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吾唯知足

2012. 6. 6. 11:14알아두면 조은글

吾唯知足





 

이야기 하나..

 

옛날에 한 심부름꾼이 상인과 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강가에 앉아 밥을 먹으려 했다.
그때 느닷없이 까마귀떼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라며 몹시 언짢아하는데, 심부름꾼은 도리어 씩 웃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상인은 심부름꾼에게 삯을 주며 물었다.

"아까 까마귀들이 울어댈 때 웃는 이유가 무엇인가?"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으니 그?죽이고 보물을 가지면 자기들은 시체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데 자네는 어떤 이유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나는 전생에 탐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 과보로 현생에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탐욕심으로 강도질을 한다면 그 과보를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또 다른 이야기 하나 더..

 

1519년 서른네 살 김정국(金正國:1485~1541)은 기묘 사화로 선비들이 죽어나갈 때,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집으로 낙향을 해 고향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불렀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인데, 녹봉도 끊긴 그가"팔여"라고 한 뜻을 몰라 친구가 새 호의 뜻을 묻자, 은퇴한 젊은 정객은 웃으며 말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했네."

김정국의 말을 듣고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知足不辱

[字解]
知(알 지)
足(흡족할 족,발 족)
不(아닐 불)
辱(욕되게 할 욕)

[意義]
만족(滿足)할 줄 아는 사람은 욕(辱)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出典]
노자(老子) 44장

[解義]
이 장에서 명리(名利)를 중시하는 유가적(儒家的) 가치관을 배격하는 노자의 지족(知足), 지지(知止)의 처세관이 잘 나타나 있다.

"명성과 생명, 어느 쪽이 더 절실한가? 생명과 재화(財貨),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는가? 명리(名利)를 얻는 것과 생명을 잃는 것, 어느 쪽이 더 근심이 되는가? 이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낭비하게 되며, 많이 감추게 되면 반드시 두텁게 잃게 된다. 족한 것을 알면 욕되지 아니하며, 그칠 것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 비로소 장구(長久)할 수 있다."

[原文]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득여망숙병.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시고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類似語]
知足常樂(지족상락: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즐거움)
知足常足(지족상족:있는 그대로를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부족함이 없음.)

[參考]
수필로 읽는 東洋古典 - 守分知足
安秉煜-崇實大學校 名譽敎授

우리는 어떤 生活信條를 가지고 살아야 하느냐. 우리는 어떤 人生訓과 處世知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느냐. 朝鮮朝의 슬기로운 선비들은 守分知足의 철학을 강조했다. 네 分數를 지키고 네 생활에 만족하여라.
이것은 참으로 인생의 聰明한 智慧다.

"너 自身을 알아라."
그리스 말로는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이다.
영어로는 Know thyself(노우 자이셀프)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살았던 古代 그리스의 七大賢人의 한 사람의 말이다. 서양 哲學의 始祖인 탈레스의 말이라는 說도 있고, 아테네의 유명한 賢人이었던 솔론의 말이라는 說도 있다. 누구의 말인지 分明치 않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이 하도 좋기 때문에 이 말을 自己哲學의 標語로 삼고 항상 강조하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말이 簡潔明快하면서 意味深長하기 때문에 이 말을 델포이 市에 있는 아폴로 神殿의 대리석의 하얀 正面壁에 아로새기고 생활의 信條, 行動의 길잡이로 삼았다.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것이 智慧의 첫째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分數와 職分이 있다. 나의 설자리가 어디고, 나의 할 일이 무엇이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고, 나의 使命이 무엇이냐.

우리는 먼저 자기의 本分과 分數를 알아야 한다. 분수를 아는 것이 知分이요, 분수를 지키는 것이 守分이다. 분수에 만족하는 것이 安分이다. 知分이나 守分보다도 安分이 次元이 더 높다. 安分은 자기의 人生에 대해서 安心立命의 태도를 갖는 것이다.

分數란 무엇이냐. 事物을 올바로 分別하는 슬기로운 智慧요, 자기의 身分에 合當한 행동과 生活을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철이 드는 것이다. 자기의 분수를 모르는 것을 '철不知'라고 한다. 스승은 스승의 身分이 있고 本分과 職分이 있고, 義務와 責任이 있다.

분수는 자기의 才能과 形便과 處地를 바로 알고 거기에 맞는 행동과 생활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분수가 있고, 아들은 아들의 분수가 있고, 사장은 사장의 분수가 있고, 과장은 과장의 분수가 있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생활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분수의 自覺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自覺이다.

분수에 맞는 것을 應分이라고 하고, 분수에 지나치는 것을 過分이라고 한다. 한 달에 이백만원의 收入이 있는 사람은 그 범위 內에서 생활해야 한다. 수입보다 支出이 많고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많으면 赤字가 누적되어 빚을 지게 되고 經濟生活의 파탄이 생긴다. 과분한 消費, 과분한 생활은 奢侈(사치)요, 浪費요, 철부지다.

인간의 慾望과 滿足사이에는 깊은 相關關係가 있다.
生卽慾.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욕망을 지니고, 그것을 달성하려고 奮鬪努力하는 것이다. 人間은 慾塊다. 욕망의 강렬한 덩어리다. 인간은 多元的 慾望의 主體다. 욕망은 社會發展의 原動力이요, 文明進步의 促進劑다. 욕망이 없으면 발전과 진보가 없다.

인간은 貪慾, 性慾, 財物慾, 權力慾, 名譽慾, 知識慾, 享樂慾, 消費慾, 成就慾, 創造慾 등 다종다양한 욕망을 갖는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충족시킬 때 성취의 기쁨과 滿足感을 느낀다.

욕망이 없으면 만족이 없다. 만족감을 느끼려면 욕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욕망을 내 재주와 능력으로 달성하지 못할 때 우리는 敗北感과 挫折感을 느낀다. 우리는 허욕과 과욕과 탐욕을 헛되게 추구하는 우매한 落伍者가 되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는 허욕의 노예, 탐욕의 포로, 과욕의 종이 되는 사람이 不知其數다.
鈍才가 자기를 英才로 착각하고 허망한 노력을 하면서 인생을 허송세월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자기의 재능을 過小評價해도 안 되지만 過大評價해서도 안 된다.
세상에 成功者와 勝利者는 매우 드물지만 落伍者와 敗北者가 많은 것은 자기의 意欲과 才能에 대한 誤判에서 由來한다.

守分知足의 哲學을 가장 강조한 것은 중국의 老子다.
老子는 그의 名著 『道德經』 제44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足한 줄을 알면 恥辱이 없고, 머무를 줄을 알면 危殆롭지 않다.
자기생활에 만족할 줄을 알고 헛된 利慾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過誤를 犯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한테 치욕을 당하지 않는다.
자기의 分數에 만족하고 머무를 줄 알면 위태로운 경지에 빠지지 않고 心身의 平安을 누릴 수 있다.
利慾에 빠지거나 貪慾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侮辱을 당하지도 않고 위태롭지도 않다.

"富在知足(說苑)"
說苑은 漢나라의 大儒 劉向이 편찬한 책이다. 富는 어디에 있느냐. 부는 知足에 있다. 眞正한 富는 한없이 物慾을 追求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으로 足하다고 스스로 만족할 때 진짜 부가 있는 것이다.

孟子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였다.
"養心 莫善於寡欲(孟子 盡心 下)"
인간의 精神을 修養하는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感覺的 욕망의 節制는 人間修養에 必須條件이다. 인간은 慾心이 너무 많으면 그 욕심에 사로잡혀서 정신의 수양이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孟子는 寡慾을 강조했다. 無慾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古代 中國의 선비들은 知足을 力說하고 재미있는 글자를 만들었다.
吾唯知足. 나는 오직 足한 줄을 안다. 입 구(口)字를 가운데 두고 위에 '五' 字를 쓰고, 우측에 '皚(추)'字를 쓰고, 좌측에 '矢'자를 쓰고, 口자 아래에 ○를 쓰면 五唯知足이 된다. 이 글자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自己修養과 知足의 工夫를 하였다.

인간이 財物慾이나, 權力慾에 사로잡히면 돈이나 권력 앞에 정신이 타락하고 양심이 마비되고 人格이 崩壞하여 醜雜한 俗物로 전락하고, 奸惡한 醜物로 變質한다.

옛날의 先哲은 "黃金黑士心" 이라고 갈파했다.
황금은 선비의 마음을 시커멓게 만든다.
선비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高麗末의 위대한 禪師 懶翁은 이렇게 말했다.
"在塵無塵 在慾無慾"
우리는 티끌 세상 속에서 살면서 티끌이 몸에 묻지 않아야 하고, 慾心의 세계에서 살면서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
懶翁의 말은 道人의 名言이다.

돈에는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이 있다. 正直과 勤勉으로 정성껏 번 돈처럼 세상에 高貴하고 神聖한 것이 없다.
勤勤孜孜. 나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번 돈은 이 세상에서 가장 尊貴하다. 그러한 돈은 절대로 浪費할 수 없고 虛費할 수 없다.
깨끗한 돈은 淨財요 淸富다. 더러운 돈은 不淨財요 濁富다.

우리는 淨財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는 淸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目標요, 건설해야 할 사회다.
淸富와 淨財로 살아가는 守分知足人,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韓國人像이다.

출처 : 범고래
글쓴이 : solp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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