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서오억가(自書五憶歌)

2012. 9. 5. 16:38서예일반

명(明) 왕총(王寵, 1494-1533) 

자서오억가(自書五憶歌)
두루마리(卷), 종이에 먹, 29.3 x 294.7 cm




이 작품은 행초서(行草書) 작품으로 하늘을 나는 것 같고 자유로운 기상이 넘친다.

왕총의 하필(下筆)은 좀 딱딱한데 붓이 꺾이는 곳에서는 좀더 부드러워져 까칠하지만 고졸(古拙)한 효과를 준다.

비록 근대 초서 작품이지만 글자 하나하나가 거의 독립적이며,

장초(章草, 예서(隸書)를 빨리 쓰기 위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서체)적인 필의(筆意)를 지니고 있는데

예를 들면 「면(眠)」, 「태(泰)」, 「열(裂)」등의 글자는

오른 쪽으로 삐치는 획과 거둠에서 예서(隸書)의 운치를 보존하고 있다.

이 글씨는 왕총이 35세 되던 해의 작품으로

바닥이 두꺼운 금속산(金粟山藏經紙) 사찰에서 보존하고 있는 밀납을 먹인 딱딱한 종이 위에 쓰여져

붓을 올리고 내리는 것이 빠르고 힘있는 왕총의 필법의 특색을 더욱 잘 표현해내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왕총의 작품 중 걸작이라 하겠다.


왕총은 장주(長洲, 오늘날 강소성 소주(蘇州)) 사람이다.

자는 이인(履仁) 또는 이길(履吉)이라고 한다. 호는 아의산인(雅宜山人)이라고 했다.

그의 부친 왕정(王貞)은 비록 상인이었지만 골동품과 서화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였다.

아버지의 영향아래 왕총과 그의 형 왕수(王守)는

모두 문징명(文徵明, 1470-1560) 과 채우(蔡羽)에게 서예를 공부하였으며 시문에도 능하였다.

그의 서예는 왕헌지(王獻之, 344-386)와 우세남(虞世南, 558-638)을 배웠다.

축윤명(祝允明, 1460-1526), 문징명과 함께 「오중삼가(吳中三家)」라고 칭해진다.



출처 /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출처 :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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