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취운 진학종 선생의 초서작품

2017. 6. 1. 17:36草書

                                                             심외무법(心外無法)

 

                                               취운 진학종 선생의 초서작품

 

  나는 오늘 점심식사를 하려고 금산사 입구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렸다가 우연히 우리나라 서단의 서예

  대가이신 취운 진학종(翠雲  陳學鍾)선생의 액자 글씨  심외무법(心外無法)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라도를 가리켜 흔히 예향이라고 말한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특히 전라북도에

  가면 웬만한 식당에 가면 사화작푼이 걸려있지 않은 집이 거의 없다. 오늘 내가 점심시간에 들렸던 식

  당도 아주 평범한 식당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당대 초서체의 최고 대가라 할 수 있는 취운선생의 작

  품을  보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었다. 주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이층에 그분의

  초서체 병풍이 하너 더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식사를 마치신 후에 구경을 시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예향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풍은 모두 10폭이었는데 좁은 공간 속에서 다 펴 놓고 제대

                                                    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두 번 나누어 찍어야 했다.

                       

 

                                                     취운 진학종선생 10폭 병풍 중 1쪽

 

  취운 진학종선생은 1924년 고창군 무장면에서 출생하였고,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친동생이다. 그는 60

  여 년 동안 고집스럽게 초서에 몰두해왔으며 병풍과 전각 액자 등 1백 여 점을 모아 대형작품집 ‘취운

  초서병풍첩’을 발간하기도 했다. 수십 차례에 걸쳐 국내 개인전을 가진 것을 포함, 중국 상하이 한중합

  동전, 일본신문협회초대전, 홍콩초청작가전 등 해외작품전(개인전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범태평양미

                                                     술대전초대작가상과 싱가포르 공익부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취운선생은 제3회 세계서예전북 비엔날레(2001년)에 초대된 바 있으며, 서울미술제, 대한민국미술대상

  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 현재 국전 초대작가, 예술의전당 초대작가, 세계서법예술연합 고문, 대한민국

                                                     초서심추회 회장을 맡고 있다.

  취운선생은 올해 83세로 60여년 동안 소멸해가는 초서문화를 재현시키기 위해 힘써왔으며, 어려운 악

   필(握筆) 솜씨로 천의무봉한 초서의 진수를 구현하여 사계에 명성이 자자, ‘ 동양 3국 최후의 초서’대가

                                                       란 말을 듣고 있다.  

   취운선생은 평소 “초서는 선과 여백이 어우러진, 글씨이자 예술입니다. 2백년 전에 절멸되다시피한

   초서를 재현하는데 몰두,개발한 취운체는 말뚝을 땅에 힘껏 박을 때 쥐는 방식인 악필로, 특유의 리듬

   감이 살아 있는 글씨입니다. 해서가 앉아 있는 글씨라면, 초서는 달음질 치는 글씨지요. 초서의 묘미

                                                        는 몰아지경에서 단숨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데 있습니다.” 라고 말해왔다.

   취운선생은 “초서를 쓰기 위해선 붓을 한 번 먹에 적시면 한 번에 써내려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

   이 머리 속에 훤히 암기돼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라며 “수만 번 연습한 결과, 2백10자나 되는 굴언의

                                                       ‘어부사’를 단 25분 만에 써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취운 진학종선생 10폭 병풍 중 2쪽


   나는 병풍을 보며 황홀함을 느꼈으나 전체를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유식하지 못해 사진만 찍어 가지

   고 왔다. 해석을 못하는 것은 소장자도 마찬가지였다. 초서라고는 하나 비교적 행서에 가깝도록 쓴 글

   씨이기 때문에 해석이 마무리 되는대로 연락을 드리겠노라도 약속을 하고 돌아 왔다. 시간만 허락한다

   면 주위에 있는 식당을 다 돌아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은 예향에 와서 우연히 구한 글을 접하여

                                                       대단히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출처 : 반석 같은 친구
글쓴이 : 푸른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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