에서 한 통의 고향 편지가 나왔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 하였다. 후대에는 이를 인하여 물고기와 편지를 연관하여 쓴다.

120)석문(席門):거적을 매달아놓은 문으로, 청빈한 집이나 은자의 거처를 뜻한다. 사기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다 떨어진 거적으로 문을 매달아놓은 집에 장자의 수레가 많이도 찾아왔다.[以弊席爲門 然門外多有長者車轍]” 하였다.

121)금석(金石)……정:돌이나 쇠처럼 단단하여 변하지 않는 교분을 말한다.

122)향산(香山) 결사(結社):향화사(香火社)와 같은 말로, 본디는 불교도들의 결사를 말하는데, 전하여 같은 뜻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만년에 향산에서 시승(詩僧)인 여만 선사(如滿禪師)에게 법을 받은 뒤에 여만과 더불어 향화사를 결성하고 자호를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하였다.

123)맹모(孟母)……끊었으나:부모님이 학문을 하기를 독려하였다는 뜻이다. 옛날에 맹자가 공부를 중단하고 집에 돌아오자, 맹자의 어머니가 베틀에서 짜던 베를 끊어놓고 힐책하기를, “네가 공부를 중단한 것은, 마치 짜던 베를 필을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끊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는데, 맹자는 그 말에 감동하여 곧 다시 선생에게로 돌아가 크게 학문을 성취하였다. 列女傳

124)백도(伯道)에게……마소:백도는 진(晉)나라 양릉(襄陵) 사람인 등유(鄧攸)의 자이다. 석륵(石勒)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올 적에 등유가 가족을 이끌고 피난하였는데, 그의 아우가 자식 하나만 남겨두고 일찍 죽은 것을 슬퍼하여 그 조카를 보전하고 자기 아들을 버리고 갔다. 그 뒤에 등유는 끝내 자식을 못 두고 죽으니, 당시 사람들이 슬퍼하여 “하늘도 무심하여 등백도로 하여금 아들을 두지 못하게 하였다.” 하였다. 서거정이 아들을 두지 못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晉書 卷90 良吏列傳 鄧攸

125)주랑(周郞)……들었네:아내를 맞아들였다는 뜻이다. 주랑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수인 주유(周瑜)를 가리키며, 소교(小喬)는 그의 아내 이름이다. 서거정은 처음에 선산 김씨(善山金氏)와 결혼하였다가, 나중에 이영근(李寧根)의 딸을 다시 맞아들였는데, 여기서는 이영근의 딸을 맞아들인 것을 뜻한다.

126)웅비(熊羆)……거고:앞으로 아들을 둘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태몽(胎夢)에 곰이 보이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시경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이르기를, “길한 꿈이 무엇인가, 곰 꿈을 꾸었다네. 오직 곰 꿈이란, 남자를 낳을 상서라오.[吉夢維何 維熊維羆 維熊維羆 男子之祥]” 하였다. 서거정은 오랫동안 아들을 두지 못하다가 49세 때에 비로소 아들 복경(福慶)을 낳았는데, 이때의 기쁨을 시를 지어 표현하면서 “사십 년의 세월하고도 구 년이란 세월을, 세상일에 무심하여 마른 창자 외로웠네. 지난해에 장원한 것은 참으로 요행이요, 오늘날에 아들 얻음은 절로 길상이로다.[四十光陰又九霜 無心世事兀枯腸 去年登甲眞僥倖 今日添丁自吉祥]” 하였다.

127)원로(鵷鷺)……게으르리:젊은 부인과의 단꿈을 꾸느라 조회에 늦게 참석할 것이란 뜻이다. 원로는 조정 백관들의 행렬을 가리키는 말로, 원행(鵷行)이나 원반(鵷班)으로 쓰기도 한다.

128)동산(東山):절강성(浙江省) 상우현(上虞縣) 서남(西南)에 있는 산 이름인데,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이곳에 은거하였으며, 또한 기녀(妓女)를 데리고 유연(遊宴)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29)계자(季子)……부러워하겠는가:고관대작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계자는 전국 시대 때의 유세가(遊說家)인 소진(蘇秦)을 가리킨다. 그는 동시에 6국의 정승이 되어 6국에서 봉급으로 받는 황금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130)의고체(擬古體):문선 권29 잡시부 상(雜詩部上)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오언고시 19수를 본떠서 지은 것이다.

131)청천자(菁川子)……전송하다:청천자는 강희안(姜希顔:1417〜1465)의 별칭이다. 강희안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우(景愚), 호는 인재(仁齋)이다. 1462년(세조8)에 인순부 윤(仁順府尹)으로서 사은 부사(謝恩副使)가 되어 표전(表箋)을 받들고 명나라에 다녀왔다.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불리었으며, 특히 전서(篆書)․예서(隷書)와 팔분(八分)에도 모두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었다. 시는 위응물(韋應物)․유종원(柳宗元)과 같다는 평이 있으나 자신의 글을 세상에 발표하기를 꺼려 전하는 문집이 없다. 그림은 송나라의 유용(劉墉)․곽희(郭熙), 글씨는 진(晉)나라의 왕희지(王羲之)와 원(元)나라의 조맹부(趙孟頫)에 비견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원예에 관한 전문서적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이 있으며, 그림으로는 교두연수도(橋頭烟樹圖),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등이 있다.

132)동쪽으로……흘러가누나:중국에 있는 양자강과 한수 등 모든 강은 결국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향하여 들어가는데, 이를 인하여 강물이 동쪽으로 흐른다는 말은 모든 속국들이 대국을 우러러 섬기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한강은 본디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지만, 여기서는 사대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동쪽으로 흐른다고 한 것이다.

133)매실……만났거니와:매실이 누렇게 익는 계절인 초여름을 말한다. 이때에는 긴 장맛비가 내리는데, 이를 황매우(黃梅雨)라고 한다.

134)학야(鶴野):요동 지방의 벌판을 말한다. 한나라 때 요동 사람인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서는 천 년이 지난 뒤에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시를 지은 고사가 있으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搜神後記

135)남아……뜻은:천하를 경략하고자 하는 큰 뜻을 말한다. 옛날에 아들이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서 천지 사방에 활을 쏘아, 남아로 태어났으면 응당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품어야 함을 표상하였다. 禮記 內則

136)북산이문(北山移文):남제(南齊)의 공치규(孔稚珪)가 지은 글이다. 공치규가 자신과 함께 북산에 은거하다가 벼슬길에 나선 주옹(周顒)을 못마땅하게 여겨 다시는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지었다.

137)소나무:이 시는 속동문선 권9 칠언절구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다 실려 있지는 않고 첫째 수만 실려 있다.

138)인간……있으랴:진 시황이 태산에서 봉선(封禪)을 하고 내려올 적에 폭풍우를 만나 근처의 소나무 아래로 피신하였는데, 그 소나무가 자기에게 공을 세웠다고 하여 오대부(五大夫)에 봉해준 고사가 있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139)차군(此君):대나무의 별칭이다.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사는 곳마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이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140)상강(湘江):중국 남방에 있는 강으로, 대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옛날에 요 임금의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순 임금에게 시집가 비(妃)가 되었는데, 순 임금이 남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죽어 창오(蒼梧)의 들에 묻혔다. 그러자 두 비가 순 임금을 그리워하면서 통곡하여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떨어져 반점이 생겼다고 한다. 두 비가 그 뒤에 상강에서 죽으니, 사람들이 상부인(湘夫人)이라고 칭하였다. 列女傳

141)서호(西湖) 사는 처사:송나라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270쪽 주45 참조.

142)적성(赤城):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의 남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토석의 색깔이 붉고 모양이 성첩과 같이 생겼다. 문선 권11에 실린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 이르기를, “적성의 노을을 들어서 표지를 세운다.[赤城霞擧而建標]” 하였다.

143)청녀(靑女):서리와 눈을 주관하는 전설 속의 여신으로,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이르기를, “삼추(三秋)에 이르면 청녀가 나와서 서리와 눈을 내린다.” 하였다.

144)오강(吳江)……않고:오강은 전당강(錢塘江)을 말하고 먼 나그네는 진(晉)나라 때 맑은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을 가리킨다. 장한은 고향인 오강 지방을 떠나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중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자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145)시낭(詩囊):시를 담는 주머니로,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좋은 시를 얻을 적마다 적어서 비단 주머니에 넣어 두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116쪽 주267 참조.

146)도연명이……우습구나:진(晉)나라의 은사인 도잠(陶潛)이 전원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을 몹시 좋아하였는데, 일찍이 9월 9일 중양절에 술이 없었다. 이에 집 동쪽의 울타리로 가서 국화 속에 앉아서는 국화꽃을 한 움큼 따 들고서 먼 곳을 바라보니, 흰옷을 입은 사람이 오고 있었는데 바로 자사(刺史)로 있는 왕홍(王弘)이 술을 보낸 것이었다. 이에 그 술을 함께 마시고는 취한 다음에 돌아갔다. 南史 卷75 隱逸列傳上 陶潛

147)은미한……알리누나:11월의 동지가 되면 이때부터 양기(陽氣)가 싹트기 시작한다.

148)서호(西湖):송나라 사람인 임포(林逋)가 살던 곳이다. 270쪽 주45 참조.

149)암향(暗香)에다 소영(疎影):암향은 은미하게 풍겨오는 향기로 매화의 향기를 말하고, 소영은 성글게 지는 그림자로 매화의 그림자를 말한다.

150)해기(駭機):돌연히 촉발한 노기(弩機)라는 뜻으로, 갑자기 발생한 화난(禍難)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後漢書 卷71 皇甫嵩列傳

151)어전(魚牋):어자전(魚子牋)과 같은 말로, 촉(蜀) 지방에서 생산되는 종이의 일종이다.

152)상강(湘江)……대:상강은 중국 남쪽 지방의 강 이름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라기로 유명한 곳이다. 304쪽 주140 참조.

153)화산(華山)……연꽃:꽃의 직경이 열 길이나 되는 큰 연꽃으로, 진인(眞人)들이 노닐 적에는 각각 연꽃 위에 앉아 노는데, 그 연꽃은 지름이 열 길이나 된다고 한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에 이르기를, “태화봉 산꼭대기 옥정에 있는 연은, 꽃 크기가 열 길이고 뿌리는 배와 같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하였다. 韓昌黎集 卷3

154)불계(佛髻):불상(佛像)의 머리 위에 있는 육계(肉髻)를 말한다.

155)조계(曹溪):본디는 중국 광동성(廣東省) 남쪽에 있는 시내 이름인데, 후대에는 절 주위에 흐르는 시냇물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274쪽 주53 참조.

156)원숭이와……걱정하리:남제(南齊)의 공치규(孔稚珪)가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에 “혜장이 텅텅 비자 밤중에 학 원망하고, 산인이 떠나가자 새벽에 납 슬피 우네.[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惊]”라는 구절이 있다.

157)경개(傾蓋):길을 가다가 만나 수레의 휘장을 기울이고서 서로 잠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293쪽 주118 참조.

158)영천경(永川卿)이……전송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9 칠언절구에 송도(松都) 3수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다 실려 있지는 않고 넷째, 다섯째, 여섯째 수만 실려 있다.

159)남산(男山)에서……뒤에:남산은 개성부에서 동쪽으로 2리에 있는 산이다. 이성계(李成桂)가 조민수(曺敏修)와 함께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개성으로 들어올 때 조민수는 최영(崔瑩)의 군사에게 패하였으나, 이성계가 선죽교(善竹橋)로부터 남산에 오르니 최영 휘하에 있던 안소(安沼)가 남산을 버리고 도망쳤다. 이성계는 마침내 암방사(巖房寺) 북쪽 고개에 올라 큰 소라[大螺]를 한 번 불었다. 이때 행군하던 여러 군대들은 모두 각(角)을 불었는데도 유독 이성계의 군대만이 소라를 불었다. 도성 사람이 소라 소리를 듣고는 모두 이성계의 군사라는 것을 알았다. 이성계가 화원(花園)을 수백 겹이나 포위하고서 우왕(禑王)과 최영을 포로로 잡은 다음 최영을 고봉현(高峰縣)에 유배하였다. 太祖實錄 總敍

160)곡령(鵠嶺)……기울었네:고려의 사직(社稷)이 기울었다는 뜻이다. 신라 말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흥할 것을 알고, 고려 태조에게 “곡령에 솔이 푸르고 계림엔 잎이 누르다.[鵠嶺靑松 鷄林黃葉]”라는 글을 올렸는데, 여기서는 이와 반대로 곡령의 푸른 솔에 해가 기울었다고 하였는바, 이성계에 의해서 고려의 사직이 기운 것을 뜻한다.

161)종제전(種穄田):기장을 심은 밭이라는 뜻으로, 신라 시대의 중 도선(道詵)이 고려 태조 왕건이 살고 있던 터를 가리켜 이른 말이다. 당시에 기장의 속음(俗音)이 ‘이금(尼今)’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인 ‘이금(尼今)’과 음이 같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星湖僿說 萬物門 種穄

162)면면하게……보이누나:이씨(李氏)의 왕업만 융성한 것이 보인다는 뜻이다. 면면(綿綿)은 시경 대아(大雅) 면(綿)에 나오는 말이다. 그 시에 이르기를, “면면히 이어진 오이 덩굴이여, 주나라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산 것은, 저수와 칠수에 터전을 잡으면서부터이다.[綿綿瓜瓞 民之初生 自土沮漆]” 하였는데, 이 시는 주나라의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주(岐周)로 도읍을 옮겨 처음으로 왕업을 연 것을 기린 시이다.

163)시중(侍中):태조 왕건(王建)을 말한다.

164)소당계(小唐鷄):고려의 향악(鄕樂)인 오관산곡(五冠山曲)에 나오는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닭을 말한다. 본래 경기도 장단부(長湍府)에 있는 오관산(五冠山)이란 지명에서 유래된 이 향악곡은 조선 초기에 서인(庶人)들의 잔치에서 연주되었고, 조선 성종(成宗) 때 악공(樂工)을 시험 보이는 곡으로 사용되었다. 이제현(李齊賢)이 그 뜻을 풀어서 지은 시에 “나무토막으로 작은 닭을 깎아서, 젓가락으로 집어다가 벽 위에 앉혔네. 꼬꼬댁 닭이 울어 시간을 알리면, 어머니의 얼굴이 서산에 지는 해와 같아라.[木頭雕作小唐鷄 筋子拈來壁上栖 此爲膠膠報時節 慈顔始似日平西]” 하였다. 韓國學基礎資料選集 中世篇 注 高麗史 卷71

165)흑금(黑金)에다 청목(靑木):흑금은 검은 쇠로 철원(鐵原)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궁예(弓裔)가 세운 태봉(泰封)을 가리키고, 청목은 소나무로 송악(松嶽)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왕건이 세운 고려(高麗)를 가리킨다. 태봉을 세운 궁예가 의심이 많고 성질이 조급하여 무고하게 많은 사람을 살육한 데 반해 시중(侍中)으로 있던 왕건은 위엄과 덕망이 날로 성해져 호걸들이 그에게 마음을 돌렸다. 그러던 중 당나라의 상인인 왕창근(王昌瑾)이 오래된 거울을 얻었는데, 거기에 쓰여 있는 글에 이르기를, “삼수의 가운데 사유의 아래에, 상제가 진마에 아들을 내려 보내,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치리라.[三水中四維下 上帝降子於辰馬 先操鷄後搏鴨]”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두 마리의 용이 나타나, 한 마리는 청목 가운데 몸을 감추고, 한 마리는 흑금 동쪽에 그림자를 드러내리라.[二龍見 一則藏身靑木中 一則現影黑金東]” 하는 등 모두 147자가 쓰여 있었다. 왕창근이 이를 심상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 궁예에게 바치니, 궁예가 송함홍(宋含弘), 백탁(白卓), 허원(許原) 등 문인들로 하여금 풀이하게 하였다. 세 사람이 그것을 보고 서로 이르기를, “청목은 소나무이므로, 송악군(松嶽郡) 사람으로서 용(龍)으로 이름 지은 자의 자손이 임금이 될 것이라는 말이니, 그것은 왕 시중(王侍中)을 두고 한 말이다. 흑금은 쇠[鐵]이니, 지금 철원으로, 이는 주상(主上)이 이곳에서 일어나 이곳에서 멸망한다는 징험이다.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친다는 것은 시중이 먼저 계림(鷄林)을 얻고 뒤에 압록(鴨綠)을 거둔다는 뜻이다. 지금 왕이 시기하여 사람 죽이기를 즐기니, 만약 사실대로 고하면 시중이 반드시 해를 만날 것이고, 우리들도 모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고, 이내 거짓말로 아뢰었다. 그 뒤에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등이 은밀히 모의하여 궁예를 죽이고 왕건을 받들어 왕으로 삼아 고려를 세웠다. 東史綱目 卷5下 戊寅年

166)새……옮겨갔고:하(夏)나라 우왕(禹王)이 구정(九鼎)을 만들어 전국의 보기(寶器)로 삼았는데, 하나라가 망하고 은(殷)나라로 옮겨갔으므로 은정(殷鼎)이라고 하였다. 은나라가 망하자 구정은 다시 주나라로 옮겨졌다. 여기서는 조선이 건국되어 도읍을 송도에서 한양(漢陽)으로 옮긴 것을 말한다.

167)패궁(沛宮):한나라 고조(高祖)의 고향인 풍패(豐沛)에 세운 궁궐로, 여기서는 개성에 있는 이성계가 살던 집인 경덕궁(敬德宮)을 말한다.

168)제릉(齊陵):조선 태조의 비(妃)인 신의왕후(神懿王后)의 능이다.

169)서리(黍離)……있으려나:서리 시는 시경 왕풍(王風)에 나오는 시로, 나라가 망하여 종묘사직이 무너진 것을 탄식하는 노래이다. 호경(鎬京)에 도읍을 두고 있던 주나라가 유왕(幽王)의 어지러운 정사로 인하여 멸망하고 평왕(平王)이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겨 세력이 미약해졌을 때, 주나라의 대부가 폐허가 된 호경의 종묘 터에 메기장과 잡초가 우거진 것을 보고 비감에 젖어 메기장과 잡초를 주제로 노래하였다. 관왜궁(館娃宮)은 미녀가 있는 궁으로, 전국 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서시(西施)를 위해 지은 궁이다. 여기서는 고려의 궁녀들이 머물던 궁을 뜻한다.

170)제전(穄田):기장을 심은 밭인 종제전(種穄田)을 말한다. 315쪽 주161 참조.

171)생학(笙鶴):선학(仙鶴)의 이름이다. 열선전(列仙傳)에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晉)이 칠월 칠석에 흰 학을 타고 피리를 불며 구지산(緱氏山)의 마루에 머물러 손을 들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하였다.

172)연복정(延福亭):개성 동쪽의 사천(沙川) 가의 용연사(龍淵寺) 남쪽 절벽인 호암(虎巖) 곁에 있는 정자로, 고려 의종(毅宗)이 내시인 이당주(李唐柱)와 배연(裵衍) 등에게 명하여 세운 정자이다. 고려의 왕들이 가끔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고 놀았다.

173)의릉(毅陵):고려 충숙왕(忠肅王)의 능이다.

174)췌류(贅旒):능력이 없는 임금이 이름만 높은 자리에 앉아 있고 권세는 신하에게 다 돌아간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고려의 권력이 무신들에게 옮겨 가 왕이 제구실을 못한 것을 가리킨다.

175)성거산(聖居山):장단(長湍)에서 북쪽으로 30리, 우봉현(牛峯縣)에서 남쪽으로 60리 되는 곳에 있는 산으로, 구룡산(九龍山)․평나산(平那山)이라고도 한다. 산 위에 다섯 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마다 각각 작은 암자가 있어 오암(五菴)이라고 부른다.

176)마아갑(摩阿岬)의……집터에는: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선대가 살던 곳을 말한다. 왕건의 선대를 보면 성골장군(聖骨將軍) 호경(虎景)이 아간(阿干) 강충(康忠)을 낳고, 강충이 거사(居士) 보육(寶育)을 낳으니 이가 국조(國祖)인 원덕대왕(元德大王)이며, 대왕이 딸 진의(辰義)를 낳아 당나라 귀성(貴姓)에게 시집보내 아들 작제건(作帝建)을 낳으니 이가 의조(懿祖)이고, 의조가 용건(龍建)을 낳으니 이가 세조(世祖)로, 바로 왕태조(王太祖)의 아버지이며, 이름이 융(隆)이다. 星湖僿說 卷27 王建世系

177)적선(謫仙):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온 신선으로, 재예가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데, 흔히 이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78)사부(謝傅):진(晉)나라의 명사이자 명신인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사안은 양하(陽夏) 사람으로, 자는 안석(安石)인데 벼슬이 상서복야(尙書僕射)로 태보(太保)에 이르렀으며, 뒤에 태부(太傅)에 증직되었으므로 세상에서 사 태부라 칭하였다. 사안은 동산(東山)에 은거해 지내면서 맑은 풍모를 드날렸다.

179)십천(十千):만 전(錢)의 돈을 가리킨다. 왕유(王維)의 소년행(少年行)에, “신풍의 맛 좋은 술은 한 말에 십천인데, 함양의 유협들은 대부분이 소년이로세.[新豊美酒斗十千 咸陽游俠多少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80)무협(巫峽)에는……있고:무협은 무산(巫山)의 골짜기로,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양왕(襄王)이 송옥(宋玉)과 운몽택(雲夢澤)에 있는 고당(高唐)이란 누대에서 놀았는데, 송옥이 말하기를, “옛날에 선왕께서 고당에서 노시다가 낮잠이 들어 꿈속에서 무산의 선녀를 만나 놀았는데, 선녀가 이별하는 즈음에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산속에 사는데, 아침이면 떠가는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내리는 비가 되어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양대(陽臺)의 아래로 내려옵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후대에는 이를 인하여 남녀 간에 서로 즐기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文選 卷19 高唐賦

181)장대(章臺):한나라 때 장안에 있던 궁전 이름인데, 그 궁전 아래에는 화류가(花柳街)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버드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고 한다.

182)낙천(樂天):중당(中唐)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자이다.

183)김 태복(金太僕):1464년(세조10)에 명나라 영종(英宗)이 죽고 헌종(憲宗)이 즉위한 데 대한 등극 조서(登極詔書)를 반포하기 위하여 나왔던 사신인 김식(金湜)을 가리킨다. 그의 벼슬이 태복시 승(太僕寺丞)이었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184)힘찬……전하거니:문장이 아주 훌륭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 때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용문(龍門)에 나아가 노닐면서 수종(隨從)한 관원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였는데, 시를 먼저 지은 자에게는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상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좌사(左史)로 있던 동방규(東方虯)가 시를 먼저 지어 도포를 하사받았다. 그 뒤에 곧바로 송지문(宋之問)이 시를 지었는데, 문사(文辭)가 매우 아름답고 의경(意境)이 아주 절묘하여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그러자 무후가 이미 하사한 도포를 회수하여 다시 송지문에게 내려주었다. 舊唐書 卷190中 文苑列傳中 宋之問

185)매고(枚皐):한 무제 때의 낭관(郞官)으로, 해학을 좋아하고 문사(文思)가 민첩하여 글을 빨리 지었으므로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漢書 卷51 枚皐傳

186)삼절(三絶):사람이나 물건이 뛰어난 점 세 가지를 한꺼번에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그림과 글씨와 시를 말한다. 당나라 때 정건(鄭虔)이 시, 서, 화에 뛰어나서 정건삼절(鄭虔三絶)이라고 불렸다.

187)중산(中山):안휘성(安徽省) 의성현(宜城縣)으로, 예로부터 토끼털로 만든 좋은 붓이 생산되는 곳이다.

188)차군(此君):대나무의 별칭이다. 304쪽 주139 참조.

189)멀리……도달했네:성사(星槎)는 사신이 타고 가는 배를 말한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이르기를, “한나라 무제(武帝)가 장건(張騫)으로 하여금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을 타고 가다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났다.” 하였다. 한고(漢皐)는 호북성(胡北省) 서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주나라의 정교보(鄭交甫)가 남으로 초(楚)에 가던 도중에 한고대(漢皐臺) 아래를 지나다가 두 여자가 구슬을 찬 것을 보고 그들에게 “그대의 패물(佩物)을 갖고 싶다.” 하자, 두 여인이 정교보에게 패물을 주었다. 정교보가 그 패물을 받아 품속에 간직하고서 10여 보쯤 가서 다시 보니 패물이 없어졌고, 두 여인도 사라졌다고 한다. 文選 卷4 南都賦 註

190)우소(虞簫)를……보네:우소는 순(舜) 임금의 음악인 소소(簫韶)로, 흔히 아름답고 묘한 선악(仙樂)을 지칭한다. 서경 익직(益稷)에 이르기를, “소소가 구성(九成)이 됨에 봉황이 와서 춤을 추어 축하하였다.” 하였다.

191)옛날……할꼬:모씨(毛氏)는 모영(毛潁)을 가리키고, 중서(中書)는 붓의 이칭(異稱)이다. 한유의 모영전(毛潁傳)에 이르기를, “여러 차례 중서령(中書令)에 제수되어 상과 더욱 친해지자 상이 일찍이 중서군(中書君)이라고 불렀다.” 하였다.

192)단산(丹山)……깃드누나:단산은 단혈(丹穴)이 있는 산으로, 그곳에는 봉황이 산다고 한다. 오채모(五彩毛)는 봉황의 다섯 가지 무늬의 깃털을 말한다.

193)육방옹집(陸放翁集):송나라 시인 육유(陸游)의 문집이다. 육유는 자가 무관(務觀)이며, 호는 방옹(放翁)․입택어옹(笠澤漁翁)이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산수를 좋아했고 유독 촉(蜀)의 산수 풍토를 좋아하여 자기 시집을 검남시고(劍南詩稿)라고 할 정도였다. 宋史 卷395 陸游列傳 위의 촉주가(蜀酒歌)부터 이 권 마지막의 탄식하다[寓歎]까지의 제목은 모두 육유의 검남시고에 같은 제목으로 들어 있으나, 약간의 글자의 출입이 있다.

194)청도(淸都):전설 속에 나오는 천제(天帝)가 사는 궁궐을 가리킨다.

195)금규(金閨):한나라 때 궁궐의 문인 금마문(金馬門)으로, 본디 학사들이 대조(待詔)하던 곳이었는데, 전하여 조정을 가리킨다.

196)숙상구(鷫鸘裘):한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입었던, 기러기와 비슷한 새인 숙상이란 새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 이름이다. 사마상여가 일찍이 부인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갔을 적에 워낙 가난했던 탓에 자기가 입고 있던 이 숙상구를 전당 잡히고 술을 사서 탁문군과 함께 마시며 즐겼다.

197)두……같네:두 호걸은 완적(阮籍)의 아들과 조카인 완혼(阮渾)과 완함(阮咸)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에 “술에 취한 대인 선생(大人先生) 옆에 두 호걸이 모시고 섰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나니벌과 배추벌레 같았다.” 하였다.

198)청성도인(靑城道人):도교에서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산인 청성산에 사는 신선을 말한다.

199)도주공(陶朱公)이……것을:도주공은 춘추 시대 월(越)나라 사람인 범려(范蠡)의 별칭이다. 월왕 구천(句踐)이 범려의 도움을 받아 오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범려에게 말하기를, “내 장차 그대와 더불어 나라를 나누어 가질 것이다.” 하니, 범려가 말하기를, “임금은 명령을 행하고 신하는 뜻을 행하는 법입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일엽편주를 타고 오호(五湖)로 가서 끝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200)소동파(蘇東坡)가……것을:황루(黃樓)는 강소성(江蘇省) 서주(徐州)에 있는 누각으로, 소식(蘇軾)이 지은 것이다. 소식이 희령(熙寧) 10년(1077)에 팽성(彭城)의 수령으로 있을 적에 황하가 범람하였는데, 그 물이 팽성까지 들어오기 전에 미리 백성들을 동원하여 제방을 쌓아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물이 제방에 밀어닥치자 소식은 제방 위에 올라가서 제방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고자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아 안전할 수 있었다. 물이 빠져나간 뒤에 소식은 성 동쪽 문에 큰 누각을 세우고는 누런 흙으로 벽을 바르고서 말하기를, “흙은 물을 이기는 법이다.” 하였다. 소식의 동생인 소철(蘇轍)이 이곳에 올라 황루부(黃樓賦)를 지었다.

201)천금구(千金裘):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가지고 있던 호백구(狐白裘)로, 전하여 아주 진귀한 갖옷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맹상군이 진(秦)나라에 들어갔다가 소왕(昭王)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미 소왕에게 바쳤던 이 호백구를 다시 훔쳐내어 소왕의 총희(寵姬)에게 뇌물로 바치고서 풀려났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202)수정염(水精鹽):마치 수정처럼 맑고 하얀 소금을 가리킨다. 이백의 제동계공유거(題東溪公幽居) 시에 이르기를, “손님 오면 만류하여 한번 취할 줄만 아는데, 소반 위에는 고작 수정염만 있을 뿐이라네.[客到但知留一醉 盤中秪有水精鹽]” 하였다.

203)취향(醉鄕)에서……된다면야:취향은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경지를 말한다. 당나라 왕적(王績)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두강(杜康)과 의적(儀狄) 이래의 애주가들을 모아 취향기(醉鄕記)라는 주보(酒譜)를 저술하였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王績 음중신선(飮中神仙)은 술을 마신 신선이란 뜻으로, 대표적으로는 당나라 때 술을 즐겨 마시며 풍류를 만끽하여 음중팔선(飮中八仙)이라 불렸던 이백, 하지장(賀知章), 이적지(李適之), 여양왕(汝陽王) 진(璡),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장욱(張旭), 초수(焦遂)가 있다. 204쪽 주135 참조.

204)영주(瀛洲):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으로, 여기에는 신선들이 살며 불사약이 있고 새와 짐승이 모두 희며,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205)동궁산(洞宮山):복건성(福建省) 정화현(政和縣)의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구련봉(九蓮峯)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위(魏)와 우(虞) 두 진인(眞人)이 이곳에서 승천하였다고 전하며, 이를 인하여 위우동천(魏虞洞天)이라고도 하며 무위동천(無爲洞天)이라고도 한다.

206)임궁(琳宮):절을 가리킨다.

207)청안객(靑眼客):마음이 서로 통하는 벗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의 명사인 완적(阮籍)은 세속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지내면서 속사(俗士)를 대할 적에는 백안(白眼)으로 대하고, 고사(高士)를 대할 적에는 청안(靑眼)으로 대하였다. 완적의 어머니가 죽어 장사를 지낼 적에 혜희(嵇喜)가 가서 조문하면서 슬피 울었는데, 완적은 그를 속사라고 여겨 백안으로 보자, 혜희가 화를 내면서 되돌아갔다. 혜희의 동생인 혜강(嵇康)이 그 말을 듣고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가서 조문하자, 완적이 몹시 기뻐하면서 청안으로 대하였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208)장인관(丈人觀)의……제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장인관은 청성장인(靑城丈人)을 모신 사당을 말하는데, 청성장인은 도교에서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산인 청성산에 사는 신선을 말한다.

209)반도(蟠桃):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로, 3천 년마다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210)구전단(九轉丹):신선들의 장생불사약을 금단(金丹)이라 한다. 금단은 아홉 번을 고아야 약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구전단이라고도 한다.

211)이……걸리:뒷날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할 것이라는 뜻이다. 초나라의 공사(龔舍)가 미앙궁(未央宮)에서 숙직하다가 거미줄에 날벌레가 걸려서 날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탄식하기를, “나의 삶도 저와 마찬가지다. 벼슬이란 것은 사람에게 거미줄과 같은 것이다. 어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는 즉시 관(冠)을 나무에 걸어둔 다음 물러났다. 太平御覽 卷948

212)강원현(江原縣):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던 옛날 현의 이름이다.

213)황계(荒鷄)는……놀래키고:황계는 한밤중에 때 아니게 우는 닭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조적(祖逖)이 유곤(劉琨)과 함께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때 아니게 우는 닭소리를 듣자 유곤을 발길질해서 깨우고는 “이 소리는 나쁜 소리가 아니다.” 하고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춘 고사가 있다. 晉書 卷62 祖逖列傳  나비의 꿈은 260쪽 주16 참조.

214)닭……되었구나:고을의 수령이 되어 나간다는 뜻이다.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이 되어 예악(禮樂)을 제창하자, 공자가 이를 보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하였다. 論語 陽貨

215)꺾은……하직하나:언제나 전원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팽택(彭澤)은 팽택현(彭澤縣)의 수령으로 있던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도잠이 수령으로 있을 적에 군(郡)에서 독우(督郵)가 현에 나오게 되었는데, 아전이 도잠에게 독우가 오면 속대(束帶) 차림으로 맞이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도잠은 “나는 다섯 말의 쌀을 얻기 위하여 향리(鄕里)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히지 못하겠다.” 하고는, 관직을 떠나 전원으로 돌아갔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陶潛

216)죽지가(竹枝歌):악부(樂府) 가운데 하나로, 본디는 사천(四川) 일대의 민가(民歌)인데, 당나라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새 가사로 개작하였다. 주로 삼협(三峽)의 풍광과 남녀 간의 연정(戀情)을 읊었다.

217)무담동대(武擔東臺):무담산(武擔山)의 동쪽에 있는 대를 뜻한다. 무담산은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의 동쪽에 있는 산이다.

218)삼생석(三生石)의……기다렸네: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는 뜻이다. 삼생은 불가의 용어로, 전생․현생․후생을 가리키며, 삼생석은 전생의 숙연(宿緣)을 말한다. 갈홍천(葛洪川)은 시내 이름이다. 당나라 때 이원(李源)이 일찍이 낙양(洛陽) 혜림사(惠林寺)에 있을 적에 승 원택(圓澤)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둘이 배를 타고 남포(南浦)에 놀러 갔다가, 비단 배자를 입고 물을 긷는 한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원택이 울면서 이원에게 말하기를, “저 부인이 임신한 지 3년이 되었는데, 내가 의당 그의 아들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뒤의 중추일(中秋日) 달밤에 항주(杭州) 천축사(天竺寺) 뒤에서 공과 다시 서로 만나기로 하자.” 하였는데, 원택이 그날 밤에 과연 죽었고 그 부인은 과연 그날 아이를 낳았다. 이원이 그로부터 12년 뒤에 약속한 곳으로 찾아가 보니, 갈홍천 가에서 한 목동이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나는 삼생석 위의 그 옛날 정혼이거니, 음풍농월하는 건 굳이 논할 것도 없네. 친한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진정 부끄럽지만, 이 몸은 달라졌으나 본성은 그대로 있다오.[三生石上舊精魂 賞月吟風不要論 慚愧情人遠相訪 此身雖異性長存]”라고 하여, 서로 친구였음을 확인했다는 고사가 있다. 甘澤謠 圓觀

219)균천(鈞天):하늘의 한복판으로 천제가 사는 곳이다.

220)이……있으리라:한나라 때의 명신인 장량(張良)이 일찍이 이교(圯橋)에서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네가 신발을 이교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장량으로 하여금 주워 오게 하였다. 이에 장량이 신을 주워다가 노인에게 신기자, 그 노인이 장량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주었는데, 장량은 그 글을 읽고서 명신이 될 수 있었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221)곧장……하거니와:후한(後漢) 때 장군 풍이(馮異)가 적미병(赤眉兵)과 싸워서 회계의 판상(坂上)으로 패주했다가, 그 후 군사들을 독려하여 효산(崤山) 밑에서 다시 적미병을 크게 격파하자, 광무제(光武帝)가 새서(璽書)를 내려 풍이를 위로하기를, “처음에는 비록 회계에서 날개를 드리웠지만, 끝내는 능히 민지에서 날개를 떨쳤도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澠池]”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한 번 실패했다가 뒤에 다시 분발하여 성공을 거두는 데에 비유한다. 後漢書 卷17 馮異列傳

222)이광(李廣)……알았으랴:이광은 활을 잘 쏘기로 이름났던 한나라의 장수이다. 영평부(永平府)에서 동쪽으로 6, 7리쯤 되는 곳에 사호석(射虎石)이 있는데, 이광이 북평 태수(北平太守)로 있을 적에 사냥을 나가서 바위를 호랑이로 착각하고 화살을 쏘았더니 화살이 바위에 꽂혔다고 한다. 이광이 국경을 지키고 있을 적에는 흉노(匈奴)가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부르면서 감히 엿보지를 못하였다. 이광은 장수들 가운데 가장 용감하고 전쟁에 능한 장군이었으나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였으므로, 지난날 그의 부하였던 장수들이 모두 공신(功臣)이 되어 후(侯)에 봉해졌을 때에도 이광만은 운수가 없었다.

223)모름지기……믿으리라:진(晉)나라 왕준(王濬)이 칼 세 개가 서까래에 걸려 있는 꿈을 꾸고 다시 칼 하나가 더해지는 꿈을 꾸었는데, 삼도(三刀)는 주(州)를 뜻하고 더해진 칼은 익(益)을 의미한다는 해몽대로 익주 자사(益州刺史)에 부임하게 된 고사가 있다. 晉書 卷42 王濬列傳

224)검남(劍南):당나라 개원 연간에 설치한 진(鎭)의 이름으로, 치소(治所)는 지금의 성도(成都)인 익주(益州)였으며, 관할 구역은 사천성(四川省)의 서쪽과 운남성(雲南省) 일대의 지역이었다.

225)왕마(王馬)……나왔으며:왕마는 서촉(西蜀) 지방 출신으로 한나라 때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왕포(王褒) 두 사람을 가리킨다. 사마상여는 성도 사람으로, 자가 장경(長卿)이며, 사부(辭賦)에 아주 뛰어나서 자허부(子虛賦), 대인부(大人賦) 등 명작을 남겨 한(漢), 위(魏), 육조(六朝) 시대 문인들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왕포는 자가 자연(子淵)이며, 한 선제(漢宣帝) 때 문인으로, 중화송(中和頌), 사자강덕론(四子講德論),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의 작품을 남겼다.

226)손유(孫劉)……다투었네:손유는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촉(蜀)나라의 유비(劉備)를 가리킨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 뜻이 맞아 처남 매부의 관계까지 맺었으나, 뒤에는 서로의 처지가 달라 계속 적대 관계가 되어 대립하였다. 형(荊) 땅은 지금의 호남성(湖南省)과 호북성(湖北省) 및 사천성의 남부 일대 지방을 가리킨다.

227)성 위에서 짓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228)서검(書劍):문인이 지니고 다니는 책과 칼인데, 옛날 사람들은 책과 칼을 몸에 지니고 사방으로 유학하여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229)어찌……탄식하랴:한나라 장수 이광(李廣)은 아주 뛰어난 장수였으나 끝내는 후에 봉해지지 못하였다. 336쪽 주222 참조.

230)두자(杜子):당나라 시인 두보를 가리킨다. 두보는 난리를 만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을 읊은 시를 많이 남겼다.

231)황금은……마시게나:고생하고 있는 나그네의 심정을 물어보지 말라는 뜻이다. 계자(季子)는 전국 시대 유세가인 소진(蘇秦)으로, 소진이 처음 진왕(秦王)에게 열 차례나 글을 올려 유세하였으나 설득하지 못한 채 흑초구(黑貂裘)가 다 해지고 100근의 황금이 다 떨어져 초췌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괄시하였다. 그 뒤에 다시 제(齊), 초(楚) 등 7국에 유세하여 합종하게 하고는 6국의 재상이 되자, 진나라 군사들이 15년 동안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오지 못하였다. 戰國策 秦策1

232)깊은……오르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233)한 잎 가을:입추가 되면 오동나무 잎사귀 하나가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한 잎사귀가 떨어지면 가을이 왔다는 실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234)공북해(孔北海):한나라 때 건안칠자(建安七子) 중에 한 사람으로 북해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공융은 성품이 너그럽고 거리낌이 없었으며, 선비들을 좋아하고 후생들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였다. 한직으로 물러난 다음에는 빈객들이 항상 집에 가득하였는데, 항상 말하기를, “좌상에는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주전자엔 술이 빌 때가 없으니, 나는 걱정할 것이 없다.” 하였다. 後漢書 卷70 孔融列傳

235)구주(九州):구연(九埏)과 같은 말로, 온 천하의 끝을 말한다.

236)취향(醉鄕):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경지를 말한다. 328쪽 주203 참조.

237)왕패(王覇):왕도와 패도(覇道)로, 덕으로 천하를 통일한 자를 왕(王)이라 하고, 계책을 잘 세워 무력으로 승리한 자를 패(覇)라고 한다.

238)계료(薊遼):계(薊)는 계주(薊州)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일대를 가리키고, 요(遼)는 요서(遼西)와 요동(遼東) 지방을 가리킨다.

239)완화(浣花):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의 서쪽에 있는 완화계(浣花溪)로, 당나라 시인 두보의 고택이 이곳에 있었는데,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240)구구하게……있으랴:매화꽃이 핀 걸 보면 절기를 알 수가 있어서 따로 절기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율관(律管)은 고대에 절후를 관측하던 기구로, 대나무나 금속으로 만들며, 모두 12개로 이루어졌다. 밀실에 이 율관을 놓아두고 갈대를 태운 재를 채운 다음 흰 천을 덮어두면 절후가 바뀔 적마다 한 개의 율관마다 재가 올라와서 천에 달라붙는데, 그것을 보고서 절기를 측정했다고 한다.

241)갈고(羯鼓)……펼쳐졌네:서방 오랑캐인 갈족(羯族)이 치는 북이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특히 이 악기를 잘 쳤다. 대모연(玳瑁筵)은 조정의 고관들이 모두 모여서 베푸는 화려한 잔치를 말하는데, 전하여 호화롭고 진귀한 잔치를 말한다.

242)취해 꺾인 옥산(玉山):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진(晉)나라의 산도(山濤)가 말하기를, “혜숙야(嵇叔夜)의 사람됨은 외로운 소나무가 우뚝하게 서 있는 듯하며 술에 취하면 높은 옥산(玉山)이 장차 넘어지려는 것 같다.” 하였다. 숙야는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자이다. 世說新語 容止

243)나그네의 시름: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244)용(龍)……생겨났네:용을 베는 특별한 재주를 배웠으나 쓸 데가 없음을 뜻한다. 289쪽 주101 참조.

245)직설(稷契):순 임금의 명신이었던 후직(后稷)과 설(契)을 이른다.

246)당우(唐虞):요 임금과 순 임금의 시대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247)종정(鍾鼎)……없었으며:재주나 그릇이 작은 사람은 큰 공훈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종정은 큰 종(鍾)이나 솥[鼎]으로, 옛날에 국가에 큰 공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여기에 기록하였다. 두소(斗筲)는 작은 그릇을 말한다.

248)시조(市朝)는……하였다네:벼슬살이하느라 산속으로 들어가 은거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시조는 저잣거리와 조정을 말한다.

249)높은……있네:높은 의표는 매화의 자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유(巢由)는 요 임금 때의 고사(高士)인 소부(巢父)와 허유(許由)로, 이들은 기산(箕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는데, 요 임금이 허유를 불러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허유가 그 소리를 듣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영수(潁水)의 물에 귀를 씻었다. 소부가 소를 끌고 와서 물을 먹이려고 하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는 그 까닭을 물으니, 허유가 “요 임금이 나를 불러 구주의 장을 삼으려고 하므로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씻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자 소부가 그 귀를 씻은 물을 먹이면 소의 입을 더럽히겠다고 하면서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서 물을 먹였다. 高士傳 許由 물을 베고 있다는 것은 물로 귀를 씻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손초(孫楚)가 은거하려고 하면서 그의 벗인 왕제(王濟)에게 “돌을 베고 물로 양치질하겠다.”라는 말을 “돌로 양치질하고 물을 베겠다.”라고 잘못 말하였다. 그러자 왕제가 “물을 어떻게 베며 돌로 어떻게 양치질하는가?”라고 반문하자, 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으려 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이빨을 닦으려고 해서이다.” 하면서 둘러대었다. 晉書 卷56 孫楚列傳

250)서호(西湖):송나라 사람 임포(林逋)가 살던 곳이다. 270쪽 주45 참조.

251)주취(珠翠):구슬과 비취인데, 이것은 모두 여인의 머리 장식에 쓰이는 것으로, 전하여 여인의 머리꾸미개를 말한다. 여기서는 기생들을 가리킨다.

252)주인장은……말리는데:한나라 때 진준(陳遵)이 빈객을 매우 좋아하여 항상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하였는데, 빈객이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타고 온 수레의 굴대를 빼서 우물에 던졌다. 漢書 卷92 游俠傳 陳遵

253)소고(小姑):산 이름으로, 소고산(小孤山)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팽택현(彭澤縣) 북쪽에 있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귀전록(歸田錄) 권2에 이르기를, “강남에 대고산(大孤山)과 소고산(小孤山)이 있는데, 세속에서는 글자가 바뀌어서 고(孤)를 고(姑)라고 한다. 강 곁에 낚시질을 하는 바위가 하나 있어, 그것을 팽랑기(彭浪磯)라고 하는데, 이 역시 바뀌어 팽랑기(彭郞磯)라고 한다. 팽랑(彭郞)은 소고의 남편이다.” 하였다. 소식(蘇軾)의 <이사훈화장강절도도(李思訓畵長江絶島圖)> 시에 이르기를, “배에 탄 장사꾼은 미치지를 말지어다. 소고 여인 지난해에 팽랑에게 시집갔다.[舟中賈客莫漫狂 小姑前年嫁彭郞]” 하였다.

254)염여퇴(灩澦堆):양자강(揚子江) 삼협(三峽) 중의 하나인 구당협(瞿塘峽)의 입구에 솟아 있는 험한 바위의 이름으로, 겨울철에 강물이 줄어들면 수백 척이나 우뚝하게 드러나고 여름에 강물이 불면 수십 척이나 물에 잠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말과 같으며, 뱃사공들이 무서워서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고 한다.

255)아침……비:운우지정(雲雨之情)의 고사를 말한다. 321쪽 주180 참조.

256)서재의 벽에 제하다: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257)도주공(陶朱公)을……보내리라:도주공은 월(越)나라 사람 범려(范蠡)의 별칭으로, 그는 일엽편주를 타고 오호(五湖)로 가서 끝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327쪽 주199 참조.

258)종소리를……얻었다네:종소리를 듣고 깨닫는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성문각(聲聞覺)을 말한다. 두보의 유용문봉선사(游龍門奉先寺) 시에 이르기를, “깨려던 차에 새벽 종소리 들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깨닫게 하네.[欲覺聞晨鐘 令人發深省]” 하였다. 항마(降魔)는 귀신을 항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259)나귀……읊누나: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눈이 내리는 속에 비쩍 마른 나귀를 타고 장안의 동쪽에 있는 패교(覇橋)에 가서 매화를 구경한 일이 있었으므로, 송나라 소식의 시에 “또한 보지 못했는가, 눈 속에서 나귀를 탄 맹호연이 이마 잔뜩 찌푸린 채 시 지으며 웅크리고 있는 거를.[又不見 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260)驢:대본에는 ‘鱸’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문맥을 살펴 바로잡았다. 당나라 당언겸(唐彦謙)의 억맹호연(憶孟浩然)에 “郊外凌兢西復東 雪晴驢背興無窮”이라고 하였고, 이제현(李齊賢)의 설(雪)에 “令人却憶孟襄陽 驢背吟詩忍飢凍”이라고 하였다.

261)사씨(謝氏)……있었다네:사씨는 동진(東晉)의 명상(名相)인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사안이 어느 날 자녀를 모아놓고 글 뜻을 강론할 때, 갑자기 눈이 내렸다. 이에 사안이 말하기를, “흰 눈이 분분하니 무엇과 같은가?” 하자, 사안의 형의 아들인 호아(胡兒)는 말하기를, “공중에 소금을 흩뿌린 것과 조금 흡사하다.[散鹽空中差可擬]” 하고, 형의 딸인 도온(道鞰)은 말하기를, “버들개지가 바람에 날린다는 것이 낫지 않을까?[未若柳絮因風起]” 하니, 사안이 도온의 영리함을 극찬하였다. 晉書 卷96 列女列傳 王凝之妻謝氏

262)내……같네: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온 지가 10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계리(計吏)는 회계를 맡아 다스리는 지방의 아전을 가리킨다. 옛날에 지방의 향시에 급제한 자가 서울에서 치르는 회시(會試)에 응시할 적에는 계리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응시하였으므로, 후대에는 인재를 선발하여 경사(京師)의 회시에 응시하게 하는 뜻으로 쓰였다. 청도(淸都)는 전설 속에 나오는 천제가 사는 궁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도성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263)전에……휘둘렀고:봉도(蓬島)는 비각(秘閣)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춘추관(春秋館)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사마(司馬)의 붓은 사마천(司馬遷)의 붓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264)오늘에는……있네:채휴(菜畦)는 채마밭을 말하며, 두릉(杜陵)의 호미는 두보가 잡았던 호미를 말한다.

265)율리(栗里)에다……마음이고:율리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에 있는 지명으로 도잠(陶潛)이 이곳에서 은거하였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이르기를, “세 오솔길은 묵어가는데, 솔 국화는 그대로 있네.[三逕就荒 松菊猶存]” 하였다.

266)융중(隆中)에서……않네:융중은 양양(襄陽)에 있는 지명으로, 촉(蜀)의 제갈량(諸葛亮)이 유비(劉備)를 만나기 전에 이곳에 은거해 있으면서 초려(草廬)를 짓고 살았는데, 유비가 이곳으로 세 번을 찾아가서 제갈량을 등용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267)집에……전해지네:집에 많은 서책이 있다는 뜻이다. 전국 시대 송나라 사람 혜시(惠施)는 많은 장서가 있어 이를 운반하자면 다섯 수레에 나누어 실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나라 이의산(李義山)의 시에, “내가 붓을 들면 곧 천 자를 지으니, 내가 다섯 수레 책을 읽었는가 의심되네.[顧我下筆卽千字 疑我讀書傾五車]” 하였다.

268)세……전신(前身)이네:청포(靑袍)는 당나라 때 팔품(八品)이나 구품(九品)의 관원들이 입던 관복으로, 전하여 미관말직(微官末職)을 의미한다. 두릉(杜陵)의 굶주린 객은 당나라의 시인 두보를 가리킨다. 두보의 <도보귀행(徒步歸行)> 시에, “청포 입은 조사 중에 가장 빈곤한 나는, 백발의 습유로서 도보로 돌아가노라.[靑袍朝士最困者 白頭拾遺徒步歸]” 하였다.

269)기구(箕裘)의 업:조상들의 세업(世業)을 말한다. 예기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쇠를 잘 불리는 자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고, 활을 잘 만드는 자의 아들은 반드시 키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 한 데서 나온 말이다.

270)서검(書劍):문인이 지니고 다니는 책과 칼이다. 289쪽 주96 참조.

271)원로(鴛鷺):원추새와 백로를 말하는데, 이 두 새는 그 의용(儀容)이 한아(閒雅)하다 하여 조정에 늘어선 백관의 질서 정연한 모습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바, 조정 신하들의 반열을 가리킨다.

272)고양지(高陽池)서……왔네:고양지는 호북성(湖北省) 현산(峴山)의 남쪽에 있는 못으로, 이곳의 토호(土豪)인 습씨(習氏)들의 원지(園池)인데, 습가지(習家池)라고도 한다. 진(晉)나라 때 산간(山簡)이 양양(襄陽)을 맡고 있으면서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면서 놀았는데, 일찍이 술에 취하지 않은 채 돌아간 적이 없었으며, 그때마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돌아갔다고 한다. 晉書 卷43 山簡列傳

273)장륙술(藏六術):거북이 머리와 꼬리와 네 발의 여섯 부분을 껍데기 속에 숨기는 것을 말하는데, 전하여 선비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시골에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274)해기(駭機):돌연히 촉발한 노기(弩機)라는 뜻으로, 갑자기 발생한 화난(禍難)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275)온……않거니와:온 천하가 다 통일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천하가 통일되면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규격의 수레바퀴를 사용한다.

276)위호(威弧):위력 있는 활로, 무위(武威)를 뜻한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의 “나무를 구부려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그 이로움을 활용해서 천하를 제압한다.[弦木爲弧 剡木爲矢 弧矢之利 以威天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77)희성(姬聖):주나라의 주공(周公)을 가리킨다. 주공은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의 동생으로,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단(旦)이므로 이렇게 이르는 것이다.

278)태공(太公):태공망(太公望)으로, 성은 여(呂), 이름은 상(尙)이다. 주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군사(軍師)였으며, 무왕에 의해 제(齊)나라에 봉해져 영구(營丘)에 도읍하였다.

1)진천(鎭川):이 시에서부터 이 권의 끝 470쪽에 나오는 독락정(獨樂亭) 시까지는 삼탄이 1465년(세조11) 충청도 관찰사로 가 있는 동안에 관내를 순행하면서 지은 것이다.

2)오궤(烏几):검은 양의 가죽으로 싼 궤안(几案)으로, 앉을 때 기대어 앉는 물건이다.

3)단정(短亭):옛날에 5리(里)마다 단정을, 10리마다 장정(長亭)을 설치하였다. 白孔六帖 卷9 館驛

4)지주(地主)……깨끗하여:지주는 고을의 수령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청안 현감(淸安縣監)을 가리킨다. 빙옥(氷玉)은 얼음과 옥으로, 맑고 깨끗하여 아무런 티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5)사화(使華)와의……끈끈타네:사화는 임금의 명을 받들고 외방으로 나가는 사신(使臣)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충청도 관찰사로 있는 삼탄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교칠(膠漆)은 아교와 옻칠로, 아교를 옻칠 속에 넣으면 딱 달라붙으므로, 흔히 정이 서로 깊은 것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하며 융통성이 없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쓰기도 한다.

6)시반(詩斑):시를 짓느라 노심초사하여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것을 말한다. 당승(唐僧)의 시에 “시를 짓다가 머리털은 반백 되었네.[髮爲作詩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7)세묘(世廟)께서……납시었네:세묘는 세종을 가리킨다. 세종은 피부병이 있어 여러 차례 초수(椒水)에 행차하여 목욕하였다.

8)제소(帝所)에서……듣고:모든 사람들이 임금이 머무는 곳에서 들려오는 풍악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제소는 옥황상제가 있는 곳으로, 임금이 있는 곳을 뜻하며, 균천(鈞天)은 균천광악(鈞天廣樂)의 준말로, 신선들이 사는 하늘나라의 음악을 말한다.

9)우연(虞淵):전설 속의 해가 진 후 들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이르기를, “해가 우연에 도달하는 것을 황혼이라고 한다.” 하였다.

10)행궁(行宮):임금이 대궐을 떠나 임시로 머무는 곳을 뜻한다. 여기서는 세종이 초수(椒水)에 목욕하기 위해 왔다가 머문 터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11)옥서(玉署):본디는 홍문관(弘文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집현전(集賢殿)을 가리킨다. 삼탄은 1447년(세종29)에 식년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하고서 집현전 부수찬에 제수되었다. 1456년(세조2) 6월에 일부 집현전 학사와 그 출신자들이 주동이 되어 집현전에 모여서 단종 복위를 도모한, 이른바 사육신 사건으로 인해 집현전이 혁파되었으며, 그 뒤 성종 때 집현전의 후신으로 홍문관이 설치되었다.

12)춘대(春臺):날씨가 좋은 봄날에 올라가서 좋은 경치를 바라다보는 곳으로, 태평성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13)좌액관(左掖官):사간원(司諫院)의 관원을 뜻한다. 좌액은 재상부(宰相府)의 왼쪽에 있는 작은 문이다.

14)소조(蕭曹)……않고:소조는 한나라 고조(高祖) 때 상국(相國)을 지낸 소하(蕭何)와 혜제(惠帝) 때 소하의 뒤를 이어 역시 상국이 된 조참(曹參)을 말하는데, 이들은 모두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개국 공신(開國功臣)이다. 도필리(刀筆吏)는 서리(書吏)를 말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대쪽에 칼로써 붓을 대신하여 글자를 새겼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15)방위(房魏):당나라 때의 현신인 방현령(房玄齡)과 위징(魏徵)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태종(太宗)을 보좌하여 당나라의 기반을 다졌다.

16)위궐(魏闕):임금이 사는 궁궐을 가리킨다. 임금이 사는 대궐의 문이 우뚝하니 높으므로 이렇게 이르는 것이다.

17)동구……위로하리: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지친 부모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18)생각건대……못하구나: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외지에 나와 있는 것이 대궐 안에서 임금 곁에 있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금인(金印)은 금으로 만든 도장으로, 여기서는 관찰사인(觀察使印)을 뜻한다. 옥계(玉階)는 대궐의 섬돌을 뜻한다.

19)윤언(輪焉) 노래:새로 지은 집의 아름다움을 찬송하는 노래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대부인 헌문자(獻文子)의 집이 완공되었을 때, 대부인 장맹(張孟)이 으리으리한 그 집의 규모를 보고는 “아름답다! 높고 크며, 멋있다! 없는 게 없네.[美哉輪焉 美哉奐焉]”라고 노래하였다. 禮記 檀弓下

20)포구……생각하니:조선 시대 전라도 지방의 조세(租稅)를 바닷길을 통해 서울로 운반했는데, 조운선(漕運船)이 안면도(安眠島) 바깥쪽의 안흥(安興) 근처를 지나다가 자주 파선(破船)되었다. 이 불편을 개선하기 위하여 안면도 안쪽의 태안반도(泰安半島)를 굴착하여 조운선을 통하게 하고자 하여 여러 차례 논의하였으나, 끝내는 역사(役事)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21)황원(皇元)에서……있었다네:황원은 원나라를 가리키고, 견천(俔天)은 하늘의 누이동생에 비유할 만한 성덕(聖德)이 있는 여인이란 뜻으로, 주 문왕의 비(妃) 태사(太姒)를 일러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대방에 자식 있으니, 하늘의 누이에 비유하리로다.[大邦有子 俔天之妹]”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태안 이씨(泰安李氏)의 딸 가운데 누군가가 원나라의 황실에 들어간 것을 말하는 듯한데, 구체적인 사실은 확인할 수가 없다.

22)만호(萬戶)의……있고:만호는 태안 이씨인 이장(李莊)을 가리키는데, 이장에 대한 사실은 자주(自註)에 자세하게 나온다. 죽백(竹帛)은 옛날에는 글을 대쪽이나 헝겊에 썼는바, 사서(史書)나 서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23)대부의……흩트렸네:삼탄의 외할아버지인 이회(李薈)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시를 지은 일을 말한다. 자주에 자세하게 나온다. 이회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태안(泰安)이고, 자는 송곡(松谷)이다. 조선 개국 후에 태조에게 발탁되어 병조 정랑이 되었는데 정권(政權)과 병권(兵權)의 분립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다가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다. 1407년(태종7)에는 세자 양녕대군(讓寧大君)을 시종하여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특히 우리나라 지도 발달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팔도도(八道圖)>를 제작하였다.

24)이손(耳孫):운손(雲孫)과 같은 말로, 먼 후대의 자손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외손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25)막대……기뻐하네:지방의 백성들이 어진 수령이 부임해 오는 것을 크게 환영한다는 뜻이다. 죽마는 어린아이들이 타고 노는 대나무 가지로 만든 말이다. 후한 때 곽급(郭伋)이 병주(幷州)에 있으면서 은혜로운 정사를 폈는데, 순시를 하다가 서하(西河)의 미직(美稷)에 도착하자, 어린아이 수백 명이 각자 죽마를 타고 길가에서 절을 하면서 맞이하여 환영하였다. 後漢書 卷31 郭伋列傳

26)금릉(金陵):지금의 남경(南京)으로, 명나라의 창시자인 주원장(朱元璋)이 처음 일어난 곳이다. 명나라의 서울이 처음에는 남경에 있었다.

27)황제가……여겼다:1408년(태종8)에 이회(李薈)가 양녕대군(讓寧大君)을 따라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황제가 자신이 지은 찬불가(讚佛歌)를 내려주면서 응제하게 하였는데, 이때 이회가 시를 지어 올리자 황제가 이회를 뜰로 오르게 하였다.

28)봉전(蓬轉):쑥대가 뭉쳐져서 바람에 굴러가는 것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한다.

29)도소주(屠蘇酒):설날에 마시면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장수한다는 도소(屠蘇)를 넣은 약주인데, 섣달 그믐날 밤에는 이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일설에는 옛사람이 도소옥(屠蘇屋)에서 술을 만들었으므로 도소주라고 한다 하는데, 화타(華陀)의 비방이다.

30)정원(庭院)에는……엉키누나:세시풍속 가운데 하나로, 섣달 그믐날 밤에 정중(庭中)에서 폭죽을 터트려서 온역(瘟疫)을 물리치는 풍속이 있었다. 考事撮要

31)봉래전(蓬萊殿)의……있고:봉래전은 당나라의 궁전 이름으로, 장안의 동쪽에 있었다. 전하여 임금이 사는 궁궐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오색구름은 다섯 가지 빛깔을 내는 상서로운 구름으로, 흔히 임금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32)적선(謫仙):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온 신선으로, 재예가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흔히 이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나, 여기서는 이색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33)해낭(奚囊):수행하는 어린 종자(從者)가 가지고 다니는 시고(詩稿)를 넣는 주머니를 말한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하소전(李賀小傳)에 이르기를, “이장길(李長吉)이 매일 아침에 해가 뜨면 제공(諸公)들과 노닐면서 항상 어린 종자를 데리고 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어린 종자에게 오래 묵은 비단 주머니를 등에 지고 따라다니게 하였다. 그러고는 우연히 좋은 시구를 얻으면 즉시 시구를 써서 그 주머니에 넣었다.” 하였다.

34)젊은……급제했네:목은(牧隱) 이색(李穡)은 1353년(공민왕2)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고,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1354년에 제과(制科)의 회시(會試)에서 1등, 전시(殿試)에서 2등으로 합격, 원나라의 한림문자승사랑(翰林文字承仕郎)에 제수되었다.

35)잠영(簪纓)으로……있고:잠영은 관(冠)에 꽂는 비녀와 갓끈으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이른다. 시서(詩書)는 시경서경으로, 학문을 이른다.

36)두 공부(杜工部):당나라의 시인으로 공부랑(工部郞)을 지낸 두보를 가리킨다.

37)사씨(謝氏)……가득하네:사씨는 남조(南朝) 시대 송나라의 시인인 사영운(謝靈運)과 사혜련(謝惠連)을 가리킨다. 이들은 종형제간으로 모두 시를 잘하였다. 어느 날 사영운이 시를 짓다가 막혔는데, 꿈속에서 사혜련을 만나보고는 영감이 생겨서 “연못에는 봄풀이 새로 돋았네.[池塘生春草]”라는 유명한 시구를 얻었다고 한다. 南史 卷19 謝惠連列傳

38)보거(輔車):수레는 네 바퀴가 있어야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처럼, 서로 간에 의지하고 돕는 것을 말한다.

39)그……썼거니와:성충(成忠)은 백제 의자왕 때 좌평(佐平)의 지위에 있던 충신이다.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 간하였다가 옥에 갇혀 죽었는데, 죽기 직전에 신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백제를 보전할 수 있는 계책을 진달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이 성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끝내 망하고 말았다.

40)생각건대……만지리라:전란으로 인해 황폐해진 풍경을 보며 마음 상해할 것이란 말이다. 한나라 때 구리로 낙타 두 마리를 만들어서 낙양의 궁성 문 밖에 두었는데, 진(晉)나라의 색정(索靖)이 앞일을 미리 헤아려보고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는 구리 낙타를 향하여 말하기를, “네가 가시밭 속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 하였다. 晉書 卷60 索靖列傳

41)현가(絃歌):수령이 정사를 펼 때 법도가 있어 백성들이 안락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노나라의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예악(禮樂)으로 가르쳤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가 소리를 울렸다고 한다. 論語 雍也

42)죽마(竹馬)……건:지방의 백성들이 어진 수령이 부임해 오는 것을 크게 환영한다는 뜻이다. 364쪽 주25 참조.

43)감당나무……할:어진 관리의 아름다운 정사를 칭송하는 말인데, 흔히 감사를 칭송하는 말로 쓰인다. 주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쳤는데,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해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甘棠) 시를 지어 기렸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詩經 召南 甘棠

44)하계진(賀季眞)의 청광(淸狂):하계진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풍류 시인인 하지장(賀知章)으로, 계진은 그의 자이다. 청광은 맑고 미치광이 같다는 뜻이다. 하지장은 성격이 활달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글씨를 잘 쓰고 술도 좋아했다. 중년에 벼슬길에 올라 태자빈객(太子賓客), 비서감(秘書監) 등을 제수받았으나 늘그막에 다 버리고 전리(田里)로 돌아와 자기 집을 천추관(千秋觀)으로 꾸미고, 또 방생지(放生池)를 만들기 위해 호수를 구하다가 천자의 명으로 경호(鏡湖)의 섬계(剡溪) 한 굽이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두보의 견흥(遣興)시에 이르기를, “하공은 본디 오어를 잘하여, 관직에 있어도 항상 맑고 미치광이 같았네.[賀公雅吳語 在位常淸狂]” 하였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賀知章 杜少陵詩集 卷7

45)양장(羊腸):옛날의 판도(坂道) 이름으로,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길이다. 길이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여 아주 위태로우므로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46)옥전(玉田):한나라 때의 효자인 옹백(雍伯)은 낙양 사람으로 무종산(無終山), 즉 옥전에 와서 살면서 3년 동안 목마른 행인들에게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해 주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돌 1되를 주면서 땅에 심게 하였다. 몇 년 뒤에 서씨(徐氏) 집에 딸이 있어서 옹백이 장가들고자 하였는데, 그 집에서 백옥 1쌍을 폐백으로 바치라고 하였다. 이에 옹백이 돌을 심었던 밭에 가서 5쌍의 백옥 구슬을 캐서 바치니 서공이 딸을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구름 속에서 용이 내려와 이들 부부를 맞이해 하늘로 데려갔으므로 그 후손들이 밭 가운데 비석을 세워 그 일을 기록하였다. 국역 연행록선집 8집 계산기정 제2권 22일

47)고향……부르리라:남제(南齊)의 공치규(孔稚珪)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이란 글을 지어, 주옹(周顒)이 자신과 함께 북산에 은거하다가 벼슬길에 나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다시는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글 가운데 “혜장이 텅텅 비자 밤중에 학 원망하고, 산인이 떠나가자 새벽에 납 슬피 우네.[蕙帳空兮夜鶴怨 山人去兮曉猿惊]”라는 구절이 있다.

48)혼화(昏花):정신이 어질어질하여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말한다.

49)기맥(綺陌):비단 실오라기가 가로세로로 수없이 교차된 것처럼 매우 어지럽고 복잡한 도회지의 도로를 말한다.

50)붉은……의심하리:진(晉)나라 때 어떤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어 무릉(武陵)의 시냇물이 처음 시작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는 도화가 가득하고 세상과 격리된 촌락이 있었는데, 물어보니 진 시황의 학정을 피해 도망 와서 사는 사람들로, 진 시황이 망한 줄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51)태진(太眞):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받은 양 귀비를 가리킨다.

52)고야선자(姑射仙子):막고야산(藐姑射山) 속에 산다고 하는 선녀이다. 41쪽 주42 참조.

53)사화(詞華):문채(文采)나 사조(詞藻)가 화려한 것을 말한다.

54)제호(醍醐):소나 양의 젖을 끓여서 만든 음료로, 아주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은 음료를 뜻한다.

55)행락(杏酪):살구 씨를 졸인 다음 꿀에 섞은 음식을 말한다.

56)포곡(布穀)은……재촉하네:포곡은 뻐꾸기의 별칭이다. 뻐꾸기가 울 때 ‘뻐꾹뻐꾹[布穀布穀]’ 하고 울어 마치 ‘씨 뿌려라, 씨 뿌려라.’ 하는 듯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57)영가집(永嘉集):고려의 승 의천(義天)이 지은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을 말한다.

58)영산회상(靈山會上)……해조음(海潮音):영산회상은 석존(釋尊)이 인도의 영취산(靈鷲山)에 있으면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을 말하는데, 주로 법화경(法華經)을 설하던 모임이다. 해조음은 부처가 설법하는 음성을 말한다.

59)전지(詮旨):요지를 천명(闡明)하는 것을 말한다.

60)화택(火宅):불교 용어로, 번뇌와 고통이 충만한 이 속계(俗界)를 말한다. 法華經 譬喩品

61)욕계(欲界):불교에서는 중생이 사는 세계를 욕계,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세 세계로 분류한다.

62)장해(藏海):대장경(大藏經)의 많은 분량과 뜻이 깊고 넓음을 형용하기 위해 ‘장경의 바다’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63)계모(溪毛):시냇가에 자라는 나물로, 제수(祭需)를 뜻한다.

64)화당(華堂):부귀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집을 말한다.

65)제비[鷰]:이 시는 속동문선 권7 칠언율시에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66)사고(社鼓):농악(農樂)을 말한다. 25호(戶)가 모여 1사(社)가 되는데, 공동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모이는 것을 사(社)라 한다.

67)여인송(輿人頌):춘추 시대 정(鄭)나라 사람들이 자산(子産)을 칭송한 노래로, 지방 수령의 훌륭한 정사를 칭송하는 노래를 뜻한다. 그 노래에 이르기를, “우리들이 자제를 두면 자산이 가르치고, 우리들이 토지를 가지면 자산이 늘려주네. 자산이 죽으면 누가 그의 뒤를 이을까.[我有子弟 子産誨之 子産田疇 我有殖之 子産而死 誰其嗣之]”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30年

68)초루(譙樓):성문 위에 세운 망루를 말한다.

69)봉전(蓬轉):쑥대가 뭉쳐져서 바람에 굴러가는 것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한다.

70)고삐……지났는데:충청도 관찰사로 재임한 지 반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관풍(觀風)은 지방의 풍속이나 인정의 득실을 살펴보는 것으로, 흔히 관찰사가 관내를 순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71)동산(東山):절강성(浙江省) 상우현(上虞縣) 서남(西南)에 있는 산 이름인데,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이곳에 은거하였으며, 또한 기녀(妓女)를 데리고 유연(遊宴)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72)시화역(時化驛):충청도 청안현(淸安縣)에 있던 역이다.

73)완적(阮籍) 궁도(窮途)에서 통곡했네:앞길이 가망이 없음에 상심하여서 통곡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의 명사인 완적은 사람됨이 활달하여 일반적인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에 답답한 일이 있으면 때때로 혼자서 수레를 타고 마음 내키는 대로 길을 가다가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한바탕 크게 통곡하고서 돌아왔다고 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74)취향(醉鄕):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경지를 말한다.

75)나는……좋거니와:한나라의 장량(張良)이 큰 공을 세우고서도 몸을 낮추어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잘한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유후(留侯)는 장량의 봉호(封號)이다. 장량이 유방(劉邦)을 도와 항우(項羽)를 쳐서 천하를 통일하는 공을 세우고서도 논공행상을 할 적에는 겨우 3만 호 되는 유후에 봉해진 데 만족하였으며, 이후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면서 보냈다고 한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76)오강(吳江):전당강(錢塘江)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맑은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이 고향인 오강 지방을 떠나 낙양(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중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자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 고사가 있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77)생각건대……있으리:섬계(剡溪)는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시내 이름이다.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한밤중에 눈이 내리자 친구인 대규(戴逵)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에 즉시 밤을 새워 배를 타고 가 대규가 사는 집 문 앞까지 갔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온 것이다.” 하였다. 世說新語 任誕

78)문원(文園) 앓던 소갈병:문원은 한나라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사마상여는 일찍이 효문원(孝文園)의 영(令)으로 있었는데, 항상 소갈증(消渴症)을 앓아 고생하였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79)마유(馬乳):포도의 일종으로, 당 태종(唐太宗) 때에 섭호국(葉護國)에서 바친 것이라고 한다. 한유의 포도(葡萄) 시에, “만일 쟁반 가득 마유가 쌓이게 하려거든, 대나무 갖다가 넝쿨 끌어주는 걸 사양치 마소.[若欲滿盤堆馬乳 莫辭添竹引龍鬚]” 하였다.

80)삼절(三絶):한 사람이나 한 물건이 뛰어난 점 세 가지를 한꺼번에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그림과 글씨와 시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포도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세 가지 점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본초(本草)에 이르기를, “포도는 기운을 돕고 뜻을 강하게 하며, 사람을 살찌우면서 배고픔을 적게 하며, 사람의 수명을 늘려주고 몸을 가볍게 해 준다.” 하였다. 淵鑑類函 卷403 葡萄

81)공……크네:술 깨는 데 포도가 좋다는 말이다. 위(魏)나라 문제(文帝)가 여러 신하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아침에는 포도를 먹어서 숙취를 깨도록 하라. 이슬에 젖은 것을 먹으면 달면서도 질리지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시지 않고, 차면서도 차갑지 않으며 맛은 깊고 즙은 많아 해갈증을 없앨 수 있다.……다른 지방에서 나는 과일 가운데 어찌 포도에 필적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淵鑑類函 卷403 葡萄

82)차군(此君):대나무의 별칭이다.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사는 곳마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이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83)도연명(陶淵明)은……지었으며:도연명은 진(晉)나라의 도잠(陶潛)으로 그가 지은 한정부(閑情賦)도연명집(陶淵明集) 권5에 서문(序文)과 함께 실려 있다.

84)신녀(神女)는……돌아갔네:전국 시대 초나라의 양왕(襄王)이 송옥(宋玉)과 운몽택(雲夢澤)에 있는 고당(高唐)이란 누대에서 놀았는데, 송옥이 말하기를, “옛날에 선왕께서 고당에서 노시다가 낮잠이 들어 꿈속에서 무산(巫山)의 선녀를 만나 놀았는데, 선녀가 이별하는 즈음에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산속에 사는데, 아침이면 떠가는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내리는 비가 되어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양대(陽臺)의 아래로 내려옵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文選 卷19 高唐賦

85)호주(湖州)……말거나네:호주 땅의 미친 어사는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을 가리킨다. 두목이 일찍이 양주(揚州)에서 회남 절도사(淮南節度使) 우승유(牛僧孺)의 막료로 있으면서 몰래 기루(妓樓)를 출입할 때 지은 견회(遣懷) 시에, “십 년 만에 한 번 양주의 꿈을 깨고 나니, 미인에게 무정하단 이름만 실컷 얻었네.[十年一覺揚州夢 占得靑樓薄倖名]”라고 하였다.

86)한발(旱魃):가뭄을 맡은 신(神)의 이름이다.

87)천표(天瓢):전설 속에 나오는 표주박으로, 천신(天神)이 비를 내릴 때 쓰는 것이다.

88)부유(蜉蝣):하루살이를 말한다. 전하여 하찮은 목숨을 뜻한다.

89)진 시황(秦始皇)의……거고:진 시황이 영원토록 불로장생하기 위해 서복(徐福)에게 동해의 삼신산(三神山)으로 가서 불로초(不老草)를 캐 오라고 하면서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데리고 가게 하였는데, 서복이 일본에 도착하여 그곳에 살면서 돌아오지 않아 일본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90)한 무제(漢武帝)가……것이네:한 무제가 신선술에 미혹되어 감로(甘露)를 받아 마셔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였다. 이에 건장궁(建章宮)에 신명대(神明臺)를 세우고 동으로 선인장(仙人掌) 모양을 만들어 세워서 동반(銅盤)을 떠받치고서 감로를 받게 하였다. 漢書 卷25 郊祀志上

91)영주(瀛洲):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로, 그 모양이 마치 술병과 같이 생겼다고 한다.

92)강수(講蒐):군사 훈련을 위한 사냥을 말한다.

93)문풍(文風)……말하거니:문풍이 아주 뛰어난 고을이라는 뜻이다. 추로(鄒魯)는 추나라와 노나라로, 노나라는 공자가 교화를 편 나라이고, 추나라는 맹자가 교화를 편 나라이다.

94)범궁(梵宮):사찰을 말한다.

95)연우(蓮雨):연꽃의 비로, 부처가 내리는 은덕의 비를 말한다.

96)칠보림(七寶林)의……하려는가:칠보림은 절을 말하고, 상연(象筵)은 상아로 만든 의자로, 전하여 아주 호화로운 의자를 말하는데, 흔히 불좌(佛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97)진인(眞人):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성계는 고려 우왕(禑王) 때 왜구들을 토벌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98)팔연(八埏):팔방의 끝닿는 곳으로, 천지의 끝을 말한다.

99)시반(詩斑):시를 짓느라 노심초사하여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것을 말한다. 356쪽 주6 참조.

100)누런 구름[黃雲]:누렇게 익은 벼나 보리를 표현하는 시어이다.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의 <동진화숙유제안원(同陳和叔遊齊安院)> 시에 이르기를, “하얀 눈의 고치 짓자 뽕은 다시 파래지고, 누런 구름 베어내자 벼는 정히 푸르구나.[繅成白雪桑重綠 割盡黃雲稻正靑]” 하였다.

101)이……것이리:이 세상에서 벗어나 우주에서 놀 것이란 뜻이다. 구은(九垠)은 구연(九埏)과 같은 말로, 온 천하의 끝을 말한다. 한만(汗漫)은 광대무변한 세계를 말한다. 장자에 이르기를, “한만과 더불어서 천지 밖을 기약한다.” 하였다.

102)꽃……닮았네:꽃을 찾는다는 것은 미녀를 만나보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가 호주(湖州)에서 노닐 때 그곳 자사와 절친한 사이였으므로 자사의 주선으로 여러 미녀를 두루 보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다가 10여 세 된 소녀가 하나 왔는데 자세히 보니 참으로 절색이었다. 이에 두목지가 10년 뒤에 와서 너를 맞이하겠다면서 만약 10년 뒤에도 맞이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데로 출가해도 좋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나왔다. 그 뒤 14년이 흐른 뒤에야 호주로 가서 보니, 그녀는 이미 3년 전에 출가하여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살고 있었다. 이에 두목지가 “봄을 찾는 약속이 늦었으니 꽃다운 시절 한할 필요 없으리. 광풍이 붉은 꽃 다 떨어뜨려 푸른 잎 짙게 피고 열매가 주렁주렁하구나.”라는 시를 남기고 섭섭해하였다. 古今事文類聚 約妓愆期

103)환륜송(奐輪頌):집이 크고 아름다운 것을 찬탄하는 노래이다. 362쪽 주19 참조.

104)누선(樓船):다락배로, 화려하게 꾸민 배를 말하는데, 전하여 뱃놀이를 하기 위해 타는 배를 말한다.

105)만고(蠻鼓):남쪽 오랑캐들이 치는 북을 말한다.

106)양관삼첩(陽關三疊)……따라가네:양관삼첩은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인 양관삼첩곡(陽關三疊曲)을 말한다. 양관은 중국 돈황(燉煌)으로, 이곳은 아주 먼 곳이므로, 흔히 이곳으로 떠나는 사람을 송별하는 노래인 이 노래는 이별을 슬퍼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칭해졌다. 봉소(鳳簫)는 농옥(弄玉)과 소사(蕭史)가 부는 퉁소를 가리킨다.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딸 농옥이 음악을 아주 좋아하였으며, 소사는 퉁소를 잘 불어서 봉새가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에 목공이 농옥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누각을 지어주었는데, 이들 두 사람이 퉁소를 불면 봉황이 날아와서 모였으며, 두 사람은 그 뒤에 봉황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列仙傳

107)자신궁(紫宸宮):임금이 조정 백관과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정전(正殿)의 이름으로, 전하여 임금이 사는 궁궐을 말한다.

108)황계(荒鷄):한밤중에 때 아니게 우는 닭을 말한다. 332쪽 주213 참조.

109)도규(刀圭):약을 뜨는 도구인 숟가락을 말하는데, 전하여 의술(醫術)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110)시마(詩魔)에다 주광(酒狂):시 짓기를 좋아하는 성벽(性癖)과 술을 좋아하는 성벽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11)예정(霓旌):오색의 깃털로 만든 깃발로, 천자의 의장(儀仗) 가운데 하나이다.

112)봉련(鳳輦)……모시었으며:봉련은 임금이 타는 수레를 말하고, 청아(靑娥)는 젊은 미녀로, 여기서는 의자왕(義慈王)의 삼천 궁녀를 가리킨다.

113)용주(龍舟):용 모양을 장식한 배로, 큰 배를 말하는데, 흔히 놀잇배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114)아침……했고:운우지정(雲雨之情)의 고사를 말한다. 400쪽 주84 참조.

115)균천(鈞天):균천광악(鈞天廣樂)으로, 신선들이 사는 하늘나라의 음악을 말한다.

116)구연(九淵):아홉 겹의 못으로, 아주 깊은 못을 뜻한다.

117)조룡석(釣龍石):부여의 백마강(白馬江)에 있는 조룡대(釣龍臺)를 말한다. 나당(羅唐)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마강에 이르자 용의 조화로 갑자기 바람이 일고 비가 쏟아졌다. 이에 백마를 미끼로 하여 그 용을 낚았는데, 그때 용의 무게에 의하여 신발 흔적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8 扶餘縣

118)성충(成忠)의……않아서:성충은 백제 의자왕 때 좌평(佐平)의 지위에 있던 충신으로,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 간하였다가 옥에 갇혀 죽었다. 372쪽 주39 참조.

119)만촉(蠻觸):달팽이의 양쪽 뿔에 있다고 하는 나라로, 아주 작은 나라를 가리킨다. 장자 칙양(則陽)에 이르기를,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촉씨(觸氏)라 하고, 달팽이의 오른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만씨(蠻氏)라 하는데, 서로 영토를 다투어서 전쟁을 한다.” 하였다.

120)현가(絃歌):예악으로 고을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373쪽 주41 참조.

121)금규(金閨):한나라 때 궁궐의 문인 금마문(金馬門)으로, 본디 학사(學士)들이 대조(待詔)하던 곳이었는데, 전하여 조정(朝廷)을 가리킨다.

122)요지(瑤池):곤륜산(崑崙山)에 있다고 하는 선경(仙境)으로,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곳인데, 서왕모가 이곳에서 신선들을 모아서 잔치를 하였다고 한다.

123)부모……혼미하네:부모님이 그리워서 고향으로 가고픈 맘과 관찰사로서의 직임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뜻이 혼미하다는 말이다. 당발(棠茇)은 흔히 관찰사의 어진 정사를 표현할 때 쓰이는 말이다. 376쪽 주43 참조.

124)이명(離明):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이르기를, “이는 불이 되고 해가 된다.[离 爲火 爲日]” 하였다.

125)접시꽃만이……아니네:접시꽃은 항상 해를 향해 피므로, 이를 인하여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정성을 뜻한다. 삼국지(三國志) 권19 위서(魏書) 진사왕식전(陳思王植傳)에 이르기를, “접시꽃은 해를 향하여 꽃잎을 기울이는 것과 같으니, 태양이 비록 접시꽃을 위하여 빛을 돌리지는 않으나, 접시꽃이 해를 향하는 것은 정성인 것이다.” 하였다.

126)철찰(鐵刹):국보 41호로 지정된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에 있는 철당간(鐵幢竿)을 말하며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다. 이 철당간은 본래 ‘구리 돛대[銅檣]’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5 청주목(淸州牧) 고적(古跡) 동장(銅檣)에 이르기를, “고을 성안의 용두사에 있다. 절은 폐사(廢寺)가 되었지만 돛대는 남아 있으며, 높이가 10여 길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처음 주(州)를 설치할 때 술자(術者)의 말을 써서 이것을 세워 배가 가는 형국을 나타내었다.’ 한다.” 하였다.

127)어느……왔나:만계(蠻溪)는 호남성(湖南省)과 귀주성(貴州省) 사이에 위치한 만지(蠻地)에 있는 오계(五溪)를 말한다. 구리 기둥은 동한(東漢) 광무(光武) 때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교지(交趾) 지역을 평정한 다음 한나라와 외국의 경계를 표시한 두 개의 동주(銅柱)를 말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注

128)한원(漢苑)……같네:한 무제가 신선술에 미혹되어 감로를 받아 마셔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여 만들었던 승로반(承露盤)을 말한다. 406쪽 주90 참조.

129)기주(蘄州) 자리:기주는 중국 호북성에 있는 지명인데, 이곳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며, 이곳에서 만든 대자리가 아주 좋다고 한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시에 “단계에선 이운 달 모양 베개를 만들어내고, 기주에선 두 물결무늬 자리를 짜내었네.[端谿作出缺月樣 蘄州織成雙水紋]” 하였다. 文忠集 卷8

130)황매(黃梅):매실이 누렇게 익는 계절인 초여름을 말한다. 이때에는 긴 장맛비가 내리는데, 이를 황매우(黃梅雨)라고 한다.

131)사롱(紗籠)으로……마소:삼탄 자신이 지은 시를 후대에 전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나라 때 사람인 왕파(王播)가 일찍이 빈천하여 절에 가서 기식(寄食)하고 있었는데, 중들이 이를 미워하여 밥을 먹고 난 후 식사 종을 울리어 왕파로 하여금 밥을 먹을 수 없게 하였다. 이에 왕파가 그 뜻으로 시를 지어 절에 남겨두었는데, 그 뒤에 왕파가 고관에 올라 그 지역을 다스리게 되어 그곳을 다시 찾으니, 그가 지은 시가 모두 비단에 싸여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唐摭言 卷7

132)전에……맑았다네:봉래도(蓬萊島)는 발해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로, 여기에는 신선들이 살며 불사약이 있고 새와 짐승이 모두 희며,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천향(天香)은 방향(芳香)이나 꽃을 가리킨다. 수궁(水宮)은 용궁(龍宮)을 말한다.

133)연풍……기:시의 원제목이 너무 길어 요약하고 내용은 아래 본문으로 번역하였다.

134)호남(湖南):여기서는 충청도 지방을 가리킨다.

135)산……하고:산을 유람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는 뜻이다. 납극(蠟屐)은 남송(南宋) 때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산을 유람하면서 신었던 나막신을 말한다. 사영운은 산에 올라갈 때는 나막신의 앞 굽을 빼고 오르고,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빼고 내려왔다고 한다. 南史 卷19 謝靈運列傳

136)강……하네:은거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는 뜻이다. 전국 시대 초나라의 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