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 17:23ㆍ茶
송동자하산(送童子下山 산을 내려 가는가)
空門寂寞汝思家(공문적막여사가)러니 고요한 절 한나절 하도 길 때면
먼 산 바라고 옛집 그리더니
禮別雲房下九華(예별운방하구화)하니 함께 머물던 흰 구름 떠나
산을 내려가는가
愛向竹欄騎竹馬(애향죽난기죽마)여 난간에 뛰어올라 죽마타던 아이야
懶於金地聚金沙(나어금지취금사)로다 이곳은 황금 땅 부처님 나라.
금모래 모으는 일도 이제 싫으냐!
漆甁澗底休招月(칠병간저휴초월)이요 옻칠병 속 시냇물엔
밝은 달 찾아올 일 없겠고
烹茗遼中罷弄花(팽명료중파농화)라 차 달인 단지에는
향긋한 꽃 필 일 없겠네
好玄不須頻下淚(호현불수빈하루)요 부처님 그리는 이는 자주 울 일 없나니
老僧相伴有煙霞(노승상반유연하)로다 노승은 노을의 벗 노을은 노승의 벗
[김교각 스님]
@ 지장교각(地藏喬覺, 696 ~ 796) : 성덕왕의 장자 金守忠, 중국땅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 한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신라왕자 김교각 스님일 것이다. 김교각 스님은 중국 안에서 일고 있는 한국 열풍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는 김교각 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난 1999년 9월 9일, 99m의 동상 건립 기공식을 갖고 현재 공사를 완공하여 참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김교각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1500년 되는 696년에 신라 성덕와의 왕자로 태어났다. 스물 네 살에 출가하여 지장(地藏)이라는 법명을 받은 뒤에 스님은 신라에서 선청이라는 흰 삽살개 한 마리와 오차송이라는 소나무 종자, 황립도(黃粒稻)라는 볍씨와 금지차(金地茶)라는 신라차를 가지고 중국 구화산으로 건너간다.
구화산에 이르러 초인적인 고행과 뛰어난 법력으로 그곳 사람들을 교화하다가 99세 되는 794년 음력 7월 30일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내가 열반한 뒤 내 몸을 화장하지 말고 돌함에 넣어 두었다가 세 해가 지난 뒤 열어 보아라. 만일 그때까지 썩지 않으면 그대로 개금하여라."
신라왕자 지장스님의 육신성도(肉身成道)를 통해 중국사람들은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게 되었고, 이로부터 중국불교에 육신보살의 전통이 생겨났다. 지장스님이 열반하신 음력 7월 30일에는 중국에서 가장 성대한 종교축제가 열리고 있다.
중국 당시집(唐詩集)에는 김교각 스님의 차시(茶詩) 한편이 실려있다. 호랑한테서 구해준 고아 아이가 절에서 살다 적막함을 못 이기자 시 한 수를 지어 마을로 돌려보내니, 이 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왕자 김지장 스님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세 나라에서 함께 받드는 위대한 스승이다. 한, 중, 일 삼국의 불교인들과 다인들이 공통적으로 존경하고 받드는 역사인물을 꼽는다면 김지장 스님이 첫 번째라 하겠다.
지장스님의 게송 중에
衆生度盡(중생도진) 중생을 모두 제도하는 것이
方證菩提(방증보리) 깨달음의 완성이니
地獄未空(지옥미공)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誓不成佛(서불성불)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
중생들은 이기심과 욕망 때문에 끝없는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으로 지구환경은 파괴되고 자연의 재앙은 해마다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지장스님은 지옥중생의 생명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니고 지구 생명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니라고 하셨다.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 이가 나의 제자라고 하신다. 지장스님의 원력과 사상을 배우고 그 뜻을 널리 펴는 일은 전쟁과 파멸의 길을 가는 모든 인류가 공존의 지혜를 깨닫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