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9. 10:07ㆍ알아두면 조은글
影閣上樑文
天地鍾純粹之氣 降眞儒於昌辰
山斗仰淸高之標 妥尊靈於畏壘
是豈但後學之瞻慕
于以卜斯文之廢興
恭惟愼齋周先生
三朝老臣
百世宗匠
金管驗有身之夢 降神人而告徵
土墻承佩韋之敎 在幼年而折節
有捕龍搏虎之手 彪乎其文章
以威鳳祥麟之姿 渾然其德器
際淸河文明之初會
矧麗澤講習之相資
淸凉峨峨十二峯 有卬友於斤斲
頭流重重千萬疊 共誰論於心經
天門策名 卿月煒煌於兩館
海路弭節 民風洋溢於一方
東方興立院之規 考古制於創鹿洞
北闕上闢佛之䟽 儗神功於抑洪潦
孝浮沉津之舟
忠灑望國之涕
是盖通神明而貫金石 誠能格天
粤若正紳笏而措泰磐 志在報國
所過之山川草木 留精采於梓鄕
獨慨其俎豆羹牆 撤香祝於淵院
尙有維肖之繪像
權安不祧之宗宮
廟有祏而又妥眞 仍雲念分精之戒
地叶乩而遂獲吉 士林興移奉之論
玆構數笏之堂 爰咨諏於良日
乃審七分之像 宛警咳於當年
世道庶幾乎重回
儒風於是焉復振
光風亭上 濂翁之巾几無言
碧草階前 蜀相之祠堂可覔
春秋行釋菜之禮 多士齊趍
閭巷聞絃誦之聲 餘敎不墜
敢陳張老之頌
用賀獻室之成
兒郞偉
拋樑東 武陵山上日輪紅 先生心法明如許 存養篇中啓後蒙
拋樑南 南臯春草碧毶毶 吾人自有依歸地 莫向他岐路弐參
拋樑西 安國山光天與齊 平生事業由勤讀 啖薺何年此地捿
拋樑北 德津江水流無極 元來逝者有如斯 道軆洋洋不自息
拋樑上 萬里昭昭天宇曠 奎璧精光千古垂 宗臣遺像人皆仰
拋樑下 滿架圖書人爾足 緬憶家聲寧不蘉 一篇彜訓遺來者
伏惟六偉旣成
願得百福畢至
中天日月 不晦道學之光明
勝地江山 永保棟宇之鞏固
崇禎五己未少春節後學仁州張錫英謹撰
天地鍾純粹之氣 降眞儒於昌辰 천지가 순수한 기운을 모아 창진(昌辰)에 진정한 유학자를 내셨고
山斗仰淸高之標 妥尊靈於畏壘 태산북두는 맑고 높은 표상을 드러내어 외루(畏壘)1)에 존령(尊靈)을 편안하게 하였으니
是豈但後學之瞻慕 이는 어찌 다만 후학들이 우러러 볼 뿐이겠는가.
于以卜斯文之廢興 아 우리 유가의 학문이 장차 흥성하려는 징조일세
恭惟愼齋周先生 삼가 생각건대 진재 주세붕 선생은
三朝老臣 세 왕을 섬긴 원로대신이요
百世宗匠 아득한 후세의 큰 스승이로다.
金管驗有身之夢 降神人而告徵 피리소리 태몽에 들렸으니 훌륭한 사람을 낼적의 예지이고
土墻承佩韋之敎 在幼年而折節 급한 성질을 경계한 가르침을 받들어 유년시절에 고치셨네
有捕龍搏虎之手 彪乎其文章 용과 호랑이를 잡는 솜씨이니 아름답게 문장에 드러났고
以威鳳祥麟之姿 渾然其德器 봉황의 위엄과 기린의 상서로운 자태이니 완전히 덕스러운
際淸河文明之初會 강물이 맑아져 새로운 시대를 열 초기에
矧麗澤講習之相資 벗과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도와줌에 있어 어떠하였겠는가.
淸凉峨峨十二峯 有卬友於斤斲 청량산 우뚝한 열두 봉우리 절벽에서 벗을 부르고
頭流重重千萬疊 共誰論於心經 두류산 웅장한 천만 겹 산세 심경을 누가 함께 강론하랴.
天門策名 卿月煒煌於兩館 조정에서 벼슬하여 경상(卿相)의 직임을 맡아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에서 솜씨가 드러났고
海路弭節 民風洋溢於一方 황해도관찰사 시절에 미풍양속이 한 고을에 퍼졌네
東方興立院之規 考古制於創鹿洞 동방 우리나라에 서원의 규구를 만들었으니 백록동서원의 제도를 본받았고
北闕上闢佛之䟽 儗神功於抑洪潦 대궐에서 불교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렸으니 민간에 널리 퍼지는 것을 막은 것 귀신의 솜씨인 듯하였네
孝浮沉津之舟 효성은 나루에 가라앉은 배를 띄웠고
忠灑望國之涕 충성은 국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네
是盖通神明而貫金石 誠能格天 신명과 통하고 금석을 뚫으니 정성은 하늘에 닿고
粤若正紳笏而措泰磐 志在報國 높은 벼슬함에 국가가 태산 반석처럼 안정되었으니 국가에 보답하려는 데 뜻을 두었네
所過之山川草木 留精采於梓鄕 산천초목을 두루 구경하고 말년에 고향에서 은거하였으니
獨慨其俎豆羹牆 撤香祝於淵院 제물을 올려 추모하였는데 덕연서원이 훼철된 것 탄식스럽네
尙有維肖之繪像 그래도 초상을 그린 영정이 남았으니
權安不祧之宗宮 임시로 종가의 사당에 봉안하였네
廟有祏而又妥眞 仍雲念分精之戒 사당을 두고 또 영정을 봉안하니 후손들이 매우 정밀한 경계를 생각하고
地叶乩而遂獲吉 士林興移奉之論 난리를 만났지만 신의 가호를 받았으니 사림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봉안할 것을 의논하였네
玆構數笏之堂 爰咨諏於良日 뾰족한 지붕의 강당에서 강론하니 좋은 날 질정할 수 있고
乃審七分之像 宛警咳於當年 흡사하게 그린 초상을 찾으니 살아계실 적의 모습 그대로일세
世道庶幾乎重回 세상의 도가 아마 다시 회복될 것이니
儒風於是焉復振 유학의 여기에서 다시 진작되리라
光風亭上 濂翁之巾几無言 광풍정(光風亭) 위에는 주렴계 선생의 유품만 있지 말이 없고
碧草階前 蜀相之祠堂可覔 푸른 풀 돋은 섬돌 앞에는 촉나라 재갈공명의 사당을 찾을 수 있네
春秋行釋菜之禮 多士齊趍 봄가을로 석채례를 거행하니 훌륭한 선비들이 함께 달려오고
閭巷聞絃誦之聲 餘敎不墜 거리마다 글 읽는 소리 가득하니 아직 가르침이 실추되지 않았네
敢陳張老之頌 장로(張老)2)의 송축하는 노래를 감히 지어서
用賀獻室之成 전각이 완성된 것을 축하하네
兒郞偉 어영차
拋樑東 떡을 들보 동쪽에 던지노니
武陵山上日輪紅 무릉산 위에 태양이 붉네
先生心法明如許 선생의 심법 이처럼 밝으니
存養篇中啓後蒙 존심양성편은 어리석은 후학을 깨우치네
拋樑南 떡을 들보 남쪽으로 던지노니
南臯春草碧毶毶 남쪽 언덕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나네
吾人自有依歸地 우리들 절로 의지할 곳이 있으니
莫向他岐路弐參 다른 길에서 헤매지 말라
拋樑西 떡을 들보 서쪽으로 던지노니
安國山光天與齊 안국산의 푸른빛은 하늘과 구별하지 못하네
平生事業由勤讀 평생의 사업 부지런히 독서하는 것이니
啖薺何年此地捿 나물 먹으며 어느 때 이곳에서 살 것인가
拋樑北 떡을 들보 북쪽으로 던지노니
德津江水流無極 덕진의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네
元來逝者有如斯 원래 흐르는 물결 이와 같으니
道軆洋洋不自息 도의 본체 넘실넘실 쉼이 없다네
拋樑上 떡을 들보 위로 던지노니
萬里昭昭天宇曠 만 리에 환하고 천지간이 넓도다
奎璧精光千古垂 옥구슬 정연한 광채 천고에 드리우니
宗臣遺像人皆仰 유신의 소상을 사람들이 모두 앙망하네
拋樑下 떡을 들보 아래로 던지노니
滿架圖書人爾足 서가에 도서가 가득하니 인생사 만족한 것 아니랴
緬憶家聲寧不蘉 아득히 가문의 명성 생각하니 어찌 힘쓰지 않으리오
一篇彜訓遺來者 한 편의 떳떳한 가르침을 후학에게 남겼네
伏惟六偉旣成 삼가 생각건대 육위(六偉)의 노래가 지어졌으니
願得百福畢至 만복이 모두 이르기를 것이리라
中天日月 不晦道學之光明 하늘에 해와 달이 밝으니 도학의 빛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勝地江山 永保棟宇之鞏固 아름다운 산수강산에 전각이 견고하게 길이 보전될 것리라
숭정(崇禎) 후 다섯 번째 기미년(1919) 소춘절(少春節)에 후학 인동 장석영(張錫英)은 삼가 찬하노라
武山書堂重建上樑文
天不欲佑斯道 前哲妥影之所遽灾
人皆有受彜衷 後學同聲之應復覩
成翬革於一日
寓羹墻於永年
於惟愼齋周先生
東邦大儒
尙5)洛華閥
超人儀表嵬嵬 山嶽之特臨
間世文章滚滚 江河之流出
喪父極孝 守塚墓於二堠
事君盡忠 封䟽箚於三聖
奚獨經濟寤寐
尤在道學倡明
慕文成而建祠 倣朱晦菴南康故事
請朝廷而藏卷 得李退陶豊基繼治
斥佛闢邪 其論等昌黎骨表
勸民興學 所至成子游絃歌
猗生前之有斯
誰身後之無報
贈亞銓謚文敏 聖朝之恩誥疊臻
奉肖像擧縟儀 士林之公論自在
刊遺文而傳世 鑿鑿溪門手勘
表神道而題銘 煌煌眉老大筆
値黃龍而撤院 捨德淵而卜武陵 禀爲子孫所聚
變白鹿而爲堂 非享祀而爲舍菜 亦出章縫共思
遺像凜然 耀丹靑於其上
童遊宛爾 瞻桑梓於某邱
胡庚寅之桑瀾
又煕寧之茂艸
溪山慘憺 忍聞哀鷄鳴猿
洞壑悲凉 但見頹垣敗礎
糓旣有儲 金旣有合 議得僉同
井不可湮 地不可荒 事寧敢緩
標榜縱焉仍舊
事役忽其就新
風於斯 月於斯 想精靈之陟降
道在是 文在是 合諸生之瞻依
桃樹千株 太半山居避俗
棹歌九曲 彷彿道人在溪
旣得墍雘畢功
盍思維持善策
奉祭祀而禮式 春秋齊宿靡愆
育生徒而義方 夙宵訓戒不懈
鄕黨之約 患亂相救 過失相規
士友之迎 鷄黎有具 苖藿有縶
敬陳張老之頌
庸助郢人之斤
梁之東 武陵山上日輪紅 朝朝悟得存心法 誰識先生戒愼工
梁之南 德淵秋水碧如藍 龍歸不見魚游在 絲餌投時且莫貪
梁之西 安國山高不可梯 時事如今同此嶽 有誰容易得攀躋
梁之北 洛東江水流無息 也應魂向縷潭遊 道義眞交路可識
梁之上 日月明明長在仰 莫謂大賢餘蔭無 天人感應如酬唱
梁之下 路上車輪飛大野 制動必須守靜人 胡爲長作奔忙者
伏願上樑之後
宇內河淸
山中日朗
人人遵禮讓之俗 古道復行
家家讀孔孟之書 文風大振
與魯殿而爲壽 棟宇長存
佑周民而更興 獜鳳多出
歲己未立秋節光州盧根容謹撰
무산서당 중건 상량문
天不欲佑斯道 前哲妥影之所遽灾 하늘이 우리 유가의 도를 돕고자 하지 않아 전 현인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 갑자기 불탔으나
人皆有受彜衷 後學同聲之應復覩 사람들이 모두 하늘에서 착한 성품을 받았으니 후학들이 이구동성으로 다시 중건하려 하였네
成翬革於一日 화려한 전각이 어느 날 완성되니
寓羹墻於永年 오래도록 사모하는 마음을 깃들이네
於惟愼齋周先生 공손히 생각건대, 신재 주세붕 선생은
東邦大儒 우리 동방의 큰 유학자이고
尙洛華閥 상주의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네
超人儀表嵬嵬 山嶽之特臨 출중한 위의는 늠름하니 산악이 우뚝 솟은 듯하고
間世文章滚滚 江河之流出 세상에 다시없는 문장력은 유려하니 강물이 흐르는 듯하였네
喪父極孝 守塚墓於二堠 아버지를 여이어서는 효성을 지극히 하여 시묘살이를 하였고
事君盡忠 封䟽箚於三聖 군주를 섬길 적에는 충성을 다하여 세 왕에게 상소를 올렸네
奚獨經濟寤寐 어찌 유독 세상을 경영하는 것에만 힘썼겠는가
尤在道學倡明 더욱 도학이 밝게 드러내는 것에 마음을 두었네
慕文成而建祠 倣朱晦菴南康故事 공자를 사모하여 사당을 세웠으니 회암 주희 남강(南康)에 백록동서원을 건립한 일을 본받았고
請朝廷而藏卷 得李追陶豊基繼治 조정에 간청하여 사액을 받았으니 퇴계 이황이 풍기를 이어서 다스린 덕분이라네
斥佛闢邪 其論等昌黎骨表 불교를 배척하여 사악한 풍속을 바로잡았으니 그 논의는 한유의 불골표(佛骨表)와 같았고
勸民興學 所至成子游絃歌 백성을 권면하여 학문을 일으켰으니 이르는 곳마다 자유가 거문고를 치며 다스린 정사와 같이 하였네
猗生前之有斯 아 살아생전 이와 같았으니
誰身後之無報 누가 죽은 뒤에 보답을 받지 않으랴
贈亞銓謚文敏 聖朝之恩誥疊臻 예조 판서에 추증되고 문민공이란 시호를 받았으니 조정의 은혜가 거듭 이른 것이고
奉肖像擧縟儀 士林之公論自在 초상을 받들고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였으니 사림의 공적인 의논이 있었기 때문이라네
刊遺文而傳世 鑿鑿溪門手勘 문집을 간행하여 세상에 전하니 엄정하게 퇴계 문인의 감수를 받았고
表神道而題銘 煌煌眉老大筆 신도비를 세워 제자를 썼으니 찬란하게 허목 미수의 글씨라네
値黃龍而撤院 捨德淵而卜武陵 禀爲子孫所聚 병술년에 서원이 철폐되어 덕연에서 무릉으로 옮겼으니 자손들이 정성을 모은 것이고
變白鹿而爲堂 非享祀而爲舍菜 亦出章縫共思 서원에서 서당으로 바꿔어 제향하지 않고 석채례를 행하니 선비들이 함께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나왔네
遺像凜然 耀丹靑於其上 남은 초상 늠연하니 그 위에다 단청을 칠하였고
童遊宛爾 瞻桑梓於某邱 어려서 노닐던 곳 완전하니 언덕에서 고향을 바라보네
胡庚寅之桑瀾 아 경인년에 화재를 만나
又煕寧之茂艸 또 희녕(熙寧) 연간처럼 황무지가 되었네
溪山慘憺 忍聞哀鷄鳴猿 시내와 산은 참담하니 차마 애간장 끊는 원숭이 울음소리 들으랴
洞壑悲凉 但見頹垣敗礎 골짜기는 처량하니 다만 무너진 담과 초석만 남았네
糓旣有儲 金旣有合 議得僉同 곡식을 모으고 돈을 모아 사림들이 발의하니
井不可湮 地不可荒 事寧敢緩 우물은 묻히게 할 수 없고 땅은 황폐한 대로 둘 수 없으니 어찌 시급하게 일하지 않으랴
標榜縱焉仍舊 표방한 것은 비록 예전 그대로 이지만
事役忽其就新 일하여 홀연히 새로워졌네
風於斯 月於斯 想精靈之陟降 바람 불고 달이 떠니 혼령이 내려오셨나
道在是 文在是 合諸生之瞻依 도가 있고 문장이 있으니 유생들이 그리워하네
桃樹千株 太半山居避俗 복숭아나무 천 거루 모두 먼지 나는 세속을 피한 것이요
棹歌九曲 彷彿道人在溪 무이구곡가를 부르니 도인이 시냇가에 있는 듯하네
旣得墍雘畢功 이미 장인을 구하여 일을 마쳤으니
盍思維持善策 어찌 유지할 좋은 계책을 생각하지 않으랴
奉祭祀而禮式 春秋齊宿靡愆 예법에 맞게 제사를 지내니 봄가을로 재숙하며 잘못을 반성하며
育生徒而義方 夙宵訓戒不懈 의로운 방향으로 생도들을 교육하니 아침저녁으로 훈계함을 게을리 하지 않네
鄕党之約 患亂相救 過失相規 향약을 만드니 환난에 서로 구조하고 과실을 서로 충고하며
士友之迎 鷄黎有具 苖藿有縶 사우를 맞이하니 닭을 잡고 기장을 삶고 나물 반찬 마련하였네
敬陳張老之頌 공경히 상량문을 올리니
庸助郢人之斤 어찌 훌륭한 솜씨에 도움이 되겠는가
梁之東 들보의 동쪽
武陵山上日輪紅 무릉산 위에 해가 붉네
朝朝悟得存心法 아침마다 깨달아 심법을 보존하니
誰識先生戒愼工 누가 선생이 경계하신 공이 아님을 알겠는가
梁之南 들보의 남쪽
德淵秋水碧如藍 덕연의 가을 물 쪽빛을 띠었네
龍歸不見魚游在 용을 날아가고 물고기가 헤엄치니
絲餌投時且莫貪 낚싯대 드리을 때 장차 물지 말라
梁之西 들보의 서쪽
安國山高不可梯 안국산은 높아 오를 수 없네
時事如今同此嶽 시국의 일 지금 이 산의 험난함과 같으니
有誰容易得攀躋 누구 쉽게 오를 수 있으랴
梁之北 들보의 북쪽
洛東江水流無息 낙동강 물은 끊임없이 흐르네
也應魂向縷潭遊 응당 혼백은 누담에서 노닐 것이니
道義眞交路可識 도의로 참 교분 맺는다면 갈 길을 알리라
梁之上 들보의 위쪽
日月明明長在仰 해와 달이 밝디 밝아 오래 바라보네
莫謂大賢餘蔭無 큰 현인의 음덕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天人感應如酬唱 하늘이 감응하여 보답할 것이라네
梁之下 들보의 아래
路上車輪飛大野 길 위의 수레 들판을 달리네
制動必須守靜人 움직임을 절제하려면 반드시 고요한 사람이 필요하니
胡爲長作奔忙者 어찌 오래도록 바쁘게만 살아가랴
伏願上樑之後 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는
宇內河淸 천하가 맑아지고
山中日朗 산중의 해가 밝으며
人人遵禮讓之俗 古道復行 사람마다 아름다운 풍속을 지켜 옛 도를 다시 실천하고
家家讀孔孟之書 文風大振 집집마다 논어와 맹자를 읽어 문풍이 진작되기고
與魯殿而爲壽 棟宇長存 노전(魯殿)6)과 함께 길이 남아 건물이 오래 보전되고
佑周民而更興 獜鳳多出 순박한 백성을 일깨워 다시 중흥시켜 기린과 봉황이 다시 출현하기를.
때는 기미년(1919)년 입추에 광주 노근용(盧根容)은 삼가 짓노라
1) 외루(畏壘) : 춘추 시대 노(魯)나라 지역의 산 이름이다. 경상초(庚桑楚)가 노담(老聃)의 도를 터득하고 북쪽 외루산으로 가서 은거하였던 데서 인용한 것으로, 흔히 풍속이 순박한 시골을 가리킨다. 《莊子 庚桑楚》
2) 장로(張老)의 송축하는 노래 : 장로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대부이다. 진나라 경(卿) 조무(趙武)가 새집을 지은 뒤에 임금 이하 대부들이 축사를 하였는데, 장로가 올린 축사가 가장 좋았다 하여 흔히 상량문 말미에 붙는 운문의 뜻으로 쓰인다. 장로의 축사는 “아름답다, 높고 큰 규모여. 아름답다, 찬란한 빛이여. 선조 제사 지낼 적에 여기서 음악 연주하고 상례를 치를 때도 여기서 곡을 하며, 국빈이며 일가 친족 여기서 회합하리.”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禮記 檀弓下》
3) 토규(兎葵)와 연맥(燕麥) : 야초(野草)와 야맥(野麥)으로, 가슴 아픈 황량한 정경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당(唐) 나라 유우석(劉禹錫)의 ‘재유현도관절구(再遊玄都觀絕句)’ 해설에 “지금 14년 만에 다시 현도(玄都)를 거닐어 보니, 옛날 도사가 심었다는 선도(仙桃) 나무는 한 그루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토규와 연맥만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4) 석채례(釋菜禮) : 마름[蘋藻] 등 채소로 선사(先師)를 제사하는 예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그달 첫째 정일(丁日)에 악정(樂正)에게 명하여 춤을 익히고 석채한다.” 하였다.
5) 尙 : 원문에는 “商”으로 되어 있는데, 尙의 오자로 추측된다.
6) 노전(魯殿) : 영광전(靈光殿)의 이칭이다. 한 나라 경제(景帝)의 아들 공왕(恭王)이 세운 궁전으로, 춘추 시대 노 나라 땅이던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었다. 옛 자취가 다 사라진 가운데 홀로 남아 우러르는 대상을 비유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문선》 왕연수(王延壽)의 노영광전부(魯靈光殿賦)에, “연광전만이 홀로 우뚝 남아 있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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