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田詩草1-10

2022. 10. 10. 15:02한시

1. 윤 서유 감찰을 대동하고 바위 밑에서 작은 배를 띄우다[携尹 書有 監察巖下小泛]

그 옛날의 맑은 강빛이 / 宿昔淸江色
해마다 사람을 생각하게 하누나 / 頻年思殺人
백사장은 벌창한 물에 따라 변하고 / 沙碕隨漲變
고기잡이 길은 물가에 새로 났네 / 漁路傍厓新
옛일을 회상하니 묵은 자취 슬퍼라 / 顧眄悲陳跡
의기 소침한 이 몸이 애석하구려 / 銷沈惜此身
못가에 우뚝이 서 있는 돌이여 / 巋然潭上石
늘그막에 너와 서로 친하자꾸나 / 投老汝相親


2. 동고에서 저녁 경치를 관망하다[東皐夕望]

구사일생으로 돌아와 실망의 뜻 그지없어 / 百死歸來意惘然
지팡이 짚고 때로 다시 강변에 기대 섰나니 / 枯筇時復倚江邊
한 떨기 누런 잎새 그윽한 마을엔 비 내리고 / 一苞黃葉深村雨
갠 두어 산봉우리엔 석양빛이 걸려 있네 / 數角晴巒落照天
거룻배는 정히 이 늙은이를 실을 만하고 / 野艇定堪容老物
갈매기와는 모쪼록 여생을 함께 할 만한데 / 沙鷗聊與作餘年
아, 무릉에 돌아가 제사지낼 날이 없어라 / 茂陵返祭嗟無日
현몽한 이가 백발의 신선인가 의심스럽네 / 夢告猶疑白髮仙

[주D-001]무릉(茂陵)에 …… 의심스럽네 : 저자인 정약용 자신이 과거에 섬겼던 임금, 즉 정조(正祖)를 사모하여 한 말이다. 무릉은 한 무제(漢武帝)의 능호이고, 백발(白髮)의 신선 또한 한 무제를 뜻한 말로, 한 무제가 죽은 뒤 능령(陵令) 설평(薛平)에게 현몽하여 이르기를, “내가 죽기는 했지만 너의 임금이거늘, 어찌하여 이졸(吏卒)들이 내 능에 올라와 칼을 갈도록 하느냐?" 하였으므로, 설평이 그 사실을 추문한 결과 과연 이졸들이 능의 방석(方石)에 늘 칼을 갈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3. 동고에서 새벽 경치를 관망하다[東皐曉望]

단풍잎에 솔솔 바람 부는 새벽에 / 黃葉颼颼曉
놀란 기러기는 날아가며 부르짖네 / 驚鴻片片號
협곡의 배는 천상에서 나오는 듯 / 峽船天上出
강에 비친 태양은 안개 속에 높구려 / 江日霧中高
고향이 그리워라 거듭 본 게 기쁘고 / 懷土欣重見
집을 떠나라 오랜 노고가 생각나네 / 離家憶舊勞
이미 돌아간 게 즐겁다고 했으니 / 旣云歸可樂
왜 꼭 동고에서 휘파람 불 것 있나 / 何必嘯東皐

[주D-001]돌아간 …… 있나 : 진(晉) 나라 도잠(陶潛)이 팽택령(彭澤令)을 그만두고 돌아올 때에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분다.[登東皐以舒嘯]” 한 데서 온 말이다.


4. 겨울날에 백씨를 모시고 일감정에 들렀다가 저녁에 배를 타고 돌아오다[冬日陪伯氏過一鑑亭 夕乘舟還]

가느다란 풀 나무 길을 걸어서 / 眇眇樵蘇逕
마판의 숲을 빙빙 돌아 오르니 / 回回皁櫪林
홈통은 나그네 눈을 새롭게 하고 / 瓦溝新客眼
분칠한 벽은 강 중심에 비치어라 / 粉壁映江心
수수죽은 숟가락에 질질 흐르고 / 薥粥流匙滑
솜 둔 갖옷은 깊숙이 와상 기대었네 / 綿裘隱几深
뜨락을 지나다니는 손자가 있으니 / 過庭有孫子
응당 노 나라 시경을 수학했겠지 / 應受魯詩音

울퉁불퉁 구름에 연한 비탈이요 / 犖确連雲磴
번뜩번뜩 협곡 내려오는 배로다 / 飄颻下峽船
당나귀 힘 약한 것은 걱정되지만 / 直愁驢力弱
노 젓는 소리 부드러움은 사랑스러워 / 兼愛艫聲柔
오리가 떠 있어라 찬 못은 고요하고 / 鳧泛寒潭靜
까마귀 날아라 저녁 잎새 흔들리네 / 鴉飜夕葉颼
돌아오매 아직 해가 남아 흔들리네 / 歸來有餘景
조금 더 안 머문 것이 애석하구려 / 惜不小淹留

[주D-001]뜨락을 …… 수학했겠지 : 가정에서 조ㆍ부모로부터 학문을 배우는 것을 이름. 공자(孔子)가 뜨락을 지나던 아들 이(鯉)에게 《시경》을 배웠느냐고 물으니, 이가 아직 못 배웠다고 대답하자, 공자가 《시경》을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므로, 이가 《시경》을 배웠던 데서 온 말이다.《論語 季氏》


5. 두 아들과 세 친구가 나누어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二子與三友分賦] 운(韻)은 검(檢)ㆍ서(書)ㆍ소(燒)ㆍ촉(燭)ㆍ단(短)이다

죄를 지고 전원으로 돌아와서는 / 負累歸田園
반성하매 늘 스스로 가책이 되네 / 顧省恒自歉
훌륭한 친구 의탁한 게 기뻐라 / 喜爾託良友
기거동작에 검속을 힘입는다오 / 容止賴拘檢
오래 공경하여야 잘 사귀는 것이요 / 久敬方善與
즐거워 웃어야만 싫지 않는 법이라 / 樂笑斯不厭
차라리 친구의 충고를 받을지언정 / 寧受友攸箴
뭇사람의 배척은 받지 말아야지 / 無爲衆所貶
하늘은 해 저문 때에 쌀쌀하고 / 玉宇冷崢嶸
매화는 흐르는 세월이 애석하여라 / 梅花惜荏苒
눈 밟으며 촛불 잡고 노니나니 / 蹋雪以秉燭
물품이 박한들 누가 부족하게 여기랴 / 物薄誰復慊

텅 빈 강엔 찬 물결 고요한데 / 空江湛寒碧
노 젓는 소리가 그윽한 곳 들레네 / 艫聲動幽居
첫눈이 석양에 다시 녹으니 / 初雪夕復消
검푸른 산이 막 빗질한 것 같구려 / 山黛如新梳
친구들 서로 간격 없이 즐기나니 / 朋歡決畦畛
이 즐거움 의당 어떠하겠나 / 此樂當何如
담소하는 가운데 문자가 연달으니 / 譚諧錯文字
꼭 시서에 전을 낼 것 없어라 / 不必箋詩書
맑은 달은 텅 빈 하늘을 주관하고 / 淸月領寥天
초목은 겨울에 더욱 성기어라 / 草木況冬疎
숙이고 쳐들어 우주를 생각하면서 / 俯仰思宇宙
서로 손잡고 뜨락을 거니노라 / 握手步庭除

나는 이르건대 친구 찾아온 밤이 / 我謂朋來夕
이것이 바로 좋은 밤이라오 / 卽此是良宵
박잎 삶으면 한 번 모이기에 족하니 / 烹瓠足一會
훌륭한 덕을 힘써 밝힐 뿐일세 / 令悳唯懋昭
공식의 예를 부러워하지 말라 / 莫羨公食禮
돼지며 양고깃국 잡다히 끓인다오 / 膮臐雜煎燒
덧없는 인생은 한바탕 꿈일 뿐이라 / 人生一夢耳
처음 태어난 때와 같음을 깨달았네 / 旣悟如始朝
환히 빛나는 저 기름 촛불이야 / 煌煌彼肪燭
끄지 않아도 끝내 다 타 버리나니 / 不滅終盡消
어찌하여 부지런히 힘쓰지 않고 / 如何不黽勉
한평생 적막함을 달게 여기랴 / 沒世甘寂寥

길이 죽 연이은 철마산이요 / 邐迤鐵馬山
깊고 그윽한 청강의 굽이로세 / 窈窕淸江曲
조용히 숨어 사는 게 바로 신선인데 / 幽棲卽神仙
어찌 도참설을 연구할 것 있겠나 / 豈必硏圖籙
좋은 잔치 멀리 찾을 것 없어라 / 芳讌不遠求
마을 안에 좋은 술이 있다오 / 村中有醽醁
늘 웃나니 왕자량은 시를 읊을 때 / 常笑王子良
촛불 일 촌을 한계로 삼았었네 / 哦詩限寸燭
서로 이끌고 문을 나와 보니 / 相携出門看
지는 달이 옥처럼 걸려 있는데 / 落月懸如玉
몹시 가련해라 친구 없는 사람은 / 劇憐無朋人
발걸음이 항상 주저주저한다오 / 其行常彳亍

저녁 하늘 티없이 말끔한데 / 夕天淨無瑕
희미한 구름 가로질렀다 끊기어라 / 微雲橫復斷
멀리서 달빛 고운 줄을 알기에 / 懸知月色鮮
부르기를 감히 늦추지 못하겠네 / 招呼不敢緩
좋은 이웃에 편지를 급히 보내자 / 尺牘走芳隣
즐겨 오니 내 마음 만족하여라 / 肯來斯志滿
그 옛날 내가 타관살이 할 적에 / 昔我客殊方
칡마디 자주 자란 걸 놀라서 / 葛節驚屢誕
매양 서울 사람을 만날 적마다 / 每遇京國人
손수 옥술잔 받들어 대접했었지 / 手自擎玉盌
이 자리가 다시 이렇게 좋으니 / 玆筵復都雅
어찌 겨울 밤인들 짧지 않으랴 / 豈不冬宵短

[주D-001]오래 …… 것이요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안평중(晏平仲)은 사람들과 잘 사귀도다. 오래도록 서로 공경하는구려.[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 한 데서 온 말이다.《論語 公冶長》
[주D-002]즐거워 …… 법이라 : 공자가 공명가(公明賈)에게 공숙문자(公叔文子)에 대해서 물으니, 공명가가 대답하기를, “부자(夫子 공숙문자를 이름)께서는 말할 때가 되어서 말을 하므로 남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고, 즐거운 뒤에 웃기 때문에 남들이 그 웃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 ” 한 데서 온 말이다.《論語 憲問》
[주D-003]박잎 …… 족하니 : 주인이 손을 대접하면서 겸손하고 따뜻한 정을 표하는 말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호엽(瓠葉)에 “너풀너풀 박잎을 따다가 그것을 삶았네. 술이야 여기 있으니 한 잔 들어 맛을 보게나.[幡幡瓠葉 采之亨之 君子有酒 酌言嘗之]”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공식(公食)의 예(禮) : 주국(主國)의 임금이 소빙대부(小聘大夫)들에게 향응(饗應)하는 것을 말한다.《周禮 公食大夫禮》
[주D-005]왕자량(王子良)은 …… 삼았었네 : 왕자량은 남제(南齊) 때의 경릉 문선왕(竟陵文宣王) 소자량(蕭子良)을 이르는데, 그가 일찍이 밤에 학사(學士)들을 모아 놓고 시를 지을 때 사운(四韻)의 경우는 촛불 일 촌(一寸)이 탈 동안에 다 짓기로 하여 이것을 규정으로 삼았던 데서 온 말이다.《南史 卷59》
[주D-006]칡마디 …… 놀라서 : 오랜 타관살이를 한탄한 말. 춘추 시대 여(黎) 나라 임금이 오랑캐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위(衛) 나라로 가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을 적에 그의 신하들이 고국에 가지 못하고 타국에 오래 있게 됨을 한탄하여 부른 노래에 “높은 언덕의 칡넝쿨은 마디가 어이 그리도 넓게 자랐는고.[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한 데서 온 말이다.《詩經 邶風 旄丘》


6. 하천에 은거하는 당숙부에게 써서 올리다[奉簡堂叔父霞川幽居]

당숙부가 은거하시는 곳은 / 叔父幽棲處
용문산이 문을 마주해 푸르지요 / 龍門對戶靑
성긴 울타리는 남은 눈을 띠었고 / 疎籬帶殘雪
낡은 집엔 찬 별이 움직이어라 / 老屋動寒星
상란의 지난 세월은 빠르기도 한데 / 喪亂流年疾
유랑을 해라 어두운 눈물 떨어지네 / 遷移暗涕零
봄이 와서 근력이 좋으시거든 / 春來筋力好
거듭 강가의 정자에 오시려는지 / 重肯到江亭


7. 사월 오일에 예안의 김 상유 포의와 함께 사라담에서 배를 띄우고 돌아서 남자주에 이르러 생선을 삶다[四月五日同禮安金 商儒 布衣泛舟䤬纙潭轉至藍子洲烹鮮]

석양에 맑은 골짝에 배 옮기어 / 淸壑移舟晩
노를 기대고 봄 산을 구경하노니 / 春山倚櫂看
물 향기는 붓과 벼루를 엄습하고 / 水香侵筆硏
붉은 놀 기운은 의관에 스며드누나 / 霞氣濕衣冠
술은 사서 언덕 의지해 마시고 / 沽酒依回岸
갈매기 따라 급한 여울 내려가네 / 隨鷗下急湍
해마다 한 번씩 저 월고포에서 / 年年粤沽浦
즐겁게 노닐 줄을 어찌 뜻하였으랴 / 何意作游歡
내가 강진(康津)에 있을 적에 봄과 여름이 교차할 때마다 월고포에 배를 띄우고 하루씩을 즐기었다.

직하의 풍속은 아직 남았거니와 / 稷下猶遺俗
부주의 생활은 가련키만 하구려 / 涪州每見憐
스스로 호외의 나그네가 되어 / 自爲湖外客
영남의 어진이를 깊이 알았네 / 深識嶺南賢
현가의 뜻은 너무나도 크건마는 / 濩落弦歌志
역소의 해는 아득하기만 하여라 / 微茫驛召年
은풍 고을이 또 좋다고 하니 / 殷豐聞更好
옮겨 가고 싶은 뜻 번뜻 나누나 / 鵬徙意翩然

[주D-001]직하(稷下)의 풍속 : 학자의 기풍을 뜻함.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직하에는 추연(騶衍)ㆍ순우곤(淳于髡)ㆍ신도(愼到)ㆍ환연(環淵)ㆍ접자(接子)ㆍ전변(田騈) 등의 학자들이 각각 치란(治亂)에 관한 일을 담론하였다 한다.《史記 卷74》
[주D-002]부주(涪州)의 생활 : 조정으로부터 쫓겨난 처지를 비유한 말. 송(宋) 나라 때 정이(程頤)가 당쟁(黨爭)에 의하여 부주(涪州)로 유배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宋元學案 卷15》 또는 송 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일찍이 부주로 유배되어 부옹(涪翁)이라 자호한 사실이 있기도 하다.
[주D-003]현가(弦歌)의 뜻 : 세상을 예악(禮樂)으로 다스리려는 뜻을 이름. 일찍이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원이 되었을 때 공자가 그곳을 가니 현가의 소리가 들렸다는 데서 온 말이다.《論語 陽貨》
[주D-004]역소(驛召) : 조정에서 선비를 역마(驛馬)로 불러올리는 것을 이름. 송 철종(宋哲宗) 때 사마광(司馬光)과 여공저(呂公著)를 역마로 불러올렸었다.


8. 사월 십오일에 백씨를 모시고 고기잡이하는 집의 조그마한 배를 타고 충주로 향해 가면서 전기의 강행 절구시를 본받아 짓다[四月十五日陪伯氏乘漁家小艓向忠州 效錢起江行絶句]

사월이라 황효의 물이요 / 四月黃驍水
새로 막 갠 철마산이로세 / 新晴鐵馬山
여기서부터 삼백 리의 물길은 / 自玆三百里
길이 백구의 사이에 있구려 / 長在白鷗間

모두들 어선이 좋다고 하는데 / 摠道漁船好
가벼이 나가서 잠시도 안 멎는다네 / 輕划不蹔停
서늘한 시렁은 일산처럼 떠 있어라 / 涼棚浮似蓋
바람 장막 둘러서 정자를 만들었네 / 風幔繞爲亭

미로는 서화 상자가 무거웠고 / 米老書函重
이재는 필첩이 진기로웠네 / 彝齋筆帖珍
눈에는 두 조각 안경이 있어 / 眼中雙靉靆
여행길이 티없이 환히 맑구려 / 行色淨無塵

둑 위에는 세 그루 버드나무요 / 埭上三株柳
울타리 밑에는 명사가 십리인데 / 籬根十里沙
그 안에 정사들이 좋기도 해라 / 中藏好亭榭
돌아보니 여기가 우리 집일세 / 還看是吾家

백 이랑 물결 사라담의 어귀가 / 百頃䤬鑼口
멀리 두자의 넓은 물결 이었는데 / 遙承枓子洪
유쾌하기도 해라 옷소매 속으로 / 愉哉衣褒裏
푸른 물결 바람이 가득 불어 오누나 / 吹滿綠漪風

남자주 앞의 저 돌을 보니 / 藍子洲前石
젊어서 고기 잡던 일 생각나는데 / 丁年憶打魚
그 당시에 하고많던 그 어부들이 / 當時衆漁子
이제는 두어 사람만 남았네그려 / 唯有數人餘

아스라이 보이는 저 수종사엔 / 縹緲水鍾院
뜬 남기에 낙숫물 홈통이 분간되네 / 浮嵐辨瓦溝
호남에 사백 군데의 절이 있지만 / 湖南四百寺
끝내 이 높은 누각보다는 못하리 / 終少此飛樓

산수와 습수가 합쳐 흐르는 곳에 / 汕濕交流處
그 마을 이름이 바로 이수두인데 / 村名二水頭
마을 앞의 한 전방 늙은이가 / 當門一店叟
가만히 앉아 가는 배를 보내누나 / 堅坐送行舟

소슬하고 짙푸른 골짝의 물이 / 瑟碧谿潭水
바람을 받아 거울 조각 깨지듯 하는데 / 衝風破鏡天
붉은 산이 꼼짝 않고 있어라 / 紫山凝不動
알건대 이것이 나무 파는 배로세 / 知是販樵船

바위 밑에 떠 있는 일엽편주는 / 巖根一葉船
흡사 가죽신만큼 조그마한데 / 只似皮鞵小
배 꼬리에 고기를 감추었어라 / 船尾却藏魚
버들가지에 줄줄이 꿰놓았구려 / 纍纍穿柳杪

한 번 번쩍 나타난 용문산의 빛이 / 一閃龍門色
가로로 날아 나그네 배에 왔는데 / 橫飛到客船
문득 마치 새로 등장한 배우가 / 忽如新戲子
몸단장하고 자리에 나온 것 같네 / 裝拺出當筵

적막하기도 해라 사천의 마을에는 / 寂寞沙川塢
예로부터 지방 호족이 없었는데 / 由來乏土豪
밭 사이에 만 그루 나무가 있어 / 田間萬株樹
때가 되면 앵두를 위에 바친다오 / 時至貢櫻桃

소나무와 참나무 수려한 곳에다 / 松櫪濃姸處
잠목의 물굽이를 감아 돌아라 / 紆回梣木灣
아름답기가 막 빗은 머리털 같아 / 美如新櫛髮
이 여씨 집의 산을 사랑한다오 / 愛是呂家山

백사장 언덕 땋아 내린 버들 아래 / 沙岸百辮柳
의관 갖춘 사람 팔구 명이 있는데 / 衣冠八九人
다만 내기 활쏘기로 술을 마셔라 / 秪應賭射飮
남쪽 언덕에 과녁을 새로 걸었네 / 南垞挂帿新

들 언덕에 외로이 가는 나그네 / 野岸孤征客
따스한 날에 말의 걸음 더디어라 / 暄天一馬遲
장막친 정자가 이렇게 좋은데 / 幔亭如此好
아, 그대는 홀로 어디를 가느뇨 / 嗟爾獨何之

기운 언덕이 꺼진 비탈에 연하여라 / 側阪連崩磴
온 무더기가 벌창할 때의 모래로세 / 全堆舊漲沙
뉘 집의 두어 두둑 보리 잎새는 / 誰家數畦麥
잔디같이 초췌하게 서 있네그려 / 憔悴立如莎

순전히 푸르기만 한 먼 산빛은 / 純碧遠山色
물들이는 공인을 부끄럽게 하여라 / 如羞點染工
응당 초목이 없지는 않으련마는 / 未應無草木
공중에 쌓인 안개 때문이로세 / 秖是積空濛

높은 절벽은 맑은 골짝 임해 있는데 / 峭壁俯淸壑
검은 두건은 가면서 절로 기우네 / 烏巾行自斜
바위 틈에 붉은 철쭉들이 끼여 나서 / 石縫紅躑躅
모두 거꾸로 드리운 꽃이 되었구려 / 皆作倒垂花

손목의 글에서 말한 예에 따르면 / 孫穆書中例
한탄강이 바로 대탄강이 되는데 / 韓灘是大灘
나의 배는 지푸라기처럼 가벼워 / 吾舟輕似芥
여기에 와서는 오히려 험난하구려 / 到此尙艱難

고려 때에 공교로이 깎아 놓은데다 / 麗代風斤斲
광릉이 나무로 방죽을 둘러치니 / 光陵木楗圍
물길이 사방의 강으로 통하여라 / 漕渠貫四瀆
자잘한 돌도 이젠 낚시터가 되었네 / 拳石至今磯

깊은 못은 꼭 여울물을 쏟아 내고 / 潭渟必瀉湍
골짝은 좁아야만 들이 열리는 건데 / 峽束方開野
치란이 항상 이 이치와 같거니와 / 治亂恒如斯
궁하고 통함도 그러함이 있다오 / 窮通有然者

은사가 깊이 숨어 사는 곳이 / 隱者深棲地
분명히 저 사이에 있으리로다 / 分明在彼間
돌더렁에 화전 일군 곳도 많은데 / 石田多熂爈
이곳이 바로 백병산이라 하네 / 云是白屛山

매양 상앗대 잠길 물만 만나면 / 每得沈篙水
이내 뱃전 두드리며 노래하는데 / 纔成扣枻歌
풀 모래톱 개었다 다시 어둑해지니 / 草汀晴更沒
동쪽 골짝에 비가 응당 많이 내리리 / 東峽雨應多

물 언덕에 누운 풀 무성도 해라 / 水岸芊眠草
고운 풀에 상앗대 꽂기 아깝구려 / 濃姸惜刺篙
어미소는 꼼짝 않고 누워 있는데 / 牸牛堅不動
송아지만 절로 가벼이 뛰노누나 / 黃犢自輕跳

양근의 황폐한 작은 마을은 / 楊根小墟落
아직도 처음 이사할 때 같구려 / 猶似始遷時
누가 등공을 위해 장사를 지내며 / 誰爲滕公葬
공자의 사당 옮기기를 꾀할런고 / 謀移孔子祠

저 멀리 보는 수양버들 속으로 / 遠遠垂楊裏
술 파는 배가 날듯이 달리어라 / 飛奔賣酒船
처음에는 인정으로 손을 권하여 / 始來情勸客
전혀 돈을 따지지 않은 것 같네 / 渾似不論錢

편평하고 둥글한 설암의 꼭대기에 / 平圓雪巖頂
그 당시 이름난 정자를 세웠었지 / 當日立名亭
아직도 두 그루 은행나무가 있어 / 猶有雙平仲
맑은 그늘이 석양 물가를 덮어 주네 / 淸陰覆晩汀

공교로이 산 끊어진 곳 당하여 / 巧當山斷處
석양이 징 모양으로 걸려 있네 / 落日挂銅鉦
하필이면 저기 저 금사사에 올라 / 何必金沙寺
서쪽으로 지평선을 물을 것 있나 / 西臨問地平

서쪽 물결은 성난 사자 어금니 같고 / 西灩獅牙怒
소용돌이는 가로지른 범의 눈 같은데 / 盤渦虎眼橫
한가하여라 저 고기잡이하는 배는 / 悠哉彼漁艇
그물 치고서 깊은 물에 떠 있네그려 / 施罟汎澄泓

앙덕 마을은 국내가 조그마한데 / 仰德村容小
어부의 집이 물 마주해 환하여라 / 漁家對水明
이곳 지명이 널리 알려진 것은 / 地名轟萬口
이완평이 은거했기 때문이라오 / 曾臥李完平

산수가 서남쪽으로 아름다운데 / 林壑西南美
서글프게 녹문을 마주하노니 / 怊怊對鹿門
오히려 취송의 시구가 생각나서 / 猶思醉松句
한 구원을 경영하고 싶네그려 / 經濟一丘園

해가 지매 별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 日沒星生角
바람이 자니 물은 모서리가 펴지네 / 風微水展稜
노 젓는 소리는 밤에도 멎지 않고 / 艫聲宵未已
깊은 물결을 헤치고 지나가누나 / 穿過一泓澄

구미포의 전선 저장했던 곳에는 / 龜尾藏船處
임진란 때의 수군영이 높직한데 / 壬辰水砦高
시험 삼아 강가의 노인에게 물어보니 / 試逢江叟語
원호란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네 / 無復識元豪

밤에 물가의 말뚝에 배를 매노니 / 沙碕夜繫杙
산집엔 개 짖는 소리 그윽하여라 / 山屋犬聲幽
시험삼아 다스운 와상에 누우니 / 試就煖床臥
흔들흔들하는 게 마치 배와 같구려 / 搖搖猶似舟

물가의 새벽에 강바람 일어나니 / 渚曉水風起
배의 창문이 가을처럼 썰렁하여라 / 船窓冷似秋
그래서 본디 배 타고 노는 이들은 / 由來萍泛者
한여름에도 솜옷을 준비한다오 / 朱夏蓄棉裘

작은 상자에는 고추장이 있고 / 小盒茄椒醬
여행길 주방엔 장작불 연기로세 / 行廚榾柮煙
인간에 가장 좋은 고량진미가 / 人間梁肉味
모두 이 강에 뜬 배에 있구려 / 都只在江船

괴나무 그늘 밑은 다 술집이요 / 蔭槐皆酒店
버들 뒤쪽은 필시 서재일 텐데 / 隱柳必書齋
맑은 강빛이 있음을 힘입어 / 賴有淸江色
마을 터가 어디나 다 아름답구려 / 村墟無不佳

우뚝이 선 부래산 한 점이 / 浮來山一點
이공 사당을 비스듬히 마주했어라 / 斜對李公祠
격렬하게 중을 배척했던 필법이 / 激烈誅僧筆
천추에 그 기운 쇠하지 않누나 / 千秋氣不衰

물가가 따스하니 모래 바닥 현란하고 / 汀暄沙氣亂
둑이 넓으니 풀 위의 바람 가벼워라 / 隄衍草風輕
놓아 먹이는 말은 뉘 집의 말인고 / 放牧誰家馬
쓸쓸히 나그네를 향해서 우는구나 / 蕭蕭向客鳴

그늘진 골짝은 연기 안개를 머금고 / 陰洞含煙霧
정자와 대사는 흰 물가를 차지했네 / 亭臺綰白厓
그대는 택리지를 보았던가 / 君看擇里志
사는 도리를 가장 아름답게 말했지 / 生理最稱佳

물 북쪽에 자리잡은 파사보는 / 水北婆娑堡
당시에 가장 강대한 웅진이었는데 / 當時控禦雄
왜적들이 돌아가 버린 이후로는 / 自從倭寇返
다시 엄공을 기억하는 이 없구려 / 無復記嚴公

백사장을 돌아서 또 한 마을엔 / 沙廻又一村
나무 끝에서 사람 소리 나는데 / 木末生人語
먼 포구가 편평한 호수 같아서 / 浦遠似平湖
배가 갈 곳이 없는 듯하구려 / 疑無船去處

산천 경계가 선릉에 가까워지니 / 氣色仙陵近
무성히도 초목들이 살찌었어라 / 蓊然草木肥
부드러운 버들 잎새 깊은 곳에서 / 嫩黃深葉裏
가장 먼저 누런 꾀꼬리가 나누나 / 先有栗留飛

새파랗게 우거진 팔대수에는 / 蔥蒨八大藪
진흙 버섯이 물풀과 섞이었는데 / 泥茸雜水芽
깊은 봄에는 마를 제공하고요 / 春深供薯蕷
가을이 되면 갈대를 채취한다오 / 秋至採蒹葭

명도가 가까이 있는 줄을 알괘라 / 知有名都近
기녀 실은 배 강에 떠 있네그려 / 江浮載妓船
배에 가득한 경박한 무리들은 / 滿船輕薄子
뾰족한 상투에 삼현금을 퉁기누나 / 尖髻擊三絃

색채 화려한 저 황려 고을은 / 縟麗黃驪郡
긴 장대 일자로 가로지른 듯한데 / 長干一字橫
단청한 누각이 푸른 물 임해 있으니 / 朱樓面綠水
경기 내에서 이 관직이 청관이구려 / 畿內此官淸

우림 위는 게 잡는 불을 설치하고 / 羽林張蟹火
기병들은 고기잡이 배를 거느렸네 / 騎士領漁船
어가 멈추던 일 역력하기도 해라 / 歷歷停鑾事
잠깐 사이에 사십 년이 지났네그려 / 回頭四十年

강 서쪽에 자리잡은 청학동은 / 江西靑鶴洞
깊고 그윽함이 또한 명원이거늘 / 窈窕亦名園
애석한 것은 경과하는 곳마다 / 可惜經過地
모두 여관처럼 옮겨 가는 거로세 / 都如逆旅傳

신륵사는 다시 수리한 사찰로 / 神勒重修刹
동대의 탑이 완연히 서 있는데 / 東臺塔宛然
지금도 굶어 죽은 귀신이 있어 / 至今飢死鬼
밥 먹는 어선을 보고 우는구나 / 猶泣飯魚船

동대에서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면 / 東臺復東轉
가파른 절벽이 깊은 못을 둘렀는데 / 陗壁列幽潭
저도 모르게 젓던 노를 멈추어라 / 不覺停搖櫓
뱃사공이 여기 와서 어리석어지누나 / 艄工到此憨

자색 청색 비둘기가 서로 연달아 / 紫鴿連靑鴿
돌 틈 주위를 어지러이 날아라 / 紛飛石罅邊
높은 둥지가 침해를 피할 수 있어 / 危巢能遠害
부여잡을 길을 영원히 끊어 버렸네 / 終古絶攀緣

붉은 절벽엔 놀의 표지가 높다랗고 / 赤石霞標峻
넓은 강엔 맑은 물이 깊기도 한데 / 滄浪鏡水深
이미 신령한 말의 자취는 없으니 / 已無神馬迹
숨은 용이나 신음하고 있을는지 / 疑有蟄龍吟

때론 백사장가의 닻줄에 배를 매고 / 時繫依沙纜
자주 여울 내려가는 배를 만나기도 / 頻逢下瀨船
지휘는 한 늙은 사공을 따르는데 / 指揮須一老
배 꽁무니에 홀로 우뚝 서 있네 / 船尾立軒然

잠깐 양화진 넓은 물결을 지나 / 稍過楊花蕩
멀리 대추나무 물굽이를 돌아라 / 遙循棗木灣
매양 멋대로 노닐고 난 뒤에는 / 每當游衍後
때로 다시 험난한 곳을 만난다오 / 時復作崎艱

갈매기 한 쌍은 평화로이 서 있고 / 恬雅雙鷗立
한 꿩은 숨바꼭질하며 우는데 / 迷藏一雉鳴
먹이 구하는 뜻을 잊지 못한 건 / 未忘求食志
도시 자웅의 정에 매인 거로세 / 都係合歡情

넘실거리는 저 동천의 물은 / 瀰漫東川水
동으로 흐르는 게 문득 기이하여라 / 東流事却奇
살구꽃 핀 주점을 지날 때마다 / 每過紅杏店
길이 계연의 시가 생각나는구려 / 長憶季淵詩

언덕의 연기는 어둔 빛을 띠었고 / 墟煙帶暝色
높은 버들은 삼 층 위에 솟았는데 / 高柳聳三層
다시 배 잡아매는 저녁을 만나 / 復値維舟夕
이웃 배의 고기 구럭이 부럽구려 / 隣舟羨載罾

달 나오자 고기들 마구 뛰어오르니 / 月出衆魚沸
금빛 물결 수없이 반짝이어라 / 金粼萬片熒
강가에 임해 있는 작은 모점이 / 臨江小茅店
평양의 연광정에 내리지 않겠네 / 不讓練光亭

수사는 서울의 풍을 들여와서 / 水榭移京樣
높은 대문에 두 곁채가 널찍한데 / 高門翼兩廊
강천의 옛 주인 간 곳을 물으니 / 罡川問舊主
산 아래 작은 띳집이라 하누나 / 山下小茅堂

뱃길은 사탕수수 씹기와 같아서 / 船行似噉蔗
깊이 들수록 맛이 더욱 좋아라 / 深入味彌佳
섬포의 어귀를 경유하지 않고서 / 不經蟾浦口
어떻게 이 붉은 절벽을 얻을쏜가 / 何得此丹厓

하늘이 이 절벽을 만들던 날에 / 天造石壁日
누구를 시켜 도끼 자귀를 썼던고 / 敎誰用斧斤
다만 조각이 워낙 질박한 때문에 / 只緣雕大朴
수시로 놀란 물결을 일으키누나 / 時復作驚紋

돌 틈에 섰는 한 그루 소나무는 / 石罅一拳松
뿌리를 어이 그리 구차하게 의탁했나 / 託根何太苟
공연히 만 길 높은 마음만 품은 채 / 空懷萬丈心
이미 천 년의 수를 누렸네그려 / 已享天齡壽

노 멈추고 맑은 계곡에 떠 있노니 / 停橈泛淸壑
먼데 생각에 가는 길을 중지하고파 / 意遠欲無行
누가 예우를 일으켜 이곳에 와서 / 誰起倪迂至
호묘의 풍류를 한번 듣게 해 줄꼬 / 一聞湖泖情

홍원포에 있는 옛 창고 건물은 / 古廥興元浦
가로지른 서까래 일자로 연했어라 / 橫橑一字連
봄철 조운을 이미 다 마쳤는데도 / 春漕已調了
또 호탄전을 강요하여 받아 내누나 / 猶索護灘錢

물굽이는 폭을 연한 장막 같고 / 水曲連顋帳
바위 밑은 다리 잘린 솥 같아라 / 巖根折脚鐺
비록 낙생과 함께 읊는다 해도 / 洛生雖共詠
역시 끝내 시의 명성은 적으리라 / 終亦少詩名

청명하던 때 작은 초가집 다락엔 / 淸時小草閣
일찍이 한림 학사가 앉았었는데 / 曾坐玉堂仙
시의 명성 높은 건 차치하고서 / 且置詩名重
견고한 바른 지조를 보아야 하리 / 須看雅操堅

골이 후미지니 새벽 산이 멀찍하고 / 洞僻曉山遠
강이 편평하니 봄물이 하 많아라 / 江平春水多
옛날엔 말 타고 여기를 들어왔는데 / 昔年騎馬入
오늘은 배를 타고 지나네그려 / 今日汎舟過

명릉 시대의 선비들 중에는 / 儒者明陵世
우담이 가장 훌륭했음을 알겠구려 / 愚潭覺最賢
그릇된 예론을 따르지 아니하고 / 不因論禮誤
제주로 가는 배를 선뜻 전송하였네 / 輕送濟州船

골짝이 험하니 여울 더욱 급하고 / 峽險灘愈駛
시내가 넓으니 돌다리 또한 긴데 / 溪通磴更長
백사장 머리 조그마한 모점에만 / 沙頭小茅店
석양빛이 유독 비치는구려 / 偏獨映斜陽

몹시도 급한 돈어 여울에서는 / 急急豚魚瀨
바가지로 물 푸는 소리가 나는데 / 葫蘆吐水聲
역참 배는 대숲처럼 빽빽이 떠 있고 / 站船叢似竹
사당 아래서는 희생을 잡는구려 / 祠下宰犧牲

세 갈래로 흩어진 물 삼묘호 같은데 / 沱散疑三泖
물굽이 돌아가니 또 한 물굽이로세 / 碕廻又一灣
푸른 장미산이 멀리 솟아 있으니 / 薔薇靑遠出
알건대 이것이 예주의 산이로다 / 知是蕊州山

높고 널찍한 저 삼연옥이여 / 庨豁三椽屋
아직도 허씨의 별장이 남았는데 / 猶殘許氏莊
누가 어여삐 여기랴, 은거하던 날 / 誰憐凭几日
가을 물에 배 타고 노니던 일을 / 秋水駕輕航

백회칠한 담장은 띠처럼 둘러 있고 / 粉白牆如帶
감청색 기와는 용마루에 보이는데 / 紺靑屋見甍
막희라는 이름의 여울이 있어 / 有灘名莫喜
이곳을 향해 가기가 어렵구려 / 難向此中行

수양버들 늘어진 두 갈래 내 어귀에 / 垂柳雙汊口
훌륭한 동산이 목계를 가로질렀네 / 名園枕鶩溪
옛 친구 중에는 그 누가 남아 있어 / 舊人誰得在
노쇠한 백발로 암석 사이에 사는고 / 衰髮石間棲

우륵이 신선놀이 하던 곳에는 / 于勒仙游處
탄금대의 온 국내가 푸르러라 / 琴臺一抹靑
알건대 분암이 멀지 않은지라 / 墳菴知不遠
사휴정이 나는 듯이 나타나누나 / 飛出四休亭

[주D-001]미로(米老)는 …… 무거웠고 : 미로는 송(宋) 나라 때의 서화가인 미불(米芾)을 말하는데, 그는 특히 고서화(古書畫)를 매우 좋아하여 고서화를 대단히 많이 수집하였으므로, 그를 미가서화선(米家書畫船)이라고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이재(彝齋) : 송 나라 말기의 은사(隱士) 조맹견(趙孟堅)의 호. 그는 송 나라 말기에 한림 학사 승지(翰林學士承旨)를 지냈고, 서화와 시문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지절(志節)이 높기로 유명하였다.
[주D-003]손목(孫穆) :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4]광릉(光陵) : 조선의 세조 대왕을 이름. 광릉은 그의 능호이다.
[주D-005]등공(滕公)을 …… 지내며 : 등공은 한 고조(漢高祖)의 명신인 하후영(夏侯嬰)의 봉호. 등공이 일찍이 말을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을 때 말이 가지 않고 발로 땅을 허비적거리므로, 그곳을 파 본 결과 석곽(石椁) 하나가 나오자, 이를 깨끗이 씻어서 보니, “답답하던 가성(佳城 묘지를 뜻함)이 삼천 년 만에 태양을 보았도다. 아, 등공이 이곳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등공의 유명(遺命)에 의해서 등공이 죽은 뒤에 그곳에 장사지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6]이완평(李完平) : 조선 중기의 명상(名相)으로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진 이원익(李元翼)을 가리킨다.
[주D-007]취송(醉松)의 시구 : 송(宋) 나라 소식(蘇軾)이 서 사군(徐使君)과 함께 금당하(金堂河)에 배를 띄우고 노닐면서 장난삼아 지은 시에 “취하여 소나무 밑 바위에 누웠다가 서로 붙들고 강가의 나루로 돌아가네.[醉臥松下石 扶歸江上津]”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44》
[주D-008]원호(元豪) :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일찍이 경원 부사(慶源府使)로 있을 때는 니탕개(尼湯介)의 침입을 격퇴시켰고, 또 이어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강원도 조방장(助防將)으로 의병을 규합하여 여주의 신륵사(神勒寺)에서 적병을 크게 무찌르고, 이어 패주하는 왜적들을 구미포(龜尾浦)에서 섬멸했었다.
[주D-009]이공(李公) : 고려 말기에 척불론(斥佛論)을 가장 강경하게 제창했던 이색(李穡)을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10]엄공(嚴公) : 조선 선조(宣祖) 25년에 승장(僧將) 의엄(義嚴)이 여주(驪州)의 서북쪽에 위치한 파사성(婆娑城)을 대대적으로 수축(修築)한 일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바로 그 승장 의엄을 가리킨 듯하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7》
[주D-011]선릉(仙陵) : 여기서는 바로 여주에 있는 세종 대왕(世宗大王)의 능(陵)을 가리킨다.
[주D-012]팔대수(八大藪) : 여주 북쪽에 위치한 늪으로, 옛 이름은 패다수(貝多藪)였다고 한다.
[주D-013]붉은 …… 높다랗고 : 진(晉) 나라 때의 문장가인 손작(孫綽)의 〈유천태산(遊天台山)〉 부에 “적성산엔 놀이 일어나 표지를 세웠다.[赤城霞起而建標]”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4]계연(季淵) :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15]예우(倪迂)를 …… 줄꼬 : 예우는 원(元) 나라 때의 문인화가인 예찬(倪瓚)의 호이고, 호묘(湖泖)는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삼묘호(三泖湖)를 가리킨 것으로, 예찬이 평소에 삼묘호를 왕래하면서 풍류를 즐겼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16]낙생(洛生) : 낙하서생(洛下書生)의 준말인데, 동진(東晉) 때의 명사들이 옛날 낙하서생이 음영(吟詠)하던 성조(聲調)를 매우 좋아하여 따라 지었다 한다.
[주D-017]명릉(明陵) : 조선 숙종(肅宗)을 이름. 명릉은 그의 능호.
[주D-018]우담(愚潭) : 정시한(丁時翰)의 호. 정시한은 일찍이 원주(原州)에 은거하다가 숙종 때에 천거를 받아 진선(進善)이 되었는데, 그는 남인(南人)에 속했음에도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폐위된 인현왕후(仁顯王后 숙종의 계비 민씨)를 복위시킬 것을 상소로 극력 진술한 바 있다.
[주D-019]제주(濟州)로 가는 배 : 숙종 15년이 1689년 기사환국 때 서인(西人)의 영수인 송시열(宋時烈)이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남인들의 거센 배척을 받고 실각되어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던 사실에 관한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20]허씨(許氏)의 별장 : 허씨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21]우륵(于勒)이 …… 푸르러라 : 우륵은 가야금(伽倻琴)을 맨 처음 만들어 낸 신라 때의 악사(樂師)로 지금의 충주(忠州)에 살았는데, 지금 충주에 있는 탄금대(彈琴臺)와 금휴포(琴休浦)는 바로 그가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한다.
[주D-022]분암(墳菴) : 분묘(墳墓)를 수호하는 자의 암실(菴室)을 이름.


9. 어버이 묘에 오르다[上墓]

나는 기를 늦게 받아 났기에 / 我生受氣晩
아버지가 내 막내라 하시었는데 / 父曰嗟余季
언뜻 삼십 년을 지나는 동안에 / 忽忽三十年
한 번도 뜻을 기쁘게 못 해 드렸네 / 未或愉其志
무덤 속이 비록 어둡고 아득하지만 / 窀穸雖冥漠
옛사람은 여묘살이를 하였다오 / 昔人猶廬侍
멀리 생각건대 신유년 봄에는 / 尙憶辛酉春
통곡하며 묘소를 하직하고서 / 痛哭辭靈隧
말도 먹이지 못한 채 떠나면서 / 未暇秣馬行
금부의 관리에게 핍박당하였네 / 逼迫禁府吏
이후로는 영해 밖으로 떠돌면서 / 漂流嶺海外
구 년 동안에 겨우 두 번을 왔네 / 九載於焉二
봉분 앞에 서 있는 한 쌍의 나무는 / 墳前一雙樹
가지 잎새가 예전처럼 푸르른데 / 柯葉依然翠
인생은 도리어 너만도 못하여 / 人生不如汝
버림받는 게 어이 그리도 쉬운고 / 棄捐何容易

[주D-001]신유년 …… 하직하고서 : 조선 순조(純祖) 1년인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정약용이 서학(西學) 관계로 탄핵을 받고 유배되어 간 일을 말하는데, 이때 그는 처음 장기(長鬐)로 유배되었다가 이어 강진(康津)으로 이배(移配)되었었다.


10. 윤사월 십이일에 이약암과 함께 문암장에 가 노닐면서 배 안에서 짓다[閏四月十二日同李約菴游門巖莊舟中作]

꿈속에서도 문암장을 생각해 온 지가 / 夢想門巖墅
이제까지 사십 년이 되었는데 / 如今四十年
산 속에 은거하는 건 못 이루고 / 不成山裏臥
도리어 바다 남쪽에 귀양을 와서 / 轉作海南遷
백발과는 함께 은거하기를 꾀하고 / 白髮謀偕隱
좁쌀 심자고 메마른 땅 찾았네 / 黃粱問薄田
애석히도 남은 서책을 다 못 읽어 / 殘經惜未了
영원히 은거할 마음 불현듯하여라 / 長逞意飄然

박식하고 고상 담박한 문산자는 / 博雅文山子
비밀한 기약이 청산에 있는지라 / 幽期在碧山
띳집 짓고서 몸소 농사지어 먹고 / 結茅思食力
노 저으며 때로 한가함을 즐기네 / 蕩槳樂偸閒
예악은 마음에 두지 않거니와 / 禮樂休牽戀
산수는 얼굴을 향하기에 합당해라 / 煙霞合駐顔
이 길이 원래 자유자적함이니 / 此行元自適
백구 같은 흰 물굽이에서 묵으리 / 且宿白鷗灣

여기 녹효의 물을 사랑하여 / 愛此綠驍水
서쪽으로 우수의 강을 지나니 / 西過牛首江
푸른 전원은 막 흥을 일으키고 / 蕪園方引興
깊은 골짝엔 마침 손이 찾아왔네 / 深峽會聞跫
시구 수창하며 퇴고를 자주 하고 / 酬句敲推數
책을 펴 드니 안경이 한 쌍이로세 / 攤書靉靆雙
즐거워라 오늘 밤 저 달빛은 / 愉哉今夜月
응당 은사의 창문을 비추겠지 / 應照碧蘿窓

수종산 산빛을 배 뜸 걷고 바라보나니 / 水鐘山色揭篷看
십 리 맑은 물결이 푸른 봉우리에 비추네 / 十里淸漪照碧巒
잡목들은 마을을 가리어 문호에 비추고 / 雜樹蔭村猶映戶
실바람은 장막을 불어 여울 지나기 좋아라 / 細風吹幔利經湍
돌더렁밭 눈에 보이자 마음 먼저 취하고 / 石田入眼心先醉
세상길에 머리 돌리니 이빨이 시려 하네 / 世路回頭齒欲酸
지난밤에 이미 해은곡을 노래하였기에 / 前夜已歌偕隱曲
수척한 아내는 다시 의관을 짓지 않누나 / 瘦妻不復製衣冠

[주D-001]문산자(文山子) : 문산은 이재의(李載毅)의 호. 그는 학문에만 전념하여 특히 《주역(周易)》을 전공하였고, 시문(詩文)에도 능했다 한다.
[주D-002]녹효(綠驍) : 강원도 홍천(洪川)의 고호.
[주D-003]우수(牛首) : 강원도 춘천(春川)의 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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