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몽유도원도 10 - 송처관(宋處寬)

2018. 5. 1. 11:06工夫

 
 

몽유도원도 10 - 송처관(宋處寬)

 

 

송처관 (宋處寬) : 태종 10년 ~ 성종 8년(1410 ~ 1477)

 

자는 율보(栗甫), 곤관은 淸州, 세종 14년(1432년) 文科에

급제하여 世子右正字에 등용되었으며,

司憲監察, 成均直講, 司憲持平 등을 지냈다.

 

세종 29년 (1447)文科重試에 급제하여 禮曹正郞이 되고 ,

단종 2년(1454)에 集賢殿副提學이 되었으며,

全羅道觀察使. 禮曹參判을 거쳐 세조 10년(1464)에는

知中樞院事에 올랐다.

 

성종 4년(1473) 養母의 喪服을 백일 만에 벗은 죄로

告身을 박탈당했다가, 이듬해 職牒을 다시 받아

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그의 매형 柳誠源이 단종복위사건으로 죄을 받아

家産籍沒되자 그의 누이가 품을 팔고

구걸을 하게 되었으나, 처관이 넉넉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돌보지 않아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시호는 平煬이다.

 

[내용 설명]

내 본디 성미가 기벽하여 그윽하고 맑은 것 좋아하고

신선이 사는 곳 찾아가 마음 한번 씻기를 원하였다네.

진나라 현인들이 세상을 버리고 숨었던 일

생각도 해 보거니와, 진나라 어부가 시냇가를 따라

도원 찾아 들었던 것도 아득한 옛날의 일.

이를 두고 예로부터 시를 지어 읊조리며

공묘하고 화려함을 다투었고,단청으로 그림 그려

그 솜씨 정묘함을 자랑하는 사람도 많았다네.

나사 일상행동에서 신기 부리기가 어려움을

도리어 한스럽게 여겨오던 터,

그 신세 마치 매달린 쪽박에 이름만 있음과도 같았다네.

 

어느날 아침 문득 도원의 그림을 보니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물 위의 꽃 찾아가는 듯하네.

시냇물은 어부를 향초 풀밭으로 인도하고,

구름 쌓인 꽃길에서는 보랏 빛 놀이 피어 나네.

산중에서 봄이 가는지, 여름이 오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터에,

바깥 세상 한나라 시절인지 진나라 시절인지 어찌 알리오?

속세의 보통 사람들이사 와 볼 수도 없으려니와,

고아한 인품의 사람 맑은 꿈꾸는 일도 어려운 일,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 되었다는 일 그저 망탄스럽기만 하고,

사령운이 연못가의 봄풀 읊은 싯귀 따위

평할 만한 것도 못 된다네.

 


 

 

생각이 애당초 티끌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 터,

정신이 노닐음에 어떻게 신선 세계로 접어들 수 있으리오?

미쁠 손, 공자께선 티끌 한 점 없으시고,

영대처럼 담백하여 홀로 밝은 곳으로 나아가셨네.

오래도록 책을 벗하였어도 조금도 얽매이지 않았고,

언제나 매화, 대나무와 더불어 호연히 형체를 잊었네.

세상 밖의 고요한 태허의 경지에 노닐으시며,

하룻 밤, 꿈속에서 신선세계를 꿰뚫어 보셨다네.

색다른 경계를 한 폭의 비단 위에 옮겨 놓으시고,

신기한 종적을 붓 종횡으로 휘둘러 글로 써 내셨네.

그림 펼치니 마치 신선세계에 들어온 것 같고,

기사를 읽다보니 궁궐 안의 부귀영화 깡그리 다 잊겠네.

금시라도 영특한 삽살개가 반기며 짖고 나올 듯,

단정한 차림의 신선들이 바깥 세상 일  듣고 놀라기라도 할 듯,

나즉이 읊조리는 사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자리 얼마 옮기지도 않았는데 해가 벌써 바뀌는 곳,

태평스레 잇닿아 있는 집들은 지금의 화서나라요.

옷자락 따에 끌며 걷는 사람들은 모두가

별나라에서나 온 듯한 신선,

자고로 많은 사람 금마문 통하여 출세하기를 바랐고,

 


 


 


 

 

티끌세상 속된 일 하면서도 신선된 줄 알며 살아가는 세상.

안타까워라 몇 몇 사람 공자 모시고 노닐은 대열에,

나는 증점같은 기회 얻지도 못하였고,

팽조가 될 수도 없었다네.

청성 송처관.

 

 

 

 

출처 : banyane
글쓴이 : ban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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