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6. 08:35ㆍ알아두면 조은글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석문(石門)]
지리산 자락의 거석문화로 고인돌과 입석 이외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석문이다.
선사시대를 벗어나면서 인류의 역사에 권력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전쟁이 뒤따르면서 고달픈 현세를 벗어나려는 종교가 발달하는 동시에 장생불사의 이상향을 꿈꾸게 되면서 석문 문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국가에서 편찬한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 [청학동은 진주에서 서쪽으로 147리 거리의 지리산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니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석문 문화가 지리산의 독특한 문화로 형성된 것이다.
청학동의 입구
동북아 지역에서 전하는 이상향 대부분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묘사한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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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중국의 후난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지역에 민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는 사이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부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자신의 작은 고기잡이 배를 저어가니 계곡 양쪽 물가를 따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하나같이 모두 복숭아나무였다. 달콤한 향기가 계곡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꽃잎이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어부는 이 복숭아나무 숲이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보고 싶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한동안 가니까 복숭아나무 숲은 끊기고 계곡이 맞닿는 곳에 작은 산이 나타났다. 계곡 물이 솟아 나오는 수원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기슭에 배를 두고 뭍으로 올라와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동굴 안은 무척 좁아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 갈 정도였다.
동굴 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더니 눈앞에 대지가 나타났다. 넓은 대지는 평탄했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도 있었다. 잘 닦인 길과 커다란 집들이 있었고 그 집들의 뜰 안에서는 개와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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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은 좁은 동굴을 통하여 한참 가면 갑자기 넓고 아름다운 땅이 펼쳐지는데
[복숭아꽃 피고 개와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평화로운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동굴이다.
무릉도원의 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상향 [청학동]을 만들었는데, 최초로 전하는 글은 고려시대 문신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지리산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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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의 [지리산청학동기]에서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이 산 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다. 구부리고 엎드려 몇 리쯤 가면 넓게 트인 동네가 나타나는데, 사방이 모두 좋은 농토이다.
푸를 두루미 만이 그 안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청학동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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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 보듯, 청학동은 지리산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여 청학동의 비결이 기록된 대부분의 [청학동비기(靑鶴洞秘記)]에 기록되기를 [지리산에 있는 청학동은 석문을 통해 들어간다.]를 뼈대로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무학대사의 예언서(무학대사가 썼다고 믿을 근거는 전혀 없다.)인 [무학연대록(無學筵對錄)]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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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의 [무학연대록]
조선 역사 기록 속에 지리산 남쪽 기슭에 제비 형세의 청학동이 있으니 조선의 이름난 터라.
어떤 사람은 학야(鶴野-두루미들)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적야(磧野-돌무더기들)라하며 어떤 사람은 사삼동(沙蔘洞-더덕골)이라 했다.
뒤쪽으로 곧장 내려온 주산에 돌이 있고 삼봉 아래 넓은 바위가 있고 골짜기에서 물이 솟아 남쪽으로 흐르고
마을 입구에 석문(石門)이 있고 그 안에 석천(石泉)이 있으니 그 이름은 수정(壽井)이다.
朝鮮史記中 有山智異南麓靑鶴洞 燕形 朝鮮名基也
或云鶴野 或云磧野 或云沙蔘洞 後龍有石負 三峯基下
有廣石 谷水出南流 洞口下有石門 基內有石泉 名曰壽井
-류정수의 [한국의 예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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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옛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나 석벽을 석문으로 인식함으로써 석문을 지나 살고 있는 마을이 청학동과 같은 낙토가 되기를 염원했던 것이다.
지리산의 석문
1. 쌍계사 입구인 쌍계석문
*쌍계석문
불일폭포 주변을 청학동으로 인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최치원이 썼다고 전한다 하지만 근거는 전혀 없다.
*쌍계사 쌍계석문 지형도
옛날에는 쌍계사로 올라가는 길이 쌍계석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주차장 앞으로 쌍계사로 올라가는 도로를 개설하여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쌍계석문이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석문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는지 우리나라에 동일한 필체를 흉내 낸 석문이 두 군데 더 있다.
*전북 오수 둔덕리 [三溪石門(삼계석문)] (블로그 [한국문화스토리]에서 빌려옴.)
*전북 진안 마등리 쌍벽루 아래 [三溪石門(삼계석문)]
[삼계(三溪)]란 두 계류가 만나 한 계류를 만들어 결국 세 계류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니 [雙溪(쌍계)]와 동일한 의미이다.
2. 방장제일문
의탄에서 마천 가는 천변 거대한 석벽인데 함양에서 백무동 등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된다.
*방장제일문 석벽
2005년경 석벽의 낙석을 방지하기 위하여 도로 위에 굴다리같은 구조물을 세웠는데 석벽의 각자를 본떠 [方丈第一門(방장제일문)]이라 적어 놓았다.
*[方丈第一門(방장제일문)] 각자
* 방장제일문 지형도
3. 광제암문(廣濟嵒門)
입석리에서 웅석봉 지맥을 둘러싸인 운리의 단속사로 가기 위한 좁은 출입구에 있는데,
스님이 쓴 글이라 광제암문, 즉 [널리 중생들을 구제하는 석문]이란 뜻이니 불교에서 이상향인 불국토로 들어가는 문이라 석문에 대한 염원은 다름이 없다.
*광제암문
*[廣濟嵒門(광제암문)] 각자
[광제암문] 각자에 대해서는 [지리산의 각자] 편에서 별도로 검토해 볼 예정.
*광제암문 지형도
4. 구룡계곡의 용호석문
구룡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석벽이 석문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용호석문 석벽
*[龍湖石門(용호석문)] 각자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용호석문 지형도
5. 청암의 석문
지금의 청암면 지명의 어원이 되었던 청암사로 들어가는 문이다.
*청암석문
*청암석문 지형도
6. 칠성동의 문바위
칠선계곡 어원이 되었던 칠선계곡 입구에 있었던 칠성동으로 들어가는 옛길 입구에 있는 석문
*칠성동 석문
7. 삼정마을의 석문
삼정마을 안쪽 부채살 처럼 펼쳐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석문
석문 옆에 전설같은 문바위 설명을 기록해 놓았는데 후대에 갖다 붙인 전설일 뿐이고, 이상향을 염원하는 석문문화의 소산으로 보야야 할 것이다.
*삼정마을 석문
*삼정석문 지형도
8. 용유담의 용담입문
조선시대 지리산 자락 최고의 명승지로 꼽힌 용유담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으로 석벽으로 이루어진 용담입문
*[龍潭入門(용담입문)]
*용담입문 지형도
9. 옥종의 석문
[옥종면지]에 의하면, 문암은 덕천강 가에 있는 바위인데, 이곳에서 소가 되고 소의 위에 큰 바위 두개가 마주보고 있으므로 문(門)과 같다고 처음에는 문암(門巖)이라고 하였는데,
이 주변의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그 후로 강 주변의 문인(文人)들이 자주 모여 놀게 됨으로써 [글월 文] 로 고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쌩둥맞게 [文巖]이라 새겨져 있다.
*옥종 문암
*옥종문암 지형도
10. 단천마을 석문
이 석벽에 석문 각자는 물론이고 석문으로 불리고 있지 않지만, 청학동을 묘사해 놓은 지형으로만 따지자면 단천마을이 손꼽을 명당이며, 따라서 단천마을을 감추고 막아선 이 석벽이야 말로 제대로 된 청학동의 석문답다 할 수 있다.
최화수선생의 [지리산365일]에서, 입구가 병주둥이 같이 좁은데 그 안에 들어가면 명경지수가 흐르는 단천마을의 지형을 청학동의 모든 조건을 갖춘 곳으로 꼽은 바 있는 단천마을 입구를 버티고 있는 석벽이다.
*단천입구 석벽
*단천입구 석벽 지형도
지형도를 보면 좁은 석벽의 입구를 한참 지나면 깊은 산중 묻혀있는 단천마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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