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의 한자표현

2015. 6. 24. 09:19한문상식

비(雨)의 이름|

한시(漢詩)를 읽다보면 다양한 비(雨)의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비는 그 내리는 양에 따라 가랑비, 주룩주룩 내리는 비 그리고 퍼붓는
폭우(暴雨)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만나는 비의 모습이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사람도 생김새가 다르듯이.. 비도 날씨에 따라, 지형에 따라 그리고 보
는 이의 기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기 마련입니다.

가랑비나 이슬비는 양이 적은 비 또는 빗발이 가는 비라는 뜻으로 소우
(小雨) 미우(微雨) 또는 세우(細雨)라고 표현합니다. 빗줄기는 보이는데
양이 적어서 성글게 내리는 비는 소우(疎雨)라고 하여 옛시에서 쓸쓸한 마
음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현대 중국어에선 이슬비를 모모우(毛毛雨)라고 합니다. 짐승의 가는 털
처럼 부드럽게 내리는 비를 연상케하는 예쁜 이름입니다. 비는 비인데 빗
발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것은 연우(煙雨, 烟雨) 혹은 무우(霧雨)
우리말로는 안개비 혹은 는개라고 합니다.

여름에 푸른 잎에 떨어지는 비는 취우(翠雨) 또는 녹우(綠雨)라고 하고
겨울에 내리는 찬 비나 진눈깨비는 동우(凍雨)라고 합니다.

멀쩡하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흔히 취우(驟雨) 또는 급우(急雨)
라고 하는데 간혹 백우(白雨)라고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비의 양이 갑자기
많아지거나 바람이 같이 불면 빗줄기가 뽀옇게 되는데 바로 이런 경우에 백
우(白雨)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古木寒雲裏 찬 구름 속 고목 서있고
秋山白雨邊 뽀얀 비 가을산에 내리네
暮江風浪起 저문 강에 풍랑 일어나
漁子急回船 어부는 화급히 배를 돌린다 <龍山> -김득신-

바람 부는 용산 강가.. 비가 올 듯 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갑작스럽게
쏟아집니다. 당황한 어부는 급히 강가로 배를 돌립니다. 저문 강에 풍랑이
인다고 했으니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고, 바람 때문에 비 역시 뽀얗게 내리
는 것입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라도 이럴 땐 취우(驟雨)나 급우(急雨)보다
는 백우(白雨)라는 말이 참으로 어울리는 말입니다.

긴 가뭄 끝에 학수고대하던 비가 오면 흔히 단비라고 말합니다. 여러달
동안 바싹 말라 갈라진 땅을 흠뻑 적셔주는 비는 생명의 물같이 달콤할
것입니다. 감우(甘雨)이지요.. 너무 기뻐서 희우(喜雨)라고도 하는데 단비
가 너무 반가워서 희~죽 웃는 농부의 얼굴이 글자의 모습에서 연상됩니다.

때맞춰 내리는 좋은 비를 호우(好雨) 영우(靈雨)라고도 하지만, 이런 반
가운 비를 어느 시인은 가우(佳雨)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농촌의 모내기 철
에 가물면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가 그치지 않고 연일 주룩주룩 내리기만 해도 좋지는
않습니다.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특히 밤에 흠뻑) 내려주고 금새 맑아져
서 밭일 들일을 편히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야말로 기특하고도 아름다운
비 즉 가우(佳雨)인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친구 같은....

泊舟臨古渡 옛 나루에 배를 대니
片雨過前村 앞 마을에 소낙비 지나가네
沽酒人歸岸 사람은 술을 사러 강 언덕으로 가고
垂楊半掩門 수양버들이 반쯤 문을 가렸네

<김 계수의 그림에 붙여> - 백광훈 -


승구(承句)의 편우(片雨) 라는 말이 눈길을 끕니다. 조각비 즉 잠깐 내리
고 마는 비라는 뜻이니 소낙비로 해석해도 될 것 같지만, 조각(片)의 의미

를 살린다면 양이 많지 않게 살짝 내리고 마는 비 혹은 여우비 정도로 해석

해도 될 듯 합니다.

 

 密陽嶺南樓(밀양영남루)-金季昌(김계창)


眼豁東南萬里天(안활동남만리천) : 눈길이 동남 만 리 하늘까지 탁 트이고
一區形勝屬樽前(일구형승속준전) : 한 구역의 경치가 술잔 앞에 놓여있다
詩成片雨無心處(시성편우무심처) : 시는 가랑비 무심히 내리는 곳에서 지어지고
興逐長江不盡邊(흥축장강부진변) : 흥은 긴 강물이 끝없이 흘러가는 곳에서 일어난다
鷗逐驚沙晴湧雪(구축경사청용설) : 갈매기는 솟아오른 맑은 눈 같은 모래톱에서 놀고
牛眠芳草綠生煙(우면방초녹생연) : 소는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풀밭에서 잠잔다
主人慴識遊人意(주인습식유인의) : 주인은 나그네 뜻을 알고
笑領春風入醉筵(소영춘풍입취연) : 웃으며 봄바람 데리고 술자리로 들어간다.

 

장마는 글자의 뜻에 따라 임우(霖雨),
적우(積雨) 또는 구우(久雨)등으로 표현하지만, 매실(梅實)이 익을 무렵에

내린다고 하여 매우(梅雨)라는 예쁜 이름으로도 표현합니다. 장마가 길어

서 지리할 땐 장마를 매우(梅雨)라고 부르면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

겠지요.

 

또 다른글~~

 

취우(醉雨)

不來待舊奚以然(불래대구해이연)-기다리게 해 놓고 오지 않는 벗이여~~~ 어이하여?

醉雨窓外似夢幻(취우창외사몽환)-몽환 같은 비에 취해 창밖을 보다가

何時許兮起尤患(하시허혜기우환)-언제쯤이나 오려나? 많이 걱정되네.

今只揷花心爲閑(금지삽화심위한)-마음 한가해지려 지금 나는 그냥 꽃을 꽂는다.

오복님(吳福任)

몽환(夢幻) 같은 봄비에 취해

한자(漢字)는 비()에 따라 문학적으로 그 표현을 여러 가지로 나타낸다.

겨울에 얼음입자의 상태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동우(凍雨), 냉우(冷雨), 한우(寒雨).

봄에 실비같이 가늘게 내리는 세우(細雨)

수만 마리 말이 대지를 달릴 때의 모습으로 퍼붓는 소나기 취우(驟雨).

소나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취우부종일(驟雨不終日)에서 나온 말이다.

조선조 선조 중종 때의 시인 백광훈(白光勳)은 잠깐 내리고 지나가는 소나기

여우비를 조각비(片雨)라고 하면서 아래의 시를 지었다.

泊舟臨古渡(박주임고도)-옛 나루에 배를 대니

片雨過前村(편우과전촌)-앞 마을에 소낙비 지나가네

沽酒人歸岸(고주인귀안)-사람은 술을 사러 강 언덕으로 가고

垂楊半掩門(수양반엄문)-수양버들이 반쯤 문을 가렸네

백광훈(白光勳)

소나기가 갑자기 퍼부을 때 바람이 불어 빗줄기가 뿌옇게 보이는 백우(白雨)

조선 후기의 시인 김득신(金得臣)은 한강(漢江)의 용산(龍山) 강변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한강에 풍랑(風浪)이 일어 어부(漁夫)들이 급히 배를 돌리고 있다.

그때 바람 때문에 비의 옆구리가 뽀얗게 보이는 것을 보고 아래

백우(白雨)라는 시를 썼다.

백우(白雨)

古木寒雲裏(고목한운리)-찬 구름 속 고목 서있고

秋山白雨邊(추산백우변)-뽀얀 비 가을 산에 내리네

暮江風浪起(모강풍랑기)-저문 강에 풍랑 일어나

漁子急回船(어자급회선)-어부는 화급히 배를 돌린다

김득신(金得臣)

비의 량이 많이 내려 피해를 주는 폭우(暴雨) 분우(盆雨)

분우(盆雨)는 큰 물동이 물이 거꾸로 쏟는 것처럼 비가 내린다는 뜻의

경분대우(傾盆大雨)에서 나온 말이다.

장대처럼 줄기차게 많이 내리는 호우(豪雨)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 뇌우(雷雨)

매실 익을 때 6월 전에 내리는 비 매우(梅雨)

땅을 충분히 적실 정도로 내리는 비 투우(透雨)

사흘 이상 내리는 장마비 임우(霖雨)

때맞춰 적절하게 내린다는 급시우(及時雨)

가뭄으로 바싹 말라 갈라진 땅을 흠뻑 적셔주는 비는 생명의 물같이 달콤하다.

이런 비를 감우(甘雨)라 한다.

가뭄에 오는 비는 너무 기뻐서 희우(喜雨)라고도 한다.

지금의 합정동에 세종대왕이 이곳으로 행차하여 연회를 베풀다가 마침 비가 내려 들과 산들을 적시자 그에 감흥 하여 희우정(喜雨亭)”을 지었다.

그후 망원정(望遠亭)으로 바꾸었는데 오늘날 망원동의 이름의 유래다.

창덕궁에도 희우루(喜雨樓)” 건물이 있다.

본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정조가 건물을 수리하면서 한 달간 가뭄 끝에 비가

내리자 신하들의 건의로 기쁜 비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가랑비나 이슬비는 양이 적어 빗발이 가는 비라는 뜻으로

소우(小雨) 미우(微雨)라고 표현한다.

양이 적어서 성글게 내리는 비는 소우(疎雨)

짐승의 가는 털처럼 부드럽게 내리는 비를 연상하는 모모우(毛毛雨)

빗발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 연기같은 비 연우(煙雨)

안개같은 비 무우(霧雨)

여름철 푸른 잎에 떨어지는 비는 취우(翠雨) 또는 녹우(綠雨)

봄비에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부는 바람에 꽃잎이 가련하게 떨어진다.

바람이 불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세월이 흐르기에 꽃잎도 지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꽃잎을 떨어지게 하는 봄비를 잔인하다 하였지만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봄밤에 오는 기쁜 비를 아래같이

노래한다.

봄밤의 기쁜 비(春夜喜雨)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 시절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봄을 맞아 내리누나

随風潜入夜(수풍잠입야)-바람 따라 밤에 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소리 없이 적시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들길 구름 어둡고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강 배 불빛 홀로 밝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새벽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금관성에 꽃이 가득

두보(杜甫)

시인은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대지을 적시는 소리 없는 봄비소리의 기척,

멀리 고깃배 불빛에 비치는 봄비,

밤사이 저 봄비를 맞고 금관성 일대의 꽃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라 했다.

봄비는 잠든 사물을 깨우고, 뒤척이던 꽃들을 깨웠다.

속옷 젖는 줄도 모르게 요정(妖精)의 치맛자락같이 하늘하늘 하듯 봄비가 내린다.

오복님 시인은 이런 봄비를 꿈속에 취한 비 취우몽환(醉雨夢幻)”이라 한다.

막걸리에만 취하는 줄 알았는데 봄비에도 취하는 구나

인생이란 봄비에 취하듯 잠깐 몽환(夢幻)에서 깨어나면

세월은 남가일몽(南柯一夢)처럼 지나가고

주름진 얼굴에 허탈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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