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頭跋尾

2022. 11. 7. 07:10서예일반


①제사(題詞)•글제 등에 쓰이는 문체의 하나. 서적(書籍)•비석(碑石)•서화(書畫) 따위에 적은 글로 앞의 것을 제(題)라 하고 뒤의 것을 발(跋)이라 함. ②뎌김[題音]의 준말. 조선 시대에 백성이 관(官)에 소장(訴狀)을 제출하면 관에서는 그 소장의 여백에 판결문을 적어 주었는데 이를 뎌김[題音]이라 함.
跋尾
책의 맨 뒤에 부치는 글.

예문관 대제학 정초가 왕명을 받아 ≪삼강행실도≫의 발미를 지어 올렸다. 그 발미에 이르기를, “이 ≪삼강행실도≫에 실린 충신, 효자, 열녀 각 1백 10인은 그들의 행실을 기록하고 그 모양을 그려 시로써 찬양하였습니다. 이어서 간행이 이미 완성되었는데 신에게 명하여 발미를 짓도록 하였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지금 사람과 옛 사람은 시세가 서로 떨어져 있고, 말이나 얼굴도 서로 알지 못하니 피차간에 무슨 좋아하고 미워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절이 높은 사람을 보게되면 사모하고 공경하게 되어 존경을 표시하여 그를 위해 말고삐라도 잡고자 합니다. 반대로 천박하고 더러운 사람을 보게되면 침을 뱉는 것도 부족하여 소매를 떨쳐 심지어는 그 머리에다 직접 칼을 대고자 합니다.…” 하였다. ; 藝文大提學鄭招 承命製進三綱行實圖跋尾 其辭曰 右三綱行實圖所載忠臣孝子烈女各一百十人 紀行圖形 仍贊以詩 刊板已竟 命臣跋尾 臣竊惟今人與古人 時勢不相接 音貌不相知 何惡何愛於彼此哉 然而見貞諒高節之人 則忻慕致敬 擧手加額 願爲之執鞭焉 見苟賤汚穢之人 則唾罵不足 攘袂扼腕 至欲手刃其頭也… [세종실록 권제59, 32장 뒤쪽, 세종 15년 2월 24일(무신)]

발(跋)은 서발체(序跋體) 산문에 속하며, 서적의 간행 경위와 작가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다는 점에서는 서(序) 혹은 서(敍)와 동일하다. 발문(跋文)이라고도 한다. 본디 족(足)에서 뜻을 취하여 ‘발로 밟는다’는 의미를 지녔는데, 거기서 파생되어 뒤에 놓이는 것을 모두 발이라고 하게 되었다. 발은 서와 유사하지만, 서는 자세하고 발은 간단하다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당나라 이전에는 서를 책의 앞에 둘 수도 있고 책의 뒤에 둘 수도 있어서, 책의 뒤에 두는 것을 ‘후서’라고 하였다. 송나라 때 발이 출현하기 시작하였으니, 구양수의 「집고록발미(集古錄跋尾)」 240여 편이 있다. 발이 출현한 이후 서가 보통 책의 앞에 놓이는 반면에, 발은 책의 뒤에 놓여 서후(書後), 제후(題後)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중엽부터 발달하였으며, 사림파가 등장한 조선 중종 이후에는 철학성을 띠게 되었다. 17세기 이후에는 문집이 활발히 간행됨에 따라, 학문과 사상의 연원, 작가의 삶과 내면 의식을 진지하게 탐색한 발문이 많이 등장하였다.


서화(書畵)가 완성되었을 때, 작가가 아호나 성명, 제작일, 발문(跋文)등을 적고 도장을 찍는 것을 낙관이라 한다.

보통 ○○○ 서(書), 사(寫), 록(錄)이라고 쓴다.



남에게 드림의 뜻으로는 청감(淸鑒), 아감(雅鑒), 박찬(博粲), 일찬(一粲), 법정(法正), 청정(淸正), 정지(正之), 교지(敎之)등이 있다.



작품에 화제를 쓰고 시기(時期)를 표시하는 것을 협서(夾書)라고 한다. 화제와 낙관 사이에 끼어 쓰는 것을 모두 협서라고 하는 것이다. 협서 중에서

왼편에 쓰는 글은 편서(便書), 오른 편에 쓰는 글을 방서(傍書)라 한다.



글이나 그림을 남에게 줄 때 표시하는 서여(書與), 서증(書贈), 청감(淸鑒), 아감(雅鑒), 법정(法正), 청정(淸正), 정지(正之),교지(敎之) 등을 쓰고 다른 사람이 부탁해서 그려 줄 때는 촉(囑), 아촉(雅囑), 촉서(囑書)라고 하며 위촉(爲囑) 또는 촉지(囑之)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윗사람의 부탁에 의해 쓰는 경우 '위(爲) ○○○서(書)'라 하지 않고 '봉위(奉爲) ○○○서(書)'라고 쓴다.

남의 수연(壽宴)에는 자작시를 써 보냈으나 요즘은 하(賀) ○○○화갑(華甲), 수연(壽宴), 위(爲) ○○○고희(古稀), 수연(壽宴), 축(祝) ○○○팔순(八旬), 수연(壽宴)이라 쓴다.

젊은이에게는 수연 대신 축(祝) ○○○사십수진(四十晬辰)이라 쓰고, 어린이 돌날은 수시(晬時)라고 쓴다.



호(號)는 그 사람의 별칭이다.

보통 호는 그 사람의 심경(心境), 지향(志向), 환경, 출생지, 서재 등에 의해 짓는다.

스승이나 윗사람, 사회인, 또는 본인이 짓는다.

호 다음에는 산인(山人,散人), 도인(道人), 주인(主人), 노인(老人), 옹(翁), 수 (叟), 거사(居士), 퇴사(退士), 은사(隱士), 일사(逸士), 외사(外士), 초부(樵夫), 어부(漁夫) 등을 쓴다.



당호(堂號)

당호는 화제와 협서를 쓴 후 당호를 쓰게 되어있다. 당호를 쓰고 그 밑에 호를 써야 하며 호를 안 쓸 경우, 당호 밑에 이름을 바로 써도 된다. 화제와 협서를 쓰고도 지면이 여유가 있어서 멋으로 쓰기도 하고 자기 당호를 철저히 쓰는 사람도 있다. 초당(草堂), 재(齋), 서옥(書屋), 헌(軒), 관(館), 정(亭), 각(閣), 누(樓), 산방(山房), 실(室)등 많이 쓴다. 길게 쓰는 사람은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 道人)이인문, 삼십육구초당(三十六鷗草堂)김정희 등이 있으며 그 외에 천심죽재(千尋竹齋) 민영익, 매화서옥(梅花書屋) 조희룡 등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당호를 쓴 사람들이 많다.





자(字)는 원래 이름과 서로 표리관계다.

본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던 시대에 장가 간 뒤 본이름 대신 부르던 이름이다.

이름과 의의상(意義上) 관련이 있는 것이 자(字)이다.

집안의 어른이나 부친이 많이 지었다.

때로는 백(伯). 중(仲), 숙(叔), 계(季)의 비행(批行)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남자의 경우 미칭인 자(子)를 쓰기도 한다.

이미 춘추전국시대부터 칠기 물에 낙관하기 시작했다.

원래 낙관은 잘못을 추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림에 낙관을 한 것은 후한의 채옹부터이다.

사대부 화가인 채옹이 그린 그림이 훌륭하여 화찬(畵贊)을 썼는데 이것이 화제(畵題)의 시초이다.



회화에서 낙관은 제(題), 발(跋) 그리고 인장(印章)이다.

보통 제두발미(題頭跋尾)한다.

제(題)는 품평(品評)하는 시문(詩文)으로 화첩이나 화권(畵券)의 전면이나 머리에 쓴다.

둘을 합쳐 제발(題跋) 또는 관지(款識)라고 한다.

관은 각(刻)이란 뜻이고 지(識)는 표식(標識), 즉 식별이다.

제발(題跋)은 그림에, 관지(款識)는 수공예품, 청동기, 칠기, 도자기에 한다.

기물의 외부 낙관을 주관, 내부 낙관을 작지라 한다.



인장에서 이름 자(字)는 음각, 호는 양각으로 한다.

호는 글씨가 튀어나온다.

인장은 주문(朱文)이다.

인주는 붉다. 즉 피다.

함부로 낙관해서는 안 된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에 낙관해야 하며 낙관된 작품은 함부로 취급해서도 안된다.



옛날 문인화가들은 시가 우선이었다.

시를 짓고 거기에 여기(餘技)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가 하면 화원화가들은 제(題)를 쓰지 않았다.

그림이 우선이었다.

제발(題跋)은 감상자들이 쓰는 경우가 많았다.

당원대 화가들은 겸손스레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낙관했다.

원대 이후 문인화가 발전하자 잘 보이는 여백에 낙관했다.

문인화가들은 그림 못지않게 서권기문자향(書券氣文字香)을 중요시 했다.



낙관에서 인장은 글씨보다 약간 작은 것이 어울린다.

낙관시 화제의 내용은 그림내용이나 설명, 감상, 운필, 기교, 비평 등을 쓴다.

남의 작품을 모방했을 때는 방(倣)○○○라 쓴다.

낙관에 제작 년월일, 계절, 장소, 호 등을 병기한다.

공모전 출품작은 겸손의 표시로 이름은 적지 않고 인장만 찍는다.

낙관과 그림은 조화로워야 한다.



낙관은 보통 4각형 모양의 방인(方印)을 찍는다.

인장에도 제(題)의 머리에 쓰는 두인(頭印), 여백에 어울리는 유인(流印)이나 여인(餘印)을 찍기도 한다.

서화에 사용하는 인장을 새기는 것을 전각이라 한다. 납석, 옥돌, 목, 죽, 철 등을 사용하여 예술적으로 조각한다.

명대 하진의 자학도법(字學刀法)이 있고 문징명의 아들 문팽이 전각을 잘하여 두 사람을 문 ·하(文·何)라 칭하고 전각의 시조라 일컫는다.





호고유시수단갈, 연경누일파음시(好古有時搜斷碣, 硏經婁日罷吟詩)"로, 해석하면 "옛것을 좋아해 때때로 부서진 비석을 찾고, 경전 연구로 며칠 동안 시를 못 읊는다"이다. 측면의 관기(款記)는

"竹碗雅鑒, 幷請削定. 近日隸法 皆宗鄧完白, 然其長在篆. 篆固

"죽완아감, 병청삭정. 근일예법 개종등완백, 연기장재전. 전고直溯泰山琅邪, 有變現不測, 隸尙屬第二. 如伊墨卿, 頗奇古, 亦

직소태산랑사, 유변현불측, 예상속제이. 여이묵경, 파기고,역

有泥古之意. 只當從五鳳 黃龍字, 參之蜀碑, 似得門徑.“

유니고지의. 지당종오봉 황룡자, 참지촉비, 사득문경

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죽완(竹琬)선생님,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근래에 예법(隸法)은 모두 등완백(鄧完白, 字石如, 1743∼1805)을 으뜸으로 생각하나 사실 그의 장기는 전(篆)에 있습니다. 그의 전은 진대(秦代)의 태산(泰山)·낭야(琅邪)에까지 곧장 올라가서 변화불측의 묘를 얻었고 예(隸)는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이병수(伊秉綬, 字 墨卿, 1754∼1815)같은 사람은 기고(奇古)한 맛은 있으나 역시 옛법에 얽매였습니다. 그러니 예법(隸法)은 서한(西漢)의 오봉·황룡(五鳳.黃龍: 宣帝의 연호, B.C. 57∼49)시대의 문자를 따르고, 촉비(蜀碑)를 참고로 해야 바른 길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련 작품은 앞폭과 뒷폭의 문장내용이 대구가 되는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본문 옆에 협서로 쓴 관기(혹은 관지)는 본문을 설명하거나 본문글씨를 받을 사람에게 그 내용을 적거나, 세시를 적고 주는 사람의 호와 이름을 씁니다. 통상적으로 앞폭에 쓰는 글씨는 조금 높게 쓰고 뒷폭에 쓰는 글씨는 조금 낮추어서 씁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대련 작품에 쓰는 작은 글씨는 본문내용을 설명하거나 보충내용, 그리고 받고 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실린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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