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궁문(送窮文)-한유(韓愈)

2017. 4. 17. 11:02한문기초書

송궁문(送窮文)-한유(韓愈)


元和六年正月乙丑晦(원화육년정월을축회) : 원화 육년 정월 을축날 저녁에,

主人使奴星(주인사노성) : 주인이 하인 성으로 하여금

結柳作車(결류작차) : 버드나무를 얶어 수레를 만들고

縛草爲船(박초위선) : 풀을 묶어 배를 만들게 한 다음,

載糗輿粻(재구여장) : 미수가루와 양식을 싣고서

牛繫軛下(우계액하) : 멍에 밑에 소를 매고

引帆上檣(인범상장) : 돛대 위에는 돛을 달고

三揖窮鬼而告之曰(삼읍궁귀이고지왈) : 궁귀에게 세 번 읍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聞子行有日矣(문자행유일의) : “듣건대 그대에겐 떠나야 할 날이 있다고 합니다.

鄙人不敢問所途(비인불감문소도) : 비루한 내가 감히 갈 길은 묻지 못하겠으나,

躬具船與車(궁구선여차) : 몸소 배와 수레를 마련하고

備載糗粻(비재구장) : 비수가루와 양식도 모두 실어놓았소.

日吉辰良(일길신량) : 날짜 길하고 시절도 좋은 때라서

利行四方(리행사방) :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子飯一盂(자반일우) :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子啜一觴(자철일상) : 술 한 잔 마신 다음

携朋挈儔(휴붕설주) :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去故就新(거고취신) : 옛 고장을 떠나 새 고장으로 떠나도록 하오.

駕塵弓彉風(가진궁확풍) :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빠른 바람 타고 배 몰아

與電爭先(여전쟁선) :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子無底滯之尤(자무저체지우) : 그대에게는 머물러 있다는 허물이 없게 될 것이오.

我有資送之恩(아유자송지은) : 나는 노자를 갖추어 전송한 은혜를 지니게 될 것인데,

子等有意於行乎(자등유의어행호) : 그대들은 떠날 뜻이 있소?” 하였다.


屛息潛聽(병식잠청) : 숨을 죽이고 조용히 들으니

如聞音聲(여문음성) : 말 소리가 드리는 듯 하였는데, 

若嘯若啼(약소약제) : 휘파람 소리와도 같고 우는 소리와도 같게

砉欻嚘嚶(획훌우앵) : 중얼거리고 자잘거리니

毛髮盡竪(모발진수) : 몸 털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서고

竦肩縮頸(송견축경) : 어깨를 들추고 목을 움츠리게 하였다.

疑有而無(의유이무) : 소리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가


久乃可明(구내가명) : 오랜 뒤에야 분명해졌는데,

若有言者曰(약유언자왈) :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吾與子居四十年餘(오여자거사십년여) : “나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지는 사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子在孩提(자재해제) :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는

吾不子愚(오불자우) : 나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子學子耕(자학자경) : 선생님의 공부도 하고 밭도 갈면서


求官與名(구관여명) :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惟子是從(유자시종) : 오직 선생님만을 따르며

不變于初(불변우초) : 처음처럼 끝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門神戶靈(문신호영) : 문의 신들에게

我叱我呵(아질아가) : 나는 야단 맞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包羞詭隨(포수궤수) :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志不在他(지불재타) : 딴 곳에 뜻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子遷南荒(자천남황) : 선생님께서 남쪽 먼 곳으로 귀양을 갔을 적에는

熱爍濕蒸(열삭습증) : 뜨겁고 덥고 습기차고 찜질하는듯 하였으므로,

我非其鄕(아비기향) : 나는 그 고장에 익숙치 못하여

百鬼欺陵(백귀기릉) :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太學四年(태학사년) : 태학에서는 사 년 공부하는 동안에는

朝齏暮塩(조제모염) : 아침에는 아침 부추,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 지냈으나,

惟我保汝(유아보여) : 오직 저 만이 당신을 보살펴 주었고,

人皆汝嫌(인개여혐) : 사람들 모두가 당신을 싫어했으나

自初及終(자초급종) : 처음부터 끝까지

未始背汝(미시배여) : 한 번도 당신을 배반한 일이 없었습니다.

心無異謀(심무이모) : 마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일이 없고

口絶行語(구절행어) : 입으로는 가겠다는 말을 전혀 한 일이 없는데,

於何聽聞(어하청문) :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云我當去(운아당거) : 저에게 가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是必夫子信讒(시필부자신참) : 이것은 필시 선생님께서 남이 모함하는 말을 믿고서

有間於予也(유간어여야) : 내게 거리를 두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我鬼非人(아귀비인) : 저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安用車船(안용차선) : 수레와 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鼻嗅臭香(비후취향) : 코로 추한 냄새와 향기나 맡고 지내니

糗粻可損(구장가손) : 미수가루와 양식도 버리는게 좋을 것입니다.

單獨一身(단독일신) : 홀로 외짝인 한 몸인데

誰爲朋儔(수위붕주) : 친구와 무리란 어떤 자들입니까?

子苟備知(자구비지) : 선생님께서 진실로 모두 알고 계신다면

可數以不(가수이불) :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子能盡言(자능진언) : 선생님께서 모두 말할 수 있으시면

可謂聖智(가위성지) : 성인이나 지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情狀旣露(정상기로) : 진실이 이미 드러나 있다면

敢不廻避(감불회피) : 감히 회피하지 않겠습니까?”


主人應之曰(주인응지왈) : 주인이 대답했다.

子以吾爲眞不知也邪(자이오위진부지야사) : “그대는 내가 정말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子之朋儔(자지붕주) : 그대의 벗과 무리들은

非六非四(비육비사) : 여섯 명도 아니고 네 명도 아니며,

在十去五(재십거오) : 열에서 다섯을 뺀 숫자이고

滿七除二(만칠제이) : 일곱 중에서 둘을 덜어낸 숫자요,


各有主張(각유주장) : 제각기 주장하는 일이 있고,

私立名字(사립명자) : 사사로이 이름을 내세우며,

捩手覆羹(렬수복갱) : 남의 손을 비틀어 뜨거운 국을 덮고

轉喉觸諱(전후촉휘) : 노래를 하며 남의 꺼리는 일을 들추어 내었소.

凡所以使吾面目可憎(범소이사오면목가증) : 모든 내 얼굴을 가증스럽게 하고,

語言無味者(어언무미자) : 하는 말을 무미건조하게 하는 것이

皆子之志也(개자지지야) : 모두 그대들의 뜻이었소.

其一名曰智窮(기일명왈지궁) : 그 첫째 이름은 지궁인데,

矯矯亢亢(교교항항) : 고답적이면서도 뻣뻣하고

惡圓喜方(오원희방) : 둥근 것은 싫어하고 모난 것을 좋아하며,

羞爲姦欺(수위간기) : 간사하고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不忍害傷(불인해상) :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짓은 차마 하지 못하오.

其次名曰學窮(기차명왈학궁) : 그 다음은 이름을 학궁이라 하는데,

傲數與名(오수여명) : 법도와 명서에 대하여는 오만하고,

摘抉杳微(적결묘미) : 심원하고 미묘한 것을 잡아내며

高挹群言(고읍군언) : 여러 가지 이론들을 높이 들추어내어

執神之機(집신지기) : 신의 기밀을 파악하지요,

又其次曰文窮(우기차왈문궁) : 또 다음은 문궁이라 하는데,

不專一能(불전일능) : 한 가지 능력만을 오로지 추구하지 않고

怪怪奇奇(괴괴기기) : 기괴한 표현을 일삼아

不可時施(불가시시) : 시국에 응용할 수가 없고

秖以自嬉(지이자희) : 오직 스스로 즐길 따름이오.

又其次曰命窮(우기차왈명궁) : 다시 그 다음은 명궁이라 하는데,

影與形殊(영여형수) : 그림자와 형체가 달라서

面醜心姸(면추심연) : 얼굴은 추하나 마음은 곱고,

利居衆後(리거중후) : 로운 일에는 다른 사람들 뒷전에 서고

責在人先(책재인선) : 책임질 일은 남들보다 앞장서지요.

又其次曰交窮(우기차왈교궁) : 또 다음은 교궁인데,

磨肌戞骨(마기알골) : 살갗을 부비며 남과 가까이 지내고

吐出心肝(토출심간) : 마음 속을 다 토해내서 보여주고

企足以待(기족이대) : 발돋음하고 기다리며

寘我讐寃(치아수원) : 남을 대우하고도 나를 원수자리에 놓이게 하는 것이오.

凡此五鬼(범차오귀) : 이 다섯 귀신들은

爲吾五患(위오오환) : 나의 다섯 가지 환난을 마련해주어,

飢我寒我(기아한아) : 나를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며

興訛造訕(흥와조산) : 내게 소동을 일으키고 비난을 받게하여,

能使我迷(능사아미) : 나를 미혹하게 만들고 있지만

人莫能間(인막능간) : 사람들은 아무도 이에 간섭하지 못하오.

朝悔其行(조회기행) : 아침에 그러한 행동을 후회하지만

暮已復然(모이복연) : 저녁이면 또 다시 그러하니,

蠅營狗苟(승영구구) : 파리 떼가 붕붕거리고 개가 구차히 지내듯

驅去復還(구거복환) : 쫓아버려도 다시 돌아오지요.”

言未畢(언미필) : 말을 마치기도 전에,

五鬼相與張眼吐舌(오귀상여장안토설) : 다섯 귀신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고

跳踉偃仆(도량언부) : 펄쩍 뛰다가는 이리저리 나자빠지며,

抵掌頓脚(저장돈각) :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失笑相顧(실소상고) : 실소하면서 서로 돌아다보고

徐謂主人曰(서위주인왈) : 천천히 주인에게 말하였다.

子知我名凡我所爲(자지아명범아소위) : “선생께서 우리 이름과 모든 우리 행위를 아시고

驅我令去(구아령거) : 우리를 내쫓아 떠나라고 하시는데,

小黠大癡(소힐대치) : 작게는 약지만 크게 바보스런 짓입니다.

人生一世(인생일세) : 사람이 나서 한 평생

其久幾何(기구기하) : 얼마나 오래 사는 겁니까?

吾立子名(오립자명) : 우리는 선생님의 명성을 세워서

百世不磨(백세불마) : 백세 뒤에도 지워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小人君子(소인군자) : 소인과 군자는

其心不同(기심부동) : 그들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이니,

惟乖於時(유괴어시) : 오직 시국에 어긋나야만

乃與天通(내여천통) :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携持琬琰(휴지완염) : 아름다운 옥홀을 가지고

易一羊皮(역일양피) :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飫於肥甘(어어비감) :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慕彼糠糜(모피강미) : 겨와 싸래기를 흠모하는거나 같은 일이지요,

天下知子(천하지자) : 천하에서 선생님을 아는데 있어서

誰過於予(수과어여) : 누가 우리보다도 더 낫겠습니까?

雖遭斥逐(수조척축) : 비록 배척받아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여도

不忍子疏(불인자소) : 차마 선생님을 멀리하지 못하겠습니다.

謂予不信(위여불신) :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請質詩書(청질시서) : 시경과 서경을 놓고 질정해 보도록 하십시오.”

主人於是垂頭喪氣(주인어시수두상기) : 주인은 그러자 머리를 떨구고 기가 죽어

上手稱謝(상수칭사) : 두 손을 들어 사과를 한 다음

燒車與船(소차여선) : 수레와 배를 불사르고

延之上座(연지상좌) : 그들을 마중하여 상좌에 앉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