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서趙之瑞
2018. 5. 1. 16:07ㆍ성리학(선비들)
조지서
다른 표기 언어 趙之瑞
출생 | 1454(단종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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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04(연산군 10)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 자는 백부, 호는 지족·충헌.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찬이며, 어머니는 생원 정참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사마시와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478년 통신사 이계동(李季仝)의 군관이 되어 일본에 다녀왔으며, 문과중시에 다시 장원급제하여 형조좌랑에 임명되었다. 그해에 건주위를 정벌하는 어유소의 종사관으로 출전했다.
1480년 사가독서했으며, 세자시강원 보덕이 되어 세자(世子 : 뒤의 연산군)에게 풍간하면서 집요하게 학문을 진강하여 세자의 미움을 샀다. 1495년(연산군 1)에 창원부사로 내려갔다가 사임하고 지리산에 들어가서 지족정을 세우고 시와 학문에 전념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참수당했다. 성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충효로 이름났으며, 시문에도 능하여 〈동문선〉에 시 1편이 전한다. 1506년(중종 즉위)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진주 신당서원에 제향되었다.