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강 김규진은

2017. 6. 6. 09:10한국의 글,그림,사람

동양에서 가장 큰 각자를 쓴 [해강]이 지리자락 정자에 남긴 글씨

 

 

1920년 전후 당대에 서화계에 독보적인 족적을 남긴 해강이 전국을 유람하며 사찰 뿐만 아니라각 지역의 정자에도 많은 글씨를 남겼다.

그 당시 넉넉하지 않았던 해강은 지방의 유서 깊은 고택에 숙식을 신세 지면서 그 보답으로 글씨를 써 주곤 했는데 강릉의 선교장의 경우 오랜 기간 머물다 보니 하도 글을 많이 써 주어  선교장 주인이 결혼식 축의금 대신에 해강의 글씨를 선물로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 진다.

 

강릉의 선교장과 봉화의 만산 고택, 안동의 퇴계 종택 등 고택을 비롯하여 전국의 정자에도 글을 남기면서 지리산 자락에도 두루 주유했던지 고맙게도 세 점의 글씨를 볼 수 있다.

 

 

1 퇴수정 편액.JPG

*산내 퇴수정 편액 (행서체). 좌측에 [海岡]관지와 방인이 보인다. 

 지금은 퇴수정이 수리 중이라 편액을 볼 수 없다. 

 

 

2 구례 용호정 편액.JPG

*구례 용호정 편액 (예서체).  [海岡金圭鎭] 관지가 보인다.



 

 

3 구례 운흥정 편액.JPG

*구례 운흥정 편액 (초서체). 좌측에 [海岡] 관지가 보인다.

 

 

 

해강은 동양에서 가장 큰 암벽 각자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데, 금강산 구룡폭포에 남긴 [彌勒佛]이다.

 

구룡폭포의 미륵불 각자에 관한 이야기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북한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간추려 옮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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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연 주위에는 수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최치원과 송시열의 글씨 이외에 유람객이 남겨놓은 이름 석자는 어지러울 정도이다.

 

이러한 바위 글씨 중 구룡푹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해강 김규진이 쓴 미륵불이다. 이 글씨는 폭이 3.6미터, 높이가 19미터나 되고 불()자의 내려 그은 획은 구룡연의 깊이에 맞추어 13미터로 썼다. 그리고 왼쪽에 작은 글씨로 불기(佛紀)2946년 라는 간기를 적었는데 이는 1919년에 새겼음을 알려 준다.

 

해강 김규진은 구한말,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서화가였다.

 

해강은 1919년 불교도들의 주문을 받아 금강산에 들어와 미륵불 예서를 썼다. 이때 사용한 거대한 붓은 지금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해강은 전국의 크고 작은 절집에 각종 현판을 써주어 오늘날 가장 많은 현판을 남긴 서예가가 되었다. 그러니 해강은 그의 서화를 화폭보다도 산천에 구현했다고 할 만한 시대의 명인이고 기인이다.

 

해강이 쓴 구룡폭의 [미륵불]은 오늘날 볼 때 별 흠을 잡을 것 없는 거작으로 사람의 마음을 신비롭게 이끄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나 당시 문인 문객들의 눈에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육당 최남선은 분명히 보았을 이 글씨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없다. 또 춘원 이광수는 [금강산유기]에서 이 글씨를 보고는 이렇게 불쾌감을 말했다.

 

폭포 왼쪽 어깨라 할 수 있는 미륵봉의 머리 복판에 [미륵불] 세 자를 커다랗게 새기로 그 곁에 세존응화 명 천 몇 백 년 해강 김규진이라 하였으니 이만 해도 이미 구역질이 나려는데 그 곁에 시주는 누구누구 석공은 누구누구 무엇에 누구누구 하고 무려 수십명 이름을 새겨 놓았으니, 이리 되면 차마 볼 수 없어서 눈을 가리우고 아까운 대 자연의 파경된 것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아주 없어지려면 무슨 천재지변이 없기 전에는 몇 천 년을 경과해야 할 것이니, 해강 김규진은 실로 금강산에 대하여 대죄를 범한 자라 하겠습니다.”

 

춘원의 이러한 혹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잠깐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아마도 이 글씨를 쓸 당시 해강은 춘원의 눈에는 차지 않는 풋내기 서생 정도였을 것이고, 또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글씨가 더욱 생경하게 비쳤을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면 이 글씨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거은 80년이라는 세월의 때가 더해진 덕인지도 모른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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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강산 구룡폭포.jpg

*금강산 구룡폭포 (<느티나무>님 블로그에서 빌려옴.)

거대한 구룡폭의 우측으로 미륵불 각자가 보인다.

 

 

5 구룡폭포 미륵불 각자.jpg

*구룡폭포의 미륵불 각자 (예서체, <시목>님 블로그에서 빌려옴.) . 좌측에 [海岡金圭鎭書] 관지가 보인다.

 

 

북한에는 이 밖에도 금강산 총석정 편액, 촉석루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인 평양의 부벽루에도 해강의 글씨가 남아 있으나 가 볼 수가 없다.

 

 

우리가 가 볼 수 있는 정자나 고택에 달려 있는 해강의 글씨는 다음과 같다.

 

 

6 화례정 편액.jpg

*강릉 선교장 활래정 편액 (예서체)

 

 

7 칠류정 편액.JPG

*봉화 만산고택 칠류정 편액 (예서체)

 

8 백석산방 편액.JPG

*봉화 만산고택 백석산방 편액 (예서체, 원본은 국립국학진흥원에 보관). 좌측에 [海岡] 관지가 보인다. 

[白石山房]은 선비가 여유롭게 거처하는 곳이란 의미이다.

 

9 만취정 편액.JPG

*광주 만취정 편액 (초서체) . 좌측에 [海岡] 관지도 초서체로 휘몰아 썼다.

 

10 낙암정 편액.jpg

*광주 낙암정 편액 (예서체, <선도>님 블로그에서 빌려옴.). 좌측에 [海岡書]관지가 보인다.

 

11 소산정 편액.jpg

*담양 소산정 (행서체, <선도>님 블로그에서 빌려옴.) . 좌측에 [海岡書] 관지가 보인다.

 

12 가학루 편액.jpg

*영주 가학루 (행서체, <자즐보>님 블로그에서 빌려옴.) . 좌측에 [海岡書] 관지가 보인다.

 

13 천산정 편액.JPG

*문경 천산정 (예서체). 좌측에 [海岡] 관지가 보인다.

 

14 오성정 편액.jpg

*강릉객사의 오성정 (예서체, <플러스>님 블로그에서 빌려옴.) . 좌측에 [海岡] 관지가 보인다.

 

15 산남궐리.JPG  *

*안동 퇴계종택 산남궐리 편액 (행서체)

[山南闕里]는 귈리는 중국 공자의 출생지로 이곳이 공자가 살던 궐리와 같다는 의미이다.

 

16 해동고정 편액.JPG

*안동 퇴계종택 해동고정 편액 (행서체)

[海東考亭]은 고정이란 중국 송나라 때 주자가 강학하던 곳으로 여기가 고정과 같다는 의미이다.

 

17 백마장강 편액.JPG

*부여 부소산성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이 내려다 보이는 사자루의 백마장강 편액 (행서체) . 좌측에 [海岡金圭鎭書] 관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