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0. 08:45ㆍ世說新語
[정민의 世說新語] (484) 지족보신 (知足保身)
나라의 곳간 옆에 사는 백성이 있었다. 그는 아무 하는 일 없이 평생을 백수로 살았다.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다 저녁때가 되면 어슬렁거리며 나가 밤중에 돌아왔다. 손에는 어김없이 다섯 되의 쌀이 들려 있었다. 어디서 난 쌀이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십 년을 흰 쌀밥 먹고 좋은 옷 입으며 온 식구가 잘 살았다. 막상 집안을 들여다보면 세간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늙어서 죽게 되었을 때 아들을 불렀다. "내 말을 잘 듣거라. 집 뒤 나라의 곳간 몇 번째 기둥 아래 집게손가락만 한 작은 구멍이 있다. 그 안쪽에는 쌀이 가득 쌓여 있다. 너는 손가락 굵기의 막대로 그 구멍을 후벼 파서 쌀을 하루 다섯 되만 꺼내 오너라. 더 가져오면 안 된다." 이 말을 남기고 백성은 세상을 떴다.
아들이 아버지의 분부대로 해서 이들은 전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차츰 갑갑증이 났다. 끌로 파서 구멍을 더 키웠다. 하루에 몇 말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이 없자 신이 나서 구멍을 더 키웠다. 결국 창고지기에게 발각되어 붙들려 죽었다. 권필(權韠·1569~1612)의 '창맹설(倉氓說)'에 나오는 얘기다.
권필은 이야기 끝에 이렇게 썼다. "구멍을 뚫는 것은 소인의 악행이다. 하지만 진실로 만족할 줄 알았다면 몸을 지킬 수 있었으니, 백성이 그러하다. 되나 말은 이익이 작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 아들의 경우가 그렇다. 하물며 군자이면서 족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하물며 천하의 큰 이익을 취하면서도 족함을 알지 못하는 자라면 어떻겠는가?"
창맹설(倉氓說) - 분수를 지킨 도둑
권필(權韠)
태창(太倉) 옆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날이 저물 무렵에 나갔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돌아 왔는데 언제나 쌀 닷 되를 가지고 왔다.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으므로 가족들도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간을 넉넉한 음식과 번드레한 옷으로 살았으나 집안을 살펴보면 언제나 비어 있었다.
氓有室于太倉之傍者。不廢著。不耕收。每夕出而夜歸。則必持五升米焉。問所從得。不告。雖其妻兒。莫覺也。如是者積數十年。其食粲如也。其衣華如也。而視其室則空如也。
어느 날 그가 병으로 앓아누웠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은밀히 아들을 불러놓고 일렀다.
“창고 몇 번째 기둥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구멍으로 손가락만한 나무를 넣어 후비면 쌀이 조금씩 흘러나올 것이다. 쌀을 하루에 닷 되씩만 꺼내오고 절대로 그 이상은 가져오지 마라.”
氓病且死。密詔其子曰。倉之第幾柱。有窽焉。其大客指。米之堆積于內者。咽塞而不能出。爾取木之如指者。納于窽中。迎而流之。日五升卽止。無取嬴焉。
아비가 죽자 아들은 아비가 일러 준대로 하여 예전과 같이 넉넉히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멍을 조금 크게 뚫고 하루에 서너 말씩을 가져왔다. 그러자 쌀이 없어지는 것을 안 창고지기한테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氓旣死。子嗣爲之。其衣食如氓時。旣而。恨窽小不可多取。鑿而巨之。日取數斗。猶不足。又鑿而巨之。倉吏覺其奸。拘而戮之。
아아, 생각해보면, 도둑질은 본래 나쁜 일이지만 그래도 만족할 줄 안다면 그 아비의 경우처럼 큰 화는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처럼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죽음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도둑질도 그러한데 더구나 군자가 만족할 줄 알 때 그 결과가 어떠하겠으며, 천하의 큰 이익을 얻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噫。穿窬。小人之惡行。苟能知足。亦可以保身氓是也。升斗。利之細者。苟不能知足。亦可以殺身。氓之子是也。況君子而知足者耶。況取天下之大利而不知足者耶。高靈申貿夫。爲余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