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령사 梅花(빙기옥골 (氷飢玉骨)

2012. 12. 31. 11:35알아두면 조은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령사  梅花(빙기옥골 (氷飢玉骨)


매화가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24년(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라는 기록과,  중 보각 일연(普覺 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제3권 아도기라(阿道基羅) 즉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의 기초를 닥다’ 맨 끝에 "모랑의 집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네"라는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보다 최초의 기록은 3천년전에 쓰여진 시경에 이미 매화를 노래하였다 한다.


普覺 一然 梅花(보각 일연 매화)

 

雪擁金橋凍不開 鷄林春色未全廻

설옹금교동불개 계림춘색미전회


可怜靑帝多才思 先著毛郞宅裏梅

가령청제다재사 선저모랑댁이매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아

계림의 봄 빛은 아직도 완연히 돌아오지 않았는데,

예쁘다 봄의 신은 제주도 많아

먼저 모랑의 집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네 

     

庭梅(뜨락에 핀 매화) 崔匡裕(최광유)


練艶霜輝照四隣,  庭隅獨占臘前春.

연염상휘조사린,  정우독점납전춘.


繁枝半落殘粧淺,  晴雪初消宿淚新.

번지반락잔장천,  청설초소숙루신.


寒影低遮金井日,  冷香輕鎖玉窓塵.

한영저차김정일,  냉향경쇄옥창진.


故園還有臨溪樹,  應待西行萬里人

고원환유임계수,  응대서행만리인 


비단처럼 고운 서리 빛으로 주위를 비추니

뜨락 구석에서 섣달의 봄 홀로 하고 있구나,

번화한 가지 반쯤 지니 단장(丹粧)이 거의 스러진 채

갠 눈이 갓 녹아 눈물 새로 머금었네

차가운 그림자 나직이 금정(金井)의 해를 가리웠고

싸늘한 향기는 가벼이 옥창(玉窓)의 먼지를 잠궜구나

내 고향 시냇가 몇 그루

서쪽으로 만리 길 떠난 사람 기다리리.


아마 당나라 유학 시절 (대략 890년전후) 지은 위의 최광유(崔匡裕)의 시가 우리나라 시인으로서는 최초로 읊은 매화시일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일연스님의 三國遺事 3권, 아도기라(阿道基羅) 조의 끝의 찬사는 매화나무가 불교에서도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불교흥법(佛敎興法)의 전령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한다.


고려 신종(神宗;1144-1204) 고려 제20대왕) 때 청주사람 선비 진화(陳?) 춘흥(春興)이란 시다.

小梅零落柳?垂 閒踏淸風步步遲

소매영락유기수 한답청풍보보지

 

漁店閉門人語少 一江春雨碧絲絲

어점폐문인어소 일강춘우벽사사


어린 매화는 지고 버들은 늘어지고

맑은 바람 한가히 걸음걸이는 더디나니

어전은 문을 닫아버리고 사람소리 뜸한데

큰강의 봄비는 푸르러 실파람 같아


 

매화의 상징성


임금(君王)으로, 신선(神仙)으로,  임금에게 향한 신하로써의 충절(忠節)과 여인의 정절

정인(情人)으로, 봄의 전령사(傳令使)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 따라 다라졌던 매화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이름도 많다.


梅花의 이름

진나라 무제는 학문을 열심히 하면 梅花가 피고 게을리 하면 梅花가 피지 않는다는 고사에서 호문목(好文木) 꽃 중에서 가장 일찍 핀다고 화괴(花魁) 가장 추운 눈 속에서 핀다는 뜻으로 죽파시화(竹坡詩話)에서 붙여진 이름은 빙기옥골(氷飢玉骨) 또는 빙자옥골氷姿玉骨)이라고 하였고 냉철한 정신을 가졌다하여 육유(陸游)는 빙혼(氷魂)등 많은 이름이 있다.


임금(君王)으로 상징된 매화


백설(白雪)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夕陽)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라는 시는

고려의 국운(國運)(백설)이 다 기울어져 간 곳에 간신(奸臣 구름)들이 득세(得勢)하여 야단들인데, 반가운 임금님(매화 나라)을 그리워하며 노년(老年 석양)에 홀로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임금님을 향한 지조(志操)의 둘 곳을 찾지 못심정을 고려시대의 대 정치가요, 문장가(文章家)이며, 학자였던 목은(牧隱) 이 색(李穡1328-1396)의 시다,

권섭(權燮 1671-1759)의 시조 매화사장(梅花四章)가운데, 매화를 영조(英祖1694-1776)로 비유(比喩)해서 쓴 글은

모첨(茅?)에 달이 진제 첫 잠을 얼풋 깨어

반벽잔등(半壁殘燈)을 의지 삼아 누웠으니

일야(一夜)에 매화 발(發)하니 님이신가 하노라 .


(모첨:띠나 새로 지은집의 처마)


이 인노(雙明齋 李仁老(1152-1220) 초명은 득옥(得玉),호는 쌍명재(雙明齋))는 동문선(東文選)에 수록(收錄)된梅花시에는 신선(神仙)으로


姑射氷膚雪作衣  香唇曉露吸珠璣

고사빙부설작의  향진효로흡주기


應嫌俗蘂春紅染  欲向瑤臺駕鶴飛

응혐속예춘홍염  욕향요대가학비


고야산 신선 고운 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기로운 입술로 새벽 이슬에 구슬을 마시는구나

속된 꽃술이 봄철 붉은 꽃에 물드는 것 싫어서

신선 사는 요대 향해 학 타고 날아가려 하는구나



정 철鄭徹(1536-1593)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은 신하로써의 충절과, 임 에게 향한 여인의 절개와 貞節로


동풍(東風)이 건듯 불어 적설(積雪)을 헤쳐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 두 세가지 피었에라

가뜩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은 무슨 일일까?

황혼에 달이 쫓아 벼게 맡에 비치니

느끼는듯 반기는듯 임 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내어 임 계신데 보내오자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까?

 

홍세태(洪世泰)는 「영분매詠盆梅」라는 시에서


窓外千峰積雪 床頭一樹寒?  꽃모양 파

창외천봉적설 상두일수한파 


看君道骨淸甚 莫是身學梅花.

간군도골청심 막시신학매화.


창밖 청산에 눈이 하얀데

상 머리 한 그루 찬 꽃송일세

그대의 고아한 풍체 정말 깨끗함을 보니

이 몸 빙혼(氷魂)을 배워야겠네.


매화의 외형적인 단아하고 고결한 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찬 겨울에도 홀로이 절개를 지키는 고절(高節)을 배울 것을 강조한 내용으로서 매화를 절사로 표현하였으며.

조선말의 안치영(安致英)은 당대 명기(名妓)들과 풍류(風流)를 즐기면서 노래했던 영매가(詠梅歌)에서는 매화의 뛰어난 절의를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동각(東閣)에 숨은 꽃이 철쭉인가 두견인가?

건곤(乾坤)이 눈이어늘 제 어찌 감히 피리

알괘라 백설양춘(白雪陽春)은 매화 밖에 뉘 있으리.


氷姿玉質:얼음같이 맑고 깨끗한 살결과 구슬같이 아름다운 자질. ‘매화(梅花)의 다른 이름

雅致高節;고상하게 운치가 있는 높은 절조



만해(萬海) 한 용운(韓龍雲)의 매화 시는 일제의 침략과 만행으로 온 나라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으며, 매화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나라를 빼앗긴 설음과 압박에서 구해줄 구원자를 나타내고 있다.


看盡百花正可愛 從橫芳草踏煙霞

간진백화정가애 종횡방초답연하


一樹寒梅將不得 其如滿地風雲何.

일수한매장부득 기여만지풍운하.



어여뿐 온갖 꽃 모두 보았고

안개 속 꽃다운 풀 모두 밟았네.

그래도 매화는 찾을 수가 없는데

땅에는 눈보라만 가득하니 이를 어쩌랴.


라고 했으며.


홍세태(洪世泰1653-1725) 자는 도장(道長),호는 창계(滄浪), 유하거사(柳下居士)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입니다.여항시인으로 유명한 그의 시에서


縱在人間非俗 却從林下爲生

종재인간비속 각종임하위생


不恨終身寒苦 自知稟性孤情

불한종신한고 자지품성고정


비록 인간 세상에 살아도 속되지는 않아서

숲 속에 묻힌 것처럼 살아왔네.

한 평생 구차하고 괴로워도 한탄하지 않았으니

우뚝한 뜻을 지닌 그 품성을 스스로 알고 있네.


라고 추위 속에서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피어난 매화이지만 아무런 원망과 불평 없이 오직 자신만이 간직한 품성을 지닌 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지조, 절조를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이 규보(李奎報 1168-1241)가 유령(庾嶺)의 매화를 보고 달 속의 선녀인 항아(嫦娥)에 비유하여 그 아름다움을 읊은 시는


연지와 분으로 참 모습 손상치 않았네.

낙매곡(落梅曲)에 놀라 떨어지지 말고

역사(驛使)의 급한 길 따라오기 기다리네.

눈 속에서 다시 천 송이 꽃을 꾸미니

봄 앞 다른 봄을 몰래 짓누나.

옥 같은 살결 맑은 향내 아직 짙어

선약(仙藥)훔친 월궁의 항아(嫦娥)일쎄.


조선 초기 문신 본관은 昌寧 자는 태허(怠虛) 호는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연산9년)의 만분가(萬憤歌)에서 보듯이 매화는 단순한 꽃으로서의 매화가 아니라 인격과 감정을 가진 임으로 나타난다.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녹아지고 죽어져서 혼백(魂魄)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空山??)같이 임자 없이 구르다가

곤륜산(崑崙山) 제일봉에 만장송(萬丈松)이 되어 있어

바람비 뿌린 소리 임의 귀에 들리기나

윤회 만겁(輪廻萬劫)하여 금강산 학(鶴)이 되어

일만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임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일세.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 삼아

임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梅花) 되어

설중(雪中)에 혼자 피어 침변(枕邊)에 시드는 듯

월중 소영(月中疎影)이 임의 옷에 비치거든

가엾은 이 얼굴을 네로다 반기실까



호석균(扈錫均;생몰 년대 미상 호는 竹齊)의 시조 가운데 연인戀人으로써의 임인 미인(美人)에 비유한 것으로는


매화 핀 창가에서


동창에 달 비치고 함이에 매화 피니

화용월태(花容月態)는 천연(天然)할사 임이언만

어찧다 낭랑 옥음은 들을 길 없어. 라고 했으며.


호석균(扈錫均)의 다른 시

"細柳淸風(세류청풍) 비 갠 후에 울지 마라 저 매암아

꿈에나 임을 보려 겨우 든 잠 깨우느냐

꿈 깨어 곁에 없으면 병되실까 우노라


조선 명종 때의 문신 자는 계진(季眞) 호는 청련(靑蓮)인 이후백(李後白 1520-1578)도 매화를 아름다운 미녀(美女)에 비유한 시를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옥매 한 가지를 노방(路傍)에 버렸거든

내라서 거두어 분위에 올렸더니

매화기성납(梅花己成臘)하니 주인 몰라 하노라.


정 훈(丁薰)은 그의 『꽃 시집』에서 홍매(紅梅)를 읊은 시 중에는 매화를 정인(情人)에 비유 하였고.


이른 봄 차운 하늘에

너 홀로 피는가?

뭇 꽃과 어울려

피기 싫을 양이면

붉은 볼타는 연정(戀情)을

무엇으로 감출고.


미인에 비유하여 지은 글은


매화꽃 다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하나

영창에 비취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지 않다 하여라.


하였음은 낭자나 미인에 비유되는 가장 적절한 매화의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이 밖에도 기녀 자신이 자기의 기명(妓名)을 따서 실제의 매화와 견주어 같은 기녀 춘심의 시세움으로 새로운 애정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신세 한탄을 노래한 것으로서 매화를 임으로 묘사한 시가(詩歌)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 오니

옛 피던 가지에 핌직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 말동 하여라.



이 육사는 일제의 치욕적인 탄압 속에서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면서 매향을 잃지 않고 춘정(春情 새본 새날)과 봄의 전령으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그러나 매화가 우리에게 진정한 애정적愛情的 춘정을 느끼게 한 시는

정변(井邊)에 심은 매화 눈 속에 피었어라

소령은 횡사하고 암향(暗香)은 부동이라

두어라 롱두춘색(籠頭春色)이니 절일지(折一枝)인가 하노라.


달그림자로 인하여 창문에 비치는 매화나무 가지.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가지에서 피어나는 매화를 생각 해 볼 때에 달과 눈과 매화가 어울리는 정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 훈(丁薰)은 그의 꽃시첩에서는 매화를 유리처럼 차가운 하늘에서 보석처럼 쏟아지는 달 빛 아래. 청아(淸雅)하고 처연(凄然)한 모습으로

 

청아(淸雅)한 그 모습

태초로 변함 없고

백설로 흰 빛 깔은

그 넋을 말 하는가?

이른 봄 거친 하늘을

네가 먼저 깨트네.


정훈훈(丁薰, 1911-1992) 시인. 시조 시인. 호는 소정(素汀). 대전(大田) 출생.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호서(湖西)중학 교장(1946) 및 호서대학교 학장(1950∼1955)을 지내고 문총(文總) 충남지부장, 충남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가톨릭 청년>지에 시 "머들령"(1940)을 발표하고, 이어 첫시집 <머들령>(1949)을 간행함으로써 문단에 데뷔,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시집에 <파적(破笛)>(1954), <피맺힌 연륜>(1958), <산조(散調)>(1966), <정훈 시선>(1973), 시조집으로 <벽오동(碧梧桐)>(1955), <꽃 시첩>(1960) 등을 간행하여 전래적 정서를 재구성하는 특이한 작품을 보여 주었다


서거정(徐巨正;1420∼1488)은 매화시 차운(次尹洪州梅花詩韻兼東吳君子)시에서

梅花如雪雪如梅 白雪前頭梅正開

매화여설설여매 백설전두매정개


知是乾坤一淸氣 也須踏雪看梅來.

지시건곤일청기 야수답설간매래.


매화도 눈 같고, 눈도 매화 같고.

흰눈 내리기 앞서 매화가 피네.

알지라 하늘과 땅의 맑은 기운임을

모름지기 눈 밟으며 매화 보러 오리라.


라는 시에서 매화가 흰 눈에 비유되고 있음을 볼수있다.

한편 달과 매화의 조화로 이루어 낸 정경情景을 그려보면, 창 가에 드리워진 매화나무 가지 위로 둥근 달이 두둥실 떠 있고, 취할 듯이 쏟아지는 맑고 고운 달 빛에 젖어 숨 죽이며 피어오르는 매화 꽃 봉오리, 은은한 향내. 가슴 조이며 우리의 선인들은 심저心底한 가락으로 흥을 돋우었다.


 

박 제가(朴齊家)의 매화월영(梅花月盈)에서는 창밖에 핀 매화와 달, 달 빛의 어루만짐에 의하여 계속 피어나는 매화꽃을 읊었다.


窓下數枝梅 窓前一輪月

창하수지매 창전일윤월


淸光入空査 似續殘花發

청광입공사 사속잔화발


창 아래엔 매화나무 여러 가지 뻗어 있고

창 앞에는 둥근 달이 둥실 떠 있네.

맑은 달 빛이 빈 사립문에 흘러드니

남은 꽃이 계속해서 피어나는 듯.



안 민영(安民英)은 「영매가詠梅歌」에서 어리고 엉성하며 드문 드문한 가지라서 매화가 필것 같지 않아 믿지 않았지만, 눈 내리는 때를 잃지 않고 약속을 지켜 두 세송이가 피었으므로 촛 불을 밝혀 잡고 가까히 다가가 반가운 마음으로 대 할 때 그윽한 향기마져 풍겨주는 매화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밋지 아녀ㅅ더니

눈 기약(期約) 능히 지켜 두 세송이 피었구나

촉(燭)잡고 가까히 사랑 할 때 암향(暗香)조차 부동(浮動)터라.


조선조 세종 때의 학자였던 유방선(柳方善1388-1443 조선 초기 학자.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본관은 서산(瑞山)은 매화의 그윽한 향기에 취해


臘雪孤村積未消 柴門誰肯爲相敲

납설고촌적미소 시문수긍위상고


夜來忽有淸香動 知放梅花第幾枝

야래홀유청향동 지방매화제기지


마을에는 섣달 눈이 녹지 않았으니

누가 즐겨 사립문을 두드릴 고

밤에 이윽고 맑은 향기 풍겨오니

매화나무 몇 가지에 꽃이 핀 듯 하구나


대부분의 나무들이 겨울에는 헐벗은 나목(裸木)과 죽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겨울에도 깡마른 줄기에서  생명력이 넘치고 소망스럽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를 강인한 생명력과 호색으로 상징되기도 했다


정도전(鄭道傳1342~1398)고려말 조선초의 정치가·학자)의 〈詠梅 매화를 읊다〉라는 시에서는

窮陰塞兩間 何處覓春光

궁음색양간 하처멱춘광


可憐枯瘦甚 亦足欲氷霜.

가연고수심 역족욕빙상.


천지가 궁음에 막히었으니

어디서 봄 빛을 찾아볼 건가.

몹시도 마르고 여위었지만

얼음, 서리 물리치긴 넉넉하다오.


또 이숭인(李崇仁 1349~1392)고려 후기의 학자·시인.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와 함께 고려말의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진다.)은 그의 시〈매화梅花〉에서


곤음坤陰이 힘을 부리는 것 막기 어려워

만물이 뿌리로 돌아가 쉬이 찾아지질 않네.

어젯밤 남쪽 가지에 흰 송이 하나 생겨 났기에

향 사르며 단정히 앉아 천심天心을 보네.



또한 매화는 순결(純潔)한 미녀로, 성적의미를 내포하는 시녀(侍女)와 호색 요녀(妖女)와 사랑을 상징하는 백가지 꽃 중에서 으뜸인 매화는 기녀妓女나 몸종, 시녀의 이름에서 흔히 볼수있으며, 옥매玉梅. 매향梅香. 매화梅花. 월매月梅등이 있다.



곡산 출신의 기녀 매화(妓女 梅花)는


매화(梅花)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직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하여라.


매화(梅花)가 늙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봄눈을 맞는 매화(梅花)에 빗대어 읊은 노래다.


  이 노래를 지은 매화(梅花)는 황해도 곡산(谷山) 출신의 기녀(妓女)로 해주 감사 홍시유(洪時裕)라는 사람과 교유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평양 기녀(妓女)였으며 평양 감사로 부임한 유춘색(柳春色)이란 사람과 가까웠다고도 한다. 그런데 나중에 유춘색(柳春色)이 자신을 멀리하고 춘설(春雪)이라는 다른 기녀(妓女)와 가까이 하자 그게 원망스러워서 이 노래를 지었다고도 한다.



매화 -萬海 韓龍雲 ㅡ


桑楡髮已短  葵藿心猶長

상유발이단  규곽심유장


山家雪未消  梅發春宵香

산가설미소  매발춘소향


늙은 나이라 머리칼 짧아지고

해바라기 닮아서 마음은 장하다.

산집엔 눈이 아직 녹지 않았는데

매화꽃 피어 봄밤이 향기롭다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도산 달밤에 핀 매화-퇴계(退溪) 이황(李晃)


步?中庭月?人  梅邊行?幾回巡

보섭중정월진인  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  香滿衣巾影滿身

야심좌구혼망기  향만의건영만신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좇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獨倚山窓夜色寒  梅梢月上正團團

독의산창야색한  매초월상정단단


不須更喚微風至  自有淸香滿院間

부수경환미풍지  자유청향만원간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이 차가운데

매화나무 가지 끝엔 둥근 달이 오르네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도 이니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山夜寥寥萬境空  白梅凉月伴仙翁

산야요요만경공  백매양월반선옹


箇中唯有前灘響  揚似爲商抑似宮

개중유유전탄향  양사위상억사궁


산 속 밤은 적막하여 온 세상이 비었는 듯

흰 매화 밝은 달이 늙은 신선 벗해 주네

그 가운데 오직 앞 내 흐르는 소리 들리니

높을 때는 商음이고 낮을 땐 宮음일세


晩發梅兄更識眞  故應知我겁寒辰

만발매형경식진  故應知我겁한신

可憐此夜宜蘇病  能作終宵對月人

가련차야의소병  능작종소대월인


늦게 핀 매화가 참됨을 다시 알아선지

이 몸이 추위를 겁내는지 아는지

가련쿠나 이 밤에 병이 낫는다면

밤이 다가도록 달과 마주 하련만


往歲行歸喜?響  去年病起又尋芳  ? ?+邑+衣향 내밸 읍

왕세행귀희읍향  거년병기우심방


如今忍把西湖勝  博取東華軟土忙

여금인파서호승  박취동화연토망


몇 해 전엔 돌아와 향기 맡아 기뻐했고

지난해엔 병석을 털고 다시 꽃 찾았다네

어찌 이제 와서 차마 서호의 절경을

우리 비옥한 땅 바쁜 일과 바꿀 손가


老艮歸來感晦翁  託梅三復歎羞同

노간귀래감회옹  탁매삼부탄수동


一杯勸汝今何得  千載相思淚點胸

일배권여금하득  천재상사루점흉


노간이 쓴 매화시에 주자는 세 번이나 감동해

'수동'이란 글귀로 세 번이나 탄식했네

너에게 한잔 술을 주고 싶지만 안되니

천 년 전 생각에 눈물로 가슴이 젖네


梅花(매화)-李奎報(이규보)

庾嶺侵寒?凍脣 不將紅粉損天眞

유령침한탁동순 불장홍분손천진

莫敎驚落羌兒笛 好待來隨驛使塵

막교경락강아적 호대래수역사진


帶雪更粧千點雪 先春偸作一番春

대설경장천점설 선춘투작일번춘


玉肌尙有淸香在 竊藥姮娥月裏身

옥기상유청향재 절약항아월이신


유령 추위에 언 입술이 터져

붉은 꽃가루 지니고 참 모습 잃지 않네.

오랑캐 피리 속에 놀라지게 하지 말고

잘 기다려 역사를 따르게 해야 하리라.

내리는 눈을 받아 천 송이 눈꽃으로 장식하여

봄보다 미리 또 한 봄을 훔쳤구나.

옥 같은 살결에 여전히 남은 맑은 향기 있으니

약 훔치던 항아의 달 속에 있던 몸이라네.


춘흥(春興봄의 흥취 매화)-진화(陳?)

小梅零落柳?垂 閒踏淸風步步遲

소매영락류기수 한답청풍보보지


漁店閉門人語少 一江春雨碧絲絲

어점폐문인어소 일강춘우벽사사


매화는 떨어져도 버들가지 늘어지고

맑은 바람 속을 거니니 걸음마다 한가롭다

고기점은 문을 닫고 인기척도 드물어

온 강에 내리는 비에 버들은 줄기마다 푸릇푸릇


영매1(詠梅1매화를 읊다)-정도전(鄭道傳)


渺渺江南夢 ??嶺外魂

묘묘강남몽 표표령외혼


想思空佇立 又是月黃昏

상사공저립 우시월황혼


아득하고 아득하다 강남의 꿈

날리고 날리는구나, 성 밖의 넋이여

생각에 잠겨 부질없이 서 있노라니

또다시 곧 달 떠오르는 황혼이로구나.

 

梅花에 얽힌 이야기


조선 전기 종실宗室 가운데 강양군(江陽君 )이정(李定;1545-1597)이라는 사람은

매화를 얼마나 사랑하였던지 일생동안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이정(李定)이 죽음을 당하여 분매(盆梅)의 가지를 꺾어 코에 가까이 대고 향내를 맡으면서 매화시 한수를 짓고 싶었지만, 도저히 글씨를 쓸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에서 임종(臨終)을 지켜보던 사위에게 절명시(絶命詩)를 받아쓰게 하였다고 한다. 이정(李定)은 梅花뿐만 아니라 거문고와 술을 좋아했으며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즐겨 읽었다고 하며 그가 죽을 때 세 가지 물건을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遺言)에 따라 거문고와 자치통감 그리고 술항아리 하나를 묻어주었다고 한다.


年將知命病相催  屋角悠悠楚些哀  

년장지명병상최  옥각유유초사애


梅蘂不知人事變  一枝失發送香來

매예부지인사변  일지실발송향래


이제 겨우 쉰 살이 되려는데 병이 드니

지붕 모퉁이 아득하고 마음은 아리고 서글프구나.

매화는 사람에게 병고가 생긴 것도 알지 못하고

한 가지에 먼저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오네.


이 시를 다 받아쓰고 난 뒤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가 일생동안 가까이 두고 사랑하며 길러왔던 분매가 주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우선 가지 하나에 몇 송이의 꽃을 피워 청향(淸香)을 선사하고 있지만, 생의 마지막을 맞고 있는 이정(李定)에게 있어서는 ‘매화가 사람에게 변고가 생겨 죽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하면서도, 결코 매화는 자신을 모른 체 하지 않고 그의 죽음 앞에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주는 아름다운 보은(報恩)의 정을 느끼게 하는 시다.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매화는 우리와 같이 그 많은 세월을 함께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매화의 그윽한 향기를 잊고 산지가 오래다. 다만 매실(梅實)로 가공한 술로 그 옛날 매화를 대신하고 있으니 세상이 상막하기만 한 것 같다.


 

 

 

 

 

 

 

 

 

 

 

 

 

 

 

 

 

 


 

 

 

 

 

 
출처 : 재령이씨 인자 조 후손
글쓴이 : 밀양 (雲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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