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12. 10:11ㆍ책과논문
朱書百選
정조 대왕이 주희(朱熹)의 편지 중에서 가장 요긴한 내용 100편을 뽑아 모은 책이다.
6권 3책. 활자본으로 정조가 친히 편집하여 1794년(정조 18) 내각(內閣)에서 간행하였다.
권1에 9편, 권2에 13편, 권3에 6편, 권4에 16편, 권5에 14편, 권6에 16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상연평이선생(上延平李先生)」은 스승 이동(李侗)에게 올린 것으로 변론이나 실증에서 의리설(義理說)이야말로 유자(儒者)가 분명히 알아야 할 과제로, 편자의 의도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여진시랑(與陳侍郎)」은 시정(時政)의 득실에 관하여 논한 글로 정책상 부조리의 원천적 봉쇄와 행정상의 본말을 밝혀 인정(仁政)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여진승상(與陳丞相)」은 학문에 대한 미련 때문에 관직에 뜻이 없음을 밝히고, 의리에 대한 확신과 동심인성(動心忍性)의 기질적 변화가 있을 때에는 가르침을 받들겠다는 견해를 표명한 글이다.
이 冊에 선정된 書簡文은 다른 일반적인 서간문이라기보다는, 이 자체가 당시 宋學에 문제되는 人生問題에 대한 討論을 편지로써 交流하였던 것을 內容으로 하고 있다. 宋代 性理學의 理解를 크게 도울 수 있는 것으로서 編者인 正祖自身도 이에 主眼을 두어 뽑은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이 가운데서 당시 宋學이 程朱學 일색으로 풍미하던 때 이에 맞서 대항, 異論을 전개하였던 陸象山(1139·1192, 名 九淵, 字 子靜, 號 象山)과 往來된 書簡은, 象山이 <元來無窮人與天地萬物 皆在無窮之中者也>라 하고 <宇宙便是吾心 吾心卽是宇宙>라 하여 心卽理說의 立場을 基礎로 한 그의 學理 전개가 朱子의 과학적이고도 분석적 방법으로 사물의 理를 순서적으로 하나 하나 窮究하여 貫通하는 일관의 理를 漸悟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의 學理의 전개와 크게 그 입장의 차이를 지니고 있으니 이책에서의 <答陸子靜>에서도 그 片貌의 일면을 찾아 볼 수 있다.
정조실록 18년 갑인(1794,건륭 59)
12월25일 (무인)
주자의 서간문을 모은 《주서백선》이 완성되다
《주서백선(朱書百選)》이 완성되었다. 상이 동궁으로 있을 때부터 주자의 글 읽기를 좋아하여 《주자대전(朱子大典)》과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대해서는 손수 휘선(彙選)을 가하여 《선통(選通)》·《회선(會選)》·《회영(會英)》 등의 여러 책들을 만들었다. 이때에 이르러 주자의 편지들을 모아 《주서백선》을 만들었는데, 첫머리에 ‘이 연평 선생에게 올리는 글[上李延平書]’를 싣고 ‘황직경에게 주는 글[與黃直卿書]’을 말미에 실어서 도통(道統)의 전수를 보였다. 모두 4편으로 되어 있다. 각신 이만수(李晩秀), 전 승지 한만유(韓晩裕), 초계 문신 최광태(崔光泰), 호조 좌랑 이시원(李始源)에게 명하여 인명·지명·훈고·출처 등을 교감하게 하고 나서 본문 위에 적어놓았고 정유자(丁酉字)를 써서 창경궁의 구 홍문관 자리에서 인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을 감인소(監印所)라고 이름하였다.
후에는 주자소(鑄字所)라고 하여 모든 책의 편찬과 인쇄를 다 여기에서 하였다. 을묘년 이후에는 거처하시는 영춘헌(迎春軒)에 가까워 편리하다는 이유로 신하들을 인접할 때에 감인소를 경유하여 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이 완성되자 여러 신하들에게 반포하고, 또 호남·영남·관서의 감영에 명하여 번각(飜刻)하고 판본을 보관하게 하였다.
군서표기(羣書標記) 2 ○ 어정(御定)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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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처럼 높고 하해처럼 넓은 주자의 학문은 모두 문집(文集) 속에 들어 있고, 명주실이나 우모(牛毛)와 같이 매우 정밀한 주자의 문장은 서독(書牘)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미 《주자어류(朱子語類)》와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선집(選集)하여 《주자선통(朱子選統)》, 《주자회선(朱子會選)》, 《자양자회영(紫陽子會英)》 등의 책을 편찬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서독을 가져다가 축약하여 《주서백선(朱書百選)》을 만들었다. 이 책에서 연평(延平 이동(李侗))에게 올린 편지를 맨 앞에 둔 것은 사승(師承) 관계를 밝힌 것이고, 직경(直卿 황간(黃榦))에게 보낸 편지로 끝을 맺은 것은 학문의 전수를 보인 것이다. 그 밖의 인명, 지명 및 훈고(訓詁)의 출처(出處)에 대해서는 각항의 난외(欄外)에 간략히 두주(頭註)를 붙였다. 주자소(鑄字所)에 보내어 정유자로 인행하여 반포하게 하였고, 아울러 다시 호남, 영남, 관서의 감영에 명하여 번각(飜刻)하여 판목을 보관하도록 하였다.
인동 장달수 발췌
朱書百選目錄
卷之一
上延平李先生 侗
與陳侍郞 俊卿
與陳丞相
與陳丞相
與汪尙書 應辰
答汪尙書
答汪尙書 四
與汪尙書
答汪尙書
卷之二
答張敬夫 栻 三
答張欽夫
答張欽夫 二
答張欽夫 三
答張欽夫論仁說
答張欽夫
答韓尙書 元吉
答鄭自明 鑑
與袁寺丞 樞
與臺端
上宰相 王淮
答詹寺 儀之
卷之三
答陳同夫 亮 二
答陳同夫 六
與李誠夫 信甫
與留丞相 正 四
與趙尙書 汝愚
答張定叟 杓
卷之四
答呂伯恭 祖謙 四
答劉子澄 淸之
與劉子澄
與劉子澄
與劉子澄
答陸子靜 元淵
與慶國卓夫人
上黃端明 中
與王龜齡 十朋
與劉共夫 珙
與劉共夫
答鄭景望 伯然
答尤延之 袤
答朱益公 必大
答林定夫 湜
答柯國材 翰
卷之五
答許順之 丞 二
與魏應仲
答何叔京 鎬
答程允夫 洵
答胡廣仲 寔 三
答吳晦叔 翌
答李伯諫 宗忍
答林擇之 用中
答蔡季通 元定
答游誠之 九言
答楊子直 方
答廖子晦 德明 四
答李濱老 呂
卷之六
答呂道一
答潘叔昌 景愈
答呂子約 祖儉 二
答劉季章 黼
答諸葛誠之
答王季和 鉛
答路德章
答趙畿道 師淵
答葉正則 適
答楊志仁 復
答徐子融 昭然
答陳器之 埴
答汪叔耕 莘
答鞏仲之 豊 三
與胡南諸公論中和
答黃直卿 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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