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馬齊瘖

2022. 10. 14. 12:49즐거운 사자성어

만마제음(萬馬齊瘖)’이란 ‘만 마리의 말이 일제히 울음을 그치다’라는 뜻입니다.

고요한 밤 아늑한 마을에서 한 마리의 개가 무엇을 보고 짖으면 온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다른 집의 개는 까닭도 모르면서 소리에 이끌려 짖는 ‘일견폐형 백견폐성(一犬吠形 百犬吠聲)’입니다. 한 사람의 의견에 따지지도 않고 우르르 몰리는 부화뇌동(附和雷同)의 군중심리를 나타냅니다.

반면 '도둑 한 놈에 지키는 사람 열이 못 당한다'는 말은 아무리 지키는 사람이 많아도 나쁜 일을 막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만 마리나 되는 많은 말(萬馬)이 일제히 울음을 그치고 벙어리가 된다(齊瘖)는 이 성어는 ‘사람들이 불의에 모두 입을 닫고 모른 체하는 것’을 비유합니다.

북송(北宋) 때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 1037~1101)가 쓴 ‘삼마도찬(三馬圖贊)'이란 글에서 이 말이 처음 유래했습니다. ’송나라 때 서역에서 말 한 마리를 보내왔는데 키가 팔 척이나 되고, 용의 머리에 봉황의 가슴을 가졌고, 범의 등을 하고 표범의 무늬를 가진 놈이었습니다. 용마의 마구간에 함께 넣었더니 갈기를 떨며 길게 울부짖어 만 마리의 말이 벙어리가 된 듯 조용해졌다(出東華門 入天駟監 振鬣長鳴 萬馬皆喑: 출동화문 입천사감 진렵장명 만마개암).'

이 성어가 뜻이 확장돼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청(淸)나라의 학자 겸 시인 공자진(龔自珍, 1792~1841)의 시에서 인용하고부터라 합니다. 그는 관직에는 뜻이 없고, 청나라 말기의 전제정치가 빚은 혼란상을 비판하는 사상계의 선구자가 됐습니다. ‘기해년의 잡다한 시(己亥雜詩: 기해잡시)’ 220수가 남아 개혁의지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습니다. ‘온 세상에 생기가 넘치는 것은 비바람과 번개가 자극을 주기 때문인데, 만 마리의 말들이 똑같이 벙어리가 됐으니 참으로 애처롭다(九州生氣恃風雷 萬馬齊瘖究可哀: 구주생기시풍뢰 만마제음구가애).’ 당시의 숨 막히는 정치상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통탄했습니다.

‘하족괘치(何足掛齒)’란 ‘어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을 의미합니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갑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순식간에 번지니 말을 조심하라는 서양 격언입니다. 바위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듯이 말을 잘 하면 구약현하(口若懸河)라고 칭찬하면서도,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온다며 구화지문(口禍之門)을 경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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