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임각첩행서(臨閣帖行書)

2012. 9. 5. 16:39서예일반

임각첩행서(臨閣帖行書)

족자(軸), 비단에 먹, 169 x 77.1 cm

청(清. 1644-1911) 유용(劉墉, 1719-1804)






유용의 자는 숭여(崇如), 호는 석암(石庵)으로 산동성 제성(諸城)사람이다.

건륭(乾隆) 16년 진사가 되어 관직이 체인각대학사(體仁閣大學士)에 이르렀으며 시문집이 전해온다.

유용이 서예를 익힌 과정은

초기의 동기창(董其昌, 1555-1636)과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서체를 모방하고 

본뜨는 것에서 시작하여 일찍이 진(晉)과 당(唐), 송(宋) 대 명가의 작품들을 공부하였으며

특히 안진경(顔眞卿)과 소식(蘇軾)에 대해 가장 깊이 연구하였는데

점차 이를 모두 융합하여 자신의 면모를 형성해 나갔다.


<순화각첩(淳化閣帖, 중국 송나라 태종 순화(淳化) 3년(992)에 제왕과 대신에게 나누어 준 법첩(法帖))>을 임모(臨摹)하고 연습하는 것은 유용의 일상적인 서예 공부의 하나였다.

그는 <순화각첩>에 실린 서예 작품들을 모사하는 것 외에도 발문을 더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적기도 하였다.


작품은<순화각첩> 제 5권, <지과서법(智果書法)>을 쓴 것이다.

유용은 원래 서첩에 실린 글씨를 있는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부분적으로 글자를 발췌하여 쓰고 자신의 생각을 뒤에 덧붙였는데

<순화각첩>의 편찬자인 왕저(王著)가 잘못 기록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탄버위(譚伯羽)와 탄지푸(譚季甫) 형제가 본원에 기증한 작품으로

뒤에 적힌 기년으로 보면 유용의 나이 77세에 완성된 것으로

이 시기는 그 자신과 서예 예술 모두 원숙해진 시기로 유용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출처 /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출처 :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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