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갈명

2022. 3. 18. 07:30성리학(선비들)


23.<부정공>학생공휘구경묘갈명(學生公諱九卿墓碣銘)
學生公諱九卿墓碣銘 自古憸人之戕賢毒正覆亂邦家者何限而盖莫憯於本 朝辛壬之際矣梟獍之倫充斥朝著磨牙張瓜魚肉薦紳麟角折於機鋒鳳翼鍛於罿罻此乃大東之陽九也若統制使趙公爾重先己沒世雖未得目見禍色而平日之危言危行早被奸黨所齮齕竟與三將臣五節度並載丹書䀌矣尚忍言哉公字九卿淳昌氏肇自高麗侍中璋至孫元吉勳封玉川是生典農副正瑜罔僕自靖有孫四人以友于著第四房 贈參判智崗寔七世以上也以公貴貤三世諱瑭 贈司僕正縣監諱光弼 贈承旨府使諱碩耈 贈參判別提江陵崔嶪其外祖也公自少峻正不規規於進取 肅宗丙辰登武科庚申錄保社功階止嘉義官止防禦使其踐歷則内以爲司勇司猛司正訓鍊院主簿經歷都摠府都事經歷外以爲嶺南左虞侯安東營將穩城平山長湍府使水軍節度者三全羅左道京畿慶尚左道也兵馬節度者二黃海平安自三道統禦使遷統制使庚子特除春川兼防禦使病卒于官實四月小盡日也距其生癸巳享壽六十八墓于坡州惠陰之峴公之居官政令不苛而吏憚民懷軍無違紀所至皆有聲在平山也柳鳳輝遞西邑帶臺職將母赴京勢焰熏灼沿路供奉惟恐不及至平山只餉鳳輝其母不與焉鳳輝大恚杖餉吏叱之曰爾倅獨無母乎公聞之遂杖其傔曰供使星母者國與所無也鳳輝喊之嗾其黨彈劾則公乃坐謫然時論多之尹拯之背師也公在稠座斥其名而討其罪未幾出西閫矣彼邊人趙銑朴泰文者斥呼尤翁之名意被罪則其徒宋成明上疏曰大臣之名等斥呼也而一陟一黜賞罰不同豈非可骸之甚乎自是群小之蓄憾者日甚將投機而售之辛壬之前公己歿矣毒手無地可下則搆之以西閫納賂勒結爰辭削其官籍其家而罰及其嗣乙巳與死事諸臣同伸其冤還給吿身天道之好還盖如是夫向日之縱恣無憚殺害忠良者王章至嚴咸伏厥罪黑白分矣芳臭別矣國是於斯乎大定矣善其可不勸而惡其可不懲乎配綾城具氏父錫一男꺉株連而瘦一女適府使李夏範當公之伸枉꺉尚有罪名擧宗以公祀爲急取族子泰鼎繼其後擧三男斗臣允臣夢臣 英廟特召斗臣曰禍家後裔至老沉屈尤可衿惻仍授五衛將且賚玉圈貝纓而寵之先是 肅廟察公不阿稱之以剛直武夫其後 聖恩延于厥孫然則公之忠直己日星乎當時矣何待百世之公論哉公之後孫淵舜淵吉請余牲石之詞雖不文粗具彛性者其何忍辭銘曰玉川名門毓精鍾氣降人杰如矢之直如石之介剛如鐵丹心炳炳 王曰嘉乃握符節爲楨爲榦爲屏爲翰邊警絶忠肝義膽疾惡如讐縮姦孽吹彼巧簧成是貝錦被誣 莫曰凶焰延及泉壞猶撲滅天日重明覆盆回光快昭雪邦畿之西鈴平之原山巀嶭風而不磨雨而不泐穹彼碣 安東 金寗漢 撰 前承旨東江 학생공휘구경묘갈명(學生公諱九卿墓碣銘) 예부터 간사하고 아첨 잘하는 무리가 어진 이를 해치고 바른 것을 해하여 국가를 어지럽게 한 때가 어찌 한두 번 뿐이랴만은 대개 우리 나라 신임사화(辛壬士禍)같이 슬프고 슬픈 때는 없었다. 올빼미와 이리의 무리가 많아 조정 대신을 배척하고 이를 갈고 손톱을 세워서 이름 높은 학자들을 처단하니 기린의 뿔이 날카로운 칼날에 끊기고 봉의 깃이 새 그물에 걸린 때라 이것이 우리 동방에 큰 재난이었다. 통제사 조공 이중 같은 이는 그 이전에 이미 별세하여 비록 화색(禍色)을 목격하지는 못했으나 평소의 곧고 바른 말과 행실이 간사한 무리의 말머리가 되어 마침내 삼장신(三將臣)과 오절도(五節度)로 더불어 함께 단서(丹書)에 기록되었으니 슬프다.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공의 자는 구경(九卿)이요, 순창인인데 증참판 휘(諱) 지강(智崗)의 七세손이다. 공의 영귀로써 三세를 증직하여 휘 당(瑭)은 사복정현감(司僕正縣監)이요, 휘 광필(光弼)은 승지(承旨) 부사(府使)며 휘 석구(碩耈)는 참판이요, 외조는 별제 강릉 최업(別提江陵崔嶪)이시다. 공이 젊어서부터 마음이 청고(清高)하여 진취를 탐하지 않고 숙종(肅宗) 병진년에 무과에 올라 경신년에 보사(保社)공에 녹훈되어 가선질(嘉善秩)로 벼슬이 방어사(防禦使)에 그치었다. 그 관력(官歷)은 내직으로 사용(司勇)·사맹(司猛)·사정(司正)·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경력·도총부 도사를 거쳐 외직으로 영남좌우후(嶺南左虞侯)·안동 영장 온성(穩城)·평산장단 부사를 지내고 수군절도사 三회는 전라좌도·경기·경상좌도요 병마절도사 二회는 황패 평안이며, 상도통어사로 통제사가 되어 경자년에 특별히 춘천 겸 방어사에 제배되었는데 병환으로 이해 四월 二十九일에 관아(官衙)에서 별세하니 향년이 六十八세요 묘소는 파주 혜음현(惠陰峴)에 있다. 공이 관직에 있으면서 정령(政令)이 까다롭지 아니해도 아전은 두려워하고 백성은 생각하며 군대의 기강이 엄정하니 이르는 곳마다 명성이 있었다. 평산에 재직할 때 류봉휘(柳鳳輝)가 서읍(西邑)을 지내며 대직(臺職)을 띠고 그 어미와 함께 서울로 행하니 세도가 불꽃 같고 지내는 곳마다 대접이 잘못될까 걱정하였다. 평산에 당도하니 공은 봉휘만 먹이고 그 어미를 대접 아니하므로 봉휘가 크게 분노하여 아전을 매질하며 꾸짖어 가로되 『너희 사또는 홀로 어미가 없는가』하니 공이 듣고 마침내 그 종자를 나무라며 『사신의 어미를 접대하란 법은 나라 법전에 없다』하였다. 봉휘가 원한을 품고 그 무리를 사주하여 탄핵하므로 공이 그 때문에 귀양갔으나 시론(時論)이 분분하였고 윤증(尹拯)이 스승을 배반하니 공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그 이름을 지적하여 배척하며 그 죄를 의론하였다. 얼마 뒤에 서도 곤수(閫帥)로 부임하니 저쪽 사람 조선(趙銑)·박태문(朴泰文)등이 우암 송선생의 이름을 부르며 배척한 죄로 마침내 쫓겨나니 그 무리 송성명(宋成明)이 상소하되 『대신의 이름을 부르며 배척했다고 한 사람은 승진하고 한 사람은 쫓겨나니 어찌 심히 해괴한 일이 아닌가』하고 이로부터 뭇 소인배가 혐원을 품고 장차 갚을 기회를 노렸으나 신임년 이전에 공이 이미 별세하니 독수를 찌를 땅이 없었다. 그러자 공이 서쪽 지방에 뇌물을 상납했단 말을 허구날조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그 집을 적몰하며 형벌이 아들에까지 미치었는데 을사년에 이 일제 죽은 모든 신하와 함께 원통함을 신설(伸雪)하고 그 삭탈했던 관직을 되돌려 받으니 천도의 호환(好還)이 대개 이와 같은 것인가. 전일에 방종한 자와 거리낌 없이 충량(忠良)을 살해한 자에게 왕법이 지엄하여 다 그 죄에 굴복하니 흑백이 가려지고 향기와 악취가 구별되어 국가의 기강이 크게 정해지니 착한 것을 어찌 아니 권하며 악한 것을 어찌 아니 징계하겠는가. 배 능성구씨(綾城具氏)는 석(錫)의 따님으로 一남 흡(꺉)은 연루되어 죽고 一녀는 부사 이하범(李夏範)의 처며 공의 신원(伸冤)때에 흠이 아직 죄명(罪名)이 있으므로 종중에서 공의 봉사가 급하다 하여 족형의 아들 태정(泰鼎)으로 후사를 삼아 三남을 얻으니 두신(斗臣)·윤신(允臣)·몽신(夢臣)이다. 영조대왕이 두신을 불러 보시며 화가 후손이 백두(白頭)로 저와같이 침굴(沉屈)하니 더욱 측은하다 하시고 인하여 오위장 벼슬을 주고, 또 옥권패령(玉圏貝纓)을 하사하시며 총애하셨다. 앞서 숙종(肅宗)께서 공이 아부하지 않음을 살펴 강직한 무인이라 칭찬하시더니 그 뒤에 성은(聖恩)이 그 후손에게 뻗치었으니 공의 충직은 이미 당시에 해와 별처럼 빛났다. 어찌 장황한 공론을 기다리겠는가. 공의 후손 연순(淵舜)·연길(淵吉)이 나에게 생석에 새길 글을 청하매 비록 글은 못하나 대략 상성(常性)을 갖춘 사람으로 어찌 차마 사양하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한다. 옥천 명문에 정기를 기르고 모아 준걸한 사람을 내렸다. 玉川名門毓精鍾氣降人杰 화살같이 곧고 돌같이 굳어 쇠같이 강하도다. 如矢之直如石之介剛如鐵 붉은 마음이 빛나고 빛나니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부신과 절월을 주었다. 丹心炳炳王曰嘉乃握符節 기둥이 되고 밑 바탕이 되며 울타리가 되고 날개가 되니 변방의 소란이 끊기었도다. 爲楨爲榦爲屏爲翰邊警絶 충의간담으로 악을 원수같이 미워하니 간특한 요물이 움추렸다. 忠肝義膽疾惡如讐縮姦孽 저 공교롭게 하는 말을 부러 이 자개 무늬 비단을 이뤘으나 무고의 더러운 피를 입었다. 吹彼巧簧成是貝錦被誣 흉한 불꽃이 천대에 미쳤다 말하지 말라. 오히려 박멸되었다. 莫曰凶焰延及泉壞猶撲滅 해가 거듭 밟고 엎어진 동이에 광명이 돌아와 깨끗이 원통한 것을 씻었다. 天日重明覆盆回光快昭雪 방기의 서쪽 영평 언덕에 산이 높고 가파른데 邦畿之西鈴平之原山巀嶭 바람에 마멸되지 않고 비에도 끄떡하지 않는 높은 저 비돌이로다. 風而不磨雨而不泐穹彼碣 安東 金寗漢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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