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유 흠(劉歆)

2013. 11. 20. 09:11사람과사람들

 

  중국 전한(前漢) 말기 고문경학파(古文經學派)의 창시자, 목록학자, 천문학자.

자는 자준(子駿). 후에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유향(劉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시경 詩經〉·〈서경 書經〉의 학문에 정통하고 문장에도 탁월했다.

성제(成帝) 때 왕망(王莽)과 함께 황문랑(黃門郞)이 되었으며, 중루교위(中壘校尉)를 지냈다.

BC 26년(河平 3)에 아버지 유향이 조정의 장서(藏書)를 교감(校勘)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그도 함께 참여하여 유향의 〈별록 別錄〉을 계승하고 〈칠략 七略〉을 편찬했다.

이 책은 집략(輯略:총론)·육예략(六藝略)·제자략(諸子略)·시부략(詩賦略)·병서략(兵書略)·수술략(數術略)·방기략(方技略)을 포괄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한서 漢書〉 예문지(藝文志) 속에 보존되어 있으며, 중국 목록학을 건립하는 데 공헌했다.

스스로 〈주례 周禮〉·〈좌전 左傳〉·〈모시 毛詩〉·〈고문상서 古文尙書〉 등의 고문경(古文經)을 발견하고,

그것들이 민간에 전수된 상황을 이해했다고 했다.

또한 그것들을 위해 학관(學官)을 세우자고 건의했으나,

금문경학박사(今文經學博士)의 반대에 부딪쳤다.

왕망은 정권을 잡은 뒤 고문경학박사를 만들고, 그를 '국사'(國師)로 삼았다.

그는 후에 왕망을 죽이려고 모의했다가 일이 누설되자 자살했다.

  저서로는 〈삼통역보 三統曆譜〉가 있으며, 원주형의 표준측량기를 만들었다.

측량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의 계산에 근거하면 사용된 원주율은 3.1547이었는데, 세칭 '유흠률'이라고 한다.

원래 문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명대에 〈유자준집 劉子駿集〉이 집각되었다.

출처 : 시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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