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池記

2018. 11. 16. 10:31서예일반

墨池記

臨川(1)之城東, 有地隱然而高, 以臨於溪, 曰新城。

新城之上, 有池洼然而方以長, 曰王羲之之墨池者,

筍佰子 <<臨川記>> 云也。

羲之嘗慕張芝,臨池學書,池水盡黑, 其故跡,豈信然邪?

方羲之之不可強以仕,而嘗極東方,出滄海,以娛其意於山水之間;豈其徜徉肆恣,而又嘗自休於此邪?
羲之之書晚乃善,則其所能,蓋亦以精力自致者,非天成也。然後世未有能及者,豈其學不如彼邪?則學固豈可以少哉!況欲深造道德者邪?
墨池之上,今為州學舍。教授王君盛恐其不章也,書「晉王右軍墨池」之六字於楹間以揭之,又喜於鞏曰:「願有記。」
推王君之心,豈愛人之善,雖一能不以廢,而因以及乎其跡邪?其亦欲推其事以勉學者邪?夫人之有一能,而使後人尚之如此。況仁人莊士之遺風餘思,被於來世者如何哉!
慶曆八年九月十二日曾鞏記。

 

 

묵지기

 

임천(臨川) 성 동쪽에 높이 치솟아 있는 땅이 있다. 아래로는 개울을 마주하고 있는데, 신성(新城)이라고 부른다.  신성 가에는 움푹 패어있는 네모진 연못이 있다. 이곳이 왕희지(王羲之)의 묵지(墨池)라고, 순백자(荀伯子)는 ≪임천기臨川記≫에서 말한 바 있다. 왕희지는 일찍이 장지(張芝)를 흠모한 나머지 그와 같이 연못가에서 서예를 배웠는데, 연못이 모두 먹물로 변했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그 유적이라 하는데, 어찌 믿어야 하는가?
 

   왕희지는 억지로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동쪽 지방을 두루 유람하며 푸른 바다로 나아가 산수 자연에서 즐거움을 찾은 적이 있었다. 혹시 그가 제멋대로 떠돌다가 이곳에서 휴식한 것은 아닐까? 왕희지의 서예는 말년에서야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의 탁월함은 힘써 노력한 결과이지 하늘이 준 것이 아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혹시 배우는 노력이 왕희지를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러니 어찌 배움을 과소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높은 인격을 닦는 것은 어떻겠는가!

  
  묵지 옆으로 지금 무주(撫州)의 학교가 있다. 이 학교 교수 왕성(王盛)이 묵지의 내력이 묻혀질까 걱정되어 "진왕우군묵지(晉王右軍墨池)"라는 여섯 글자를 써서 기둥 사이에 걸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기문이 필요합니다"라 하였다. 나는 왕 교수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남의 장점을 소중히 여겨, 한 가지의 재능일지라도 버리지 않으려는 그의 마음이 유적에까지 미친 것이 아닐까?  이 어찌 왕희지의 사적을 통해 배우는 자를 분발하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한 가지 재능이 후세 사람들에게 이처럼 추앙을 받고 있는데, 인격자와 정직한 사람이 남긴 가르침과 의지가 후세 사람들에게 끼치는 것은 어떻겠는가?



                          경력(慶歷) 팔년(1048) 9월 12일, 증공(曾鞏)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