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9. 10:43ㆍ한시
舟下楊花渡 申用漑
양화나루에서 배를 타고 내리면서
水國秋高木葉飛(수국추고목엽비) 강 마을 가을 높고 나뭇잎 날리는데
沙寒鷗鷺淨毛衣(사한구로정모의) 모래사장 앉은 백구 나래 더욱 희구나
西風落日吹遊艇(서풍낙일취유정) 지는 해 저문 날 서풍에 배를 띄워
醉後江山滿載歸(취후강산만재귀) 취토록 마신후 강산 싣고 돌아가리
시의 내용은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성품으로 보아 각박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歸去來의 심정을 표현한 시이다.
그는 달빛 아래에 여덟 개의 국화꽃 분을 놓고 국화꽃을 손님을 대하 듯하며, 그 앞에 좋은 안주를 차려 놓고 술을 권하며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申用漑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개지(漑之), 호는 이요정(二樂亭)·송계(松溪)·수옹(睡翁).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숙주(叔舟)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면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배웠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8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권지승문원부정자·홍문관정자·수찬·교리를 지냈고, 1492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고, 직제학을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강직한 성품이 연산군의 비위를 거슬려 1502년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좌천되었다. 1503년 형조참판, 이어 예조참판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504년에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광(靈光)으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후 성희안(成希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고명(誥命)을 받아온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그뒤 우참찬·대사헌을 거쳐 이조·병조·예조의 판서, 우찬성을 역임했다. 1516년 우의정, 1518년 좌의정에 올랐다. 저서로는 〈이요정집〉이 있고, 편서로 〈속동문선 續東文選〉·〈속삼강행실도 續三綱行實圖〉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대표적인 훈구 관료인 申叔舟의 손자이며 佔畢齋 金宗直의 제자로서 신진 사림들과 교분을 두터이 하고 사림의 정신에 입각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문경공 신용개는 할아버지 申叔舟와 달리 천품이 호탕하고, 탁월한 절개가 있었다고 한다.
홍일동. 손순효, 신용개는 조선시대 3대 주호(酒豪)로 불려진다.
무예에도 뛰어나 문무를 겸하고, 글씨에도 뛰어났는데 초서(草書)와 해서(楷書)를 잘 썼다.
저서로는 《이요정집》이 있고, 편서로는 《속동문선》․《속삼강행실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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