典 論 論 文 - 曹 丕

2013. 7. 9. 11:38명언

전론논문

典 論 論 文

曹 丕

文人相輕 自古而然. 傅毅之於班固 伯仲之間耳 而固小之 與弟超書曰.

武仲以能屬文爲蘭臺令史 下筆不能自休.” 夫人善於自見 而文非一體 鮮能備善

是以各以所長 相經所短. 俚語曰 家有弊帚 享之千金斯不自見之患也.

今之文人魯國孔融文擧 廣陵陳琳孔璋 山陽王粲仲宣 北海徐幹偉長 陳留阮瑀元瑜 汝南應瑒德璉 東平劉楨公幹 斯七子者 於學無所遺 於辭無所假 咸以自騁驥騄於千理 仰齊足而並馳 以此相服 亦良難矣 蓋君子審己以度人 故能免於斯累 而作論文

王粲長於辭賦 徐幹時有齊氣 然粲之匹也 如粲之 初征’ ‘登樓’ ‘槐賦’ ‘征思幹之 玄猿’ ‘漏卮’ ‘圓扇’ ‘橘賦雖張 蔡不過也 然於他文未能稱是. 琳 瑀之章表書記 今之雋也. 應瑒和而不壯 劉楨壯而不密 孔融體氣高妙 有過人者 然不能持論 理不勝辭 至於雜以嘲戱 及其所善 揚班儔也.

常人貴遠賤近 向聲背實 又患闇於自見 謂己爲賢. 夫文本同而未異 蓋秦議宜雅 書論宜理 銘誄尙實 詩賦欲麗. 此四科不同 故能之者偏也 唯通才能備其體 文以氣爲主 氣之淸濁有體 不可力强而致 譬諸音樂 曲度雖均 節奏同檢 至於引氣不齊 巧拙有素 雖在父兄 不能以移子弟.

蓋文章經國之大業 不朽之盛事 年壽有時而盡 榮樂止乎其身 二者必至之常期 未若文章之無窮. 是以古之作者 寄身於翰墨 見意於篇籍 不假良史之辭 不托飛馳之勢

而聲名自傳於後. 故西伯幽而演 周旦顯而制 不以隱約而弗務 不以康樂而加思.

夫然 則古人賤尺璧而重寸陰 懼乎時之過已. 而人多不强力 貧賤則懾於饑寒 富貴則流於逸樂 遂營目前之務 而遺千載之功. 日月逝於上 體貌衰於下 忽然與萬物遷化

斯志士之大痛也. ‘等已逝 唯 著論 成一家言.

전 론 논 문

조 비

문인상경 자고이연. 부의지어반고 백중지간이 이고소지 여제초서왈.

무중이능속문위난대영사 하필불능자휴.” 부인선어자현 이문비일체 선능비선

시이각이소장 상경소단. 리어왈 가유폐추 향지천금사불자현지환야.

금지문인 노국공융문거 광릉진림공장 산양왕찬중선 북해서간위장 진류완우원유 여남응창덕련 동평유정공간 사칠자자 어학무소유 어사무소가 함이자빙기록어천리 앙제족이병치 이차상복 역량난의 개군자심기이도인 고능면어사누 이작논문

왕찬장어사부 서간시유제기 연찬지필야 여찬지 초정’ ‘등루’ ‘괴부’ ‘정사간지 현원’ ‘누치’ ‘원선’ ‘귤부수장 채불과야 연어타문미능칭시. 림 우지장표서기 금지준야. 응창화이불장 유정장이부밀 공융체기고묘 유과인자 연불능지론 이부승사 지어잡이조희 급기소선 양반주야.

상인귀원천근 향성배실 우환암어자현 위기위현. 부문본동이미이 개진의의아 서론의리 명뢰상실 시부욕려. 차사과부동 고능지자편야 유통재능비기체 문이기위주 기지청탁유체 불가력강이치 비제음악 곡도수균 절주동검 지어인기부제 교졸유소 수재부형 불능이이자제.

개문장경국지대업 불후지성사 년수유시이진 영락지호기신 이자필지지상기 미약문장지무궁. 시이고지작자 기신어한묵 현의어편적 불가양사지사 불탁비치지세

이성명자전어후. 고서백유이연 주단현이제 불이은약이불무 불이강락이가사.

부연 즉고인천척벽이중촌음 구호시지과이. 이인다불강력 빈천칙섭어기한 부귀즉류어일락 수영목전지무 이유천재지공. 일월서어상 체모쇠어하 홀연여만물천화

사지사지대통야. ‘등이서 유 저론 성일가언.

전 론 논 문

조 비

문인들이 서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다. 傅毅班固에게 실력은 백중한 사이였을 뿐이지만 班固는 그를 하찮게 여겨 동생 반초에게 편지로 이르기를, “무중(傅毅 )은 글을 잘 지어 난대영사가 되었는데, 한 번 붓을 잡으면 자신도 쉬지 못할 정도.” 라 하였다.

대개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는 데에는 뛰어나지만, 문장은 한 가지 체만은 아니어서 그 잘하는 점들을 두루 갖추는 정도는 드물다. 이 때문에 각자의 잘하는 것을 가지고 남이 못하는 것을 가볍게 보는 것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집에 있는 헌 빗자루를 천금에 이르는 줄 안다.”했는데,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보지 못해서 생긴 병폐이다.

오늘날 문인들 중에 노나라의 공융 문거광릉의 진림 공장. 산양의 왕찬 중선. 북해의 서간 위장. 진류의 완우 원유. 영남의 응창 덕련. 동평의 유정 공간,이 일곱 사람이 배움에 있어 버리는 바 없었고, 문사에 있어 빌리는 바 없이, 모두 스스로 문사로 천리(천리준마, 빙기록)를 달리게 하였는데, 우러러 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나란히 달려서, 이로써 서로 복종하니 또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대저 군자가 자신을 살펴 남을 헤아린다면, 능히 이런 얽매임에서 벗어나 논리를 갖춘 글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王粲은 사부에 능하고, 서간은 때로 기상을 가지런히 하므로 왕찬의 짝이 될 만하다. 왕찬의 초정’ ‘등루’ ‘괴부’ ‘성사와 서간의 누치’ ‘원선’ ‘귤부와 같은 글은 비록 張衡蔡邕을 넘어서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문장에 비교한다면 능히 이렇다 칭할 수 없을 것이다.

진림과 완우의 표장서기는 이 시대의 걸작이다. 응창은 조화를 이루어도 웅장하지 않으며, 유정은 웅장하면서도 면밀하지 않았고, 공융은 문체와 기운이 높고 오묘해서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지만, 능히 논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론이 문채를 이기지 못하여 잡스럽게 우음거리가 되는데 이르지만, 그 잘하는 바에 미쳐선 揚雄이나 班固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은 먼 것을 귀히 여기고 가까운 것을 천하게 보며 소문만 쫒고 실상을 등지며, 자기 견해에 빠져 어두운 것이 병통인데도 스스로를 일러 현명하다고 할까 걱정스럽다.

무릇 문장은 본질은 동일하지만 말미에 다다르면 달라진다. 대개 奏議는 우아해야 마땅하고 書論은 이치가 바르게 이어져야 마땅하다. 銘誄는 사실을 숭상하고 詩賦는 아름답게 꾸미고자 애쓴다. 이 네 가지는 각각 다르니 때문에 이에 능한 사람도 치우쳐 있다. 오직 두루 통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만이 그 체제를 갖출 수 있을 뿐이다. 문장은 기를 주로 삼는다. 기의 청탁에 따라 체도 다르게 나타나는 법이니, 힘으로 밀어붙여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 음악에 비유한다면 곡조가 비록 고르고 절주가 같은 수법을 취했다고 해도 기운을 끌어 들인 것이 가지런하지 못하여 공교로움과 졸렬함은 원래 타고난 바탕에 이르러서는 비록 아비와 형에게 있다고 해도 이를 자식과 아우에게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개 문장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대업이요, 결코 썩지 않는 성대한 사업이다.

수명이란 때가 되면 다하고 영예와 즐거움도 그 몸에 그치니,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다다르는 기한이 있으니 문장의 무궁함만은 못하다.이 때문에 옛날에 글을 짓는 사람들은 모두 문장에 몸을 맡기고 붓과 먹 속에서 뜻을 펼쳤다. 그래서 굳이 사관의 글을 빌리지 않고 날듯이 뛰는 기세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명성은 절로 후세에 전해졌던 것이다.

때문에 서백 문왕은 옥에 갇혔을 때 주역을 풀이했고, 주공 단은 드러내어 를 지었다. 뜻을 잃었다 해서 저술에 힘쓰지 않음도 없었고, 편안하고 즐겁다 해서 생각을 옮기지 않았다. 이러했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옥구슬과 같은 보배는 천하게 여기고 한 치 시간을 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시간이 자신을 지나쳐 흘러가 버려도 사람들이 애써 더 힘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가난하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것을 두려워하며 부유하고 귀해지면 일락에 빠져든다. 그리하여 목전에 닥친 일만 완수하지 천년을 길이 갈 공훈은 놓치게 된다. 해와 달은 하늘에서 노닐며 지나가고 신체는 땅 아래에서 쇠약해지기만 하다가, 갑자기 만물과 더불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뜻있는 선비가 크게 가슴 아파하는 일이다.

공융 등은 이미 죽고 오직 서간의 빛나는 논문만이 일가의 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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