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맹부(趙孟?) 박돌천시(書?突泉詩)

2012. 9. 5. 16:52서예가

박돌천시(書趵突泉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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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元)    조맹부(趙孟頫, 1254-1322)
박돌천시(書趵突泉詩)
두루마리(卷), 종이에 먹, 33.1 x 83.3 cm
 
조맹부는 자는 자앙(子昂)이며 자호(自號)는 송설도인(松雪道人)이라 했다. 송(宋) 황실 출신으로 호주(湖州, 오늘날 절강성 오흥(吳興))사람이다. 송 왕조가 망하고 원 조정에 들어가 벼슬을 하였는데 관직이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사후 위국공(魏國公)으로 봉해졌으며 문민(文敏)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박돌천(趵突泉)은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옛 성 서문 밖에 있다. 조맹부가 제남에서 벼슬을 할 때 자주 이곳에 와서 쉬다가 가곤 했다고 한다. 조맹부는 시와 서화, 악과 율 어느 하나 능통하지 못한 것이 없었고 서예에 있어서 전서, 행서, 초서 등 모두 고금(古今)을 막론한 일인자라 하겠다. 초년에는 송 고종(高宗)의 서법을 배웠고, 후에는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의 서풍으로 전환하였다가 마지막으로는 다시 이옹(李邕)의 서법을 배웠다. 그는 당(唐, 618-907) 이후의 서예를 집대성한 인물로 동시대뿐만 아니라 후대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조맹부의 글씨는 완전히 유미주의(唯美主義)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의 주제가 된 박돌천시(趵突泉詩)는 성종(成宗) 원정(元貞) 원년(元年, 1295) 십이월, 주밀(周密)을 위해서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를 제작할 무렵에 쓰여진 것이다. 이 작품은 늦어도 대덕(大德) 8년(1304) 주밀이 사망하기 전에 제작된 것으로 조맹부의 나이 42세에서 51세 사이에 쓰여진 작품이다. 우아하고 둥근 필치로 쓰여진 이 작품은 유명한 조맹부 서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조맹부의 해서체(楷書體) 서예 작품 중에서 보기 드문 큰 글씨로 쓰여진 것이다. 두루마리에는 “우이제(右二題)”라고 적혀 있지만 지금은 하나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두루마리의 앞부분은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양지
글쓴이 : 양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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