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교의 서예

2012. 5. 30. 17:50서예일반

1. 서예(書)

이교(李嶠)

削簡龍文見 삭간 글씨 기운생동하고,

臨池鳥迹舒 서예는 문자를 꽃 피우네.

河圖八卦出 하도에서 팔괘가 나오고,

洛范九疇初 낙서(洛書)는 홍범구주 기초 되었네.

垂露春光滿 세로획은 봄기운 충만하고,

崩雲骨氣餘 가로획도 기운이 넘치는데.

請君看入木 그대! 강렬한 필력을 보노라면,

一寸乃非虛 촌음도 아껴야 함을 알 것이니.

1) 이교(李嶠): 자(字)는 거산(巨山)이고 하북(河北) 찬황(贊皇)사람이다. 진사(進士)출신이고 서예에 뛰어나 조정의 문책과 호령은 대부분 그의 솜씨이다. 사람됨이 정직하였고 일찍이 적인걸(狄仁杰)의 안을 재심하여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어 무즉천(武則天)에게 죄를 얻었기 때문에 윤주사마(潤州司馬)로 좌천 되었다. 당(唐)현종(玄宗)이 즉위하자 여주별가(廬州別駕)로 좌천되었다가 생을 마쳤다. 이교는 초당(初唐)의 저명시인으로 왕발(王勃)·소미도(蘇味道)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2) 삭간(削簡): 삭독(削牘)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칼로 나무 혹은 대나무를 깎아 간책(簡冊)을 만들고 여기에다 글자를 썼는데 이것을 삭간 혹은 삭독이라고 한다. 후에 글자를 쓰거나 혹은 서예를 창작하는 것도 삭간이라 한다.

용문(龍文): 서예의 필획이 빼어나고 생동적인 것을 형용한다.

3) 임지(臨池): 서예를 연습하다. 진(晉)나라 위항(衛恒)의 《사체서세(四体書勢)》에 “한나라가 세워지고 초서가 생겨났다.....홍농(弘農)장백영(張伯英)은 갈수록 그 기교에 정통하였다. 무릇 집안의 옷과 비단은 반드시 글씨를 쓴 이후에 그것을 마름질하였다. 못 옆에서 붓글씨를 공부하였는데 못물이 다 검게 되었다. (漢興而有草書....弘農張伯英者而轉精其巧. 凡家之衣帛, 必書而后練之. 臨池學書, 池水盡黑)”라고 되어있다.

조적(鳥迹): 《회남자(淮南子)·설산훈(說山訓)》에 “새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지었다.”라고 되어있다. 후에는 이로 인하여 새의 발자국이 서예를 대신하였으며 여기서도 이 뜻으로 사용되었다.

4) 하도팔괘(河圖八卦): 《상서(尙書)·고명(顧命)》에 “천구하도(天球河圖)”라 하였다. 《전(傳)》에는 “하도는 팔괘다. 복희씨(伏羲氏)가 천하에 왕 노릇 할 때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나와 마침내 이 문양으로 8괘를 그렸는데 이를 ‘하도’라 한다.” 라고 하였다. (河圖, 八卦. 伏羲王天下, 龍馬出河, 遂則其文以畵八卦, 謂之河圖)” 이구절의 의미는 서법과 성인이 만든 문자는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5) 낙범구주(洛範九疇): 《상서(尙書)·홍범(洪範)》의 공안국(孔安國)은 《전(傳)》에 “낙수(洛水)에서 글자가 나왔는데 신령스런 거북이가 등에 지고서 나와 그 등에다 나열하였는데 수가 아홉에 이르렀다. 우(禹)임금이 마침내 근거에 따라 그것의 순서를 정하고 아홉 가지의 상도(常道)를 만들었다. (洛出書, 神龜負之而出, 列于背, 有數至于九. 禹遂因而第之以成九類常道.)”라고 되어있다.

6) 수로(垂露): 서예의 세로 획은 붓끝을 모아 안으로 감싸 드러나지 않게 하는데 마치 이슬방울과 같다. 이것은 원래 전서의 필법이지만 해서에서도 이를 연용(沿用)한다. 위항(衛恒)의《사체서세(四体書勢)》에는 “이슬이 실 끝에 매달린 것처럼 아래 끝에 응어리져 매달린 것이다. (似水露緣絲, 凝垂下端)”라고 하였는데 즉 이것을 가리킨다.

7) 붕운(崩雲): 용필을 힘 있게 하여 묵기(墨氣)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마치 구름의 기운이 흩어진 것과 같은 것을 형용한다. 당나라 손과정(孫過庭)은《서보(書譜)》에 “혹은 붕운 같이 무겁기도 하고 매미날개 같이 가볍기도 하다. (或重若崩雲, 或輕如蟬翼.)”라고 하였다.

8) 입목(入木): 필력의 아래로 누르는 힘이 나무속에 스며드는 것을 형용한다.《태평광기(太平廣記)》에 왕희지가 축판(祝板: 제사 때 축도의 글을 쓴 나무판)에 쓴 글씨는 “필력이 나무의 3푼을 뚫고 들어갔다. (入木三分)”라고 기록이 있다.

 

【설명】

이것은 비교적 이른 한 수의 서법을 논한 시라고 볼 수 있다. 시는 대구로 시작하여 첫째 연과 둘째 연은 서예와 먼 옛날의 문자창제를 서로 결합하여 읊음으로써 서예의 기원이 오래 되었음을 지적해 내었다. 셋째 연은 서법중의 세로획과 가로획을 생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서법의 풍부한 함축적 의미를 찬송하였다. 전체 시는 구절마다 전고를 사용하였으나 수식의 중복이 적은 것은 작자의 풍부한 서예 지식과 뛰어난 문장력이 반영된 것이다.

출처 : 중국과 서예
글쓴이 : 금릉산방인 소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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