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남 산북기행 이십수(山北紀行二十首)

2017. 6. 6. 13:16옛산행기

山北紀行1)二十首

 

나의 성정은 뜻이 크고 오만하며 말없이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여 세상과 맞는 일이 적고 친구는 멀어져 산림과 호수 바다 사이에서 방황했던 기억에 기댈 뿐이다. 병오년(1846) 초여름 시를 기록할 전대 하나를 어린 하인에게 지니게 하고는 지팡이 하나와 표주박 하나로 느긋하게 방장산 북녘으로 들어갔는데, 발걸음이 미친 곳의 경치를 되는대로 묘사하여 회포를 풀어본다.

 

余性簡傲靜默與世寡仇遠寄遙想彷徨乎山林湖海之間而已歲丙午初夏發詩橐使小奚携之一筇一瓢緩步入方丈北麓所履歷輒寫景散懷耳

 

[註] 1) 〈화산12곡〉에서 언급했듯이 제목부터 朱子의 〈산북기행〉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① 大棗亭(대조정)2)

 

軟履隨筇踏草靑(연복수공답초청) 가벼운 신발에 지팡이를 휘저으며 푸른 풀을 밟으며

入山前路始溪亭(입산전로시계정) 산으로 드는 길은 이곳 시냇가 정자에서 시작되네.

仁智試從行處樂(인짓기종행처락) 인자와 지자는 가는 곳마다 즐거운데

躍魚飛鳥摠吾形(약어비조총오형) 뛰어오르는 고기와 날으는 새가 내 모습에 부합하네.

 

2) 지금의 유림면 서주교 인근 강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기록을 참조하였다.

 

「나는 최정준과 함께 임천(瀶川) 하류로 갔다. 최계형 어른과 장항촌(獐項村)에서 만났다. <중략> 포시(晡時)에 산양(山陽) 저품촌(儲品村) 조정(棗亭)에 도착하였다. 시냇물이 합치는 곳은 푸른빛이 어린 못을 이루었는데, 가만히 있다가 노니는 물고기가 물결을 치며 뛰어올랐다. 흰모래가 평평하게 펼쳐져 있고 시야가 탁 트여 정말 승경이었다.」 1595년 정경운의 《고대일록(孤臺日錄)》

 

「마탄(馬灘)을 건너 장항(獐項)을 지나 함양(咸陽)의 경계인 조정(棗亭)에 당도하였다.」 1910년 배성호의 『유두류록』

 

덕계 오건(1521-1574)의 시 『대조정에서 노닐다[遊大棗亭]』

石老江蒼問幾年(석로강창문기년) 돌은 늙고 강은 푸르니 몇 해나 되었는가

古今風月此山前(고금풍월차전산) 예나 지금이나 달과 바람이 이 산 앞에 있네

無邊淸趣無人管(무변정취무인간) 끝없는 맑은 정취 관장하는 사람 없어

一任沙頭白鷺眠(일임사두백로면) 모래톱에서 졸고 있는 백로에게 맡겨두었네

(국역 : 한국고전번역원)

 

② 涵虛臺(함허대)

 

法華東麓抱江廻(법화동록포강회) 법화산 동쪽 기슭이 휘돌아 흐르는 강을 감싸고

峭壁撑空上有臺(초벽장공상유대) 허공에 솟은 날카로운 벼랑 위에 함허대가 있다.

漁戶酒家環兩岸(어호주가환양안) 고기잡이 집과 술파는 집이 양쪽 강언덕에 둘러 서 있고

年年春日送人來(년년춘일송인래) 해마다 봄날이면 이별하는 사람들이 찾는다오.3)

 

3) 이즈음에서 조선의 천재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물가의 이별론」에 대하여 잠깐 감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열하일기/막북행정록)

 

「<전략> 이별할 때는 그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괴로움은 더욱 커지는 것이니, 그 땅이란 정자도 아니요 누각도 아니며,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니다. 다만 물이 있는 곳이 바로 그러한 장소이다. 그 물이란 반드시 큰물인 강과 바다도 아니고, 작은 물인 도랑과 개천도 아니다. 되돌아오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라면 모두 물이 있는 이별장소가 될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우리나라는 땅이 워낙 좁고 살아서 멀리 이별하는 일도 없으니, 그토록 괴로운 심정은 알지도 못한다. 오직 뱃길로 중국에 들어갈 때가 가장 괴로운 생이별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악부(樂府)에 이른바 ‘배따라기(排打羅其)’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는 ‘배 떠나기’의 방언이며, 곡조가 몹시 구슬퍼 창자를 끊어내는 듯하다. <하략>」

 

③ 嚴川村(엄천촌)

 

江上殘村麥隴連(강상잔촌맥롱연) 강가의 작은 마을에 보리밭이 이어져 있고

行人指點古嚴川(행인지점고엄천) 행인이 가리키며 옛 엄천촌이라 하네.

世間榮悴渾無定(세간영췌혼무정) 인간세상의 번영과 쇠퇴는 뒤섞여 정해진 바가 없으니

佛塔重重臥草煙(불탑중중와초연) 불탑은 여기저기 풀숲의 연기 속에 넘어져 있구나.

 

④ 漢南村(한남촌) 漢南君塜在咸陽故云 한남군의 묘가 함양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渭南云是漢南邨(위남운시한남촌) 함양 남쪽 이곳을 한남촌이라 하니

冒古君居尙號存(모고군거상호존) 옛 왕손이 살던 곳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네.

底事當時來僻陋(저사당시래벽루) 당시에 무슨 일로 궁벽한 두메까지 왔는지···

杜鵑猶哭未歸魂(두견유곡미귀혼) 돌아가지 못한 넋을 위해 두견새는 아직도 슬피 우는구나.

 

⑤ 法華菴(법화암)4)

 

步步穿林又抱巖(보보천림우포암) 걸음걸음 숲을 뚫고 바위를 끌어안고 나아가니

懸空一路御晴嵐(현공일로어청람) 공중에 매달린 한 가닥 길에 맑은 산이내가 깔렸네.

何必求仙蓬海去(하필구선봉해거) 신선되기를 구하러 하필 바다 가운데 봉래산으로 가랴?

浪吟飛上法華菴(낭음비상법화암) 낭랑하게 읊조리며 법화암으로 날아오르면 될 것을.

 

4) 암자 이름 법화암은 법화경(法華經)에서 유래했을 것이고 법화경은 원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으로 불렀으며, 이때 華는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가리킨다. 법화암(대웅전)에서 바라보면 지리산 상봉·중봉·하봉이 영랑대 능선과 어우러진 모습이 연꽃처럼 보인다. 그래서 법화사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연꽃 같다고 본 이는 <까막눈이>다.

 

법화.jpg

<법화사에서 바라본 상봉쪽 모습>

 

⑥ 杜鵑(두견)5)

 

蜀道誰云艱(촉도수운간) 촉으로 가는 길 누가 험난하다고6) 했나?

一飛爾可還(일비이가환) 한번 날아서 너는 갔다 돌아올 수 있는데.

故冤無處訴(고원무처소) 원통해도 호소할 곳이 없으니

寂寂但空山(적적단공산) 다만 적적한 빈산에 울음을 토하는구나.

 

5) 고대 중국 촉(蜀)나라 임금 망제(望帝)는 임금 자리에서 쫒겨나 신세를 한탄하며 울다 죽었는데, 그의 영혼은 두견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 돌아가고 싶다)’하면서 목에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한다. 접동새·자규(子規)·촉자규(蜀子規)·귀촉도(歸蜀途)·두우(杜宇)·망제혼(望帝魂) 등으로도 불린다.

 

6) 촉(蜀 *사천성)으로 가는 잔도(棧道)는 옛부터 험난하기로 유명하였다. 그것을 읊은 李白의 악부시(樂府詩) 『촉도난(蜀道難)』도 촉잔도 못지않게 유명하다. 또한 우리에겐 우리 정서에 맞는 미당 서정주의 『귀촉도(歸蜀途)』가 있다.

 

⑦ 九松亭(구송정) 姜介菴所遊 강개암7)이 소요하던 곳

 

林林傳鳥語(임임전조어) 숲속엔 새소리

谷谷和樵歌(곡곡화초가) 골짜기엔 나뭇꾼의 노랫소리

九松亭下坐(구송정하좌) 구송정 아래 앉았는데

老鶴已經過(노학이경과) 늙은 학은 이미 지나가버렸구나.

 

7) 강익(姜翼 1523-1567) : 자 중보(仲輔), 호 개암(介庵)·송암(松庵), 본관 진주, 출생지 함양 효우촌(孝友村 *함양 수동). 남명의 문하였다. 정여창을 제향하기 위한 남계서원(藍溪書院) 건립(1552년 준공)을 주도하였다. 1566년 사액서원이 되었고, 본인도 사후 남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개암집》이 있다.

 

31세 때 덕계 오건과 지리산 북록을 유람하고는 등구(지금의 창원마을)가 마음에 들어 땅을 마련하여 모옥을 짓고, 별도로 양진재(養眞齋)를 지었다 한다.

또 41세 때 양진재에서 수십 보 남쪽, 경치가 뛰어난 시냇가 단애 위에 정자를 짓고 풍영정(諷詠亭)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후인들이 말하는 구송정이 아닌가 한다. 그의 문집에는 구송정 기사가 없다.

 

양진재.jpg


<지금 창원마을 입구에 양진재유허지라 한 곳은, 기록으로 볼 때 풍영정 유허지일 것 같고, 양진재는 마을 안에 있었지 싶다.>

 

이 시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조 3수가 전한다. 학창시절에 공부 열씨미 한 사람은 들어봤을 것이고~.

 

물아 어디 가느냐 갈 길 멀었어라.

뉘누리 다 채워 지나노라 여흘여흘

창해(滄海)에 못 미칠 전이야 그칠 줄이 있으랴.

 

시비(柴扉)에 개 짖는다 이 산촌에 그 뉘 오리.

댓잎 푸른데 봄새 울음소리로다.

아이야 날 추심(推尋) 오거든 채미(採薇)갔다 하여라.

 

지란(芝蘭)을 가꾸려 하여 호미를 둘러메고

전원(田園)을 돌아보니 반이나마 형극(荊棘)이다.

아이야 이 기음 못다 매어 해 저물까 하노라.

 

⑧ 金臺菴(금대암)

 

金臺縹緲揷層空(금대표묘삽층공) 금대는 아스라이 높은 하늘 사이로 솟구쳐

案對天王揖讓同(안대천왕읍양동) 마주보는 천왕봉과 읍(揖)하며 예절을 다하는 모습이로다.

老釋爲言羅代事(노석위언나대사) 늙은 스님은 신라 때의 일을 말하는데

宛遭仙仗過崆峒(완조선장과공동) 仙人을 만나 공동산8)을 다녀온 일이 분명 있었다 하네.

 

8) 신선이 사는 곳. 선인(仙人) 광성자(廣成子)가 공동산(崆峒山)에 있을 때, 전설상의 임금 황제(黃帝 軒轅氏)가 그를 찾아가 道를 물었다 한다. (《장자(莊子)》 『재유(在宥』편)

 

⑨ 安國菴贈九峯上人(안국암증구봉상인) 안국암에서 구봉상인에게 주다.

 

興逐名山宛躡虛(흥축명산완섭허) 명산을 따라가니 흥취가 일어나 완연히 허공을 밟는 듯하고

檀林無處不仙居(단림무처불선거) 절이 있는 곳은 신선의 거처가 아닌 곳이 없는데

一切衆生都寂滅(일체중생도적멸) 일체중생이 모두 적멸에 들고

妙門談却九峯廬(묘문담각구봉려) 열반의 오묘한 문에 이르는 그런 이야기는 도리어 구봉의 초막에서 듣네.

 

⑩ 望君子寺(망군자사) 군자사를 바라보며

 

草蓋連簷竹繞藩(초개련첨죽요번) 지금은 풀이 덮인 지붕에 처마가 맞붙어 있고 대나무로 울타리를 둘렀지만

舊時梵宇已成村(구시범우이성촌) 옛적엔 절이 마을을 이루었다네.

若使如來能有現(약사여래능유현) 만약 여래가 현신(現身)할 수 있다면


萬千年㥘道場存(만천년겁도량존) 천만년 억겁이 지나도 도량은 남아 있으리.

 

※ 여기서 '바라보았다[望]'는 말은 직접 들르지는 않고 지나가면서 약간 멀리서 바라보았다는 얘기다.

⑪ 雲鶴亭(운학정) 鄭梅村所遊 정매촌9)이 소요하던 곳

 

古松流水上(고송유수상) 고송이 우거진 시냇가에

雲鶴共徘徊(운학공배회) 구름과 학이 함께 배회하네.

千載亭猶在(천재정유재) 천년이 가도 정자는 남겠지만

何人去復回(하인거복회) 사람은 어느 누가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9) 정복현(鄭復顯 1521-1591) : 자 수초(遂初), 호 매촌(梅村), 본관 서산(瑞山), 함양 거주. 저서로 《매촌실기(梅村實紀)》가 있다. 남명의 문하였고, 강익·오건과 평생 교유하였으며, 남계서원 건립에 참여하였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33세(1553)때 노진·강익·오건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고는 마천동에 그가 살고 싶은 땅을 점찍어 놓고, 41세에 그곳에 운학정(雲鶴亭)을 지어 거주했다고 한다.

배성호(1851-1929)의 『유두류록』(1910)에 “다리를 건너 정장촌(丁障村)을 향해 가는데, 길가의 석벽에 크게 ‘운학정(雲鶴亭)’이란 세 글자가 새겨져 있으니 바로 매촌 정복현이 살던 곳이다.”하였다.

 

운학정.jpg


<雲鶴亭 刻字/마천 다리 건너면 요즘 희한한 콘크리트 터널 만들고 있는데, 끝나는 지점. 터널공사에 사라질까봐 조마조마했다.

정자는 맞은편 시냇가에 있었다 한다. 아래 글자는 梅村鄭先生遊憩所(매촌 정선생이 노닐며 쉬던 곳)라 새겨져 있다.>

 

⑫ 雲鶴洞贈新寓姜友瑞鳳二首(운학동증신우강우서봉이수) 운학동에서 새로 우거(寓居)를 마련한 벗 강서봉에게 詩 두 首를 주다

 

幾許黃金買碧山(기허황금매벽산) 얼마 만큼의 황금이면 푸른 산을 사서

坐收風物入松關(좌수풍물입송관) 앉아서 풍경을 소나무 문 안으로 들일 수 있을까?  

多事夫君都領取(다사부군도령취) 그대는 많은 것을 차지했으니

莫嫌流水送人間(막혐유수송인간) 흐르는 물을 인간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을 꺼려하지 말게나.

 

春明廣闢士聯衿(춘명광벽사련금) 도성10)의 넓게 열린 선비들과 나란히 하면 될 것을

何事琴書獨自吟(하사금서독자음) 무슨 일로 거문고와 책을 끌어안고 홀로 읊조리나?

遯俗不須尋僻陋(둔속불수심벽루) 속세를 피하려 궁벽한 곳 찾을 것 없다네

靜居城市亦山林(정거성시역산림) 고요히 지내면 저잣거리가 곧 산속인 것을.11)

 

10) 春明은 두 가지 뜻이 있다. 봄빛이란 뜻과 장안성의 동문(春明門). 여기서는 후자로 보았다. 옛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변하여 수도(도성)란 뜻으로도 쓰였다.

 

11) 도연명의 『음주(飮酒)』 20수 중 제5수에 이런 구절이 있다.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사람들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도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 없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노니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저절로 외진 곳이 된다오. <후략>

 

⑬ 靈源菴(영원암)

 

方丈群巒鎭洞門(방장군만진동문) 방장산 뭇 봉우리들이 골짜기 어귀를 지켜서서

最高深處是靈源(최고심처시영원) 가장 깊은12) 곳이 바로 영원동이 되었다네.

老禪禮客雲中出(노선예객운중출) 노선사는 손님을 맞으러 구름 속에서 나오고

添進丹霞白面痕(첨진단하백면흔) 조금 더 나아가니 붉은 안개13)가 얼굴에 스치네.

 

12) “혹자는 이 절이 만수동(萬水洞) 가장 깊은 근원에 있기 때문에 영원(靈源)이라 이름했다 한다.” 경암 응윤스님(1743-1804), 영원암설회사적기(靈源庵設會事蹟記)

 

13) 丹霞는 글자 그대로는 ‘붉은 놀’이지만 신선이 마신다는 ‘붉은 안개’를 뜻하기도 한다.

 

⑭ 無住菴(무주암)

 

一筇容易化坡龍(일공용이화파룡) 지팡이가 쉽게 갈파의 용으로 변하여14)

閒與浮雲上上峯(한여부운상상봉) 한가하게 뜬구름과 더불어 상봉에 올랐다.

般若天王成羽翼(반야천왕성우익) 반야와 천왕봉이 날개가 되어

人間無住住虛空(인간무주주허공) 인간세상에는 머물 곳이 없어 허공에 머문다네.

 

14) 후한(後漢)의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약장수 노인을 따라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 놀다 왔는데, 헤어져 돌아올 때 노인이 막대기 하나를 주며 “이것을 타면 저절로 집에 가게 되는데, 도착한 뒤에는 갈파(葛坡 칡덩굴 언덕)에 던지라.”고 하여 그대로 하였더니 용으로 변했다 함. 노인은 인간세상에 귀양 온 신선 호공(壺公)이었다 함. 《후한서》

 

⑮ 藥水菴(약수암)

 

誰道學仙難(수도학선난) 누가 신선 배우기 어렵다 했나?

七日在山間(칠일재산간) 칠일 동안 산속에 있으면서

吸盡三淸露(흡진삼청로) 삼청15)의 이슬을 다 들이켰으니

前路與雲還(전로여운환) 앞길은 구름과 함께 돌아가리라.

 

15) 삼청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신선이 사는 곳,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

 

⑯ 實相寺(실상사)

 

頭流北脈盡精逈(두류북맥진정형) 두류산 북쪽 맥이 다하여 멀리 정기를 맺은 곳

形似蓮花倒水開(형사연화도수개) 흡사 물가에 피어난 연꽃의 모습이라16)

開落分明推物理(개락분명추물리) 피고 지는 것이 분명한 사물의 이치를 미루어

千年留待九層臺(천년유대구층대) 천년 전의 구층탑은 대(臺)만 남았구나.

 

16) 연꽃과 관련된 풍수 형국으로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과 연화도수형(蓮花倒水形)이 있다. 연화부수는 말 그대로 물 위에 떠 있어 부드럽고 안정적이며, 연화도수는 기울어진(倒) 느낌이라 기세가 약간 강하다. 따라서 부수에 비하여 도수는 연꽃씨앗이 빨리 떨어져 발복(發福)이 빠르다는 속설이 있다.

알다시피 연화부수형의 대표는 하회마을이고, 연화도수형으로는 병산서원과 덕천서원 등이 있다. 서원이 대체로 연화도수형인 것은, 만약 발복이 늦는 부수형이라면 공부는 할아버지가 하고 과거합격은 손자가 하는 격이라 이상한 풍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실상사는 내가 볼 땐 딱 연화부수형이던데….

 

⑰ 碧松菴(벽송암)

 

軟葛登松石戴芝(연갈등송석대지) 칡넝쿨 솔을 감아 오르고 돌 위에는 지초가 자라고

山中何物不曾奇(산중하물부증기) 산중에 어떤 것이 이보다 더 기이할까.

更看老檜頭無葉(갱간노회두무엽) 다시 봐도 늙은 전나무 꼭대기엔 잎조차 없는데

鶯囀嬌音坐下枝(앵전교음좌하지) 아리따운 꾀꼬리 소리 어디서 들리나 했더니 아랫가지에 앉아 우는구나.

 

⑱ 龍遊潭(용유담)

 

嘶風天馬御龍游(시풍천마어룡유) 바람을 타고온 천마는 용을 부리며 놀고

古來神現此潭留(고래신현차담류) 옛부터 신령이 나타나 이 못에 머문다는데

方今至治年無旱(방금지치년무한) 지금은 잘 다스려져 해마다 가뭄이 없으니

閒臥中流又上流(한와중류우상류) (신령은) 중류와 상류를 오가며 한가하게 누워 지내겠네.

 

⑲ 望文殊寺(망문수사) 문수사를 바라보며

 

負杖峯腰向(부장봉요향) 지팡이에 의지하여 산허리로 향하는데

山童强止之(산동강지지) 산골 아이가 억지로 멈추게 한다.

草深堂宇寂(초심당우적) 풀은 우거지고 절집은 적막하여

金佛但支頤(금불단지이) 금부처는 엎어져 턱을 괴고 있다 하네.

 

⑳ 歸臥湖上(귀와호상) 경호강가에 돌아와 누워

 

向來徒費少年時(향래도비소년시) 지난날엔 소년시절을 헛되이 보내면서

却歎營爲與歲遲(각탄영위여세지) 세상일에 참여하고 싶은데 세월이 더디 간다고 도리어 한탄했었지.

始信山川司馬史(시신산천사마사) 비로소 알겠네, 산천도 사마천에겐 역사가 되고

不妨花鳥杜陵詩(불방화조두릉시) 꽃이든 새든 상관없이 두보에겐 시가 될 수 있음을.

風煙滿橐歸裝重(풍연만탁귀장중) 바람과 안개를 전대에 가득 담아 돌아왔으니 행장이 무겁고

夢想回筇到處隨(몽상회공도처수) 지팡이가 이르는 곳마다 꿈같은 생각이 일어났었네.

老去誰令行力健(노거수령행력건) 늙어지면 누가 시킨다고 굳세게 힘을 써

更登方丈採靈芝(갱등방장채령지) 어찌 방장산에 올라 영지를 캐 오겠는가?

      


산북20.jpg


 

민재남(閔在南 1802-1873) : 자는 겸오(謙吾), 호는 청천(聽天)·자소옹(自笑翁)·회정(晦亭), 본관은 여흥(驪興), 살았던 곳은 산청 생초의 대포. 문집으로는 《회정집(晦亭集)》이 있다.

옛산행기방에 그의 천왕봉 등정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지금은 안 보인다.



꼭대 16-03-14 16:50
 
신라시대부터 근대까지 지리산자락에 다양한 문화가 풍성하게 형성되어 있음에 새삼 놀랍니다.
특히 <엉겅퀴>님의 자료 발굴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지 탐구에 의하여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던 깨알같은 문화가 새롭게 떠오르는 경이감을 느낍니다. 
허리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너무 무리는 마시고....
가객 16-03-16 07:27
 
세실?)은 다 각설하고....

⑳ 歸臥湖上(귀와호상) 경호강가에 돌아와 누워

   
向來徒費少年時(향래도비소년시) 지난날엔 소년시절을 헛되이 보내면서

却歎營爲與歲遲(각탄영위여세지) 세상일에 참여하고 싶은데 세월이 더디 간다고 도리어 한탄했었지.

始信山川司馬史(시신산천사마사) 비로소 알겠네, 산천도 사마천에겐 역사가 되고

不妨花鳥杜陵詩(불방화조두릉시) 꽃이든 새든 상관없이 두보에겐 시가 될 수 있음을.

風煙滿橐歸裝重(풍연만탁귀장중) 바람과 안개를 전대에 가득 담아 돌아왔으니 행장이 무겁고

夢想回筇到處隨(몽상회공도처수) 지팡이가 이르는 곳마다 꿈같은 생각이 일어났었네.

老去誰令行力健(노거수령행력건) 늙어지면 누가 시킨다고 굳세게 힘을 써

更登方丈採靈芝(갱등방장채령지) 어찌 방장산에 올라 영지를 캐 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