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집례(大明集禮)》 서문 - 숙종

2017. 8. 16. 15:47박물관후기

○ 상이 친히 《대명집례(大明集禮)》 서문을 지어 정원에 내려 모두 책에 넣어 인쇄하게 하였다. 그 서문에 이르기를,

“대저 천하의 지극한 이치는 다 예()에 표현되어 있다. 예란 사람의 일상 생활이나 모든 사물의 타당한 것으로서, 체용(體用)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그것을 말미암는다. 이것이 이른바 ‘예는 하늘의 이치를 알맞게 정하여 꾸민 것이고 세상일의 법칙이니, 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정사를 하는 여가에 서적을 열람하다가 《대명집례》 한 부를 찾았는데, 이는 명 나라 태조 고황제(高皇帝)가 지은 것이다. 편집한 권질이 총 40권인데, 위로 천지에 대한 제사와 종묘ㆍ사직의 예법으로부터 조회(朝會)ㆍ관례(冠禮)ㆍ혼례(婚禮)ㆍ조공(朝貢)ㆍ친정(親征)ㆍ조문(弔問)ㆍ 부의(賻儀) 등의 의례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없었고 방대한 자료가 다 망라되었다. 대저 나 소자는 예학(禮學)에 어두운 사람인데, 한번 펴 놓고 봄에 예를 훤하게 알 수가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 다음에야 이 책이 실로 예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며 우리나라의 《오례의(五禮儀)》와 더불어 서로 표리가 되어 만세토록 없어지지 않을 전범임을 알게 되었다.

, 애석하다. 궁중의 서고에 소장된 본은 탈락된 부분이 많아 완전한 권질을 이루지 못했으니, 이에 홍문관에 명하여 예부(禮部)에서 수집하여 결락된 것을 보충하게 하였다. 그리고 유신(儒臣) 이윤수(李允修)의 주청을 받아들여, 한 부를 정사하여 자상하게 교정을 가하고 이어 이남(二南 《시경》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첨부하여 간행한 뒤에 신하들에게 널리 배포하여 오래 전해지도록 하여 내가 늘 오례(五禮)를 쓰는 뜻을 펴려 한다. 이것으로 만에 하나라도 정치와 교화에 보탬이 있기를 기대한다.

하였다.

[출처] 제49 숙종조 18년(임신,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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