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자비를 베푸소서)상*

2013. 7. 26. 09:43사람과사람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아들을 잃은 슬픈 성모상을 조각한 로마 성베드로성당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작품 :Pieta 피에타(1498–1499)
작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 1564)
크기 : 174cm x 195cm (좌대포함) :대리석
소재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피에타(Pieta)라는 말은 “동정” “불쌍히 여김” 등의 뜻이 있는 이태리 말이며

교회에서 미사 중 사용하는 “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의 앞 부분인데,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주님 수난절에

십자가에 참혹히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슬픔을 노래한

스타바트 마텔(Stabat Mater)이라는 시에 영감을 받아 피에타라는 주제의 많은 작품이 제작되었다.

미켈란젤로가 그의 나이 25세에 만든 이 작품은

하나의 돌에 두개의 인물 ,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비적 존재를 서로 응축된

한 덩어리 안에 담는다는 대단히 혁신적인 시도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성모님의 품에 안겨있는 예수님의 몸에는

아직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생명감을 느끼게 하면서,

이 작품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이것이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든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며,

성모님의 머리 수건, 옷의 주름 등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교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어디 하나 어색한 곳이 없이 완벽하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형상은 아래, 즉 땅을 향하고 있다.

아래를 향한 마리아의 머리 및 손과 팔, 또한 밑으로 내려앉은

예수의 머리와 팔, 다리 등등 바로 모든 것이

아래로 향했기에 고개 숙인 마리아의 슬픔이 더욱 측은하게 느껴진다.

땅을 향한 성모님의 모습은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헤어날 수 없는 슬픔의 표현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하나 뿐인 자기 아들이

이 희생의 제물로 선택된다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기에,

어머니로서는 너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슬픈 모습이기에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더욱 가슴깊이 박히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가 어느날 대리석 상점 앞을 지나다 거대한 대리석을 보았다. 
그는 상점 주인에게 그 대리석의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그 대리석은 돈을 받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그것을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쳐다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가게는 비좁은데 그것이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그냥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을 공짜로 얻어 자기 작업실로 운반했다.
그로 부터 1년후,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 상점 주인을 자기 작업실로 초대했다.
"와서 보시오. 그때 그 대리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의 작품을 본 상점 주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껴안고 있는 상으로, 
예수가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 있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운데서도 걸작으로 뽑히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 중의 하나이다.

가게 주인이 물었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조각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내가 이 대리석 앞을 지나치려 하는데 예수가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지금 이 대리석에 누워있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떼어내 내 모습이 드러나게 하라.'

대리석 안을 들여다 본 나는, 어머니 무릎에 누운 예수의 형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형상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 대리석이 그토록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단지 예수가 시키는 대로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입니다." 
..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는 고집이 세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을 때는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무려 4년 동안이나 성당에 틀어박혀 그림에만 매달렸습니다. 

어느 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 구석구석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려가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뭘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나?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내가 안다네."
이런 내적 동기를 우리는 '미켈란젤로 동기'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러한 그만의 작품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이처럼 후세에 남는 걸작으로 자리매김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미켈란젤로(1475-1564)는 그의 나이 25살 때에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피렌체에서 보관중인 다비드상, 그리고 로마 성베드로의 쇠사슬 성당에서 보관중인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에 들어간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임). 

이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그의 서명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무릎에 안은 성모님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아들 예수님의 나이에 비해 너무나 젊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성모님의 얼굴이 젊게 표현된 이유를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아스카니오 카우디비가 
그의 스승에게 물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스카니오, 너는 아직도 모르느냐?

정결한 여자들은 무릇 그 정결함을 고귀하게 유지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하물며 동정녀로서 잉태하신 성모님의 정결함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지 않겠느냐? 
천주의 모친이신 성모님의 모습을 젊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라.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파견되었으며, 
사람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을 받으셨다. 

그분의 처절한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분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양심의 성찰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이 
바로 나의 의도이다.

우리는 한 예술가를 재조명해 보면서

르네상스의 마지막 대가였던 미켈란젤로를 
그저 조각가나 건축설계사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예술 세계는 바로 그의 깊은 신앙심의 바탕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러기에 몇 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경이적인 찬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경건, 자비, 슬픔"의 의미를 지니며, 

고유명사로서는 그리스도교 미술에 자주 표현되는 주제로,

보통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구도를 특히 이렇게 표현한다.


미켈란제로의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초기작품)

 

 

 

 

피렌체 성당의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미완성)

 

                         사랑해

가톨릭성가262---고통의 어머니

출처 : 영신의 추억속 친구들
글쓴이 : 아침이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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