需卦

2020. 10. 21. 14:07나의 이야기

<수괘(需卦>의 사례는?

▷ 기다림
기다림을 구성하는 요소는 네 가지이다. 시간(Time), 공간(Location), 심리상태(Mind), 상황에 대한 판단(Situation)이다. 작고한 가수 김광석은 ‘기다려줘’라는 애절한 노래에서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호소했다. 참으로 이기적인 부탁이지만 김광석의 애절한 목소리로 들으니 기다려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라는 단서는 기다림에 대한 시간적 조건이다. 수괘에서는 교외, 모래사장, 뻘, 구멍이라는 기다리는 장소가 나온다. 또 피눈물을 흘리거나 술과 음식을 먹으며 느긋하게 기다린다는 심리상태도 포함되어 있으며 각각의 경우 길흉의 판단은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둔괘, 몽괘, 수괘는 모두 기본적으로 서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단계에서 서둘러 일을 추진하다가는 실패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 세 개의 괘에 해당하는 기다림은 성질이 다르다. 둔괘는 천지창조 이후에 활동의 첫 단계이므로 혼돈의 내부에 잠복되어 있는 상태이다. 강보에 누운 신생아 정도이다. 몽괘는 온전한 형태를 갖추었으나 어리고 유약하여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는 단계이다. 걸음마를 시작하고 겨우 말을 익힌 정도의 유치원생 정도이다. 수괘는 사회진출을 앞둔 청년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자신의 실력과 현실을 가늠하며 진출의 시기를 결정해야한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여부는 이러한 노력과 합리적인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능력 있는 사람 99명이 재수 좋은 놈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는 말을 비웃었던 필자도 중년을 넘기면서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운세가 닿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마라톤을 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만사분기정(萬事分己定)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이라는 시가 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미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은 공연히 스스로 분주하기만하다'는 뜻이다. 이 시를 숙명과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분수를 아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지혜이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목표만 크게 세웠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미치지 못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공연히 분주하게 설치면 헛수고만 하게 된다.

《삼국지연의》의 최고 스타 제갈량은 궁경우남양(躬耕于南陽)할 때 문설주에는 담박이명지(淡泊以明志), 영정이치원(寧靜以致遠)라는 대련을 걸어놓고 천하의 형세를 담담하게 관찰하면서 지냈다. 신라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이름은 제갈량의 문설주에 있던 대련에서 따왔다. 제갈량처럼 세상을 담백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최치원은 현실에 참여하지 못했다. 시대와 환경이 달랐던 것이다. 제갈량은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은 시에 담았다.

초당춘수족(草堂春睡足), 창외일지지(窓外日遲遲).
대몽수선각(大夢誰先覺), 평생아자지(平生我自知)
초당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창문 밖에는 아직도 햇살이 남아 있네.
큰 꿈은 누가 먼저 알겠는가?
내 평생의 꿈은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는 천하를 경영할 꿈과 능력을 가졌지만 낮잠을 자면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출사표(出師表)》에서 베옷을 입고 스스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구차스럽게 제후들의 문전을 들락거리지 않았다는 심정은 그가 남긴 이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구오의 효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느긋하게 기회를 기다라는 것과 같다.

나폴레옹과의 결전을 앞둔 영국의 명장 웰링턴에 이르면 기다림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참모들과의 작전회의를 마친 웰링턴은 부관에게 공격개시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다. 부관이 5분 남았다고 하자 그는 5분 후에 깨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야전용 침대에 누워서 코를 골았다. 그의 여유를 보고 부관은 승리를 직감했다고 한다.

성공이 눈앞에 있다는 확신이 들면 사람은 누구나 경거망동한다. 2002년 대선을 목전에 둔 이회창과 한나라당이 그랬다. 그들은 99.9%의 승리를 예감하고 오만에 빠졌다. 맹수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진리를 몰랐던 것이다. 기다림이란 막연하게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상황을 분석하며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 격장지계로 영웅들을 가지고 놀았던 제갈공명(諸葛孔明)

 

사람들이 즐겨 읽는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위의 왕랑(王朗)을 꾸짖어서 죽게 하였으며, 오의 주유(周瑜)는 울화가 치밀어서 죽게 했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북벌에 나선 제갈량은 천수관(天水關)에서 지략을 사용하여 강유(姜維)를 얻은 다음 기산(祁山)을 출발하여 위수(渭水)까지 진격하였다.

그 소식에 크게 놀란 위주(魏主) 조예(曹睿)는 사도(司徒) 왕랑을 파견하여 제갈량과 대진을 하도록 명했다. 위수에서 왕랑과 마주친 제갈량은 왕랑이 역사에 대죄를 지었다는 점을 들어 크게 꾸짖었다. 양심에 자극을 받은 왕랑은 울화가 가슴에 맺혀서 큰 소리를 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후세의 시인은 이를 소재로 시를 지어 이렇게 말했다.

兵馬出西秦(병마출서진) 雄才敵萬人(웅재적만인)
輕搖三寸舌(경요삼촌설) 罵死老奸臣(매사노간신)
군사를 이끌고 서진으로 나아가니, 영웅의 재략은 만인의 적을 상대하네.
세치 혀를 가볍게 놀려, 늙은 간신을 꾸짖어 죽였구나!

문무를 겸비했던 동오의 도독 주유는 적벽대전의 결과 욕심을 내고 있던 형주(荊州)를 유비에게 내주고 말았다. 재주는 동오가 부리고 돈은 유비가 챙긴 꼴이었다. 배가 아팠던 그는 유비를 없애고 형주를 탈환할 계책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계책을 간파한 제갈량은 질료한 전술로 동오의 공격을 물리쳤다. 화가 난 주유는 몇 차례나 더 군사를 일으켰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한 주유는 금창(金瘡)이 터지고 입으로 피를 품으면서 죽고 말았다.

왕랑과 주유는 스스로 울화를 견디지 못하고 격노하여 죽고 말았다. 스스로 노기를 억누르고 다시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면 오히려 제갈량이 화가 나서 죽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분노는 기다림과 상극이다.

▷ 건강지침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다는 뜻이다. 노기(怒氣)가 발동하면 극도로 정서(情緖)가 불안해지며, 교감신경(交感神經)이 고도로 흥분하여 신상선(腎上線)에 분비물이 증가한다. 그렇게 되면 심장이 더욱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혈압이 올라간다. 동시에 소화기관에 영향을 주어 위궤양, 고혈압, 신경쇠약, 월경불순 등의 질병이 발생한다.

따라서 노기는 건강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이다. 수괘가 우리에게 주지하는 것은 스스로를 자제하여 참고 견디는 것이 건강의 보증수표라는 점이다. ‘수, 유부, 광형, 정길’이란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참고 견딜 수가 있는가?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이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극을 다른 쪽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좋지 못한 자극을 받게 될 경우는 가능하면 좋은 자극을 받게 될 수 있는 다른 환경으로 옮겨가는 것이 옳다. 수괘에서 수우주식(需于酒食)이라 한 것처럼 즐거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평안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치는 것도 자극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좋은 방법이다.

둘째는 스스로 반성하고 자문자답을 하는 방법이다. “내가 화를 내어서 무슨 덕이 있는가? 참아라! 몸조심하자!”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셋째는 자극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열거해 보는 방법이다. 연필로 내가 자극을 받게 된 원인을 나열해 보고, 이런 정도로 내가 꼭 화를 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를 분석해보면 화를 내다가도 저절로 가라앉는다.

청말의 대학사 염경명(閻敬銘)은 ‘화를 내지 말아야지(不氣歌)’라는 노래 한 편을 지어 화가 날 때마다 천천히 암송을 했다고 한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이 골을 지르더라도 나는 화를 내지 말아야지
그 사람이 골을 지르는 것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나?
화를 내면 그 사람의 꼬임에 넘어가는 거야!
그러다가 병이 들면 누가 책임을 지나?
의사 불러서 고치려고 해도
그 병이 쉽게 낫겠나?
화를 내다가 다치면 나만 손해야.
진짜 겁나지, 화를 내다가 죽는다는 건.
나는 지금 화를 맛나게 먹어버렸다!
화내지마! 화내지마! 진짜 화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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