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8. 10:49ㆍ世說新語
[정민의 世說新語] (441) 남방지강(南方之强)
스물네 살 나던 늦가을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과거 시험공부에 얽매여 경전 읽기를 게을리한 것을 반성하면서 '중용'을 펼쳤다. 9월 9일부터 시작해 11월 1일까지 날마다 '관독일기(觀讀日記)'를 썼다. 그날 읽은 '중용'의 해당 부분과 읽은 횟수, 그리고 소감을 적어 나갔다.
9월 23일자 '관독일기'에서 그는 독서를 약(藥)에다 비유했다.
"중용이란 것은 원기가 충실하고 혈맥이 잘 통해, 손발이 잘 움직이고 귀와 눈이 총명해서 애초에 아무런 통증이 없는 종류이다. 중용을 잘하지 못하는 자는 처음에는 성대하고 씩씩하지 않음이 없으나 지니고 있던 병의 뿌리가 점차 번성하여 온갖 질병이 얽혀드니 만약 때에 맞게 조치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죽음의 지경에 이르고 만다."
이 글은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굳셈에 대해 묻는 '중용'의 한 대목을 읽고 썼다. 자로가 묻는다.
"선생님! 진정한 강함은 어떤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남방의 강함을 말하느냐, 북방의 강함을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너의 강함을 말하느냐? 관대함과 온유함으로 가르치고, 무도한 자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이 남방의 강함이다. 군자는 이렇게 한다. 창칼과 갑옷을 두른 채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북방의 강함이다. 강한 자가 이렇게 한다.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
衽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
진정한 강함은 남방의 강함에 있다는 말이다. 이를 이어 공자는 군자의 강함이 품은 네 가지 덕을 말했다. 먼저 '화이불류(和而不流)'와 '중립불의(中立不倚)'다. 화합하여 품되 한통속이 되지 않는다. 중간에 우뚝 서서 어느 한쪽만 편들지 않는다.
다시 두 가지가 더 있다. 나라에 법도가 있으면 빈천할 때의 지조를 변하지 않고(國有道不變塞), 나라에 법도가 없어도 죽을지언정 뜻을 바꾸지 않는다(國無道至死不變). 이것이 공자가 생각한 진정한 강함이다.
이덕무는 그해 연말에 쓴 '갑신제석기(甲申除夕記)'에서 자신이 '관독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바로 '중용'의 이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중용장구 제10장>
子路問强(자로문강)한대 : 자로가 강함을 물으니
子曰南方之强與(자왈남방지강여)아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방의 강함인가
北方之强與(북방지강여)아 : 북방의 강함인가
抑而强與(억이강여)아 : 그렇지 않으면 너의 강함인가
寬柔以敎(관유이교)요 : 너그럽고 부드럽고움으로써 가르치고
不報無道(불보무도)는 : 무도함에 보복하지 않는 것은
南方之强也(남방지강야)니 : 남방의 강함이니
君子居之(군자거지)니라 : 군자가 그렇게 산다.
衽金革(임금혁)하여 : 무기와 갑옷을 깔고
死而不厭(사이불염)은 : 죽어도 싫어하지 않는 것은
北方之强也(북방지강야)니 : 북방의 강함이니
而强者居之(이강자거지)니라 : 강폭한 자가 그렇게 산다.
故(고)로 : 그러므로
君子(군자)는 : 군자는
和而不流(화이불류)하나니 : 친화하되 흐르지 아니하니
强哉矯(강재교)여 : 강하도다 그 꿋꿋함이
中立而不倚(중립이불의)하나니 : 중에 서서 기울어지지 아니하니
强哉矯(강재교)여 : 강하도다, 꿋꿋함이
國有道(국유도)에 : 나라에 도가 있으면
不變塞焉(불변새언)하나니 : 옹색함도 변하지 아니하니
强哉矯(강재교)여 : 강하도다, 그 꿋꿋함이
國無道(국무도)에 : 나라에 도가 없음에
至死不變(지사불변)하나니 : 죽게 되어도 변하지 아니하니
强哉矯(강재교)여 : 강하도다, 그 꿋꿋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