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9. 10:46ㆍ한시
贈李秀才行進 (증이수재행진) 이 수재 행진에게 주다
初秋風色撼梧桐 (초추풍색감오동) 초가을 날씨에 오동나무 흔들리니
雲物凄凄水檻空 (운물처처수함공) 풍경은 쓸쓸하고 물가 난간 비었구나
蘿逕客歸山影晩 (라경객귀산영만) 송라 길로 객이 가고 산 그림자 침침한데
綠荷香散雨聲中 (록하향산우성중) 비 듣는 소리 가운데 연잎 내음 흩어지네
* 撼 : ㉠흔들다 ㉡흔들리다 ㉢움직이다 ㉣요동시키다
* 凄 :쓸쓸할 처/차가울 처
* 檻 :난간 함,㉠난간(欄干ㆍ欄杆) ㉡우리 ㉢덫, 함정(陷穽ㆍ檻穽) ㉣함거(檻車: 죄인을 실어 나르던 수레)
㉤수레 소리 ㉥배 이름 ㉦막다 ㉧닫다 ㉨샘이 솟다
* 蘿 : 쑥 라, ㉠쑥 ㉡무 ㉢여라(선태류에 속하는 이끼) ㉣풀가사리(홍조류의 일종) ㉤울타리
㉥소나무겨우살이 ㉦담쟁이덩굴
* 松蘿 :송라과의 지의류. 안개가 잘 끼는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실타래처럼 주렁주렁 늘어져 달리는데, 누런 녹색이 돌며 가지가 갈라진다. 한방에서 이뇨제, 해열제, 거담제로 쓴다.
온대 지방의 높은 산에서 한대에 걸쳐 자라는데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逕 좁은 길 경, ㉠소로 ㉡자취 ㉢지나다 ㉣가깝다 ㉤지르다 ㉥곧 ㉦당장
* 荷 멜 하/꾸짖을 하/잗달 가 : ㉠메다, 짊어지다 ㉡부담하다(負擔--) ㉢책임지다(責任--) ㉣담당하다(擔當--)
㉤꾸짖다, 따져 묻다(=訶) ㉥은혜(恩惠)를 입다 ㉦짐, 화물(貨物) ㉧부담(負擔)
㉨책임(責任) ㉩담당(擔當) ㉪연, 연꽃
ⓐ잗달다(=苛:하는 짓이 잘고 인색하다)(가) ⓑ자질구레하다 (가)
ⓒ번거롭다 (가) ⓓ까다롭다 (가)
秀才 : 수재라는 두 자는 처음 《관자(管子)》에서 사용한 말로, 한(漢)나라 때는 과거(科擧)의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 후 광무제(光武帝) 때는 그의 휘(諱)가 ‘수(秀)’였으므로 이를 피하여 무재(茂才)라 하였습니다. 당대(唐代)에는 명경과(明經科) ·진사과(進士科)와 나란히 수재과를 두었으며, 송대(宋代)에는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를 모두 수재라 칭하였고, 명 ·청조에 이르러서는 현학(縣學)에 입학하는 생원(生員)까지도 수재라 칭하였다. 문학 작품에서 수재라 칭하는 경우는 재주는 뛰어나나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행진 : 이행진(李行進)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97(선조 30)에 태어나 1665(현종 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호는 사겸(士謙), 지암(止庵)으로 장악원 정(掌樂院正) 이후기(李厚基)의 아들입니다.
인조 2년(1624) 생원이 되었고, 인조 14년(1635), 증광문과에, 인조 24년(1646)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각각 급제하여 세자시강원 필선(弼善), 보덕(輔德), 홍문관 교리, 응교, 의정부 사인(舍人), 사헌부 집의, 사간원 사간, 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효종 5년(1654) 한성부 우윤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듬해 동지 겸 사은사의 부사로 북경에 다녀와서 이조 참판 · 도승지 · 대사헌을 역임하였고 현종 즉위년(1659)에 개성부 유수 ·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직설적 성품으로서 한때 공개석상에서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李元翼)을 비난했다가 문초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신흠(申欽, 1566년∼1628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경숙, 호는 상촌, 본관은 평산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감찰·병조좌랑.봉교.양재도찰방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 양재도 찰방으로 삼도 순변사 신립을 따라 조령 전투에 참가했으나, 신립이 패하자 강화에 들어갔다가 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이조좌랑, 지제교, 승문원교감을 거쳐 군기시정이 되고 이어 함경도어사, 의정부사인, 장악원정, 성균관사예, 종부시정, 세자시강원필선, 홍문관교리, 홍문관응교, 의정부사인, 홍문관전한 등을 역임하고 동부승지를 거쳐 형조참의, 승문원부제조를 지내고 병조참지, 우부승지, 이조참의, 예조참의, 대사간, 병조참의를 거쳐 가선대부에 승자되고 예문관제학을 거쳐 충무위부호군으로 좌천되었다가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거쳐 예조참판을 거쳐 병조참판, 홍문관 부제학, 성균관 대사성, 도승지, 예문관제학, 병조참판, 도승지를 거쳐 자헌대부에 오르면서 한성부판윤이 되고 병조판서, 예조판서, 상호군, 경기도관찰사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608년, 한성부판윤, 예조판서를 거쳐 숭정대부가 되고 동지경연사가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사헌으로서 세자 책봉 주청사가 되었고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필하라고 부탁 받은 7대신 중의 한 사람으로, 1613년 계축옥사 때에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우의정을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 세자를 모시고 전주에 피란갔다가 돌아와서 영의정이 되었다. 장유·이식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저서로 《상촌집》, 《산중독언》, 《야언구정록》 등이 있다.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동지성균관사, 예문관대제학을 지내고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등을 지내고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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