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몽유도원도 14 - 정인지 (鄭麟趾) 편

2018. 5. 1. 11:08工夫

 
몽유도원도 14 -  정인지 (鄭麟趾) 편

 

정인지(鄭麟趾) : 태조 5년 ~ 성종 9년 (1396 - 1478)

자는 伯휴, 호는 學易齋, 본관은 河東,.

石城縣監 흥인의 아들로 태종 14년 (1414년) 式年文科에

급제하여 禮賓主簿. 司憲監察 등을 지내고, 세종조에

집현전학사로 등용되어 應敎, 直提學에 올랐다.

세종 9년 (1427) 文科重試에 급제하여 副提學. 侍講官 등을

역임하고, 세종 13년(1431) 鄭招와 함께 大統歷을 개정하여

[ 七政算內篇 ]을 편찬했다. 세종 18년 (1436) 父親喪으로

사직했다가 세종 21년 (1439) 형조참판으로 등용되었고,

이듬해 謝恩使로 明나라에 다녀왔다.

세종 24년(1442) 예문관 대제학으로 [ 絲綸要集 ]을 편찬하고

세종 27년에는 [ 治平要覽 ]을 편찬했다.

 

단종 1년 (1453) 癸酉靖難에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에

책록되고 河東府院君에 봉해졌고, 세조가 즉위하면서

佐翼功臣으로 영의정이 되었다.

세조 4년 (1458) 佛書의 간행을 반대하다가

扶餘에 付處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세조 11년(1465) 칠순의 나이로 궤장을 하사받고

예종 즉위년 (1468)에는

南怡의 獄事를 다스려 翼戴功臣이 되고,

성종 1년 (1470)에는 佐理功臣에 책록되었다.

 

김종서 등과 함께 [ 高麗史 ]를 찬수하고,

성삼문, 신숙주 등과 함께[訓民正音 ]

창제에도 공이 컸으며,

권제, 안지 등과 함께 [ 龍飛御天歌 ] 도 지었다.

 

시호는 文成이며 저서로 [ 學易齋集 }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작품해설]

멀리 바닷 가운데 신선들 산다는 봉래산과

영주가 있다고 일찌기 들어 왔건만

파도 거칠고 길 아득하여 마음으로만

못내 그리워 했었다네.

또한 저 하늘나라에는 진짜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건만

날아 오르는 수가 없어서 가 보지를 못하였다네.

오호라!  시끄러운 티끌 세상에 갇혀 답답한 이 몸,

빽빽하던 양쪽 귀밑머리 어느덧 해성하여졌구나.

도원 세상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여

어부 한번 다녀 온 뒤로 다시 찾을 길이 없네.

한창려 같은 달인도 의혹을 풀지 못하였거늘

떠들썩하기만 한 속인들이사 어찌 알 수 있으리오?

지체 놓으신 분 신묘하게도 기를 하나로 모으사

행함도 없고 마음도 거리낌도 없이 본성을 곱게 지니셨네.

놀을 먹거나 밤 이슬을 마실 필요도 없이

답답하고 누추한 티끌 세상을 훌쩍 뛰어 넘으셨네.

영혼이 동굴 문 안으로 훨훨 날아 들어가

복숭아나무 가득한 마을을 고루 유람하셨네.

산속 선비 또한 왕자진 같으신 분임을 알고

마음속에서 울어나는 말을 은근히 전하여 드렸다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구름 걷히고 햇살 퍼지니 마음 절로 한가롭고

흐르는 물, 푸른 산은 인간 세상이 아니로세.

돌아와서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가르키듯 하시니

그 풍경이 그대로 비단 폭 안에 담겼어라

그림 펴 보고 글 읽으니 정신이 그냥 통하여

이 내 몸이 그대로 도원에 있는 듯 하네.

어찌하면 속세의 얽매임을 벗어나

짚신과 지팡이로 평생을 신선세상에서 노닐 수 있으랴?

하동 정 인 지.

 

 

<참조> 

 봉영(蓬瀛) : 봉래(蓬萊)와 영주(瀛洲). 모두 三神山의 하나.

왕자진(王子晋) : 仙人  王子喬, 주령왕(周靈王)의 太子.

晋으로 道士 浮丘生을 만나 得仙하여

鶴을 타고 날아갔다고 함.

 

 

출처 : banyane
글쓴이 : banya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