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6. 운필 기교의 종류

2012. 3. 23. 14:56서예일반

 

16. 운필 기교의 종류

 

(1) 제안(提按)

기법의 표현에서 단지 중봉ㆍ측봉ㆍ장봉ㆍ노봉만 알면 충분하지 않다.  점과 획 자체의 활력은 운필 과정의 제안ㆍ경중ㆍ완급의 변화에 의하여 나타난다.  글씨를 쓰는 과정은 실제로 제안과 변환의 과정이다.  필봉을 종이 위에서 운행할 때 줄곧 ‘제’와 ‘안’을 갈마들어 운행하면서 경중ㆍ완급의 변화를 가하여야 점과 획에 생명의 활력을 갖출 수 있다.  이렇게 쓴 글씨는 활발하고 생동한 필묵ㆍ형상ㆍ신채ㆍ운치를 나타낸다.  이러한 ‘제안’에 대하여 유희재는 『예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글씨는 붓마다 누르고[按] 들어야[提] 한다.  누름을 변별하는 하는 것은 특히 붓을 일으킴에서 마땅하고, 들음을 변별하는 것은 특히 붓을 그치는 데에서 마땅하다.……서예가는 ‘제안’ 두 글자에서 서로 합함은 있고, 서로 떨어짐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용필이 무거운 곳은 모름지기 올려 들고, 용필이 가벼운 곳은 모름지기 착실하게 눌러야 비로소 무너지고 나부끼는 두 가지 병폐를 면할 수 있다.

凡書要筆筆按, 筆筆提. 辨按尤當於起筆處, 辨提尤當於止筆處.……書家於提按兩字, 有相合而無相離. 故用筆重處正須飛提, 用筆輕處正須實按, 始能免墮飄二病.

 

 이는 운필 과정에서 제안의 연속성과 필요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붓을 일으키는 곳에서는 ‘안’의 표현이 분명해야 하고, 붓을 그치는 곳에서는 ‘제’의 동작을 확실히 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제안과 경중의 변화에서 너무 무거우면 막히고, 너무 가벼우면 나부끼고, 매끄럽고, 얇고, 약함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운필이 무거운 곳은 들어 올리고, 운필이 가벼운 곳은 착실하게 눌러야 하니, 이 또한 ‘안’에 ‘제’가 있고 ‘제’에 ‘안’이 있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동기창은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에서 “붓을 펴는 곳은 문득 붓을 들어 일으켜 스스로 쓰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發筆處便要提得筆起, 不使其自偃].”라고 하였다.  이 말 역시 ‘안’에 ‘제’가 있어야 점과 획이 딱딱하거나 막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안’의 기교에서 ‘안’은 비교적 쉽게 장악할 수 있지만, ‘제’를 장악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에 대하여 동기창은 『화선실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용필의 어려움은 굳셈에 있다.  그러나 굳셈은 성난 필치로 딱딱하고 억지로 함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강한 힘이 있는 사람이 온몸을 통하도록 하는 힘이니, 엎어지면 문득 일으켜야 한다.  글씨를 쓸 때 모름지기 붓을 들어 일으킬 수 있어야지 붓을 믿을 수 없다.  대저 붓을 믿으면 파획에 모두 힘이 없다.  들어 일으키면 한번 전환하고 한번 단속하는 곳에 모두 주재함이 있다.  ‘전속(轉束)’ 두 글자는 서예가의 비결이다.  지금 사람은 단지 붓을 주로 삼으니 아직 붓을 운용할 수 없다.

用筆之難, 難在遒勁, 而遒勁非是怒筆木强之謂, 乃大力人通身是力, 倒輒能起. 作書須提得筆起, 不可信筆, 蓋信筆則其波畫皆無力. 提得筆起, 則一轉一束處皆有主宰. 轉束二字, 書家妙訣也. 今人只是筆作主, 未嘗運筆.

 

이는 ‘제’의 요령으로 반드시 온 몸의 힘을 팔목에서 운용하여 글씨를 써야 비로소 마음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베풀지 아니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야 천변만화와 풍부하고 다채로운 예술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여기에서 “지금 사람은 단지 붓을 주로 삼으니 아직 붓을 운용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은 아직 붓을 들어 일으키지 못하고 붓에 묶여서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바대로 쓸 수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2) 전절(轉折)

‘전(轉)’은 글씨를 쓸 때 둥글게 전환하고 돌리는 데에 모나게 꺾어 능각이 없는 운필 기법을 말한다.

송나라 강기(姜夔)는 『속서보ㆍ진서(續書譜․眞書)』에서 “전은 막히려고 하지 않아야한다.  막히면 굳세지 않다[轉不欲滯, 滯則不遒].”라고 하였다.  ‘전’의 요령은 전환하는 곳에서 붓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단지 ‘제안’의 변화만 있고, ‘절’과 ‘돈’의 처리는 없다.  ‘절차고’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전서와 행초서에서 가장 많이 운용하고 있다.

‘절(折)’은 ‘전’과 서로 반대이니, 점과 획을 모나게 나타나도록 쓰는 운필 기법이다.  절의 기법은 대부분 방필 서예의 기필과 수필, 그리고 가로획과 세로획이 서로 접하는 곳에서 운용한다.  해서와 예서에서 가장 많이 운용하고 있다.  행서와 초서에서도 간혹 나타나고 있다.

 

(3) 경중(輕重)

용필의 경중은 작품의 풍격ㆍ특징과 관계가 있고, 예술효과도 이에 따라 서로 다르다.  용필이 가벼우면 편하고 수려하며 온화한 느낌이 든다.  용필이 무거우면 침착하고 질박하며 혼후한 느낌이 든다.

용필의 경중은 주로 필력의 강약에 있는 것이지, 결코 일분필ㆍ이분필ㆍ삼분필과 같이 붓털의 서로 다른 운용과 표현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일분필로 쓴다고 반드시 중후하지 않음이 없고, 삼분필로 쓴다고 점과 획이 반드시 가볍고 얇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완전히 운필할 때 힘을 제어하는 능력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성연이 『임지관견(臨池管見)』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용필의 법이 너무 가벼우면 뜨고, 너무 무거우면 막힌다.  적절하게 하여 좋은 곳에 이르면 곧 뜻을 얻음에 마땅하다.  당나라 사람의 묘한 곳은 바로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사이에 있고, 법도를 쌓으며, 풍신의 필치로 나타내는 데에 있다.  저수량이 이르기를 “글씨에서 금이 나오고, 행간은 옥같이 윤택하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추획사와 같고, 인인니와 같다.”라고 하였다.  우세남의 글씨는 칼을 빼어 물을 자르는 것 같고, 안진경의 절차고ㆍ옥루흔은 모두 필봉을 잘 사용하여 타당하고 기울지 않게 하였기 때문에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 잘 배우지 않은 사람은 치우치고 연약함에 빠지지 않으면 생경함에 빠지고, 얕고 경솔함에 빠지지 않으면 무겁고 막힘에 빠진다.  모양이 예스럽고 졸하면 오히려 무너지고 쓰러짐에 들어가고, 강하고 굳셈에 의탁하면 또한 고집 센 강함에 흐른다.  아직 용필의 헤아림을 알지 못하면 옛사람과 거리가 날로 멀어지는 것이 괴이하지 않다.

用筆之法太輕則浮, 太重則躓. 恰到好處, 直當得意. 唐人妙處, 正在不輕不重之間, 重規 疊矩, 而仍以風神之筆出之. 褚河南謂, 字裏金生, 行間玉潤. 又云, 如錐畵沙, 如印印泥. 虞永興書如抽刀斷水, 顔魯公古釵股, 屋漏痕, 皆是善使筆鋒, 熨貼不陂, 故臻絶境. 不善學者, 非失之偏軟, 卽失之生硬, 非失之淺率, 卽失之重滯. 貌爲古拙, 反入於頹靡, 托爲强健, 又流於倔强. 未識用筆分寸, 無怪去古人日遠也.

 

 여기서 말한 것은 모두 운필에서 경중의 파악을 강조한 것이다.  저수량이 “글씨에서 금이 나오고, 행간은 옥같이 윤택하다.”라는 것과 “추획사와 같고, 인인니와 같다.”라고 하면서 이를 옥루흔과 절차고에 비유한 것은 모두 중봉을 잘 운용한 말이다.  또한 가볍고 무겁고 급하고 느리지 않고 알맞게 하여 좋은 곳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비록 법도가 쌓였더라도 오히려 타당하고 기울지 않게 하였으므로 뜻을 얻은 절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운필 헤아림을 잘 인식하고 파악할 수 없으면 혹 연약하면서 골이 없고, 혹 강하면서 운치가 없고, 혹 가벼우면서 뜨고 경박하고, 혹 무거우면서 어리석은 점과 획이 이루어질 것이다.  모양이 마치 예스럽고, 졸하고, 강하고, 굳센 것은 실제로 연약하고 힘이 없어 억지로 조작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화갱(朱和羹)은 『임지심해(臨池心解)』에서 용필의 허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술하였다.

 

행초서를 쓸 때 가장 귀한 것은 허와 실을 아울러 나타내는 것이다.  필치가 허하지 않으면 둥글고 초탈함을 결핍하고, 필치가 실하지 않으면 침착함을 결핍한다.  전적으로 허한 필치를 운용하면 기름처럼 매끄럽게 되고, 전적으로 실한 필치를 운용하면 또한 형태가 막히고 어리석게 된다.  허와 실을 아울러 나타내면 허와 실이 서로 살아난다.

作行草最貴虛實幷見. 筆不虛, 則欠圓脫, 筆不實, 則欠沈着. 專用虛筆, 似近油滑, 專用實筆, 又形滯笨. 虛實幷見, 卽虛實相生.

 

용필의 허실은 운필의 경중과 같지 않다.  그러나 운필 기법으로 말하면, 경중과 허실은 확실히 분할할 수 없는 관계이다.  점과 획의 침착하고 착실함과 성글고 영활한 것은 운필의 경중에 달려 있다.

 

(4) 지속(遲速)

운필의 지속은 느낌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풍격 절주ㆍ운율의 변화를 나타내는 주요 요소이다.  실제 운용에서 이 두 가지는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없앨 수 없다.

붓을 내리는데 더디고 무거운 것으로 연미함을 취하고, 급하고 빨라야 비로소 유창하고 굳셀 수 있다.  그러므로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운필의 지속은 모름지기 유기적으로 배합하여야 비로소 이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한결같이 더디고 무겁게 하면 신기(神氣)를 잃고, 급하고 빠르게 하면 형세를 잃을 수 있다. 진나라의 왕희지는 『서론(書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서예는 침착하고 고요함을 귀히 여기고, 뜻이 붓 앞에 있도록 하며, 글씨는 마음 뒤에 있도록 하여 아직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 때 생각의 이루어짐을 맺어야 한다. 붓을 내리는데 급하게 운용하지 않기 때문에 모름지기 더디게 하라는 것은 무엇인가? 붓은 장군이므로 모름지기 더디고 무겁게 하는 것이다. 마음은 급하게 하고자 하나 마땅히 더디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은 화살촉이니 화살촉은 더디고자 하지 않는다. 더디면 사물에 적중하여 들어가지 않는다. 매 번 쓸 때 열 개는 더디고 다섯 개는 급하게 하려고 해야 한다.

凡書貴乎沈靜, 令意在筆前, 字居心後, 未作之始, 結思成矣. 仍下筆不用急, 故須遲, 何也. 筆是將軍, 故須遲重. 心欲急不宜遲, 何也. 心是箭鋒, 箭不欲遲, 遲則中物不入. 每書欲十遲五急.

 

 청나라의 송조(宋曹)는 『서법약언(書法約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느리면 연미함을 낳으니 자태를 어여쁘게 하지 말고, 빠르면 골을 만드니 근과 맥락을 끌지 말라.  빨리 할 수 있으면서 빠르므로 정신을 취하고, 마땅히 더딘데 더디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필세를 잃은 느낌이 든다.

遲則生姸而姿態毋媚, 速則生骨而筋絡勿牽. 能速而速, 故以取神, 應遲不遲, 反覺失勢.

 

 일반적으로 말하면, 서예를 처음 배울 때 운필은 마땅히 더디다.  안온하게 운필하여 숙련한 뒤에 점차 빠른 운필을 가하여야 하는데, 기본 공력은 ‘급(急)’과 ‘중(重)’에 있다.  이와 같은 기본 공력이 있어야 비로소 기초가 착실해진다.  급하게 할 수 있으면서 더디게 하지 않아야 하고, 무겁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가볍게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반복 훈련을 통하여 정미하고 익숙함을 운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하고자 바를 따르는 자유로운 단계 진입할 수 있다.  유희재는 『서개(書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역입ㆍ삽행ㆍ긴수는 행필의 중요한 기법이다.

逆入澁行緊收, 是行筆要法.

 

 이 중에서 ‘삽행’과 ‘긴수’는 모두 빠르고 무거운 것의 표현이다.  빠르고 무겁지 않으면서 삽필을 할 수 없는데 너무 급하게 하는 것은 병폐이다.  ‘긴수’에는 이미 빠르고 무거움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급하게 지나가도 병이 된다.  따라서 붓이 머무는 곳에서 가파르고 험준함이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역입은 필봉을 감추어 붓을 일으키는 것이니, 모름지기 빠르고 무겁게 하여 한다.  이와 같이 하여야 비로소 굳세고 힘이 있으며 안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희재는 『서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장욱의 글씨에서 미세하게 점과 획이 있는 곳은 의태가 스스로 족하다.  마땅히 미세하게 점과 획이 있는 곳을 알면 모두 필심이 착실하게 이른다.

張長史書, 微有點畫處, 意態自足. 當知微有點畫處, 皆是筆心實實到了.

 

 빠르고 무거운 운필에서 나타나는 필력이 없으면, 어떻게 점과 획이 있는 곳에서 모두 필심을 착실하게 할 수 있겠는가?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꽃담이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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