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동양화가 말을 걸다 ③④

2013. 1. 9. 10:36한국의 글,그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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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말을 걸다 ③ 안도 히로시게 ‘다마가와 강둑의 벚꽃’

 

하늘은 특정한 사람만 인자하게 대하지 않는다

 

 

일요일에 약속이 있어 여의도에 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벚꽃이 절정을 이루는 날이었다. 서강대교를 건너자마자 인도에는 벚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로는 차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횡단보도며 편의점 앞에도 줄을 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연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들도 있었고 우울한 표정으로 혼자 걷는 남자도 있었다. 거대한 인파에 떠밀리듯 위태롭게 걷고 있는 노부부도 눈에 띄었다. 겨우내 집에 웅크리고 있다가 거리로 나온 듯 상춘객들은 다양했다.
   
   
   벚꽃을 찾아 나선 사람들
   

▲ 안도 히로시게 ‘다마가와(玉川) 강둑의 벚꽃’ 일본, 1857년, 37.4×25.3㎝, 일본 개인 소장

 

 

안도 히로시게(安藤廣重·1797~1858)의 ‘다마가와(玉川) 강둑의 벚꽃’ 또한 여의도 풍경과 다르지 않다. 강둑에는 화사하게 만개한 벚꽃이 붉게 사그라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줄지어 서 있다. 봄을 찾아 나온 상춘객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꽃처럼 들떠 있다. 좀처럼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이라지만 가슴속에 담긴 뜨거운 흥분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명소에도백경(名所江戶百景)’이라고 적힌 제목과 ‘히로시게 작’이라는 뜻의 ‘광중화(廣重畵)’에 칠한 붉은색이 파란 강물과 대비되면서 풍선처럼 경쾌하다. 왼쪽 담장 안에 핀 홍매화와 여인들이 입은 붉은 기모노 자락이 제목과 호응하는 구도도 산뜻하다.
   
‘명소에도백경’은 막부 세력이 에도(江戶)에 수립한 신흥도시의 아름다움을 우키요에(浮世繪·목판화)에 담은 내용이다. ‘새조차도 둥지를 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척박한 도시 에도가 후세 사람들의 뇌리에 아름다운 장소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와 안도 히로시게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서다. 두 사람 모두 ‘팍스 도쿠가와’로 평가받는 막부 통치체제의 안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 풍조로 자리 잡은 여행 붐에 맞춰 풍경판화를 제작했다.
   
여행자들은 짐을 꾸릴 때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통속소설과 함께 교토, 에도, 오사카 등 각지의 명소를 그린 풍경판화를 함께 넣었다. 우키요에 작가들은 처음에 감상자의 예민한 요구를 반영하여 풍경판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와 안도 히로시게의 풍경판화 시리즈는 그들이 발견한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다. 유럽에 ‘자포니즘’ 열풍을 일으킨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은 강렬하면서도 역동적이다. 반면 후배 격인 안도 히로시게의 작품은 서정적이면서도 시적이다. ‘다마가와 강둑의 벚꽃’은 자연을 바라보는 안도 히로시게의 개성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벚꽃을 사랑하는 이유
   
여의도와 그림 속 상춘객들 사이에는 150여년이라는 긴 시간의 강이 흐르고 있다. 여의도와 도쿄라는 장소 또한 시간의 강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시공간이 전혀 다른 두 장소의 상춘객들이 한결같이 벚꽃을 보고 행복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도 좋아하고 연인들도 좋아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벚나무는 단지 봄이 되어 꽃을 피웠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뛰쳐나간다. 꽃이라면 무조건 반색하며 환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꽃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이 가장 클 것이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꽃가지에서 일시에 피어나는 꽃 타래를 보면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도 생명의 경이로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겉으로 드러난 화사함 때문이라면 뭔가 부족한 대답이다. 외면적 아름다움만 얘기한다면 성질 고약한 미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출중한 미모는 아니지만 마음씨 고운 여인을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적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꽃이 지니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꽃이 베푸는 보시(布施)의 공평무사함에 있을 것이다. 벚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줌에 차별이 없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만 특별히 예쁜 모습을 골라서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인색하게 감추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싱싱한 연인들에게도 무뚝뚝한 중년에게도 힘없는 노인에게도 연약한 어린아이에게도 꽃은 아름다움을 선사함에 한 치의 차별이 없다. 이것이 자연의 공평무사함이고 인자함(仁)이다.
   
노자(老子·BC 6세기경)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이런 자연의 공평무사함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하고 ‘천도무친(天道無親)’한다 했다. ‘하늘과 땅은 치우친 사랑을 베풀지 않고’ ‘하늘의 도(道)는 특정한 사람을 골라서 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늘과 땅은, 평생을 빈민구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 마더 테레사 같은 성녀에게만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산속 깊은 암자에 숨어 몇 년째 장좌불와(長坐不臥)하는 선승(禪僧)에게도 베풀고, 경찰서 취조실의 아동성추행범에게도 베푼다.

하늘의 도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한 농부하고도 친하지만 법망을 피해 불로소득을 취한 탈세혐의자하고도 친하다. 하늘과 땅의 도는 절대평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생길이 선인과 악인으로 갈라지는 것은 하늘의 도가 불공평하기 때문이 아니다. 똑같이 태양빛을 받고 자라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땅의 도리 때문이다. 결국 선인과 악인은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하늘과 땅의 도를 따라 그렇게 살 뿐이다. 내가 어떤 씨앗을 뿌려 가꿀 것인가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렸다.
   
   
벗꽃에 배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서 하늘과 땅의 도를 닮은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이 벚꽃의 공평무사함을 닮게 되면 이 세상에 다툼이 없어질 것이다. 벚꽃은 어떤 경우에도 잔소리가 없다. 간섭이 없다. 민첩한 사람에게도, 굼뜬 사람에게도 그 행동을 탓하지 않고 함구한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사람은 벚꽃이 될 수 없지만 벚꽃의 인자함(仁)은 닮을 수 있다. 더딘 사람이 넘어지고 깨지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성질 급한 사람이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것이 인(仁)이다. 상대방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벚꽃에 배워야 한다. 회의 때 사사건건 내 의견에 토를 다는 상사가 거슬린다면 그 사람 역시 벚꽃에 배워야 한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 내 종교만이 최고라는 사람, 내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사람도 벚꽃에 배워야 한다. 벚꽃이 가르쳐주는 자연의 도리를 배워야 한다.
   
얼마 있으면 천지를 뒤덮으며 골고루 사랑을 베풀었던 벚꽃이 질 것이다. 벚꽃이 진다고 울면 안 된다. 벚꽃이 지고 나면 철쭉이 필 것이다. 철쭉이 진다해서 울면 안 된다. 모란이 피기 때문이다.

모란이 지고 나면 울어야 할까, 울 일이 아니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것이 도(道)라면, 꽃이 지는 것도 도(道)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의 길이다. 꽃이 피어 공평하게 베풀었듯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도 자연의 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을 서러워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 추억이라는 열매가 열리기 때문이다. 서러워하려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앉은 사람을 전폭적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탓해야 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노자의 이 가르침을 여의도 벚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꽃같이 사는 법에 대해, 나도 꽃처럼 고민해본다.

 

 

 

 

 

동양화가 말을 걸다 ④ 김홍도 ‘마상청앵도’

 

선비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김홍도 ‘마상청앵’ 종이에 연한 색, 117.2×52㎝, 간송미술관

황금빛 수양버들이 한가로운 냇가에 갔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의 몸짓이 태평무를 추는 무녀의 팔사위처럼 현란하면서도 우아하다.

냇가 건너편 길은 며칠 전 천둥 번개로 패대기쳐진 벚꽃으로 난장판이다. 애써 피워 낸 꽃을 생짜로 떨어뜨린 벚꽃은 붉은 꼭지 속에 버찌를 키우며 미련 없이 본질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다.

뿌리 내린 생명들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은 지금 몸살을 앓을 정도로 격렬하게 생을 충동질하고 있다.

평일 오전이라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미 은퇴한 듯한 남자들이 몇몇 짝을 지어 걷고 있었고 강아지를 데리고 걷는 주부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피 말리는 경쟁 속에 직접 발을 담그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만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말 타고 가다 봄의 소리를 듣다
   
그림 속 선비도 봄을 찾아 나선 것일까? 김홍도(金弘道·1745년~?)가 그린 ‘마상청앵(馬上聽鶯·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은 이즈음 풍경이다. 시자(侍者)가 끄는 말을 타고 가던 선비가 언덕길에서 새소리를 들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올 때부터 줄곧 들려오던 새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노란 꾀꼬리 두 마리가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그냥 스쳐 지나갈까 하다가 그 노는 모습이 하도 다정하여 잠시 말을 멈춰 서서 뒤돌아본다. 봄날의 시정(詩情)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작품이다.
   
나무 그늘이 만들어 놓은 공간 아래 주제가 되는 인물을 그려 넣는 구도는, 예로부터 작가들이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를 그릴 때 흔히 쓰는 고전적 수법이다. 김홍도는 이 작품에서 전통적 구도를 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새롭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이유는 화면을 운용하는 탁월한 감각 때문이다. 선비가 고개를 돌려 꾀꼬리가 앉아 있는 버드나무를 쳐다보자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선비의 시선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분명히 말 탄 선비인데 선비의 시선을 통해 교감을 나눈 버드나무와 꾀꼬리의 존재가 부각된다. 시선 처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선비의 시선은 선비와 꾀꼬리와 관람자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기존의 소경산수인물화 속의 나무가 그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장치에 불과했다면 ‘마상청앵’에서의 버드나무는 주인공만큼 중요해졌다. 기존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막힌 화면 구성이다. 
   
감탄할 것이 어디 구도뿐이랴. 필법과 묵법 또한 절묘하다. 가는 선묘로 처리한 인물과 몰골법(沒骨法·형태의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바로 먹이나 물감으로 그리는 화법)으로 그린 말의 대비가 그만이다.

선비와 시자가 입은 옷은 선으로 그려 몸을 감싸고 있는 의복의 기능을 강조했다. 반면 몰골법으로 그린 말에서는 부드러운 털의 질감이 느껴진다. 이런 대비는 버드나무에서도 반복해서 적용되었다. 두꺼운 껍질로 뒤덮인 줄기의 아랫부분을 구륵법(鉤勒法·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그린 다음 그 가운데를 색칠하는 화법)으로 그려 연륜을 표현했다면, 연녹색 잎사귀가 돋아난 가지는 몰골법으로 그려 연약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안정된 구도 속에서 말과 버드나무와 꾀꼬리에 칠한 연한 물감이 길가에 자라난 풀과 맞물려 봄의 운치를 더해준다. 
   
   
선비의 눈을 통해 본 버드나무와 꾀꼬리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쳐다보고 있는 선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그림을 볼 때마다 항상 그것이 궁금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길을 가던 선비가 새소리에 무심히 고개를 돌려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유자적한 선비가 봄나들이 삼아 자연을 감상하며 시를 짓는 장면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럴 때 그림 속 주인공의 행동은 넉넉한 집안 양반의 유한 취미 정도로 비쳐진다. 상단에 적힌 이인문(李寅文·1745~1821년)의 제시도 여유로운 사람의 넉넉한 삶의 운치를 암시하고 있다.
   
   
‘가인은 꽃 아래에서 천 가지 피리 소리를 듣고(佳人花底簧千舌), 
   
시인은 술독 앞에서 한 쌍의 귤을 보는구나(韻士樽前柑一雙). 
   
언덕 위 버드나무를 어지러이 누비는 저 꾀꼬리(歷亂金梭楊柳岸), 
   
안개와 비를 엮어 봄의 강을 짜누나(惹烟和雨織春江).’
   
   
제시를 쓴 이인문은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그린 사람으로 김홍도하고는 아주 가까웠다. 김홍도는 때때로 이인문, 김응환(金應換), 신한평(申漢枰) 등과 함께 강희언(姜熙彦)의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러니만큼 ‘마상청앵’에 제시를 쓸 때도 김홍도의 제작의도를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다. 이인문이 쓴 제시에서는 봄날을 완상하는 선비의 넉넉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게 전부일까? 목소리 고운 꾀꼬리 소리에 반한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굳이 다른 나무도 아닌 버드나무 위에 앉은 새를 보고 있는 선비의 마음은 어떠할까.

버드나무는 한시(漢詩)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특히 이별의 장소에는 어김없이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다. 왕유의 시에도 정지승의 시에도 정몽주, 서거정, 이정구의 시에도 버드나무는 이별의 슬픔으로 울먹거리며 측은하게 서 있다. ‘천안삼거리 흥~능수야 버들은 흥~’으로 시작되는 민요 속의 천안삼거리에도 버드나무가 있다. 세 갈래 길로 갈라지는 삼남대로의 분기점에 버드나무를 심은 뜻은 거꾸로 꽂아도 살아나는 버드나무처럼 어딜 가더라도 건강하라는 격려가 담겨 있을 것이다.

헤어지는 사람이 정인(情人)이라면 ‘잠자는 창밖에 심어 두고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라고 했던 기생 홍낭의 연정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건 어떠한가.
   
   
‘수양버들 시냇가에 비단 빨래 하노라니
   
흰 말 탄 선비님이 손 잡으며 정을 주네.
   
손 끝에 남은 향기야 차마 어이 씻으리.’
   
- 이제현 ‘손 끝에 남은 향기’(손종섭 해석)
    
   
비단 빨래를 하는 것을 보니 화자(話者)는 여인일 것이다. 흰 말 탄 선비가 지나가다 여인의 손을 잡았다. 길 가던 사람이야 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손을 잡힌 여인은 님에 대한 생각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혹시 그림 속의 선비가 방금 전에 빨래터를 지나갔던 사람은 아닐까.

장난 삼아 한 행동이었는데 버드나무 위에 앉은 꾀꼬리를 보자 그녀가 떠올랐을 것이다. 유리왕(瑠璃王)이 지은 황조가(黃鳥歌)에서처럼 ‘펄펄 나는 저 꾀꼬리’가 암수 서로 정다운 것을 보고 갑자기 외로워졌는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는 떠나간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오늘도 그림 속에서 인생을 만나다
   
버드나무를 보며 걷다 보니 냇가 곁에 뒷산으로 길이 나 있는 삼거리까지 왔다. 산에 오를까 말까 잠시 망설이며 서 있는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 또래쯤 되었을까. 그는 이제 막 산을 향해 오르려는 듯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서 있었다.

삼거리 길에 심어진 버드나무에는 꾀꼬리 대신 까치가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는 스틱을 짚고 서서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을 보니 팔자 좋은 사람이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돌아서려다 말고 나는 그 자리에 딱 멈춰서고 말았다.

아, 수심이 가득한 그의 표정이라니.

 

몇 년 전에 남편이 실직했을 때 봤던 바로 그 표정이 아닌가. 그때 남편은 버드나무가 피는지, 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사람이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리며 건조하게 봄소식을 전해주었다.

저 남자도 그러겠지. 그림 속의 인물도 그랬을까. 그러고 보니 어쩐지 눈빛이 슬퍼 보이더라니.

삭탈관직되어 낙향하는 길에 암담한 심정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더란 말인가.

진심으로 그림을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이여. 막막한 인생을 헤쳐 나가는 것의 지난함이여.

오늘도 나는 그림 속에서 인생을 만나는구나.

 

/ 주간조선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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