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로 지리산 청학동기

2017. 6. 6. 13:33옛산행기

"청학동을 찾아서"


 

지리산은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원(元)나라 영내의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꽃봉오리와 꽃받침처럼 잘 어우러진 봉우리와 골짜기가 면면(綿綿)이 이어지어 내려오다, 대방군(帶方郡)1)에 이르러서 수천 리(里)에 서리어 맺히었다.

 

이 산 주위에 10여 고을이 있는데, 한 달 이상 걸려야 그 주위를 다 구경할 수 있다.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이 산 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다. 구부리고 엎드려 몇 리쯤 가면 넓게 트인 동네가 나타나는데, 사방이 모두 좋은 농토(農土)다.

토질이 비옥하여 곡식을 심기에 알맞다. 

 

푸른 두루미[靑鶴]만이 그 안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청학동이라고 이름하였다.

대체로 옛날 세상을 피한 사람들이 살던 곳인데, 무너진 담장과 집터가 아직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예전에 나의 집안의 당형 최상국(崔相國)2)과 영원히 함께 속세(俗世)를 떠날 뜻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이 곳을 찾기로 약속하였다. 

 

살림살이를 담은 대고리짝을 두세 마리 소에 싣고 들어가면 속세와 멀어질 수 있으리라 여겼다. 

 

드디어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에서 묵었다

지나는 곳마다 선경 아닌 곳이 없었으며, 천만 봉우리와 골짜기가 다투듯 빼어나고 다투어 흘러내렸다.

대울타리 안의 초가집이 복사꽃, 살구꽃에 보일 듯 말 듯하니, 자못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바 청학동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바위에 남기고 돌아왔다 .

 

頭流山逈暮雲低      두류산은 아득하고 저녁 구름 낮게 깔려,

萬壑千巖似會稽      천만 봉우리와 골짜기 회계산3)과 같네.  

杖策欲尋靑鶴洞      지팡이를 짚고서 청학동을 찾아가니,

隔林空聽白猿啼      숲 속에선 부질없이 잔나비 울음소리뿐.  

樓臺縹緲三山遠      누대(樓臺)에선 삼신산4)이 아득히 멀리 있고,    

苔蘚依俙四字題      이끼 낀 바위에는 네 글자가 희미하네.

試問仙源何處是      묻노니, 신선이 사는 곳 그 어디메인가?

落花流水使人迷      꽃잎 떠오는 개울에서 길을 잃고 헤매네.

 

예전에 서루(書樓)에서 우연히 <오류선생집>5)을 뒤적이다, <도화원기(桃花源記)>가 있기에 반복해 읽어 보았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대개 진(秦)나라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산과 물이 겹겹이 둘러쳐져 나무꾼도 갈 수 없는 깊숙하고 외진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살았다.

 

진(晉)나라 태원(太元)6) 연간에 어떤 어부가 요행히 한 번 찾아 갔으나, 사람들이 그 다음길엔 길을 잃어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하였는데, 도원(桃源)을 선계(仙界)로 여겨 우거표륜(羽車飇輪)7)을 타고 다니며 장생불사하는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는 <도화원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니, 실은 저 청학동과 다름없는 곳이리라.

어찌하면 유자기(劉子驥)8) 같은 고상한 선비를 만나 그곳에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현재의 남원 (본문으로 ☞)

2) 고려시대의 문신인 최당(崔 : 1135~1211). 相國은 재상을 말함. (본문으로 ☞)

3) 중국의 지명 (본문으로 ☞)

4) 봉래, 방장, 영주 세 개의 산으로 신선이 사는 곳 (본문으로 ☞)

5) 진나라 도잠의 문집 (본문으로 ☞)

6) 동진 효무제 때 연호 (본문으로 ☞)

7) 신선이 타는 수레 (본문으로 ☞)

8) 중국 진나라 사람 (본문으로 ☞)


************

[요점정리]

 

- 창작연대 : 1170년경으로 추정

- 주제 : 지리산 청학동

- 출전 : 파한집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고려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이인로가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무신의 난, 일명 정중부의 난)을 피해 지리산으로 청학동을 찾으러 나섰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바윗돌에 시만 남기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담은 지리산 기행 수필이다.

 

고사성어와 문장을 예시하면서 지리산 화개골짝의 선경에 대한 감상과,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간 체험과 그 청학동을 찾지 못한 안타까움을 교차시키고 있으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관조적으로 서술하였다.

 

참고로, 이인로 선생의 자는 '미수', 호는 '쌍명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